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젊은 제임스 조이스의 초상

5년 전에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해 적은 글을 소환한다. 당시엔 더블린에 다녀오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더블린에서 조이스의 자취를 둘러보고 오니 작가도 작품도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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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4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영국문학기행을 떠나는 아침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 그리고 도착해서 적은 리뷰라서 필립 페팃의 <왜 다시 자유인가>(한길사)은 문학기행과 무관한 유일한 책으로 이번 여행에 동행했었다. 저자의 공화주의와 비지배 자유에 대한 이해가 널리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른 책인데, 현단계 핵심과제로 부상한 검찰 개혁 역시 비지배 자유라는 공화주의 이념의 구현과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량상 그런 의의에 대해서는 적지 못했지만 행간에서 읽혔으면 싶다...














 


주간경향(19. 10. 07) 공화국 시민이 누려야 할 ‘비지배 자유’


<왜 다시 자유인가>라는 제목은 이 책의 초점이 자유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유를 다시 문제삼는 것은 자유가 제대로 이해되거나 향유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치철학자이면서 공화주의 이론가로 알려진 저자 필립 페팃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공화주의의 핵심 가치이자 이념으로서 ‘비지배 자유’를 자유의 이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자유의 개념을 새로 발명한 것은 아니다. 로마 공화정에 연원을 두고 있는 비지배 자유, 곧 비지배로서의 자유는 오래된 자유이면서 망각된 자유이다. 그것을 다시 복원하고 현실화하려는 것이 저자의 신공화주의 기획이다.


로마인들에게 자유란 어떤 것이었나. 노예제가 허용된 로마시대에 인간은 둘로 구분되었다. 노예와 자유인으로서의 시민이 그것이다. 주인은 자기 노예에 대하여 전권을 갖고 있었기에 노예는 주인의 사적 소유물에 불과했다. 반면에 시민은 어떤 지배자의 권력으로부터도 기본적 자유를 법에 의해 보장받았다. 시민이라는 말은 자유롭다는 말과 동의어였으며, 이때 로마 시민이 누렸던 자유가 비지배 자유다. 로마의 공화주의 전통은 모든 시민이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게 함으로써 어떤 시민도 다른 시민보다 더 큰 법적 권한을 지니지 못하도록 했다. 따라서 공화정 하에서 모든 시민은 수평적 관계에 놓인다. 비지배 자유는 그 자체로 평등을 함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의 이상은 기원후 1세기 로마 제정이 시작되면서 무너졌다.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야 마키아벨리에 의해 공화주의 사상이 다시 계승되고, 이후에 공화주의는 유럽 전역에서 개혁가와 혁명가들 사이에서 지배적 정치철학으로 자리잡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차츰 퇴조한다. 신로마 공화주의의 퇴조를 끌어낸 건 영국에서 새로 부상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다. 이 새로운 조류의 주창자들은 비지배로서의 자유 대신에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를 자유의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했다. 흥미롭게도 이 새로운 자유는 미국인들의 대의 권리와 독립에 대한 요구에 반대해서 영국의 식민 경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개발되었다. 이에 따르면 자유란 강제가 부재하다는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많은 자유에 대한 요구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자유관에 따르면 관대한 주인의 노예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주인이 관대해 아무런 실질적 간섭도 하지 않는다면 비록 노예라 하더라도 부자유를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비지배 자유와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자유다. 그 차이는 비지배 자유가 시민의 자유인 데 반하여 불간섭의 자유는 노예의 자유라는 데 있다. 즉 불간섭의 자유는 불충분한 자유이고 축소된 자유다.

필립 페팃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를 예로 든다. 입센의 이 문제적 작품에서 노라는 관대한 남편 토르발 덕분에 19세기 여성치고는 예외적인 자유를 누렸다. 남편은 노라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먹지 못하게 했지만 노라는 치마 안에 감추고서 얼마든지 몰래 마카롱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노라가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남편의 처분하에 놓인 노라는 제목처럼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일 뿐 결코 자유롭지 않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노라에게는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를 넘어선 그 이상의 자유가 필요하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선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사회적 조건, 그것이 공화국의 시민이 누려야 할 비지배 자유다.


