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처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스웨덴의 작은 휴양 도시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얼음 공주>의 시리즈격인 작품으로 에리카가 <얼음 공주>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는 주인공이었다면 이 작품은 에리카의 남편이자 경찰인 파트리크가 사건의 중심에서 해결하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전편에서 등장한 에리카의 여동생 안나의 문제가 다시 속을 썩이고 스웨덴의 휴가철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소소한 그들의 일상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스웨덴으로 여행을 온 독일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시신 아래 오래된 유골이 두구도 함께 발견된다. 그들은 1979년 실종된 두 여자와 2003년 현재 실종된 여자라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지만 동일인에 의한 살인 또는 과거 살인자를 모방한 살인범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 같아서 경찰을 긴장시킨다. 그들은 과거 두 여성의 실종 사건에 관련된 단 한 사람인 지금은 자살한 유명한 전도사의 작은 아들 요한네스에 대한 단서를 다시 한번 조사한다. 그는 죽었지만 그를 고발한 그의 형 가브리엘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 여자의 신원을 확인한 후 더욱 놀라게 된다. 

한 집안이 원수처럼 지낸다. 형이 동생을 고발하고 동생이 형의 약혼녀를 빼앗고 형은 부유하게 살고 동생의 처와 조카들은 초라한 움막에서 산다. 이것이 에프라임 홀트가 남긴 유산이다. 에프라임 홀트는 유명한 전도사였다. 그런 아버지가 전도사였던 것이 싫었던 형 가브리엘은 종교와 담을 쌓고 살지만 그의 아들 야콥은 어려서 할아버지의 골수로 살아나게 되자 할아버지를 닮아 전도사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에프라임 홀트를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사촌인 린다와 스테판은 친하게 몰래 만난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서로의 처지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자살한 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의 자식들이라는 점이 사건 앞에서 크게 부각된다. 

스웨덴의 휴양지는 여름 휴가철에 친척에게 방을 빌려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그것 때문에 임신한 에리카는 골머리를 앓고 임신한 아내를 사건때문에 돌보지 못하는 파트리크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 늘 있는 경찰 내부의 알력과 경찰이 흔히 하는 생각인 '그때 내가 그것을 알아챘더라면'이 반복되며 경찰들의 사소한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다. 캠핑카에서 캠핑하는 이들과 또 다시 사라진 십대 소녀를 찾기 위해 범인에게 다가가려 애를 쓰는 경찰들과 사라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 그 자식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오던,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오던 걱정과 공포, 죄책감과 무력감은 같다는 걸 안타깝게 느끼게 된다. 여기에 한장씩 펼쳐지는 피해자들이 고통당하는 장면은 짧지만 강한 인간의 공포와 본능을 잘 보여주고 있어 가슴 아팠다.  

작가는 작은 사실과 연관해서 과거까지로의 여행을 하게 만든다. 모든 사건은 언제나 뿌리가 깊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 뿌리는 인간의 작은 거짓말에서, 인간의 더러운 욕망과 탐욕과 자기 합리화에서 시작된다. 범죄는 아주 뿌리가 깊은, 인간의 오래된 인간과 역사를 같이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 인간을 따로 생각하지 말고 인간의 삶속에서 일부분처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강한 임팩트를 남기기보다 북유럽 작품 특유의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viana 2010-08-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타로가 도서관에 들어와서 2권 읽고 3권도 빌려왔어요.1권 빌려간 사람이 좀 황당할거에요.ㅋㅋ 저 덕분에 4권부터 읽어야 될지도..만두님 덕분에 잼나게 읽고 있어요. 감사해요.

물만두 2010-08-26 16:14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띠지를 위, 아래로 덮고 여자의 머리만 보이게 한 표지, 그 검붉은 색깔이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다. 제목도 잘린 머리가 들어 있는데 이러면 호러적인 기괴함이나 잔인함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작품은 조근조근 시작한다. 한 여인이 지난 날 자신의 남편이 주재소 순사로 있던 히메카미촌의 히가미가에서 일어난 괴이한 사건을 남편이 적은 글과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 그리고 그집의 하인이자 어린 목격자인 요키타카가 보고 들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책 속의 책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히가미 가의 제일 가문인 이치가미 가 남자는 대대로 병약해서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저주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을 낳으면 여러가지 액막이를 했다. 그것이 삼년, 십삼년, 이십삼년 이렇게 십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사건은 열세살이 되어 십삼야 참배를 드리는 히메카미당에서 일어난다. 그때 그곳은 밀실이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은 당주가 될 조주로, 조주로의 쌍둥이 여동생 히메코, 그리고 조주로의 시중을 들던 요키타카가 몰래 숨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히메코가 우물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진다. 요키타카가 보고 있었고 아무도 들어온 사람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치가미가에서 그 일을 재빨리 수습하고 처리한다. 부검도 조사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소문은 퍼졌다. 머리없는, 머리가 잘린 거라는. 쿠비나시가 나타났다는, 그리고 아오쿠비님의 지벌이 행해진 거라는.  

