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위험한 열정 질투>(추수밭, 2006)에 대한 한겨레(06.06. 16)의 리뷰를 옮겨온다. 이유는 질투 때문이 아니라 기말시험 채점 중에 잠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기자는 일단 '질투는 진화의 힘'이라는 멋들어진 제목을 뽑았고, 마지막엔 이 책이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청림출판, 2003)의 재출간본이라는 점을 명시해줌으로써 점수를 땄다(출판사의 상호가 변경된 듯하다).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에 관해 이전에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조명해보는 이유이다(이 정도의 초보적인 진화심리학은 이젠 상식이 될 만하다).

 

 

 

 

-“어서 털어놔. 그 사람이랑 잤지?” “당장 고백하지 않으면 당신을 칼로 찌르고 말거야!” 남편에게서 살기를 느낀 아내는 공포에 질린 채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이제 절 놓아줘요.” 순간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분노에 질린 남편이 아내의 머리를 잡고 탁자에 내리친 것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 <수인>에서 주인공 루팽이 아내를 다그치는 이 장면은 불행히도 소설로 그치지 않는다. 매일같이 어디선가 질투 때문에 권총이 발사된다. 또 어디선가는 질투 때문에 휴대폰이 날아다니고 또 한편에선 질투 때문에 울부짖는다.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하거나 파트너가 자기 곁을 떠나버릴 때 질투라는 감정은 격렬하게 경고음을 울린다. 밑바닥엔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널 가져선 안돼”라는 위험한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 극단적으로 흘러 ‘살해 환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한두 번쯤 겪었을 이 음습한 열정,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악마적 본성은 대체 뭔가.

-“질투란 계속 생존하고 생식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질투심 많은 경쟁자에게 밀려 진화에서 도태되었다.” 질투라는 파괴적 본능을 건설적으로 본 사람은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그는 여자친구가 없던 젊은 시절, “내 여자친구의 몸은 완전히 그의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누구와도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으며, 질투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미성숙한 감정일 뿐”이라고 ‘쿨하게’ 생각했지만 사랑에 빠지자마자 태도가 180도로 돌변해 잠자고 있던 심리의 저변을 인식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진화심리학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탐구한 저서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를 더 구체화한 <위험한 열정 질투>(추수밭 펴냄)는 자기 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욕망과 외도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설계된 ‘질투’라는 안전판을 주목한 책이다(*<욕망의 진화>도 재출간되는 게 좋지 않을까? 책을 읽어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사랑하는 만큼 질투하지만 질투만큼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감정도 없다. 질투는 상처와 위협, 상심, 당혹, 배신감, 거부당함, 화남, 소유욕, 혼란, 좌절, 우울, 분개 등을 동반한다. 그렇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질투는 주요한 애정관계에 위협이 왔음을 알리는 적응적 신호이다. 예컨대, 위협적인 언사와 매서운 눈초리로 경쟁자를 몰아내고, 배우자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어 한눈을 팔지 못하게 만들고,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를 배우자에게 변치 않는 애정을 알리는 구체적 행동을 유발시켜 사랑을 붙잡아두도록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면 질투는 사랑을 지키는 ‘방어 메커니즘’인 셈이다.

-반면, 외도는 진화적으로 가치 있는 자원의 일부가 다른 데로 새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은 자기 짝이 낳은 자식이 실제로 자기 자식인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여성은 자신의 짝이 다른 여성과 그 자식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원’을 몽땅 갖다 바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늘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음 문제는 진화과정에서 생긴 남녀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① 그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깊이 교류하고 있다, ② 단지 다른 사람과 성욕만 나누는 사이다, 어느 쪽이 화나고 충격적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감정적 배신에, 남성은 성적 배신에 더 괴로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배우자의 질투심에 맞선 남녀는 숨바꼭질하듯 ‘나선형 공동진화’를 해왔다. 낯선 냄새나 수상한 외출 따위의 낌새를 느끼면 배신행위의 비언어적 신호를 해독하는 심리적 안테나가 극도로 민감해진다. 동시에 감쪽같이 속여 넘길 상대의 기술도 연마된다. 또 짝시장에서 ‘남성은 자원, 여성은 외모’를 갖춘 선호도가 높은 경쟁자가 나타날수록 ‘질투 방어체계’가 크게 작용하도록 진화했다.

-거꾸로 배우자를 지키려는 질투와 모순되는, 다른 사람을 욕망하는 위험한 열정은 왜 품는가. 지위, 명예, 결혼, 심지어 신변의 안전까지도 송두리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 여성의 말이 흥미롭다. “남자들은 수프와 같은 거죠. 늘 여분의 한 냄비를 불 위에 올려두어야 하거든요.” 저자는 여성의 외도를 질병과 전쟁 등 짝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 ‘짝보험’을 들려는 습성으로 설명한다.

-여성 생식기에서 발견된 또다른 진화론적 증거를 보자. 돌돌 말린 이상한 모양의 정자, 수영속도가 형편없는 일명 ‘가미가제’는 두 남자의 정자가 동시에 한 여성의 몸 속에 서로 섞여 있을 경우 근원이 다른 정자를 감싸 안고 함께 죽어버린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려는 오랜 경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전투 담당 특수정자가 등장했을 리 만무하다. 일부일처 이전, 생래적으로 폴리아모리(다자간 사랑)였음을 추정케 한다는 풀이다.

질투 숨기되 질투 유발시켜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책의 마지막장은 사랑으로 이끄는 대처법에 할애한다. 첫째, 질투를 숨겨라. 질투 경험이 있는 사람의 50%는 의도적으로 질투를 감춘다. 상대적 매력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질투를 유발시켜라. 다른 이성에게 시시덕거리며 미소를 짓는 건 “제가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지 말아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셋째, 경쟁자를 폄훼하라. 이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깊이 사랑하지만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의심하면서도 열렬히 사랑한다.” 질투의 늪에 빠진 오셀로가 남긴 이 말은 ‘오셀로 증후군’을 앓고 있는 모든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올바로 사용될 경우 질투는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열정에 불을 붙이며 헌신을 강화한다. 질투가 전혀 없다면 연인에게 그만큼 불길한 신호도 없다”고 말한다. 2003년에 나온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를 재출간했다. 37개 문화권에서 무려 1만여명을 사례 조사했다. 구구절절한 사랑의 열정과 파멸이 소설책보다 극적이다.

 

06.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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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6-17 16:40   좋아요 0 | URL
ㅎㅎ 퍼가고 싶지만, 애인이 볼까봐서 -_-; 안 퍼갑니다. 진화생물학은 흥미롭지만, 인문학도로서는 일정부분 이상은 땡기지(?)가 안습니다. 뭔가, 생물학적 환원론 같기도 하고. '통섭'같은 문제도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네요. 하지만, 역시 재미는 있습니다 ^^;

로쟈 2006-06-18 08:33   좋아요 0 | URL
진화생물학의 관심은 "일정 부분 이상은 땡기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애인이 볼까봐서 안 퍼갑니다"인 것이죠.^^

호박 2006-06-18 05:45   좋아요 0 | URL
몰래 읽고 애인을 관찰해보는 재미도... 풋.

evopsy 2006-06-29 05:56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2003년에 나온 [욕망의 진화] 개정판이 곧 재출간될 것 같은데요...^^

