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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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한번쯤 친구들과 했던 진실게임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스무 살 때 처음 진실게임을 친구들과 했었다. 뭐,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고 장소도 밤을 세울만한 곳이 아닌 학교 휴게실이어서 비밀스러운 것은 없는 게임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누군가였는지, 나였는지가 했던 질문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키스해봤어?’ 이 질문... 아, 그 나이에 미팅과 남자 친구와 당연히 키스를 생각했던 우리들이었기에 그 질문이 이십년 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리라. 노스텔지어는 이렇게 별거 아닌 것도 책을 읽다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서 온다 리쿠를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기숙사에 남은 네 명의 남학생들이 벌이는 진실 게임. 하나의 거짓말을 섞어 털어놓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그들이 가슴 속에 억누르고 있던 피나는 상처를 꿰매는 방법이었다. 누구도 이렇게 거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보통 아이들은 오사무, 미쓰히로의 상처 같은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은 간지나 요시쿠니와 같은 일들을 대단히 커다랗게 생각할 것이다.

 

내게도 요시쿠니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들려준 유괴될 뻔한 사건이 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간난 아기적 일이다. 할머니께서 등에 나를 업고 뒤에 엄마, 아버지가 예식장을 다녀오시던 길이었는데 어떤 여자가 갑자기 할머니 등에 업혀있던 나를 쑥 잡아 뽑았다는 것이다. 뒤에서 엄마가 소리를 질러서 미수에 끝나고 여자는 도망을 갔다는데 나는 기억에 없으니 트라우마도 없지만 좀 큰 아이들에게 요시쿠니의 경험은 작은 상처는 아닐지도 모른다.

 

간지의 부모의 이혼조정도 요즘은 흔한 일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다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심지어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하지만 오사무와 미쓰히로의 상처는 크고 깊다. 오사무는 친구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그나마 치유가 되었으리라 생각되지만 미쓰히로의 상처는 그가 극복한다고 해도 심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모두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행동을 성토한다. 당연하다.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 어른은 그런 대상이 되기 쉽다. 그 나이 때 나 또한 그랬으니까.

 

화자가 되어버린 요시쿠니는 마라톤을 이야기한다. 마치 인생이 마라톤이라는 것을, 어차피 혼자 달리는 거라는 걸 은연중에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 그래도 우리가 훗날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할까를 생각한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노스텔지어다. 분명 그들은 미래의 어느 날 내가 그렇고 우리가 그렇듯이 과거의 하루를 문득 생각하고 입에 올리게 될 테니까. 그때 작은 선술집에 마주 앉은 네 친구가 모두 썩 괜찮은 모습으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며 각자 가는 길에 박수를 쳐주고 술 한 잔으로 건배할 수 있기를 책을 덮으며 바래본다.

 

네버랜드... 우리가 숨을 수 있는 과거, 그리고 현재와 미래... 끝나지 않은 네버 앤딩 스토리가 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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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2-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그것보다는 리뷰쓰는 게 힘들어요 ㅜ.ㅜ 아무 생각없이 쓰는데도 이렇게 된다니까요.

짱꿀라 2007-02-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이거 북데일리에서 서평 올러놓으거 보니까 읽을 만한 작품 같은데 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아직 고민하고 있는 책이라서요.......

물만두 2007-02-2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는 약간 빠진다 싶기도 하지만 소년들의 이야기속에서 느껴지는 노스텔지어나 우리가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글쎄요. 아마 보시고 직접 판단하시는게 가장 좋을겁니다. 제가 추리라면 밀겠지만 아닌 건 좀^^;;;

해적오리 2007-02-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책장에서 빠꼼히 나를 쳐다보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상처를 되돌아 보게 될 듯 해서리...굽이치는 강가에서처럼...
쟈철이 아닌 내 방에서 단단히 마음먹고 볼 책인데... 기대가 되면서도 두렵다는..
리뷰 잘 읽고가요.

