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프레시안 books'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517141831§ion=03). 수주 전에 존 올콕의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 2013)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고 오늘 오전에야 쓴 것이다. 독서가 더디게 진행돼 리뷰도 예정보다 늦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생물학을 바라보는 입각점을 마련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프레시안(13. 05. 17) 얼음물 테러당한 하버드대 교수, '유전자 결정론자'?

 

존 올콕의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김산하·최재천 옮김, 동아시아 펴냄, 이하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사회생물학 논쟁'의 중간 결산 같은 책이다. 제목에 '다윈 에드워드 윌슨'이 들어간 건 군더더기인데(두 사람의 인명을 그렇게 병기한 의도는 어림해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원제는 좀 더 간명하게 <사회생물학의 승리>이고 2001년에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나왔다.

 

물론 과학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신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책이다. 사회생물학 쪽으로도 지난 10년간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나왔을 법하니까. 그럼에도 저자가 '승리'라는 말을 쓸 수 있었다면 그맘때에도 대세는 충분히 기울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까. 그렇다면 사회생물학 논쟁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에서 '사회생물학의 승리'를 말할 수 있는가가 일차적인 요점이겠다.

 

 

먼저 저자가 서두에서 묘사한 유명한 에피소드를 음미해본다. 1978년 2월 에드워드 윌슨이 미국과학진흥회의 연례총회에 참석했을 때 한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 머리 위에다 얼음물 한 주전자를 쏟아 부었다. 그러자 공모자들이 연단에 올라와 윌슨을 조롱하며 플래카드를 흔들어댔다.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교수이며 개미를 비롯한 사회성 곤충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학술회의장에서 당한 봉변의 전말이다.

 

 

요즘처럼 스캔들이 넘쳐 나는 시대에는 뉴스거리가 되기도 힘들지 모르지만 과학자사회에선 분명 흔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윌슨은 어째서 비난과 조롱의 표적이 된 것인가. '사회생물학'이란 말을 탄생시킨 1975년 작 <사회생물학>(이병훈 옮김, 민음사 펴냄) 때문이다(윌슨은 이 책으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란 별칭을 얻는다). "하등동물인 아메바의 군체에서부터 현대 인간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행동의 사회학적 기초를 면밀히 탐구한" 책이다.

 

윌슨의 정의대로라면 사회생물학은 '모든 사회성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대한 체계적 연구'이다. 이것이 왜 문제되는가. 그 '사회성 동물'에 인간도 포함돼서다. 윌슨은 대형 말벌인 타란툴라 호크의 사회행동이나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똑같은 학문적 대상으로 다루고, 그렇게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생물학>의 마지막 장을 인간에 할애하는데 그래봐야 전체 분량의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사회생물학 1,2>가 번역돼 나왔을 때 관심을 갖고 읽은 대목은 주로 그 마지막 장이었지만, 그의 '상식적인' 주장은 일부 동료 학자들과 대중에게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인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이론을 창안했다"는 비난이 그에게 퍼부어졌다. 소위 '사회생물학 논쟁'의 발발이다.

 

 

 

사회생물학 논쟁과 관련해서는 프란츠 부케티츠의 <사회생물학 논쟁>(김영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김성한 옮김, 연암서가 펴냄), 국내 학자들이 쓴 <사회생물학 대논쟁>(김동광·김세균·김환석 외 지음, 이음 펴냄) 등도 참고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책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스티븐 로우즈·R. C. 르원틴·레온 J. 카민 외 지음, 이상원 옮김, 한울 펴냄)이다. 놀랍게도 저자들 가운데는 하버드 대학교의 동료 교수인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유전학자 리처드 르원틴 등이 포함돼 있었다. 과학계에서 윌슨만큼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명망가들이 사회생물학에 대해 나치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공격했고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데 성공했다.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문구 자체가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유전자 결정론이란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준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결정론은 사회생물학 반대론자뿐 아니라 에드워드 윌슨이나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해 전문 진화생물학자라면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반대 진영에서는 '사회생물학=유전자 결정론'이라는 프레임을 교묘하게 써먹었다.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손쉬운 비판이 여론의 동조를 끌어내는 데 유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고의성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사회생물학 논쟁의 시작은 '결정론으로서 사회생물학'이라는 허수아비 비판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었다.

