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털어라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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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막 감옥에서 가석방을 한 도트문더 앞에 예전 동료가 나타나서 일 이야기를 한다. 아프리카에서 막 독립한 두 나라가 있다. 아킨지와 탈라보. 하지만 이 둔다라에서 양보할 수 없는 한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부족이 오랫동안 신성시한 에머럴드다. 지금 이억슨 아킨지의 소유가 되어 있고 뉴욕에서 전시중이다. 이것을 기회로 탈라보의 대령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도트문더 일당을 고용한 것이다. 보석 절도 의뢰다.

도트문더는 계획의 귀재다. 그가 계획하면 신뢰할 수 있다. 뭐 그런 그도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감옥에 가긴했지만. 그의 동료들도 모두 한가지 소질들은 최고인 인재들이다. 자물쇠따기의 체프윅, 운전사 스텐, 장비담당 그린우드, 그리고 이 사건을 가지고 온 켈프, 이들 다섯명의 에머럴드 훔치기 작전이 지금 시작된다.

그런데 이런 운도 지질이 없는 인간들이 또 있을까 싶게 완벽한 계획에 완벽한 작전이 거의 성공을 거두기 직전 문제가 터진다. 한번도, 두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아주 질리도록 말이다. 정말 역대 최강의 불운한 찌질이 액션 히어로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너무도 참담하고 맥빠지는데 독자는 즐겁다. 화끈하고 도를 넘는 맹목적 성공이 넘쳐나는 액션 히어로의 세상에서 이 도트문더의 존재는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더 없이 귀여운 캐릭터다. 하지만 그들도 모든 것을 갖추기는 했다. 위장도 하고 감옥에서 탈옥도 하고 헬기도 띄우고 트럭에 기차를 넣기까지 한다. 그런 모든 것, 모든 액션 장면이 들어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너무도 재미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작가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도트문더 시리즈식 유머다.

기차놀이가 취미인 범죄자, 매일 듣는 음악이 타이어에서 내는 소음인 범죄자, 백과사전을 팔면서 개를 무서워하는 범죄자, 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전시장에서 감옥으로, 감옥에서 다시 경찰서로, 경찰서에서 다시 경비가 삼엄한 정신병원으로 끊임없이 계획을 성공시키면서도 에머럴드를 손에 넣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과 그러면서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은 히어로에게 중요한 건 한방일 수도 있지만 근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는 도트문더가 그래도 히어로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악당 파커 시리즈를 쓰고 <도끼>와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을 쓴 작가가 이렇게 유머러스할 수 있다는 점에 새삼 그가 왜 그랜드마스터인가를 느끼게 된다. 도트문더는 악당 파커와 비교될 정도로 정반대의 캐릭터이기 떄문이다. 인정사정보지 않는 캐릭터에서 슈퍼마켓에서 잠깐 사이에 온 몸에 먹을 걸 훔쳐 넣고 뿌듯해하는 도트문더는 같은 작가가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극과 극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파커나 도트문더 모두 은행을 털거나 도둑질을 하는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쓴 악당 파커 시리즈 중 <인간사냥>을 읽어보면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그의 작품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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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0-05-1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리뷰 올리신거 보고 이시간 후다닥,
제가 감기 때문에 지금 고생중이거든요,,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저도 이제 자러가야 할 것 같아요,,,,

물만두 2010-05-15 09:23   좋아요 0 | URL
울보님 빨리 나으세요.
주말이니 푹 쉬세요.
 
셜록 홈즈의 7퍼센트 용액
니콜라스 메이어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셜록 홈즈를 읽었을때는 셜록 홈즈가 마약을 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완역판이 나오고 나서야 그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건이 없을 때 마약을 하곤 하던 그의 모습은 냉철한 셜록 홈즈와는 어딘가 매치가 잘 안되는 부분이어서 늘 내 머리 한구석에 의문으로 남았었다. 그런 의문을 나콜라스 메이어는 셜로키언들에게 시원하게 해결해주고 있다. 이 작품이 비록 한 작가의 픽션이기는 하지만 나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작품은 왓슨의 고해성사로 시작한다. 왓슨은 자신이 어떤 셜록 홈즈가 관련된 사건을 고의적으로 다르게 썼음을 밝히고 그 사건의 진실을 공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 교수와의 대결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셜록 홈즈가 이상하다고 느낀 왓슨은 그에게서 모리아티 교수라는 엄청난 범죄자의 이야기를 듣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심하게 되는데 결혼을 해서 따로 살다 다시 함께 살던 베이커가의 옛 하숙집으로 홈즈를 찾아간 왓슨은 그가 마약에 중독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그를 찾아온 모리아티 교사는 홈즈의 스토킹에 괴로워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왓슨은 이 난감함을 해결하기 위해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의 도움을 받는다. 