이 이야기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서막이면서 비극의 시작으로 처음을 장식할 뿐이다. 십년 뒤 이십삼야도 지나고 조주로가 결혼할 여성을 히가미 가의 여러 일족에서 세 가문의 여성을 뽑아 선을 보는데 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조주로도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잘린 채 살해당한다. 합이 네 명의 머리 잘린 시신이 등장하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일어난 건지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고 이치가미가는 다시 알아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가문의 대를 이을 자를 지목하려하고 다른 가문에서는 이치가미가가 가지고 있던 권력을 자신들이 차지하려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작품은 전쟁 중, 전쟁 후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이 대대손손 살아온 자신들의 풍속을 지키는 지방의 지주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남존여비사상과 지방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토속 신앙에 대해서도 기묘하면서도 역사적으로 그 원인을 알 수 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추리소설의 밀실 트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는 기괴하고 음습함, 사람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한 희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런 점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읽게 하고 읽은 뒤에도 "앗, 어떻게 된 거지?"하고 깜짝 놀라게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트릭은 많은 작품에서 사용했다. 또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일본 작품 가운데 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서 나올 법한 일족이 히가미가 사람들이다. 이런 나와있는 이야기 소재와 트릭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 작품이 독특해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에 있다. 단순해보이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과감하게 생략하고 화자를 작가와 사건에 집착하는 순사, 가문 내의 하인인 어린 아이로 나눠 다양하게 분산하고 그에 맞게 눈높이를 변화를 준 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여러 일본 미스터리 베스트에 꼽힌 이유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제목이나 표지는 잔인해보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살인이 묘사된다고 그 자체만 가지고 잔인하다고 하는 것은 단세포적인 발상이다. 그것보다 더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 살인보다 더 끔찍한 것들이 이 작품 곳곳에 담겨 있다. 어쩌면 일본속에 그렇게 많은 민속 신앙과 요괴, 귀신이 많은 것은 말할 수 없이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을 사실 그대로 말을 해도 와전되거나 오래되서 변형되거나 아니면 말할 수 없어 일부러 그런 형태로 남긴 것은 아닐까 싶다. 바로 잘린 머리처럼, 아니 그 이상 불길한 것이 이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미스터리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제프리 포드의 작품은 <유리속의 소녀>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다. 전작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컸다. 이 작가의 특징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역사의 사소한 부분들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그러니까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당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라고 역사에 쓰여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조합해서 작가는 하나의 픽션을 완성하는데 그 픽션에 여러가지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것들,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구성하는 능력을 높이 사고 싶다. 한마디로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다. 

초상화로 돈을 벌고 있는 화가 피암보, 하지만 그의 내면은 초상화는 그림이 아니라 그저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화가로서의 환멸감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초상화를 요구하는 부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나마 현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짓이고 거짓을 그리는 것은 화가의 능력을 파괴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면 돈이 되지 않는다. 정말 배고픈 예술가가 되느냐,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의 길에 서서 그는 배부른 돼지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샤르부크 부인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하인을 통해 그를 부르고 병풍 뒤에 있는 자신을 이야기만 듣고 똑같이 그려줄 것을 부탁하며 어마어마한 돈을 제시한다. 피암보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그 의뢰를 받는다. 똑같이 그리게 되면 다시는 초상화를 그리지 않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도시에서는 눈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시체들이 발견되고 경찰들은 그 사실을 쉬쉬하지만 결국 너무 많은 시체가 나오자 살인사건으로 간주하고 범인을 잡기에 몰두한다. 피암보는 샤르부크 부인와 병풍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의 애인은 그런 그를 질투하다 떠난다. 그런데 죽었다던 샤르부크가 나타나 그를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작품은 샤르부크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여인의 기구한 삶에 대해, 여자 혼자 사는 삶이 그 시대에 얼마나 끔찍했을지를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피암보라는 화가를 통해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한도끝도 없는 것이라 가지면 가질수록 더 허해지는 법이지만 그것도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비웠을 때만이 그 안을 채울 수 있음을 알려준다.  

작가는 작품속에 여러가지를 담고 있다. 에로틱한 환상과 미스터리, 무녀의 영적인 능력과 쇼같은 마술, 예술가의 고뇌와 사랑까지. 그리고 역사와 한 도시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반전은 가히 이 작가가 스릴러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지 않았나 싶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살인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비중을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샤르부크 부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암보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한마디로 독특한 작품이다. 작가의 인지도만 따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작품을 볼 기회를 선물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가 글을 잘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특한 소재인 샤르부크 부인의 보이지 않는 모습은 독자에게도 그녀의 모습을 그리려는 피암보에게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샤르부크 부인에 의한 샤르부크 부인을 위한 샤르부크 부인의 작품인 것이다.  

