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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야기하고 싶어요 - 더불어 사는 세상 2
하야가와 슈헤이 그림, 하이타니 겐지로 글, 오근영 옮김 / 동연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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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겐지로 선생님이 한국에 오셨었죠.
우리교육 7월호에는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지요.
겐지로 선생님의 장편도 말할 수 없이 훌륭하지만 -그 문학성이나 작가정신, 교육철학을 포함해서-
저는 사실 단편으로 처음 작가 이름을 만났고요, 그 때문인지 단편에서 겐지로 문학의 가치가 더욱
빛이나는 것 같아요. 너무나 작고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아이들의 마음처럼 큰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흥미롭게 들려주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그림책의 초 신타와 통하는 데가 있어요.

이 책도 그렇지요. 주인공 이츠코는 유치원에서 아무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딱히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어린이가 아니지만 그 수줍음이 심하다 못해 입도 뻥긋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을 걱정스럽게 해요. 그런데 이츠코가 똥을 누고 나오다 화장실에서 부딪힌 새내기 선생님 이쿠코 선생님에겐 달랐어요. '뭔가 뜨끔'하게 하는 것이 있었거든요. 뭘까? 이름도 비슷하고, 자기처럼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게 다른 어른 같지 않아요. 그게 어린 이츠코의 가슴을 뜨끔하게 했나봐요. 와, 이츠코의 가슴이 두근거려서 "몸 안에 북이 50개쯤 들어 있는 듯" 하고는 문장을 만났을때,
갑자기 나의 시계가 20년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나도 그랬는데. 별 것 아닌 말 한마디를 하는 것도, 어른들에게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벌벌 떨고 있었던 나. 정말, 나도 이츠코 처럼 몸속에서 북소리가 둥둥둥둥 났었는데.
그 북소리를 잠재우고 겨우겨우 입을 열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이츠코 만세에요.
그리고 멋졌어요.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이 책을 통해서 깨어났으니까요.
편안한 그림도 멋졌구요. 우리 인생에 무지개처럼 빛났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나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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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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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습니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구타당하고, 스토브에 팔을 지지고, 몇시간씩 거울 앞에서 꼼짝 못하게 하고 벌을 서고,
나쁜 아이라고 응징을 당한 어린이.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처집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폭력의 가해자가 바로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는 사실이 더 무서웠습니다.

양호선생님의 신고로 보호소에 가게 된 아이.
경찰차 안에서 "걱정마. 넌 이제 자유야."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
그 아이가 자라서 자기 이야기를 썼습니다.
작가 자신의 말대로 그는 혼자인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오기로 버텼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지금 건강하게 '살아남았고'
섬세하고 조숙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무섭고 눈물이 나기는 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생존자의 약력에서 그만 놀랐습니다. 열여덟 살에 미 공군에 입대했고 공중재급유요원으로 걸프전 당시 '사막의 방패'와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사막의 방패, 사막의 폭풍, 작전 투입, 군인...
그가 전쟁터에 나갔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른 이를 도우며 조용한 삶을 산다고 하니
군대에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그래도 그가 전쟁터에서 포탄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었다는 것은 믿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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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망각 - 알츠하이머병이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솅크 지음, 이진수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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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어떤 필자가 수년간 조사하고 취재하고 관련서적에서 알게 된 것들이 녹아들어있는 책을 읽는다는 건 가끔 즐거움을 넘어서 감격인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실들이 건조하고 재미없게 진열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머감각있거나, 아니면 인간미가 느껴지는 따뜻한 문장으로 엮여있을 때는 더더욱 감동적이지요.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도 제게 그러한 책 중 하나입니다.