 

저자 존 올콕은 윌슨의 회고적 분석에 따라서(윌슨의 자서전 <자연주의자>(이병훈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참고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 논쟁이 1970년대 중반 미국 대학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진행됐다고 본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캠퍼스 내 좌파 교수와 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따라 '인간의 본성'이란 개념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사회를 개조하면 자연스레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관점이었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념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였고 "가난한 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윌슨을 포함해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배계급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였다. 사회생물학이 오해와 부정적인 평판을 덮어쓰게 된 배경이다.

 

국내에도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번역되고 연이어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소개됨으로써, 자세한 학문적 논쟁을 알 수 없는 독자로서는 <사회생물학>의 무리한 주장(유전자 결정론)이 다른 과학자들에게 비판받은 것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벌써 20년 전 상황이다.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바로 그러한 이해를 교정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저자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회생물학이 불필요한 적개심을 얻는 데 공헌한 잘못된 오해들을 규명하고 제거하여 사회생물학 연구의 진정한 본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저자가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오해들을 규명한다고 하니까 어떤 오해들인지에 대해서도 일별해볼 필요는 있겠다. 다음의 여덟 가지이다.

(1)사회생물학은 윌슨 개인의 새로운 이론이다.
(2)사회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을 주 관심대상으로 삼는다.
(3)사회생물학은 종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형질의 진화를 다룬다.
(4)사회생물학은 어떤 행동 형질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전제에 기초한 환원주의적 분야이다.
(5)사회생물학은 인간과 다른 동물의 행동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비교한다.
(6)사회생물학은 검증되지 않고 검증 불가능한, 그럴싸한 이야기를 생산하는 데 특화된 공론이다.
(7)사회생물학은 학습된 행동이나 인간의 문화적 전통을 설명하지 못하며 오직 경직된 본능만을 다룬다.
(8)사회생물학은 어떤 행동을 '자연적' 혹은 '진화된' 것으로 명명함으로써 좋지 않은 인간의 행동을 모두 정당화한다.

사회생물학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독자라면 당연히 이 책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독서 면제니까. 하지만 사회생물학에 대해 좀 들어본 적이 있고, 뭔가 미심쩍다고 생각해온 독자라면 이 책은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다.(다만 저자가 에드워드 윌슨이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필력을 자랑하는 건 아니어서 정색하고 읽어야 한다는 조건은 붙는다. 개인적인 독후감으로는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더 재미있다.)

 

가령 사회생물학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자이자 그에 대한 오해의 유포자이기도 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견해를 보자. 그는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모든 인간행동의 범주가 가능하지만 어느 것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뇌를 상정하는 생물학적 잠재성이라는 사상과 특정 행동적 특질에 해당하는 특정 유전자를 상정하는 생물학적 결정론 사상을 대치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윌슨의 차이를 '생물학적 잠재성' 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대립으로 규정한다. 열렬한 다윈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굴드는 인간의 문화적 발전에 대해서만큼은 진화의 과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사회과학자들이 주로 이러한 입장에 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굴드는 생물학자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이렇듯 '문화가 전부'라고 보는 입장이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빈 서판 이론'이고, 문화결정론이다.

 

일례로 집단학살에 대한 설명을 비교해보자면, 굴드는 우리의 뇌가 어떠한 경향성도 갖고 있지 않기에 집단학살은 보편적이지 않고 그 분포양상도 무작위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살인적인 집단의 수만큼 평화로운 집단이 있다"는 게 굴드의 생각이고 예측이다. 굴드가 보기에 결정론적 생물학(사회생물학)은 인간에게는 집단살인 유전자가 있고 그래서 집단살인은 보편적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게 보는 사회생물학자는 없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전형적인 허수아비 비판이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유전자는 문화를 가죽 끈으로 묶어놓고 있다. 끈은 상당히 길지만, 가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될 것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굴드는 이런 정도의 입장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모든 것은 유전적 성향과 환경의 만남에서 결정된다.

