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에 대하여

13년 전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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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을 독서인, 평균보다 많이 읽는 사람을 독서가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인간‘이 붙으면 의미가 묘해진다. 독서인의 다른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이란 말의 뉘앙스 때문에 뭔가 못할 짓을 하는 이를 가리키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가령 내게는 ‘독서중독자‘로 읽힌다(흔하게는 ‘책벌레‘가 있었고 조금 격상하여 ‘책중독자‘라고도 불렸다).

이봉호의 <독서인간의 서재>(울력)의 부제가 ‘상수동 독서중독자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인 것은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독서인간의 서재>는 그 독서중독자의 서평집이다. 내가 붙인 추천사를 옮긴다.

˝저자 이봉호는 ‘독서중독자’이다. 책을 손에서 놓을 줄 모르는 이가 독서중독자라면, 거기에 더하여 책에 관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도 독서중독자라 불러 마땅하다. <독서인간의 서재>는 독서 편력의 기록이면서 책에 관한 끝이 없는 이야기다. 문학과 예술, 철학과 사회비평 등 다양한 분야와 난이도의 책을 다루지만, 저자의 눈길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어조는 가지런하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도 아주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책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까칠한 서평가의 딱딱한 서평집에 물린 독자들을 따듯하게 다독여 줄 책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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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들도 이제는 서가의 한 칸을 차지하고도 남는데, 지난주에 한권이 추가되었다. 부르크하르트 슈피넨의 <책에 바침>(쌤앤파커스).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가 부제다. 물론 그 자명한 사물은 책이다. 책은 말 그대로 책에 대한 헌사(오마주)다. 



















"잊혀지고, 버려지고, 수집되었다가 다시 내팽개쳐지고, 온전치 못하더라도 사랑받았던 책들, 그렇게 기꺼이 우리에게 도달하려 하는 모든 책들에 바치는 헌사. 종이책 외에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던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제 60대에 접어든 독일의 한 작가가 ‘종이책’을 둘러싼 아련한 기억들을 소환한다."


이 '헌사'의 행렬에 동참하라는 제안을 받고서 나도 한 꼭지를 보탰는데, 서두에 '미친 사랑의 한 사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그리고 뒷표지에는 그 일부가 발췌돼 들어갔다. 


"장서가로 신분이 바뀌게 되면 책은 상전이 된다. 분명 책은 내가 수집하지만 어떤 책이 자기 보존을 위해서 나를 고용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뿔싸, 책에 바쳐진 제물이 되는 것인가! <책에 바침>을 덮으며 복잡한 심경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미친 사랑의 한 사례가 되리라."


물론 책에 미친 동료들에 관한 책들도 이미 나와 있다. 니콜라스 바스베인스의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같은 책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경우엔 '곱게 미친 사랑의 한 사례'가 되는 것인가...


20.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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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20-02-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생 끝나지 않을 짝사랑중입니다.
내 손안에 있는것도 온전히 내것인것 같지 않고
가질 수 없는 것들은 가질 수 없어 애가 타고~


로쟈 2020-02-09 21:16   좋아요 0 | URL
^^
 

올 출간 예정작 가운데 경제분야의 최고 기대작은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불어판은 작년에 나왔고 영어판이 최근에 나왔는데(나는 이번주에 구입했다) 영어판 기준으로 분량이 1093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짐작에 한국어판은 4월 총선 이후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총선까지는 화제작들의 출간이 미뤄질 것이다).

<21세기 자본>에서도 그랬지만 피케티의 강점과 미덕은 현 세계의 불평등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동원하는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현단계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고 어떤 수준의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무엇이 어느 정도로 문제인가를 알게 되면 비록 쉽지 않다 하더라도 해결의 모색을 시도해볼 수 있다. 최악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를 경우다.

그런 면에서 피케티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번 <21세기 자본>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이데올로기>도 충분히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근대경제사에 대한 이해가 세계문학을 이해하는 데 요긴하면서 필수적이기에 이번 대작을 더 반기게 된다. 한국어판의 출간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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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지방강의가 연기된 덕분에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자랐던 수면을 보충하고 관심 주제의 논문을 몇 편 읽었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주제로 관심이 뻗어나가 있기는 한데 최근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추수밭)을 낸 걸 계기로 해서(나름대로는 정식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문학 100년에 관해 생각을 모으는 중이다(군사적 용어를 쓰자면 병력을 증강배치하고 있다).

물론 이 분야의 난점은 너무 많은 책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초점을 좁히고 선별할 수밖에 없는데 나로선 익숙하면서 믿음직한 길잡이의 손을 다시 잡게 된다. 바로 재작년에 타계한 비평가 김윤식 선생이 그에 해당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두번째 학기에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선생의 강의를 수강하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강의를 들었다(국문과 대학원에서의 강의까지). 도서관에서는 1970-80년대에 출간한 여러 논저들을 그래도 꽤 읽었다고 기억한다. 30여 년이 지나서 다시금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차이라면 이제는 내가 그때 선생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

나의 문학수업기에 대해서는(편집부에서 정한 이번 책의 제목에는 ‘강의‘ 대신에 ‘수업‘이 들어가 있는데 나로선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가끔씩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오늘 생각이 미친 건 1930년대생 비평가들과의 만남이다. 내게 중요한 이들은 다섯 명이다. 생년순으로 하면 이렇다.

이어령(1934)
유종호(1935)
김윤식(1936)
김우창(1937)
백낙청(1938)

이 가운데 직접 강의를 들은 비평가는 김윤식이 유일하고 다른 이들과는 책으로 만났다. 그러니까 독자와 저자로서. 한 세대의 연배차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50년 이상 살아온 시간대가 겹치니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들의 데뷔작은 이렇다.

이어령, 저항의 문학(1959)
유종호, 비순수의 선언(1962)
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1973)
김우창,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
백낙청,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978)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20대의 나의 생각으로 한국에서 비평을 한다는 것은 이런 책들을 읽고 이와 비슷한 책을 쓴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에 김윤식과 김현(1942-1990)이 공저한 <한국문학사>(1973)가 추가되어야겠다. 곧 한국문학과 문학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들 저자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들과 씨름한다는 뜻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읽고 배운 비평가가 김현과 김윤식이어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생각과 말을 흉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나서 나는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실도 확인한다. 가령 최근에 현대시 강의와 관련하여 읽은 유종호, 김윤식, 김현의 평론들에서 한수 배우기도 했지도 이견도 제시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대로는 지난 30년의 공부 성과다. 물론 이 분들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론과 작품론에 해당하는 강의는 매일같이 하고 있지만 문학평론이나 비평가에 대한 강의는 해보지 않았다(지젝 강의가 예외라면 한국 비평가로 한정하겠다). 다작의 저자들이라 이들의 전모를 강의에서 다루기는 어렵겠지만 대표 평론서나 평론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오래전에 주로 도서관에서 읽었던(구입한 책도 꽤 된다) 김윤식 선생의 책들을 중고로 상당수 구입했다. 주로 1970-1980년대 저작들인데 어디까지 다시 읽을 것인지 조만간 견적을 내보려 한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근대문학에 대해서 내가 어디까지 강의하고 어떤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가늠해봐야겠다. 30여년 전에 들었던 강의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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