전체 17장 중에서 지금 12장까지 읽었으니까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의 글이, 게다가 책의 성격상 의학계의 전문지식이 빠질 수 없는 이 책이 이렇게 빠르고, 쉽게 읽힌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요. 이 책은, 이제는 암 등과 함께 미국인 사망 원인의 3대 질병으로 다뤄지는 알츠하이머 병을 의학계의 눈으로 또, 그 질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마음으로, 사회-철학-역사-문학의 다양한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쓴이의 해박함 없었더라면 어찌 미국의 유명한 대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이 질병을 앓았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으며, 마크 트웨인이 이 도도하고 오만한 시인에게 날린 조소가 만찬장을 얼마나 썰렁하게 했는지 그러한 에피소드까지 알수 있었을까요? 또 ‘리어왕’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셰익스피어 이전에도 숱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지만 셰익스피어만이 리어왕의 모티브에 노환, 노망기, 치매를 연결해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비극으로 형상화 했음을 알게 된 것은 물론이고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분야의 이야기들을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주제에 네트워킹 하는 필자의 능력 덕분인지, 저 역시도 몇몇 곳에서 따로이 알고 있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일례로 40쪽에서, “스튜어트 리틀” 덕분에 다시 읽고 있는 “샬롯의 거미줄”을 쓴 엘윈 브룩스 화이트도 1984년 치매로 고통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1985년 10월 그가 사망하자 부고란에 알츠하이머 병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비공식적으로나마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나타난 증세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다발경색성 치매라 추정해 볼 수 있다 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의 연구를 둘러싼 학계와 제약회사 간의 정치적인 다툼을 이야기하는 203쪽에선, 오귀스텡 모렐이 ‘퇴화’라는 개념을 발표해 결과적으로 인종차별과 인종청소를 뒷받침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즉, 진화가 적자생존을 돕는다면 반대로 진화에 부적합한 특성들은 단순 대물림되는게 아니라 후대로 갈수록 더욱 증폭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람직하지 못한 유전적 특성과 그런 특성을 가진 인간은 그 자체로 질병이고 그러므로 근절해야한다는 주장을 했던 거지요. 정신질환 같은 정신적 질병은 물론 매부리코, 구개열 등의 신체적인 기형의 자료를 사례들을 증거로 제시했답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삐뚤어진 -과학적 근거도 없는- 모렐의 주장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와 합류해서 그 결과 독일에서는 1905년 ‘인종위생학협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유명한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트도 1940년 나치의 정책을 옹호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지닌 불순 요소들을 말살하기 위해 최고 엘리트츠의 건건한 본능에 의존해야 한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동물 권리에 관한 책, “동물의 역습”에서 나오는 “동물실험 반대” 사례도 이 책에서 만났습니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을 가진 동물은 없으므로(그만큼 고도로 발달한 뇌를 가진 동물이 없으므로) 인위적으로 그 질병을 가진 동물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했다 합니다. 그 결과 1996년 미네소타 대학의 신경학과 교수 캐런 샤오는,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으로 추정(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불명)되는 베타아밀로이드=플라크를 과다하게 가진 생쥐를 만드는데 성공했답니다. 1999년 동물권리 옹호자들이 이 실험실에 잠입해서 동물들의 탈취하고 연구 장비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동물운동가들의 노력은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고 유전자 형질전환기술은 이후에도 가열차게 진행되어 갔다고 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훌륭한 저술활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입장에서 이 책은, 나와 가족들에게 노화와 함께 찾아올지 모르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정체모를 손님을 소개해 주는 필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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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단편선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김세미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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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집에 있었던 금성사 판 안데르센 전집.
엄마가 사 주셨는지, 누군가에게서 얻어다 읽혀 주신 것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 전집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가져다 읽었더랬다. 모든 이야기를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눈의 여왕이라든지,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같은 분위기의 슬프고도 처연한 이야기는 어린 가슴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싸한 엔딩과 몇 장면 안 되는 그림 컷은내게 렬한 인상을 남겼다.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 자기의 의지를 넘어선 어떤 운명이라는 힘과 관련이 있다는... 그런 어렴풋한 인상을 심어 준 듯도 하다.


올해가 안데르센 추모 몇 주기 되는 해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안데르센 동화도 정확히 기억나는 것이 없어 부러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보니 수록된 14편 중 대부분은 어린이 책 판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림자"나 "병목" 같은 작품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 읽으니 안델센이 어떤 감정에서, 어떤 느낌으로 글을 썼는지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아련한 사랑의 느낌, 신의 뜻을 거스르는 오만방자한 심성에 대한 경계, 쓸쓸하게 늙어가는 사물들의 처연한 심정...
책에 실린 모든 작품에, 똑같이 흐르는 어떤 정서가 분명히 있다.

특히, '죽음'이 데려간 자기 아기를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생명의 온실'에 선 어머니가 "오, 하느님! 제 기도가 언제나 옳으신 주님 뜻에 어긋나거든 들어주지 마옵소서. 제 기도를 들어주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하는 장면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 종교심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수십년을 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이 풍진' 샴페인 병과 난로의 부지깽이를 가슴 속에 심으로 박고 태어나 난로를 그리워 하는 '눈사람', 자기가 가진 행복을 누릴 줄 몰랐던 철없는 '전나무'나, 안델센의 눈에는 모두 영혼이 깃들인 생명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안델센은 의인화의 대가였고, 사물들의 정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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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노년
데이비드 스노든 지음, 유은실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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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네 노망났네.' 할때 그 '노망' 혹은 '망령'이 구체적으로는 '치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돌아가신 외할머니 덕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감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의식적으로 외할머니와 그 치매라는 병증과 자꾸 연결짓는 것은 외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마음 때문인듯 하다.

이 부분은 짧게 요약하기 힘든 오랜 감정이라 지금 꺼내놓기는 좀 어렵다. 여기서 밝힐 수 있는 것은 다만 치매라는 것이, 품위있게 늙을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가는 고약한 질병 중 하나임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질병을 앓는 당사자도 안 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의식과 육신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가족의 고통 역시 견디기 힘든 것이리라.

그리하여 치매, 알츠하이머 병 등을 다룬 책이 있으면 관심있게 보고 있고 아니면 나중에라도 꼭 구해 읽으려고 기억해 두고 있다.

그런 개인적인 관심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치매라는 구체적인 테마 외에도 여러 가지 점에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우선 이 책의 성격을 의학, 연구 등으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드는 인간적인 문체가 그러하다. 사실 이 책에서 치매 연구의 성과라든지 예방법의 명쾌한 방법을 취하려 한다면 무리일수도 있겠다.

연구대상, 데이터로서 수녀님들을 대하기 보다는 인간적으로 존중해야 함을 잃지 않는 역학자 데이비드 스노든의 태도 역시 이 책에서 배울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말로 연구에 동참하고 부검에 자발적으로 동의하신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수녀가 되면서 자식을 갖지 않겠다는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뇌를 기증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의 수수께끼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생명의 선물을 줄 수 있습니다. - 리타 슈발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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