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미니북'이 출간됐다. 작년에 출간된 <지식의 불확실성>(창비, 2007)과 같은 판형이지만 부피는 절반 정도인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창비, 2008)이 그것이다. 2004년에 한 대학에서 가진 세 차례 강연에다 결론적인 장을 덧붙인 책인데, '보편주의'에 대한 성찰과 함께 월러스틴을 이해하는 데에도 요긴할 듯싶다. '유럽적 보편주의 vs 보편적 보편주의'라는 프레임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월러스틴의 '레토릭'을 따라가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한국일보(08. 08. 23) 베푸는 듯 강요하는 강자의 논리

신대륙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인들이 아즈텍과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뒤 이 지역 주민들의 노동력을 강압적으로 착취했던 16세기. 에스파냐에서는 폭압적 식민지 경영방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철학자 세뿔베다는 아메리카인들이 문맹의 야만인이라는 점, 우상숭배와 인신공양 관습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점, 이 관습으로 인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참사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 가톨릭 신부들을 보호해 기독교 전파를 꾀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정당성을 옹호한다.

반면 신부 라스 까싸스는 이 논거는 소수의 악행을 정치구조의 문제로 일반화하고 있으며, 기독교 교리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 무슨 권리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며 반박한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78)은 식민지경영을 둘러싸고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16세기의 '세뿔베다-라스 까사스' 논쟁은 21세기적인 논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세뿔베다의 논리를 문명화된 지역이 비문명화된 지역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근대 이후 강자들의 전형적 논리로 본다.

이는 "이전에 존재한 바 없는 약간의 정의 내지 행복, 지적계몽의 여명, 의무감의 각성을 남겨놓은 것이 인도에서의 영국의 명분"이라며 인도지배를 정당성을 강변한 20세기초 인도총독 커즌경의 말이나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침범하고 시리아, 이란,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과 영국 등의 행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인권옹호와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명제는 거창한 명분과 달리 실상은 근대세계체제의 강자들이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라는 것이 월러스틴의 생각. 그는 이런 가치들을 '유럽적 보편주의'(European universalism)라고 명명하며, 이 같은 보편적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묻고, 보편적 가치에 은밀히 관여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힘있는 자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유럽적 보편주의는 동양을 덜 진보되고 야만적이고 몰개성적이고 정적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쌍생아다. 현재 우리가 유럽적 보편주의의 시기의 끝에 와 있다고 보는 저자는 따라서 지식인들에게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개입을 위한 근거들을 객관적이고 회의적으로 볼 수 있는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 로 무장한 비(非) 오리엔탈리스트가 되라고 주문한다.

이런 태도는 세계체제의 불평등의 결실을 누리고 있는 강자들로부터 인기가 있을 리 없지만, 월러스틴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보편적 보편적 보편주의의 싸움은 앞으로 25~50년 사이에 진입하게 될 미래의 세계체제가 어떻게 구성될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저자가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이왕구 기자)

08.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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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23 22:44   좋아요 0 | URL
19세기 이후의 제국주의 논쟁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이 글을 보니 세뿔베다-라스 까사스 논쟁도 관심이 가는군요.

로쟈 2008-08-23 23:26   좋아요 0 | URL
책은 얇은데, 저는 좀더 정확하게 읽고 싶어서 원서도 주문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3 23:57   좋아요 0 | URL
이 분은 경제사학자로 구분해도 될 것 같아요.사실은 저도 경제사 공부하다 알게 되었으니까요.역시 역사학과 사회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경제사를 기반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로쟈 2008-08-25 00:08   좋아요 0 | URL
이미 주저가 경제사 책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6 17:09   좋아요 0 | URL
요즘도 역사학과 사회과학을 분리하려고 하는 이들이 꽤 있더라구요.
 

한때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서재)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가장 저명한 행동주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의 책이 출간된 건 오랜만이 아닌가 싶다. 이번주의 신간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부글북스, 2008)가 일단 반가운 건 그래서인데, 개인적으로 그 반가움은 이 책이 잠시 20년쯤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기 하다. 학부때 읽은 책의 표지와 책장의 감촉이 잠시 되살아난 것. '비싼' 책이어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구입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지금은 어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디지털타임스(08. 08. 21) 인간행동은 자율보단 환경이 좌우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미국 심리학계를 휩쓴 행동주의 심리학의 기본 입장은 생각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기억하는 `정신활동'은 직접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환경의 자극에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들에게 인간의 행동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유전적 자질과 외부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이 원래 목적적이고 자율적이라는 전통적 인간관은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이 책은 프로이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평가받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를 대중들의 뇌리에 사회사상가로 각인시킨 책이다. 스키너는 과학적 심리학에서 얻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과 문화관을 제시한다.

