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책과 서가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임수식 작가의 전시회 '책가도'가 11월 3일(수)-11월 14일(일)까지 종로의 갤러리진선에서 열린다.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어서 개인적인 인연도 없지 않다. 내주 오후엔 오랜만에 잠시 전시회 구경을 가보려 한다. 간단한 단신을 스크랩해놓는다. 

아시아투데이(10. 10. 28) [투데이갤러리]임수식의 '책가도060' 

임수식 작가의 작품에는 색깔과 크기가 다른 책들이 다양한 형태로 책장에 꽂혀져 있다. 그가 꼼꼼하게 그려낸 '책가도' 한 개인이 산발적으로 읽은 책들이 결국 현재 그의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책에 대한 의인화를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 책장에 가로놓인 책들은 장기간 누워서 잠에 빠져있기도 하고, 고단하다는 듯 기대어 서서 피곤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숨 막힐 듯 꽉꽉 붙어사는 한편, 호화롭게 한적함을 만끽하는 책들도 있다. '책가도'의 책들은 인간 생애의 다양한 단면을 선보인다. 갤러리진선(02-723-3340)  

10.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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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0-11-0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알겠습니다...그렇군요...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오는 11월 13일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분신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때맞춰 각 언론마다 지난 40년의 세월과 현재의 노동현실을 재조명하는 특집기사을 마련하고 있다(경향신문의 '왜 다시 전태일인가' 연재 참조). 이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책 세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모아놓는다(<서울과 노동시>(실천문학사)는 미간이다).      

경향신문(10. 11. 02) 노동자 피땀으로 세워진 빈곤과 차별의 도시 서울

“나는 평화시장의 일급 미싱사/ 손이 안 보이도록 옷을 만들지…이 옷을 누가 입을까 나는 관심이 없어/ 죽어라 뺑이치며 미싱만 밟을 뿐/ 이 옷이 얼마에 팔릴까 나는 몰라/ 하루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밀려드는 잠 쫓으려 타이밍을 먹고/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꼬집어 옷을 만들지/ 미싱을 타는 지금은 철야 이틀째”(김해자 ‘미싱사의 노래’)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운동에 불을 붙였고, 70년대 이후 많은 노동시들이 쏟아져나오게 된 모태가 됐다.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실천문학사에서 일제 시대인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동시들을 한데 모았다. 청량리와 서울역, 평화시장과 구로공단,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도시 공간이 노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노동시를 통해 바라보는 작업이다. 실천문학사는 오는 13일 ‘서울과 노동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임화부터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최근 시집을 출간한 송경동 시인까지,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90년에 걸쳐 서울을 배경으로 창작된 노동시 300여편이 수록됐다.

1920년대부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노동시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식민지 수도 경성은 근대적 도시로 변화하고 있었으며 한쪽에서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거리가 생겨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도시빈민들이 토막을 짓고 살았다. 이 시기에는 ‘카프’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 ‘프로시’라는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에서 시를 창작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노동시와 경성의 만남은 농촌의 빈곤화와 경성의 근대화 과정이 중첩되면서, 경성에 모여든 농촌 출신 빈민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가 임화의 ‘네 거리의 순이’, 백철의 ‘날은 추워오는데’, 오장환의 ‘수부’ 등이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노동시의 ‘침체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집권하면서 진보적 목소리는 억압당했고 노동시들은 ‘서랍속의 불온시’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많은 시인들이 노동자와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모습들을 시로 표현해냈다. 이시영은 ‘후꾸도’에서 도시에서 좌판을 벌여 먹고 사는 사내의 과거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 농촌공동체의 따뜻함을 도시의 삶과 대비시킨다. 농촌과 도시라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으로 자리잡는데, 이는 정호승의 ‘마지막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며’, 정희성의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노동의 생산성과 활력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쓰여졌다. 김광규는 ‘쓰레기 치는 사람들’에서 쓰레기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들로 노동자들을 형상화했고, 김지하는 ‘서대문 101번지’에서 흙과 노동의 싱그러움을 노래했다.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70년대의 노동시들은 직업 시인들에 의해 쓰여지며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노동이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성과에 대해서 침묵하며 정치·사회적인 것과 계급노동자의 얽힘에 대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노동시는 ‘르네상스’를 맞는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이 이 시기에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1980년대는 군사정권의 파시즘 체제와 자본의 무한 확장이 결속하여 만들어낸 시대”라며 “이를 심층에서부터 비판한 것이 노동시”라고 말한다. 박노해, 백무산이 대표 주자였으며 박영근도 “노동이란/ 굶주림의 추억으로부터 사슬의 두려움으로부터 일어나/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땅에 서는 것이다”(‘노동2’)라고 읊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황규관, 송경동, 문동만, 김사이 등의 시인들은 도시의 불모적 삶과 노동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송경동은 “아침이면 다시 지하방에서 솟아오른 사람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팔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 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혀질까 두렵다”(‘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고 노래했다. 안현미는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거짓말을 타전하다’)며 노동과 시쓰기를 병행해온 여성 시인의 성장통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또한 최근 하종오 등의 시인들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포괄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성호는 “서울에서 쓰여진 노동시편들은 길음동, 이태원, 평화시장, 화곡동, 구로동, 아현동을 돌면서 고되고 핍진한 노동 현실을 일관되고 견고하게 증언해왔다”고 평했다.

