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筆算_Calculating on Paper📜 (김필산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mustahil</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가작 「책이 된 남자」/ 김필산의 사이언스비치 유튜브 채널https://youtube.com/c/김필산의사이언스비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3 Oct 2026 12:53:10 +0900</lastBuildDate><image><title>김필산</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17041143331987.png</url><link>https://blog.aladin.co.kr/mustahil</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김필산</description></image><item><author>김필산</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블랙홀, 거대한 수학적 판타지에서 거니는 물리학 전쟁 - [블랙홀 전쟁 - 양자 역학과 물리학의 미래를 둘러싼 위대한 과학 논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mustahil/17536343</link><pubDate>Fri, 25 Sep 2026 1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ustahil/175363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249X&TPaperId=175363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21/46/coveroff/89837124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249X&TPaperId=175363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블랙홀 전쟁 - 양자 역학과 물리학의 미래를 둘러싼 위대한 과학 논쟁</a><br/>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이종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08월<br/></td></tr></table><br/>최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며 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 일반 상대성 이론』을 교재로 삼았다. 전에도 말한 대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최소한의 이론적 설명과 필수적인 수식만으로 상대성 이론의 정수만을 최소한의 난이도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nbsp;『물리의 정석: 일반 상대성 이론』은 총 10개의 챕터 중 무려 세 챕터를 블랙홀에 할애한다. 내게는 이것이 퍽 낯설었는데, 왜냐하면 블랙홀이란 관측조차 극도로 어려운 특수하고 예외적인 천문학적 대상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나는 블랙홀이라는 주제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터라, 서스킨드의 교재에서 블랙홀을 그렇게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에 짜증마저 일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블랙홀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 그 자체였으니까.<br>그러나 레너드 서스킨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블랙홀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핵심적인 주제임을 강조한다.<br>블랙홀을 잘 이해하는 것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 이유는 블랙홀이 가장 간단하며 이상적인 형태의 무거운 물체이기 때문이다. 블랙홀의 질량은 점에 집중되어 있다. 블랙홀은 상대성 이론에서 뉴턴 물리학의 점입자와 동등한 것이다.서스킨드가 전하려는 바는 명확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넘어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극한에 가까운 중력 법칙을 이해하려면, 평범한 질량체가 아니라 고도로 응축되어 있으면서도 완벽한 대칭성을 지녀 계산이 가능한 대상이 필요하다. 물리학에서 블랙홀이란 신비로운 천문학적 관측 대상이 아니라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해 중 풀이가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인 물리학적 연습문제인 셈이다.<br>때마침 출간된 브라이언 콕스와 제프 포셔의 『블랙홀』을 읽었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 자체를 깊이 파고들지 않고도 펜로즈 다이어그램이라는 직관적인 도표를 통해 블랙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반부까지는 이 다이어그램을 통해 블랙홀의 상대성 이론을 짚어나가는데, 그림을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전반적인 메커니즘은 웬만큼 납득이 갈 정도로 이해시켜 준다. 하지만 수식을 통한 정밀한 이해와 견주어 보면 여전히 근본적인 이해의 영역에 온전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이어그램을 통한 직관적 이해는 자칫 수식이 전달하는 본질을 건너뛰고도 다 이해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좋은 솔루션은 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을 병행하는 것이다.<br>콕스와 포셔의 『블랙홀』은 전반부를 할애해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대표적인 엄밀해들을 다룬 뒤, 후반부로 접어들어 완전히 색다른 측면을 다루기 시작한다. 바로 스티븐 호킹이 촉발한, 엔트로피와 정보 문제를 둘러싼, 물리학의 근본 원리에 위기까지 초래해서 서스킨드가 ‘블랙홀 전쟁’이라고까지 칭했던 블랙홀 정보 역설이다. ‘블랙홀 전쟁’이란, 호킹이 던진 도발적인 정보 소멸 주장에 맞서 서스킨드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의 기본 법칙을 수호하고자 수십 년에 걸쳐 치열하게 벌인 지적 격돌이자, 서스킨드가 이를 기록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br>그리하여 나는 콕스와 포셔의 『블랙홀』을 읽은 후 자연스럽게 서스킨드의 『블랙홀 전쟁』으로 물흐르듯 넘어갔다. 콕스와 포셔의 책이 블랙홀 이론의 태동기(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부터 책이 나오기 직전(2025년)의 최신 이론까지를 연대기순으로 조망하기에 더없이 훌륭하지만, 때로 불거지는 센스 없는 물리학자들의 과한 개그 욕심이 약간 거슬리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서스킨드는 굉장한 달필가라서 『블랙홀 전쟁』은 물리학적 이론이 난도와 무관하게 글을 읽는 재미 자체가 크다. 치밀한 이론적 공방뿐 아니라 학자들 사이에 흘렀던 팽팽한 긴장감과 지적 대립을 생생하게 풀어내어 시종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게 만든다.<br>다만 『블랙홀 전쟁』이 2008년에 출간된 책이라 이후 진전된 최신 블랙홀 연구 성과를 담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다. 서스킨드는 책 말미에 호킹에 대항해 ‘블랙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선언하지만, 콕스와 포셔의 책이 짚듯 2012년 AMPS 그룹이 제기한 ‘화염벽(firewall) 역설’로 인해 서스킨드의 상보성 원리는 또 한번 거센 반격을 맞았다.(책에서는 ‘방화벽’이라 번역되었지만 이론에서는 불을 막는 벽이 아니라 불의 벽이므로 ‘화염벽’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진정한 결론은 2019년 페닝턴, 알메이리, 엥겔하트 등이 주도한 ‘아일랜드(Island) 공식’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마련되었다. (물론 이 아일랜드 공식 역시 물리학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완전무결한 종착지라 단정하기엔 이르다) 따라서 서스킨드의 『블랙홀 전쟁』 한 권만으로는 블랙홀의 최신 흐름을 온전히 조망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을 콕스와 포셔의 『블랙홀』이 채워주기에, 두 책을 나란히 교차해 읽기를 권한다.<br>블랙홀 정보 이론의 연대기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는 대체 호킹이 무엇을 주장했기에 서스킨드가 이 호들갑을 떨고, 블랙홀에 도대체 무슨 치명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블랙홀 전쟁』과 『블랙홀』 두 책을 바탕으로, 현대 물리학의 판도를 뒤흔든 블랙홀 정보 이론의 연대기를 짚어보고자 한다.

<br>1.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1974년)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 나오지 못하는 완벽히 검은 천체여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양자역학(정확히는 양자장론)을 들이댄 사람이 바로 스티븐 호킹이었다. 그의 발견인 ‘호킹 복사’에 따르면, 사건지평선 바로 바깥에서 쌍생성된 두 입자 중 하나가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면, 다른 입자는 우주 공간으로 탈출한다. 외부 관찰자의 눈에는 블랙홀이 마치 열을 뿜어내며 스스로 질량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블랙홀을 열역학적 엔트로피를 지닌 물리 계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되었다.<br>2.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정보 역설 (1976년)호킹은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 물리학의 근본을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역설을 던진다. 그가 계산한 호킹 복사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물질의 고유한 정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완전한 무작위적 열복사였다. 이 현상은 양자역학의 근본 원칙인 '유니타리성'을 위반한다. 유니타리성이란, 양자역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확률을 다 더하면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100%여야 한다는 원칙, 즉 우주의 정보는 결코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지 않고 완벽히 보존된다는 법칙이다. 유니타리성을 위반한다는 말은, 미래의 상태가 과거를 전혀 확정할 수 없음을 뜻한다. 레너드 서스킨드는 호킹이 블랙홀 정보 역설을 통해 물리학계에 ‘선전포고’를 감행했고 비로소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서스킨드는 호킹의 블랙홀 비유니타리성이 양자역학 자체를 폐기해야 할 만큼 심각함을 인지했기 때문이다.