스키너는 자유와 존엄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분석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자유와 존엄을 누리는 인간 내면의 자율적인 존재가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강화요인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다듬어나간다는 것이 스키너의 일관된 주장이다. 따라서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도 인간의 성격보다는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세계에 중요한 문제들은 모두가 글로벌하다. 인구과잉, 자원고갈, 환경오염, 핵전쟁의 가능성 등이 그렇다. 이것들은 현재의 행동양식 때문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이다. 그러나 예상 결과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런 예상 결과들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1972년 스키너는 이 책으로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대중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은 맹공을 퍼부었다. 미국 대학생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조직된 비영리기관인 `대학비교연구소'는 이 책을 20세기 최악의 책 50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런가 하면 노암 촘스키는 스키너를 비롯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을 전체주의 사상의 지지자들이라고 공격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행동의 원인을 순전히 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책의 내용에 경악을 거듭했던 것이다.

인간행동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스키너의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와 존엄을 옹호하는 전통적 관점이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행동이 인류문화의 생존을 돕는 쪽으로 다시 설계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거듭 강조한다. 읽어내기가 녹녹지 않은 분량에 몇몇 대목에서는 급진적인 성향도 보이지만 각종 사회현상의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스키너의 일관된 주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이지성기자)

08. 08. 22.

P.S. 내가 읽었던 책은 심리학자 차재호 교수가 옮긴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탐구당, 1989)이다. 200쪽 조금 넘으니까 얇은 책이었는데, 대신에 딱딱한 하드카바였고 책값이 좀 셌다. 지금 확인해보니 알라딘에서도 1994년판을 판매하고 있다. 아직 품절되진 않은 모양이다(왜 같이 검색이 안되는지는 모르겠다).

스키너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를 고르라면 나는 레즐리(레슬리) 스티븐슨의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 가지 이론>(종로서적, 1981)을 꼽겠다. 그 일곱 가지의 하나로 스키너의 행동주의가 다루어지고 있다. 스티븐슨의 책은 판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갈라파고스, 2007)으로까지 확장됐지만, 아쉽게도 스키너에 관한 장은 빠지게 됐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게 이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보다 전문적으론 임의영의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인간관>(문학과지성사, 1993)을 참조할 수 있다. 기억에는 행정학 전공인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키너의 또다른 대표작 <월든 투>를 읽어야겠다(책의 이미지들은 편의상 사이즈가 맞는 걸로 가져왔다. <월든>이나 <월든 투>나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제목은 물론 헨리 소로의 <월든>에서 따온 것으로 스키너가 생각하는 이상세계를 그려내고 있다(그는 심리학을 전공하기 전에 영문학을 공부했다). 촘스키가 "스키너를 비롯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을 전체주의 사상"이라고 공격했을 때, 그 사정권 안에는 <월든 투>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젝을 따라서 이렇게 반문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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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미로 2008-08-23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심리학에 빠졌을 때 스키너의 글들 접했어요^^같은 알라딘에 서평을 올리면서도 몰랐네요^^ 스윗도넛님 블로그에 갔다가 님의 글이 우수북로거로 추천이 됐기에 배우러 왔어요^^
가끔이라도 들러야겠네요^^

로쟈 2008-08-23 10:16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가끔 들르시길.^^
 

학교에 나오는 길에 읽은 경향신문이 기획기사를 옮겨놓는다. '정부수립 60주년' 기획기사로 이번주에는 '미국'을 주제로 하고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11903085&code=210000). 안 그래도 어제 하워드 진의 <권력을 이긴 사람들>(난장, 2008)을 읽느라 내내 '미국' 속에 빠져 있었는데(벤야민의 구분을 따르면, 하워드 진은 패자의 역사를 장엄하게 기록하고 있는 뛰어난 '역사적 유물론자'이다), 아침부터 또 '미국'이어서 좀 신물이 나려고 했다. "미국(아메리카)에 간다"는 말이 '자살'을 암시하던 19세기 러시아소설들이 문득 그립다...  

경향신문(08. 08. 22) 전쟁·가난 구원 ‘藥주고’ 학살·독재 후원 ‘病주고’

한국을 일제에서 해방시킨 미국
한국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그래서 특수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요, 다른 하나는 미국이다. 남북한이 따로 유엔에 가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외교관계로 설정하기 어렵다는 논란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특수한 국가는 미국이다.

