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갑자기 엄마에게 아주 옛날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전재산을 남기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 이 작품 안에서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유산은 무려 5억엔. 좋아해야 하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아빠는 엄마와 유산을 남긴 남자 사이를 의심하다가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집을 나가버리고 중학생인 아들은 자신이 누구 아들인지까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제 이 어린 아들과 그의 친구가 탐정이 되어 엄마의 지난 시절 그 남자와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 하는데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5억엔이 생겼다고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처럼 외부에서 괴롭히고 이웃들은 그런 자신의 평범했던 이웃을 더 이상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남편은 회사에서 아내의 과거에 대한 추측으로 쑥덕거림에 시달린다. 이들에게 5억엔은 돈이 아니라 짐일뿐이다.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짐이다. 이런 단순한 사람들의 심리를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린 아들의 눈을 통해서 어른들의 변하는 심리를 바라보게 하며 그 사실들을 심플하고 쿨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마지막의 반전은 조금 허무함을 준다. 뭐,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런대로 이해하게도 되지만 재미가 반감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에 극적인 요소도 별로 없고, 소년 탐정들이 등장해서 그런가 마치 소년의 성장통을 보는 느낌이 더 강했다. 미스터리보다는. 책을 덮은 뒤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이 '미미여사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였다. 가족에 대한 이해에 관한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미야베 미유키다운 소재였지만 내용의 전개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소년 탐정이 등장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볼만한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기대를 하지않고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그러내로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그나저나 대가의 모든 작품이 기대만큼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미야베 미유키때문에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아쉬운 마음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viana 2010-03-1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제 <메롱>을 읽고 역시 미미여사야 했는데....이책은 그냥 건너 뛰어야겠네요. 실망하긴 싫어요.ㅎㅎ

물만두 2010-03-15 15:44   좋아요 0 | URL
저도 메롱 볼걸 후회되요 ㅜ.ㅜ

세실 2010-03-15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잘 지내시지요.
오늘은 만두님 생각이 많이 나네요.
요즘 만두님 유머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워요.
가족 분 모두 잘 계시지요?

물만두 2010-03-17 10:46   좋아요 0 | URL
세실님 방가요^^
가족들은 잘 있고 저는 감기 끛이라 아직 좀 그래요.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명탐정 홈즈걸 3 : 사인회 편 - 완결 명탐정 홈즈걸 3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이 핑핑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날로그를 꿈꾸게 된다. 우리의 아날로그적 추억, 느림의 아름다움, 속도가 아닌 기다림으로 살아가던 그런 것들 말이다. 여기에는 서점도 포함된다. 컴퓨터만 켜면 인터넷 서점이 있고 주문 버튼만 누르면 집앞까지 배송이 되는데 굳이 다리 품 팔며 서점갈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서점에 간다. 

책을 천천히 고르는 맛에,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유로움을 누리기 위해, 친구와 잡담하며 공통 관심사를 주고받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이들이 있기에 서점에서는 소소한 일들이 일어나고 세후도 서점에서는 교코와 다에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다. 그것이 아주 단순한 일이거나, 누군가 협박을 당하는 일이라해도 말이다. 서점 일에는 어눌해도 머리는 좋아 탐정 일에 제격인 아르바이트생 다에와 서점 직원으로 사건을 지나치지 못하는 교코 콤비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이상한 주문>은 책을 주문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면 주문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답을 듣게 되면서 그 사연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너와 이야기하는 영원>은 초등학생이 서점 견학을 와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서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는 이야기다. <가나모리 군의 고백>은 사랑에 빠진 서점 직원 가나모리군의 이야기속에서 가나모리군의 사랑을 지켜주려는 이야기다. <사인회는 어떠세요?>는 스토커를 잡기 위해 사인회를 하는 추리소설가와 그 스토커를 잡는 다에의 이야기다. <염소 씨가 잃어버린 물건>은 편지를 잃어버린 고객의 편지 찾기를 내용으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간직해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기억이다. 안좋은 것도 좋게 기억하고 추억을 공유하고 작은 것도 나누는 정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것을 작품들마다 잘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와 우정이란 무엇인가 되돌아보게 하는 숙연함과 스쳐지나가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의 평범함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아날로그지만 괜찮아.'라고 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아졌다. 나이가 들면 살아갈 날들보다 산 날들에 대한 아련함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3편이 마지막이라서 아쉽다. 그동안 서점 나들이 잘하게 해줘서 고마웠다. 아듀, 명탐정 홈즈걸!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03-1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구료. 그동안 왜 그리 안 보였소?
다시보니 반갑네.^^