물만두 2007-02-2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 글쿤...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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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길을 간다. 그 젊은이를 따라 나도 모르는 길을 걷는다. 대학교 때 제주도에 갔었다. 한라산 오르느라 죽는 줄 알았다. 조금만 걸어도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체질이고 조금만 밖에 나가 있어도 금방 햇볕에 타는 체질이라 나는 걷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아주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뭐, 상관없다. 내게 걷는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누군가 길을 걸으며 벅찬 감동에 젖을 때 같이 감동할 수 있다면, 그가 웃을 때 함께 웃고, 그가 아프고 외로울 때 또한 그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길이 눈에 보이겠지만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길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많고 풍요롭다.

 

저자가 산티아고에 갔다고 해서 갔나보다 했다. 왔다고 해서 잘 다녀왔냐고 했다. 그랬더니 떡 하니 에세이집을 냈네. 참 배짱 두둑한 젊은이라 마음에 든다.

 

젊다는 건 무엇이든 일단 해볼 수 있다는 거다. 나이가 들어 이제야 나는 그것을 깨닫는다. 내 젊은 날, 나도 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 그러므로 젊다는 건 자기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은 적어도 하나쯤은 하고 넘겨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어느 날 분명 무언가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고 아쉬움에 젖을 것이다.

 

산티아고에 성지 순례를 하러 갔나 했더니 자신과의 싸움을 하러 간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 갔다면 오만상을 찌푸리고 발가락의 물집에 구시렁대며 옆 사람 짜증나게 했을 것이고 낯선 사람과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지팡이 하나 들고 커다란 배낭 메고 수많은 외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길보다 더 힘든 길이 있음을 그는 알 것이다. 몇 키로라는 숫자로 걷는 길은 그다지 힘든 길이 아니다. 숫자 없는 길, 가도 가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정표도, 마침표도 없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에서도 부디 당당하고 웃으며 내가 읽고 즐거웠듯이 즐거운 삶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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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2-2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싶다 정군님 글....

물만두 2007-02-2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이 책을 보세요^^

가을산 2007-02-2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부비부비.... 그냥요.

물만두 2007-02-2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헤헤헤^^ 저도 부비부비...

다락방 2007-02-2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마치 편지같은 리뷰로군요. 추천한방 조용히 하고 물러갑니다. :)

물만두 2007-02-2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그냥 마음 가는데로 적었습니다^^

씩씩하니 2007-02-2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지순례가 자기와의 싸움....맞는거 같애요...
오늘....제가,,아,,젊다는게.정말 좋다,,이렇게 느낀 일이 있었는데..
님께 또 젊음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네요...


물만두 2007-02-2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젊음도 좋아보이는 젊음이 있으니까요^^;;;

2007-02-21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2-2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과찬이십니다^^;;;

파란여우 2007-02-2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봐요, 산티아고 800km는 커녕, 한라산 1950미터도 못 올라간 사람도 있소이다.
백록담 사슴하고는 사진 찍었수? 없었다면 여우는?
아, 모냐. 왜 이딴 댓글을 남기고 돌아 댕기냐.
무튼, 산티아고 근처라도 함 가고 싶으이...

물만두 2007-02-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성님 저 모르고 갔다가 죽을뻔했다구요. 백록담은 못갔어요. 정말 거기까지는 못가겠더라구요. 사진은... 올라가느라 죽는줄 알았는데 무신 사진을 찍어요? 힘내서 함 가보세요^^

홍수맘 2007-03-04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김남희 님의 걷기여행<산티아고>를 읽고는 내 평생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기라 결심했었는데 벌써 또 다녀온 님이 계시군요. 나도 꼭 이 길에 동참하고픈 생각이 아직도 굴뚝갔답니다. 엥~. 자주 이곳을 방문해서 낯설지가 않은 서재라 인사가 늦었네요. 건강하세요. 또 들를께요.

물만두 2007-03-0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반갑습니다. 꼭 다녀오시길 기원하겠사와요^^
 
르네상스의 비밀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01
리처드 스템프 지음, 정지인.신소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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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밀이라는 단어에 낚였다. 서지 정보를 봤으면서도 궁금증이 도져서 보기로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난 깜짝 놀랐다. 누가 커다란 액자를 보내온 줄 알았다. 나온 책의 정체를 안 순간 ‘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책이 나를 잡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척 무거웠고 또 컸다.

