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울지 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 - 인도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화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인도에 관한 막연한 동경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 사이의 여러명의 지인들이 인도 여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인도여행에 관한 여러 다큐들이 수많은 이미지들을 보여 주었다.

그것들이 인도에 관한 나의 동경이 지나치게 망상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짝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가는 가봐야지 그렇게 단도리질만을 치고 있을 뿐,

한치의 생각도 물러나지 않은 채,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가서 부딛치고 또 느껴보지 않은 이상, 이 고집불통을 꺾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인도와 관계된 것은 모두 내 관심사 안이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 이 책도 역시 그 관심사 안에서 잡게 된 것이다.

 

마흔 즈음에 접한 글쓴이가

현실에 밀리고 밀려 도무지 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막막해질 때,

그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인도로 갔고,

그리고 2년 동안 그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방인으로 살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회의' 속에서

인도가 도피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도가도 막막한 일상의 탈출이

그녀에게는 적어도 의미있는 일이었겠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곳이 인도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난 것이었던 그녀의 여행 기록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이나 남이 느끼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싶었다.

단지 내것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채 한숨으로 뱉어지는 것으로 말뿐.

그녀는 그것들을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차이일 뿐. 그것이 하늘과 땅의 차이인가는 모를 일.

 

책 안에 있는 세상보다

내 안에 있는 세상에 더 침잠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인도의 이미지'는 앞으로도, 뒤로도 물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굵은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하여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소금 시'(윤성학)라는 제목의 짧은 시 한 편을 읽고 나서 잠깐 울었다. 울지 마라는 시인의 명령에 불복종하며 소금병정처럼 울었다. 소금 방패도 던져두고 굵은 소금밭에 자빠져 아픈 몸이 녹도록 울고 싶었다. 실컷 울고 난 뒤, 나는 소금을 얻기 위해 싸우러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p79

 

그 소심하고 주눅 든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뭐라 말 할 수 없을 만큼 슬퍼졌다. 바닥에서 높이가 겨우 칠십 센티미터인 의자로 짜누를 끌어올리는데 걸린 시간은 내가 인도에서 수저 없이 맨손으로 밥을 카레 국물에 비벼먹고,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 뒷일을 해결하는데 걸린 시간과 엇비슷했다. 육체와 마음에 스며든 질기고도 서글픈 관성으로 생의 바닥을 기어간다는 점에서 나와 짜누는 다를 바 없었다.

-p249

 

-자신이 아는 만큼 대상을 판단하고, 그 오해와 편견 속에서 세상에 살 발판을 확보하는 우스꽝스러운 짓, 나도 이골이 날만큼 저지른 짓 아니던가 p250

 

- 누군가 말했다. 여행이란 익숙한 조건에서 낯선 조건 속에서 존재를 밀어 넣는 일, 그래서 존재 앓기를 하는 일이라고. 익숙하던 일상이 불현듯 뜯겨져나가는 것, 예측 불가능한 순간과 매번 정면 대결하는 것, 갑작스런 풍경이 솥뚜껑 속 닭이 살아 튀어나오듯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여행. 선 채로 오지 않는 기차를 밤새 기다리는 것, 매혹적인 불안을 즐기는 것, 낯선 세상의 무례를 겸허히 견디는 것, 이별을 즐기는 것,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자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는 것, 미워한 사람들이 무지무지 애틋해지는 것, 신문에 어떤 기사가 났는지 알 수 없는 것,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것을 아는 것, 예전과 생판 달라진 나를 만나는 것,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p3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 만에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었다.

정확히 10년 전 그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강의'를 읽으면서 오래된 '성인들'의 말들이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말을 다시 새겼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합니다.

행티 사나운 심사와 불신의 어두운 자국이 도리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인식으로부터 시원히 벗어나게 하고 있음을 보거나,

세상의 힘에 떠밀리고 시달려 영악해진 마음에 아직 맑은 강물 한 가닥 흐르고 있음을 볼 때에는,

문패처럼 그의 이미에서 그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 그에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바늘 구멍으로 황소를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경우에는 이 바라본다는 행위는 그를 알려는 태도가 못됩니다.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아끼며 간직하고 있던 이 책에서 밑줄 그어놓았던 부분을 찾아 다시 읽어 보았다.

 

몇 달 동안 '어떻게 하면 잘 살까'하는 현실적인 생각, 세상은 왜 이리 어지러운가...뭐 이런 세상으로

체질에 맞지 않는 경제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몇 십 페이지를 남겨두고 끝까지 읽지 못하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답 없는 말처럼으로만 여겨지는 것들에게서 나는 내 머리만 탓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내 머리 탓이 아니라 '중심'을 잃은 탓이라는 걸.

알았지만 외면했던 그 마음을 터 놓는다.

 

좋은 책은 자주 자주 들여다보아야겠다.

고전을 읽고 성현들의 마음을 새기고 또 새기는 것은

하루 하루 우리 마음이 엇나가는 게 천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仁)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인이 무엇인지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논어>에서 그것을 묻는 제자에 따라 공자는 각각 다른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만,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人)+인(人)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혹시 여러분 중에 간(間)에다 초점을 두는 '사이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존재에 중심을 두는 개념입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입니다." 

