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트 러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가 새로 나왔다. 새 번역본이 아니라 보급판. 책이 가벼워지고 가격은 내려갔지만 글자는 더 빼곡해서 ‘노안을 위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휴대가능한 판본이란 점은 평가할 만하다.

견물생심이어서 들고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에 읽었으니(아마 중세철학은 확실히 건너뛰었을 것이다)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나온 개정판들도 챙겨놓고 원서도 구해놓았지만 다시 손에 들기는 어려웠다. 쉽게 엄두를 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잖은가.

상식을 확인하자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표준적인 책은 아니다. 저자의 개성과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 책이어서다(시인 바이런에 한 장을 할애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객관적인 세계철학사란 또 무엇인가. 근거없는 사실을 나열하고 논리의 비약을 일삼는 엉터리가 아닌 다음에야 역사를 보는 ‘관점‘은 제거 불가능하다. 그 관점이 서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영어권에서 오랜 동안 가장 많이 읽혀온 철학사라면(적어도 그런 책의 하나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공부거리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보한스 2019-05-0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 문장을 다듬었다고 하네요

로쟈 2019-05-06 16: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1998)이 절판돼 아쉽다는 얘기를 며칠전에 적었는데(중고로 구입했다). 그 전작도 마찬가지다. <암스테르담>에 곧바로 이어지는 <속죄>(2001)는 영화화되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이 되었지만 그의 두 전작은 그렇지 못하다. <암스테르담>과 그 전작 <이런 사랑>(1997)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사랑>(미디어2.0)의 원제는 ‘Enduring love(영원한 사랑)‘이고 그보다 앞서 <사랑의 신드롬>(현대문학)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는데 모두 절판되고 감감 무소식이다(할 수 없이 중고로 주문했다). <속죄>를 읽으려고 하니 <암스테르담>을 읽어야겠고, <암스테르담>을 읽으려니 그보다 먼저 <이런 사랑>을 읽어야 한다. 어떤 독자에게 이런 소급독서는 불가피한데, 그 어떤 독자의 역할을 맡을지 망설이는 중이다.

매큐언은 올해(더 정확히는 이번 봄에) 발표한 ‘Machines like me‘(‘기계들은 나를 좋아해‘인지 ‘나 같은 기계‘인지 헷갈린다)를 포함해서 모두 15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데뷔작은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1975)이지만 그의 첫 장편은 <시멘트 가든>(1978)이었다(2005년에 번역본이 나왔지만 절판되었다). <속죄>는 여덟번째 소설로 가운데에 위치한다. 전후로 다섯 권씩 번역되었으니 번역된 장편은 현재까지 모두 11편인데 이 가운데 현재 품절되거나 절판되지 않은 건 7편이고 <속죄> 이전작으로는 <이노센트>(1990)가 유일하다.

현황이 그렇다면 매큐언에 대한 강의는 소설집까지 포함하면 8강으로도 꾸려질 수 있다. <속죄>와 함께 최근작으로 <넛셀>(2016)과 <솔라>(2010)만 이번 강의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려보는 차원에서 적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개의 강의를 포함해서 다섯 가지 일정이 있는 날이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게다가 평소보다 1시간 먼저 일어났다). 매일 그런 건 아니어서 안도하게 되는 귀갓길이다(요즘 같으면 격주에 하루 정도). 금방 지나갔지만 긴 하루였다고 할까.

강의 때문에 줄곧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게 되는데, 오늘 줄리언 반스 강의에서는 그의 최근작 <연애의 기억>(다산책방)을 읽었다. 지난해 나온 책이니 1946년생인 반스가 72세에 발표한 소설이다. 인터뷰에서 그런 발언을 했고, 맨부커상 수상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1)와 연결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이를 고려하건대 반스의 마지막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강의에서 한 발언인데, 나는 그가 또 소설을 쓴다면 2008년에 세상을 떠난 아내 팻 캐바나를 위한 소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쓰기는 했지만 말이다.

<연애의 기억>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마찬가지로 스무 살 청춘기의 사랑을 노년의 화자가 회고하는 설정이다. 주인공 폴이 19세이고 테니스클럽의 파트너였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수전이 48세여서 나이 차이가 얼추 30년이다(수전에게는 폴 또래의 딸도 둘이 있다). 소설에서도 언급되지만 설정상으론 플로베르의 <감정교육>(1869)에 대한 오마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예감>과 마찬가지로 청춘과 노년의 두 나이대만 중심이 되기에 그 사이의 시간들을 너무 쉽게 건너뛰게 되는 ‘중년 실종 소설‘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그렇지만 소설(novel)이란 장르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인가는 의문인데 이야기가 주인공 폴의 제한적 시각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원제 ‘단 하나의 이야기(The only story)‘에 기대자면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멈춘다고 생각한다. 수전 시점의 이야기가 누락됨으로써 이야기의 전체상이 제시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이야기‘라는 제목과 발상이 이런 종류의 사랑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고작 사랑 이야기‘란 말인가, 같은.

아무튼 반스의 소설을 멏 편 읽은 김에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도 챙겨서 읽어보려고 한다. 갖고 있는 책이었는데 행방을 찾거나 다시 주문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의 매체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주저가 번역돼 나왔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문학과지성사). 그의 이론서 두 권이 앞서 번역돼 나왔지만 십여년 전 내가 키틀러란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소개받고서 영역본으로 구한 책이 <축음기, 영화, 타자기>였다. 그 사이에 두번이나 이사를 했기에 책이 어디에 있는지는 신만이 아실 테지만 그래도 인연이 있던 책이라 번역본 출간이 반갑다.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매체 이론의 푸코‘라 불리며 매체에 대한 독창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한 독일 매체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대표작이다. 저자 키틀러는 최초의 아날로그 기술 매체들의 태동기였던 1900년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새로운 기술 매체들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를 서술한다.˝

이전에 잠깐 살펴본 바로 키틀러는 문학사에 대한 아주 특이한, 즉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대표작이면서도 그나마 가장 쉽게 쓰인 책이 <축음기, 영화, 타자기>라고 하므로 도전해봄직하다. 다른 책들도 이번 기회에 한데 모아두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의 공지다. 말과활아카데미에서 6월 3일부터 7월 22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7시30분)에 '로쟈의 서평교실'을 진행한다. 매주 한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서평의 주안점을 어떻게 맞춰서 써야 할지 궁리해보는 강의로 계획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강의신청은 http://wordnbow.net/?p=1876 ).


로쟈의 서평교실


1강 6월 03일_ 버트런트 러셀, <결혼과 도덕>



2강 6월 10일_ 백승종, <상속의 역사>



3강 6월 17일_ 시드라 레비 스톤, <내 안의 가부장>



4강 6월 24일_ 미하엘 하르트만, <엘리트 제국의 몰락>



5강 7월 01일_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6강 7월 08일_ 이졸데 카림, <나와 타자들>



7강 7월 15일_ 김동규 외,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8강 7월 22일_ 패트릭 드닌,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