 

굴드의 예측과는 반대로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에서 이용한 데이터를 참고하여 집단학살이 역사가 기록된 이래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일어났다는 걸 밝힌다. 결코 20세기 문명의 발명품이 아닌 것이다. 더불어 "아마도 집단학살의 가장 흔한 동인은 군사적으로 강한 자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의 당을 차지하려고 하면서 그들의 저항과 맞설 때일 것"이라는 다이아몬드의 지적대로, 집단학살에는 어떤 패턴이 있다. 곧 집단학살이 임의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다른 자들이 갖고 있던 중요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 그러한 성향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사회생물학의 민감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강간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다른 동물들에서나 인간에게서 강간이 유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진화적 적응 전략이라고 본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강간이 성적 욕망과 무관하며 단지 잔혹한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힘과 지배의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강간을 '자연적'이라고 여길 경우 강간범을 사회가 용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만약 강간이 성적 욕망과 무관하다면 피해 여성의 분포는 살인 피해자의 연령 분포와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식력이 가장 높은 연령대에 집중돼 있다. "24세 여성이 강간을 당한 확률은 54세 여성이 당할 확률보다 약 4~20배 정도 높았다"고 보고된다. 강간이 성욕과 무관하다는 주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통계다.

 

강간은 남성에게 진화한 심리적 기전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작동하지는 않는다. 강간이 적응적인 조건부 전략이라는 가설에 따르면 강간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처벌의 가능성이 낮은 조건과 관련성이 있다. 여성의 의지에 따라 짝을 맺을 가능성이 적거나 없는 남성에게서, 그리고 전투 중인 병사처럼 처벌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강간이 발생할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현재의 환경은 우리의 뇌가 진화한 환경과 다르며 강간 같은 행동이 유전자에 이익을 가져다줄 확률도 낮아졌다. 게다가 자주 오해받는 것처럼 어떤 행동이 '자연적'이라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생물학이 어떤 행동을 진화적 적응 행동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좋지 않은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오해는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진화된 심리의 독재'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사회생물학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훨씬 더 심화시켜준다. 교양학술서의 난이도를 갖고 있는 책이지만 "사회생물학의 내용과 역사에 대한 명쾌하고 유창하며 정확한 저작"이라는 에드워드 윌슨의 평가에 어긋남이 없다.

 

13. 05. 17.

 

P.S. 리뷰를 쓴 김에 번역본의 오류도 한두 가지 지적한다. 책의 장제목이나 절제목은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새로 붙여질 수 있지만(가령 9장의 원제는 '사회생물학의 실제 적용(The Practical Applications of Sociobiology)'이지만 번역본에서는 '인간과 사회생물학'이라고 붙여졌다) 9장의 첫 절 제목이 '집단학살'인 건 착오로 보인다. 그런 내용이 안 나올 뿐더러(집단학살은 7장 끝부분에 나온다) 원제는 '사회에 대한 위협(A Danger to society?)'이다. 번역도 한 군데 지적하면, 7장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을 번역본은 이렇게 인용했다.

 

"진화적 관점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에 대해서 뭔가를 가르쳐줄 때이다. 가령 학살이 어떤 유전자에 의해 유발된다고 해도... 인류 역사는 결정론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을 입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적 양식의 모든 특징이 결정적이기보다는 유연성을 보인다는 점을 통에서 우리는 학살과 같은 문화적 현상이 왜 진화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209쪽)