로쟈 2006-06-29 07:46   좋아요 0 | URL
좋은 소식이군요. 제가 다시 살 필요는 없었으면 싶지만.^^
 

'서강대학원신문'(97호, 06. 05. 30)에 로버트 버턴의 <우울증의 해부>(태학사, 2004)를 '해부'하고 있는 글이 게재되었기에 (다소 길지만) 옮겨온다. 필자는 '학내기획팀'으로 돼 있다(편집장의 작품으로 알고 있지만). <우울증의 해부>는 언젠가 '문학적 태도로서의 우울증'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인데, 방대한 분량 때문에 선뜻 건드리지 못했던 책이다(책은 2001년판의 경우 1382쪽이다. 국역본은 당연히 부분역이다). 한데, 재작년 '부재중'에 출간되어 잠시 나를 놀라게 했던 책이다. 이후에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 '대학원생들의 우울'을 다루고 있는 기획기사는 '우울증'에 대한 욕구를 다시 부추긴다. 인용문에서의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내 글은 마치 거대한 강이 흐르듯이 때로는 급격하고 빠르게 때로는 느리고 여유 있게, 어느 곳에서는 똑바로 어느 곳에서는 구불구불, 때로는 깊게 때로는 여울지어, 때로는 흙탕물로 때로는 수정같이 맑은 물로, 때로는 넓게 때로는 좁게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그때 다루게 될 주제에 따라서 그리고 내 기분에 따라서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정교하게, 때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쓸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당신이 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지극히 평범한 한 나그네가 될 것이다.

 

나그네가 된 이상 당신은 화창한 날도 만날 것이고 궂은 날도 만날 것이다. 때로는 확 트인 광활한 들판을, 때로는 꽉 막힌 좁은 산길을 걷게 될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비옥한 옥토를, 어느 곳에서는 척박한 황무지도 만날 것이다. 이 가운데는 그대들이 좋아할 곳도 있겠고 싫어할 곳도 있겠지만 나는 그대들을 이끌고 울창한 숲을 통과하기도 할 것이며, 덤불  숲도, 언덕도, 계곡도, 평야도 지날 것이다. 험준한 산도, 위험이 도사린 골짜기도, 이슬에 젖은 풀밭과 경작지도 지나갈 것이다."(로버트 버턴, <우울증의 해부>, 37-38쪽)

 



1.

-로버트 버턴(1577-1640)의 책에 대해, 위 인용만큼 정확한 설명도 없을 것이다. 이 불세출의 인물은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으로 그보다 13년 늦게 태어나 24년이나 오래 살았다. 평생을 대학에서 보냈으며(교수가 아닌 학비와 기타 비용을 면제받은 ‘스칼라’라는 장학생으로), 그가 쓴 책은 <우울증(멜랑콜리)의 해부>라는 책 한 권이다. 그는 어디론가 여행을 한 적도 없으며, 결혼도 안 했으며, 어떤 세속적 성공을 얻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도서관에서 책만 읽다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버턴 같은 삶을 원하는 사람이 혹 있을지 모른다. 평생 책만 읽다 죽고 싶다고. 그러나 적어도 버턴이 포기한 것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할 것이다. 특히 세속적 성공에 대해서는.

 

-오늘날 대학에 남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다. 더구나 인문학이라면, 사회정책적인 배려도 최하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아직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 개개인에까지는 해택이 미치지 않고 있다. 적어도 박사 수료(졸업) 정도는 되어야 공금(공동 프로젝트)을 나누어먹기라도 할 수 있다.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지만. 정말이지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은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정말 파업을 하든지 데모를 하든지 해야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구체적으로는 대학원생들)이다. 왜냐면 그들은 심각하게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시간강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무얼 하러 대학원을 갔냐? 개인의 의지에 사회적 문제로 떠맡기는 이런 물음은 기만적이다. IMF 이후 대학원생이 배로 늘었다. 이 배경에는 당시 어려운 취업환경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을 눈가림하기 위해 배로 대학원 정원을 늘리도록 한 교육 정책도 있다. 역으로 말해 대학원생 수는 개인의 의지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즉 당시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대학원생을 늘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많은 룸펜 대학원생들이 등장했다. 오늘날 이들은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고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쩌면 그때야말로 태평천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룸펜들은 비굴하다. (왜냐면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상처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채만식 시대의 룸펜들은 고상했으며, 엄살적인 성격이 강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은 노숙자도, 정신병자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성인들(실업자들, 참고로 대학원생들은 스스로를 실업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이다(*물론 이건 푸념이다. 억울하고 분한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이들 룸펜들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상당한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푸코의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정신병자나 죄수를 배제함으로서 사회통합을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룸펜들을 생산함으로 사회를 유지시키고 있다. ‘룸펜-되지 않기’는 사회적 강령이 된다. 요행이 룸펜에서 벗어난 이들도 다시 그곳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회를 혼신을 다해 붙잡는다.

 

 

-오늘날 한국 소설에 실망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이 먹은 늙은이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룸펜들과 동세대인 소설가들조차 룸펜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 같은 영화는 예외이겠다). 그들은 역사나 지적추리라는 로망스에 기대거나, 섬세한 감각이라는 감상적 논리로 몸을 맡기거나, 엽기적이거나 기괴한(그러므로 자칫 문학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멋대로 해석되는) 퍼포먼스를 연기한다. 인간은 과거의 고통은 쉽게 인정하지만, 현재의 고통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따라서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 고통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문학동네, 2004, 겨울)이라는 강연문에서 근대소설은 죽었다고 선언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문학은 더 이상 시대적 고통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 이 감각을 잃고 나면 로망스만 남는다. 역사적 소재에 집착하고, 추리적 기교를 사용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감상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엽기적인 줄거리로 놀라게 하는 이야기들만 남게 된다. 그럼, ‘고통에 대한 감각’에 강도를 부여하는 게 임무인 비평가는 어떻게 되는가? ‘고통에 대한 감각’을 들어있는 작품이 부재한다면, 비평가가 소멸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좀체 비평가들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조용히 변신했기 때문이다. 고진이 말하는 ‘내면이 없는’ 비평가란 바로 그들이다. 

 

-우리시대 소설가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은 ‘혁명’이 아니라 ‘전쟁’이다. 오늘날 ‘혁명’은 사회에 의해 점진적으로 수행되고 있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룸펜을 더욱 생산할 뿐이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상상력이 도달하게 되는 것은 전쟁뿐이다(*동의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생각이다. '전쟁'의 차폐막으로서의 혁명? 과거 레닌은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만). 파괴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세워질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룸펜이라는 이 기괴한 실업자들은 일시에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에 눈을 감는 좌파는 사실상 좌파가 아니다. 솔직히 오늘날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유일한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나 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속칭 좌파들의 반전운동은 그들의 상상력의 빈곤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2.

-버턴은 우울증자의 대표적인 부류로 그 자신 역시 포함되는 공부하는 자들을 들었다. 이들이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만 든다면, 첫째 혼자서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둘째는 가난 때문이다(*버턴은 우리의 동시대인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부연하자면, 오늘날과는 달리 19세기까지만 해도 대학은 출세의 통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출세를 위한 기관이 된 것은 만인을 위한 ‘공공교육’이라는 이념이 성립된 20세기 이후다. 따라서 버턴 시대에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가난을 각오한다는 걸 의미했다. 결혼 같은 것은 애초부터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학자의 노동보다 더 힘든 노동은 없다. 남이 못해낸 훌륭한 업적을 남기기 위하여 불철주야 머리를 짜내고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책과 씨름하다 보면 건강, 재산, 멀쩡한 정신, 그리고 귀중한 목숨 등,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기도 한다. (...) 그동안 자그마치 20년간 대학에서 썩었지마는, 이제 그 바라던 직장을 얻기란 대학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나 조금도 다름없이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지금부터 과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한단 말인가?