 

내가 책을 보는 방식은 키보드 앞에서 컴퓨터하면서 보는 것인데 키보드를 몽땅 가리니 거기다 한 장 넘길 때마다 이거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 내 체력을 이 책이 다 잡아먹겠다 싶었다. 뭐냐고? 사람 차별 하는 것도 아니고 볼 사람만 보라는 거냐고? 책값도 겁나게 비싼데... 그런데 다 읽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것도 르네상스의 비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르네상스란 고작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부흥기라는 것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더 궁금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에서 시작해서 교회에서 끝을 맺는다. 역시 르네상스도 종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것은 그 시대가 화려할 수 있었던 것은 부와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자들이 더 화려한 예술품을 원하고 그에 따라 예술가들이 더 화려하면서도 자신의 기량을 한껏 뽐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충족시키려니 종교와 함께 고대 로마의 양식과 학문을 파헤치게 되어 자연적으로 그 이전 시대보다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이나 부자나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예술가를 후원하고 교회에 더 많은 것을 바치려 해서 교회는 더 화려해지고 장식은 더 발전하고 새로워졌다. 거기에 슬그머니 자신들의 모습을 끼워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아 그것이 단순히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만은 아님을 알게 만든다.

 

알레고리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이것을 비밀이라고 하면 비밀이겠지만 일종의 잘난 척이다. 나는 이런 것을 아는데 당신은 아시오? 그림을 선물하며 그것을 내비췄다니 그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을지 지식에 대한 욕망이랄까, 열의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자칫 허영으로 비췰 수 있음을 이들도 알고 한 일이라 생각된다. 화가에게 지시를 하거나 화가의 얘기를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화가도 더욱 열의를 가지고 배웠을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들 이외의 사람이 없다. 그 시대에는 이들만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어느 시대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게 마련인데 이 책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권력 지향적이고 물욕 지향적이고 교회마저도 귀족들 사이에서 나온 교황들이 차지한 지라 그 반대편 사람들이 없다. 있다면 예술가들 정도일 테지만 그들은 부자들의 후원을 받고 또한 길드를 조직해서 나름대로 살았다고 하니 이 시대는 전쟁이 다반사였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좋은 쪽만 엮었는지 의문이다.

 

아니 무명씨가 한명 등장한다. 무덤에서 해골이 파헤쳐져서 부자들의 장식품으로 쓰인. 하지만 이것은 은연중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것을 보는 현대인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신 건 아니셨을지 생각해본다. 르네상스의 밑바탕에 이들이 있었음을 더 조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라리 책의 제목을 <르네상스의 비밀>이 아닌 <르네상스의 예술>로 바꿨더라면 잘 이해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기독교나 가톨릭을 믿는 분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책이 커서 그림이 크고 자세히 선명하게 볼 수 있어서 그 동안 같은 작품을 보았었지만 약간 미흡한 마음이 있었던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그림 하나마다 설명을 해주는 점도 좋았지만 여러 번 같은 작품이 여기저기 등장하는 지라 그때마다 이 두껍고 큰 책을 넘겨야 하는 고통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작품은 네 방향에서 모두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방향만 보여주고 상상하라는 식이어서 아쉽기도 했다.

 

나는 아쉬웠지만 도서관이나 학교에 두고 보면 참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 사서 보기엔 과하게 비싸지만 소장가치는 있다. 하지만 서두에 우리도 이제 다른 나라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뉘앙스의 취지 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는 안 받아들여도 되고 이미 받아들인 것인데 새삼스럽고 또 우리를 비문화인으로 출판사가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 책은 많은 그림을 소재로 한 팩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이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팩션 작품과 이 책을 비교해서 보면 시너지 효과는 클 것이다. 예를 들어 <다빈치 코드>라던가 <최후의 만찬>같은 작품들 그리고 르네상스의 작품이 소재가 아니더라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는 책이다. 그 점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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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7-02-1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서두부터 입맛이 화악~ 당겼는데, 꾸엑!
책값이~~~~띠용~~~~~~~@@
넘 비싸서......ㅠㅠ
만두님 무거운 책 읽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물만두 2007-02-1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 리뷰야 뭐 늘 두서가 없죠. 비싸죠^^;;;

