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이 시작됐지만, 개인적으론 푸르죽죽이다(이러다가 '광산'으로 가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잠시 하늘 한번 쳐다보는 기분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본다. 읽을 수 있는 책과 읽고 싶은 책의 차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문학동네, 2010)이다. 알라딘 마을에서야 따로 소개가 필요 없는 책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235.html).   

이 소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분류하자면 ‘수용소 문학’쯤 된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이성을 가진 인간의 근대 프로젝트가 아우슈비츠(나치 수용소)와 굴락(소련 수용소)으로 귀결된 것을 냉소한다. 냉소주의는 위험하지만 냉소 자체는 성찰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확신에 차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4대강을 살려야 한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은 낙동강 강바닥의 돌멩이보다도 덜 생각할 것이다.) 수용소는 우리가 ‘생각’을 하기 위해 부단히 되돌아가야 할 상처이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수용소 문학은 과거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반성이고 미래의 연습이다. 프리모 레비가 그랬고 솔제니친이 그러했다. 수용소의 문학은 문학의 수용소를 해체할 수 있다.

수용소 문학의 '고전'으로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열린책들, 2009)도 꼽아두고 싶다. 단 5권짜리 완역본 대신에 1권만을 '세계문학'에 포함시킨 것은 너무 임의적이란 불만도 적어둔다.  

 

덧붙여, <제1권>과 <암병동>도 재출간되거나 새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2. 역사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서는 나가사와 가즈토시의 <돈황의 역사와 문화>(사계절, 2010)이다. 돈황에 대한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돈황이란 말은 윤후명의 소설 <돈황의 사랑> 덕분에 인구에 회자되지 않았나 싶다).  

실크로드의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도시가 돈황(敦煌)이다. 예부터 동서 문명의 교류지였던 돈황 근교에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석굴들이 있는데 현재는 812개가 남아 있다. 1900년 왕원록(王圓籙)이라는 도사가 막고굴 17굴에서 오호십육국 시대부터 북송 시대에 이르는 문서와 그림 등 5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을 발견했다. 당시 구미열강의 침탈에 시달리던 청 조정이 이 유물들의 가치에 주목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국의 오럴 스타인과 프랑스의 폴 펠리오같은 인물들이 이를 헐값에 사들여 자국으로 가져갔다. 이는 일종의 문화약탈이지만 그 바람에 세계에는 돈황학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학문 분야가 형성되었다.

그런 '돈황학'의 입문서격으로 읽을 수 있겠다. 찾아보니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 이야기>(연암서가, 2007)도 돈황학 입문서의 '고전'이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중국쪽 학자로는 리우진바오의 <돈황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3)가 소개돼 있다. 보다 전문적인 성격을 지닌 책인데, "동황학 전문 연구가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중국인의 시각에서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분포해 있는 돈황 관련 자료와 연구를 집대성하여 저술해 돈황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돕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이종은 교수의 <정치와 윤리>(책세상, 2010)다. 정치철학 범주에 속하는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칸트를 위시한 의무론자,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 홉스, 로크, 루소로 대표되는 사회계약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시도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의무론자는 행위의 동기와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공리주의자에게는 행위결과의 극대화가 중요하다. 홉스는 절대군주, 로크는 작은 정부, 루소는 일반의지에 기초한 정부를 옹호한다. 각 이론의 논의의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적 정치권력 견제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오늘날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보면 마키아벨리가 왜 영악한 여우와 용맹한 사자의 덕목을 군주에게 요구하는 지가 잘 설명된다.

정치철학적 화두이기도 한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조승래 교수의 <공화국을 위하여>(길, 2010)과 대표적인 현역 철학자들의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가 요긴한 참조점이 돼줄 듯싶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다극화체제, 미국 이후의 세계>(시대의창, 2010)이다. 저자들은 9.11 테러와 최근의 경제 위기 등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EU, 중국, 인도, 러시아가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다극화세계가 개막되면서 세계사가 다시 한 번 공생공영의 다극화와 약육강식의 신제국주의 사이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소위 '다극화체제'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비슷한 전망을 다루고 있는 책으론 파라그 카나의 <제2세계>(에코리브르, 2009)가 먼저 떠오른다. 미국이 소련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고 경고하는 드미트리 오를로프의 <예고된 붕괴>(궁리, 2010)도 나란히 읽어봄직하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분야의 책은 최용석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의 전략>(아라크네, 2010)이다.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애플사의 야심작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이 변화의 바람은 IT 산업뿐 아니라 전체 사회, 전체 경제에 휘몰아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지각변동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책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확산과 함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일대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관과 음식점을 찾아가고, 책을 사서 읽고, 쇼핑을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보통신혁명은 우리 삶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이 혁명의 선두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가 흥미진진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가 아니어서 '변화의 바람'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고 있지 못하지만, 몇달 전에 나온 화제작 <구글드>(타임비즈, 2010)와 함께 '트렌드'를 점쳐보는 데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디지털 혁명의 미래>(청림출판, 2010)까지 얹으면, 애플과 구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삼각편대가 이끌고 가는 '디지털 미래'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마르쿠스 베네만의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게임>(웅진지식하우스, 2010)이다. 책의 내용은 이미 제목이 잘 요약해주고 있다.     