물만두 2010-03-10 12:11   좋아요 0 | URL
감기걸렸어요 ㅜ.ㅜ
지금도 약먹어요 ㅜ.ㅜ
좀 나아서 들어와서 글 올립니다. 언제 못들어올지 몰라서요.
감기가 아주 지독해요 ㅜ.ㅜ

stella.K 2010-03-10 12:20   좋아요 0 | URL
앗, 이런...이제야 들어 온 걸 보면
아주 심했나 보네. 몸조리 잘해요.^^

물만두 2010-03-10 14:56   좋아요 0 | URL
네.

무해한모리군 2010-03-10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감기에 걸리셨군요.
건강하세요 만두님
저도 이 시리즈와 이별이라 아쉬웠습니다.
요즘은 단골을 소중히 해주는 작은 상점들이 없어져서 너무 아쉬워요.

물만두 2010-03-10 14:57   좋아요 0 | URL
저는 감기땜시 읽다 말다 몇주가 걸려서 그게 더 아쉬웠어요 ㅜ.ㅜ

무스탕 2010-03-1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월이 눈이오니 만두님도 같이 오셨네요 ^^
감기 어여 떨쳐 버리시고 봄맞을 준비 하셔야지요 :)
오랜만이라 더욱 반가워요~~~~

물만두 2010-03-10 14:57   좋아요 0 | URL
그래야 하는데 독하게 안떨어지네요 ㅜ.ㅜ

카스피 2010-03-10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 조심하세요.그리고 좋은 리뷰 많이 올려주시구요^^

물만두 2010-03-18 10: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댓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ㅜ.ㅜ

울보 2010-03-1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많이 아프셨나보네요,
만두님 감기 뚝떨어지기를,,
아프지 마세요,
알라딘에 오면 만두님이 계셔야 하잖아요,,ㅎㅎ

물만두 2010-03-18 10: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거의 다 낫는데 정신이 좀 없네요.
댓글 늦게 달아 죄송합니다 ㅜ.ㅜ

BRINY 2010-04-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만큼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은 3권이었어요.
요즘 날씨가 하 수상하니, 만두님도 건강이 안좋으셨군요..

물만두 2010-04-27 09:59   좋아요 0 | URL
네. 볼만했습니다.
감기는 다 낫구요. 몸 사리고 있답니다^^;;;
 
밤의 기억들 Medusa Collection 4
토머스 H. 쿡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범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그 범죄의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은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듯이 범죄도 늘 되풀이된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이다. 기억하기 싫은 밤의 기억들, 사악한 기억이 이제 막 펼쳐지려 한다. 

에드거상, 앤소니상 수상작가 토머스 H. 쿡이 단순한 이야기를 썼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 그레이브스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하는 이야기와 그에게 의뢰되는 50년 전에 살해당한 한 소녀의 사건을 상상을 더해 이야기로 재구성해달라는 이야기는 처음에 내겐 생뚱맞게 다가왔다. 그리고 폴 그레이브스가 그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이 너무 밋밋해서 작가는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걸까를 과도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다 보면 이야기는 간단한데 말이다. 

너무 일찍 부모를 잃은 남매, 외떨어진 시골 농장에서 남매만 산다는 자체가 위험 그 자체인데 그 시절, 그 시골에서 범죄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린 남매만 살도록 방치한 것이겠지. 또한 남매도 둘이 살아도 무방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도 안이했다. 범죄는 일어났고 누나는 잔인하게 동생의 눈앞에서 살해당했다. 남동생은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19세기를 배경으로 범죄소설을 쓰는 작가가 됐다. 하지만 책 속에서도 악당이 탐정보다 강해서 언제나 탐정은 곤욕을 치르고 악당은 유유히 빠져나간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런 공포를 억누르고 자살만을 꿈꾸며 금욕적 삶을 사는 그레이브스에게 리버우드의 대저택에서 앨리슨 데이비스 부인이 사건을 의뢰한다. 자신의 저택에서 살던 자신의 친구와도 같던 한 소녀 페이예가 살해된 사건을 좀 더 그럴듯하게 소설처럼 꾸며 주기를 바라는 이상한 의뢰다. 범인이 누군지도 안다. 하지만 그 범인은 재판을 받지 않고 자연사했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페이예의 어머니를 위해 그녀가 납득할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그레이브스는 누나가 생각나고 과거의 공포로 돌아가게 될 줄 알면서도 그 의뢰를 맡아 사건을 다시 꼼꼼히 조사한다. 