 

가장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얻기 쉬운 자리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자리이거나, 대학의 강사 자리일 텐데, 그 일을 하고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매 사냥꾼의 수입만도 못한 연봉 10파운드, 거기에 하루 세 끼 식사와 약간의 시간외 수당, 그리고 부잣집 아이들의 부모를 기쁘게 하였을 경우 혹시라도 떨어질지도 모르는 몇 푼의 부수입뿐이다."(138-139쪽)

 



 

 

 

 

   

-우리는 여기서 버턴이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었음은 물론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와도 동시대인이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다 아는 것처럼 말로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파우스트적 원형’을 창조한 인물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의 마술사나 트릭스터적 이미지가 강한 ‘민중본 파우스트’는 말로의 붓을 거치면서 학자적 인물로 바뀐다.

 

-이에 대해 이언 와트는 흥미로운 설명을 하고 있다. 말로의 파우스트 탄생은 당대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특히 과도한 대학생 수의 증가(1560-1590년 사이 약 30년 동안 입학생 수가 3배로 늘었다고 한다)와 이들을 위한 일자리 부족을 들고 있다. 당연 이들은 사회적 불순분자들이 되었고, 홉스는 이런 상황을 “반역의 핵심은 대학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말로의 파우스트는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탄생한 개인주의적 인물이다. 그의 계약과 환상, 그리고 영혼 파멸도 이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일찍이 T.S 엘리어트는 괴테가 햄릿을 ‘청년화’했다고 비난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은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면 설사 어떤 판본에 햄릿이 40대로 설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그는 여전히 청년이기 때문이다. 청년(또는 청춘)이라는 개념은 나이에 의해 구분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괴리감(불만감)의 유무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 능력이 자기들에게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불만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부여한 것은 대학교육이다. 그러나 영혼을 담보로 악마와 계약하여 사회를 바꾸겠다는 것은 사실상 절망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많은 우울증 환자들과 말로의 파우스트, 그리고 버턴의 저작은 결코 따로따로 논의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버턴의 저작을 셰익스피어와 말로가 활약한 영국의 르네상스 시기에 대한 연구서로 읽을 수 있으며, 그것은 새로운 국가의 창조라는 유토피아론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숫자로 치자면 영(zero)이나 다름없지요.”(84쪽)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고백을 플로베르의 <감정교육>과 슈니츨러의 <여명의 도박>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어떤 절망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턴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것을 절망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익살로 비틀어버린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데모크리토스가 살았던 시대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보다 웃기는 일이 더 많다.”(51쪽)

 

-버턴의 작품은 나에게 라블레 소설을 연상시킨다(*최근에 라블레의 <팡타그뤼엘>이 연속해서 번역/출간되고 있다). 통찰력 있는 주장과 허무맹랑한 논지전개 사이에서 끝없이 조롱하고 치켜세우면서 끝없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의 입담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독자는 나그네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치료하긴 했던 것일까? 만약 치료했다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사실 그는 말로처럼 극단적으로 절망하여 악마와의 계약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학자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울증을 인간의 본질로 확장시켰다.

 

-“모든 인간은 우울증환자다.” 이것은 인간은 누구나 병자라는 것이다. 유럽 르네상스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을 놓치면 반쪽자리 이해에 그치고 만다. 엄밀히 르네상스란 인간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발견과 찬미가 아니라, 인간의 병적 기질에 대한 발견을 의미한다. 버턴에 오게 되면 ‘사랑’도 ‘신앙’도 병일 수밖에 없다. (유럽의 마냥사냥이 맹위를 떨친 게 바로 르네상스 시기였다는 점을 잊지 말자. 또 사실 마녀기질이란 우울증과 관계가 있다: 112-113쪽 참조)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버턴이 바로 이와 같은 병 속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는 병이 없다면 ‘면역체계’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즉 만약에 인간에게 병이 없었다면 건강이라는 것 자체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신앙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과 고난을 당한 자만이 신을 알게 되며, 만약 그가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그는 악행을 반복하다가 영원한 파멸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를 좀더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오로지 우울증을 겪은 사람만이 유토피아를 꿈꾸게 된다는 말이다.

 

 

 

 

 

 

 

 

-1964년 장 로베르 시몬은 “버턴의 유토피아가 유토피아문학사 연구가들에 의해 왜 무시되었던 것일까?” 하는 물음을 던졌다. 피에르 메스나르는 이 책임을 방대한 저서 속 일부분에 해당되는 부분을 무시한 독자에게서 찾고 있으며, J 막스 패트릭은 유토피아상을 상상력이 넘치는 소설적 취향 속에 집어넣은 저자 자신의 실책에서 찾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논의를 비추어 본다면, 누구의 말이 더 타당한지는 쉽게 짐작가능하다. 실제 버턴의 유토피아론을 읽다보면 놀라운 점은 그의 유토피아론이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유토피아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그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공상성을 비판하며, 실현가능한 국가를 그리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게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인간은 본시 생각이 모자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결과는 같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오.”(47쪽) 그리고 법과 정치의 중요성과 그 기능을 정확히 통찰하고 있다. “다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것이 정치다.”(82쪽) 또 필요악으로서의 전쟁도 긍정한다. “이 세상에 전쟁하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다. (...) 저 세상에서나 살 사람이다.”(57쪽) 다분히 과장되고 혼란스러운 버턴의 저작 속에서 적어도 유토피아론 만큼은 냉정하게 서술되어 있는 셈이다.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공직이 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 다음은 군인인데, 왜냐면 군인의 임무가 한 시대에 국한된다면, 학자의 임무는 영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철인 통치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견해 자체는 버턴 자신의 시대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버턴은 학자들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을 ‘슬픈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학문 탐구는 속세의 이익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돈이 있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한탄한다.


"대학에서 문학이나 수학, 또는 철학 같은 순수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손해이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도 받지 못하고 후원자도 얻기 힘들고 어리석은 일인가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약삭빠른 학생들 가운데는 예술이나 역사, 철학이나 언어학과 같은 순수학문들을 그저 식탁에서 식사하는 자리에 알맞은 유쾌한 장난감이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미는 장식품 정도로 옆으로 밀어놓고, 그 대신 법률, 의학, 그리고 신학과 같은 현실적이고도 수지맞는 학문을 공부하여 먼저 충분히 돈을 벌고 나중에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 돈을 계산할 줄 안다면 족하지 따로 수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소유한 토지의 크기를 아는 사람은 이미 지리 공부는 다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알고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바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뛰어난 신학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망원경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다른 위대한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과 성과에서 나오는 광휘를 자기에게 비출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일자리를 마련할 도구를 혼자서도 마련할 줄 하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기술자다."(143쪽)

 

 

 

 

-버턴이 말하는 ‘우울증(멜랑콜리)’는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과는 차이가 있다. 그가 말하는 ‘우울증’은 매우 넓은 의미로(때로는 인간본성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문맥에 따라 여러 레벨로 사용된다. 따라서 그 세부적 문맥과 더불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자의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에서 버턴은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첫째 ‘혼자-있기’가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말과, 둘째 우울증이 ‘늙음(구체적으로는 중풍)’과 관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찍이 루소는 물 속에 빠진 아이를 본능적으로 구하려는 마음(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괴물’이라고 말했다. 흔히 프랑켄슈타인으로 대표되는 ‘괴물’의 계보(오늘날 우리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를 말할 때 이것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두 어불성설이다. 또 많이 지적되는 것이지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처녀작이 <노년>이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어떤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는 이들, 그들은 사실상 애늙은이이자 괴물들로 어떤 절망적 상태를 의미한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오늘날의 소설들이 다루어야 괴물들은 말 그대로 기괴하고 섬뜩한 장난감 같은 괴물들이 아니라(내면 없는 비평가들은 이것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지만), 바로 오늘날의 룸펜들이다.

