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출간도서들 가운데 탐나는 책의 하나는 해럴드 블룸의 <세계문학의 천재들>(들녁, 2008)이다(이게 또 '헤럴드 블룸'이라고 표기해야 하는 모양이다. 대체 무슨 원칙이 있는 건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서양의 정전>과 짝이 될 만한데(유감스럽게도 내겐 박스보관 도서다), '독창성과 초월성, 보편성'이란 기준을 가지고 세계문학사의 천재들 100명을 갈무리하고 있다. 같이 나온 책으로 <헤럴드 블룸 클래식>(생각의나무, 2008)은 마치 서양문학의 '박물관' 같은 모음집이다(물론 블룸이 그 관장이다). 아쉬운 건 아직 블룸의 셰익스피어론(<인간성의 발명>)과 문학론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예전에 소개된 <시적 영향에의 불안>이 절판된 상태다). 하기야 독자수를 고려하면 책이 나오는 게 이상할는지도 모르겠지만...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지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해럴드 블룸 지음, 하계훈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8년 03월 08일에 저장
절판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해럴드 블룸 지음, 손태수 옮김 / 들녘 / 2008년 2월
43,000원 → 38,700원(10%할인) / 마일리지 2,150원(5% 적립)
2008년 01월 27일에 저장
품절
The Western Canon: The Books and School of the Ages (Paperback)
Bloom, Harold / Riverhead Books / 1995년 9월
34,750원 → 28,490원(18%할인) / 마일리지 1,43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8년 03월 08일에 저장

교양인의 책읽기
헤럴드 블룸 지음, 최용훈 옮김 / 해바라기 / 2004년 10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2008년 01월 27일에 저장
품절
원제는 'How to read and why'(2000). 세계명작들에 대한 블룸의 감상법을 '감상'해볼 수 있다. 국역본은 품절상태인데, 번역도 추천할 만한 상태가 아니다...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8-01-27 10:49   좋아요 0 | URL
상품이 왜 다 날아가는 것인가?.. 세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하다니.--;

비로그인 2008-01-27 23:22   좋아요 0 | URL
음.. 혹시 소장판에 클래식으로 분권된 내용이 전부 들어가 있는건가요??

로쟈 2008-01-28 00:02   좋아요 0 | URL
저도 실물을 보진 못했는데, 짐작엔 그렇습니다...
 

이번주는 주목할 만한 신간들이 여느 때 한달치 만큼이다. 그 중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책의 하나는 이마미치 노모노부의 <단테의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8)다. 다음 학기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나로선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노학자로부터 한 수 배우고자 한다. 겸사겸사 신곡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이탈리어 완역본이 네 종이나 나와 있다).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단테 신곡 강의- 서양 고전 읽기의 典範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08년 01월 25일에 저장
구판절판
신곡 - 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8년 01월 25일에 저장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허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2월
19,800원 → 17,820원(10%할인) / 마일리지 990원(5% 적립)
2008년 01월 25일에 저장
품절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8년 01월 25일에 저장
구판절판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 한겨레21에서 절판본에 관한 기획기사를 옮겨온다(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8/01/021015000200801240695053.html). 인문서 절판본과 관련하여 몇 마디 보태기도 한 때문이다(그대로 기사회될 줄은 몰랐다!). 최근 일고 있는 재출간 붐이 저작권법상 계약기간의 주기와 맞물려가는 게 아닌가란 진단과 일본 등지에서의 ‘조직적인’ 절판책 복간 움직임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끈다. 

한겨레21(08. 01. 24) 가혹한 절판의 운명을 거부하라

“우리는 어떤 책이 타고난 절판의 운명에 순응하기만 해야 하는가? 그 운명에 대한 심판을 다시 한 번 붙일 수는 없는가?” 이윤기는 <비밀의 계절> ‘개정판에 붙이는 말’에서 이렇게 썼다. <비밀의 계절>은 이렇게 ‘엄숙한 물음’과 함께 재탄생했다.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은 오랫동안 헌책방 탐사자들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던 ‘절판의 전설’이다. 1992년 까치에서 나왔던 이 책은 지난해 12월 문학동네 장르문학 시리즈 ‘블랙펜 클럽’의 1권으로 재출간됐다. “책은 그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책의 운명은 절판이다, 라고만 하면 왠지 아쉽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로마의 작가 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의 말을 따 붙인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절판본’에서는 ‘절박’하게 느껴진다.