<서울과 노동시> 편집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노동자로서의 계급 의식이 선명하지 않았을 당시의 서울, 노동자 계급의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을 무렵의 서울, 계급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진 서울, 계급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 계급이 갖는 욕망에 주목해야 하는 서울 등 노동자와 서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며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욕망의 풍경을 통해 서울을 과장되지 않게 정직하게 응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영경 기자)  

문화일보(10. 11. 01) [AM7] ‘88만원 세대’ 노동의 의미를 묻다 

올해 11월13일은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을 사실상 최초로 주도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근로 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의 기준이다. 그러니 전태일의 외침은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등 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가 힘을 합해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응원하기 위한 ‘너는 나다’(손아람, 하종강 외)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나라들 중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영광스럽게도’ 1위다. 1,600만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어선 유일의 나라다. 1990년대에 비정규직을 많이 늘렸던 나라들이 2000년대 들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비정규직 수를 점점 줄이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도 줄여가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불명예 1위는 또 있다. 연간 노동 시간, 성별 임금격차,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 등도 모두 1위다. 40년 전 전태일은 하루 열다섯 시간의 중노동을 줄이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를 자랑할 정도가 된 지금, 젊은이들은 노동시간을 더욱 늘리기 위해 투쟁한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청년층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여전히 30%대다. 전국 600여 개의 편의점을 조사해보니 66%가 넘는 곳에서 4110원의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청년들이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의 ‘알바’를 동시에 여러 개 뛰어도 적자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몸 혹사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임금에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등장해 개인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조차 힘겨운 사회적 구조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학점, 자격증, 토익, 자기계발, 외모 등에 어떤 세대보다 열심이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열에 아홉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것인가라는 ‘사치스런(?)’ 고민이 아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전태일의 후예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공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이 책은 이 시대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한기호_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Weekly경향(10. 11. 02)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펴낸 엄기호씨 

<이것은 왜 청춘이…>는 문화인류학 강사인 엄기호씨(39)가 덕성여대·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20대의 삶, 즉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 등을 토론하고 공유한 기록이다. 20대를 다룬 책은 많다. <88만원세대> 이후 꽤 많은 ‘20대’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왜 또 20대일까. 



책을 쓴 이유는.
“나 역시 그동안 출판된 20대, 대학생에 대한 담론 대부분을 섭렵했다. 솔직히 나는 그 ‘20대 담론’이 불온하다고 생각한다.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20대는 이렇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20대는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금의 20대가 소비지향적이 되었다든지, 탈정치화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내가 만나본 학생 중에서 이를 테면 G세대로 호명되는 그 20대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비판의 대상에는 <88만원세대>도 포함되는가.
“<88만원세대>가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돌려서 생각해보자. 왜 갑자기 88만원세대가 사회문제가 되었나.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살았던 애들이 못살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사실 명문대를 제외하고 지방대는 1997년 IMF 이전에도 88만원세대다. 부당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실제의 보편적 대학생들은 각종 세대론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20대와 다르다는 건가.
“이를 테면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쓰는 조건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은 일부 잘사는 집을 제외하고 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비도 워낙 비싸니까 부모가 주는 돈으로 감당 못한다. 생활비도 높다. 아주 기본적인 휴대전화나 교통비만 하더라도 훌쩍 10만원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도 갖지 말고 버스도 타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20대는 항상적 빈곤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내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요즘 애들’은 누구냐는 것이다. 불온하다고까지 느끼는 것은 애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는 건 자기네들 살고 있는 삶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처럼 쓰는 것이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지금 쟤네가 어떻게 사는지 비교해야 하지 않나.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들(20대를 비난하는 윗세대)도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면 솔직하게 각자가 어떻게 지금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서로가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에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논의될 수 있다.” 