stella.K 2007-02-1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지나면 저도 이 책을 만져보게 될 것 같은데, 되게 기다려지네요. 크고 무게나가는 책이라 책상 앞에서 정자세하고 봐야겠군요. 보통 누워서도 보는데...^^

2007-02-1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2-1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님은 아무렇게나 보셔도 되요. 제 동생은 앉아서 그냥 보더라구요^^;;;
속삭이신님 쬐송... 아무래도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부랴부랴 달고 왔어요 ㅜ.ㅜ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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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SF적인 발상의 포화도 괜찮았고 하나의 단막극 같은 내용이 끝날 때마다 뒤에 주절거린 얘기도 괜찮았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편협하고 시시한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든가 멸종하기를 나도 원한다. 근데 그걸 뭘 그리 늘어놓는 건지 작가가 애를 쓴 건 알겠는데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캐비닛이 찌그러졌다.

 

캐비닛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책의 앞부분과 맞추기 위해 인위적 화산폭발을 일으키듯 부비트랩을 설치한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뭐, 인생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또 이런 삶, 저런 삶 있는 거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을 위해 그것이 설령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진정한 것이었을지라도 앞, 뒤의 거슬리는 부분은 잘라내던가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으로 인해 이 작품은, 아니 캐비닛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작가가 원한 것이 그것이었다면 뭐 나름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읽은 이는 영 뒷맛이 쓰다. 심토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독자가 생각할 여백을 줘야하는데 작가는 너무 친절했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위화감을 작가는 알았어야 했다. 화산 폭발로 죄수로 갇혀 있다가 아이러니하게 살아난 남자가 고향을 잃고 다른 곳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과 자신을 잡으려는 나쁜 놈들을 피해 외딴 섬으로 도망을 가서 보호받으며 자신이 두고 온 곳을 그리워하는 것은 다르다. 그 다름을 얘기하려 한 거라면 작가의 의도는 잘 반영됐다. 대신 그 안의 모든 것은 사라지겠지만.

 

소통되지 못하는 것들과 이 지겨운 일상, 별거 아닌데 추구하는 것들을 아등바등 추구하려는 인간 군상들이 가끔 나도 낯설 때도 있지만 그게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이다. 달래 인간이 아니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런 우리 인간 때문이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좋게 읽다가 부비트랩을 만나서 내 생각은 폭파됐다. 나도 심토머? 아님 작가가 심토머? 내 생각과 기억을 돌려주기 바란다. 그 캐비닛 13호를 좀 뒤져보기 바란다. 거기 어딘가 종이 쪼가리로 휘갈겨 쓴 새로 들어온 것이 있다면 어쩜 내 것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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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1-2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날꺼같긴해요,,,부비트랩 안설치된 상태로 읽는 방법은 없겠지요?ㅎㅎㅎ
때로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이 담으려는 욕심이 느껴지는 책이 있더라구요~

짱꿀라 2007-01-2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의 리뷰에 이어 만두님의 리뷰를 읽고 갑니다. 역시 읽어봐야 작품인 것 같네요.

다락방 2007-01-24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출근길에 읽기 시작했어요. 열장정도 읽었나. 후훗. 근데 뭐랄까, 제 흥미에선 좀 벗어나 있더라구요. 더 읽어봐야 알 테지만.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물만두 2007-01-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맨 앞과 뒤의 부비트랩 부분만 빼고 읽어보세요^^
산타님 읽어보세요^^
다락방님 저도 조금 작가의 의도가 읽어가면서 궁금해지더군요.

