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캐러멜 팝콘을 먹어본 적이 없다. 캐러멜을 먹어본 적은 있다. 팝콘을 먹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둘이 합쳐진 것을 먹어보지 못했다. 꼭 합쳐서 먹어야 하는 걸까? 그럼 맛이 더 좋아지나? 아님 색다른 맛을 느끼게 되나?


책 처음에 주인공은 캐러멜 팝콘을 만들려고 팝콘을 튀겨놓고 캐러멜을 만들다가 전화통화 때문에 그것을 태우고 만다. 그때 아쉬워하지만 그걸 먹고 싶다고 한 남자친구는 팝콘을 입 안 가득 넣고 맛있게 먹는다. 여자도 그렇게 먹으며 그대로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또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갖춰 완벽하게 만들고자 애를 쓰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아니 족해야 하는 그런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다르게 보자면 캐러멜을 팝콘위에 덧입히는 것이다. 그러니 캐러멜은 외부적인 것, 팝콘은 내부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캐러멜은 좋은데 팝콘이 눅눅하거나 싱거워서, 아님 타서 못 먹을 정도라면 그것을 캐러멜로 감싸는 것도 괜찮은 방법 아닐까 싶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두 남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건이라면 사건이겠지만 단조롭고 조용히 흐른다. 그 안에 넘어갈 수도 있는 일도 있고 넘기기 힘든 일들도 담겨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주인공들은 그저 안으로 삭이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눈 가리고 아웅 하 듯 그렇게 넘기고 있다. 마치 그럴 수도 있지. 세상을 살다보면 넘어갈 일도 있는 거라구. 또 안 넘기면 어쩌겠어? 한 세상 그리 살다 가는 거지 그런 말들을 하는 것 같다. 나이 어린 주인공들이.


달관했다면 달관한 듯 보이고 무기력하다면 무기력해 보이는 작품이다. 사계절을 얼마나 넘겨야 지겹지 않게, 미치지 않게, 외롭지 않게, 약속을 저버리지 않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아니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런 일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나이 든 노부부의 모습 같다. 왜 나이든 노부부는 더 활기차 보이고 이들은 등에 물에 젖은 솜 한 짐 지고 다니는 것 같을까. 더 치열해서? 잘 몰라서? 막 시작이라서?


아니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삶과 아직도 타협하지 못하고 시도 중이기 때문이다. 캐러멜만으로도 좋고 팝콘만으로도 좋다고 해도 또는 그것들 모두  먹을 수 없을 때도 있는데 아직 젊은 그들은 그래도 캐러멜 팝콘만을 꼭 먹어야만 성에 차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나. 그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을.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나와서 어떤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궁금했다. 잔잔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미지근하다. 캐러멜은 달지 않고 팝콘은 싱겁다. 삶은 그래도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조용하게 조근 거린다. 심심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갔다. 그런데 왠지 그런 심심함이 조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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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2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2-1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저도 그런 마음 압니다^^

moonnight 2006-12-1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요즘 요시다 슈이치에 관심가요. 심심함이 조금 마음에 남는다. 는 말씀이 딱 정확하신 거 같네요. ^^

물만두 2006-12-1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이 작가 책이 모두 그런가 보군요^^

sayonara 2006-12-1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 만두님 쵝오의 리뷰제목이었습니다. 물론 내용도 좋구요.

물만두 2006-12-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심심하긴 하더라구요^^
 
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어쩜 주인공이 나와 이렇게 닮았을까. 물론 나는 주인공처럼 책을 읽고 적재적소에 인용할 문구를 외우거나 하지는 않는다. 밑줄 긋기를 하기는 하지만 책에 긋는 것도 마음에 긋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순간 ‘아, 이 글 좋다.’는 내 감상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잊는다. 내가 읽은 책도 그 책 속에 쓰인 말도, 저자도, 주인공도.

 

단지 나는 가끔 냄새로 추억한다. 코 끗을 알싸하게 지나가는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 냄새를 따라 어떤 장면이 내 머리 속에 떠오른다. 나는 그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이었는지 알아내려 애쓰지 않는다. 단지 가끔 그렇게 찾아오는 잔향에 취할 뿐이다. 책은 내게 그 정도면 족하다.

 

주인공은 육체노동으로 책값을 벌고 나는 인터넷 서점 마일리지를 모으거나 이벤트에 응모해서 볼 책을 구한다. 그나 나나 그 외에는 다른 관심 대상이 없으니 돈들 일은 없다.