왓슨와 마이크로프트가 홈즈를 치료하기 위해 모리아티를 홈즈가 쫓아가게 만들고 결국 홈즈가 가게 된 곳이 오스트리아의 마약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알려진 프로이트 박사의 집이었다. 여기에서 독자는 위대한 정신의학의 선구자 프로이트와 탐정의 선구자 셜록 홈즈와의 만남이라는 역사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그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를 돕고 처음에는 프로이트가 셜록 홈즈를 돕게 되지만 나중에 사건이 일어나자 프로이트를 홈즈가 돕게 된다. 이 둘의 만남만으로도 이 작품은 꽉 차보이는데 왓슨은 그 안에서 조정자 역할을 잘 수행해서 작품이 매끄럽게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나는 셜록 홈즈를 캐릭터로만 인식했었다. 그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기 보다는 탐정적 캐릭터라는 점이 너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셜록 홈즈보다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뤼팽에게 매력을 느꼈다. 나는 공공연하게 셜로키언이 아니라 뤼피니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이 작품 속에서 셜록 홈즈는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하나의 캐릭터가 아닌 소설이라는 공간에서 숨을 쉬는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내가 셜로키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홈즈와 왓슨을 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우정은 너무도 견고하고 강철같아서 기존에 알고 있던 홈즈의 조수로서의 왓슨이라는 공식을 무너뜨렸다. 명탐정 포와로는 헤이스팅스없이도 혼자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왓슨없는 홈즈는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단순히 탐정과 조수라는 관계로 설명할 것인가? 친구로 나오지만 그들은 친구 이상의, 형제보다도 더 깊은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홈즈는 왓슨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홈즈와 왓슨, 그리고 프로이트가 공존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런 작품을 탄생시킨 니콜라스 메이어에게 감사한다. 또한 셜록 홈즈와 왓슨을 탄생시킨 코넌 도일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정말 셜록 홈즈 패스티시의 걸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 가운데 상상력과 셜록 홈즈의 작품을 치밀하게 연구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코넌 도일이라도 수긍하게 만들었을만한, 그리고 그 뒤 작품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너무나도 완벽한 작품이다. 여기에 셜록 홈즈가 보여줄 수 있는 추리와 미스터리, 그 시대에 어울리는 모험까지 제대로 구사하고 있어 어느 한구석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연민의 눈으로 셜록 홈즈를 바라보게 만들어 셜록 홈즈가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친근하게 애정을 가지게 만들고 있다. 기다리던 작품이 기대하던 것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황홀한 전율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셜록 홈즈는 영원불멸하리라는 것을 더욱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셜로키언들을 위한 꿈의 작품이란 바로 이 작품을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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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5-12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어요^^

물만두 2010-05-12 09:34   좋아요 1 | URL
그죠? 너무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

paviana 2010-05-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슬슬 더워지네요. 다즐링 살인사건을 읽고 있는데 진도가 안 나가요.흑흑

물만두 2010-05-12 19:29   좋아요 0 | URL
집안은 추워요 ㅜ.ㅜ
다즐링 좀 싱겁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무지개집의 앨리스
가노 도모코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생각을 해보니까 아버지의 정년퇴직 이후를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아버지도 정년퇴직 후를 생각하지 못하셨던지 퇴직후 참 많이 방황하셨다. 작품 속 니키 준페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은 작든 크든 이런 일을 한번쯤은 겪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니키 준페이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 이 니키 준페이같은 아버지들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니 고민을 해결해주는 일이라고 이 소소한 미스터리 안에서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앨리스 시리즈는 니키 준페이가 직장에서 명예퇴직후 직장에서 1년동안 고용보장을 받으며 다른 일을 생각하던 중 어린 시절 꿈인 사립탐정을 해보고자 해서 차린 사무소다. 이 시리즈가 전직 샐러리맨 탐정의 아주 소소한 일상의 미스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 조수는 집을 나온 전직 아동복 모델에 유명 아동복 회사 사장 딸 아리스다. 우연히 조수를 하겠다고 들어와 추리는 니키보다 더 잘해 오히려 니키가 조수같은 느낌을 더 많이 주기도 한다. 두번째 작품인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니키와 아리스 가족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자세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소소한 미스터리들 사이사이에서 이어지며 눈길을 주게 만들고 있다. 

