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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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편혜영을 좋아했다. <아오이 가든>을 보고 아, 이 작가 장편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가슴에 싸한 바람이 분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갑자기 다 읽고 그 시가 생각났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그런데 정말 이 작품과 이 시가 어울리는 지를 모르겠다. 외로우니까 사람이 아니라 후회하니까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고 그렇게 사는 게 사람의 삶이 맞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는 거기에 그럼 어떤 삶이 사람에게 맞는 삶이냐고 반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 편혜영의 작품이 점점 내게 버거워짐을 느낀다. 이렇게 어렵게 쓰지 않아도 현대인의 고립과 단절에 의한 고독은 뼈가 시리게 절절히 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직도 편혜영은 아오이 가든의 고양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C국으로 연수를 가게 된 주인공은 C국에 오자마자 곤경에 처한다. 그 나라는 전염병이 확산되서 난리가 났고 쓰레기 처리로 골몰을 앓고 있다. 일이 꼬이느라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던 본사 직원 몰은 문제가 생겼다며 휴가라고 생각하고 기다리라고 하고 연락이 두절된다. 게다가 그가 사는 아파트가 전염병때문에 격리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때 그는 떠나면서 집에 개를 남겨두고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방을 잃어버려 연락이 막막한 가운데 전처와 재혼하고 다시 이혼한 친구 유진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한다. 거기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게 되는데 그의 집에서 개와 전처가 살해된 걸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용의자로 자신이 추적되고 있다는 사실도. 

작품이 주인공의 이때부터 가게 되는 내리막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 주인공이 내보이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아무리 외로워서 사람이라지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후회가 밀려오고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이름 불러줄 이를 찾아 공중전화에 매달리게 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사랑이, 때론 사람이 원하는 사랑이 작은 소통과 내편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이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작은 마누라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늙고 병들어 조강지처를 찾은 남편의 병수발을 드는 할머니에게 밉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할머니 말하기를 밉다고 친구를 버리는가 하셨다. 아마도 이 주인공이, 아니 우리가 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런 뭘 해도 그저 나를 받아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알고 있기에 더 원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쥐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고립되게 된 원인도 쥐를 잘 잡아서였다. 사람들은 쥐가 병을 옮긴다고 생각하며 쥐를 잡는데 노숙자, 부랑자가 되고 다시 하수도까지 내려가 쥐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 주인공이 결국 취직하게 된 곳이 쥐잡는 곳이다. 쥐는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전염병이 쥐로 옮겨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면서도 쥐를 잡아달라고 하고 쥐를 잡는다. 이유는 위약효과때문이다. 쥐가 안보이면 그만큼 나아진 거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쥐는 또한 주인공과 같다. 주인공의 내면이다. 보이는 쥐 한마리는 그의 희망이지만 안보이는 수많은 쥐는 그 안에 그도 알고 있지만 내 보이지 않는 절망이다. 인간은 그렇게 절망을 부여잡고 작고 덧없는 희망 하나에 매달려 사는 존재다. 쥐처럼 끈질기게 말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붕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망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 죄의식을 던져버리고 고립된 곳에서 쥐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살아가기만 할뿐이라고. 주인공은 아내와 좀 더 다른 나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 안좋은 쪽으로 가고 말았다. 늘 그런 자기의 쓸데없는 고집이 후회를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후회를 할망정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용의자로 잡히는 줄 알고 탈출했을 때도 그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부랑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고 그 안에 살아가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인간은 단지 산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잘 살고 있다고 자위할 것이다. 그게 인간이다. 감히 인간이 쥐보다 낫다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뼈 있는 이야기에 눌려 오늘을 보내지만 내일은 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거라 생각하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사람이 무어라고 그렇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사람, 별거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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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너무 많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 2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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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추리소설에서 보면 사건이 발생해서 범죄를 입증하려고 경찰이나 탐정이 등장했을때 증인이나 증거가 너무 없어 애를 먹으면서 증인과 증거를 찾고, 범인을 잡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범인도 미리 정해져 있고 증인은 차고도 넘칠 정도로 많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 증인들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바람에 피터 윔지경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느라 정말 구름을 뚫고 날라 다녀야 했다.  