표정훈은 ‘절판 도서 살리기’(kungree.com)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록 ‘그 나름’의 운명이라고는 해도, 절판이라는 운명은 책의 물리적 소멸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가치의 윤리학보다는 효율의 경제학이, 생각의 깊이보다는 생각의 속도가, 역사의 무게보다는 순간의 가벼움을 중시하는 풍토라면, 가혹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되살아날 수 있는 책의 숫자도 그만큼 적을 것이다.”

최근 이 ‘운명’을 거역한 책들의 거대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의 약속> <하늘의 뿌리> <대성당> <황금나침반> <황금노트북> <암스테르담>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핀란드 역으로> <연을 쫓는 아이>….

‘다시’ 플러스 새로운 의미
‘새 생명’을 부여받는 데는 명확한 ‘계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황금노트북> <황금나침반>처럼 ‘황금’ 붙은 세 권짜리 책들이 그렇다. <황금나침반>(김영사 펴냄)은 동명의 영화 개봉을 계기로, <황금노트북>(뿔 펴냄)은 저자 도리스 레싱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나왔다. 길찾기에서 나온 권교정의 만화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1>은 월간 장르문화 매거진 <판타스틱>의 연재 재개와 함께 재출간됐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 펴냄)는 같은 저자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 펴냄)의 반응이 좋자, 2005년 책을 표지갈이해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그러나 ‘재출간’은 나왔던 작품을 ‘다시’ 펴낸다라는 뜻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올 초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하늘의 뿌리>는 각각 고려원에서 1985년, 신구문화사에서 1968년 출간된 책의 재출간본이지만, 번역도 다시 했고 흩어져 있던 작품을 모았다는 의미도 더해졌다. 부커상 수상작인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역시 미디어2.O에서 새로 나왔는데 1999년 현대문학에서 나왔던 작품을 새로 번역한 것이다. 최근 김연수 번역으로 나온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하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전에 나온 집사재의 ‘레이먼드 카버’ 시리즈(1996)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판으로 추정되는) 원본이 불분명한 ‘편집본’이었다면 문학동네에서는 미국에서 출간된 원본대로 펴내고 있다. 집사재 시리즈는 3권으로 끝났는데, 문학동네 시리즈는 여기에 더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김연수의 번역으로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가제)가 나올 예정이다.

다시 내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장단점을 살피고 의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2005년 여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새로 출간하고 ‘예상외’의 반응을 얻었던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의 말이다. ‘스테디셀러 복병’으로 자리잡기까지 ‘출간 결정’은 ‘재고·삼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1996년 까치에서 나온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재출간본은 제목이 살짝 바뀌었다)은 추리소설 동호회에서 “이런 책이 절판이라니 말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던 작품이다. “그래도 좀 망설여졌다. 그런데 김연수씨가 적극적으로 추천을 했다. 그렇게 되고 안 낼 이유가 없었다.” 마음산책은 <스밀라…>에 대한 좋은 반응이 있고 나서 4권의 ‘리메이크작’을 펴냈다. 로맹 가리의 <가면의 생>, 에프라임 키숀의 <개를 위한 스테이크>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그리고 박찬욱의 <오마주>다. 이런 리메이크 작품이 반응이 좋자 마음산책에서는 회의를 할 때 구간본 출간에 대한 논의를 병행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50~100권의 재출간 목록을 뽑아 에이전시에 문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70% 이상이 다시 저작권 계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재출간 붐, 1996년부터 5년마다 주기로?
기획자들에게 “구간을 살펴라”는 자주 이야기되는 ‘기획 원칙’이다. 궁리 출판의 김현숙 편집장도 “최근 옛날 출판 잡지를 뒤지며 잊혀진 책들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인문서 시장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산책자의 김수한 편집주간은 “지난해 인문 쪽 기획의 키워드가 ‘옛날 책을 찾아라’였다. 1980년대 정당한 계약 없이 봇물처럼 쏟아졌던 책들이 인문학의 보고다”라고 말한다. 산책자에서는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문예마당·1994),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민음사·1997) 계약을 맺고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나온 에드워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는 그 이전에 두 번 나왔던 책이다.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근대혁명사상사>,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인물로 본 혁명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정치학자 해나 아렌트의 책 역시 ‘민주주의’ 담론에 대한 연구 붐을 타고 거의 다 복간됐다.