1882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는 미국을 빼놓고는 서술하기 어렵다.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고종이 선택한 것은 ‘우호적 중재(good office)’ 조항을 협약에 넣었던 미국이었지만, 일본과의 밀약을 통해 한국과 필리핀에 대한 상호 지배를 인정한 것도 미국이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3·1 독립운동에 전 민족이 일어나도록 했던 것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였지만, 승전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에는 해당되지 않는 선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결정적으로 이끈 것은 미국이었지만, 해방된 한반도의 남쪽에 미군정이 들어섰고, 미군정은 1948년 38선 이남에서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미군정이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했지만,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군은 다시 한반도에 들어왔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사건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표상이자 독재 후원자로서의 이중성
주한미군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한반도에 군사기지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지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미국은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 그리고 광주민주항쟁 등 역사의 고비에서 민주주의를 말살한 군부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쟁의 피해로부터 복구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역할 역시 결정적이었다. 1950년대 미국의 원조는 국내 자본 축적과 기업의 성장, 그리고 식량 공급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장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한국 경제에 가장 취약한 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한국인들의 ‘신화’를 깨고 외국에 전투부대를 파견한 것도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전쟁 특수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명분 없는 파병으로 인해 한국 근·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민주주의 실현과정에서도 미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4·19 혁명이나 6·10 민주항쟁에서 미국의 개입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과 함께 미국식 민주주의를 모토로 한 교육은 시민들의 민주적인 의식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4·3 항쟁과 광주민주항쟁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반미의식의 확산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단순 외세 아닌 현대사의 주체
이렇게 한국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미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약도 주고 병도 주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은 단순한 ‘외세’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체의 하나로서 작동했다. 정치세력들의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잣대도 미국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구분되고,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집회에 성조기가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는 것도 한국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미국은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선택했을까? 역사·사회·지리 교과서에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듯이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지만, 한국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터키나 파키스탄, 이란, 쿠바, 그리고 베트남 같은 경우 한국에서의 경우와 같이 미국이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특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독재→민주화 불구 한·미관계 유지
또한 지정학적 위치만을 따진다면 냉전이 해체됨과 동시에 한반도의 가치는 바닥에 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에도 한국은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감축될 것이라고 하지만, 미군 기지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한·미 FTA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하나의 쟁점이 되고 있다. 독재시대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당선자는 가장 먼저 미국을 방문한다. 그러나 평범한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비밀은 이제 다른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바로 한국인들 스스로가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의 문제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대부분의 독재정권들이 시민혁명이나 반대세력들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미국의 깊숙한 개입은 내부의 반대를 불러왔고, 결국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부가 수립됐다. 이란과 쿠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독재정부가 무너져도,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돼도 미국은 계속해서 특수한 존재였다. 결국 한국 스스로가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뿌리깊은 우호적 인식
바로 여기에 한·미관계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이 독재정부를 지원하고 때로 한국보다는 미국 자체의 국가이익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이 한국 사회 내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광복절 특집 설문조사는 미국이 한국에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전체 설문대상자 중 두번째로 많은 23.8%가 한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을 뽑았지만, 동시에 45.4%라는 압도적인 다수가 가장 호감이 가는 국가로 미국을 선택했다.

이 결과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순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을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 반감을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들 스스로가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한국 사회 내부에는 미국적인 것이 좋은 것, 또는 근대적인 것이라는 관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호감이 한국전쟁과 전쟁구호, 그리고 남북대결이라는 냉전적 구조 등 역사적 경험에 기인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됐을까? 여기에는 미국의 대외정책의 특수성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열강 제국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근대화’에 기반을 둔 ‘연성권력(soft power)’을 대외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일본의 동화주의나 내선일체 정책이 또 다른 연성권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 중심적인 사고였기 때문에 식민지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와 ‘근대화’ 이념은 다원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개념이었다.

구한말 외교관으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에서 ‘근대’를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근대 한국의 주요한 인물들은 대체로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5년 이후 미국 원조의 중요한 부분은 교육원조였다. 1950년대 경영대학과 행정대학원 설립,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대한 미네소타대학의 원조나 한국 교육자들을 미국에서 교육받도록 했던 피바디 계획 등은 모두 교육 원조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도 로스토의 근대화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65년 한국을 방문한 로스토가 했던 ‘근대화’의 한 마디를 통해 한국 정부는 한국 사회 전체를 경제성장의 길로 동원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연성권력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인디펜던스 데이’, 드라마 ‘뿌리’나 ‘남과 북’을 통해 제3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다른 나라의 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미국에 대한 객관적 인식 증대
결국 이러한 과정은 현재까지도 미국이 한국에서 특수한 국가로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한 한·미관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가? 겉으로 볼 때 한·미관계는 큰 변화 없이 계속돼 온 것 같지만, 모든 사물이 진화하고 발전하듯이, 한·미관계 역시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한국 사회는 미국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한·미관계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세계의 변화는 한·미관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의 재편도 그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세계의 변화에 걸맞은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와 같은 약소국이 아닌 한국이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를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한·미관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하나의 외국일뿐” 주체적 인식 확산 불구 이상국가 열망도 공존
지난 60년동안 우리의 대미인식은 가난과 전쟁에서 벗어나게 해준 ‘구세주’에서 우리와 대등한 하나의 외국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해방 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후엔 미군정이 들어서 친미·반공체제가 구축됐다. 이후 한국전쟁 시기 ‘인천상륙작전’으로 상징되는 미국·유엔의 지원과 구호품, 필수품 원조는 ‘미국=세계평화의 수호자,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에 대한 호감은 4·19 혁명 이후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전 파병 등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베트남 파병에 대해선 한·일 협정과 대조적으로 학생운동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별 반대가 없었다.