19.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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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과 서울(한국)의 시차는 8시간이다. 암스테르담과는 7시간. 갈 때보다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장거리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이 어제 오후 2시 45분이었으니 11시간 정도가 지났다. 간단한 해산식일 갖고서 리무진을 타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6시 반쯤. 이로써 영국문학기행이 완료되었다(모든 건 이제 기억의 소관이 되었다). 시차보다는 피로감 때문에 한숨 자고 일어나니 런던에서라면 저녁식사를 하러 갈 즈음이다. 런던에서의 마지막날 한겨레에 실린 북칼럼을 옮겨놓는다. 출발전에 두 종의 번역본을 챙겨갔던 <댈러웨이  부인>에 대해 적은 리뷰다(여러 차례 강의했지만 원고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골랐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 전후에 적은 것이다. 이번 여행의 한 부산물이다...
















한겨레(19. 10. 04) 거기 그녀가 와 있었다 


작가 연보와 프로필 사진만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고 신경쇠약으로 평생 고통받았던 여성작가를 떠올리기 쉽다. 버지니아 울프 얘기다. <자기만의 방>(1929) 강연을 통해 여성작가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예리한 성찰을 제출한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가 또한 울프다. 울프 문학의 핵심은 무엇이고 성취는 무엇일까. 영국 문학기행 차 런던에 와서 런던 거리를 산책하길 즐겼던 울프를 생각하며 던지는 질문이다.


런던 거리의 풍경을 직접 담고 있는 소설이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1925)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서술기법을 발전시킨 소설로 유명하다. 하지만 울프는 <율리시스>에 대해서 상스러운 작품이라며 불편해했으니 같은 부류의 작품으로 분류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겠다(댈러웨이 부인이 몰리 블룸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울프가 서술기법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댈러웨이 부인>을 표본으로 삼아 말하자면 삶에 대한 긍정과 예찬으로 보인다. <율리시스>의 몰리 역시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삶에 대한 '고상한' 긍정이라고 해야 할까.

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1920년대 초반 런던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댈러웨이는 영국 총리도 참석하는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다. 꽃을 사러 나선 길에 그녀는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곧바로 열여덟 살의 처녀 시절을 떠올린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젖히면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던 때였다. 당시 사랑했지만 결혼 상대로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헤어진 피터 월시가 돌아온다는 사실도 연이어 상기하는데 마침 이날 피터는 댈러웨이를 찾는다. 삼십 년의 시간적 간격이 놓여 있지만 댈러웨이는 그에게서 여전한 매력과 함께 거부감을 느낀다.


그렇게 늙은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댈러웨이는 만으로 쉰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한 차례 독감도 앓고 난 뒤라 기력도 떨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댈러웨이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회복력을 보여준다. 화장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댈러웨이의 모습이 시사적인데, 비록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여전히 자기 삶의 구심점을 되찾는다.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부름”에 그녀는 기꺼이 응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그녀를 둘러싼 사교계의 중심이었다. 그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환기해주는 것이 바로 파티다. 옛 애인 피터나 남편 리처드가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댈러웨이에게 파티가 갖는 의미였다. 댈러웨이에게 파티는 삶 자체다. 그리고 삶이란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녀에게 파티는 “하나의 봉헌”이고 “조합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댈러웨이에게 파티가 갖는 의미는 곧 작가 울프에게 창작이 갖는 의미와 동일해 보인다. 그것은 봉헌이면서 긍정이다. 작품에서 그러한 봉헌에 가장 큰 도전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쟁 후유증으로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투신자살하는 셉티머스다. 댈러웨이는 셉티머스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지만, 그의 자살소식이 불청객처럼 파티장에 끼어든다. 댈러웨이는 파티 한복판에 끼어든 죽음, 다르게 말하면 삶의 한복판에 끼어든 죽음을 유감스러워하지만 공감의 능력과 회복력을 통해서 극복해낸다. 비록 젊은이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삶이 계속되어야 하듯 파티도 계속되어야 한다. 결국 소설은 댈러웨이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마무리되는데 클라리사의 연인이었던 피터는 노년의 댈러웨이에게서도 여전히 클라리사의 매혹을 느낀다. “거기 그녀가 와 있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삶에 대한 울프의 당당한 긍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19.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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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이제 공항으로 이동중이다. 대부분 쇼핑과 내셔널 갤러리 관람 등으로 시간을 쓰셨고 나는 해처드서점과 바로 옆 홍차가게에서(차를 마시고 점심도 해결했다) 시간을 보냈다. 해처드서점에서 책을 몇권 구입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러시아문화사가 올랜도 파이지스의 신간 <유럽인들>(2019)이다. 해처드서점에선 저자 사인본을 비치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의 부제는 ‘3인의 삶과 코스모폴리턴 문화의 형성‘으로 19세기 중반 투르게네프와 비아르도 부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파이지스의 책은 <나타샤 댄스>를 포함하여 3종의 책이 번역돼 있는데 이 책도 번역되면 좋을 듯싶다. 19세기 중반은 유럽문화사 내지 소설사와 관련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다. 유익한 참고자료로 기대가 된다.

