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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기자와 소설가의 인터뷰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소설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동시에 소설가의 글쓰기 방식, 기자나 평론가 등 소설가와 대립 관계일 수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소설가의 소설 내용은 한 남자가 열다섯 살 때 휴가를 갈 때마다 만났던 한 소녀와의 이별을 15년 동안 간직하고 그 소녀가 살고 있고 자신의 가족이 휴가를 갔던 그 지역의 과거의 날씨만을 기억하고 있는 날씨 강박증 남자가 친구의 권유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간 뒤 그 소녀, 이제는 여인이 된 소녀를 만나러 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기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어떤 단어는 너무 원색적이었다고 하고 어떤 장면에는 너무 많은 세부사항까지 써서 지루했다고 하고 어떤 인물은 마음에 안 들고 어떤 인물은 마음에 들고 여기서는 왜 이렇게 썼으며 저기서는 왜 그렇게 썼느냐고 계속 질문을 한다. 여기에 소설가는 틀린 점을 지적하고 변명을 하고 시인을 하고 하며 대답을 한다.
소설로써의 하나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이 작품의 일차적인 목적이고 기자와 소설가의 대담, 소설을 복기하는 그들의 이야기 사이를 따라가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다. 독자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따라가야 한다.
여기서는 날씨는 베터라고 한다. 그런데 베터는 또한 폭풍우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광부들이 뚫어놓은 갱의 폭발도 베터라고 한다. 나는 이 발음을 우리말 뱉어 라고 이 작품에서 쓰고 싶었다. 기자가 소설가에게 뭐든지 뱉어 라고 한다. 소설가는 소재를 위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뱉어내라고 한다. 그들이 뱉어낸 것들을 모아 우리는 읽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작품의 마지막까지 소설가를 몰아가서 결국 한 가족의 아니 두 가족의 비밀을 알게 하고, 물론 소설에 들어 있는 내용이지만 거기에다 더 숨긴 것까지 이야기하라고 한다. 그때 갑자기 소설가는 오프더레코드를 주장하면서 작품은 끝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내용은 모두 녹음기에서 들려온 이야기였던 것이다. 역시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한 여기자의 며칠에 걸친 집요한 소설가와의 공방전이었다. 지난날의 날씨를 외우는 것으로 소설 속 주인공은 어리석으면서도 나름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고, 소설가는 텔레비전을 본 덕분에 좋은 소재를 찾아 좋은 책을 써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기자의 말장난 같은, 찔러보고 짜내는 그 모든 노력으로 자신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까지로 소설가를 몰아가는데 성공했다.
그럼 된 건데 읽은 나는 독특함 말고는 별로 받은 인상이 없다. 내 과했던 욕심을 뱉어내고 싶다. 난 숨겨진 커다란 미스터리가 있을 줄 알았다. 뭐, 미스터리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너무 작품이 치밀해서 이해 못하는 정밀기계의 부속품속에 있다 나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