<시체는 누구?>에서 사건을 해결한 뒤 피터 윔지경과 하인 번터는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지내던 중 피터의 형 덴버 공작이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급하게 귀국한다. 이미 덴버 공작은 감옥에 갇힌 상태고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말하지 않는 이상함을 보인다. 여기에 살해된 자가 여동생과 결혼하려던 남자였고 그들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다퉜다는 것이 밝혀지고 여동생마저 오빠를 살인자로 의심하는 상황과 증거물인 총이 덴버 공작의 것이라는 점이 아주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귀족이 과연 사형을 당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가운데 누구보다 고지식한 형을 잘 아는 피터는 필사적으로 형의 무죄를 입증할 단서들을 추적한다. 

피터 윔지경이 밝혀내야 하는 비밀은 이런 것들이다. 동생이자 오빠인데도 말을 하지 못하다니 참 대단한 형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이동생은 분명 누군가 살인자를 아는 것 같은데 큰오빠를 빼낼 생각을 안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녀가 숨겨주는 자는 누구이고 비밀은 무엇인가와 덴버공작이 그 시간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리바이를 대지 않는 이유와 필사적으로 제 목숨을 걸고 감추려는 비밀 또한 무엇인가, 그리고 덴버 공작과 매제가 될 캐스카트 대위가 불명예스럽게도 카드 사기꾼이었는지의 확인과 그것을 알려준 편지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도 비밀에 포함된다. 자, 피터 윔지경 실력 발휘를 한번 해보라구. 

작품은 피터 윔지경의 대대적이고 장황스런 활약상을 영웅담처럼 보여주고 있다. 전작에 비해 이 작품에서 피터 윔지는 진짜 탐정처럼 뛰어 다닌다. 번터와 파커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추리하고 추측하고 증인들의 이야기속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탐문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때론 셜록 홈즈처럼 기어다니며 증거물을 찾고 발자국에 매달리고, 때론 현대적 탐정처럼 증거 수집을 위해 다른 나라의 공조 수사도 하고 자신이 프랑스로 미국으로 직접 증거와 증인을 찾아 다니는 과감한 모습을 통해 좀 더 다른 모습의 피터 윔지경의 매력을 발견하게 한다. 웃음 코드가 줄어든 게 아쉽기는 하지만 - 늪에 빠진 장면과 마지막 술주정이 그나마 웃겼다. - 더 미스터리적이었음에 만족한다. 

이 작품에서 기본을 이루는 것은 여동생의 결혼이다. 결혼 전까지 자신의 재산권 행사를 오빠에게 의존하게 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귀족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20세기초에도 변혁기를 맞은 상황하에서도 그들의 특권 의식과 계급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부르주아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를 자랑스러워 하는 하위 계층의 귀족 계층의 눈에 비친 위선과 하위 계층으로 그들과 반대되는 가정으로 등장하는 그림소프와 그의 아내의 사는 모습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사회적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뭐, 주인공이 귀족 탐정인데 당연한 거겠지만 좋게 보자면 어떤 계급이든 계층이든 사람 나름이라는 것이다. 어디나 위선과 비밀은 존재하는 것이고. 