<br>3. 서스킨드의 블랙홀 상보성 (1993년)서스킨드가 날린 첫 번째 반격은 일반인의 눈에는 호킹의 주장보다 훨씬 더 기괴하게 들린다. (솔직히 유니타리성이 깨지든 말든, 보통 사람에게 그것이 왜 재앙인지 직관적으로 와닿기나 할까?)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 상보성 원리—입자와 파동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실재를 이루지만, 어떤 실험에서도 둘을 동시에 관측할 수는 없다는 원리—에서 이름을 따온 것만 보아도 서스킨드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서스킨드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떨어지는 물질의 정보는 그와 함께 떨어지는 관찰자 A, 그리고 외부의 관찰자 B에게 완전히 다르게 관측된다. 지평선을 넘어 자유낙하하는 사람 A는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대로 아무런 충격 없이 부드럽게 경계를 통과하며, 그에게 지평선은 그저 평범한 빈 공간일 뿐이다. 반면 외부 관찰자 B가 볼 때는 A는 지평선 바로 위의 극심한 열기에 부딪혀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서스킨드는 A에 대한 두 배타적인 운명들이, 모두 명백한 물리적 실재라고 말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역사(미래)가 펼쳐지는 셈이다.<br>4. 홀로그래피 원리(1993~5년)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라르뒤스 토프트와 레너드 서스킨드는 블랙홀 상보성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기하학 원리를 창안한다. 2차원 필름에 레이저를 쏘아 3차원 입체상을 맺히게 하는 기술에서 착안해 ‘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라는 이름을 붙였다. 3차원 공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 현상과 정보는 그 공간을 둘러싼 2차원 경계면 표면에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이는 국소적인 블랙홀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 공간, 나아가 우주 전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블랙홀 내부는 3차원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재하는 물리적 정보는 2차원 지평선 막에 펼쳐져 있으므로, 정보가 특이점에 갇혀 영원히 소멸할 이유가 없다. 이는 “블랙홀의 정보 수용량(엔트로피)은 부피가 아니라 사건의 지평선 표면적에 비례한다”는 베켄슈타인과 호킹의 발견을 자연스럽게 뒷받침한다. 이 원리로 블랙홀 상보성을 해석하자면, 외부 관찰자가 보는 지평선 표면의 2차원 양자 상태야말로 원본 데이터이며, 블랙홀 안으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관찰자의 경험은 그 2차원 데이터들이 고도로 얽혀 만들어낸 3차원적 홀로그램, 즉 환상에 가깝다.<br>5. 후안 말다세나의 반 드 지터 공간과 AdS/CFT 대응 (1997년)후안 말다세나는 음의 우주상수를 지닌 ‘반 드 지터(AdS)’ 시공간을 배경으로 홀로그래피 원리를 정밀한 수학적 대응 관계로 구체화한다. ‘AdS/CFT 대응'이란 이 중력이 작용하는 5차원 AdS 시공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 현상은, 그 바깥을 감싸는 4차원 평평한 경계면 위에서 정의되는 중력 없는 양자장론(등각장론, CFT)과 수학적으로 100% 동등하다(이중성을 이룬다)는 뜻이다. 4차원 경계면의 양자장론은 일반적인 양자역학 법칙을 따르므로 시간 변화에 따라 유니타리성이 완벽히 보존된다. 따라서 이와 동등한 5차원 내부 블랙홀의 형성 및 증발 과정에서도 정보가 결코 소멸할 수 없다는 강력한 증거가 확보되었다.<br>후안 말다세나의 연구를 토대로 스티븐 호킹은 패배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콕스와 포셔의 『블랙홀』에서는 관련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br>6. AMPS 그룹의 화염벽 역설 (2012년)알메이리와 폴친스키 등(AMPS 그룹)은 양자 얽힘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보가 호킹 복사로 빠져나오려면 지평선에 무한한 고에너지를 지닌 거대한 ‘화염벽(Firewall)’이 생겨나야 하며, 이는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를 정면으로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역설은 현대 물리학을 지탱하는 다음 세 가지 대원칙이 결코 동시에 양립할 수 없음을 폭로한다.1. 양자역학의 유니타리티: 정보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호킹 복사로 정보가 나온다).2. 국소적 양자장론: 지평선 바깥의 물리는 우리가 아는 표준적인 물리 법칙을 따른다.3.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 사건의 지평선은 특별한 벽이 아니며, 자유낙하하는 관찰자는 아무런 장벽 없이 부드럽게 통과한다.결국 정보 보존을 지켜 내려던 서스킨드의 상보성을 관철하려면 3번(등가원리)이 깨져 지평선에 치명적인 화염벽이 생겨나고, 거꾸로 3번을 지키려 들면 1번(유니타리성)이 깨져 호킹의 비극적인 정보 소멸 주장이 되살아나는 삼자택일 딜레마 상황이 생긴다.<br>7. 말다세나와 서스킨드의 ER=EPR (2013)화염벽 역설을 반격하기 위해 말다세나와 서스킨드는 ER = EPR 가설을 제안한다.EPR (양자 얽힘):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이 제시한 미시적인 양자 얽힘.ER (웜홀): 아인슈타인-로젠이 유도한 거시적 시공간의 연결 다리(아인슈타인-로젠 다리, 즉 웜홀).미시적으로 최대로 얽힌 두 대상(EPR) 사이에는 시공간의 웜홀 다리(ER)가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즉, 양자 얽힘과 웜홀은 같은 것이다. 호킹 복사가 진행되면서 지평선 밖으로 탈출한 막대한 양의 ‘과거 복사들’은 블랙홀 내부 상태와 얽히며 웜홀을 완성한다. 이 웜홀 다리 덕분에 과거 복사들은 지평선 안쪽의 파트너 입자와 사실상 ‘하나의 물리적 덩어리’로 직결된다. 결국 방출되는 복사 입자는 두 대상에 양다리를 걸친 것이 아니라, 웜홀로 묶인 단 하나의 단일 계와 1:1 얽힘을 맺는다. 얽힘의 ‘일부일처제 원칙’은 깨지지 않으며, 지평선에 무시무시한 화염벽이 생길 이유도 사라진다.<br>8. 아일랜드 공식: ER = EPR의 수학적 실체화 (2019년)2019년에 등장한 ‘아일랜드 공식’은 ER=EPR의 직관을 엄밀한 수학으로 실체화하며, 호킹의 원래의 계산, ‘블랙홀 정보 역설’ 논문의 계산이 어디서 빗나갔는지 짚어낸다. 블랙홀 수명의 전반부에는 내부에 ‘섬(Island)’이라 불리는 영역이 나타나지 않아 엔트로피가 지속해서 증가한다는 호킹의 계산이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블랙홀이 절반쯤 증발한 시점(돈 페이지의 연구를 딴 ‘페이지 타임’)을 지나면 지평선 내부에 ‘섬’이 출현한다. 이 섬은 기하학적으로는 분명 블랙홀 내부이지만, 정보론적으로는 외부 복사계에 속하는 ‘내부 안의 외부’ 영역이다. 늙은 블랙홀로 뛰어든 우주인의 정보는 특이점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일랜드 영역(얽힘 쐐기)에 흡수되어 복제 웜홀을 통해 밖으로 흩어진 과거 복사들을 이용해 원격으로 완벽히 재구성된다.<br>수학적 판타지, 블랙홀 정보 이론이 모든 연대기와 물리학적 개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솔직히 나도 어떻게든 내용을 써 보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안 된다. 『블랙홀 전쟁』은 『물리의 정석』과 달리 수식을 통한 본질에서 꽤 많이 떨어져 있도록 쓰여졌기 때문이다.) 호킹의 기습적인 선전포고로 물리학의 근본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서스킨드가 블랙홀 상보성이라는 기괴한 현상을 실제라고 억지를 부리며 반격하는 장면, 우주가 사실 홀로그래피일지도 모른다는 엄청나고 대담한 가설들이 제시되고, 호킹이 결국 패배를 인정하는 결정적인 순간, ‘화염벽 역설’이라는 2차전의 시작, 서스킨드의 양자 얽힘이 사실은 웜홀일 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대담한 가설을 제기하고, 아일랜드 공식으로 최종적으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들, 그러한 픽션같은 반전과 재반전, 승패의 순간만 따라가도 충분히 재미있다.&nbsp;<br>여기서 출현한 여러 가설들이 현대 물리학의 지평을 꽤 넓히게 되었으니, 홀로그래피 원리(또는 AdS/CFT)나 ER=EPR 같은 서스킨드가 주도한 가설들은 어쩌면 단순한 블랙홀 방어 논리를 넘어, 100년 넘게 미완으로 남아 있던 ‘양자 중력’과 ‘모든 것의 이론(TOE)’을 향한 결정적 도약대 역할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했던 ER(아인슈타인-로젠) 다리, 일명 ‘웜홀’은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그토록 거부하며 내놓은 EPR(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역설과 실제로 같은 현상임을 제기하며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연결고리를 짓는다.<br>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 이론들에 큰 한계가 존재한다. 홀로그래피 원리의 가정은 AdS/CFT라는 결정적인&nbsp; 수학적 성과를 통해 뒷받침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우주는 ‘반(-)’ 드 지터가 아닌 ‘정(+)’ 드 지터 공간이다. (정) 드 지터 공간 역시 홀로그래피 원리를 충족시키는지는 누구도 성공적으로 증명한 적이 없다.&nbsp;<br>결국 몇십 년 간의 ‘블랙홀 전쟁’을 통해 도출된 물리학적 이론들은 실험적 관측이나 반증 가능성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재미있는 수학적 장난감 우주를 이리저리 만져 보며 휘갈겨 써 댄 거대한 유희적 판타지에 불과해 보인다. 실제로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에 대해 내 생각과 똑같이 비판하고 있다. 『수학의 함정』이라는 책을 쓴 자비네 호젠펠더(Sabine Hossenfelder)는 이렇게 말했다.<br>이러한 해법들은 모두 수학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다만 우리는 그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 모를 뿐이다. 왜 그럴까? 바로 블랙홀 증발 현상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문제는 ‘어떤 해법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해법을 가장 선호하는가’가 되어버린다. 물론 누구나 자신이 제시한 해법을 가장 좋아하기 마련이므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단일한 해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일은 지금도, 그리고 100년 뒤에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 정보 손실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식의 헤드라인이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이유다.