대미인식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80년대부터다. 80년 5월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 군부의 무력진압을 미국이 방조하면서 ‘반미’ 감정이 폭발했다. 특히 82년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요구하며 일어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최초의 공개적 반미 투쟁이었다. 90년대에는 ‘윤금이씨 살해사건’ 등 미군 범죄를 계기로 반미 운동이 일어났다. ‘노근리 사건’은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구원자일 뿐 아니라 학살자이기도 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2002년 ‘미선이·효순이 장갑차 사망 사건’과 ‘SOFA 개정운동’은 균형 있는 관계에 대한 욕구에 불을 붙였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인해 촉발된 ‘촛불 집회’ 역시 과거와 달라진 주체적 대미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메리칸 스탠더드’로 대변되는 이상적 국가로서의 미국에 대한 열망 역시 크게 공존한다. 한국은 미국에 최대 규모의 유학생을 내보내고 있으며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한 원정출산, 조기유학·영어몰입교육 열풍 등도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이로사기자)

08. 08. 22.

P.S. 기획기사의 다른 꼭지로 '자유주의와 미국'을 다룬 기사도 참고해볼 만하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11908045&code=210000). 자유주의의 한국적 '굴절'에 대해서 잘 짚어주고 있다(한국에서는 사회주의자인 박노자에서 자유지상주의자인 복거일까지가 모두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에 포함된다. 대단한 오지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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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 2008-08-22 15:10   좋아요 0 | URL
최근 출간된 책 중에 다음 두권이 관련되는 주제에 관한 것이네요. 둘다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들입니다.

왜 다시 친미냐 반미냐 - 전후 일본의 정치적 무의식
요시미 순야 지음, 산처럼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62241

아메리카나이제이션
김덕호, 원용진 엮음, 푸른역사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671

로쟈 2008-08-22 19:48   좋아요 0 | URL
네,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이 있었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16:44   좋아요 0 | URL
해방이후 한미 관계사에선 미군정 통치기간과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을 반드시 연구해야 합니다.특히 막후괴물 제임스 하우스만! 그의 증언록의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한국대통령을 움직인 미국대위>.미군정기 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한미관계의 막후에서 미묘한 흥정을 하던 그의 증언에서 우리는 공식적 역사 뒤편의 역사의 진짜 속살을 볼 수 있습니다.

로쟈 2008-08-23 20:55   좋아요 0 | URL
그런 증언록도 다 소개가 된 모양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21:55   좋아요 0 | URL
네...사망 몇년 전에 나왔어요.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강추한 책이죠.(저는 하우스먼 증언록을 읽은 한참 뒤인 올해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는데 하우스먼을 상당히 길게 언급한 것을 보고 역시 박노자의 독서범위가 대단하구나...하고 느꼈죠).절판되었는데 저는 당연히 헌 책방에서 샀어요.

로쟈 2008-08-23 23:21   좋아요 0 | URL
저는 주목하지 않고 읽었나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4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래도 한국 현대사 쪽 독서가 많다 보니 시야에 잡히네요.

로쟈 2008-08-25 00: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근 정세만 아니면 현대사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을 텐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6 17:19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엔 사진 설명에 이상훈과 강영훈만 명기했는데 기자가 다른 사람은 몰라서 그랬을까요? 제일 오른쪽은 채명신(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제일 왼쪽 이철승(호남 강경우익의 원로).80이 넘었는데 엄청나게 건강하신 분들이죠.좌익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앞장서시느라 지금도 바쁘고요.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읽은 가장 유익한 책은 러셀 자코비의 <이데올로기의 종말: 무관심 시대의 정치와 문화>(모색, 2000)이다. 저자는 미국 UCLA의 역사학 교수인데, 주로 지성사 분야의 책을 내고 있으며 국내에는 <이데올로기의 종말> 외에 <사회적 건망증>(원탑문화사, 1992)이 소개돼 있다(저자가 '럿셀 제이코비'로 표기돼 있다. 'Russell Jacoby'이므로 본토에서는 '제이코비'라고 부를 듯도 하지만 일단 처음 소개된 대로 여기서는 '자코비'라고 부르겠다).

