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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캐러멜 팝콘을 먹어본 적이 없다. 캐러멜을 먹어본 적은 있다. 팝콘을 먹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둘이 합쳐진 것을 먹어보지 못했다. 꼭 합쳐서 먹어야 하는 걸까? 그럼 맛이 더 좋아지나? 아님 색다른 맛을 느끼게 되나?
책 처음에 주인공은 캐러멜 팝콘을 만들려고 팝콘을 튀겨놓고 캐러멜을 만들다가 전화통화 때문에 그것을 태우고 만다. 그때 아쉬워하지만 그걸 먹고 싶다고 한 남자친구는 팝콘을 입 안 가득 넣고 맛있게 먹는다. 여자도 그렇게 먹으며 그대로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또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갖춰 완벽하게 만들고자 애를 쓰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아니 족해야 하는 그런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다르게 보자면 캐러멜을 팝콘위에 덧입히는 것이다. 그러니 캐러멜은 외부적인 것, 팝콘은 내부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캐러멜은 좋은데 팝콘이 눅눅하거나 싱거워서, 아님 타서 못 먹을 정도라면 그것을 캐러멜로 감싸는 것도 괜찮은 방법 아닐까 싶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두 남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건이라면 사건이겠지만 단조롭고 조용히 흐른다. 그 안에 넘어갈 수도 있는 일도 있고 넘기기 힘든 일들도 담겨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주인공들은 그저 안으로 삭이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눈 가리고 아웅 하 듯 그렇게 넘기고 있다. 마치 그럴 수도 있지. 세상을 살다보면 넘어갈 일도 있는 거라구. 또 안 넘기면 어쩌겠어? 한 세상 그리 살다 가는 거지 그런 말들을 하는 것 같다. 나이 어린 주인공들이.
달관했다면 달관한 듯 보이고 무기력하다면 무기력해 보이는 작품이다. 사계절을 얼마나 넘겨야 지겹지 않게, 미치지 않게, 외롭지 않게, 약속을 저버리지 않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아니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런 일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나이 든 노부부의 모습 같다. 왜 나이든 노부부는 더 활기차 보이고 이들은 등에 물에 젖은 솜 한 짐 지고 다니는 것 같을까. 더 치열해서? 잘 몰라서? 막 시작이라서?
아니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삶과 아직도 타협하지 못하고 시도 중이기 때문이다. 캐러멜만으로도 좋고 팝콘만으로도 좋다고 해도 또는 그것들 모두 먹을 수 없을 때도 있는데 아직 젊은 그들은 그래도 캐러멜 팝콘만을 꼭 먹어야만 성에 차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나. 그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을.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나와서 어떤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궁금했다. 잔잔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미지근하다. 캐러멜은 달지 않고 팝콘은 싱겁다. 삶은 그래도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조용하게 조근 거린다. 심심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갔다. 그런데 왠지 그런 심심함이 조금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