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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전작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가 콩고에서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좀 더 아프리카, 콩고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람들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으로. 또 어떤 능력이 있는 사람과 보통인 사람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그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 중에서 분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도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착한 분신을 거느리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과 나쁜 분신을 거느리고 악행, 즉 자기만족을 위해 살인을 하게 되는 사람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가시도치는 나쁜 분신으로 지목되어 어쩔 수 없이 온 생애를 주인을 위해 주인이 시키는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이 죽게 되어 도망을 친 가시도치가 커다란 바오바브나무 아래에서 겁을 잔뜩 먹고 몸을 숨긴 채 나무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들려주면서 시작한다.
가시도치라는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나쁜 면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우화적이면서 전래 동화 같고 전통적이면서 세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짜여 져 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토속적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드러내 놓고 서구적인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서 여러 작품을 가시도치 부족 영감과 가시도치의 주인 키방디가 읽는 책 속에 가시도치 자신이 하는 말속에 슬며시 끼워 넣어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동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가시도치 ‘느굼바’의 이야기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에 의해 선택된 분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선택이 나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임했으니까 나는 그를 존중한다.
혹, 이것이 진짜 아프리카적인, 콩고적인 작품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꼭 책을 쓰기 위해 일부러 자신만의 것을 강조하는 것은 작가의 글쓰기를 참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콩고인이 반드시 콩고적인 것만을 써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콩고적이고 아프리카적인 것이 진짜 어떤 것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 것조차 잘 모르는데.
그러므로 나는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 인간과 동물, 자연은 과연 무엇이고 상호 공존은 어떤 것인지, 또 고집쟁이 달팽이가 마지막에 말한 누가 더 인간적이고 누가 더 동물적인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볼 참이다. 가시도치가 마지막에 자신의 생을 회고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노라면 반성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시도치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바오바브나무에게 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너는 그 어떤 인간, 그 어떤 동물보다 행복한 존재라고. 나에게도 묵묵히 내 이야기 들어주며 내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것을 지켜봐주는 바오바브나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나무 어디 있는 지, 그곳에 가면 내 얘기도 들어줄지...
그리고 깨진 술잔,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남겨준 당신, 아마도 당신 뜻대로 천국에서 어머니 뵙고 복 받고 잘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올 해 알랭 마방쿠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후회할 사람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작품 그리 쉽게 만나기 힘들 테니까. 또 언제 볼지 기약이 없으니까. 가시도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산다는 게 좀 쉬워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