이러한 ‘재출간’ 붐에 대해 김현숙 편집장은 “저작권법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를 기점으로 재출간 사이클이 형성되는 것 아닌가 한다. 요즘 2001년, 2002년에 나왔으나 책의 가치에 비해 호응이 적었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외국 저작물과의 계약은 보통 5년을 단위로 갱신된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법이 발효된 것은 1996년. 1987년 10월 가입한 세계저작권협약(UCC)이 먼저이긴 하지만, 1996년부터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8월 가입한 베른협약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외국과 계약 후 출간’이라는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관행’이 정착했다. 김 편집장의 말대로라면 2006~2008년, 1996년을 기점으로 하는 5년 단위의 새로운 ‘계약철’이 도래하는 것이다.

리메이크작의 성공은 기획자들을 자극해왔다. 그중 ‘고려원 리스트’는 복간의 주요한 대상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초베스트셀러’ <연금술사>(문학동네 펴냄·2001)는 고려원의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1993)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최종 부도처리된 고려원은 연평균 270여 종의 책을 펴내던 당시 ‘단독’ 매출 1위의 출판사였다. 당시 200억원 규모의 연매출을 기록했는데, 2위는 100억원 미만이었다. 고려원의 부도로 총 2만여 권의 문학, 인문, 실용, 여러 전집이 한꺼번에 ‘절판’됐다. 2004년 고려원북스가 고려원 재고와 판권에 대한 권리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출간이 순조롭지는 않다. <연금술사>처럼 재출간 형태로 다시 발간된 책도 적지 않다. 고려원북스의 편집자는 “소설 <캠든에서의 그 여름>과 아동책 몇 권을 재출간했다. 몇 권의 판권을 알아보고 있으나 신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출판 환경도 재출간 붐을 이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팔린 책의 반 정도가 한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통해서 판매됐다. 알파 블로그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기술문명이 바뀌면서 소비구조가 바뀌고 있다. 소비에서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런 블로거들의 활약은 장르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미스터리문학 즐기기’ 카페의 운영자이자 번역가인 권일영씨는 ‘장르 마니아’들과 ‘절판’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장르소설은 ‘품절’되는 사태를 겪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정보 교환을 위해 카페 활동이 활발하다. 품절이 자주 되니 소장 욕구도 강하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사다 쟁여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비자들의 ‘계속되는 애절한’ 요구는 재출간 결정으로 이어진다. 절판됐던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은 손안의책이, <영원의 아이>는 북스피어가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9개 출판사 ‘공동 복간 프로젝트’
외국에서는 더 ‘조직적인’ 절판책 복간 움직임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복각닷컴(www.kinokuniya.co.jp)은 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복간작 리스트를 모으고 의견이 많이 모이면 출판사에 의견을 전달한다. ‘서물복권(書物復권) 프로젝트’는 출판사 쪽에서 진행한다. 도쿄대학출판회, 호세이대학 출판국, 미스즈출판사, 기노쿠니야, 미라이샤, 게이소 출판사, 하쿠수이샤, 이와나미 등 8개 출판사에 2006년부터는 신요사(新曜社)가 참여하고 있다. 사이트를 통해 복간작을 예고하고 독자들이 신청한 도서를 종합해 최종 복간을 결정한다. 영어권에서는 에이어 컴퍼니(Ayer Company Publishers)가 ‘책의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할 목록’을 정하고 재출간을 단행한다. 어떤 형식이든 언제라도 한국에서 가능한 형태로 보인다.