사람들은 상처를 헤집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봐야 좋을거 하나 없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잊어버리고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러기 쉽지 않다. 선한 사람들은 늘 죄책감을 지고 산다. '내가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범죄를 저지른 악마들은 죄책감이라는 것, 양심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범죄를 또 저지르며 살다 잡히고 나와서 또 저지르고를 반복하는데 말이다. 

작품은 누가 페이예를 죽였는가와 왜 그레이브스는 누나의 기억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인가의 두 축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시점이 1940년대에서 1960년대, 그리고 사건을 생각하다 자신의 책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19세기까지 왔다갔다 한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범죄라는 공통점, 피해자의 고통,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이다. 그것을 작가는 적절하게 잘 배치하고 상충되지 않게 잘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은 조금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회피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레이브스가 침묵을 택했듯이 말이다. 리버우드 대저택의 여주인은 살인사건 이후 평화롭던 그곳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곳이 평화롭다 생각한 것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그곳은 절대 평화롭지 못한 곳이었으니까. 결국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피해자의 입장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작품 속에 이런 실험 내용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을 마주보게 앉혀놓고 아이들의 한쪽 팔만 자유롭게 해서 전기 스위치를 누를 수 있게 한다. 아이가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아이에게 전기가 흐르고 스위치를 누르면 부모에게 전기가 흐르게 된다. 그런 공포속에 아이들은 모두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포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순자의 성악설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공포에 약하다. 그러니 그 밤의 기억들이 되풀이되는 작금의 상황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단순한 공포를 공포 그 이상으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폴 그레이브가 쓴다는 소설은 마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를 연상시킨다. 시골이 무서워 뉴욕으로 나온 폴 그레이브스, 하지만 그는 늘 높은 빌딩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생활하고 뻔뻔하고 무지한 사람들 빼고는 모두 저마다 고통과 절망이라는 삶의 끝자락에 감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여인이 등장해 그와 같이 사건을 풀며 그의 삶에 온기를 지피려는 듯하다. 피해자라고 꼭 피해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 아니냐고 말이다. 작품 속에서라도 악당을 잡지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삶에 희망이 있어 사는 건 아니다. 만약 폴의 누나 그웬이 지금 그에게 나타난다면 너라도 내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으로. 그 기억들을 짊어지고 말이다. 잔인하다 하지 말라. 네 침묵은 그보다 더 잔인했다. 인간이 공포라는 거대한 정신적 고통속에서도 과연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살아가야 한다면 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답을 요구하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포 그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0-02-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연휴에 꼭 읽어보아야겠네요.

물만두 2010-02-23 14:54   좋아요 0 | URL
연휴 잘 보내셨어요^^

paviana 2010-02-20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즉 우울하세요? 아니면 어머님과 올림픽 보시느라 책 안보고 계신나요? 궁금해서 와봤어요.^^

물만두 2010-02-23 14:55   좋아요 0 | URL
감기걸렸어요 ㅡㅡ;;;

레몬향기 2010-03-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결말을 예측해버려서;; 너무 흔한 설정이 아닌가 싶어요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예요 ㅎㅎ

물만두 2010-03-10 11:04   좋아요 0 | URL
^^
 
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동생이 재미있다고 칭찬이 자자하던 만화다.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요즘 우울해서 보기로 했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쿠자처럼 생긴 아저씨가 빨간 비엔나 소시지를 찾는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가 "문어 모양으로 볶아줄까요?"하고 묻는다. 으하하하 그 단 한 마디가 얼마나 웃기던지. 그런데 그게 다다. 뭐를 더 첨가하고 양념을 치지 않는다. 거기에 이 심야 식당만의 맛이 있다. 추억이라는 로스텔지어의 맛, 소시민적인 삶의 남루하지만 결코 기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의 맛 말이다. 