샤르부크 부인의 병풍속에 감춰진 비밀을 알아내고 서서히 그녀의 비밀이 드러나는 방식이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작가와 독자의 상상력 대결이 필쳐진다. 미스터리하고 환상적인 것을 원하는 인간인 독자들에게 바로 이런 점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들고 작품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여기에 오컬트적인 면과 시니컬한 사회 풍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좋은 작품이란 이런 작품이다. 혼자 동떨어진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독자에게 스며드는 작품. 바로 이 작품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08-1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참 샤방한데 말이죠...흠.

물만두 2010-08-17 12:08   좋아요 0 | URL
표지가 사망이라시는 줄 ㅠ.ㅠ
이 작가 읽어보세요. 글 참 좋습니다. 추리소설로 안 읽으시고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처럼 읽으셔도 좋습니다.

stella.K 2010-08-17 12:13   좋아요 0 | URL
네. 일단 보관함에 넣겠습니다.^^

물만두 2010-08-17 12:25   좋아요 0 | URL
유리병의 소녀도 보시어요^^

stella.K 2010-08-18 14:30   좋아요 0 | URL
아놔 참...알았어요.ㅠㅋ

물만두 2010-08-18 14:46   좋아요 0 | URL
물고 늘어지는 물만두여요^^ㅋㅋㅋ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와카타케 나나미표 일상의 미스터리 시리즈가 이번에는 장편으로 나왔다. 가상의 도시 하자키를 배경으로 바다가 보이는 빌라 매그놀리아에 사는 사람들과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중심이 되어 사건의 발생보다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코지 미스터리다. 처음에 와카타케 나나미를 좋아하는 동생이 이 작품을 읽더니 너무 등장인물이 많고 개인사가 많아 혼동되서 못보겠다고 했다. 그게 작가의 트릭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흥미를 가지고 다시 읽을까 하는 생각에 인물이 많은 것은 시리즈라서 그렇다고 떡밥을 뿌렸다. 역시 동생은 그 떡밥을 물어 다시 일겠다고 한다. 음화화화~ 

빌라 매그놀리아에는 거품 경제의 몰락과 함께 위치도 안좋고 교통도 불편한 곳이라 이사간 사람들이 많고 남은 사람들은 떠날 수 없거나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한적한 곳이 좋아 애써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그러니만큼 빈집도 있다. 하필이면 그 빈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어떻게 잠긴 집 안에서 시체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범인은 왜 시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인지 경찰은 처음부터 범인은 빌라 주민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고 탐문 수사에 들어간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빌라 최고의 트러블메이커로 불리는 부인이 살해된 것이다.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등장 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나열된다.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랴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연을 그다지 구구절절 읊지 않는 경향이 있는 관계로 그것이 미스터리적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연이 또 숨기고 싶은 비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각각의 사연들을 읽는 것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사연들이 모여 사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작가의 교묘한 글솜씨에 감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이 작품은 코지 미스터리다. 유머러스한 부분을 빠트리면 안되기 때문에 요소요소 웃음짓게 만드는 것을 빼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것을 끌고 가고 있다. 남자 동창 두명이 산다고 호모로 오해받는 학원 강사들, 엄마와 함께 살면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여자, 빌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루머를 퍼트리는 걸 낙으로 생각하며 사는 수다쟁이 아줌마와 유명한 추리소설가와 알코올 중독자 부인, 번역가, 작은 호텔을 시어머니와 경영하는 과부, 남편이 행방불명된 쌍둥이 엄마 등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같아 동질감을 주기도 한다. 

가상의 도시가 배경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사연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연과 다르지 않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과 고충, 고통과 걱정 또한 같다. 여기에 엿보기 좋아하는 이웃과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과 의견 차이와 충돌이 있고 비슷한 교감을 나누며 같은 취미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이웃은 멀어진지 오래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불편하나마 사건이 있으면 나와주는 빌라 매그놀리아의 주민들처럼이라도 되어보는 건 어떠냐고 묻는 듯 하다. 곪은 상처는 터져야 한다고 작품속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우리네 삶속의 곪은 상처를 터트릴 수 있는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기도 하다. 