 

 

 

 

'자코비'는 최근에 들춰본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탑, 1996) 4장에서도 미국 지성사를 다룬 <마지막 지식인들(The Last Intellectuals)>이 자세하고 언급되고 있어서 다시금 상기하게 된 이름이다(국역본은 <최후의 지성인들>이라고 옮겼다). 알라딘에서는 검색도 되지 않는 책 <나르시시즘의 문화>(문학과지성사, 1989)의 저자 크리스토퍼 래쉬(라쉬)(1932-1994)가 왠지 자코비와 나란히 연상되었는데, 찾아보니 서로 긴밀한 교류를 나눈 사이이기도 하다(래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코비가 추모기사를 쓰기도 했다). 래쉬의 저작으론 <엘리트의 반란과 민주주의의 배반>(중앙M&B, 1999), <여성과 일상생활>(문학과지성사, 2004)이 더 번역돼 있다. 하지만 대표작인 <나르시시즘의 문화>가 절판된 건 유감스럽다. 1970년대 미국문화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지만 요즘 우리의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자코비로 돌아오면, 그의 최신작은 <미완성 그림: 반-유토피아 시대를 위한 유토피아 사상>(2005/2007)이며 며칠전에 <마지막 지식인들>과 같이 입수했다. 두 권의 책표지는 이렇다.  

 

모두가 번역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좀 성의껏 소개되었으면 싶다는 것. <유토피아의 종말>의 경우에도 유명한 전문번역가가 나섰지만 어떤 사정에서인지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처음 읽을 때는 따로 원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대조해보지 못하다가, 최근에 도서관에서 원서를 대출해 묵은 궁금증을 풀어본 결과이다(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정운영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기증도서다. 장서가로 알려진 그의 책들이 도서관에 기증된 덕분에 접해보게 된 책이 개인적으로는 벌써 여러 권 된다. 감사한 일이다). 일단 색인도 빠졌거니와 40쪽에 이르는 미주들을 모두 날려버린 것은 역자나 출판사나 독자에게 별로 배려할 의사가 없음을 말해준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독자 말이다. 책의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55년 1월, 레이몽 아롱과 아더 슐레진저를 비롯해서 수백 명의 저술가와 학자가 밀라노의 국립 과학기술 박물관에 모여들었다. '자유의 미래'라는 주제를 토론하기 위한 국제학술대회였다."(11쪽) 원문은 "In September 1955, several hundred writers and scholars from Raymond Aron to Arthur Schlesinger, Jr., assembled in Milan's National Meseum of Science and Technology to discuss 'the future of freedom.'"

오역의 여지가 별로 없는 서두이지만 번역문은 'September'를 '1월'로 잘못 옮겼다. 물론 실수인데, 첫문장에서의 이런 실수가 암시해주는 것은 번역문이 제대로 교정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 암시는 암시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걸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상당한 분량을 요하는 일이기에 이 페이퍼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제목대로 여기서는 '레이몽 아롱'을 떠올리게 된 계기만을 늘어놓을 참이다. 그렇다고 그 계기란 게 거창하게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인용한 문장이니까. 참고로, 아롱과 같이 언급된 '아서 슐레진저 2세'의 책으론 <미국 역사의 순환>(을유문화사, 1993)이 번역돼 있다(분량이 57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슐레진저는 "냉전시대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을 정립한 역사학자"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사회학자 아롱이나 역사학자 슐레진저나 거물급 학자들이면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반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1955년 밀라노에 모였을 때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이어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데탕트를 선언한 이후였다. 미국과 서유럽은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스탈린식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은 퇴조하고 있었다. 때문에 학술회의장은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장' 같았다고 하며, 한 참석자는 "공산주의가 서구와의 이념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확신에 들뜬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것이 말하자면 첫번째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풍경이었다(1장의 제목은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이며 아직 두번의 반전을 더 남겨놓게 된다).    

 

동갑내기이자 고등사범학교의 동창으로서 사르트르와 함께 전후 프랑스 지성계를 양분했던, 그리고 프랑스 지식인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우파였던 레이몽 아롱(1905-1983)의 화제작 <지식인의 아편>이 발표되는 것이 바로 1955년이다(영역본은 1957년에 나왔다). 내가 갑자기 궁금해진 것은 그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서가 왜 시중에서 눈에 띄지 않을까, 라는 점(뉴라이트들도 아롱까지는 못 챙기는 것일까?). 찾아보니 국내에는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다. <지식인의 아편>(중앙문화사, 1961; 삼육출판사, 1986)은 안병욱 번역이고,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지식인의 아편>(미문출판사, 1983)이라고 만하임의 책과 같이 묶인 건 정하룡 번역이다. 나는 뒤늦은 관심 때문에 여기저기 검색해보다가 <지식인의 아편>을 교보에서 주문했다(삼육출판사본이 아직 남아 있는 걸로 떠 있어서). 지금은 모두 품절이지만 사실 아롱의 책은 <사회사상의 흐름>을 비롯해서 여러 권이 소개된 바 있다. 그 몇 권의 표지 이미지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다시 <지식인의 아편>에 대한 자코비의 설명: "마르크시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레이몽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은 미국 의회의 무기가 되었다. 밀라노 회의를 주도한 사람으로서, 아롱은 그 책에서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데올로기는 혁명과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혁명과 유토피아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선진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방안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다."(13쪽) 이 인용문의 첫문장은 역자의 '작문'인데, 원문은 이렇다. "Raymond Aron's The Opium of the Intellectuals, his criticism of Marxism, appeared just before the Party Congress."