10. 11. 02.  

 

P.S. 벌써 오래전 영화가 돼버렸는데(영화 촬영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건만)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한 장면을 찾아봤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당시 조감독이던 이창동 감독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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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03 09:40   좋아요 0 | URL
사회가 그때나 지금이나 불공정하긴 매 한가지라서가 아닐까요?

자꾸때리다 2010-11-03 17:39   좋아요 0 | URL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전히 유효한 말 아닌가요? 다만 유복한 가정 아이는 부모 카드로 핸드백 사고 돈 없는 아이는 뼈빠지게 알바해서 핸드백 사고... 소비지향이라는 건 변함 없죠. 한 사람의 20대로서 20대 개x끼론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절망적이게... 그게 20대 자체의 문제이건 486의 탓이건...

커뮤니티활동시 2010-11-03 19:44   좋아요 0 | URL
소비 지향적인 것은 다분히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뼈빠지게 알바해서 핸드백을 산다기보다 오히려 생활비 학비 대는 데도 급급한 게 문제 아닐까요?
 

박노해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를 드문드문 읽다가 '자기 삶의 연구자'란 시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삶은 다른 그무엇도 아니라네/ 삶의 목적은 오직 삶 그 자체라네"는 시구 때문이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데, 보통의 '혁명시인'들은 그렇게 노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채롭다(그들은 '미래'를 노래한다). 하긴 그가 노동운동가에서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지 오래다. 아무려나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엔 문맥과 무관하게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자기 삶의 연구자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한다네
시장의 전문가와 지식장사꾼들이
나를 소비자로 시청자로 유권자로
내 꿈과 심리까지 연구해 써먹는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 모든 행위가 CCTV에 찍히고
전자결제와 통신기록으로 체크되듯
내 가슴과 뇌에는 나를 연구하는
저들의 첨단 생체인식 센서가 박혀있어
내가 삶에서 한눈팔고 따라가는 순간
삶은 창백하게 빠져나가고 만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것 

삶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네
삶의 목적은 오직 삶 그 자체라네
지금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토록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1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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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11-0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료 재건 부대가 가서 정말 의료, 재건에 힘써줄 거라고 저 순진한 사람이 믿는 걸까요?

로쟈 2010-11-01 14:37   좋아요 0 | URL
시인은 본래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영악한 시인도 몇 되지만...

비로그인 2010-11-0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보도 후지고 매력 없으면 지는 겁니다”라는 박노해 인터뷰 한겨레 기사를 읽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6443.html

글샘 2010-11-01 14:15   좋아요 0 | URL
진보는 항상 후지고 매력 없는 건데요... 일제시대에 독립군... 뽀대났을까? 저 사람은 사회주의가 매력 있어서 했던 모양이에요. 에고... 계급적 사고를 못하는 사람의 한계랄지... 진보는 못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라서, 늘 후지고 매력없는 쪽일텐데... 보수가 오히려 번지르르하고 멋지고 우아하죠. 매력투성이고...

로쟈 2010-11-01 14:35   좋아요 0 | URL
진보가 후지고 매력없는 쪽이란 건 일리가 가는 말씀인데, 그렇다고 보수가 멋지고 우아하다는 말씀은 생소하게 들립니다. 김규항식으로 말하면 '본능'밖에 없는 건데요...

글샘 2010-11-01 18:03   좋아요 0 | URL
보수가 정말 멋지고 우아하단 게 아니라, 겉보기에 번지르르하고 옷 갖춰 입는 거 좋아하고, 클래시컬한 거 좋아하고... 그렇단 얘기죠. ^^

봄날은간다 2010-11-0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급적 사고? 그게 뭔지 궁금해지네요.
기왕이면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사는게 좋다는 말인데...그렇게 심오하게 받아들이다니...

너의탓이아니야 2010-11-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어서의 진보는 후진 생활을 해야하지만 젊어서의 진보는 정말 우아하고 매력있으며... 한마디로 간지나지 않나요? 배고프고 남루함의 치명적인 미학을 모르시다니ㅋㅋ 그런 겉보기에 혹해서 운동 시작한 사람들은 결국 본능이 이끄는데로 자기 몸에 똥칠하며 떠나가기 마련이구요.

비로그인 2010-11-0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다른 그무엇도 아니라네/ 삶의 목적은 오직 삶 그 자체라네" ... 기억하고 갑니다.

