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초등학교 친구, 다른말로 죽마고우인 녀석이 어느날 밤 전화가 왔다. 참고로 미리 얘기하자면 녀석은 중산층에 확실히 자리잡은 한나라당의 심정적? 지지자이다. 나는 그 반대편에서도 한참을 멀리 떨어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넘이고......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녀석과 나의 다툼을 부각시켜 우리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날 한 시간 가량 나누었던 대화에서, 결론도 없이 끝나버린 대화에서 무엇이 우리를 이처럼 다른 생각으로 이끌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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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화를 걸어온 녀석은 내게 촛불집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느물거렸고 나는 특유의 - 녀석이 기대하는대로- 목청으로 핏대를 올려가며 녀석을 탄핵했다. 영국 유학시절, 아무 탈없이 소고기를 맛있게 잘 먹었다며, 준다면 언제든지 먹을 용의가 있다고 실증적인 경험을 토대로 밀어부치는 녀석에게 내가 해주는 말들은 그냥 한 갓 구호일 뿐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전면개방과 관련한 정치권의 정신상태,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 정책입안자들의 문제점들에 대하여는 일정부분 의식의 공유가 있었지만 그 결과물인 대응방향에서 녀석과 나는 한껏 멀어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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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 계속된 1시간 가량의 통화- 녀석은 서울에, 나는 김해에 있으므로 - 끝에 우리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전화를 접었다. 이제, 똑같은 이야기 고만하라는 제수씨의 목소리도 언뜻 들어가며…. 그날 밤 나는 드디어 '생각'이란걸 하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관습적으로 그냥 사는게 달라서 그렇지 지나 내나 고만고만한 놈들이지 뭐, 큰 차이가 있겠나하며 넘기던 문제들이 그날따라 길었던 통화의 후유증인지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과연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이 생각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고 우리는 그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인가? 스스로 '생각'을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 있어서는 [철학의 탄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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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
기원전 7세기경 일어난 그리스인들의 통찰로 철학이란 합리적 사유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된다. '세계의 시초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26)들이 쏟아져 나오고 '신들도 세계의 자연적인 질서의 일부'(35)임을 깨닫는 순간, 철학의 지평이 열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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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되는 10여명의 그리스 고대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단편적이나마 다른 철학개론서를 통하여 만나오던 바라 완전히 새롭거나 놀라운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고대 철학이라하여 이제는 무용한 것인가, 그들은 틀렸으므로 이제는 필요치 않은것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을, 철학사를 바라보는 눈을 다시 뜨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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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이론도 맞는 이론과 똑같이 위대한 업적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지금도 인정받고 있는 별로 흥미롭지 못한 다른 이론들보다 오히려 틀린 이론들이 훨씬 더 큰 공헌을 했던 경우도 많다. (칼 포퍼)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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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투스 학파','엘레아 학파' 등등으로 구분 되는 그리스 철학 계보도속 인물들의 사상을 핵심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난해한 철학을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만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그림이나 사진등이 더하여졌다면.... 일종의 요약부분인 1,2장에 해당하는 그리스 철학에 대한 개괄부분은 핵심만 추려져 좋았으나 개인별 사항들은 내가 좀 더 공부하고 관심을 가진뒤 덤벼들어야할 것처럼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쉬운 책읽기에 너무 길들여진 탓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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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의 성과물들을 토대로 하여 자라온 철학에 대한 공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라는 철학의 출발점을 잊지 않고 나아간다면 좀 더 구체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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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
그 날 이후 바쁜 일정으로 녀석과는 통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가까이 있었다면 술도 한 잔 하며 멱살잡이도,어깨동무도 하며 더 가까운 이야기들을 나누었을테고 우리의 '생각의 차이'도 많이 좁혀졌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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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큰 걱정없이 녀석을 바라본다. 우리의 출발은 어릴 적 함께 도랑치고 가재잡던 그 때였기에 언젠가는 비슷한 방향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보고싶다,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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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6. 모자란다, 부족하다, 스스로를 탄핵하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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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