우리가 즐겨먹는 오징어의 바닷속 최면술에 대하여, “계획은 심플하게, 결정은 단호하게, 공격을 재빠르게”, 카멜레온의 필사적 살생기를, 공격의 정석 정공법을 갈매기류의 북방가넷의 청어 사냥법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생물학을 전공한 기자의 눈으로 면밀히 관찰한 동물들의 약육의 세계를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인간상식을 뛰어 넘는 동물들의 생존법은 책의 제목처럼 매혹적이고, 지적이고, 교묘할 정도이다.

'인간상식'을 뛰어넘는다고 하지만, 그러한 생존술에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인간들도 많다는 사실 또한 역설적이지만 '상식'에 속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마티 크럼프의 <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타임북스, 2010). 저자는 <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도솔, 2007)이 소개된 바 있는 양서류 전공의 행동생태학자라고.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학술적인 논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동식물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일도 자연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간간이 내가 인간이 아닌 동물, 식물, 세균, 심지어 곰팡이도 마음에 의식적인 목표를 갖고 행동한다는 암시를 하는 듯도 하고(학자들은 이것을 목적론이라 한다), 혹은 내가 다른 동물에게 인간적인 특징을 부여하고 있는 듯도 할 것이다(학자들은 이것을 의인화라 한다). 하지만 그런 의도보다는 단순히 세상 모든 것을 서로 연관 지어보고, 이 멋진 자연사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으로 내가 좀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어디 가나 '멍청한 수컷들'은 차고 넘치는 모양이다. 가벼운 읽을거리고 보아도 좋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유예진의 <프루스트의 화가들>(현암사, 2010)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음미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인데, 추천자 소개는 이렇다.  

2008년의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었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책이 두껍고 비싸지는 바람에 추천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유예진이 펴낸 <프루스트의 화가들>은 프루스트를 처음 만나도 낯설지 않게 안내를 잘 하면서 프루스트의 소설 내용과 필연적 관계에 있는 그림들 역시 엄선해서 넣었다. 아름다운 5월에 걸맞는 책이다. 혹시 여력이 있으신 독자는 2008년의 책과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 더욱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여력'을 가늠해보기 전에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생갹의나무, 2005)란 질문을 먼저 통과해야겠다. 알랭 드 보통의 질문이다.   

8. 교양 

이한구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폴 브뢰머의 <이라크에서 나의 생활>(한국국방연구원, 2010). 한국국방연구원에서 펴낸 책이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후 미국식 민주정부 수립의 임무를 맡고서 2003년 4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주이라크 미국대사 겸 연합임시행정기구 총독으로 활동했던 폴 브뢰머의 생생한 보고서다. 현지 사정뿐만 아니라 미국내 다양한 입장들과 충돌하고 설득하며 다른 나라에서의 국가건설이라는 과제를 추진해가는 브뢰머의 임무를 마치 화면으로 보듯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기회다.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이후 이라크의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대외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가는 지를 아는데도 많은 정보를 준다.

더불어, 추천자는 이 책이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의 미 군정 기간을 겪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많으리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저자는 미제국의 '이라크 총독'이었으니까. 더불어, 사병의 시각에서 본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올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수장작인 <하트로커>도 참조해볼 만하다. 거기에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을 폭로하고 있는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도 좀 무겁지만 올려놓고 싶다. 소장하기엔 부담스럽고 도서관에서 언제 빌려봐야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휴, 2010)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서영남 전직 수사 이야기'란 부제가 책의 내용을 말해준다.  

저자 서영남은 이 책을 통해 ‘민들레 국수집’을 열게 된 사연과 민들레 가족의 우정을 담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이 독특한 운영 방침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프로그램에 공모하거나 후원회를 조직하지 않으며, 부자들의 생색내기 돈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오직 우리 이웃들의 자발적 나눔과 정성으로 식탁을 차려내고 민들레 가족을 보살핀다. 곤경한 사람을 돕는 데 이유는 없다. 봄이 되면 노랗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정부나 부자, 후원회에 대한 독선적인 시각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게 나눔의 본령인 게 어쩌겠나.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사람들은 그에게서 이타행을 실천하는 성자의 모습을 본다."라고 추천자는 적었다. 국수 말아주는 전직 수사 이야기라니까 떠오르는 건 다일공동체의 밥 퍼주는 최일도 목사이다. 찾아보니 <행복하소서>(위즈덤하우스, 2008)까지가 근황이다.   