김현숙 편집장은 이런 재출간 붐에 대해 “쉽게 기획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한 문학 출판사의 편집자는 “판권을 보유한 출판사가 오랫동안 출판을 하지 않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독자들의 기다림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기호 소장은 이러한 재출간 기획이 한 걸음 더 나갈 것을 요구한다. “한때 서점에 나가 있는 책 중 95%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책이 정보의 제왕으로서 경쟁자가 없었다. 지금은 무료 정보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새로운 물성을 탐구하고 책의 신체성을 새롭게 하는 재출간 기획이 필요하다.”(구둘래 기자) 
 
열렬복간 리스트
2007년 신간 출간 종수 5만3226종(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 벌써 사라진 책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열렬한 복간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알라딘 서재 리뷰어 로쟈와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에게 재출간을 바라는 책 3권을 부탁했다. 장르문화 매거진 월간 <판타스틱>은 ‘올해는 이 번역소설을 읽고 싶다’라는 주제로 다음카페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행복한책읽기 출판사 사이트 ‘해피SF’, 네이버 ‘SF카페안드로메다’ 카페에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절판’본만으로 한정해 정리해보았다. 설문조사 결과와 추천작들은 <판타스틱> 2월호 특집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쟈의 선택 3: 첫 번째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종로서적). 이전에 2권짜리의 절반 분량이 나왔는데, 다시 나온다면 당연 완역·완간돼야 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워낙에 연로하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그의 주저를 서점에서 구경할 수 없다는 건 좀 ‘쪽팔린’ 일이다. 레비스트로스와 절친했던 로만 야콥슨의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도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나온 책은 발췌역이었는데 다시 나온다면 완역돼 나와야 한다. 야콥슨 전집은커녕 이 정도 책도 시중에서 못 구한다면 역시나 ‘쪽 팔린’ 일이다. 두 번째 책은 일본의 A급 학자 이마무라 히토시의 <역사와 인식>(한실·1992). 그의 <근대성의 구조>도 품절인데, 절판됐다면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얇고 재밌는데,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세 번째 책은 제이 레이다의 <소련영화사1>(공동체·1983). 1권이 나오고 그걸로 절판됐다. 80년대 초반에도 이런 책들이 나왔는데, 요즘은 왜 그럴까. 이왕이면 최근의 러시아 영화사들도 소개되면 좋겠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같은 책도 ‘품절’ 혹은 ‘절판’으로 뜨는데, 이것도 창피한 일이다.

신형철의 선택 3: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 젊은 날>.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동시대 코즈모폴리턴들의 소설을 읽느라 우리가 놓친 일본 소설들 중 하나. 전공투 세대의 ‘후일담’소설이다.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후일담 소설.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적이 있으나 반드시 원래 제목으로 다시 나와야 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비트제너레이션의 성서. 그러나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전후미국문제소설집>(신구문화사·1962)에 수록돼 출간된 적 있으나 그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 물건. 실물을 보여달라. 이세룡의 시집들 <빵> <채플린의 마을> <종이로 만든 세상> 등. 김종삼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가 애틋할 것이다. 평균 열 줄을 넘지 않는 짧은 시들이 주는 맑고 슬픈 여운들. 이 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의 선택: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 시리즈. 우리나라에선 3부까지 나오고 절판됐는데, 일본에선 계속 나오는 것 같더군요. 흔한 형사물인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일단 속도감 있는 재미가 일품이죠.(몬스터) 일본 최고의 문학가 다카무라 가오루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 두 작품은 소개가 되었으나, 절판된 뒤 컬렉터들의 제1표적이 됐습니다. 생생한 상황묘사와 사실적인 캐릭터, 결말의 큰 감동. 이렇듯 최고의 요건들을 두루 갖춘, 고다 시리즈 전작이 출간됐으면 합니다.(이웃 변태) 재닛 에바노비치의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코미디와 추리의 즐거운 만남, 제 취향에 딱 맞는 소설입니다. 시공사에서 펴낸 2편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시리즈가 10편이 넘는 걸로 아는데 모두 나오길 희망합니다.(다크 워크)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재출간됐으면 합니다. 시계관, 십각관, 암흑관 제외하고는 너무 구하기가 힘드네요. 발품을 팔아도 보이지 않는 그 소설들! 정말 저를 너무 애태우더군요.(가을이/ 사요코/ whitebong7)