심야 식당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저 그런 사람들이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들, 싸고 간단한 것이 먹고 싶은 사람들, 정이라는 맛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김 하나만으로도 족하고 계란말이 하나만으로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식은 카레도 메뉴에 오를 수 있고 오이지 하나도 술 안주가 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고 소박한 인생이 있는 식당이 바로 심야 식당이다. 

작가는 작품을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표현 이면을 독자는 바라본다. 나는 25년전에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던 비엔나 소시지가 생각났다. 문어 모양은 아니었지만 캐찹에 찍어 먹던 그 맛은 아직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런 소중한 기억을 떠올려 오늘 비록 우리가 조금 불행하더라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삶이 다 그런 거라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산다고 말이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야기도 있고 묘하게 여운이 남아 가슴 아린 작품도 있고 재미있고 웃기는 작품도 있다. 내 하루가 때때로 그런 것처럼, 또한 당신의 하루가 그런 일들의 연속인 것처럼 말이다. 

쿨하고 쌈박하게 절제미를 강조하는 이런 작품이 난 좋다. 늘어지며 모든 것을 일일이 알려주려고 하는 작품들보다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아무튼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에 한번 가보고 싶다.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식당이 있다면 가보고 싶다. 아마도 거기에 가면 내가 찾는, 나도 잊고 산 추억의 맛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좋지 아니한가.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02-09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요즘 여기 저기서 날립니다.
물만두님 마지막 문단의 글을 보니 깜빡 넘어가겠습니다.
저도 여백의 미 좋아하거든요!ㅎ

물만두 2010-02-09 11:14   좋아요 0 | URL
저는 음식 만화 안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짧고 간단한게 늘어짐없이 넘어가는게 매력이더군요.

라로 2010-02-0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도 읽으셨군요!!!!ㅎㅎㅎ
저도 이 작품 넘 좋아요!>.<

물만두 2010-02-09 11:15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아서 읽자마자 비엔나소시지 볶아먹었습니다^^

Mephistopheles 2010-02-0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이 아닌 드라마를 먼저 봤습니다.
잔잔하니 기복은 없어도 충분히 울려주더군요.

물만두 2010-02-09 14:15   좋아요 0 | URL
메피님 드라마도 좋다고 하더군요.

비연 2010-02-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라마는 다운받아 아직 안 보고 있는데..드라마든 만화책이든 봐야겠군요^^

물만두 2010-02-09 14:15   좋아요 0 | URL
보세요^^

비로그인 2010-02-0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껏 읽지 않았는데 물만두님의 리뷰에 당장 보관함으로.

물만두 2010-02-09 14:15   좋아요 0 | URL
쥬드님 보세요^^

비로그인 2010-02-0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차차, 혹시 천재 유박사의 생활(제목 맞나?)도 읽으셨나요? 그 만화도 소문이 자자하더라구요.

물만두 2010-02-09 14:16   좋아요 0 | URL
저는 안봤는데 동생이 그 만화도 좋다고 하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10-02-10 09:55   좋아요 0 | URL
천재 유교수의 생활.....꽤 좋습니다. 전 어찌된게 대학에서 찾지 못했던 진정한 '교수'를 만화책에서...찾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Koni 2010-02-1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완전 홀릭한 만화예요! 되게 신기한 흐름의 이야기들이 이어지지요. 처음에는 소박하게 시작해도 곧 천재와 천재의 요리 대결구도로 치달아버리는 다른 요리만화들과 컨셉이 달라서 보고 있으면 나도 그 식당에 앉아서 요리를 주문하고 싶은 기분이 되더라고요.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담하게 전해주는 게 또 좋아요. 권선징악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고요... 아, 댓글 쓰다가 갑자기 막 배가 고파지는...