<br>진짜 문제는 너무 많은 이론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이 수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은 과학이다. 자연에 대한 이론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만, 일관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블랙홀 정보 손실 문제는 사실상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br>서스킨드는 초끈 이론의 초기 주창자 답게, 『블랙홀 전쟁』에서 상당 부분을 초끈 이론과 블랙홀 정보 이론과의 연결고리를 짓는 데 할애한다. 사실 나로서는 가장 이해 안되고(왜냐하면 초끈 이론 자체를 수식으로 이해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쓸모 없다고(왜냐하면 초끈 이론은 여전히 물리학에서 하나의 거대한 가설이기 때문에) 생각한 부분이었다. 초끈이론에 대해 “틀린 것조차 아니다”라며 신랄한 평가를 내렸던 물리학자 피터 보이트는 블랙홀 정보 이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br>조지 머서의 기사(링크 참조)는 여러 가지를 명확하게 해 주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다음과 같은 소식이다. “연구진은 초끈 이론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블랙홀 정보 이론에 대해) AdS/CFT에 기반한 모든 토대가 사라지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은 순전히 준고전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뜻인 것 같다. 이 새로운 준고전적 계산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정보 역설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주장이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br>솔직히 말해 『블랙홀 전쟁』은 재미있었다. 서스킨드의 필력도 물리학자의 글치곤 괜찮았고, ‘전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물리학자들의 지적 격돌은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SF 작가로서 내 시선에서도 블랙홀에 관련한 이러한 소재들은 매력적인 SF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터 보이트나 자비네 호젠필더 같이, 이론 물리학의 최신 조류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학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일 필요는 있다. 그것은 바로 물리학은 수학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이다. '블랙홀은 양자역학의 근본 원리를 뒤엎는다'는 주장이나 ‘우주는 사실 홀로그램이다’라는 주장이 아무리 경이로운 발상의 전환이라 한들, 그 기발함만으로 스티븐 호킹이나 레너드 서스킨드는 ‘천재’가 될 수 없다.&nbsp;<br>이 지점에서 나는 아인슈타인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가 서스킨드와 달리 위대한 세기의 천재로 기억되고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주장한 거의 모든 가설들이, 당시에는 서스킨드의 상상만큼이나 기괴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그의 가설들이 끝내 전부 관측되어 실재하는 법칙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21/46/cover150/89837124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214689</link></image></item><item><author>김필산</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아인슈타인이 지상 최대의 천재인 이유, 그의 삶과 우주 -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title><link>https://blog.aladin.co.kr/mustahil/17497535</link><pubDate>Sun, 06 Sep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ustahil/174975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4355&TPaperId=174975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3/coveroff/89729143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4355&TPaperId=174975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인슈타인 삶과 우주</a><br/>월터 아이작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7년 11월<br/></td></tr></table><br/>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시리즈를 1권부터 읽어 나가다, 4권 일반 상대성 이론 편에 이르러 텐서 미적분학의 높은 벽 앞에서 결국 좌절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나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향한 집념을 꺾지 않고 브라이언 콕스의 『블랙홀』, 야우싱퉁의 『수학의 중력』, 마커스 초운의 『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깨달은 바, 수식을 통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데는 역시 『물리의 정석』만 한 책이 없었다. 결국 4권을 서너 번씩 거듭 탐독하며 수식 하나하나와 씨름한 끝에, 이제야 비로소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거대한 봉우리의 자락을 어렴풋이 밟아본 듯한 기분을 느끼고야 말았다.<br>물론 다른 관측자가 보기엔 나의 이해를 온전한 이해라고 부르기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할 테다. 때로 물리학 이론은 그것이 태동한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갈 때 한층 더 명쾌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 직전, 당대 과학자들이 직면했던 사유의 한계와 고민을 온전히 공유할 때 비로소 그 발견의 필연성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배울 때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서 시작해 보어를 거쳐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으로 나아가는 흐름으로 배우는 게 자연스러운 것도 같은 이유다. 상대성 이론 역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렇다면 (양자역학과는 다르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직 한 사람,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뿐이다. 그리하여 집어 들게 된 책이 월터 아이작슨의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였다.<br>앙자역학이 여러 물리학자들의 공평한 기여를 통해 이루어진 반면, 상대성 이론은 사실상 아인슈타인 한 사람의 지적 도약으로 일궈낸 성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대성 이론을 배울 때는 그의 사고 과정을 따라 독창적인 공리와 사고실험의 의미를 헤아려보는 작업이 중요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뿌리가 된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원리’, 그리고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탱하는 ‘등가 원리’를 왜 출발점으로 택했는지 추적하다 보면, 이론의 전개 과정이 한결 자연스럽게 읽히기 시작한다.<br>---<br>새로운 과학 이론이 태동할 때는 여러 학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하거나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른바 ‘다중 발견’이 과학사적으로 흔히 일어난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이 대표적인 예다. 양자역학 역시 수많은 물리학자의 동시적 연구 성과가 누적되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다중 발견이라 볼 수 있다. 한 시대에 축적된 새로운 관측 결과와 공통의 문제의식이 무르익으면서 마침내 새로운 패러다임이 터져 나올 토양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만큼은 이러한 통상적인 과학사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오직 아인슈타인만이 그 결정적인 순간에 홀로 그만의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nbsp;<br>그렇다고 그가 남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질문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과 뉴턴 역학의 충돌처럼, 당대 물리학계 전체를 뒤흔들던 시대적 난제는 누구에게나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다만 그 모순을 뼈아프게 절감하던 수많은 석학 중,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해답을 낚아챈 이는 오직 아인슈타인 한 사람뿐이었다.<br>물론 아인슈타인의 초기 이론인 특수 상대성 이론만큼은 다중 발견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나 저술가도 있다. 1905년 무렵, 아인슈타인의 라이벌로 꼽히던 헨드릭 로렌츠와 앙리 푸앵카레의 존재 때문이다. 실제로 로렌츠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 수식인 ‘로렌츠 변환’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만큼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푸앵카레 역시 ‘동시성의 상대성’ 같은 개념을 아인슈타인보다 앞서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자신의 변환식에 따른 길이 수축을 그저 ‘에테르 속을 통과할 때 전자기적 상호작용으로 물체가 압축되는 현상’ 정도로 해석하며, 고전 역학의 틀을 지키기 위한 임시방편(ad-hoc) 가설로 취급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푸앵카레조차 끝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근거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고 월터 아이작슨은 지적한다.<br>아인슈타인 외에 상대성 이론의 탄생에 결정적 족적을 남긴 인물을 꼽자면,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이기도 했던 헤르만 민코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정작 재학 시절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을 '게으른 학생'으로 여겨 추천서조차 써주지 않았을 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냉랭했다.