이 두 보통 사람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찰에게 의뢰하기는 뭐하지만 그냥 지나치자니 찜찜한 일들을 해결하는 작품 속에서 니키가 말하는 '경찰에 호소해도 웃음을 사던가, 그렇지 않더라도 뒤로 밀려버릴 만한 사건...... 말하자면 틈새 사건'이 이들이 주로 맡는 탐정일인 것이다. 그런 일들은 어떤 엄마가 모임에 나가는데 왜 자꾸 이상한 일들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모임 장소의 문이 열리지 않는던가, 모임을 누군가 훼방 놓는 느낌이 드는데 증거가 없어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일이라거나, 고양이가 자꾸만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인터넷 동호회의 소식에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 보호를 의뢰맡는다거나,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사라지는 진짜 탐정이 등장해야 할 것 같지만 니키가 나서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일이라거나, 꽃 화분 도난 사건에 니키 본인의 아들의결혼할 예비 며느리의 스토커 증거 수집에 아리스의 가정 교사의 의뢰까지 정말 주변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이 펼쳐지고 그리고 그 끝이나 해결이 궁금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작품은 니키와 아리스를 통해 인간의 꿈과 환상에 대해 구분짓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미스터리에 대한 관점이기도 하다. 인생 자체가 미스터린데 거기에 뭔가를 더해 꼬고 트릭을 구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꿈과 환상은 품어도 좋지만 그것이 망상으로 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성장을 했다는 구분점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어른인 니키같은 이들의 몫이다. 이 작품에는 유난히 가족이 많이 나온다. 특히 니키와 아들의 대화는 참 좋았다. 니키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런 말로 가족을 정의내리고 있다. "가족이란 등에 짊어지는 짐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져야 하는 사이도 아니지 않나요? 그저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 떨어져 있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참, 우리는 가까운 사이를 더 잘 모르는 미스터리를 안고 산다. 조금만 대회하면 되는데, 조금만 양보하면 되는데 말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족할 수 없는 인간의 욕심이 관계를 망치는 줄 알면서 나아지지 않는 점이 진짜 미스터리다. 

소소하고 잔잔해서 오히려 보는 맛이 있는 것이 일상의 미스터리가 가진 장점이다. 우리 동네에 니키의 탐정 사무소가 생긴다면 좋을텐데. 아직도 못 찾고 있는 책들과 작은 목걸이며 반지들, 찾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이런 문제, 고민, 상담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럴때 이런 곳이 있어 믿음직하지만 어리버리해보이는 아저씨와 어리지만 귀여운 조수가 반갑게 맞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걱정의 반정도는 날아가지 않을까 싶다. 결과가 사실 그리 중요한 일들은 아니고 마음의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미스터리란 사건이 주가 아니고 걱정의 해소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빨리 사립탐정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니키 준페이같은 탐정 아저씨를 만날 것 아닌가. 뭐, 이것도 소소한 바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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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창 노블우드 클럽 6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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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존 딕슨 카, 또는 카터 딕슨의 필명으로 활동한 작가는 많은 탐정을 창조했다. 방코랑 경감은 그의 첫 작품 <밤에 걷다>, <해골성> 등에 등장해서 경찰 특유의 발로 뛰어 증거를 찾아 입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랑스 경감이다. 기디온 펠 박사는 <모자수집광 살인사건>, <구부러진 경첩> 등의 작품에 등장해서 불가능한 사건을 탐정 특유의 추리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헨리 메리베일 경은 변호사로 법정에서 사건을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과 독설로 유명하다. <유다의 창>은 딕슨 카의 독자들과 고전 추리소설 독자들이 오랫동안 출판되기를 기다린 작품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아까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지미 엔스웰은 장인이 될 에이버리 흄을 만나러 간다. 그는 무뚝뚝하게 그를 맞이하고 그가 건네 준 술을 마시고 그는 의식을 잃는다. 그리고 깨어났을때 그의 옆에는 에이버리 흄이 죽어 있었고 그는 자신이 용의자가 될 처지에 놓였음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밀실에 단 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하지만 그래도 무죄를 주장하고 헨리 메리베일 경이 이 너무도 뻔해 보이는 사건을 맡아 엔스웰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나선다. 