돈케빈 2010-11-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시라기 보다는 설교나 설법, 철학처럼 직설적입니다.
박노해라는 맥락은 고려해야겠지만 시에는 운율이 있어야 시 같은 맛을 줍니다.
시인 솔봉은 박노해가 시인으로서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솔봉의 견해에 전적으로 수긍이 갑니다.
요즘은 철학조차 창의성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adele 2010-11-02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어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진보에 매혹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누구나가 순진하거나 순수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가치가 더욱 발하는 법이지요. 박노해 시인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상관없이, 일단은 오랜만의 시집이라 반가웠습니다.
 

'11월의 읽을 만한 책'을 바쁘게 골라놓는다. 창밖으론 햇빛이 눈부신 날이지만, 곧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겨울을 준비하는 독서라는 게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1월엔 왠지 그런 책들도 읽어줘야 할 듯싶다. 달력이 빼곡한 걸로 봐서는 무얼 읽을 시간은커녕 '느낄' 시간도 없이 또 한달이 지나갈 것 같지만...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책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이다. 별다른 소개가 필요하지 않은 책인데, 추천자의 평은 이렇다. "통상적인 에세이가 세계에 대한 솔직한 느낌과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세계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면 오웰의 에세이는 그대로 산 체험이다. 그리고 매순간 세계와 씨름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솟아나는 생각들을 싸움의 기운을 그대로 담아 뿜어낸다." 생각난 김에 '왜 쓰는가'에 초점을 맞춰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예담, 2008)와 폴 오스터의 <왜 쓰는가?>(열린책들, 2005)도 같이 곁들일 수 있겠다. 적고 보니 모두 영어권 작가들이군.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김호동의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돌베개, 2010)이다. 저자는 중앙아시아사 전문가로 책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주최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의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더없이 요긴한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전작 가운데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까치, 2002), 그리고 오카다 히데히로의 <세계사의 탄생>(황금가지, 2002)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꼽아본다. 오카다의 책은 몇달 전에 구해놓고 아직 손에 들지 못했는데, 어디에 두었나 찾아봐야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철학 개그 콘서트>(럭스미디어, 2010)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두 저자가 쓴 책. 철학이 이렇게 웃겨도 되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읽는 내내 유쾌하고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철학은 그저 딱딱하고 골치 아프고 이해할 수 없는 논의만을 전개하는 학문으로 오인하는 경우들이 있다. 일반인들의 철학에 대한 무지라고만 말하기에는 전문 철학자들의 잘못도 크다."는 추천자의 문제의식이 선정에 작용한 듯하다. 정말 '개그 콘서트' 수준에까지 도달하고 있는지는 읽어봐야 알겠다(나처럼 '개그 콘서트'를 별로 볼일이 없는 독자는 '감'이 없긴 하지만). 그런 대중성에 대한 고려라면 이동희의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이야기>(휴머니스트, 2010) 두 권도 견줘봄직하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동녘, 2010)이다.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10대와 어른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전개되는 맥락들―예를 들어, 10대의 외모중심주의(성형), 임신, 티켓다방, 성매매 등―을 살피면서, 10대 여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일반 매체에서는, 좀더 정직하게 말해 우리 어른들은, 이러한 맥락을 ’문제(비행)‘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이 책은 ’그들이 서 있는 위치에서 그들과 만나라‘는 ’문화‘적 접근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충격적이고 신선하다."  

요즘 자주 청소년의 성이 사회적 이슈나 문제로 불거지는 걸 보면, '10대의 섹스'가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공론장의 주제가 될지 모르겠다. 첫발을 떼는 책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참고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엮어낸 <섹슈얼리티 강의>는 두 권이 나와 있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이충현의 <그리노믹스>(시아출판사, 2010)이다. 책소개를 보니 내겐 또 다른 의미의 '전문서'다.  

’그리노믹스’? 책 제목만 봐서는 환경문제를 경제학으로 풀어보려는 서적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통업체 내 그린경영의 실상과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이충현은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인 홈플러스에서 친환경에너지팀 실무를 맡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실무자로서 그린경영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에는 능력부족이었다고 자평하고 있으나 오히려 실무자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세계적 유통업체들의 급속한 그린경영 추세와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그린경영 선도기업의 노력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다.

교양서로 11월에 읽을 만한 경제서는 단연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일 것이다. 거기에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21세기북스, 2010)까지 얹으면 한달치 경제교양으로선 충분하겠다.  