10. 노무현  

내 마음대로 고르는 이달의 주제는 1주기를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미 많은 책이 나왔고, 이달에도 아마 더 나올 것이다. 그가 꿈꾼, 하지만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미 '노무현'이라는 기표는 인간 노무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분노 자본'을 모두 끌어담을 컨테이너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10. 05. 02.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이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장 유명한 단편이 된 듯싶은데, 들뢰즈를 비롯해서 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주석을 붙인 바 있다. 평론가 복도훈도 <눈먼 자의 초상>(문학동네, 2010)의 서문에서 다시금 이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를 호명하고 있어서 인용한다.    

너그럽고도 참을성 있는 중년의 부르주아 신사이자 법류사무소 사장인 화자가 필경사 바틀비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묻는다. 서류 좀 검토해주게, 필사를 부탁하네, 안 한다는 건가, 우체국에 다녀와주게, 자, 포목 직원은 어떤가, 자네의 직업을 책임져주지, 자네 고향이 어디인가, 식사 좀 들게, 대답 안 할 건가, 대체 자네는 누구인가. 그러나 돌아오는 바틀비의 대답은 매한가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 소설에서 수십 번 반복되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바틀비가 앉아 있는 구석진 책상으로부터 조그맣게 들려오다가, 서서히 그를 둘러싼 법률사무소라는 소우주를 잠식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옥사에 수감된 바틀비가 아사(餓死)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바틀비의 망령, 분신처럼 주변을 배회한다. 물론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그 말이 발화되고 울리는 장소인 사무소와 옥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특별한 위협도 타격도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여전히 흔들림없이 거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바틀비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변화시킬 '상투어(formula)'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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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쟌느의 느낌
    from avecjang's me2DAY 2010-05-03 14:21 
    갑-을 관계에서 을에게 주어지는 노예계약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내 속의 '바틀비' 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비온새벽 2010-05-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기분이 푸르죽죽하시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사실은 저도 방금 대형 행거가 무너져서 기분이 거무죽죽합니다 ^^ 저는 로쟈님의 추천도서중에는 숨그네와 애플의 전략을 이번달 목표로 삼아봐야겠어요.

로쟈 2010-05-02 22:20   좋아요 0 | URL
자업자득입니다.^^;

주니다 2010-05-0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봄다운 날씨 같아요. 금방 더워져서 여름으로 접어들겠지만..<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을 시절로 번역하기도 하나봐요? 한 글자 차이가 주는 뉘앙스가 아주 묘하게 혓바닥을 간지럽히는군요. ㅋㅋ

로쟈 2010-05-02 22:21   좋아요 0 | URL
네, 그래도 '잃어버린 시절'은 좀 어색하죠. 적응은 잘 하셨나요?^^

미지 2010-05-0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푸르죽죽한 건 아니었군요.. 오랜만에 날이 좋아 아이한테 미안해서 뒷산에 데리고 갔다가 로쟈님께서 전에 추전하셨던 <우리 안의 과거>란 책을 좀 읽었는데, 숙연해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앞부분 읽어가는 중이지만, 이 시대의 역사 문제에 대한 테사모리스 스즈키의 매우 진중하고도 세심한 시각이 놀랍더군요...!
"분노자본"은 로쟈님의 용어인가요? 흥미로운데요^^ 언제 해설 들을 기회가 있길 빕니다.

로쟈 2010-05-02 22:53   좋아요 0 | URL
'분노 자본'은 지젝의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란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안의 과거>는 정작 저는 못 챙겨둔 책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틀비라는 사나이의 정체가 뭘까...정말 읽어도 읽어도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공포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기도 하구요.일종의 돌아이같기도 하구...마지막 장면을 보면 좀 불쌍하다는 느낌도...한 번 또 읽어볼까요.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한 편이에요.배경이 월스트리트인데 금융공황 당시를 배경으로 해서 바틀비를 다시 써본다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쟈 2010-05-02 23:28   좋아요 0 | URL
영화화되긴 했는데, '공포영화'인지는 모르겠네요.^^

종이달 2022-03-2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대출할 책이 있어서 동네 도서관에 갔다오다가 편의점에서 한겨레를 손에 들었다. 북리뷰보다 먼저 읽은 것이 황현산 교수의 칼럼인데,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란 제목이 눈에 들어서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문학, 특히 어문계열 학과들의 통폐합(상투어론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문제가 분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작 이런 '생각'이 필요한 이들은 이런 칼럼도 읽지 않을 테고, 이런 서재에도 드나들지 않을 테지만. 아래 사진은 어제 학교측의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중앙대 학생들이 삭발식을 하는 장면.  