 

"유럽 근대사는 존재론적 논리가 관철되는 강철의 역사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근대사의 정점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패권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논리가 바로 존재론의 논리이며 지배, 흡수, 합병이라는 동(同)의 논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홍희 몽골방랑 -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김홍희 지음 / 예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방랑하는 카메라의 다음 목적지는 언제나 인간의 따뜻한 심장이 뛰는 그곳이다.'' 

EBS 세계 테마 기행 ' 몽골편'을 보았다.

'광활한 대지에 대한 향수'

밑도 끝도 모를 이 감정은 불쑥 틔어올라서는 너무나 간절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나를매몰시킨다. 

이 사진집은 그 마음이 이끈 책이다.

아무런 정보없이 그저 충동적으로 산 책이었는데

한낱 말장난에 그치는 일개의 책들과는 다르게

 작가의 철학이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광활한 대지에 놓인 이방인의 눈으로

그 대상들을 바라보게 되면

쉽사리 동경이나 감성에 치우칠 수밖에 없겠다 싶은데

이 책은 오히려 건조하다 여겨질 만큼 담담하다.

그래서 '그대로의 모습'이 느껴진다.

몽골의 환상을 만들지 않으면서

몽골의 놓인 한 사진 작가의 자기 바라보기 

"사진은 방랑이다 방랑은 나로부터 떠나는 것이자, 나를 만나는 것이다. 사진은 내 안의 나를 찾는 일이다"

라고 쓰여진 작가 소개 글에서처럼.

  

"우리는 보이는 것을 찍는 척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 그리고 그 보지 못한 광경을 마치 본 것처럼 한 장의 인화지에 되살린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사진가가 목격한 것으로 인정한다. 사진가는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목격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허위의 기초 위에 발표한다. 그 발표는 때로 전시로, 때로 책으로 묶인다. 그것들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언이 되어 떠돈다. 그러나 그 증언은 나는 거기 있었지만 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셔터가 끊어지는 순간, 화면 안은 검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찰나의 어둠은 생각보다 길게 흘렀다."

 

"배고픈 자에게는 진수성찬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 카메라 앞에서의 볼품없는 초라한 국수 한 그릇일 뿐이다. 이것은 몽골의 사거리 식당에서 만난 초라한 국수의 '재현'이 아니라 '초라한'이라는 형용사적 의미의 '표현'이다.

배를 채우기 위한 국수 한 그릇 앞에서 최첨단 카메라로 연거푸 촬영을 해대는 것은 스스로 설정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다른 많은 이미지들을 버리는 행위이다. 그건 어쩌면 스스로 설정한 어떤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 떠도는 현대판 유목민의 또 다른 왜곡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수 한 그릇의 이미지는 유목민의 현실과 동떨어진, 나 자신만의 느낌을 담아 오히려 그들의 삶을 왜곡하는 이미지가 되어 부유할 수 있도 있는 것이다."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언제나 닫혀 있듯 나의 눈도 그러했다. 외부의 힘이 없이는 셔터가 열리지 않듯 나 역시 외부로부터의 어떤 힘을 기대하며 떠돌았다. 스스로 셔터를 여는 카메라는 없다. 나는 쇠뭉치를 깎아 만든 한 대의 카메라와 다를 바 없었다.

몽골의 초원에서 길을 잃고 떠돌다 초라한 사거리 식당의 이정표를 보는 순간 알았다. 사람도 길도 없는 광야에서 오직 유일한 이정표는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이정표는 동쪽으로 '무릉 이백사십일 킬로미터'라고 가리킬 때만이 존재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가리킴은 무심히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집단이나 국가라는 이름이 가지는 권력
정당함으로 행해지는 그들의 부당함
집단, 국가의 논리 앞에 개인의 양심과 가치는 항상 뒷전일 수밖에는 없는 일인가

소설 '도모유키'를 아주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역사의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오늘의 현실을 읽고 있다.

전쟁의 야만성에 매몰된 인간성
명외에게 향한 도모유키의 마음이겠으나
시대의 야만이 사라진,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사라진 지금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 '집단의 논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무사의 힘'이 아니라 '돈'으로 이동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즐거운 책읽기였다.
여동생이 팔려가는 걸 막지 못했던 도모유키에게
명외는 마음의 빚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적이 되는 상황, 그녀를 살려내지 못하면 그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마지막 외침이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자신이 살기 위해, 한 줌의 밥을 얻기 위해 칼을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명외의 생사를 떠올리는 것은...
적어도 밥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초반에는 털털 흙길을 달리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잘 포장된 미끈한 길을 달리는 듯
문체가 만들어내는 힘도 책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형용사나 부사 구실에 머무는 문장과 단락'을 버리려 애썼다는 작가의 말이 뜨끔하다.
삶에 있어서 그 쓰잘데기 없는 형용사와 부사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