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의 직관 중심적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결의 독창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조차 미처 내다보지 못한 ‘4차원 시공간’과 ‘4-벡터’라는 우아한 수학적 체계를 창안해 냈다. 초기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물리적 이론을 불필요하게 수학적으로 복잡하게 포장했다며 은사의 시도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민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둘의 관계는 껄끄러운 채로 남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민코프스키 이론이야말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유도해 낸 길이 수축이나 시간 지연, 질량-에너지 등가성 수식들이 어딘가 지저분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반면, 민코프스키의 4-벡터 체계는 대칭적이면서도 극도로 명료하여 자연의 본질적 기하학을 훨씬 투명하게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아인슈타인 역시 민코프스키가 작고한 뒤에야 그의 통찰을 온전히 인정하고, 민코프스키의 4차원 시공간이라는 기하학적 토대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정립했다. 그러나 민코프스키의 이러한 위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를 특수 상대성 이론의 다중 발견자로 분류할 수는 없다. 그의 이론은 명백히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의 발표 후에,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br>일반 상대성 이론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단독 발견의 성격은 한층 더 도드라진다.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뒤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이 완성되기까지는 장장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당대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등속 운동에만 머물던 이론의 무대를 가속 좌표계로 확장해야 했고, 우주에 ‘빛보다 빠른 속도는 없다’는 전제가 확립된 이상 거리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역시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했다. 10년이란 다른 천재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군나르 노르드스트룀이나 막스 아브라함 같은 범상한 물리학자들은 중력을 전자기학처럼 장(field)의 개념으로 다루며 나름의 중력 이론을 제시하는 등 고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안 이론은 시공간 자체가 휘어진다는 혁명적 기하학으로 중력의 본질을 꿰뚫은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해답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br>그런데 아인슈타인조차 10년이나 걸렸다는 건 역으로 말하면,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매 순간 지적 한계에 부딪혔을 만큼 그 과업이 극도로 험난했음을 뜻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기까지 고뇌했던 10년의 세월 동안 아인슈타인은 수없이 이론의 방향을 틀고 가설을 수정해야 했다. 그 지난한 방황의 길목에서 그는 필연적으로 세상을 떠난 스승 민코프스키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아인슈타인의 사유 방식은 번뜩이는 물리적 직관에 깊이 기대어 있었을 뿐, 수학적 엄밀함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못했다. 수학 실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민코프스키의 4-벡터처럼 대칭적이고 아름다운 형식화조차 물리의 본질을 흐리는 불필요한 추상화라며 외면할 만큼 직관주의에 갇혀 있었던 탓이다. 그런 그가 대학 동창이자 수학 교수가 된 마르셀 그로스만에게 손을 내밀어 본격적인 공동 연구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뼈아픈 시행착오 속에서 이루어낸 아인슈타인 내면의 지적 성장을 방증한다. 비로소 스승 민코프스키의 통찰을 겸허히 수용한 그는 기하학이라는 정교한 언어를 받아들여,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극히 수학적이면서도 우아한 체계로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격렬한 중간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1913년 그로스만과 함께 발표한 초기 이론, 이른바 ‘엔트부르프(Entwurf, 초안) 이론’이었다. 미완의 실패작으로 판명된 이론이었지만, 바로 이 엔트부르프 이론을 강의하던 학술 강연장에 당대 최고의 수학 거두 다비드 힐베르트를 만나게 되었다.<br>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대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다. 그 역시 일반 상대성 이론의 ‘다중 발견’ 사례로 종종 거론되기는 한다. (푸앵카레와 스승 민코프스키, 그리고 힐베르트까지, 아인슈타인은 유독 수학자들과 묘한 악연을 거듭했었다.) 힐베르트는 엔트부르프 이론을 접하자마자 단기간에 그 결함을 수정하고 보완할 길을 자신이 찾을 수 있겠다는 걸 간파해 냈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이 취한 방식과 달리, 그는 물리학의 근본 법칙인 ‘최소 작용 원리’를 활용해, 어쩌면 아인슈타인보다도 더 물리학다운 방식으로 아인슈타인보다 며칠 앞서 중력장 방정식을 유도해 내고야 만다.<br>그래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최종적인 발견자는 누구인가? 이 상황이야말로 과학사의 전형적인 ‘다중 발견’ 사례에 해당할까? 역사적으로 누가 먼저 방정식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다.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우선 힐베르트가 “거의 맞는” 답을 발표했고, 아인슈타인이 며칠 차이로 “최종적인 해답”을 내놨으며, 힐베르트는 그 후에 논문을 “약간” 수정했다고 한다. 힐베르트가 발표한 “거의 맞는” 답은,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리치 스칼라를 방정식에 포함시키는 단계를 빠뜨린(p274) 틀린 답이다.<br>힐베르트의 “거의 맞는” 답: R_μν = 8πT_μν아인슈타인의 “최종적인” 답: R_μν - ½g_μνR = 8πT_μν이에 따르면 최종 승자는 아인슈타인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대로.<br>물론 이 상황을 “누가 더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나”로 따지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건 없다. 아인슈타인은 장장 10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론을 정답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적 감각만은 뛰어났던 힐베르트는 거의 정답에 근접한 그의 중간 결과물을 보고 순식간에 해답을 포착했을 뿐이다. 설령 힐베르트가 며칠 앞섰다 한들, 아인슈타인이 10년간 쌓아 올린 ‘정답으로 향하는 탑’에 무임승차해 마지막 벽돌만 얹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그런 가정이 현실이 되었다면 우선권을 둘러싼 지리멸렬한 논쟁과 싸움이 벌어졌을 테니, 아인슈타인이 며칠이라도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은 과학사적로서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아인슈타인의 사유에 빚진 힐베르트의 사례를 들어 이 순간을 온전한 '다중 발견'으로 포장하는 것 역시 온당치 못하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시작부터 마침표까지, 현대 물리학의 거대한 두 기둥 중 하나인 상대성 이론을 홀로 자신의 힘만으로 완성해 낸 것이다.<br>“만약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이라는 흥미로운 가정을 던지며 상대성 이론의 등장 시점을 가늠해 본 석학들도 적지 않다. 스티븐 와인버그, 막스 보른, C. P. 스노우 같은 인물들은 입을 모아 특수 상대성 이론만큼은 푸앵카레나 로렌츠를 통해 기껏해야 몇 년 늦게라도 등장했을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와인버그는 최소 수십 년은 지체되었을 것이라 내다보았고, 스노우는 20세기 내내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했으며, 보른은 아예 발견되지조차 못했을지 모른다고 평했다. 즉, 특수 상대성 이론은 다중 발견의 기준을 넓히면 사례로써 가까스로 걸칠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 상대성 이론만큼은 일반적인 과학사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굉장히 특수한 사례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낸 아인슈타인이야말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희귀한 수준에 오른 독보적인 천재라고 말할 수 있다.<br>---<br>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까지의 여정을 살펴볼 때 도출되는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그의 개인적 신념과 철학적 지향점이 이론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이 어떻게 객관적인 우주의 물리 법칙과 이토록 완벽하게 맞물릴 수 있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기적 같은 일치가,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길목에서 아인슈타인의 생애를 추적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br>그의 사유를 관통하는 확고한 신념은 바로 ‘통합’이었다. 겉보기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연의 현상들이 사실은 하나의 단순하고 우아한 근원 원리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내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통합의 열망은 아인슈타인 이전부터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품어온 본질적인 지향점이기도 했다. 뉴턴은 천상과 지상의 운동 법칙을 하나로 묶었고,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를 전자기학이라는 단일 체계로 통합했다. 