한겨레(10. 05. 01)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   

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주로 두 사람이 방 하나를 같이 쓰는 하숙집에서 기거했다. 내가 만난 ‘룸메이트’ 가운데 법대생이 둘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학창시절 온갖 책을 가리지 않는 독서광이었고, 글을 잘 썼으며, 입을 열면 시정이 넘치는 말을 쏟아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오로지 고시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살았다. 나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그에 비하면 내 공부는 늘 산만했다. 어느 날 그가 나한테 왜 고시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질문이 뜬금없다고 느꼈던지 어조를 갑자기 힐난조로 바꾸었다.

불문과에서는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나는 고작 이렇게 대답했다. 불문학과니까 불문학을 하지. 대답이 아니라 대답의 회피였다. 그러나 저 고시생의 확실하고 단단한 신념 앞에서 내 공부의 내용과 목표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아득한 일이었다. 문제는 내 생애에서 이렇게 질문해오는 사람이 그 사람으로 끝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언젠가는 교육부의 관리가 프랑스의 불문학박사보다 한국의 불문학박사가 더 많다는 얼토당토않은 낭설을 티브이 방송으로 퍼뜨렸으며, 가끔은 대학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제는 영어 하나면 어디서나 통하니까 프랑스어 교육은 필요 없지 않으냐고 넌지시 묻는다. 교육부 관리의 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프랑스어 교육 불필요론 앞에서 나는 프랑스어가 무역이나 여행을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거나(실은 그런 일에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데, 상대방은 이어질 말을 듣고 싶은 기색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현재 세계의 문화적·정치적 지형도의 형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프랑스어로 작성되었으며 지금도 작성되고 있는 많고도 중요한 문헌에 관해서는 말할 틈조차 없다. 그 질문은 처음부터 내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봉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사회의 발전에서 앞으로 오게 될 세계의 그림을 문학이 항상 먼저 그려왔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쩌면 자신의 세계관에 적대할 사람들을 불어불문학과에서 기르고 있다고 아연 긴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불어불문학과를 비롯한 유럽어문학과는 졸업 후 취직이 특별히 어려운 학과도 아니다. 대기업에 무더기로 취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계에서 연예계까지 각종 문화산업의 미묘한 자리에는 유럽문학과 출신들이 어김없이 끼어 있다. 다양한 장르의 문필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문학으로 함양한 개성과 재능을 토대로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영화감독, 작곡가, 디자이너도 적지 않다. 외국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효과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이 삶의 안팎에 퍼져 있으나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적다. 그 효과가 어디서 오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불어불문학과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설명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이 말은 해두자. 어느 젊은 출판인이 교수신문에 칼럼을 기고하여, 근래 프랑스에서 발간된 인문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시급한데, 마땅한 번역자를 구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 까다로운 문장을 읽어내고, 그 의미를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지어, 이 서적들을 번역해낼 만한 소수의 사람들은 저 모욕적인 질문을 자주 받으며, 제 공부의 터전에 위기까지 느끼면서 노력해온 사람들이다.(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10. 05. 01. 

P.S. 그 '어느 젊은 출판인'의 칼럼은 얼마전에 나도 읽었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교수신문(10. 04. 20) 번역자를 찾을 수 없는 이유

매년 엄청난 종수의 학술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출판 통계에 따르면, 그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선두권에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번역된 학술서를 보고 기획을 했지만, 지금은 일본보다 빨리 학술서가 번역ㆍ출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나의 현상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반가운 현상으로 일단 생각해본다. 우리 학문의 자생성 문제를 떠나 이제 인문학은 ‘세계’의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단계로까지 우리의 시야를 넓혀놓았기 때문에 우리 바깥에서 논의되고 사유되는 문제들을 신속하게 ‘수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학술 번역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문 출판인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을 번역할 ‘전공자’가 점점 고갈돼 간다는 데 있다. 지난 20여 년간은 인문학술 번역 출판이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출판인 입장에서는 어떤 한 책에 대해 1순위, 2순위 하는 식으로 번역자 레벨을 매기는 분야까지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전공자들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시대상의 반영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순수’한 학문적 열정이 지금에 비해서는 훨씬 많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푸코와 들뢰즈를 찾아 프랑스로, 하버마스를 찾아 독일로 떠나거나 또는 이 땅에 머물면서 최한기나 정약용을 공부했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연구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순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어버린 것 같다는, 다시 말해 때로는 학문이 순수 학문으로서 존재해야 할 그 가치를 잃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른바 상아탑 같은 학문적 토대도 필요할 터인데, 지금 우리 시대는 기능적 지식인 양성에만 힘을 쏟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물론 우리 사회에 기능인이 많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초과학 없는 응용공학이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회적 인프라로서 튼실하게 축적된 인문학적 사유이다.