 

주인공의 삶은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삶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할 수 없었을 뿐. 나이가 들면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나는 오늘 나를 닮은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났다. 그저 내 생각에 닮았다는 것일 뿐 그다지 닮아 보이지 않지만 암튼 같은 백수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또 만났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근데 이 책이 왜 ‘오늘의 작가상’을 탄 건지 그건 모르겠다. 책 속의 인용문을 빼면 남는 뼈대가 너무 빈약하고 앙상한 것을. 그것을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책 속의 책 인용도 또 하나의 글쓰기로 받아들여야할까? 내게는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누군가나 한번쯤 해볼 만 한 구성 같은데... 상에 의의를 두지 않지만 ‘오늘의 작가상’도 위태로운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이 작품을 통해 우려된다.

 

그래도 별이 네 개나 되는 건 책 속에 소개된 책들 때문이다. 작가와 이 책에 주는 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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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2-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봐요. 이리 저리 평을 봐도, 뭔가 뼈대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우긴 힘들어요. 그래도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인생이어서. 저도 나중에 한번 볼까 해요.^^

icaru 2006-12-0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네요~
책 속의 책 인용도 또 하나의 글쓰기로 받아들여야할까?.. 그런 의문이 들긴 하네요. 오늘의 작가상을 받을 만큼인 건지... 하지만.. 읽을 땐 또 그런 게 재밌긴해요.

물만두 2006-12-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사실 그 빼대를 씹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예전에 쓴 거 올리는 걸로 대신합니다. 저도 그 동질감에 봤답니다^^
이카루님 네, 읽을때는 적재적소에 참 좋은 책을, 영화를 보져주는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덮은뒤에는 작가의 책이 아니라 책 속의 책이 남으니 그건 좀 그러네요.

마노아 2006-12-0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상'을 받아야 마땅했었나 봐요. 어떤 책들을 인용했을 지 궁금하군요. ^^

물만두 2006-12-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참 좋은 책이 많더군요. 저는 잘 안 읽은 책들이지만 유일하게 모디아노책과 몇권 정도를 읽었더군요 ㅡㅡ;;;

Mephistopheles 2006-12-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도 않았고 읽을일도 없겠지만....오늘의 작가상은 심히 유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플레져 2006-12-0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냄새로 책을 추억하는 만두님, 넘흐 아름답습니다. 짠했어요 ^^;;
작가와 책에 주는 별이 아니라 인용된 책에 별 네개라는 것,
확실한 일침입니다.

물만두 2006-12-0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저도 마찬가집니다.^^
플레져님 가끔 그럴때면 기분이 참 묘해집니다^^

씩씩하니 2006-12-0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어가는 것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
님..저도 예전에 상상 못했었는데..나이가 든다는 것이 참 저를 편안하게 할 때가 많답니다...
님이랑 저의 공통분모인걸요?ㅎㅎㅎ

stella.K 2006-12-0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럴 수 있군요. 나도 이 책 읽었는데,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글 보단 주인공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더라구요. 문장 보단 실제로 작가가 읽었을 책들이 여기에 실렸겠구나 싶어 작가의 독서편력이 또한 눈길을 끈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만두님 생각에도 일견 동의해요.^^

물만두 2006-12-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우리의 공통분모가 그것뿐일까요^^;;;
스텔라님 저도 주인공의 삶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다 생각합니다. 또 작가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을 잘 구성했는지도 알겠구요.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의 일면과 그 책들을 다 드러내고 남는 것은 진부하고 단편소설감도 못된다고 느꼈습니다^^;;;

짱꿀라 2006-12-12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백수생활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죠. 만두님의 화이팅!!!! 행복한 하루되세요.

물만두 2006-12-1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주문이 많은 음식점 -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 2
미야자와 겐지 지음, 오보 마코토 외 그림, 박경희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읽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단 한 편, 내 눈길을 끈 <주문이 많은 음식점>만이 읽고 싶었을 뿐이다. 4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나는 오로지 <주문이 많은 음식점>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읽기 전에 이 작품이 어떤 작품과 비슷할까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스탠리 앨린의 <특별요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이 작품이 동화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하지만 동화라는 것을 빼고 앞만 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숲에서 사냥을 하던 두 청년이 배가 고파 헤매다 만난 서양음식점. 그들은 그 휘황찬란함에 압도당해서 고급 레스토랑이라 생각한다. 문을 하나 열 때 마다 손님에게 주문을 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들은 고급이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높은 양반이 와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주문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한다.