모든 것은 법정에서 시작되고 법정에서 끝이 난다. 이 작품은 법정 미스터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검사측은 한치의 용의자의 유죄를 의심하지 않고 증인들의 증언은 그가 살인자임을 알려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에 맞춰 증인들을 내세우고 배심원들에게 유죄를 증명한다. 반면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메리베일 경은 검사의 증거를 반박하고 다른 증인을 내세워 자신의 변호인이 무죄임을 증명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핵심이 바로 유다의 창이다. 세상에 유다의 창이라니. 밀실 트릭의 대가가 밀실을 만들어 놓고 독자들에게 유다의 창을 찾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헨리 메리베일 경의 히든 카드가 바로 그 유다의 창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 장인은 죽고 예비 사위의 코트에서는 총이 발견된다. 그들은 싸운 듯 보이고 방 안의 화살이 살인 도구로 쓰인다. 밀실에서, 밀실이 확실한 방에서 한 남자는 살해당하고 한 남자는 남아 있다. 그런데도 헨리 메리베일경은 화살에서 사라진 깃털 조각만을 찾고 부정확한 것들을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지게 하려 또 다른 증거를 수집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는 그에게 단 한가지 난제가 있다면 그것은 용의자의 갑작스런 죄를 인정한 발언뿐이다. 이런 모든 악조건속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을 위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가는 헨리 메리베일 경의 추리와 변론은 점점 유다의 창을 찾아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차츰 등장 인물들의 가려진 관계가 밝혀진다.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심문하고 반박하고 증거를 내세우고 그 증거를 무효로 만드는 과정을 작가는 독자에게 잘 묘사해서 보여주고 있다. 마치 법정에서 있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각각의 증인들의 증언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가려내는 묘미와 핵심이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닌 용의자가 된 지미 엔스월의 무죄를 입증하는 점에 있음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며 논리적으로 증거를 제거하고 다른 증거를 내놓는 메리베일 경의 솜씨는 신기에 가깝다.  

약간 답답했던 방코랑 경감, 너무 오컬트적이었던 기데온 펠 박사와는 전혀 다른 현실적이면서 역시나 잘난척하는 헨리 메리베일 경은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이 얼마나 더 무궁무진하게 읽을 작품들이 많은지를 알려주고 있다. 정말 헨리 메리베일 경 시리즈만이라도 다 나와준다면 좋겠다. 여기 법정 미스터리의 선구적 작품이 있다. 대가의 작품을 만끽하시길. 법정 미스터리와 밀실 트릭의 오묘한 조합이 주는 매력만점의 미스터리였다. 역시 존 딕슨 카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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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볼 밀리언셀러 클럽 106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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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병이 들어 죽음을 향해 항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산다는 건 병이 드는 과정이다. 자유라는 병, 사랑이라는 병, 욕망이라는 병,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병, 아이의 양육이라는 병, 탈출을 향한 열정이라는 병, 탐욕과 출세를 향한 몸부림과 시기와 질투, 포기라는 병, 내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희열을 맛보려는 허영이라는 병.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병과 싸우며 결국 그 병에 굴복하고 죽는 것이다.   

불륜으로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 아이를 찾아 한 여인의 삶과 그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찾아다니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결론은 여자가 끝까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인 모두가 그렇듯이.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도 이것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삶이란 언제나 기나긴 여정이다. 그 여정 사이사이 우리가 무엇을 흘리고 다니는지 우리 자신은 나중에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아니 그것이 다시 필요해질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집을 뛰쳐나올 때도 주인공은 자신만을 생각했다. 딸을 걱정할 부모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 불륜을 저지를 때도 주인공은 자신만 생각했다. 아이를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고 남편이나 상대방의 배우자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어 가는 형사의 모습도 주인공의 모습과 마찬가지지만 주인공은 더 잔인하다. 죽어 가는 남자로 인해 살아 있음에 대한 보상과 잃어버린 딸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상쇄하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그것으로 우린 무엇을 잃어버릴 지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순간일지라도.

지금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내 아이일까.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일까. 이 여자는 왜 잃어버린 한 아이에게만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죄의식에서 일어나는 모성의 본능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자신의 자학성 만족감 때문일까. 여자에게는 또 다른 아이가 있다. 자신이 외면한 남편을 닮은 아이. 그 아이는 또 다시 잃어버린 아이처럼 버려 둔 채 잃어버린 한 아이만을 찾아다닌다.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일 아닐까.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어른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 중에서 그래도 자신을 더 닮은 아이에게 더 애정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이것 또한 인간의 이기심과 비뚤어진 자아의 실현이다. 이제 여자는 자신의 아이 둘을 모두 잃었다. 남편도 없고, 사랑했다 믿었던 남자도 떠났고, 자신이 위안을 삼던 남자는 죽었다. 여자는 아이 찾기를 그만두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녀를 반기는 곳은 없다. 왜 그녀는 그녀의 한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이의 죽음과 사건을 파헤치려는 의도는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들의 방황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불륜에 의해 아이를 잃은 카스미를 통해, 카스미와의 불륜으로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하며 자유로운 기둥서방으로 사는 이시야마를 통해, 그리고 암으로 죽어 가는 전직 형사 우츠미를 통해. 우츠미와 카즈미는 사라진 카스미의 딸 유카에 대한 꿈을 꾼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바람이 담긴 꿈. 그것은 꿈이 아닌 사건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듯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허영이 낳은 장사암에 불과하다. 돌 같지만 만지면 부서지는. 헛되고 헛된 인간의 삶과 욕망을 죽음과 사라짐을 잘 표현하고 왜, 무엇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하는 인간 삶의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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