6.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기획실장이 고른 책은 수딥타 바단 퀘렌의 <제인 구달>(나무처럼, 2010)이다. 이미 구달에 관해선 여러 평전이 나와 있어서 희소성이 있는 건 아니다. 분량으로 보아 청소년용으로 널리 읽힘직하다. 데일 피터슨의 <제인 구달 평전>(지호, 2010)을 고려해본다면 그렇다. <희망의 자연>(사이언스북스, 2010)도 최근에 나온 구달 관련서이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눌와, 2010). 김원룡, 안휘준 교수의 <한국미술사>(서울대출판부, 1997) 외 한국미술 통사는 몇 권 돼 보이지 않는데, 유홍준판 한국미술사가 완간되면 장관이지 않을까 싶다. 첫권에서 다루는 시기를 고려하면 강우방의 <한국미술의 탄생>(솔출판사, 2007)과 견주어봐도 좋겠다. 나로선 대학 2학년때쯤인가 <한국 고미술의 이해> 같은 문고본 책을 읽은 게 전부인데, 그사이에 어떤 연구 성과들이 더 축적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교양서는 노엘 보탐의 <쓸모없지만 유쾌한 지식의 발견>(돋을새김, 2010). 쓸모없지만 유쾌한 지식이란 어떤 것인가? 추천의 빌미가 된 맛보기 한 대목. 

이 책은 제목에 아주 충실하다. 정말 쓸모없는 지식들을 모았다. 특히 명사들의 별의별 말들이 재미있는데,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뉴욕시의 운전면허시험 객관적 문제 중에는 ‘어떤 장소에 설치된 주차 금지 표지는 무슨 뜻인가?’라는 문제도 있으며, 한 스포츠 해설가는 ‘이상하게도, 슬로우 모션으로 다시 돌려보면 공이 공중에 더 오래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고 하며,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내가 인터넷을 발명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게다가 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은 ‘중국은 많은 중국인이 살고 있는 커다란 나라입니다.’고 말했다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다른 것들도 많이 있다. ‘1687년 이전에 만들어진 시계에는 시침만 있었다.’든가 ‘부족 시대의 사람들은 쓸모없는 구성원을 없애고 싶을 때, 그들을 죽이는 대신 집을 불태워 떠나도록 강요했다. 이런 풍습으로부터 to get fired(해고당하다)라는 표현이 생겼다.’고 한다. 정말 쓸모없어 보인다. 하지만 읽으면 유쾌해진다.

그런 관점에서 고르자면,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마음산책, 2010)도 후보감이다. '속옷의 문화사'는 나름 쓸모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 말고,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을 다룬 댄 쾨펠의 <바나나>(이마고, 2010)다. 저자가 "3년 동안 온두라스, 에콰도르, 중국, 벨기에 등 전 세계 바나나 농장과 바나나 연구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도 미처 몰랐던 바나나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들을 여기 빼곡히 담았다."고 하며, "바나나의 기원과 신화, 역사와 지리,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과학이 맛있게 결합되어 있다"는 책이다. 쓸모없는 책은 아니겠지만 저자의 발상 자제는 사뭇 의외이고 유쾌하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지현곤의 <달달한 인생>(생각의나무, 2010). '장애인 카투니스트'인 저자의 인생역정이 눈에 띄는 책.  

지현곤 씨는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다. 도시는 그를 밀어냈다. 척추결핵의 후유증으로 골방에서 엎드려 생활한다.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이 전부다. 한글도 독학으로 배웠다. 그러나 그는 신체장애를 이기고 카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독학으로 익힌 카툰은 대전국제만화영상전 대상(1994), 국제서울만화전 대상(1995)을 받았고 2008년에는 뉴욕 아트게이트 갤러리 초대전을 열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 책은 장애인 카투니스트의 작가론이자 작품론이다.

10. 구조주의 

나대로 고른 주제는 '구조주의'다. 최근에 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갈라파고스, 2010)를 읽으면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주제. 예전에 절반을 읽은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동문선)도 마저 읽어볼 참이다. 조금 무게 있는 책을 원하는 독자라면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 사유체계와 사상>(인간사랑)을 손에 들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론 재미철학자 승계호 교수의 <구조주의와 해석학>(전남대출판부, 2010)이 번역된 걸 뒤늦게 알고서 어제 구입했다(나는 승계호 교수의 책을 대부분 갖고 있다). 흥미로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10. 10. 30.  