해처드서점의 신간코너에 소설 외에도 인물평전과 역사서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평전으로는 처칠과 히틀러, 그리고 대처 평전들이 신간으로 나와 있었다(히틀러 평전이 또 나왔다는 게 놀랍다). 해처드서점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겠지만 역사서가 많이 나오고 읽히는 것으로 보인다(그건 부러운 대목이다).

세계문학기행은 내년에는 스위스(봄)에 이어서 프랑스(가을) 문학기행을 진행할 예정이고 2021년 봄에는 다시 영국문학기행(이번과 비슷하게 진행하되 일부 일정을 조정할 예정이다)에 이어서 러시아문학기행(가을)을 계획하고 있다(러시아도 두번째 문학기행이 된다).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테지만 향후 몇년간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재회를 예정하고 떠나기에 런던과의 작별이 아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일단은 작별을 고한다. 런던이여 안녕! 씨유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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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10-0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쌤의 글을 통해,
읽으며 여행한 저의,
영국도 씨유 어게인??? ㅎㅎ

로쟈 2019-10-05 17:48   좋아요 0 | URL
네 그러신걸로.~
 

런던에서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까지 공식일정은 마무리했다. 오늘은 오전에 소호거리에 있는 마르크스의 집을(현판만 붙어 있는 것으로 안다) 찾아보고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다. 오후에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네덜란드항공이라 이번에도 암스테르담을 경유한다).

현재는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향하는 중인데 이제는 런던식 교통체증에도 익숙해졌다. 좁은 도로를 마치 전통처럼 고수하다 보니 런던의 교통난은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는데 런더너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듯하다. 이 또한 영국식일 터이다. 대신에 도심 녹지가 30퍼센트에 이르고 크고작은 공원이 3천 개가 있다고 하니 런더너의 삶이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고도제한으로 고층빌딩도 없고 네온사인도 없는 거리는 런던을 항상 런던이게끔 한다. 세월의 마모를 버텨내는 런던!

어제 일정은 버지니아 울프(와 댈러웨이 부인)의 산책길을 따라가본 워킹투어와 찰스 디킨스 박물관 방문으로 구성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시작하여 세인트제임스파크와 버킹검 궁전 앞을 지나 리젠트파크까지 이어진 워킹투어는 3개의 호수를 거치고 런던 도심을 가로지르는 여정으로 3시간이나 소요되었다(당초 2시간쯤으로 생각한 일정이었다). 폭풍의 언덕 트래킹과 함께 이번 문학기행의 하이라이트. 중도에 <댈러웨이 부인>에도 나오는 전통 있는 서점 해처드(1797년에 문을 열었다)에도 들러 영국식 서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점답게 품위 있는 책진열과 배치를 보여주었다).

수제 햄버거집 바이런에서 점심을 먹고 디킨스 박물관을 찾았는데 런던의 작가 디킨스에게 바쳐진 런던 유일의 문학관이다. 내막을 알아보니 그가 살았던 다른 집들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1837-39년까지 3년 못 되게 살았는데 당시 신혼의 디킨스는 세 자녀와 처제 등과 함께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가 사랑했던 처제 메리 호가스가 숨을 거둔 것이 1837년이었고 화제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발표한 것도 이 시기다. 1839년말에 디킨스 가족은 식구가 늘어난 데다가 수입도 늘어서 리젠트파크 쪽의 더 큰집으로 이사한다. 박물관은 4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층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실제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몄기 때문일 텐데 디킨스의 명성에 비하면 소박하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1870년에 사망한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디킨스 박물관에서 나온 일행은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트라팔가 광장 옆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조각상을 찾았다(1998년에 세워졌다). 더블린에서 시작한 여정이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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