<지식인의 아편>이란 책이 '전당대회(Party Congress)' 직전에 나왔다는 말이 어떻게 '미국 의회의 무기가 되었다'는 뜻이 되는지? 게다가 그 '전당대회'는 1956년 2월 소련의 제20차 전당대회를 가리키는 것인데 말이다. 스탈린을 비판하는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이 행해진 바로 그 전당대회다. 아무튼 <지식인의 아편>은 그러한 맥락에 놓여 있는 책이며 나는 지성사와 '유토피아의 종말'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조만간 읽어볼 참이다.

참고로, 같이 읽을 만한 책은, 자코비도 이어서 다루고 있는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1960)이다. 재작년에 <탈산업사회의 도래>(1973)가 뒤늦게 번역되어 화제가 되었지만 국내에도 3-4종의 번역이 나올 만큼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이었다. 물론 이제는 모두 '역사'가 되었다...  

08. 08. 21.

P.S. 자세히 적을 여유가 없어서 간단히 언급하면, 자코비의 한 가지 지적은 1989년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 이후의 정세가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의 정세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때 똑같이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이 대두하는바,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은 (본인은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애쓰지만) 다니엘 벨의 주장과 "한치의 차이도 없는 결론"에 이른다. 벨은 1960년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단언했지만 그가 예기치 않게도 1960년대의 시대정신은 곧 급진주의쪽으로 흘러가며 신좌파(뉴레프트)가 장악하게 된다(그것이 1968년 혁명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이다. '역사의 종말'을 구가하던 1990년대가 지나고 우리가 2001년 9.11과 함께 봉착하게 된 것은 '역사의 종말의 종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유토피아의 종말의 종말'이다. 여기에 어떤 '순환'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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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8-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에 봤던 이효인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에서 한국 영화에 반영되는 쾌락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평가가 래쉬의 저 책에서 나온거였다는 기억이 납니다...기억이라서..^^

로쟈 2008-08-22 10:30   좋아요 0 | URL
저자가 '이효인'입니다.^^

드팀전 2008-08-2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맞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사상의 흐름>에 파레토도 나오는군요.경제원론에 나오는 학자는 사회사상이나 정치사상에 잘 안 나오는데 이 양반은 아니더군요.그렇다면 사회사상의 흐름을 사야겠군요.헌책방에 있는 걸 봤거든요.

로쟈 2008-08-23 20:56   좋아요 0 | URL
파레토는 코저의 <사회사상사>에도 나오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더 슐레진저 2세의 책 중에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케네디 정부 때 보좌관 시절을 회고한 <1000일>.우리나라에선 한림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원본 일부를 뺐다는 데도 엄청나게 두툼해서 읽을 맛이 나죠.드골을 굉장히 비난했던 내용이 기억납니다.그때 독자노선 걸으면서 미국 속을 확 뒤집어 놓던 때라서요.

로쟈 2008-08-23 21:01   좋아요 0 | URL
원서 이미지를 봤는데, 국역됐군요. 대학 도서관들에는 없는 책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경제원론에도 나오고 정치,사회사상사에도 나오는 유일한 사상가라는 의미로 쓴 거예요.저는 휴즈<의식과 사회>에서 파레토를 읽었을 때 이 사람이 파레토 최적이론을 만든 그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그 사람 같아서 아...그렇구나...했죠.이데올로기 론에도 나오구요.
코저 책에도 나오는군요.경제사상사에는 파레토가 안 나오는 책이 없는데 사회사상사에는 안 나오는 책이 있어요.역시 경제학 쪽에서 더 많이 취급하는 인물인 듯 합니다.
 