경찰도 수사를 하고 추리소설가도 수사를 하고 쌍둥이도 탐정놀이를 하고 빌라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수사를 하려는 모습과 감춘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과정, 어쩌면 너무 많은 용의자와 너무 많은 탐색자들이 더 문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매력이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까지 읽을수록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이라 책을 덮자마자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 기대가 된다. 등장 인물의 사연에 사건 하나라거나, 한 가구당 사건 하나가 얽히는 것으로 작가가 마음을 먹는다면 지금 다섯편 정도 나온 것 같은데 얼마든지 더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게 또한 시리즈만이 가지는 장점이기도 하니까. 암튼 다음 작품으로 고고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0-08-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구당 한사건..이야 무궁무진한 이야기 전개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사람사는 곳은 아무리 좁아도 버라이어티한거죠~
표지는 맘에 안들어요--;

물만두 2010-08-12 19:3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상의 미스터리라도 흥미진진한거겠죠.
저도 표지는 참 그렇습니다 ㅜ.ㅜ

메시지 2010-08-1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책 한권으로는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안녕하시지요?

물만두 2010-08-13 12:11   좋아요 0 | URL
우와 이거 몇백년만이랍니까? 뉘시온지... 이럴려고 했다구요^^
잘 계셨나요? 반갑습니다.
우리네 사연이 다 그렇지않나 싶어요.
 
여왕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서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읋 떠올린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영향을 받았는지, 의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 <여왕벌>은 기존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에서 벗어나 좀 더 현대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고립되고 한정된 외딴섬, 외딴 지방을 벗어나 세상과 함께 변화속에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형식이 외딴섬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이어 도시에서 이어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이런 전조는 이미 전작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전집이 나온다면 전반부 작품과 후반부 작품의 변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국과 교류가 있어 중국풍 가옥이 있던 섬, 중국 월금을 닮았다고 월금도라 이름붙여진 월금도에서 아리따운 아가씨 도모코가 18세가 되어 양아버지에게로 가려 한다. 하지만 떠나기 전 그녀는 꼭 한번 닫혀 있는 방을 보고 싶어 열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예감한다. 19년전, 그녀가 태어나기전에. 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어린 나이에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가정교사와 할머니 손에 자란 도모코는 도시로 나가 결혼할 상대를 골라 결혼할 예정이다. 그런데 긴다이치 코스케가 일찌감치 등장한다. 그것은 그녀가 월금도를 벗어나면 안된다는 협박 편지때문이었다. 그 협박을 도모코도 받는다. 그리고 그 협박대로 사건이 일어난다.  

19년전에 도대체 무슨 비극이 있었던 것이기에 도모코의 앞날에 비극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작품은 독자를 궁금증에 빠트리며 범인을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추리하게 하고 있다. 이 미스터리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괴롭히고 사건을 풀지 못하는 탐정을 괴롭힌다. 작품은 월금도를 떠난 뒤 도모코가 발을 디디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있다. 그 사건들은 호텔과 공연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주로 도모코에게 구애를 하고자 하는 남자들이 살해당해 도모코가 남자를 죽게 하는 마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심지어 긴다이치 코스케까지도 공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도모코는 점점 의지가 강해지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점점 코너에 몰리는 느낌이  들게 한다. 증거마저 빼앗기고 말았으니 원. 정말 도모코는 섬을 나와서는 안되는 존재였단 말인지 자책하게 만든다. 그리고 점차 밝혀지는 진실, 도모코가 알아야 할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여왕벌이라는 제목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제목이 보여지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여왕벌에게 몰려들어 자손을 남기는 사명을 다한 숫벌들이 죽는다는 그런 의미다. 이 작품에서는 도모코를 지칭한다. 아름답고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자들을 홀리는 색기가 가득한 여자가 되어가는 도모코의 운명. 하지만 이것은 타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않고 자신만의 사랑에 집착하는 광기어린 탐욕이 만들어낸 위장일 뿐이다. 사랑에 집착하는 이기심이 늘 사건을 만들고 피바람을 부르는 것이다. 동서고금에 언제나 존재했던 인간의 너무 뻔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작품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말처럼 무대는 갖춰졌고 모든 인물들은 모여 있었다. 수상한 이들도 있고 풀어야할 수수께끼도 있다. 이를테면 도모코의 친부가 남긴 '박쥐'가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고 도모코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의 속마음들이 이 작품을 연극처럼, 영화처럼 보게 만들고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글인 동시에 움직이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나레이션이 들어가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나 드라마로도 많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작품은 영화를 보고 싶다. 미스터리가 있고 로맨스가 있고 인간의 욕망과 질투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간결하면서 의외로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아가사 크리스티식 미스터리 로망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리 2010-08-0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덕에 긴다이치코스케라는 탐정을 알게 되었죠.
또 좋은 책 하나 업어 갑니다. ^^

물만두 2010-08-09 16:08   좋아요 1 | URL
재미나게 보세요^^

paviana 2010-08-10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 마크스의 산을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상권 읽다가 포기했어요. 속상해요.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더라구요. 근데 도서관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없어요.제가 신청해야 될까봐요.

물만두 2010-08-10 21:07   좋아요 1 | URL
마크스의 산 재미있는 작품인데 글에 집중하기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인데 포기하시다니 아깝네요.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은 좀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두 속상하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