 

-유토피아는 우울증(멜랑콜리)의 증상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유행어가 된 수많은 ‘멜랑콜리’ 중 유토피아가 부재하는 멜랑콜리는 모두 가짜이다. 멜랑콜리는 필연적으로 유토피아라는 면역체계를 만들어낸다. 만약 오늘날이 멜랑콜리의 시대라면 오늘날이야말로 유토피아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라 전쟁이다(*모두가 룸펜이 아닌 이상 '름펨의 시대'라거나 '멜랑콜리의 시대'란 말에는 다소간에 과장이 포함돼 있다.하지만, 이 글이 대학원신문에 게재되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멜랑콜리가 요구하는 상상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룸펜들에게서만 가능하다(*룸펜의 사회학적 인종은 '니그로'이다). 다시 말해, 이미 죽어버린 문학은 로망스 작가나 내면 없는 비평가가 아니라, 오직 전쟁을 꿈꾸는 룸펜들에 의해서만 되살아날 수 있다. 모든 것은 0(zero)에서 나온다. 만국의 룸펜들이여! 상상을 멈추지 말라.

 

06. 06. 1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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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6-16 19:18   좋아요 0 | URL
원문과 로쟈님의 논평이 좀 헛갈리네요.다른 페이퍼에서의 "강조와 군말"과는 또 달라서요. 마지막 문단에서 보이는 글꼴로 쓰인 것들이 로쟈님의 것이죠? 로쟈님이 강조나 코멘트에 색깔을 넣는 것은 꺼려진다고 하신 거 같은데 일관되게(괄호에 넣거나 하는식으로)쓰였으면 합니다.

로쟈 2006-06-16 20:58   좋아요 0 | URL
아직 '강조와 군말'을 달지 못했는데요.^^ 다른 일들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twoshot 2006-06-16 21:05   좋아요 0 | URL
허걱...이런... "인용문에서의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이 부분이 있어서 열씸히 찾았건만...그럼 '강조와 군말' 기다리겠습니다. 날도 더운데 얼굴만 팔고 가네요.-.-

사샤 2007-05-01 02:12   좋아요 0 | URL
룸펜 후배 울고 갑니다!
 

금요일자 한겨레의 책-지성 섹션을 챙겨보는 편인데, 가끔 '아깝다 이책'란에 눈길이 오래 머물곤 한다. 오늘도 그러한데, 작년 11월에 출간된 책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에 대해서 출판사 기획실장 임병삼씨가 쓴 글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었던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왜 다루지 않았을까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여하튼 초판의 절반 정도가 창고에 남아있다고 하니까 책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뒷북치는 기분으로 임병삼씨의 글과 함께 언론의 리뷰 두 편, 그리고 구로사와의 영화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소개 영화평 하나를 차례로 옮겨놓는다.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나대로의 '자료집성'이다. 

 

한겨레(06. 06. 16) 전화가 뜸한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부천에 산다는 독자였다. <데르수 우잘라>를 감동 깊게 읽었고 이런 책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단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다른 책이 국내에 나왔는지, 없다면 갈라파고스에서 낼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잠시 머뭇거리자 왜 책이 잘 안 팔리느냐면서 그렇다면 자기라도 열심히 ‘입선전’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 책을 내고 여러 사람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서점의 어느 독자는 리뷰란에 이 책을 보고 왜 자기가 울었는지를 독자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이 책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출판동네 15년이 넘지만 낸 책을 잘 보았다는 독자 전화를 받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쯤되면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또다른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책들 때문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초판 2000부를 발행해 반년이 지난 지금, 초판의 반 가까운 부수의 재고가 오늘도 독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 대해 러시아의 대문호 고리키는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하의 책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과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풍부한 자연묘사와 특유의 표현력에 저는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귀하의 친구였던 데르수는 이제 더는 ‘짐승의 발자국을 뒤쫓는 야만적인 사냥꾼’이 아닙니다.그는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심판자이며,또한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예술의 본질’을 일깨워준 선구자입니다.귀하의 삶에 이런 친구가 있었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과 교감했던 원주민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의 삶을 그린 논픽션이다. 지은이 아르세니에프는 러시아군의 극동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의용병 부대의 지휘관이며, 러시아 극동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며 작가였다(*사진은 저자인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 우잘라의 초상을 담은 소련의 우표). 당시의 의용병 부대는 수렵과 탐사가 주임무로, 오지를 수색할 때가 많았다. 전투훈련 대신 시호테 알린 일대와 연해지방의 지형 및 도로를 조사했으며, 전시에는 정찰과 길안내를 맡았다. 이 책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데르수 우잘라가 1902년부터 1910년에 걸쳐 아르세니에프의 탐사대와 함께한 나날들, 그리고 그가 총과 돈을 노린 러시아 사람에게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데르수는 항상 사냥해온 것을 이웃과 똑같이 나눠가졌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고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소위 문명화된 인간에게 퇴화된 능력을 어디까지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복과 승리 대신 공존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야생의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은 키플링이 쓴 <정글북> 혹은,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와 비견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5년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데르수 우잘라>를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모스크바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둔 성공회대학 신영복 교수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수업에서 `사회는 우직한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나아간다’는 교훈을 주고싶다”며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 때문에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가르침을 전해 주려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데르수 우잘라’야말로 신영복 선생님이 말한 그런 사람의 전형이 아닐까. 

동아일보(05. 11. 26) 차갑고 조용한 밤이었다. 데르수는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계곡을 타고 조잘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이 어제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마른 풀은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탄한다고 말했다. 데르수의 모습이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신비롭게 비쳤다. 어둠 저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푸른 달빛을 닮아 있었다. 이 야만인은 하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무슨 원시적인 종교가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매번 그의 설명은 싱거웠다. 별이 뭘까? “저기 별 떴다. 보면 된다.” 달은 뭘까? “눈 있는 사람. 달 본다. 저게 달이다.” 그러면 하늘은? “환할 땐 파랗다. 캄캄해지면 까맣다. 비 올 때 흐리다….” 무한함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허무의식, 그것은 문명인만이 갖고 있는 것일까.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 그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시베리아의 원주민 고리드족의 후예다. 생명이 생명으로 대접받던 원시의 나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냥꾼이다.

-데르수는 1902년부터 저자가 이끌었던 러시아 극동탐사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수렵부대의 지휘관으로 있던 저자는 당시 지도상의 빈칸으로 남아 있던 연해주 시호테알린 산맥 중부지대를 훑었다. 저자는 데르수와 동행하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와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는 원시인의 삶의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이다.

-평생을 숲과 함께 살아온 데르수는 아무 욕심이 없었다. 사냥을 하면 이웃과 똑같이 나눠 가졌고, 얼룩바다표범과도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짐승을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잉크’라는 말은 몰라 ‘더러운 물’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10년에 걸친 탐사가 끝나자 데르수를 데리고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병들어 더는 숲에서 혼자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영혼은 갑갑한 문명을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수도요금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쳤다! 물마시고 돈 준다! 강에 돈 안 줬다!” 데르수는 아무르 강을 떠올렸다. “거기 물 많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조금씩 깨달아 갔다. 그는 도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호랑이가 아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도시보다는 춥고 배고픈 숲이 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르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2주일 뒤 변시체로 발견된다. 강도의 소행이었다. 숲에서 태어난 데르수는 결국 숲에 묻혔다. 커다란 시베리아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그의 무덤가에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후르르 날아들었다. “의젓한 사람!” 데르수는 이 새를 그렇게 불렀었다….

