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도 좋고 능력도 좋고 인기도 좋고 못하는 것도 없는 "엄마 친구 아들"을 이 책에서 만나다니... 이야기속의 신가권(=윤복)은 아버지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잘 납득되지 않는 까닭으로 턱없이 방황하는데 그림도 잘 그리고 인물도 좋고 인기도 좋은 너무 현대적인 청춘이라니, 그리고 그 반항의 주 대상이 감히 임금이신 '정조'라니…그 당시로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인데 어쩐일인지 이야기 속에서는 쉬 용납이 된다. 정말 가능한 일이었을까?를 생각하는 순간, 시작부터 이야기로서의 책의 재미가 확 줄어든다. |
|
잘 짜여진 구성, 탄탄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빠른 장면전환은 나름대로 이 책의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는 속도감도 확보하고 있고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가능할 정도의 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팩션이란 장르의 특성을 고려하면 몇가지 눈에 띄는 흠결들이 앞서의 매력을 다 잠식해버린다. 많이 아쉬운 책이다. |
|
장르의 특성상 '스릴러'는 이미 범인이나 사건의 개요가 드러난 상태에서 따라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찾아가며 느끼고 '미스터리'는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범인이나 사건의 끝을 찾아 헤매이며 읽는 맛을 즐기게 된다. '팩션'은 이 두가지의 장점을 잘 조합하여야만 하는데 신가권(=윤복)이 '샤라쿠'라는 화가라는 것은 이미 알고 보는데 이 과정이 좀 더 조밀하고 섬세하면서도 역사적인 연도와도 어울리게 조합이 되어야 할 터인데 이번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
|
책을 읽는 내 떠오르는 신가권(=윤복=샤라쿠)의 나이는 많아야 20대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미남형 청춘이다. 그런데 샤라쿠의 활동년도는 1794년에서 1795년까지 겨우 10개월간이라고 나와 있고 신가권의 생년은 1758년, 단원은 1745년이다. 단원의 나이가 너무 많아 샤라쿠가 신윤복이라는 가설은 그럴 듯하나 그 신윤복의 나이가 벌써 36살이라면 너무 젊게 그려진 것이 아닐까? 내가 책을 잘 못 읽은 것일까? 세상물정에 대하여 통달한 듯 하면서도 기방이나 전전하는 잘 난 '엄친아'같은 신가권이 36살의 나이라면 너무 오래 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
쯧쯧쯧, 어디 가나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군. 상업이 발달했다고 해도 부자의 발치에는 굶어 죽는 사람 천지니. (신가권=해원=샤라쿠) (112) |
|
가권이 보기에 가부키는 과장과 꾸밈의 미학이었다. 짙은 분장이 배우들의 맨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그들의 표정에는 생활의 고달픔이 나타나 있었다. (148) |
|
한양이나 에도나 교토나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어디가 더 낫고 말고가 없다. 가난하고 힘없는 하층민들은 불행하게 하루하루 살았고…..(360) |
|
작가도 이 부분을 염려했던 것일까? 책을 뒤적거려도 신가권의 나이에 대하여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소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도 명확한 년도가 배경으로 이야기되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은 나의 글읽기를 절망에 빠뜨린다. 그냥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제재로 삼은 팩션이라면 좀 더 치밀하여야 읽는 맛, 씹는 맛이 날 것 아닌가? 책 자체로는 재미있지만 글을 읽는 내내 아쉬움이 떠올라 흥미를 떨어뜨린 까닭이 이것이다. 설레며 우리 역사의 이면 한 자락을 들추어보는 기쁨을 만나리라 기대하였는데 아쉽고 또 아쉽다. 이야기 역시 '참됨'이 중요함을 작가가 모르지는 않을터인데... |
|
넌 그림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그림이 무엇이라고 배웠지? 진정한 그림이란 대상의 참을 그리는 거다. 초상화라는 것도 그저 닮게 그리는 것으로 족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까지 그려내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 ~ 그림만 봐도 기운생동이 전해지고 그 사람의 됨됨이가 느껴져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아름다운 것보다는 참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곰보며 검버섯,커다란 혹까지 추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김없이 드러냈어. (214) |
|
한편으로, 나처럼 어떤 기대감을 갖지 않고 그냥 한 인물, 신가권이라는, '화가'의 이야기를 소설로서- 팩션이 아니라-본다면 나름 재미있는 소설이다. 조선중기의 조선과 일본, 간자와 닌자, 오이란과 게이샤,천주교와 민간신앙 등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화음은 재미있고 또 흥미롭다. 신가권과 사유리의 사랑이야기도 그러하고……. |
|
사랑은 재채기처럼 남의 눈에 쉽게 들키는 겁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곧바로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요. (213) |
|
가권은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일이었다. (318) |
|
그렇지만 내게 이 소설은 팩션으로 먼저 다가왔고 지난해 [바람의 화원]과는 또 다른 신선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착상은 신선하였지만 조합은 아닌 까닭에 결국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신가권=신윤복=도슈샤이 샤라쿠가 한 인물이라는 증거가 더 확실하게 전개가 되었다면 좀 더 큰 반향과 재미를 가져올 수 있었을 터인데…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운..그런 책이었다….. |
|
물이 흐르듯 끝까지 자연스럽게 밀고 나가야 이길 수 있네. 처음을 잡는 자가 끝까지 잡는 거야. (230) |
|
|
2008. 7. 17. 밤, 단원과 혜원을 끄러안고 뒤척이다. |
|
들풀처럼 |
|
*책에서 옮겨두다 |
|
재능이나 기교만으로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야. 수많은 여행과 독서, 경험을 통해 마음이 풍부해지고 너그러워지면 붓은 저절로 따라붙는 걸세. (단원) (68) |
|
도슈샤이 샤라쿠의 그림은 과동한 양념을 빼고 본래의 질감과 맛을 살렸다고 할 수 있지. 극중 역할과 배우 자신의 본모습이 모두 드러난 걸작이야. (150) |
|
사랑은 재채기처럼 남의 눈에 쉽게 들키는 겁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곧바로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요. (213) |
|
인생은 그저 흘러갈 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도, 그리움도, 기쁨도, 행복도,우정도,회한마저도 아무 흔적 없이 끝난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3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