마지막 문장의 '통에서'는 '통해서'의 오자다. 처음 두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An evolutionary speculation can only help if it teaches us something we don't know already - if, for example, we learned that genocide was biologically enjoined be certain genes... but the observational facts of human history speak against determination and only for potentiality."(143쪽)
번역본은 강조한 if-절을 첫 문장과 분리해서 이해했는데, 내 생각엔 첫 문장에 이어지는 것이다. 굴드가 보기엔 집단학살이 특정 유전자에 의해 유발된다는 식이면 진화적 고찰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사는 결정론보다는 잠재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집단학살 유전자'가 집단학살을 유발한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게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는 굴드의 주된 이유인데(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면 사회생물학,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말해줄 게 없다고 그는 믿는다?!), 본문에서 지적한 대로 이건 굴드의 편의적인 이해이자 허수아비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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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시간을 원고를 쓰느라 보내고 겨우 허리를 펴고 한숨 돌린다. 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지상 최대의 철학 쑈>에 눈길이 멈춘다. 정확하게는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다른, 2013)다. 그래픽노블 철학서.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고의 그래픽노블. 그동안 딱딱한 교실에만 갇혀 있던 철학을 우리 삶 곁으로 끌어내려 친숙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대의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데리다까지, 역사상 최고의 지성들의 삶과 사유를 한눈에 알기 쉽도록 재치 넘치는 입담과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정리한다. 무겁고 고리타분할 거라 생각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언어와 기법으로 책 한 권에 알차게 풀어냈다.

 

그래픽노블 철학서로는 러셀의 철학(<수학의 원리>)을 다룬 <로지코믹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11)가 좋은 반응을 얻은 적이 있다. 유사한 종류는 '철학 스케치' 시리즈가 <스피노자의 우화>(열린책들, 2010)부터 <들뢰즈와 가타리의 무한속도1>(열릭책들, 2012)까지 나온 바 있지만, 철학사 전체를 다룬 책은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폴커 슈피어링의 <철학 옴니버스>(자음과모음, 2013)의 그래픽노블판이라고 할까. 암튼 책은 흥미로워 보이고, 'Action Philosophers'란 원제가 '지상 최대의 쑈'로 탈바꿈한 것도 창의적인 개명 같다. 범위도 넓어서 소크라테스부터 데리다까지 다루면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에인 랜드 등도 포함시켰다. 연휴에 손에 들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13. 05. 17.

 

마이리뷰: 87편
마이리스트: 515편 
마이페이퍼: 3432편 
즐겨찾기등록: 4000명

 

P.S. 점심을 먹어야겠다. 서재 소식 한 가지. 오늘로써 즐찾이 4000명이 됐다. 찾아보니 2010년 9월에 3000명을 넘어섰으니 2년 8개월만이다. 나대로 자축해본다. 5000명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한계치가 있을 것이기에), 애는 써봐야겠다. 그간에 관심을 가져준 알라디너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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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좀 일찍 먹고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갑과 을의 나라>(인물과사상사, 2013)란 제목에 눈이 뜨였다. 이 순발력! 저자는 짐작할 수 있는 대로 강준만 교수다. 책의 부제는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소개에 따르면 "<갑과 을의 나라>는 그동안 ‘지역감정’, ‘언론 권력’, ‘강남 좌파’, ‘안철수 현상’ 등을 이슈화하며 한국 사회의 명암(明暗)을 추적해온 강준만이 지금껏 대한민국을 지배해왔고 이제는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갑을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의 '스크랩 공장'이 버티고 있기에 이런 이슈 도서도 단기간에 출하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겸사겸사 저자가 근년에 펴낸 한국사회 비평서 혹은 문화사 관련서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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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나라-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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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상업주의- 정치적 소통의 문화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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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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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2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교양인, 2013)을 읽고 적었다. 전작 <전쟁과 선>(인간사랑, 2009)와 같이 읽어도 되고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전쟁과 선>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지젝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에서였던 듯하다... 

 

 

 

주간경향(13. 05. 21) 일본 군국주의와 선불교는 어떻게 결합했나

 

미국의 불교학자이자 승려이기도 한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은 불교에 대해서, 더 넓게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원제는 <선과 전쟁 이야기(Zen War Stories)>로 전작 <전쟁과 선>(인간사랑·2009)의 속편이다. 전작은 일본의 고명한 선승들이 군국주의와 전쟁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걸 폭로하여 일본뿐 아니라 서양의 선 수행 공동체에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하지만 저자의 초점은 폭로가 아니라 불교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법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특정 선사가 군국주의자들과 맺은 관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자는 먼저 일본의 많은 선불교 지도자들이 1930∼1940년대에 선을 무엇이라고 믿고 이해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해준다. 일례로 나카지마 겐조 선사는 15세에 정식으로 승려가 된 인물로 21세 때 자진해서 입대하여 일본제국 해군에서 약 10년간 복무했다. 그가 80세를 넘기고 쓴 회고록에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경험담이 포함돼 있는데, 전우들의 비참한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느끼면서도 일본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고통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겐조 선사는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대동아전쟁의 잘못은 전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패배에 있는 것처럼 기술했다.

