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
| 오늘은 4월 6일, 딱 스무 해가 흐른 날이다. 1993년 4월 6일 밤, 시대에 취해,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마님께서 나를 간택하신 날이다. 그 이후 우리 삶은 하나가 되어 만 스무 해를 넘겼다. 산다는 거, 계획대로 되는 것도 뜻대로 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그 만남에서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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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날의 감흥처럼 마님은 날 살가워하지 않지만, 따님도 쑥쑥 튼튼히 자라고 있고 가정은 아직은 건강한 듯 보인다. 곁에 있는 아내의 가슴 속에 어떤 고민이 쌓여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지난 스무 해가 아닌 앞으로의 서른(?) 해를 살아갈 것인지 알지 못하여도 우리는 살, 아, 간, 다. 오늘처럼 잘 살아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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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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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순자"를 알겠다고 덤벼들었다. 단 한 줄, '순자의 성악설'로만 기억되는 그 순자라는 중국의 전국시대의 사상가를 알아서 뭘 하겠다고,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을 것인지 한계가 빤히 보이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 더 배우고 싶어, 배워서 익히고 싶어 도전한 책이었다. 그리고 거의 한 달…. 들고 함께 보낸 시간은 많았지만 난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맛보지도 못하였다.

- 흔들리는 KTX에서도 '生'하게 살아.....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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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철저히 한 번 읽고 넘겨버리기에 이 책은 전혀 수월하지 않았고 현실은 찾아온 봄 속에서 바빠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마무리하리라 뒤척인 밤이 몇 번이던가.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보낸 그 시간을 이제 끊으려 한다. '고전 공부는 고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신영복, 추천의 말)(6) 함을 알기에 무엇을 배웠는지를 어떻게라도 정리해보려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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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하는 전쟁 속에 인민 대중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많은 사상가가 명멸했고 순자도 그 중 주요한 한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한 시대사상 흐름의 '집약자'(325) 이자 '종결자'(327)였음을…. 그가 보여주었던 당시로써는 꽤 '합리주의적 자연관'(107), '선함은 작위(僞)의 결과'(131)라는 말도 봉건제가 해체되어가는 시대상이 반영되고 있는 부분임을… 배우고 또 익힐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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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
| 한 주간에 한 권의 책을 읽자고 목표로 삼았지만 한 달에 한 권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만의 독법을 찾아 헤매는 길이 쓸쓸하지만은 않다. 조금씩 나아지는 제 모습에 더하여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 않던가? 이렇게 늘어가는 배움의 모습에서 새로운 관점은 생겨나고 있을 터이다. 좀 더 힘을 내어 다가가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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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를 살고 현대의 문제를 떠안은 인간으로서 과거의 한 사상가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바로 출발점입니다. ~ 그 지점에서 시작한 고찰을 축적하여 어느 사상가의 상을 그려내고 자신이 상대하는 사상가를 제 나름대로 역사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자기식으로 역사를 고찰하고 역사에 대한 자기 나름의 관점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그런 문제들을 제쳐 두고선 고전 사상의 현대화 같은 작업은 있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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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원저(原著) [순자]를 통독조차 하지 않고 바로 이 책에 접근해서인지 세세하고 성실한 설명에도 전체상이 머릿속에 확연히 그려지지 않았다. 이 역시 내가 아직 '순자'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탓이리라. 이 시대 어디 명확한 것이 있으랴만 이처럼 흐릿하기는 오랜만(?)이다.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겨우 '출발점'에 선 주제에 뭘 더 바라겠는가? 그저 나는, 우리는 배워야 하는 후학(後學)일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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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푸른 물감은 쪽물에서 얻지만 쪽풀보다 더 파랗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졌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277) - (「권학」 7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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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4. 6. 새벽, 책에도 아내에게도 부끄럽지만 |
| 다시 시작하는 스물 한 해, 첫날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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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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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