그러나 과학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고 방대한 통합을 이뤄낸 인물을 꼽자면 단연 아인슈타인이다. 그가 상대성 이론을 통해 한데 엮어낸 물리적 실체들은, 대중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들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br>1. 질량-에너지의 통합 (특수 상대성 이론, 1905): 질량과 에너지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변환될 수 있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알려 준 공식이 바로 E=mc^2이다.<br>2. 시간과 공간의 통합 (특수 상대성 이론, 1905): 뉴턴 물리학에서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Spacetime)'이라는 4차원의 단일 구조로 엮어냈다.<br>3. 에너지-운동량의 통합: 시공간의 통합에 따라, 각기 다뤄지던 에너지와 운동량이 통합된다. 에너지는 시간에 관한, 운동량은 공간에 관한 보존량었으나&nbsp;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자 에너지와 운동량은 하나의 에너지-운동량 텐서 안의 하나의 텐서 보존량으로 다뤄지게 된다. (사실 시공간 통합과 이 업적을 최초로 이뤄 낸 주창자를 엄밀히 따지자면 민코프스키이다.)<br>4. 운동법칙와 중력의 통합 (일반상대성이론, 1915): "가속하는 우주선 안의 관찰자와 중력장 안에 있는 관찰자는 물리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등가 원리를 바탕으로, 가속도를 포함한 운동 법칙과 중력의 법칙은 하나의 현상임을 증명했다. 이는 운동 3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따로 발견한 뉴턴의 업적 자체를 통합한 것이다.<br>5. 전기력과 자기력의 진정한 통합 (특수 상대성 이론, 1905):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아인슈타인의 숨겨진 업적은 바로 자기력은 단지 전기력의 상대적인 효과일 뿐임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알린 1905년의 그 유명한 논문 제목이 다름 아닌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하여(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였는데,&nbsp; 이 논문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간 지연, 길이 수축 현상에 추가적으로 전자기력에 대한 챕터를 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독립적인 힘으로 느끼는 자기력이 사실은 움직이는 관찰자(혹은 전하)의 입장에서 시공간의 길이 수축 때문에 전하 밀도가 달라져서 발생하는 전기력의 상대론적 효과라는 결론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은 전기력과 자기력이 대칭적인 방정식을 통해 엮여 있다는 정도에 그쳤다면,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전기력과 자기력이 하나의 현상일 수밖에 없는지”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원리적으로 꿰뚫었다고 할 수 있다.<br>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전자기력을 일종의 운동 법칙으로 다뤄 본 경험이 있는 아인슈타인에게, 전자기력 또한 운동법칙와 중력의 통합인 일반 상대성 이론 내부로 한 번 더 통합할 수 있을 만한 주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중력은 전자기장처럼 일종의 장(Field)으로 다뤄질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아래처럼 중력과 전자기력의 특징들을 나열해 보면 그 대응 관계가 밀접하게 드러난다.<br>특징&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전자기력 (맥스웰 방정식)&nbsp; &nbsp; 중력 (일반 상대성 이론)힘의 근원&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전하&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질량/에너지정지 상태의 장&nbsp; &nbsp; &nbsp; &nbsp;전기장&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중력장움직이는 상태의 장 자기장&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중력자기장파동&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전자기파 (빛)&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중력파파동의 전파 속도&nbsp; &nbsp; 빛의 속도&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빛의 속도파동 발생 조건&nbsp; &nbsp; &nbsp; &nbsp;전하의 가속 운동&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질량의 가속 운동<br>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독보적인 업적을 이뤄 낸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고작 서른 여섯에 불과했다. 물리학의 정점에 섰더라도 그는 스스로 아직도 무언가 더 이룰 것들이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숙원, 물리학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미통합된 미지의 근원, 전자기력을 중력과 하나로 엮는 일로 향했다. 그 위대한 통합의 과업이라면, 남은 생 전체를 온전히 쏟아붓더라도 결코 아깝지 않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br>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의 생애에서 가장 쓸쓸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폄하되기도 하는, 그의 말년 수십 년의 인생과 천재성마저 소진시켜 버린 통일장 이론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통일장 이론으로의 여정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상대성 원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의 ‘등가 원리’처럼, 아인슈타인을 스스로 번뜩이는 직관을 붙들어 줄 물리적 원리가 부재했다는 점에서 아인슈타인 답지 않은 길이었다. 명확한 물리적 원리 대신 복잡한 수학적 형식에만 매달렸던 그 사투는, 결국 나침반을 잃은 채로 미로 속을 헤매는 거인의 여정과 같았다.<br>말년의 통일장 이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구실 삼아 아인슈타인의 위업 전체를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어리석은 환상에 평생을 허비한 것을 보면 그를 세기의 천재라 추켜세우기엔 과장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인류사 최고의 천재라 불리기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나는 전자기력과 중력이 공유하는 수많은 기묘한 유사성을 마주했을 때, 그를 거인으로 만들었던 천재적 직관이 한 번 더 과감하게 작동했던 결과라고 해석하고 싶다. 당시로서는 그 가느다란 가설의 성패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으며, 만약 우주가 정말로 그의 직관대로 짜여 있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생애 세 번째 물리학 혁명마저 일궈냈을지 모른다. 그의 유일한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우주가 그의 원대한 신념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br>당시에 유진 위그너나 오펜하이머 등의 학자들은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존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을 비교하는 언사를 남겼다. 존 폰 노이만은 복잡한 미분방정식이나 수식 문제를 암산으로 몇 초만에 계산해 내는 수학의 화신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천재를 마주하며 우러러 보긴 하지만, 과학사 전체를 조망해 보면 가우스나 오일러, 라마누잔처럼 믿기지 않는 연산력과 수학적 직관을 뿜어낸 괴물들은 드물게나마 계보를 이어왔다.&nbsp;<br>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결코 그런 결의 천재가 아니었다. 기교로서의 수학적 재능만 놓고 보면 힐베르트는커녕 동창 마르셀 그로스만이나 은사 민코프스키에게조차 미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독보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다. 인간의 고착된 상식과 선입견을 단숨에 부수고, 우주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 자체를 재창조해 낸 극한의 상상력과 물리적 직관. 그 재능이야말로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희귀한 것이었으며, 과학사 전체를 통틀어도 오직 아이작 뉴턴 정도만이 비견될 수 있는 영역이었다.<br>---<br>그는 병상에서의 마지막까지 그는 종이에 어떤 계산을 끄적대곤 했는데, 월터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마지막 장에 그 계산 내용을 담았다.<br><br><br>그 분수 계산의 흔적은 결코 아름답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거대한 비선형 방정식 속에서 계수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묵묵히 손으로 검산해 내려간 처절한 씨름의 자국일 뿐이다. 대물리학자가 삶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병상에서 붙들고 있었던 것은 우주를 관통하는 완벽하고 우아한 최종 방정식이 아니라, 이 고독하고 지난한 산술 계산이었다. 