‘해피SF’의 선택: 올래프 스태플튼의 작품들. <이상한 존>은 70년대쯤에 어린이용으로 한번 나오긴 했지만, 어린이용이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린이용이 아닌 완전 번역본으로 보고 싶습니다. <스타메이커>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구요^^(HAMANE) <지저 세계 펠루시다>를 추천합니다. 아동용 축약본 외에는 제대로 출간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지요. 그것이 종종 외부로 나아가는 것만 떠올리게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지구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답니다.(펠루시다) 국내에서 출간 중이지만 자꾸 지연되는 어슐러 K. 르귄의 책들을 어서 보고 싶습니다. 절판된 책도 그렇지만 아직 출간되지 못한 책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철학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르귄만의 공상과학(SF), 판타지에 맛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whitfume)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어릴 적에 아동용 축약본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SF소설인데 아직까지 국내에 완역본이 소개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dopeLgangER)

‘SF카페 안드로메다’의 선택: 존 윈덤의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동용으로 나온 걷는 식물 트리피드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 <저주받은 마을>도 침략을 테마로 한 SF 스릴러라고 하네요. (엽기부족)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재간을 바랍니다.(이다)

08. 01. 25.

Клод Леви-Строс Струк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P.S. '로쟈의 선택' 목록과 관련하여 덧붙이자면, <구조인류학>과 <소련영화사1>은 대학시절에 손에 여러 번 들었던 책들이지만 결국 구입하지는 않았고 이제는 도서관이나 이용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좀 유감스럽다. 그나마 <구조인류학>의 영어본(2권)과 러시아어본, 그리고 <소련영화사>의 영어본을 갖고 있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사진은 러시아어본 <구조인류학>). 이마무라 히토시의 <역사와 인식>은 <근대성의 구조>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찾았던 책인데 알튀세르 연구서이다. 뜻밖에도 국역본이 있었지만 몇몇 도서관에만 소장돼 있다. 나도 아직 실물을 보지는 못한 책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8-01-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절판본의 매력이란... 참 저도 이번에 시공사 로고스 총서를 급히 모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다행히 절판 후 두달만에 소식 듣고 찾은 덕에 한권(프로이트)을 제외하곤 모두 갖추었지만... 읽는 속도보다도 판이 끊기는 속도가 빠르니 왠지 서글퍼지네요...

로쟈 2008-01-25 23:00   좋아요 0 | URL
비교적 저렴하고 괜찮았던 총서였는데요...

비로그인 2008-01-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가격도 저렴하고, 내용도 철학사 전체를 한번 훑기엔 제격이었는데 말이죠.. 문지 스팩트럼도 한권 두권 판이 끊겨 가고... 역시 믿을건 내 책장과 도서관 뿐이군요... 서점의 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웃음)

로쟈 2008-01-25 23: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이긴 하지만 '민폐'도 만만찮습니다.^^;

드팀전 2008-01-2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 21 봤는데...안그래도 구석에서 로쟈님 이름을 보았답니다.인터넷에서는 크게 보이지만 실제 잡지에서는 조그맣게 편집되었다는 ㅋㅋㅋ

로쟈 2008-01-26 00:01   좋아요 0 | URL
저도 지면기사는 오늘 읽었습니다.^^
 

지난달 구스타프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문학과지성사, 2007)이 출간되어 카프카 읽기 목록(http://blog.aladin.co.kr/mramor/1757923)을 만들어놓았었다. 책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는데(예전 번역본을 갖고 있어서) 시사인에서 이에 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 과문한 독자들에겐 길잡이가 될 듯하다.

시사인(08. 01. 22) 죽은 카프카와의 ‘소리 없는 인터뷰’

남한의 정치학자 K는 북한에서 열린 남북 교류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막 돌아온 참이다. 우연히 펼쳐든 신문에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발견하고 그는 경악한다. 신문 기사는 정치학자 K가 북한에서 남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 때마침 연구실에 들른 조교는 K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교수님, 어떻게 여기에!



