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0
혐오는 진부한 애호가 도저히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세계와 분리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굴복하겠다는 것, 다시 만족스럽게 죽겠다는 뜻이 되고, 혐오는 자신과 세계의 경계를 더 확실히 긋고, 분리된 사물을 명확히 해준다고 했다.
p52
언젠가 읽었었는데 너처럼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사람이 묘한 저어 상태가 된다고 하더라. 그 책의 저자는 그것을 충만함의 우울이라고 표현했었지. 불행스럽게도 난 그것이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충만함의 우울, 아름답고, 어감이 좋은 말이다. 요셉아 말했던 '생기 부족증'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더 느껴진다....
p63
덤덤함 속에서 애잔하게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 있을 뿐이다. 그건 내가 버리고 싶으나,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내 안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p69
누군가 나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쓰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처럼 저렇게 대답하곤 한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또한 명료하다.
p71
그는 뒤돌아서 갔다. 나에게 책을 남겨두고.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솔직히 미련이 남는다. 저 남자가 아니라 저 남자가 가지고 있고 이제는 처분하게 될 책들이. 파스칼 ㅣ냐르를 인용한 여자가 읽게 만들었던 책들이.
단편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그런데 난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가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여성 작가들의 단편모음집이다. 책속에서 단편을 읽을때는 단편 제목만을 얘기하고 있다. 마갈리 가르시아 라미스의 <일주일은 칠 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보던 책이 이 단편이었을지라도 정작 책을 이루는 하나의 단편이 아닌가. 그럼 모음집 제목도 알려주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