최근 고려대생 김예슬 씨의 사건이나 중앙대 사태는 그런 점에서 우리 대학 사회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터이다. 기능적 지식인 양성에만 몰두하는 대학 내에서 철학이니 역사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학문들은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더 많은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 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른바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고고한(?) 순수 인문학적 열정을 쏟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전공자의 절대 빈곤 속에서 ‘다양성의 담론’이 생명인 인문학은 그 토대를 잃고 말았다. 지금도 우리 밖에서는 새로운 이론들과 사상들은 버거울 정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옥석을 가려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전공자와 인문 출판인의 임무일 텐데, 그 수가 절대적으로 빈곤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적당한 번역자를 눈 씻고 찾아봐도 해당 전공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책을 이탈리아어 원어로 읽고 제대로 번역할 전공자가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의 철학이 일류냐 이류냐를 따지는 것은 이후의 일이고, 우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말화해 우리 사유 속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를 예로 든 것이 너무 협소할까. 조금 시야를 넓혀 프랑스 철학으로 눈을 돌려도 형편은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출판인의 입장에서 학술 번역과 관련한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대학 밖의 시선이겠지만, 이미 대학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현상은 그나마 기능적 지식인에 머무르고자 하는 데 대한 저항으로 읽혀 다행스럽다. 대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오직 취업과 국가경쟁력만을 향해 일방통행할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적 근간은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칼 폴라니는 “우리 시대에서 이제 인간은 사회 실재의 현실 앞에서 스스로 체념하게 되었으며, 이는 인간이 예전에 믿었던 모습의 자유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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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부는 여가가 아니다
    from 라무레트의 입맞춤 2010-05-01 22:32 
    가끔 연구실 울타리를 벗어나, 직장인이 된 학부시절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술에 취해 택시 아저씨와 예상하지 않았던 친밀한 사담을 나눌 때, 나오는 초반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oo야, 너 지금 전공이 뭐라고?", "학교는? 그럼 전공은?" 그럼 나는 머릿속에 조금 계산을 해야 한다. 내 전공명을 미리 밝히자면, "영상커뮤니케이션"이다.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 그럼 뭐 영화 이런거 공부하나?"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대부분 "
 
 
푸른바다 2010-05-0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침 황현산 교수님의 컬럼을 읽었고 '교수신문의 칼럼'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침 올려주셨군요. 한마디로 말해서 本을 망각하고 末의 花만 쫓고 있는게 한국의 자칭 주류세력의 불행입니다. '崇本息末'의 의미를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로쟈 2010-05-02 16:54   좋아요 0 | URL
이심전심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이라면 미국만 있는 줄아는 사람들...아...답이 안 나오네요.

로쟈 2010-05-02 23:29   좋아요 0 | URL
소위 '주류'죠...

사과나무 2010-05-26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가치혁명을 위하여

어제 중앙게르마니아 강연이 끝나고 뜻밖에도 인디고 팀원들에게 이번에 나온 국제판 <인디고>(2010년 봄호)를 선물로 받았다. 안 그래도 어제 오전에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다. 지난번에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도 나를 놀라게 한 책이었는데, 깔끔한 장정의 국제판은 한번 더 놀라게 한다. 다음 세대 인문학에 대한 걱정은 내 몫이 아닌 듯하다. 하긴 지젝의 <시차적 관점>을 읽는 중학생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 잡지 창간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10. 04. 30) 부산 청소년들이 만드는 국제 인문학잡지 '인디고' 창간 

부산의 인디고서원은 국내 하나뿐인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다. 수영구 남천동 학원가에 자리잡은 이 책방은 2004년 8월 문을 연 이래 놀라운 실험들을 해왔다. 참고서나 상업적 베스트셀러는 팔지 않는다. 서가는 온통 인문학 책 차지다. 더 좋은 세상과 참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양분이 될 책들만 엄선해 꽂아놓았다.

그동안 해온 활동은 더 인상적이다. 저자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주제와 변주', 주말의 독서 토론 모임, 자유ㆍ저항ㆍ진실 등 인문학적 가치를 주제로 토론하는 '정세청세' 등은 중고생이 주축이다. 23호를 낸 격월간 인문 교양지 '인디고잉(INDIGO+ing)'도 인디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다. 입시 지옥에서 점수의 노예로 사는 한국 청소년의 현실을 생각하면 꿈만 같은 일이다.

인디고서원이 또 한 번 혁명적 발걸음을 내딛었다. 인디고 아이들이 전세계 지성들과 함께 만드는 국제판 인문학 잡지 '인디고(INDIGO)' 를 창간, 29일 1호를 선보인 것이다. 전세계로 보내는 영어판 계간지다.

잡지를 통해 인문학적 가치와 실천을 위한 국제적 담론을 펼치고 공유하려는 연대의 장에 편집위원장을 맡은 철학자 겸 평화운동가 브라이언 파머(스웨덴 웁살라대 교수)를 비롯해 세계적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등 6대륙에서 11명의 지성인과 실천가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메일 교류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인디고서원의 활동을 알고 적극 응원하게 된 이들은 창간호에 무보수로 글을 썼다. 한국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청소년들의 글이 나란히 실렸다.