K는 신문사 편집국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편집국장은 진심으로 미안해하지만 이번 경우만은 정정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국정원에 가보길 권한다. 국정원에서도 뭔가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당장은 어떠한 조처도 취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별일 없을 테니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으라는 식이다. 그러나 조용히 지낼 수가 없다. 도청과 미행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던 K는 마침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다. 오보가 결국 사실이 되고 만 것. 



이 이상한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가 쓴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저 뒤쪽 어디에’, <소설의 기술>)에 있는 원본을 가져와 우리 식대로 다시 각색한 것이다.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형용사가 있다. ‘카프카적인’이라는 뜻이다. 저런 이야기가 ‘카프카적인’ 이야기다. 한 작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사례다. 조빔(A.C.Jobim)이 곧 보사노바이고 피아졸라(Piazzolla)가 곧 탱고인 것처럼.



카프카 월드로 초대하는 유용한 가이드가 출간됐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쓴 <카프카와의 대화>가 그것. 1920년 3월 어느 날, 17세의 문학 소년 구스타프 야누흐는 ‘변신’의 작가 카프카를 직접 만나게 된다. 소년의 아버지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 그곳은 카프카의 직장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억세게 운 좋은 소년에게 카프카는, 부러워라, ‘아빠 친구’였던 것이다. 카프카 역시 이 문학 소년을 총애하여 두 사람의 만남은 꾸준히 지속된다. 1924년 6월3일 카프카가 사망할 때까지.

구스타프 야누흐, 4년간의 만남 기록해
삶의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카프카를 만난 것은 구스타프 개인의 행운이겠지만, 그가 그 만남의 기록을 보존해두었다가 막스 브로트에게 보내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우리 모두의 행운일 것이다. 카프카는 어느 편지에서 ‘책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리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 이 책은 카프카의 그 ‘도끼’ 같은 소설들이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카프카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마치 ‘죽은 작가와의 인터뷰’ 같지 않은가.

인간 카프카의 모습을 지인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카프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결벽증적으로 엄격했다. 그는 자기 책이 출판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강권으로 출간했을 뿐. 구스타프가 그의 단편 세 편을 가죽 장정으로 제본해서 갖다 주었을 때는 숫제 화를 내기까지 한다. 이 따위는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한다고. 

“…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341~342쪽) 그러니 카프카가 이 책의 존재를 반기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카프카라는 ‘막다른 골목’이 누군가에게는 출구로 나아가는 ‘빛’이 되기도 하는 것을 어쩌랴. 

그 빛에 눈이 부셨던 경험이 필자에게도 있다. 10여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소설가 오정희 선생이 어느 글에선가 이 책이 당신의 젊은 날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회고하고 계셨다.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서 한 권의 책을 찾았다. G. 야노욱흐, <카프카와의 대화>, 가정문고, 1976. 한동안 그 책을 파먹었다. 그 책이 다시 나왔다.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8. 01. 24.

P.S. 필자가 읽은 <카프카와의 대화>는 전희수 역으로 원래는 신양사(1960)에서 출간된 것이다. 알고 보면 거의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인 셈. 그리고 내가 (빌려)갖고 있는 책은 정규화 역의 <카프카와의 대화>(녹진, 1988)이다. 카프카 평전으론 클라우스 바겐바하의 <카프카>(홍성사, 1986)가 기억나는 책이고(이후에 개정판과 또다른 번역판이 나왔다), 내가 예전에 도서관에서 복사한 책들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카프카의 고독한 방황>(홍성사, 1978)과 막스 브로트의 <프란츠 카프카 평전>(문예출판사, 1981)이다.

Макс Брод О Франце Кафке Uber Franz KafkaФранц Кафка Неизвестный Кафка

브로트의 이 평전은 <프란츠 카프카에 대하여>란 제목의 러시아어본으로도 출간돼 있는데 분량은 국역본의 두 배다(러시아에서 오래 망설이다가 구입하지 않은 책이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카프카>도 러시아어본이 나와 있다.  