이런 태도는 겐조 선사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그의 스승인 야마모토 겐포 선사의 설법에 따르면 “절대자인 부처님께서 사회의 화합을 깨뜨리는 자들이 있을 때 그들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듯 깨달은 사람들은 선악과 생사를 초월한다는 선불교의 믿음이 겐조 선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과적으론 이기주의적 무관심을 낳았다.

 



선악과 생사의 초월이 선 수행자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군인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선불교와 군국주의가 자연스레 결합될 수 있는 배경인데, 1942년 당시 ‘전쟁의 신’으로도 불렸다는 육군 장교 스기모토 고로는 자신에게 선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백하면서 “선이 군인에게 필요한 이유는 일본인, 특히 군인이 모두 자아를 없애고 자기를 제거하여 군신일여(君臣一如)의 정신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미천한 나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생관이 천황 숭배와 결합되면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 된다.

전쟁 말기 일본 선불교의 지도적 인사들은 천황폐하의 1억 신민은 모두 명예로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적이 보이면 죽여야 한다. 거짓을 타파하고 진실을 확립해야 한다. 이것은 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면서 모든 국민이 결사항전에 나서는 ‘국민 절멸 체제’를 정당화했다. ‘나’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은 마당에 적의 생명이 중요할 리 없었다. 군인의 최고 영예는 죽어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살아서 포로로 잡히는 일은 가장 큰 치욕이었다. 일본군이 전쟁포로들을 유난히 경멸하고 학대한 것은 그런 이유, 곧 그들이 명예롭게 죽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천황을 모시는 ‘황도 불교’가 궁극에는 ‘불교 파시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저자는 보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윤리의 정립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것은 민족적 정체성이나 국가적 정체성 혹은 종교적 정체성을 초월하는 윤리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윤리다.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인이라면 온갖 ‘성전(聖戰)’이라는 미명 아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13.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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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23-01-07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러시아문학에 관한 선생님의 강연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올해도 더욱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로쟈 2023-01-08 21:0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톨스토이의 <부활>(문학동네, 2013) 새 번역본이 출간된 것과 맞물려 연극으로도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 전당에서 5월 18일부터 6월 2일까지 공연되는 고선웅 연출의 <부활>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으면서 겸사겸사 번역된 <부활>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개인적으론 톨스토이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터여서 연극도 관람해볼 참이다.   

 

 

'푸르른 날에' '늙어가는 기술' '리어 외전' 등 재기발랄한 연극 어법을 선보인 연극연출가 고선웅(45)이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소설 '부활'을 무대로 옮긴다. 고 연출이 예술감독인 경기도립극단과 예술의전당이 합작했다. 18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2013 예술의전당 토월연극' 시리즈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보이체크' '갈매기' '벚꽃동산' 등을 무대에 올리며 정통연극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

'부활'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1899년 발표 당시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고 연출은 러시아 관객에게는 익숙한 '부활'의 함축된 극 전개를 한국의 관객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극본을 각색했다. 자신의 기존 연출법과 다른 사실주의에 주력하되 미장센은 연극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귀족과 창녀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 타락과 육체적 타락에서 부활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에 대해 "이 시대, 가진 자들의 역할과 의무를 생각하게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네흘류도프 공작'은 뮤지컬 배우 서범석, 순진한 처녀에서 매춘부로 마침내 살인범으로 전락하는 '카주샤 마슬로바'는 예지원이 맡았다. 원작에 묘사된 103명의 배역은 이승철, 류동철 등 경기도립극단 배우 19명을 포함해 총 26명이 연기한다. 폴란드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라 바실리코프스카, 작곡가 미하엘 슈타우다허, 안무가 박호빈 등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이 힘을 보탠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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