동화이기 때문에 마지막은 좋게 끝났다. 경고면 족하다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부모들이 알려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었겠지만 어쩌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을. 어쩌면 작가는 메시지만 전달하면 그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화는 이제 동화일 뿐이고 환상은 환상일 뿐임을 알게 되어버린 그 자란 아이들은 어릴 적 읽던 동화를 잊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면 좋겠지만 공존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역시 결말에 인간은 소금을 뿌렸어야 했다. 그들은 그래도 사냥감을 가지고 떠나지 않았던가. 살생에 대한 대가로 공포와 위협은 이제 그다지 위력이 없다.


그래서 작가의 <주문이 많은 음식점>은 괜찮은 동화로만 남게 되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아쉬울 뿐이다. 인간은 그다지 보호할 가치가 별로 없는 동물인 것을... 그러니 수건을 덫이라 생각하는 사슴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을 그렇게 해놓고 다시 사슴에게 그런 식의 고뇌를 준다는 것은 작가의 중심축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자연 속 동물보다는 인간에게 쏠려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뒷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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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맘, 또또맘 2006-11-3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맛이 쓰다니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게 만드시는군요. ㅋㅋㅋ 근데, 동화가 너무 공포스러우면 안되는디...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물만두 2006-11-3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또또맘님 제가 생각하는 거와 달라서 그렇다는 거죠. 동화로 읽기에는 좋아요. 결말이 늘 해피엔딩이잖아요^^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면’이라든지 ‘사실’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단어들에는 어떤 양면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면’에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거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실’은 반대로 거짓과 위선을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파헤치면 묻혀있는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아 신이 난다. 그래서 읽고 싶었고 읽게 되었다.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표제작이기도 한 이 중편 작품은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막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하고 펼쳐 보이려던 한 젊은이에게 갑자기 찾아온 에이즈라는 병과 그 병을 겪는 동안 같이 아파하는 선배인 나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독특한 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알자 두 젊은이는 하나의 소설을 쓰기로 한다. 일대기를 가진 한 가족사를. 그것이 바로 헬싱키에 사는 로카마티오 일가다. 그들은 그 일대기를 쓰려고 백과사전을 뒤진다. 1901년부터 번갈아가며 세계사적 이야기와 로카마티오의 일가를 연결 지으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어가는 젊은이가 있다. 단지 살고 싶다는 소원 하나가 마지막 가질 수 있는 전부였던 어쩌면 너무 어린 소년과 그 소년으로 인해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 친구와 슬픔과 절망 속에 남게 될 가족들이.


작품을 읽어가며 소년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 그래도 가질 수 있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그래도 유지되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삶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면 해를 볼 수 있다는 것과 해가 지면 잠을 잘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것만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마저 주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마지막 소년은 그래도 살았던 날들이 좋았다고 말한다. ‘이면’이 때론 이렇게 내게 쿵하고 부딪힐 때가 있다. 삶이 그렇듯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


감동은 어차피 찰나의 것이다. 그것이 오래 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사실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평행선을 이루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그러니 자신의 감동은 자신만의 것이면 족하다. 세미콜론이 ; 참 ; 우울해 보인다! 그렇게 외칠 필요 없다니까.


[비타 애터나 거울 회사 : 왕국이 올 때까지 견고할 거울들]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소유물은 추억이고 살아있는 자신의 삶 그 자체다. 소유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텅 빈 방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여유를 주지만 할머니의 그리움만은 담지 못할 것이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있느냐, 그것을 소중히 여기느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 등등 모든 것을 이렇게 따지지만 정작 다락방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버려져 있는 것 같은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고 위안이고 추억이었음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그 기억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거울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자신을 보는 가? 아니면 비춰줄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가? 그것은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달린 일이다.


독특하고 색다른 글쓰기를 봤다. 내용도 좋았다. 다른 작품을 안 읽어봐서 그런지 내게 이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많이 읽혔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만 하다. 이 작가의 ‘이면’에 어떤 ‘사실’이 숨어 있는 것인지 이 책은 오히려 궁금하게 만든다. 초기작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발표된 다른 작품이 궁금하게 만드는. 이것도 작가의 대단한 ‘이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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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2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이 작품도 번역돼 나왔군요.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읽으신 물만두 님도 특이하신 거예요.
<파이 이야기>와 <셀프>도 흥미로웠는데, 물만두 님의 리뷰를 보니, 이 작품도 역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별 하나가 왜 빠졌는지 여쭤봐도 되나요?(물만두 님은 평가가 후하신 분이어서 더더 궁금).