Вальтер Беньямин Франц Кафка Franz Kafka

그나마 내가 챙겨둔 건 발터 벤야민의 <프란츠 카프카>이다. 길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발터 벤야민 선집'의 7권이 <카프카와 현대의 미로>인데, 그의 카프카론을 포함하게 될 듯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nada 2008-01-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문한 독자, 보관함에 집어넣고 갑니다.
카프카 책보다 항상 카프카에 대한 책이 더 재미있어요. -.-

로쟈 2008-01-25 00:24   좋아요 0 | URL
야누흐가 꾸며적기도 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습니다. '카프카에 대한 책'들만으로도 한 트럭은 될 듯싶어요...
 

지난주인가 타대학 도서관에 복사를 신청한 자료가 도착했다는 문자메일을 받았다. 한때는 자주 애용했던 도서관 서비스인데 요즘은 그래도 뜸하게 이용하는 편이다. 신청했던 자료는 월터 카우프만(1921-1980)의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1998) 원서이다. 'The Future of the Humanities'(1995; 초판은 1977). 국역본 자체는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진' 책이다. 예컨대, 출판평론가 표정훈에 따르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말로 번역된 이 책은 번역 문장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필요 때문에 원서와 대조해가며 읽어 보기 위해 '고가의' 번역본까지 입수했다(IMF시기이던 1998년에 나온 책이 2만원이다!). 표정훈씨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놓는다(http://www.kungree.com/book/good63.htm).

The Future of the Humanities : Teaching Art, Religion, Philosophy, Literature, and History (Foundations of Higher Education)

월터 카우프만, <인문학의 미래>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에는 대학의 인문학 관련 연구소 소장(교수)들이 모여서 관련 당국의 정책적 배려와 지원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문학이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 그 위기가 심화되리라는 인문학 교수들의 생각은 가당치 않다. 오히려 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의 지원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 인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말하자면, 최근 논의되는 인문학의 위기는 대부분 인문 관련 학과의 위기 아니면 그 학과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의 위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인문계 대학 학과가 모조리 없어지고 인문계 대학 교수들이 모두 직장을 잃는다고 해도, 인문학은 죽지 않는다. 대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대학 교수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요컨대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터전과 새로운 방식이 당장은 대학에 비해서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나라 대학의 비효율보다는 사정이 좋지 않을까 한다.

사실, 여기 소개하는 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나라의 '학과 또는 교수'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헤겔의 <법철학>과 <논리학>을 각각 <권리의 철학>, <논리의 과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물리학>으로, 졸라의 <제르미날>을 <저미날>로 번역해 놓은 것은 그렇다 치고,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번역문이 'The Future of the Humanities'와 독자들이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 (앞서 언급한 책제목의 오역은 원서의 영역 제목을 무책임하게 그대로 옮겨 놓은 결과들이다.) 물론 저자인 카우프만의 문장 자체가 까다로운 편이기는 하다. 실존주의에 대한 카우프만의 논문을 읽어 본적이 있는데, 영어를 독일어식으로 구사한다. 그러나 나랏돈은 제대로 쓰여져야 한다.

이 책은 한국학술진흥재단번역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는데, 번역 지원을 하려면 번역자의 선정에서도, 번역의 질에서도 끝까지 관리, 감독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닷컴의 '좋은 책' 코너에서 소개하기는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The Future of the Humanities가 좋은 책이라는 뜻일 뿐, '인문학의 미래'가 좋은 책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번역문의 미로를 헤매본 결과, 카우프만은 대략 이런 말을 들려준다. 우선, 인문학을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 까닭 네 가지. 1. 인류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을 보존하고 그것을 보존할 사람을 양성한다. 2. 인생의 존재 이유, 인간 존재의 가능한 목적,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탐색한다. 3. 비젼(vision)을 가르친다. 4. 비판적인 정신을 기른다.

그리고 카우프만은 인문학의 이상과 같은 존재 이유들이 무시되는 까닭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본래부터 걸맞지 않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각광받는 인문학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언론적 성향을 지닌 인문학자들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 최신의 유행에 대한 관심으로 무장하여, 인간 정신의 위대한 산물들의 보존을 위태롭게 하는 주범들인 셈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를 언론인으로 치부해 버리기까지 한다(*얼마전 강유원도 한 서평에서 아렌트에 대한 카우프만의 견해를 인용했다).