우리는 통일장 이론을 향한 그의 마지막 사투가 물리학사에 끝내 유의미한 기여를 남기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병상의 침묵 속에 남겨진 그의 마지막 수식들은 그 어떤 미완의 공식보다도 한층 더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br>『아인슈타인: 삶과 우주』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전기 전문 작가로, 2011년 『스티브 잡스』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최근작인 『일론 머스크』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의 경우, 전기의 마지막 장이 덮인 뒤에도 그는 여전히 현실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숱한 사건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을 통해 그의 자극적인 행보를 실시간으로 목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론 머스크』는 아직 온전한 완결성을 지닌 전기라 부르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가 전기를 읽는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의 마지막 장에 남겨진 쓸쓸한 수식의 흔적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며, 한때 세계를 뒤흔든 영웅이자 독보적인 천재였던 한 인간이 생의 종착지에서 마주한 고독하고 담담한 황혼을 비로소 온전히 응시하기 위함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3/cover150/89729143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0369</link></image></item><item><author>김필산</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그렉 이건의『잠과 영혼』을 읽고 - [잠과 영혼]</title><link>https://blog.aladin.co.kr/mustahil/17423121</link><pubDate>Fri, 31 Jul 2026 07: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ustahil/174231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6041&TPaperId=174231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1/9/coveroff/k7321360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6041&TPaperId=174231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잠과 영혼</a><br/>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6년 03월<br/></td></tr></table><br/>이전 『내가 행복한 이유』와 『대여금고』 리뷰에서 그렉 이건의 중단편 전반에 대해 내가 느꼈던 주관적인 감상은 충분히 다루었다. 따라서 이번 『잠과 영혼』 리뷰에서는 총론을 반복하는 대신, 특별히 인상깊었던 작품 몇 가지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내가 특별히 띄우고 싶은 작품은 「암흑 정수」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잠과 영혼』에 수록된 작품들 중 단연 압도적인 베스트라 할 만하다.<br>암흑 정수(Dark Integers, 2007)「암흑 정수」는&nbsp; 그렉 이건의 단편집 『내가 행복한 이유』에 실려 있는 「루미너스」 세계관을 잇는 정식 속편으로, 이번 『잠과 영혼』에 수록되었다.<br>그렉 이건이 「루미너스」를 구상할 때,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명저 『괴델, 에셔, 바흐』에 실린 한 장의 그림을 모티프로 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 그림은 수학적 공리(Axioms)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참인 수학 명제(Theorems)’가 나뭇가지를 뻗어나가는 형태의 공간을 묘사한다. 반대 편으로는 '부정 명제(Negated Axioms)와 그 파생 부정 명제(Negations of theorems)도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각각의 영역에서 ‘도달하지 못하는 진실’과 ‘도달하지 못하는 거짓’ 영역이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br><br>수학에서 ‘증명되지 않았지만 참’인 명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쿠르트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에서 등장하는 괴델의 G 명제가 대표적이다.&nbsp;<br>G 명제: “이 명제는 증명할 수 없다.”<br>굳이 이렇게 특수하게 설계된, 모순을 내포한 명제가 아니더라도 애초에 인간이 증명 근처로 접근조차 해 보지 못한 미지의 명제는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한 명제들은 분명 인간이 저 ‘공리의 나무’를 타고 뻗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확증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밝혀 내기 전일지라도 참인 명제는 어쨌든 참이다. 그렇지 않은가?<br>아닐 수도 있을까? → 바로 이 질문에서 「루미너스」가 시작된다. 구체적인 설정은 이렇다. 명제는 참과 거짓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다고, 우주의 어떤 상태 또는 의지를 가진 수학자가 그것을 증명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참 또는 거짓으로 고정된다. 즉, 누가 어떻게 연산하여 증명하느냐에 따라 같은 명제라도 참이 될 수도,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확정된 명제는 연쇄적으로 다른 명제의 진리값에도 영향을 미치며, 위 그림의 ‘공리의 나무’처럼 자라난다.&nbsp;<br>만약 우리가 증명해 낸 수학적 토대(공리의 나무)가, '거짓'을 토대로 자라난 이질적인 반공리의 나무와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두 세계 사이에는 매끄럽게 섞일 수 없는 치열한 밀어내기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작품에서는 이 충돌의 경계선을 ‘결점’이라고 부른다.<br>자, 하지만 우리는 지금 소설을 읽는 거지 형식주의 메타수학 논문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골치 아픈 학문적 아이디어를 대체 어떻게 소설로 써먹을 수 있을까? 내가 「루미너스」에서 감탄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렉 이건은 ‘인더스트리얼 알제브라’라는 기업이 명제 증명을 통해 세계의 수학을 변화시키고, 이를 암호 체계나 금융 시장에 적용해 부당 이득을 편취하려는 음모로 이 설정을 풀어낸다. 주인공 일행은 이 기막힌 ‘명제 땅따먹기’의 세계를 최초로 발견한 당사자로서, 음모에 맞서 더 빠르게 명제 땅따먹기 게임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루미너스’라는 슈퍼컴퓨터를 가동한다. (여기까지가 전작 「루미너스」의 개요다.)<br>&nbsp;「암흑 정수」는 전작 「루미너스」의 결말부에 등장했던 ‘외계 지성’과의 대결을 본격적으로 그린다. 이 외계 지성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반공리’를 토대로 수학적 영토를 단단히 구축한 세계다. 이들이 명제 증명을 통해 영토를 넓히는 행위는 우리 세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우리의 과학 기술을 떠받치는 토대가 바로 다름 아닌 수학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영토가 ‘1+1=3’이라는 공리를 참으로 인정하는 나무를 바탕으로 자라났다면, 그들의 수학 명제가 우리 영토를 덮어씌우는 순간 우리가 알던 ‘1+1=2’는 거짓으로 판명되며 현실의 물리 법칙은 붕괴하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br>이 명제들의 싸움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기 때문에, 외계 지성의 대표자(‘샘’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지성)와 이쪽 세계의 주인공 일행은 서로의 경계선을 ‘증명으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아슬아슬한 협약을 맺고 비밀리에 두 세계의 평화를 수호한다. 그러던 와중에 지구의 이름 모를 수학자 한 명이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인공 일행은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서로의 경계를 맞대고 확장하는 기존의 증명 방식 대신, 아예 다른 세계의 영토 한가운데로 명제를 ‘내려꽂는’ 방식의 증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기괴한 수학이 성립함이 밝혀지자, 지구 측은 저쪽 세계가 미처 방어할 수 없는 끔찍한 비대칭 침략 무기를 손에 쥔 위치에 오르게 된다.<br>「루미너스」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암흑 정수」를 읽으며 내가 또다시 경악한 지점은 이토록 허무맹랑해 보이는 메타수학적 개념을 대체 어떻게 소설의 서스펜스와 갈등으로 완벽하게 치환해 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렉 이건은 그 어려운 일을 두 번씩이나 해냈고, 이 작품을 상상력과 서사적 치밀함을 모두 갖춘 마스터피스로 빚어내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때로는 어떤 상상은 극도로 어렵다.<br>----<br>그밖에 『잠과 영혼』에서 읽어볼 만한 작품들에 대한 짧은 리뷰들.<br>고향으로 돌아가는 길(This is Not the Way Home, 2019)허블에서 출시한 『SFnal 2021』이라는 모음집에 켄 리우, 테드 창 등의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수록되어 있던 작품. 우주 엘리베이터를 다루는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처럼, 우주선 없이 우주로 진출하는 기술인 ‘스카이훅’을 다루는 소설이다. 『마션』처럼 홀로 남은 인물이 스카이훅을 이용해 탈출한다는 내용을 담은 탈출기인데, 그렉 이건 답지 않게 극한의 고립에 처한 주인공이 배 속의 아기를 의식하며 홀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내용은 꽤 짙은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흔히 알려진 우주 엘리베이터가 아닌 스카이훅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야말로 이 작품의 독특한 면이라고 할 수 있어서,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높은 평가를 주고 싶은 작품.<br>크리스탈 나이트 (Crystal Night, 2009)괴짜 IT 억만장자가 인공지능을 창조하기 위해 진화 자체를 시뮬레이션하는 이야기. 사실 ‘시뮬레이션 속에 사는 문명’이라는 소재는 이 시대엔 좀 진부하다고 생각이 들고, 나에게 있어서 이런 소재의 최고작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논 세르비암」(1971)이다. 이건의 소설은 피조물들이 과학 지식을 발전시켜 컴퓨터 밖으로 웜홀을 뚫고 도망친다는 식의 다소 전형적인 결말이다. 「논 세르비암」에서 렘이 보여준 깊은 인식론적 고민을 먼저 봐 버린 상황에서 이 정도의 전형적인 결말은 좀 아쉽다.<br>너 혼자서? (You and Whose Army? ,2020)서로의 기억을 매일 동기화하는 네 쌍둥이의 이야기. ‘기억’을 공유하거나 조작하는 SF는 많지만, 그 소재를 하드하게 다루려면 어떤 식으로까지 설정을 매만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훌륭한 작품.<br>꿈 공장 (Dream Factory, 2022)고양이의 뇌 안에 침습적 전극을 삽입해 고양이를 가지고 노는 세태에 짜증을 느낀 주인공이, 고양이가 꾸는 꿈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앱을 출시해 고양이의 주인들이 더 이상 고양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선한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고양이가 꾸는 꿈을 보기 위해 멀쩡한 고양이에게 전극을 심는 수술을 단행하는 고양이 주인들이 늘어 난다. 꿈도 희망도 없는 슬픈 결말.<br>잠과 영혼 (Sleep and the Soul, 2021)주인공은 의식을 잃은 후 죽은 줄 안 가족에 의해 무덤에 매장당한다. (이 세계관의 설정 자체가, 잠을 포함해 의식을 잃는 즉시 죽음으로 판정한다) 무덤에서 깨어나 탈출한 주인공은 의식을 잃어도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설파한다. 