제목은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장이 너무 많다>, 그 작품의 오마쥬 작품인 랜달 개릿의 <마술사가 너무 많다>를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모방한 것 같다. 하지만 원제목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귀족 재판이라 할 수 있는 재판 장면의 생생함과 귀족들의 특권 의식에 대한 묘사 - 설마 귀족을 사형시키겠어? 하는 느낌의 - 도 좋았다. 뭐, 부르주아 추리소설이라고 불리운다지만 귀족 탐정이 등장하는데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어쩌면 변화하는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귀족들을 희화하거나 아니면 그런 모습에 대한 향수를 담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시리즈가 피터 윔지경 시리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동시대의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코넌 도일이 만든 명탐정 셜록 홈즈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에 더 큰 의의를 두어야만 하지 않나 싶다. 피터 윔지경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셜록 홈즈의 단서를 통한 추리와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셜록 홈즈는 척 보고 마술사처럼 이야기하지만 피터 윔지경은 좀 굼뜨게 나중에 단서가 모아지고 나서 깨닫게 된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세심하게 범죄 현장을 뒤져서 단서를 찾아내고 옷에 묻은 흔적을 CSI에서 하듯 채취해서 분석을 의뢰하는 점, 측정 단위를 세밀하게 새긴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단서의 추적을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점은 셜록 홈즈의 후예다운 모습이었다. 여기에 셜록 홈즈가 가지지 못한 유머러스한 점은 피터 윔지경만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매력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셜록 홈즈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3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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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브라운 2010-04-2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즐겁게 읽고 있어요 ^^ 세이어즈는 정말 시대감 안느껴지는 고전인 것 같아요~ 저두 3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만두 2010-04-26 11:58   좋아요 0 | URL
아주 좋은 고전이죠. 이 시리즈는 몽땅 나왔으면 합니다.

BRINY 2010-04-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체는 누구?]가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는데, 이건 읽고 싶어집니다. 시리즈 몽땅 나오는 건 대환영인데, 무척 늦게 나와주는군요.

물만두 2010-04-26 15:15   좋아요 0 | URL
전 시체는 누구?는 유머러스한 면이 좋았어요. 미스터리는 거의 없었지만요.

카스피 2010-04-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윔지경 만세지요^^ 좀더 많은 작품이 나왔으면 합니다.

물만두 2010-04-27 09:57   좋아요 0 | URL
그럼요^^

lazydevil 2010-04-2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첫권과 둘째권의 간극이 너무 크네요. 걍 한권 나오고 끝인 줄 알았어요.

물만두 2010-04-27 15:54   좋아요 0 | URL
늦게라도 나와주니 고맙죠.
 
밤 산책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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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이 작품 말미에서 한 줄로 요약하고 있다. '피비린내나고 생생하며 음침한 것으로 채색'. 이 문장을 봤을 때 기존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모두 이런 분위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기본 특징이 있다. 우선 살인이 한 가문에서 일어난다. 그 가문은 지방의 부유한 가문이거나 섬에서 권위가 높은 가문이다. 시대가 패전 전후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작품들을 보면 마치 일본 전통 가옥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무표정한 하녀가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거나 늙은 주인과 젊은 부인이 나타날 것만 같이 생각되게 전체적으로 일본의 그 시대를 잘 반영하면서도 탐정소설의 기본에 충실한 일본 추리소설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의 시리즈임이 분명함을 전해준다. 