뽀송이 2007-01-2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말 읽어보고 싶어요^^
SF적인 발상의 포화, 단막극적, 주절주절...^^;;
이런거 저도 좋아해요^^

물만두 2007-01-24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읽어보세요. 부비트랩만 잘 피하심 괜찮습니다^^:;;

H 2007-01-2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친구 기다리면서 앞부분 읽었는데 책장이 잘 넘어가더라구요. 읽고 싶어지던 책..^^

물만두 2007-01-2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이스트님 책은 술술 잘 넘어갑니다^^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
데브라 딘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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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부모님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이 작품은 내게 이렇게 묻는 것 같이 다가왔다. 마리나가 전쟁 중에 에르미타주 미술관 지하에서 지낸 참혹한 면보다는 마리나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끊임없이 과거의 그 미술관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피난을 가고 남은 빈 액자들을 보며 그곳에 걸려 있던 그림을 회상하고 잊지 않으려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동원해서 설명해주는 것보다 그 빈 액자가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부모의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수록된 그 분들만을 위한 보물 전시장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부모의 지난 시절을 알려고 애쓸까? 그들의 지나가는 얘기로 하는 것들을 얼마나 귀담아 들을까? 그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삶의 방식이 그들의 과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알아내거나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있을까? 나는 그래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린 시절 얘기, 가난하던 시절 얘기, 살면서 고단했던 얘기,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만 나눌 사람이 없어 어린 자식이 못 알아듣는 걸 알면서도 얘기하시던 날들... 그때 난 왜 좀 더 잘 들어 드리지 못했을까. 웃으며 말씀하시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슬픔과 그리움을 왜 알지 못했을까.

 

마리나는 그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으로 돌아가서 그래도 세상이 아름답다 느끼며 말하고 있다. 그녀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왜 하필 멀쩡하던 시간동안엔 잊으려 애를 쓰며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던 그 순간으로 가버린 걸까.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고향이고 조국이었다고 말한다. 아내에게도 자신은 그런 존재였으리라 믿었다. 그런 아내가 하필이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는 기억 속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자신이 없던 그 시간을 알 수 없다. 자신에게도 아내가 없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서 빼내고 싶은 시간이다. 근데 왜 아내는 자신만을 현실 속에 놔둔 채 그곳으로 혼자 떠나버린 것일까? 남편의 슬픔이 군데군데 얼룩져 마음 아프게 한다.

 

그것은 어쩌면 남편에게 당신이 없던 그 시간 나는 잘 있었노라고, 그러니 내가 없을 시간에 당신도 내가 비워갈 액자를 내 기억으로 채우면 그 시간도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자식들에게, 아니 자신에게 그 고통이 그저 고통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말했어야 했는데 말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뉘우침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제 어미의 빈 액자를 자식들에게 채워달라고, 내가 기억하고 있고 잊지 않으려 애를 썼던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해 달라는 바람은 아니었을까. 분명 남편과 아이들은 아내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며 그리움에 잠길 테니까. 마리나가 가족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오늘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나쁜 기억들은 몰아내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내 방의 빈 액자와 비어 버린 액자,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의 액자를 채우리라 결심한다. 당신 앞에 빈 액자가 있다. 또한 액자들은 차츰 비어갈 것이다. 당신은 그 액자 속에 어떤 것을 채울 것인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려 애쓰며 그 모든 기억이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당신의 몫이다.

 

삶의 빈 액자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마리나를 통해, 전쟁을 통해, 그림을 통해, 헬렌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다. 주변에 혹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도 한때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들에게 비어가는 액자 속에도 그들이 간직했던, 그리고 기억하고 싶어 했던 소중한 보물이 있었음을, 그래서 그분들은 여전히 소중한 분들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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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벌써 다 읽으시고 대단하심다!^^

물만두 2007-01-2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읽어보세요.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글샘 2007-01-2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이야말로 군만두도 아닌, 찐만두도 아닌, '삶은 만두'이시잖아요.
우리 삶은, 만두님을 만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ㅋㅋ
아, 갑자기 만두가 먹고 싶구나~ 이 책 보관함에 넣어 둡니다.^^


물만두 2007-01-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그렇죠. 제 삶은 만두죠^^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