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아릿한 느낌이 책을 보는 내내 가슴 속에서 물결친다. 지나간 시간들, 돌아올 수 없는 추억들에 대하여 여러말 하지 않고도 이처럼 사람의 맘을 설레며 또 아릿하게 하다니..
 
 한때 오토바이를 타보겠답시고 발을 올렸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많이 큰 뒤에..한 번의 승차와 한 번의 접촉사고로 간단히 그 바람은 끝이 났지만. 지금도 작은 스쿠터나 전기충전 오토바이에 흘깃흘깃 눈길을 두곤한다.  이 책은 조그만 스쿠터를 타고 떠났던 옛추억과 옛사랑에 관한 두근거리는 성장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하여 아름답다거나 볼거리가 화려하다거나 배울 것이 많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냥, 그 때, 그 자리에, 우리가 서 있던 혹은 쭈그리고 앉아 있던 모습들을 놓아둔다, 그리고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철없던 그 날들, 세상을 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 모자라던 시간들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여기 그 이야기들이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좋아서가 아니고 / 순전히 경험차원에서 해보근거야 (30) ~ 이 사진들은 아무때나 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 아무때나 (40) - <톰과 제리의 사랑>에서
 
 그래, 그 때의 '톰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41) '그때는 그렇게 싫었던 낡은 여관방의 비릿한 냄새들이 / 오늘은 못 견디게 그립다'(43)는 '제리'의 이야기는 그 청춘의 시간들을 따로 보낸 우리에게도 같은 무게의 독백으로 다가온다. 그래, 그 때, 함께 지낸 그는/그녀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못 견디게'그리워지는 날이 살다보면 한 번쯤은 있는 법이다. 그 그리운 날들이 잦아들어 흐릿한 기억속으로 사라져가는 만큼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동거를 끝내며 함께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러 산에 간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또 만나게 된다.
 
 내가 욕했던 사람들처럼,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처럼, 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까. / 이제 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65) ~ 오늘 눈 온대. 그냥 이대로 돌아가버리면 앞으로 첫눈 오는 날마다 오늘이 생각 날거야. 그건 정말 싫다. 너도 그렇지 않냐. (68) - <스노우 라이딩>에서
 
 그건 나도 싫다. 결국 함께 다시 고양이랑 돌아오지만 그들은 나중에 고양이가 죽자 다시 헤어진다. 그런게 삶이다. 해피엔딩? 꿈꾸고 자라나는 모습이 해피엔딩인거지..그러면서 서로들 '철들어가는거지', 그것이 인생이지…
 
 그녀가 어떻게 마법의 지팡이를 구했는지는 나도 몰라.훔쳤을 수도 있지. / 하지만 모든 마법은 언젠가는 끝나. (101)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녀, 난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걸까. 첫 순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110) - <밍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녀> 에서
 
 세상의 '모든 마법'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철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랑'이라는 홀몬의 유효기간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18개월', 겨우 1년 반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을 계속한다. 언젠가 멈출 마법이고 언젠가는 돌아올 현실이지만 '더 자유롭고 더 강해보'이는,'두근거릴 정도로' 변해버리는 그 모습조차도 아낌없이 사랑하게 된다. 빌어먹을..철이 들었다. 우리는,어느새...
 
 할머니, 잠들었어요./ 그러니까 천천히 헤엄쳐줘요./ 물론 그래야지.백년이라도 말이야. (130) ~ 고마워요 할머니.(135) - <그랜드마마 피쉬> 에서
 
 힘이들고 세상에 부대낄대 우리가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엄마아빠의 존재마저 힘에 겨울 때 마지막으로 가서 쉴 수 있는 곳은 '할머니'인 것이다. 지금의 내 딸이 그러하듯,우리가 자라며 그러했듯. 할머니라는 존재를 통하여 우리는 더욱 기대고 의지하며 어린시절로 달아나려 한다. 왜냐구? 아직 어른이 되기 싫으니까.
 
 난 끈을 하나 잡고 있었어. 그걸 놓치면 보통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끈이야.이걸 놓으면 내 의미가 없어지니까 안간힘을 쓰며 끈을 잡고 있는거야….그런데 지금은 내가 기타 안 쳐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146) ~ 끈들을 전부 놓을 거야? / 응. ~ 혹시 어른이 되려는 거니?(147) - <바이바이 베스파> 에서
 
 그렇게 우리는 '철이 들며''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만화가도 나도 쉽게 철들지는 않으리라.
 
 그럼 또 올게. 뭔가 딴 게 돼서 말이야.  어른은 말고.(149) - <바이바이 베스파> 에서
 
 * 스쿠터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기에  '다섯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인 다섯 스쿠터에 관하여는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않으렵니다. 하지만 얇지만 묵직한 이 '만화책'이 '내 인생의 만화'로 자리매김할 것임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버린 20대에 바치는 노래'로…….       
 
 
2008. 3.25.  잘 가라, 내 청춘!  잘 가라,  그 날들이여……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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