후루가미 가문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아버지를 둔 나오키와 친구인 야시로라는 삼류 탐정소설가가 자신이 목격한 살인 사건을 1인칭 시점에서 적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일곱번째 작품인 <밤 산책>은 기묘한 어린 시절의 점쟁이 말에 현혹되어 꼽추인 오빠 모리에의 사랑을 받게 된 야치요가 또 다른 꼽추 화가 하치야를 집에 초대하고 거기에 야치요를 사랑하고 있던 또 다른 오빠 나오키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랑과 갈등, 탐욕과 증오가 목 없는 시체를 만들어내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만들면서 사건은 점점 음침해진다. 두 명의 꼽추, 목 없는 시체, 그리고 사라진 또 다른 꼽추. 눈 앞의 꼽추는 모리에인가, 아니면 하치야인가. 그들은 하치야로 결론을 내리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모리야를 찾을 길이 없고 이때 몽유병 증세가 있는 야치요가 집을 나가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가운데 아주 심플한 작품이다. 장황하게 가문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 놓지도 않고 살인 사건이 너무 많이 과도하게 등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으스스한 분위기와 추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많은 단서를 배치해두고 양파처럼 비밀이 하나 드러나면 또 다른 비밀이 드러나는 식으로 인간 군상들의 저마다 감춰둔 비밀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느긋하게 2부에 긴다이치 코스케를 등장시켜 사건을 마무리짓는다. 물론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도 사건은 또 일어난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은 해결할 수 있지만 사건을 막는 능력은 없는, 하지만 그가 가는 곳에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 탐정다운 탐정일뿐이니까 말이다. 요코미조 세이시 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왜 드라마와 영화로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훨씬 영화로 만들어 기묘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전달하면 더 좋을텐데 아쉽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한 시대를 자세히 지속적으로 묘사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식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 시대를, 하나의 가문을 통해 조명하면서 거기에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냈다. 탐정소설이고 본격 소설이지만 한 가문의 흥망성쇠와 그 가문 사람들간의 인간적 갈등, 인간적 고뇌와 감추고 싶은 사연 등을 통팔력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는 인간, 그 인간이 모인 한 가문, 그런 가문들과 그 안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와 국가가 모두 미스터리의 소재인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에 반세기가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 국경을 초월해서 미스터리팬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코미조 세이시, 존경스런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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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이동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2 미치 랩 시리즈 1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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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이란에서 테러리스트를 찾아 납치한다. 같은 시간 대 미국 백악관에는 아랍 왕자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방문을 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치밀하게 위장한 테러리스트다. 그들은 백악관을 장악하고 대통령은 간발의 차이로 지하 비밀 벙커에 숨는다. 이제 그 남자 미치 랩이 미국으로 돌아와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백악관에 잠입을 한다. 이런 와중에 부통령은 대통령이 되려고 기회를 노리고 CIA와 FBI는 서로 정보 공유를 꺼린다. 대통령을 인질로 잡기 위해 문을 열려고 애를 쓰는 테러리스트와 폭탄을 피해 인질과 대통령을 구하는 작전은 성공할 것인지 점점 긴장감은 높아만 진다. 

작품은 처음에는 황당한 느낌을 준다. 마치 예전에 해리슨 포드가 대통령으로 나온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영화도 가능하니 이런 작품 속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너무 쉽게 그렇게 백악관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당하고 돈만 주면 국회의원은 신분 확인도 안하고 대통령과 만남을 주선한다는 자체가 남의 나라 일을 떠나 가능한가 싶기도 하지만 9.11테러를 겪은 뒤에는 오히려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게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작가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을 그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서 읽을수록 빠져들게 된다. 

테리리스트 우두머리는 협상의 요구조건으로 미국이 들어주기 어려운 것들을 주장하고 CIA는 권력자들의 협상이 실패로 끝나자 미치 랩을 통해 주도권을 잡고 자신들이 테러리스트 진압을 할 계획을 세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치 랩은 파트너인 백악관의 내부 구조를 잘 아는 노인과 아랍인의 손에서 구해낸 여기자를 데리고 묵묵히 테러리스트들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 모르게 바로 코 앞에서 자신이 할 일을 수행해 나간다. 그리고 대통령이 피해 있는 곳은 테러리스트에 의해 뚫리기 일보 직전이라 대통령 경호실장은 전전긍긍하며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지만 인질들의 안전이 최우선인 대통령은 적에게 잡힐지라도 저항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책을 집는 순간 그 두께에 놀라게 된다. 555쪽이나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더 놀라게 된다. 그런 긴 작품을 순식간에 빠르게 읽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저력을 여기서 느낄 수 있게 된다. 작품은 세가지 장면을 속도감있게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다. 백악관을 무대로 백악관을 장악한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가 대통령을 인질로 잡기 위해 숨어 있는 문을 드릴로 뚫으며 빠르게 대통령에 접근하는 느긋한 분위기속에 초조함을 느끼게 만들고 같은 백악관이지만 미치 랩이 백악관 내부를 잘 아는 노인과 인질이었던 여기자와 함께 상황 파악을 해서 외부 CIA에 알려주며 몰래 작전을 전개시키는 아슬아슬함속의 스릴과 백악관 밖에서 이들이 행동하는 동안 탁상공론으로 분열되고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짜증나는 모습이 모두 담겨 있다. 책을 읽는다기보다 봤다고 하는게 더 맞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미국인은 미국을 위해 애를 쓰고 애국심이라는 것과 복수라는 미끼로 한 남자의 인생을 이름없는 대테러부대 현장요원으로 만들었고 아랍인은 그들의 종교와 빼앗긴 땅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해도 없고 화해도 없다. 힘 있는 자는 힘으로 살고 힘 없는 자는 없는 힘이라도 쥐어 짜서 산다. 그나저나 여자친구를 테러리스트에 의해 잃고 CIA에 의해서 대테러부대 현장요원으로 변신하게 된 미치 랩의 인생이 참 불쌍하다. 그의 말처럼 이제 정상적인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길은 사라졌으니 말이다.  