물만두 2010-02-10 21:5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미미달 2010-02-1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도서관 비치 신청을 할까...했었는데 과연 될지 모르겠네요.
식객은 있던데 말이죠. 그냥 제목과 표지만 봐도 멋진 작품이겠거니 싶어요. ^^

오랜만입니다. 물만두님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존 딕슨 카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셜록 홈즈의 작품이든 어떤 추리 작품이든 시리즈를 볼 때 가끔 난감한 경우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다. <붉은 과부의 모험>의 마지막 336쪽에 덪붙여 쓰인  

달링턴 바꿔치기 스캔들 사건 때 내게 매우 쓸모가 있었고, 인즈워스 성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헤미아 왕실 스캔들」중에서
 

이런 사건 이야기가 뜬금없이 등장할 때다.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쓴 작가의 이런 이야기에도 독자인 나는 궁금해하게 되어 진짜 이런 작품이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은 아닌지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그게 그저 작가가 덪붙인, 여러 사건을 해결했음을 표현하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될 때 언젠가 이야기만 말고 진짜 작품을 써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작고한 작가들에게는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코넌 도일이라면 까마득한 일이지 않은가. 이 단편집은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의있는 작품들이다. 

그동안 셜록 홈즈를 등장시켜 코넌 도일에 대한 오마쥬 작품이랄까,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셜록 홈즈를 변형시켜 많은 작품을 썼다. 그런 작품만 모은 단편집도 있고, 트리뷰트 작품 시리즈도 있다. 그런 작품과 이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의 다른 점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독자가 궁금해할 코넌 도일이 한번 언급한 사건으로 작품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있고 코넌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읽게 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여기에 작품을 코넌 도일의 아들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 카가 썼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코넌 도일과 셜록 홈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작품은 코넌 도일이 썼다면 좀 달랐을지 모르지만 코넌 도일이 쓴 셜록 홈즈와 아주 흡사하게 쓰여졌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왓슨이 결혼한 후로 시기를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또한 특이한 점이다. 결혼은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 그의 친구 셜록 홈즈마저도. 그들의 관계와 홈즈가 왓슨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달라진 관계의 영향이라 생각하게 만든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여기에 딕슨 카가 자신의 특징의 약간 가미해서 밀실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얼룩 끈에 필적할만한 공포를 다룬 점도 좋았다. 

여전히 우리의 셜록 홈즈는 왓슨과 함께 다닌다. 홈즈는 의뢰인에 대해 잘 알아 맞추고 있고 또한 증거 수집을 위해 바닥에서 작은 먼지 하나, 검댕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험 또한 주저하지 않고 여자는 여전히 싫어한다. 왓슨 때문에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자제하고 사건이 없으면 짜증을 내고 사건이 생기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직도 베이커가 221B번지 이층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누군가 밖에 마차를 세우고 급하게 뛰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가세, 왓슨. 사건이 생겼어." 이렇게 말하며 내려오는 홈즈와 그 뒤를 따르는 왓슨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백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셜록 홈즈는 살아 있다. 누구나 추리소설을 접하는 독자는 셜록 홈즈를 먼저 접한다.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 이들도 셜록 홈즈는 안다. 그런 셜록 홈즈가 생생하기 때문에 왓슨이 적은 셜록 홈즈에 대한 그 많은 사건들 중 빠진 것들을 찾아 다시 읽고, 읽을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단편집을 옆에 놓고 끼워 읽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셜록 홈즈는 추리마니아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앞으로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셜록 홈즈 포에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0-02-05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이 책이 숱한 셜록 홈즈의 패러디나 파스티스소설중 가장 정통성(도일의 아들+추리 소설의 거장 딕슨카의 합작품)이 높은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물만두 2010-02-05 14:4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요구르트소녀 2010-02-1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홈즈의 팬이라 꼭 읽고 싶네여~ 하지만 생일 때 기념으로 사고 싶네요..

물만두 2010-02-10 19:29   좋아요 0 | URL
참았다 읽으셔도 좋지요^^

컬리 2010-02-1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 근처도 안오다가 최근들어 다시찾고 있는데...
예전에 한창 알라딘이용할때 물만두님 서재의 달인으로 꼽히셔서 추리서적보러 종종 왔는데 몇년 지났는데도 여전한 모습을 보니 괜히 반갑고 고맙고 그런 기분이 드네요 ^ㅇ^

물만두 2010-02-12 11: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