무덤이라는 소재와 고딕SF적인 분위기를 보아하니 분명 『프랑켄슈타인』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1/9/cover150/k7321360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510933</link></image></item><item><author>김필산</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자유의지가 없는 물리학적 이유(❌)존재하는 철학적 이유 - [자유는 진화한다 - 자유의지의 진화를 통해 본 인간 의식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mustahil/17423119</link><pubDate>Fri, 31 Jul 2026 07: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ustahil/174231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47462&TPaperId=174231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76/57/coveroff/89902474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47462&TPaperId=174231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유는 진화한다 - 자유의지의 진화를 통해 본 인간 의식의 비밀</a><br/>대니얼 C. 데닛 지음, 이한음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9년 10월<br/></td></tr></table><br/>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건 간단하다. 그 증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일도 손쉽다.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본다면, 누구나 이 논리를 따라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물리학적 개념에 무지한 자유주의론자 데카르트가 있다. 이 사람의 말을 듣고 그의 주장을 물리학적으로 철저히 반박해 보자.<br>데카르트: 우리가 흔히 믿는 자유의지란 "외부나 과거의 결정 없이, 내 육체의 행동을 온전히 내가 주도하고 결정하는 능력"이다. 내가 원할 때 손목을 움직이거나 멈출 수 있는 바로 그 느낌이다.<br>하지만 신경 신호, 근육 수축이 손목 움직임의 원인이기도 하지 않은가?<br>데카르트: 그렇다. 그렇지만 근육 수축, 신경 신호 등등으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손목을 움직인 '최초의 원인'에 도달할 것이다. 그 최초의 원인이 바로 비물리적인 마음--의도, 욕구, 결단 등--이다. 비물리적인 마음이 자유의지를 발휘해 물리적인 몸을 움직인 것이다.<br>우리의 손목과 몸은 완벽한 물리적 체계이다. '물리주의(또는 물리적 인과의 폐쇄성 원리)'에 따르면, 물리적 사건은 물리적 사건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비물리적인 마음이 물리적인 뇌나 근육에 영향을 미쳐 손목을 움직이게 했다면, 마음 또한 물리적 세계에 에너지를 개입시킨 물리적 원인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마음이 정말로 물리적 법칙과 완전히 무관한 '비물리적 존재'라면, 그것은 물리적 세계의 일부인 몸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br>데카르트: 마음은 물리적 법칙의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엔 나의 몸이 물리적 영향을 받아 자유의지 없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진정한 자유의지란 마음 스스로가 '아무런 선행 원인 없이 스스로 발동하는 최초의 원인'이다.<br>아무런 선행 원인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건을 우리는 '자유'라고 부르지 않고 '무작위(Randomness)' 또는 '우연'이라고 부른다. 만약 마음의 결단이 이전의 물리적 뇌 상태, 기억, 성격, 가치관과 아무런 인과적 연결이 없다면, 그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원인 없는 난수(소음)가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작위적 사건을 어떻게 '나의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br>우리는 물리주의적 결정론에 따라, 물리적 사건 이외의 원인은 존재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따지면 자유의지란 불가능한 개념임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온다. 그는 양자역학의 창조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영향을 받아 슈뢰-카르트로 진화한다.<br>슈뢰카르트: 좋다. 고전 물리학의 완벽한 결정론 안에서는 내 행동의 원인이 태초의 빅뱅까지 추적되니 자유의지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현대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가 본질적으로 '비결정론적(또는 확률적)'임을 증명했다. 물리주의가 꼭 결정론적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라는 걸 인정할 것이다. 뇌 신경 전달 과정 어딘가에 양자적 비결정론이 있고, 그 불확정성 덕분에 내 선택은 과거의 물리적 상태로 100% 결정되지 않는다. 이 양자적 중첩과 비결정론적 틈새야말로 마음이 결정론적 물리주의를 뚫고 자유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완벽한 물리적 공간이 된다.<br>우리는 여기에서 양자역학이 자유의지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할 것이다.<br>안타깝게도 비결정론은 결정론보다 자유의지에 훨씬 더 치명적이다. 당신의 주장대로 뇌 속 미시 입자들의 양자 도약이 자유로운 결단의 순간을 만들어낸다고 해 보자. 그 양자적 사건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인가?<br>슈뢰카르트: 원인은 없다. 양자역학의 핵심이 바로 선행 원인 없이 일어나는 근본적 비결정론이기 떄문이다. 이 엄밀한 무작위적 틈새 덕분에 과거의 물리적 원인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새로운 선택'이 가능해진다.<br>선행 원인이 없다는 것 역시 단지 무작위성일 뿐, 이 또한 자유의지가 아니다. 당신이 '살인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정직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 결정을 내린 최종 열쇠가 뇌 속 미시 입자가 확률적으로 툭 튀어 오른 양자적 무작위성 때문이었다면, 그것이 어째서 '당신'의 자유로운 의지인가? 그것은 뇌 속에서 갑자기 터진 ‘주사위 던지기'나 '시끄러운 소음'에 당신의 행동이 휘둘린 것에 불과하다.<br>슈뢰-카르트는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물리 법칙 하에서 자유의지를 살릴 방법으로 양자역학을 도입한 철학자 로버트 케인의 이론을 결합한다. 이제 그는 슈뢰-케인-카르트로 진화한다.<br>슈뢰-케인-카르트: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도덕적·실천적 딜레마에 부딪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힘들어도 정직하게 살 것인가, 편법을 쓸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에 닥친다. 이때 우리의 뇌 안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치관)가 충돌하며 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혼돈)가 발생한다. 이 갈등의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는 바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는 '의지적 노력'이다. 이 팽팽한 균형 깨짐의 순간에 비결정론적, 확률적 요소가 개입하여 한쪽으로 결정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결단이다. 이 사건은 뇌 안의 무작위성으로 결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쪽 선택지 모두 '내가 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결과'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선택되든 그 결과는 온전히 나의 책임(Ultimate Responsibility)이 된다.<br>로버트 케인은 이 이론을 자기 형성 행동(SFA: Self-forming actions)이라고 이름붙였다. SFA들은 하나둘 쌓이면서 나의 성격, 가치관, 성향을 형성시키며, 비록 일상적인 선택들은 굳어진 내 성격에 따라 반쯤 결정되어 흐르더라도 그 성격의 뿌리가 되는 SFA의 순간들에 내가 최종 책임을 진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철학자 로버트 케인의 주장이다.<br>이제 우리에겐 대니얼 데닛이라는 저명한 철학자가 나타난다. 그는 물리주의에 입각해 의식과 진화를 성공적으로 설명해 낸 철학자이다. 그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우리에게 든든한 지원자로서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힘을 보태 줄 것이다.<br>대니얼 데닛: 선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무작위적(Random) 요소가 개입하고, 그것이 실제로 자유의지라고? 아까도 밝혔지만 결정론적이든 비결정론적이든 무작위적 요소는 자유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능이 나쁜 컴퓨터의 '시스템 소음'이나 '에러'와 다를 바 없다. 의지의 결과가 소음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인데, 그 말의 뜻은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순전한 운'에 의해 결정된 것과 다름없다.그렇다. 이로서 자유의지는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전역학적 결정론으로도, 양자적 비결정론으로도 자유의지는 허상인 것이다.&nbsp;<br>그런데 자유의지가 허구라는 것이 내 견해란 말인가? 내 의식 이론이 함축한 의미가 바로 그것이란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p310)데닛은 계속 입을 나불댄다. 뭔가 이상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자세히 들어 보니, 그는 이미 자유의지는 없다는 우리의 명백한 결론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소리친다. ”저 까마귀의 입을 막아!“ 하지만 이미 늦었다.<br>대니얼 데닛: 오히려 완벽하게 결정론적으로 작동하는 우주라도 자유의지는 있을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아닌, 고전적으로 작동하는 알파고 바둑 AI를 보자. 이 AI는 완벽하게 결정된 알고리즘과 학습된 지식을 따른다. 하지만 상대방의 수에 따라 수백만 가지 대안을 검토하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며, 스스로 학습하여 다음 게임에 결과를 반영한다.