한겨레(05. 11. 25)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펴냄)는 1907년 6월22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지도상의 빈칸이었던 연해주 시호테 알린 산맥 동쪽지역을 탐사한 기록이다. 원제는 <우수리 지역의 밀림에서>(*사진은 러시아어 원본). 지은이는 러시아 극동군 소속 정찰부대 지휘관.

-군용 보고서와 별도로 1923년 출간된 이 책은 출간당시 고리키로부터 풍부하고 꼼꼼한 자연묘사와 표현력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75년, 일본인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눈에 띄어 ‘데르수 우잘라’라는 고리드족 출신 원주민 안내자한테 초점이 옮겨와 영화로 만들어진다. 2005년 한국 독자한테도 사정은 비슷하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는 따위는 데르수의 신기한 면모일 따름. 그는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 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물고기로부터 그곳에 야영을 하지 말라는 말 뒤에 정체불명의 야수가 스멀거렸다든가, 바다표범이 인간의 머릿수를 세고 있는 것에 분개한다든가, 설득하여 물러가는 호랑이를 쏘아 죽인 뒤 가슴 아파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의 진면목은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 어느 날 저녁, 지은이가 모닥불에 던진 찌꺼기 고기를 끄집어내면서 “우리는 내일 떠나지만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온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은 너구리, 오소리, 까마귀, 쥐, 개미였던 것. 금을 찾다가 굶어죽은 밀림속 조선인 인골, 화전과 담비 사냥으로 물레방아와 맷돌을 이용하며 사는 이주 조선인 대목에서는 일제하 유랑했던 윗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씨네21(02. 09. 12) 구로사와 낯설게 보기, <데르수 우잘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65년작 <붉은 수염>은 두 주인공이 영광스럽게 걸어들어가는 진료소의 문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은 구로사와의 빛나던 한 시대가 이제 그만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로 구로사와는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실의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폭주 기관차>나 <도라! 도라! 도라!> 같은 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연이어 불발로 그쳤는가 하면, <붉은 수염> 이후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야심찬 ‘실험작’ <도데스카덴>(1970)은 (상업적)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로사와는 그새 일본의 제작자들로부터 흥행성이 없는 영화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래서 좀체 영화제작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구로사와에게 길을 터준 것이 바로 소련의 영화제작사 모스필름(Mosfilm)이었다. 모스필름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은 구로사와는 조감독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프로젝트- 러시아 탐험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를 꺼내놓았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열망까지 채워주며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들어진 <데르수 우잘라>(1975)는 침체에 빠져 있던 그의 70년대를 그나마 완전한 불모의 시기가 되지 않게 막아주었다고 기록될 만한 영화다.

-영화는 1910년, 아르세니에프(유리 살로민)라는 전직 군인 겸 탐험가가 옛 친구 데르수 우잘라(막심 문주크)의 묘지를 찾아와 데르수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902년 지형탐사차 시베리아의 우수리 지방에 온 아르세니에프는 몽골계 사냥꾼 데르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데르수가 낯선 땅에서 고생하던 아르세니에프 일행의 안내인 역할을 맡으면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서로간의 신의를 쌓아간다. 아르세니에프 일행이 탐험 임무를 완수하자 두 사람은 헤어지고 1907년에 재회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본 사람들에게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치고는 아주 ‘낯설다’는 인상부터 주게 될 그런 영화다. 이건 이 영화가 구로사와의 영화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외의 지역에서 일본인이 아닌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구로사와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이한 양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특징들, 즉 갈등들이 정묘하게 엮여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스토리구조라든가 역동적인 시각적 스타일 같은 것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유의 영화인 것이다.

-단적으로 이것은 여느 구로사와 영화들처럼 관객을 적극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참여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짝 물러 선 자리에서 다소 초연한 태도로 보게 만드는 ‘관조의 영화’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비주얼 설계면에서나 연기면에서 과장, 장식 혹은 기교를 거의 배제한 ‘자연스런(혹은 자연주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데르수 우잘라>가 구로사와적인 표지를 완전히 지워버린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우리는 여기서도 구로사와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사제관계라는 모티브가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 대해 확실히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데르수의 자발적인 선의는 아르세니에프의 감탄과 신뢰를 사기에 충분하고 심지어 데르수의 타고난 용기와 총기는 아르세니에프의 생명마저 구해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붉은 수염>에서 결국에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그것과는 달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제관계이다.

-이건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데르수는 ‘자연’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고(주위의 모든 것, 태양, 달, 바람, 물, 불 등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면 측량일을 하는 아르세니에프는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문명의 침입을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에 동화하기보다는 종국에는 그의 운명에 ‘탄식’을 던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여하튼 구로사와는 아르세니에프가 몹시 그리워하는 어조로 “데르수…” 하고 던지는 두번의 탄식을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해놓음으로써 데르수가 체현하는 그 가치에 대해 끔찍이도 향수를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내비친다. 즉 <데르수 우잘라>는 데르수가 대변하는, 지금은 상실했고 또 사라져버린 어떤 아름다운 세계와 그 가치에 대해 애조띤 밭은 탄식을 던지는 영화인 것이다. 그것이 너무 진부하거나 보수적이지는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말이다.(홍성남)

0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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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몇 안되는 책이었습니다.
로쟈님의 수고로움의 덕택에 얌체처럼 낼름 퍼 가요.

로쟈 2006-06-1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관해서라면 파란여우님이 '원조'이시죠.^^
 

내일 아침 신문들을 검색해보다가 '서울대 2008 논술 예시문항'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예시문항 중 "인문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가에 대해 그 이유를 들어 논술하시오"란 문제가 그래도 흥미를 끌어서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제시문의 출처자 진 캐리의 <지식의 원전>이라고. 개인적으론 박사과정 수료 후에 몇 년간 중고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데, 아직도 '가락'이 남아있는지 확인도 해볼 겸.

 

 

  

 

-과학이 무신론이고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견해는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하는 ‘문화인’들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채질하곤 했다. 이 두 가지 반감의 원인이 타당한 것인지는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과학자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이것이 지루한 과학과 극단적 기독교의 만남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같이 저명한 과학자가 분자구조를 이용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것을 비웃을 수는 없다(*물론 모든 과학자가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시도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물론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도 많이 있다. 동물학자인 도킨스는, 모든 종교는 무한히 복제되는 정신적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문화적 밈의 일종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확고한 유신론자들의 관점에서는 이 모든 과학적 발견 역시 신에 의해 계획된 것을 발견한 것이므로 종교적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학의 본질을 무조건 비종교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나 종교학자가 모두 진리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그래서 신학이 포퍼 등이 말하는 '반증가능성'에 개방되어 있는지?). 과학이 물리적 우주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라면, 신학은 신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자들이나 혹은 어느 정도 신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고 우주를 통해 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신과 우주가 근본적으로는 뚜렷이 구분되는 대상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경심리학자인 리처드 그레고리는 ‘과학이 전통적인 믿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변화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종교개혁운동은 전통적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과학은 증거에 의존하는 반면 종교는 계시된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들 간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들에게는 계시된 사실이 바로 증거이다. 지속적으로 신에 관한 증거들에 대해 회의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신학을 과학이라고 간주하더라도 결코 모순은 아니다. 사실 그것을 신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과학적 연구가 몇몇 과학자를 신에게 인도했던 것처럼, 신학연구가 그 신학자를 무신론자로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하지만, 그때의 무신론자를 우리는 여전히 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과학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이다. 과학은 지식의 범주에 있지만, 정치는 견해의 범주에 속한다(*견해/의견의 영역으로서의 정치는 진리와 무관하다는 얘기이다. 한데, '신학정치론'은?). 정치는 좋아하느냐 마느냐를 문제 삼는 분야로, 단지 말잔치를 통해 진리의 위치로 상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치는 인물과 웅변술에 의존하고, 사회계층과 인종, 그리고 민족을 핵심적인 요소로 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과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정치는 갈등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적대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와해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즉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이는 세상에서는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따라서 전체주의에는 정치가 부재한다. 정치는 '민주주의'를 범형으로 갖고 있기에).