<고교 독서평설>(8월호)에 '유토피아의 종말, 그 후의 유토피아'란 타이틀로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그러니까 고등학생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것이다). 병기된 설명들과 미주는 제외했다.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갑론을박' 연재 중 네번째이자 마지막 글 꼭지였는데, 다시 쓴다면 러셀 자코비의 <유토피아의 종말>(모색, 2000)을 추가로 참조했을 듯싶다.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의 유토피아'는 자코비식의 표현을 빌면, '유토피아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쯤 되겠다. 그의 책 1장의 제목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이어서 그렇다. 거기에 또 한권을 보태자면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유토피스틱스>(창비, 1999). 모두 읽은 지 너무 오래된 탓에 원고를 쓰면서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서두의 에피소드는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의 서론에 나오는 것을 조금 더 풀어쓴 것이다('스페인'이 '에스파냐'로 바뀐 것은 교과서 표기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토피아 - 마법과도 같은 자유

1964년 에스파냐의 마드리드 교외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할 때 생긴 일이다. 영화의 배경은 1905년에 일어난 제1차 러시아 혁명01.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러일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사회가 동요하고 민중의 불만이 폭발하여, 학생 소요와 함께 정치적 테러, 암살이 횡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겨울 궁전 앞에서 평화 시위를 하던 군중을 제국의 군대가 무차별적으로 유혈 진압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시위대가 가두 행진을 하며 부른 노래가 <인터내셔널가>였다.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전 세계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 이후 구소련(구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1944년까지 국가(國歌)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에스파냐의 국가주의자들은 이 시위 장면을 찍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러야 했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 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영화의 제작진들은 에스파냐 엑스트라들 모두가 이 노래를 알고 있고 게다가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부르는 데 놀랐다. 그 당시 프랑코 정권의 경찰들이 진짜 정치 시위를 하는 걸로 오해하고 개입할 정도였다. 그리고 때마침 촬영은 저녁 무렵에 이루어졌는데,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걸 듣고는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쟁취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들은 포도주 병을 따고 길거리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 ‘정상적인’ 현실로 복귀해야 했지만 그들은 잠시나마 환영(幻影,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도 같은, 하지만 반드시 환영만은 아닌 자유를 맛보았다. 이 자유야말로 마법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자유가 아닐까?

21세기의 시작 - 유토피아의 종말, 그러나 끝나지 않은 꿈
이제까지 유토피아란 말은 주로 ‘불가능한 이상 사회’라고 정의되었다. 그것은 ‘이상 사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며, 또 현실에 구현된 ‘유토피아’는 끔찍한 악몽이 되기 일쑤였다. ‘유토피아 문학’이 곧장 ‘안티 유토피아 문학’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상 사회’ 지향으로서의 유토피아주의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원래의 말뜻을 그대로 따라가자면, 유토피아는 ‘가장 좋은 곳’을 뜻하기 이전에 그냥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왜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공간에서, 곧 사회적 좌표계에서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의 건설이란 이 기존의 좌표계 바깥에 있는 사회적 공간의 건설을 뜻한다. 그것은 순수하게 ‘가능한 것’의 목록을 다시 쓰고, 그 좌표를 바꾸는 제스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이며 문제적인 충동이고 광기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그러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다시금 레닌을 불러들인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려 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재앙적인 상황에 놓인다. 전 유럽이 군사적 갈등 속에서 대립하고 있었고, 사회 민주주의 정당들마저도 전쟁에 동조하는 ‘애국주의 노선’을 채택해 레닌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레닌은 그렇듯 절망적으로 보이던 시점에서 혁명의 절묘한 기회를 포착해 낸다. 국가 그 자체를 뜻하는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상설적인 군대나 경찰, 관료가 없이도 만인이 사회 문제를 관리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코뮌적 사회 형태를 만들어 내려 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레닌에게 그것이 머나먼 미래를 위한, 또는 먼 섬나라에서나 가능한 이론적 기획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2,000만 명은 안 되더라도 1,000만 명으로 이루어진 국가 기구는 즉시 가동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레닌식의 유토피아적 충동이며 진정한 유토피아다.

하지만 레닌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1990년을 전후로 한 구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의 붕괴는 통상 정치적 유토피아의 붕괴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흔히 거기서 이끌어 내는 교훈은 ‘고귀한 정치적 유토피아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공포로 끝나고 마는가.’이다. ‘현실 사회주의 이후’는 그래서, ‘포스트-유토피아’, 곧 ‘유토피아 이후의 세계’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 포스트-유토피아 세계에서는 실용주의적 관리와 행정이 정치를 대신한다. 하지만 정말로 유토피아는 종말을 고했던 것일까?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에야 뒤늦게 자각된 것이지만, 실상 현실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 이후의 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최후의 거대한 유토피아였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경험한 셈이 된다. 하나는 70여 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10년을 승승장구하던 자유 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다. 전자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면, 후자의 종언을 보여 주는 실재적 사건은 바로 9·11 테러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9·11 테러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역사의 종말’ 같은 ‘게임 오버’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해 준다. 단지 무대만 바뀌었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자본주의의 평화적 팽창이 끝난 1914년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까지를 20세기로 규정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20세기가 시작됐다면, ‘테러 시대’라고도 불리는 21세기는 9·11 테러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는 1차 유토피아(1917~1990)와 2차 유토피아(1991~2002)가 모두 종말을 고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종말 이후’에 깨달은 교훈이라면 ‘진정한 종말’이란 아직도 멀었으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와 여정을 남겨 놓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그 뒤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역사의 현실로 복귀했고, 사회적 차별과 갈등 또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더욱 빈번해진 각종 국지전(局地戰)은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 잠시 우리를 도취하게 만든 ‘역사의 종말’이라는 관념 자체가 얼마나 유토피아적(공상적)인가를 보여 준다.