이 잡지 발행인은 인디고서원 대표 허아람(39)씨. 그는 부산 지역에서 올해로 21년째 청소년 독서 지도를 통해 인문학 운동을 하고 있다.

국제판 '인디고'의 한국인 편집진은 편집장 박용준(27)씨를 포함해 3명이다. 박씨는중학생 시절부터 허씨가 이끄는 모임에서 인문학 책을 읽으며 성장한 청년이다. 그는 "국제판 '인디고'는 전지구적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인문적 연대의 시작이자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려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파머 교수는 국제판 '인디고' 창간호에 기고한 글에서 "병 속에 담긴 편지나 풍선에 달린 편지처럼 이 잡지가 전세계로 전달되어 대의와 희망을 향한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디고 아이들이 세계의 지성들과 교류하게 된 데에는 파머 교수의 역할이 컸다. 세계 지식인 16명과 하버드 대학생들의 대화를 정리한 <오늘의 세계적 가치>가 2007년 1월 국내 번역 출간되자, 인디고 아이들이 거기 참여한 파머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책 내용을 비판하며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적해줘서 고맙다며 오라고 했다. 그해 4월 인디고 아이들은 스웨덴으로 가서 파머 교수를 만났다. 인디고의 대의와 활동에 감탄한 그는 노엄 촘스키 등 세계의 지성과 실천가들을 소개해줬다.

창간호 특집은 '가치를 다시 묻다'. 인디고서원이 8월에 여는 제2회 인디고 유스 북페어의 주제이기도 하다. 올바른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책을 중심에 놓고 토론과 강연, 공연 등으로 풀어가는 행사다. 외국에서 40여명의 지성들이 와서 인디고 아이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인디고 아이들과 청년들은 세계의 지성과 실천가들을 찾아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최근 나온 단행본 <가치를 다시 묻다>는 그들을 인터뷰하고 책을 읽으며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국제판 '인디고' 창간호는 당시 만났던 미국의 진보적 지성 하워드 진을 표지인물로 실었다. 그는 올해 1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인디고 팀과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디고서원 허 대표는 " 국제판 '인디고' 창간은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놀라운 게릴라전이 아니라 인디고서원이 지난 6년 간 걸어온 길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의 세계화를 뛰어넘는 인간적 가치를 공유하며 전지구적 변화를 일으키는 공론의 장으로서 이런 잡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같은 인터넷시대에 웹진으로 만들지 않고 굳이 종이책으로 내는 것은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국 인구의 75%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반면, 아프리카에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0.5%밖에 안 된다고 그는 부연했다.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것을 뒤지다가 발견한 잡지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뀐 아프리카 소년의 이야기처럼, 우리 잡지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변화를 이끄는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오미환기자) 

10.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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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5-01 10:40   좋아요 0 | URL
시차적 관점을 읽는 중학생이라. 와 ^^. 정신이 번쩍 드네요.

로쟈 2010-05-01 10:50   좋아요 0 | URL
네, 지젝을 읽는 고등학생까지는 제가 아는데, 갈수록 청출어람입니다.^^

아포지 2010-05-01 12:51   좋아요 0 | URL
중학생에게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한 마디 들은 것 같습니다.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로쟈 2010-05-02 16:56   좋아요 0 | URL
요샌 외국어를 잘하는 초등학생도 많고, 인문서를 읽는 중학생도 많다네요. 편차가 크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미지 2010-05-01 18:55   좋아요 0 | URL
우리 중학교 때, 그러니까 70년대에 사르트르나 까뮈를 읽었거든요... 근데 요즘 너무 암울한 상황과 경쟁 논리에 몰리다 보니, 그때 우리 나이의 요즘 아이들이 그런 책을 당연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는 불구 상태에 제가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오네요.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인디고 이끄시는 허선생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비판 정신과 함께 긍정적 실천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머리를 한 대 꽝 맞은 느낌입니다.

로쟈 2010-05-02 16:57   좋아요 0 | URL
네, 인디고 같은 성공사례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중앙게르마니아 콜로키움 일정

엊저녁에 중앙게르마니아 콜로키움의 발표가 있었다. '21세기 담론의 지형'이란 전체 주제에서 내가 맡은 건 '슬라보예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였다. '슬라보예 지젝과 '잃어버린 대의'에 대한 옹호'라는 발표문 가운데, 마지막 절은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에 실린 지젝의 글 가운데 후반부를 발췌한 거였다. 따로 주석을 붙일 만한 시간이 없었지만, 그냥 읽어도 대충 지젝의 주장을 따라갈 수 있다. 아이티의 지도자 아리스티드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한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지젝은 바로 아리스티드를 꼽은 바 있다. 왜 그런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더불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읽을 수 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주석은 따로 붙여볼 작정이다. 발표문에서는 '지젝과 민주주의'란 제목을 달았지만, 여기서는 책의 실린 제목을 붙여둔다.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 아이티의 혁명과 수난의 역사 혁명, 그리고 현실에 대한 개관은 177-180쪽을 참조할 수 있고, 아래는 186-196쪽의 발췌이다.