카우프만은 인문학 교육의 핵심은 글읽기, 즉 독서라고 한다. 인문학의 개혁은 학생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서 출발해야 성과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소개하는 네 가지 독서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해석적 독서. 저자의 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책 자체의 문맥에 관심이 없고, 완전히 자기 방식에 따라 읽는 것이기도 하다. 2. 독단적 독서. 해석적 독서와 비슷한데 그에 비해서 더욱 현학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3. 불가지론적 독서. 오래되고 드문 책이라는 이유로 책을 읽는 것이다. 글의 스타일이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지엽적인 것에만 주목하며, 내용의 완성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4. 변증법적 독서가 있는데, 카우프만은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책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추구하고,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갖고자 노력한다. 책일 단순히 읽는데 그치지 않고 책에게 질문을 던지고 책과 대화한다. 또한 저자가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저자의 전체 작품 및 저자의 지적 발전 과정 속에서 특정 저작이 어떤 의미,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등을 고민하고, 저자가 처한 여러 배경과 저자가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

카우프만은 서평에도 시비를 건다. 대부분의 정기간행물들은, 보다 긴 안목에서 영향을 미칠 독창적인 책보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책을 다루는데 익숙하다는 것. 구체적인 사례로, 카르두치, 오이켄, 에케가레이, 미스트랄 등, 노벨상 초기에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을 들고 있다. 그들과 동시대인들인 입센, 카프카, 릴케 등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과연 오늘날의 우리는 어느 쪽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서평을 하는 사람들이, 출판사 개최한 서커스의 호객꾼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번역도 카우프만의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카우프만은 중요한 고전의 영역본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류들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며 이야기한다. (도대체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자들인 두 명의 대학 교수들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학술진흥재단의 번역 지원금 생각?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온 사람들인데, 카우프만이 질타하는 미국 인문학의 현실이 사실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탄탄한 고전학 훈련을 쌓은 유럽의 지식인이(카우프만은 나치의 압제를 피해 독일에서 이주한 지식인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오랜 동안 철학을 가르쳤다.), 미국 인문학계의 현실에 대해 불만을 표명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 나름의 학풍이랄까 그런 것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지니기는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례들을 풍부하게 원용하면서 인문학의 목표, 의의, 방법 등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영어 원서를 읽거나 제대로 다시 번역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08. 01. 23.

P.S. 국내에 몇 권의 저작이 번역돼 있지만(나는 그의 <헤겔>을 읽었었다) 카우프만은 무엇보다도 니체의 영역자이자 연구자로 유명하다(청하판 니체 전집에 카우프만의 해설들이 번역돼 실렸었다). 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그의 책은 단 한권도 없는 듯하다. 한때는 가장 유명했던 니체 연구서의 하나였던 <니체: 철학자, 심리학자, 반그리스도>조차도 한국어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니 (아렌트와는 상반되게도) 이젠 잊혀진 철학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그의 홈피(http://www.acsu.buffalo.edu/~adspear/Kaufmann%20entrance.htm)라도 링크시켜둔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대학은 인문학의 무덤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29 08:46 
    미국의 저명한 니체 번역자이자 연구자였던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동녘, 2011)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과거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1998)라고 한번 출간된 적이 있지만 미진한 번역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책이다.에드먼드 윌슨이나 한나 아렌트 같은 '저널리스트'에 대한 비판으로도 유명한데, 실상 초점은 '인문학의 무덤'이 된 1970년대 대학을 향하고 있다.재번역되길 기대했던(그리고 직접 독려하기도 했던)1인으로
 
 
람혼 2008-01-24 01:25   좋아요 0 | URL
정말 청하 출판사 니체 전집의 앞머리마다 놓여 있던 카우프만의 서문들이 떠오르네요.^^

로쟈 2008-01-24 23:27   좋아요 0 | URL
한 시대의 지표쯤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