작가는 마치 영화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빠른 전개와 얼마 안되는 시간을 각각의 다른 시각에서 다양하게 보여주는 치밀함으로 재미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 미치 랩의 인간적인 면과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면이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는 작품 속에 여러가지를 담고 있지만 작가의 장기인 권력에 대한 탐욕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권력을 가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과 권력에 아무런 욕심없는 사람을 등장시켜 그들을 비교하게 만들고 있다. 미치 랩 시리즈가 계속 이렇게 전개된다면 빈스 플린의 빠른 전개와 더불어 개성있는 주인공을 보는 재미가 제법 매력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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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16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용을 보니 마치 미드 24시의 한 대목 같네요.시즌 6인가 아프리카 독재 장군이 백악관에 쳐들어가고 대통령은 비밀 방으로 피하지요^^

물만두 2010-04-16 20:57   좋아요 0 | URL
저는 모르는 드라마지만 어떤 분이 그 드라마 비슷하다고 하시더군요.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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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지장이라는 행각승이 칵테일바 에이프릴에 나타났다. 스님은 스님인데 취향은 고급이라 꼭 던힐 담배만 피우고, 그것도 남의 것을, 보헤미안 드림이라는 칵테일만 마신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밤이면 동네에 사는 사람 몇몇이 모여 지장 스님이 그동안 겪은 사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과 한 행각승의 미스터리 모임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표방하는 작품 세계는 본격 추리소설이다. 사건이 있고 범인이 있고 그 범인이 누구고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아내는 미스터리가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들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아가사 크리스티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추리클럽을 표방하고 있다. 탐정이 행각승이라는 점이 독특하고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그저 행각승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서 모였다는 것이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제목처럼 지장스님과 일주일마다 만나서 한편씩 듣는 형식이니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얼마나 많이 방랑을 하고 다니셨는지 이야기는 끝도 없이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거미가 거미줄을 풀어내는 것처럼 출려나온다. 그 안에는 기차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독살 사건, 기이한 발자국을 남긴 사건 등이 지장 스님의 추종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사람들은 저마다 범인을 추측하거나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서로 이야기하지만 모두 맞추지는 못하고 지장 스님의 결말을 듣는 걸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데 참 의미심장한 말을 마지막에 하고 있다. 지장 스님의 이야기가 그가 진짜 겪은 일이건 꾸며낸 일이건 중요한 건 듣는 동안 좋았다는 점만이 중요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마치 칵테일 이름 '보헤미안 드림'이 그 행각승이 이야기한 일들에 대한 대답인 것 같이 느껴진다. 나이는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스님이 그렇게 많이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다닐 때마다 사건을 만난다는 것은 김전일 가는 곳에 살인이 일어난다는 만화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관없다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겠소 하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픽션이란 다 그런 거라고. 이야기는 하는 이보다 듣는 이의 마음이, 책은 읽는 독자가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복잡한 범죄 소설들의 범람으로 머리를 식히고 싶지만 그렇다고 코지 미스터리는 별로라고 생각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미스터리 클럽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는 것을 꿈꿨던 사람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한 작품이다. 캬~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던힐 담배와 칵테일은 스님에게 좀 안어울린다. 뭐, 그런 언발란스한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보헤미안 드림이라는 칵테일 한번 마시고 싶다. 사람들과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며, 아니 누군가의 미스터리 이야기를 들으며 마시면 참 좋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 이런 모임을 가져보는 것,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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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13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막 이책 읽기 시작했어요^^

물만두 2010-04-13 10:11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보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