-반면에 과학은 대립이 아닌 상호 협조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물론 과학사는 지독한 논쟁과 고뇌, 그리고 반대이론의 파괴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의견일치에 도달하면 과학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한다(*종교 또한 그러한가?). 또 다른 핵심적인 차이로 정치는 인간을 구속하려 든다는 점이다. 정치의 주된 관심은 권력의 집행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전쟁, 학살, 테러 등)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가끔 실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전쟁까지야 불사하지 않겠지만 테러 정도라면?)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정반대 의미의 과학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실제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 실제로는 다른 모든 것처럼 과학도 정치에 의해 유린되고 왜곡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정치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의 비정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과학이 초윤리적(超倫理的)이라는 비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읽다 보니까 아주 나이브한 견해이다. 과학적 탐구 자체는 비정치적일지 모르지만, 과학자는 지극히 정치적이지 않은가? 한편, 과학이 초윤리적인 만큼 종교 또한 초윤리적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과학의 초윤리성을 과학의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과 순수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편, 정치는 윤리로부터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정치는 창자 속의 촌충처럼 윤리성 혹은 개념의 선악을 규정함으로써 발전해간다. 따라서 과학이 초윤리적이지 않고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이 또한 정치에 대한 한 가지 견해, 혹은 편견 아닌가? 정치에서 문제되는 것은 도덕적/윤리적 알리바이이지, 도덕/윤리 자체가 아니다. 정치는 마키아벨리즘의 영역이다).

 

 

 



-윤리적인 용어로 냉정하고 논리적이며 비인간적인 인생의 접근방식을 종종 ‘과학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과학적 방법을 윤리적 관점으로 단순히 연결시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은 그것이 냉정한 것이든 아니든 윤리적 관점과의 연결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동일한 과학적 명제들이 매우 상반되는 윤리적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인간을 원숭이와 관련짓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격하시키는 것처럼 비추어졌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브루스 프레데릭 커밍스는 이 진화론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요컨대, 과학자도 춤을 춘다는 것. 한데, 작가 카잔차키스는 진화론 때문에 가출했다).



 

 

 

-나로서는 내가 다른 동물들과 가까운 친족관계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나의 유인원 조상들을 선망하며, 그들이 자랑스럽다. 내가 한때는 숲 속에 사는 무수히 많은 털을 가진 유인원이었으며, 바다의 한천류로부터 활유어, 물고기, 공룡, 그리고 원숭이를 거치는 지질학적 시간대를 통해 지금의 내 틀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누가 이런 생각을 에덴동산에서 어슬렁대는 한 쌍의 남녀와 바꾸려 들까?(*과학고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어디로 갔는가?)



 

 

 

-과학자 개개인은 연구를 추구하는 윤리적 혹은 초윤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그들의 발견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그 발견이 발견자의 동기와는 전혀 무관하게 옳은 것이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신학/종교 또한 그러한가?). 데이비드 보다니스처럼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 사이에 어떤 관련성을 찾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밝혀낸 사실의 과학적 신뢰성은 인간을 불신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강화되지도 혹은 약화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과학이 윤리나 종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왜 독자들이 구태여 과학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과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지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지식에의 의지는 우리를 과학으로 이끈다?). 이에 대한 반대는 무지일 뿐이다. 콜리지는 이러한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최초의 과학자는 관찰대상이 그에게 식량이나 피신처, 무기, 도구, 장신구, 또는 장난감을 제공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안다는 것의 희열을 찾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었다(*아르키메데스 이후에 스트리킹한 사례를 더 들어보지 못했다. 그 많던 희열은 다 어디로 갔는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된 무지의 크기도 커졌다(*'부정적 발견의 시대'라는 표현은 이러한 무지의 확대도 내포한다. 종교니 윤리니 들먹이지 말고 차라이 이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뻔했다).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만 교육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20세기 후반의 현대적 지식 대부분에서 몽매한 암흑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무지의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의 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형태의 무지한 지식층이 생겨난 것이다(*필자가 빼먹고 있는 지적은 전문화되어 있는 과학 또한 이러한 무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층 중에서 그래도 나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통렬히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20세기 미국의 뛰어난 문학비평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트릴링은 ‘근대사의 특징적 성취라고 불리는 상상적 형태로부터 배제됨으로써 지적 자기만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고 탄식했다(*트릴링의 책은 번역된 책이 한권도 없는 것인가? 참고로 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학위논문이 트릴링의 소설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좀더 최근에는 과학에 대한 무지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기도 했는데, 과학을 지구 오염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녹색운동이 이러한 부분에 기여하였다. 또한 과학을 남성중심적 권력의지의 발현으로 몰아세우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이다(*필자의 비판은 '다른 과학'에 대한 주장인 듯하다).

-이러한 비난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을 포기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과학이 정치에 의해 잘못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공해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환경문제의 해결도, 성차별의 문제도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가장 기본적 레벨에서조차 위험에 처한 식물이나 동물을 조사하고 보호하며 보존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과학적 노력에 의해서 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과학은 목적합리성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는가?).

 

 

 



-과학이 남성의 목적이나 태도에 의해 지배된다고 불평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여성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배타적 성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과학교육과 연구 분야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일 것이다(*이러한 판단은 '과학적 판단'인가?). 이러한 관점은 가장 강경한 여권운동가 중 한 사람인 에블린 팍스 켈러의 저서 <성과 과학에 관한 고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수리생체물리학자였고,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인 바버라 맥클린톡의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켈러는 과학적 지식이 ‘남성적 발현의 결과’라는 식의 파괴적인 표현을 쓰기 보다는 오히려 이상적인 ‘공동의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등 과학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준 책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다. 이 책으로 인해 이성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이 실제로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문화적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객관적 진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에 의해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이 확신을 얻게 되는 과정에 관한 쿤의 설명은 그 개념에 대한 진위 여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대개의 과학자들은 쿤의 주장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평가절하하는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은 무지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미화하기까지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문학이나 예술계 학생들이 그들의 학창시절에 배운 미미한 과학적 지식마저도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의 한 문학 세미나에서 나는 존 던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그가 이 시를 쓴 1612년에는 아무도 피가 어떻게 심실에서 다른 심실로 이동하는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세미나에서 학생들이게 실제로 피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학위과정의 막바지에 와 있는 30여명의 매우 지적인 학생들이 앉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바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학생만이 머뭇거리며 일어나 삼투현상 때문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피가 몸속을 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두 문화' 문제의 반복적인 제기이다).