 

[이제 아이티로 가보면] 라발라스[당]의 투쟁은 원칙주의적인 영웅주의, 그리고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이 투쟁은 국가권력의 틈새로 물러나 거기서 ‘저항’하지 않고 영웅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또한 탈근대적 좌파의 모든 경향이 자신들에게 맞설 때,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불리할 상황에서 집권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필수적인 구조조정’을 법제화하기 위해 미국과 IMF에 의해 부과한 조치들에 제약당하면서도 아리스티드는 몇가지 정확하고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는 정책(학교와 병원 건설, 사회기반시설 확충,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대중들의 폭력과 결합시킴으로써 군부 패거리들에 맞섰다.  



아리스티드는 간혹 ‘페르 르 브뢴’(대중이 행하는 일종의 자기방어로서, 불타는 타이어를 목에 걸어둬 경찰의 암살자나 정보원을 죽이는 행위이다. 얄궂게도 이것은 포르토프랭스의 타이어 판매업자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모든 대중의 폭력행사 형태를 뜻하게 됐다)을 묵과하기도 했다.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사안으로 인해 아리스티드는 센데로루미노소나 폴포트와 동급 취급을 당했다. 1991년 8월 4일 연설에서 아리스티드는 열광하는 군중에게 “언제, 그리고 어디서 폭력을 사용할지”를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즉각적으로 라발라스의 대중적인 자경단 조직(키메라Chimeres)과 악명 높은 뒤발리에 독재정권의 암살조직(통통마쿠트tonton macoutes)를 비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늘 좌파와 우파를 ‘근본주의자’라고 동급 취급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하지만] 아리스티드는 이 자경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이름[키메라]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자경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빈곤 속에서, 심각한 위험상태에서, 그리고 만성적인 실업상태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구조적 불의, 체계적인 사회폭력의 희생자들이죠... 그들이 언제나 이 동일한 사회의 폭력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사람들에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처럼 대중이 절박하게 행사하는 폭력적인 자기방어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신의 폭력’의 실례이다. ‘선과 악 너머’에 있는 이런 행위는 윤리적인 것을 정치-종교적으로 유예시킨다. 일상의 도덕의식에 비춰보면 지금 언급하고 있는 행위는 살인이라는 ‘부도덕한’ 행위로만 보이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 행위를 비난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 행위는 국가와 경제가 수년, 수세기에 걸쳐 체계적으로 자행한 폭력과 착취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헤겔 역시 이와 동일한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사회(기성의 사회질서)가 어떻게 주체가 자신의 실체적 내용과 인정을 찾게 만드는 궁극의 공간이 되는지, 다시 말해서 어떻게 주관적 자유가 보편적인 윤리의 질서의 합리성 속에서만 스스로를 실현시킬 수 있는지를 강조할 때, 헤겔은 (명시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사태의 이면, 즉 이런 인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봉기할 권리 역시 갖는다는 사실을 암시했던 것이다. 만일 일군의 사람들에게서 체계적으로 자신들의 권리, 인격적 존엄성이 박탈당한다면, 바로 그 사실 자체에 의해 또한 사회질서에 대한 의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질서는 더 이상 그들의 윤리적 실체가 아니니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거나(그것은 우리가 맞서 싸우던 적과 우리를 똑같게 만든다)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는 저항을 위해 후퇴한다”라는 식의 양자택일은 거짓된 것이다. 양자는 다음과 같은 동일한 가정을 공유한다. 즉 국가형태는 우리가 알듯이 여기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장악하거나 그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뿐이다. 이때 우리는 레닌의 <국가의 혁명>이 주는 교훈을 당당하게 되풀이해야 한다. 즉, 혁명의 폭력의 목표는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변형시키고 그 기능방식과 토대와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는 그 교훈을 말이다. 바로 여기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핵심 구성요소가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일종의 (필연적) 모순어법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이 되는 국가형태도 아니다. 민중의 새로운 참여형태에 근거해 국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뒤바뀔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제로 갖게 된다. 숙청으로 사회의 전체 구조가 풍비박산 난 스탈린주의의 절정기에 새로운 헌법이 소비에트 권력의 ‘계급적’ 성격이 끝났음을 선포하고(과거에 배제됐던 계급 구성원들에게 다시 투표권이 주어졌다), 사회주의 정권들이 ‘인민민주주의’(이로써 사회주의 정권들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다)라고 불렸던 사실이 꼭 위선이었던 것만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듯 민주주의가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는 피대표자에 대한 대표의 구성적 과잉이 문제가 된다.