물만두 2006-11-2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모양을 낸 것이 거슬렸다고나 할까요? 새롭고 독특한 글쓰기는 좋지만 별 5개를 주기는 좀 그랬습니다. 제가 이해를 못한 것일수도 있구요. 어쩌면 추리소설이었다면 별5개 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추리작가가 아니어서 작가가 손해본 거라고나 할까요^^;;; 또 하나 덧붙이자면 많이 읽힌 작가는 제가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jedai2000 2006-11-2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뛰어난 점이 많은 데뷔작이지만, 역시 패기가 앞서다보니 오버한 부분도 좀 있겠죠. ^^ <파이 이야기>는 꼭 보시기 바랍니다. 명불허전의 걸작이거든요. 약간 추리적인 재미도 있답니다. ^^

물만두 2006-11-2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추리라고라~ 크헉~ 제 약점을 너무 잘 아세요. 아마 내년에나 보게 되겠네요^^;;; 보관함에^^

jedai2000 2006-11-2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

물만두 2006-11-2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 제다이님 감사합니다^^
 
재즈클럽
크리스티앙 가이이 지음, 김도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재즈란 어떤 것일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흥에 겨워, 슬픔에 잠겨 연주하는 것이 재즈가 아닐까 싶다. 재즈는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음악인 장르다.


한 남자가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남자는 재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어울리지 않는 보일러 수리공으로 살아간다. 그 삶은 그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죽은 삶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에게는 남편이 죽지 않고 유령처럼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다시는 재즈 때문에 불안해하고 남편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떤 난봉꾼을 남편으로 두고 평생을 살아 온 할머니에게 어떻게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 할머니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친구를 버리나?’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에게 남편은 남편이기도 하고 생을 함께 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친구라 생각했기에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는 친구가 그를, 그의 인생과 그 모든 것을 친구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쉬잔이 이 말을 알았더라면 시몽에게 재즈 없이 살아가는 삶은 죽은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죽더라도 재즈와 함께 죽도록 놔둘 수 있었을 텐데 쉬잔에게 시몽은 남편이자 아들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한번뿐인 인간의 삶은 어쩌면 즉흥적인 재즈 연주와 같다. 한번 연주하면 똑같은 연주를 할 수 없는 그런... 우리는 같거나 비슷하다고 느끼지만 녹음한 음반을 틀어 놓지 않은 이상 같은 공간에서 같은 악기를 가지고 같은 사람이 연주를 한다고 해도 그 맛은 언제나 다른 것이 재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시몽은 데비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럼 쉬잔의 삶은 무엇이었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시몽과 데비는 운명적 사랑을 만났지만 그 시간, 끊임없이 기차를 놓치는 남편을 데리러 도로를 달리던 쉬잔은... 그 또한 자신의 삶을 산 것뿐이다. 그만의 방식으로.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에 겨울 수 없듯이 재즈의 선율이 밝았다 어두웠다 신났다가 우울해지듯이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 짧은 글 속에서 나는 한곡의 해석하기 어려운 재즈를 읽고, 또 나만의 재즈 같은 인생을 만들어 간다. 하얀 표지에 재즈클럽 같은 제목이 있고 안으로 들어와 재즈 한곡 듣고 가라고 손짓을 한다. 아마 한번 본 사람들은 누구도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바닷가의 작은 재즈 클럽. 바다는 넘쳤다 빠지고 그러다 다시 파도를 만들고 계절에 변화를 보여주지만 언제나 그곳에 한 결 같이 있다. 바다와 인간, 그리고 재즈...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이라면 족하지 않을까. 어쩌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어떤 바닷가, 한적한 재즈클럽을 찾아 갈지 모르겠다. 그곳에 내가 찾는 무엇이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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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11-2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근사한 리븁니다.^^

물만두 2006-11-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 이러시면 제가 코가 커진다구요^^:;;

씩씩하니 2006-11-2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재즈같은 인생......정말 근사한 표현에요,님.~

물만두 2006-11-2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