-매년 영국의 대학에서 문예 분야의 강좌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수강신청자에 비해 미미한 숫자의 과학계 강의 수강신청자들을 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러한 점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예 분야가 쉽기 때문에 더 인기가 있으며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과학계 강좌에서 요구하는 지적 수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일반적이다(*일부 대학은 문예계열 학생들에게도 자연과학도와 똑같이 과학과목을 이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각 대학이 가진 커리큘럼이며, '과학적 지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우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피터 메다워 경의 생각을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메더워는 1953년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과 함께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유명한 젊은 과학자 제임스 D. 왓슨의 경력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왓슨과 같은 재능 있고 천재성을 가진 학생들이 문예계열의 연구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분자생물학의 첫 세대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문학부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왓슨 수준에 버금가는 젊은 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총명하고 창조적이며 똑똑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왓슨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똑똑하면서도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를 아는 현명함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지식을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과학자들만의 장점이며, 그들은 이러한 장점을 능력에 관계없이 향유하고 있다."(*왓슨은 천재적인 과학자이지만, 좋은 성격의 과학자는 아니다. '좋은 성격'이 과학자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처럼, 과학적 지식도 인문학도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똑똑하다는 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또한 이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과학적 연구에 의해 일어난 위대한 사회적 혁명 중의 하나는 배움의 민주화였다. 어느 누구나 통상의 상식과 보통수준의 상상력을 복합시킬 수만 있으면 창조적인 과학자가 될 수 있다(*같은 논리라면 어느 누구나 창조적인 시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넓힐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면, 그는 적어도 행복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더워의 주장, 특히 과학자들은 현명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가 전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들어야만 했다. 한편 과학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핵심적 메시지는 바로 이 부분이다.

-영국이 경제난국에 처하지 않기 위해 과학을 계속하여야 한다는 식의 얘기는 젊은이들을 과학 분야로 끌어들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과학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얘기도 마찬가지겠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글을 통해 메더워가 말하는 기쁨과 자기만족이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계통의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행복을 위한 과학? 이게 정말로 유인이 되는 것인지? 더불어, 기쁨과 자기만족은 초과학적이다. 즉, 과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니 왜 하필 과학을?).

-만약 독자들이 문학교수인 내가 무슨 생각으로 각종 지식 원전들을 한데 모으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 그리고 콜리지의 말처럼 ‘알게 된다는 것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지식의 원전>이란 편저의 서문인 듯한데, 사실 이 한 문단으로 족하다. 앞부분은 장황한, 게다가 재미없는 서두는 '무슨 생각'으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 문학교수에게 문학적 자질이 요구되는 건 아니더라도 과학적 논리는 필요하다는 걸 이 '싱거운' 서문은 보여준다. 어쨌거나 인문학도에게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서란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왜 그것뿐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06. 06. 16.  

P.S. 논술의 요체는 한 가지이다. '말이 되게' 쓰는 것. 즉, 말(語)를 가지고 썰(說)을 푸는 것, 성설(成說)하는 것이 논술이다. 어불성설이 난무하는 담론의 시장에서 '성설'은 '성인(成仁)'만큼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시험'을 보며, 그래서 '장사'가 된다. 논술로 먹고 사는 이들의 기쁨이요 자기만족이라 하겠다...  

 

 

 

 

P.S.2. 쓰다보니 좀 멋쩍게 됐다. 조금 만회하기 위해서, '인문학과 과학'이란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책 몇 권을 꼽아본다. 이 책들에서 혹 '기쁨과 자기만족'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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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6-16 01:52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을 아주 소박하게 표현하면....
"연역이 제풀에 날아가는 것을 붙잡아 놓기 위한 추로써의 귀납이 필요하다." 입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하면 논술 빵점 맞나요? ^^a

아, 또... "연역의 불길이 꺼지지 않게 하는 소재로서의 귀납도 필요하다."
두 문장 됐어요.

비로그인 2006-06-16 06:36   좋아요 0 | URL
자연과학도에게 인문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로쟈 2006-06-16 11:35   좋아요 0 | URL
역시나 기쁨과 자기만족 때문 아닐까요?^^

네모선장 2006-06-17 08:32   좋아요 0 | URL
과거의 수학자들 중 상당한 학자들이 철학자였습니다.
자연과학의 이론이 그냥 그 분야의 학문만 한다고해서 깊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이론은 대부분 자연현상 속에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도,자연과학도 모두 서로 어떤식으로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서로의 사고방식을 배우며 더 멋진 생각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참고로 전 수학교사 입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데 단지 기쁨 자기만족만은 아니예요.^^

로쟈 2006-06-17 13:17   좋아요 0 | URL
물론 다른 유익들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죠.^^

2006-07-04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04 11:15   좋아요 0 | URL
**님/ 생색은 '혼자' 다 내시네요.^^
 

오늘자 한국일보(06. 06. 14)의 연재물,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김윤식 서문집>을 다루고 있다. 제목은 "나는 '쓰다'의 주어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지만, 서문이란 대표적인 '곁다리텍스트'이며, '곁다리텍스트'는 이 카테고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김윤식 서문집>(2001, 사회평론)은 놀라운 책이다. 그 놀라움을 낳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이라기보다 형식이다. 아니, 텍스트 너머에 어른거리는 긴 세월의 고된 글 노동에 대한 상상이다. 이 책은 국문학자 김윤식(70)이 1973년부터 2001년까지 낸 책들의 서문을 모아놓은 것이다(*물론 이후에도 그는 많은 책, 많은 서문을 썼다). 어느 프랑스 비평가는 한 책을 이루는 여러 물질적 요소 가운데 본문을 뺀 나머지(서문이나 발문, 헌사, 판권 난, 저자 소개, 표제, 부제, 제사, 차례 따위)를 곁다리텍스트(파라텍스트)라 부른 바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서문집’의 텍스트는 곁다리텍스트만으로 이뤄진 텍스트다.(*나의 '곁다리텍스트를 위하여' 참조) 

-도대체 한 저자가 제 책의 서문만으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자면 얼마나 많은 책을 써야 할까? 서문의 길이도 천차만별이고 책의 두께도 그럴 테니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김윤식 서문집>을 기준으로 어림짐작해보자면 100권 안팎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저자가 낸 책 95권의 서문이 묶였다. 그 모두가 순수한 저서는 아니다. 책 끝머리에 모인 7편의 서문은 역서와 편서의 서문이고, 나머지 서문 88편에도 아주 드물게 같은 책의 개정 증보판 서문이 끼여들긴 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빼도 이 책에 제 서문을 빌려준 김윤식 저서는 80권이 넘는다.

-그것만해도 보통 저자라면 엄두도 못 낼 양이다. 그런데 김윤식은 2001년 이후에도 기운차게 책을 내고 있다. 그러니까, 2001년까지의 저서 가운데 ‘김윤식 서문집’에 그 이름이 빠진 책이 없다 쳐도, 김윤식이 지금까지 쓴 책은 100권에 바짝 다가간다. 거기에 편서와 역서를 보태면 김윤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은 100권이 훌쩍 넘는다. 이 책들 대다수가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라 학문이나 비평의 영역에 속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김윤식 서문집>의 서문, 다시 말해 서문들의 서문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모으면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생각에 책의 서문이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물론 이 표현은 겸양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서문을 곁다리텍스트로 여긴 프랑스 비평가의 생각과 통하는 데가 있다.

-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앞에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붙이면서, 저자는 1962년 ‘현대문학’ 8월호에 실린 자신의 ‘천료(추천 완료) 소감’을 옮겨놓고 있다. 문학청년의 치기가 묻어나는 그 소감에는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그의 지난 반세기 글 노동을 지탱한 것이 바로 ‘눈에 불을 켜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었을 테다.