끝없는 열망 - 새로운 대중의 탄생, 또 다른 모습의 유토피아 
가장 기본적으로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라는 삶의 절박함이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서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을 만들어 낸다고 하면, 유토피아적 충동과 기획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고 또 우리의 것이어야만 한다. 유토피아는 실제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이상 사회에 대한 몽상과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더 이상 ‘가능한 것’의 한계 안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제기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가장 심층적인 차원에서의 어떤 불가피성의 문제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철학자 지젝은 우리가 레닌이 1914년에 대응해서 한 일을 1990년에 대응해서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다른 가능성은 없어. 민주적 합의에 충실해야 돼.”라는 일종의 ‘사고 금지’에 대응해 다시금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오늘날 유토피아 전략들의 심미적 경향이다. ‘심미적’이란 말 대신에 ‘유희적’이란 말을 써도 무방하다. 포스트모던의 상황에서, 정치적 저항은 심미적 현상들로 강하게 물들어 있다. 가장 간단하게는 ‘피어싱(piercing)’이나 ‘옷 바꿔 입기(crossing-dressing)’에서부터 ‘플래시 몹(flash mob)’ 같은 공개적 스펙터클(spectacle, 장관·구경거리·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플래시 몹이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각에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 간단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다시 흩어지는 걸 말한다.

가령, 2006년 5월 벨로루시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한 직후, 한 네티즌이 이에 항의하는 표시로 수도 민스크의 광장에 나와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플래시 몹 제안을 인터넷에 올렸다. 벨로루시 경찰은 이에 과민 반응 하여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 몇 사람을 잡아갔다. 하지만 단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일은 더욱 커졌다. 더욱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플래시 몹의 최대 장관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여 2008년 봄과 여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자발적인 평화 시위에 대하여, 정부는 ‘배후’를 찾아서 사법 처리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유례없이 거대하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만을 자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주부 인터넷 모임의 대표는 배후 세력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정(母情)일 것이라 말했고,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영어 몰입 교육, 0교시와 우열반 부활, 그리고 ‘미친 소’ 수입 등을 결정한 집단, 곧 이명박 정부가 촛불 시위의 배후라고 일갈했다.

경찰은 혹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떠 검은 망토와 모자에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인 한 DVD 동호회 사람들에게도 배후란 혐의를 지울 수 있을까? 이들은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영화 속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를 패러디한, 이런 팻말을 들고 거리를 순례했다. “촛불은 내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어요. 제 친구였고, 저이기도 했죠. 촛불은 우리 모두였어요.” 이러한 시위의 현장에서 유토피아는 결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대 수십만 시민들이 자발적이면서도 통일된 행동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테크놀로지의 사회적·경제적 효과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이렇듯 ‘조직 없이 조직된’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디지털과 인터넷에 기초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테크놀로지 덕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거대하고 더 널리 흩어져 있는 공동 작업 그룹이 탄생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기획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젝의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해방 - 그 영원한 꿈을 향한 노력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면서,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중추적 기관으로서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갖다 놓는 것은 어떨까? 자본주의 신(新)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 와이드 웹은 한편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 곧 유토피아적 광기는 국가 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또 가령, 다음(Daum)의 아고라 같은 인터넷 토론 광장을 사회적 공유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사회주의=전력화(電力化)+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 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이를 통해서만 인터넷은 확실한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해방적 잠재력인가? 물론 인간 해방이다.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또한 유토피아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며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의 성취보다도 그것을 향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의 마지막 3절은 이렇다.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08.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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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이 글 어제 도서관 정간실에서 읽었는데...독서 평설의 평설 위원으로 소개되었더군요.무슨 일을 하는 직책인지요?

로쟈 2008-08-20 23:18   좋아요 0 | URL
그냥 거기에 글을 쓰는 필자는 다 '평설위원'이라고 불립니다.^^;

- 2008-08-2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평설, 고등학생 때 재미있게 봤던 책입니다. 좋은 책 소개 많이 해주세요ㅎㅎ

로쟈 2008-08-21 09:59   좋아요 0 | URL
제 몫은 책 소개는 아니고 갑론을박의 소개인데, 눈높이에 대한 감이 없어서 좀 어렵습니다.^^;

게슴츠레 2008-08-2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같이 블로그 눈팅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번 글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젝을 만나고 또 이해하는 데 항상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로쟈 2008-08-22 02:00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신다니 저로서도 다행입니다. 아주 뻘짓은 아니구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