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도 이와 같다. 우리 뇌가 물리 법칙(결정론)을 따르더라도, 복잡한 진화의 결과로 '외부 자극을 피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Evitability)'을 갖추었다면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이다.<br>아니, 대니얼 데닛이 주장하는 물리주의적 의식 이론에 따라, 당연히 자연스레 ‘자유의지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 아니었던가?<br>-----<br>데닛은 『자유는 진화한다』라는 책에서 오히려 자유의지는 존재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것이 바로 물리주의와 자유주의가 함께 가능하다는 양립가능론 (Compatibilism) 이다.<br>당신이 자신의 뇌에서 행복하게 돌아다니면서 운동겉질에 의사 결정의 화살을 쏘는 비물질적인 영혼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자유의지만이 진정한 자유의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의미하는 자유의지에 비추어볼 때) 내 견해는 자유의지는 전혀 없는 것이 된다. 한편 당신이 자유의지가 초자연적이 되지 않고서도 도덕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견해는 자유의지가 정말로 있다는 것이 된다.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을 테지만) (p311)<br>특히 나는 대니얼 데닛의 양립가능론에 영향을 받아, 나의 소설 『엔트로피아』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결정론적 세계관 내에서도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함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은 실질적으로 내 소설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br>모든 미래가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고 변화하는 건 없다고? 그건 비겁한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비록 역사가 바뀌지 않더라도 난 순간순간 미래를 직접 직조해 나가고 있다. (『엔트로피아』 작중 인물인 완서준의 말)<br>허구의 갈림길이라도 내가 그것을 선택했다고 믿으면,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이라는 감정으로 충만해지오. (『엔트로피아』 작중 인물인 장군의 말)<br>여전히 사람들은 데닛의 이 주장에 대해, ’하나의 편리한 대용품으로써, 우리 사회에 없으면 안 되는 법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 예를 들어 살인자의 형량을 결정하는 일 때문에 하나의 허구로써 자유의지를 남겨 놓으려 한다‘는 식의 해석을 한다. 하지만 데닛의 주장은 전혀 그런 게 아니다. 데닛은 사랑, 돈 같은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자유의지도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이 큐피드 신화--어떤 천사 같은 신이 날아다니며 화살을 쏘아 사람들을 어떤 감정에 빠지게 하는 것--를 통해 사랑을 정의하려 한다.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반박을 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감정은 큐피드 신화도, 그 작은 화살도 필요 없다. 단지 뇌 속 신경전달물질과 시냅스 같은 걸로 전부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정의이다.” 우리는 물리주의적으로도 성공적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우리는 물리주의에 입각해 사랑의 개념을 해체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았다.&nbsp;<br>‘돈’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아무리 물리주의적으로 단순한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종이나 금속이라도, 우리가 그 물질을 주고받으며 그것에 가치를 가진다고 느낀다면 그것의 가치와 힘, 권력은 실존한다.&nbsp;<br>자유의지도 이와 같다. 진짜 문제는 자유의지가 없는데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의지'라는 단어에 부여한 신비주의적, 초자연적 정의(영혼, 원인 없는 최초의 원인 등)가 틀렸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 잘못된 통념의 정의를 버리고 "자율적 통제 능력"이라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정의로 교체하면, 우리는 거짓말을 할 필요 없이 "자유의지는 진짜로 존재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br>이러한 사회적, 도덕적 정의를 내버려두지 않고 단지 결정론이냐 물리주의냐 하는 형이상학적 문제만 고집한다면, 오히려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형이상학적으로 무한한 자유를 가진다면,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가능성이 우리의 눈 앞에 열려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심리학적인 충동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휴대폰 알림, 창밖의 소리, 냉장고 속 과자 등 모든 '기회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이다. 데닛은 세이렌의 유혹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스스로를 묶어 버린 오디세우스의 예시를 든다. 주변의 모든 기회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사람은,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눈앞의 자극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br>우리는 사실상 우리에게 오는 기회 중 상당수에 둔감해지는 방법을 배울 때에만 도덕적으로 적절한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데닛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개발한 가장 위대한 자기 통제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선택지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원칙과 도덕 같은 자유의지와 밀접히 엮여 있는 개념들은, 우리가 "아무리 돈이 급해도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거나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를 버리지 않는다"는 도덕적 원칙을 세울 때에만 발휘된다. 우리는 훔치거나 아이를 버릴 수도 있는 수많은 현실적 '기회'에 대해 아예 뇌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둔감화)시켜 버려 자유의지를 쟁취한다. 진정한 자유롭고 도덕적인 주체는 도덕에 위배되는 기회가 찾아와도 아예 '선택지 카드'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는 뜻이다.<br>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연구 결과는 점점 ‘자유의지는 없다’는 식의 논증을 실제로 우리의 삶에 끌어들인다. 특히 법정에서 그렇다. 판결에서 ‘이 살인자는 그 당시 자유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식의 변호가 늘어가고 있다. 자유의지가 아닌 물리주의적 원인이 법적인 변호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 이 사람은 사이코패스의 유전자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의 어릴 적 환경은 불우했습니다. 이 사람은 충동적이고 참을성이 없는 ADHD를 앓고 있습니다... 과학은 판결에서 인간의 죄 자체를 결정론적 필연성으로 몰아갈 것인가?&nbsp;<br>실제로 자유의지가 없어서, 부족해서, 당시에 의식이 없어서 살인자로 판결받기엔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모든 물리주의적 원인을 고려하여 모든 살인 사건이 ’자유의지가 없었고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결정론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판결로 퉁칠 필요가 없다. 여기서의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의지가 없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만한 사건--예를 들어 몽유병 환자의 살인사건--과,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저질러 버린 살인 사건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중간에 선을 긋거나, 형량의 스펙트럼을 결정하면 된다. 사법 시스템이 할 일은 우주론적 자유의지의 유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건 당시 자기 행동을 제어하고 법적 이유를 고려할 수 있는 자율적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었는지 측정하여 그에 맞는 형량과 교정책(스펙트럼)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형이상학적으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며 우리의 법과 도덕 체계를 초치는 게 아니라, 판결 내에서 어느 수준의 형량이 적절한지(즉, 자유의지의 적용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선을 그어 주는 일이다.&nbsp;<br>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자유의지란, 1. 나의 장기적 목표를 위해 단기 유혹을 이겨내고, 2. 타인과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을 맺으며, 3. 내 행동의 결과에 대해 납득할 만한 책임을 지는 삶이다. 이제 우리는 물리학의 절대 원칙인 결정론이나 양자역학의 원칙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우리의 삶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의미라는 진정한 자유의지의 개념을 얻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무언가 달라졌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거나, 숏츠나 게임 중독의 유혹에 빠져 "어쩔 수 없는 호르몬"이나 "결정되어 있는 미래"를 탓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이려고, 죄를 짓지 않기로 노력한다. 게임과 유튜브를 잠시 끄고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다. 자유의지는 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76/57/cover150/89902474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76572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