민주주의는 소외를 최소화할 것을 전제로 한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과 민중 사이에 재-현을 위한 공간이 최소화될 때에만 민중에게 책임을 질 수 있다. ‘전체주의’에서는 이 거리가 제거되고, 지도자가 민중의 의지를 직접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물론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민중은 훨씬 더 그들의 지도자에게서 소외된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이 결코 민주주의를 위하는, 그리고 ‘전체주의’를 거부하는 단순한 이유를 시사해주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궁극적인 문제는 “권력이 민주적으로 정당성을 갖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그 성격의 (비)민주성 여부와 무관하게, 주권권력 자체와 간련된 ‘전체주의적 과잉’의 특정한 성격(‘사회적 내용’)이 무엇이냐?”라는 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은 바로 이 수준에서 작동한다. 여기서 권력의 ‘전체주의적 과잉’은 ‘몫 없는 자들의 몫’의 편에 서 있는 것이지 위계적 사회질서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터놓고 말하면, 그 용어의 완전히 주권적 의미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은 ‘몫 없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몫 없는 자들’이 국가적 대표의 공간 자체를 자기들 방식으로 ‘비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민주주의의 철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방식이다”라고 썼을 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주주의가 서로 다른 정치 주체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텅 빈 틀(아돌프 히틀러 또한 어느 정도는 자유선거로 집권한 것이었다)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룩셈부르크는 이 텅 빈 (절차적) 틀 자체에 ‘계급적 편향’이 기입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규칙 변경,’ 즉 선거를 비롯한 여타의 국가기제들뿐만 아니라 정치공간의 논리 전체를 바꾸려는 그들의 움직임이 선거로 집권한 급진좌파를 좌파로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표식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의 기반인 헤게모니를 보장받으려면 그들은 민주적 형태의 ‘계급적 편향’을 올바르게 직관해 그에 따라야 한다.  

10. 05. 01. 

P.S. 아이티 혁명에 관한 책이 더 출간되면 좋겠다. 현재 소개된 건 <블랙 자코뱅>(필맥, 2007) 정도다. 아리스티드의 책도 더 나오면 좋겠고, 수잔 벅 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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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5-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 자코뱅의 저자인 제임스에 대해서는 앨릭스 갤리니코스<트로츠키주의의 역사>에 나오니 한번 참고하십시오.제임스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로쟈 2010-05-02 23:2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덧붙여, 아리스티드가 해제를 쓴 투생의 혁명론까지 '레볼루션' 시리즈에서 나왔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2024-04-04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첫 평론집 <눈먼 자의 초상>(문학동네, 2010)이 출간됐다. 개인적으론 추천사도 썼기에 인연이 없지 않다(물론 책보다 저자와의 인연이 먼저다). 이렇게 적었다.   

평론가 복도훈 하면 떠오르는 건 비평고원, 쌍수대인, 안면도, 백민석 등이다. 그리고 종로. 아마도 종로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고, 그에게 처음 들은 말은 라캉이었다. 그는 문학평론가로 등단했고, 나는 가끔 그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놀랐다. 평론가 복도훈은 내가 아는 섬사람 복도훈과 달랐다. 복도훈이라는 비평기계 속에는 혹 꼽추 난쟁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 철학과 이론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독해로 무장한 이 난쟁이는 그의 비평적 쟁투를 언제나 승리로 이끈다. 종언 이후의 문학, ‘산주검(undead)’으로서의 문학, 좀비로서의 문학과의 대결은 끝이 없을 것이기에, 그의 승리 또한 이제부터다. 

겸사겸사 몇 권의 평론집을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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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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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허문영 영화 평론집
허문영 지음 / 강 / 2010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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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극장의 유령들
김영찬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9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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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목소리들- 심진경 평론집
심진경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0월 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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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04-30 01:36   좋아요 0 | URL
...'거인의 무등에 올라탄 난장이'이기 때문에 '꼽추 난장이'인가요? 다른 의미가 있으신지 여쭤보고 갑니다. 잘 지내시죠?^^

로쟈 2010-04-30 01:43   좋아요 0 | URL
아,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 나오는 난쟁이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30 10:59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문학평론 중에서는 권명아 선생님 글을 좋아한답니다.^^ 예전에 문화사회학 시간에 과제로 '문학권력논쟁'(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듯한..단어 쿨럭) 준비할 때, 몇 권의 책을 사서 읽었는데..그 이후론 도통 문학평론집을 못 읽어봤네요. 장바구니에 몇 권 담아봐야겠다는. 추천 고맙습니다.

anathema 2010-05-01 00:20   좋아요 0 | URL
'문학권력논쟁'에서 비논리적인 설득력 없는 주장을 했던 집단이 바로 위의 책을 발행한 문학동네였지요.

2010-04-30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