 

 

 

 

-이렇게 많은 글을 쓴 저자가 글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혼자 하는 작업이다. 한밤중 원고지 앞에 앉아 있노라면, 그것이 우주만큼 넓고 아득하여 절망한다.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칠 곳도 없다. 우주가 나를 가두었던 것. 이 속에서의 작업은 일종의 게임인데, 상대는 누구이겠는가. 운명이란 이름의 나 자신이었던 것”(<김윤식 평론 문학선>, 1981, 서문).

 

 

 

 

 -김윤식은 말하자면 자신을 상대로 한 그 외로운 게임의 중독자였다. 요즘 젊은 세대 말로 글쓰기 ‘폐인’이었다.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쓰다’의 주어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사가이자 문학비평가다. 다시 말해 그의 방대한 텍스트들은 다른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배열하고 논평하는 텍스트들이다. 그러니,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읽다’의 주어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읽기는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근대’의 표지를 지닌 채 발설된 모든 문학 텍스트를 향했다. 임화와 이상과 김동리가 보여준 이념의 엇갈림도, 이광수에서 신경숙에 이르는 세대의 엇갈림도 김윤식이 보기엔 근대성 안의 엇갈림일 뿐이었다.

 

 

 

 

-‘쓰다’와 ‘읽다’의 붙박이 주어 김윤식에게 소위 ‘명문(名文)’이라는 것은 어떤 뜻을 지녔을까? “명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장이기를 바랐을 따름이다”(<문학사와 비평>, 1975, 서문). 이것이 겸양에서 나온 말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자신이 엮은 <애수의 미, 퇴폐의 미- 재북 월북 문인 해금 수필 61편 선집>(1989)의 서문에서 그가 ‘명문’에 대한 경멸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말해볼 수는 있습니다. 곧 명문이란 없다는 점. 설사 그런 것이 있더라도 대수로운 것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임화의 ‘수필론’과 서인식의 ‘애수와 퇴폐의 미’가 조금 말해놓고 있지 않습니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말이 있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일이 그것이지요. 말을 바꾸면, 되지도 않는 자기 감정을 질펀하게 노출시켜 남을 감동시키고자 덤비거나 대단치 않은 스스로의 주제를 돌보지 않고 흡사 무슨 도사의 표정을 짓는 짓 따위에서 벗어나, 자기 분석을 겨냥하는 일이 그것이지요. 자기 성찰과 자기 도취의 형식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도 수필이라는 이름의 산문 형식이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진술은, 소설문학에 대한 그의 다른 발언, 곧 “(문학작품에 대한) 절대적 평가기준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그 정답이다. 언어의 밀도가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김윤식의 소설 현장 비평>, 1997, 서문)는 말과 통한다.

-이 기준들은 보기에 따라 꽤 엄격하다. 김윤식의 문장은 이 기준들을 넉넉히 채우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문제는 명문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중기 이후 텍스트에서 사뭇 가시기는 했으나, 김윤식 텍스트는 ‘문법에서 벗어나는’ 문장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그의 웅장한 학문적 성채의 적잖은 부분은 읽어내기 힘들만큼 조악한 한국어를 벽돌로 삼아 세워졌다.

 

 

 

 

-한 세대에 걸쳐 김윤식이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문학 교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법에 대한 그의 이 대범함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직업적 나태였다 할 만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문장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란 무엇이겠는가’, ‘~가 아닐 것인가’ 같은 표현은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자기 도취에 빠진 도사의 표정’에서 얼마나 멀까? ‘언어의 밀도’를 잃어버린 ‘명문’의 허세에서는 또 얼마나 멀까?

-김윤식이 ‘쓰다’의 주어일 뿐만 아니라 ‘읽다’의 주어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의 글쓰기 무게중심이 중기 이후 ‘연구자의 논리’(근대문학 연구)에서 ‘표현자의 사상’(현장 비평)으로 조금씩 옮아가면서, 그 읽기 대상도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대 소설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표현’과 ‘인식’의 완전한 일치”(<작은 생각의 집짓기들>, 1985, 서문)라 스스로 정의한 비평에서 이 원로 비평가는 성실했는가? 아니 그 비평의 전제인 읽기에서 그는 성실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희의 나이에도 이어지고 있는 월평들은 김윤식이 이 시대의 가장 열정적인 소설 독자(가운데 한 사람)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단 한편에서 들추듯, 그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건네는 눈길은 아직 이름을 세우지 못한 작가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격려가 될 테다. 그러나 이 원로의 독서가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는 권위라는 자산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런 트집이 무슨 소용이랴? 20세기 한국문학 텍스트를 김윤식만큼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해 김윤식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도서관 한 구석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텍스트들이, 그리고 그 텍스트들의 저자들이, 김윤식의 손을 거쳐 한국문학사에서 제 자리를 얻었다. <김윤식 서문집>은 그의 이 끝없는 읽기-쓰기의 그림자다. 한국문학은 이 불세출의 독자-저자에게 큰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짐작에 그의 저작을 30-40권쯤 갖고 있는 나 또한 그에게, 혹은 한 '주어'에게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 

06. 06. 14.

P.S. 고종석이 '또다른 다산(多産) 저자들'로 꼽고 있는 고은과 강준만에 대한 군말도 마저 옮겨온다.

-다산성에서 김윤식과 겨룰 만한 저자가 한국에 있을까? 있다.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시인 고은(73)과 언론학자 강준만(50)이다. 고은 저서의 저자 소개에 ‘저서 1백여 권’이라는 표현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고은 자신이 이미 그 무렵부터 저서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해온 데다, <김윤식 서문집> 같은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인보>나 <백두산> 같은 서사시들의 낱권을 각각 한 종으로 친다면, 고은의 저서가 1백 종이 넘는 것은 확실하다. 저서의 다수가 시집인 터라, 글자수로 따져서 고은이 김윤식과 겨루기는 어렵겠지만.

 

 

 

 

-고은의 산문은 한 시절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김윤식이 ‘명문’과 관련해 빈정거린 ‘도사의 표정’과 ‘자기도취의 형식’을 짙게 지니고 있었다. 또 청년 김윤식의 글보다 훨씬 더 문법에 대범했다. 그러나 이 약점들은 고은 특유의 주정적(主情的) 문체 속에서 서로를 지워내며 기이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일종의 강점이 되었다.

 

 

 

 

-강준만은 그 저서 수에서 이미 김윤식을 앞지른 듯하다. 강준만 저서의 적잖은 부분은 자료의 가공/재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점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지만, 그것은 강준만이 김윤식에 뒤지지 않는 ‘읽다’의 주어이자 실증주의자라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강준만이 사실과 현실에 바짝 붙어서 (미시)이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여느 이론가와 달리 대중의 언어를 쓰는 데 대해서도 탐탁지 않은 눈길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이론을 학자들의 닫힌 담론 공간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과 결부시킬 수 있겠다.

-고은 같은 탐미 취향은 없으나, 강준만은 그 대신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한다. 이것은 그 같은 다산 저자에게 드문 강점이다. 강준만의 글은 김윤식이 강조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 있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갖는” ‘자기 성찰’의 글에 가까워 보인다.

 

 

 

 

-문법적으로 단정할 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도 반들반들 닦인 글을 쓰는 다산 저자는 없을까? 있다. 고은처럼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김정환(52)이 그다. 그러나 그의 저술 양이 고은이나 강준만에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름답게 쓰면서 많이 쓰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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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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