P.S. '1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열린책들)이다. 개인적으론 강의도 예정돼 있어서 한번 더 자세히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폴란드의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악령>(1987)은 유튜브에서 감상해볼 수 있다(바이다는 <악령>을 무대에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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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0-10-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장하준 교수 책이 나왔군요..

로쟈 2010-10-31 00:15   좋아요 0 | URL
곧 베스트셀러가 될 거 같아요.

빵가게재습격 2010-10-3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점에서 <철학 개그 콘서트>를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는데요. 으음...썰렁하더군요...제 유머 밑천이란게 보잘 것 없어서, 일반화시키기는 무리입니다만...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두어 장 읽어보고 앞뒤가리지 않고 구입했습니다. 집사람도 무척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페이퍼 즐겁게 읽고, 두서없이 댓글 남깁니다.^^

로쟈 2010-10-31 00:16   좋아요 0 | URL
저도 재밌게 읽고 간단한 서평도 썼습니다.^^

2010-10-31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31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11-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뜨고 있는 스티글리츠나 장하준을 보면서 문뜩 드는 생각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조선일보는 열심히 신자유주의 대세론을 선전하던 집단이었는데 어느새인가 천연덕스레 스티글리츠의 글을 올리더군요. 자기 반성이 있는 집단인지 모르겠고. 또 한편으로는 조선일보 사람들 눈에는 스티글리츠 정도는 용납할 수 있는 경제학자로 보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로쟈 2010-11-02 08:10   좋아요 0 | URL
MB의 공정사회론도 마찬가지죠. 다른 한편으론 '저지선'이 좀더 왼쪽으로 간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종로에 있는 서점에 들렀지만 헛걸음하게 만든 책은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문예출판사, 2010)이.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와 함께 물류창고에는 들어와 있었지만 아직 매장에는 깔리지 않은 것. 매출에 좀 무심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에서 구매하려다 좀더 빨리 손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종종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만 대개는 이런 식이다. 물론 눈에 띄는 몇 권의 다른 책을 구입했으니 아주 헛걸음은 아니었지만. 일단 리뷰기사만 먼저 챙겨놓도록 한다.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은 책의 부제다. 

 

경향신문(10. 10. 30) “도덕 찾다간 경제 망해” 천민자본주의 씨앗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시샘과 헛바람은 산업의 역군이니 그들이 즐기는 멍청한 짓거리인 먹고 쓰고 입는 것에 부리는 변덕은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바로 그 바퀴였다. … 이제 악덕은 교묘하게 재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사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쓴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의 일부다. 맨더빌은 이 풍자시가 포함된 책 <꿀벌의 우화>를 1723년 출판했는데 ‘종교와 미덕을 깎아내리고 악덕을 부추긴다’며 큰 비난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맨더빌의 주장은 ‘악덕이 경제를 풍요하게 만든다’는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덕 찾다가는 경제가 다 망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단순한 것도 고상하게 말하는 게 특기인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고 부른다. 맨더빌이 이 가설의 최초 주창자라고 할 순 없겠으나 체계화된 글로 남긴 것은 사실이다. 맨더빌이 이 책을 쓴 지 300년쯤 지났지만 우리 일상에서 비슷한 주장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눈먼 돈, 검은 돈이 좀 돌아야 밥장사, 술장사도 먹고 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너무 천박한가? 그렇다면 ‘경쟁력이 충분한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서 전체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토록 해야 한다’는 논리는?

맨더빌이 살던 시절의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려면 100년쯤 기다려야 했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면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절제와 겸양, 정직과 근면 등 도덕을 강조하는 근엄한 목소리가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맨더빌은 이런 것들을 위선이자 경제에도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고 정면에서 비판한 것이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을 해방시킨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양조장·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스미스의 유명한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꿀벌의 우화>를 번역한 최윤재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스미스에게 돌아가는 찬사 혹은 비난은 대부분 맨더빌에게 돌아가야 한다. 최 교수는 “맨더빌은 돈 벌 욕심을 아예 버리라는 낡은 도덕을 비판한 사람이다. 그런 맨더빌을 따라 돈 벌 욕심을 받아들이되 돈 벌자고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는 짓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스미스의 도덕감정이고, 그런 짓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칸트의 도덕원칙이다”라고 말했다.

‘Mandeville’이라는 이름 때문에 도덕론자들로부터 ‘인간 악마’(Man-Devil)라고 불렸다는 맨더빌.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을 정립시킨 하이예크는 맨더빌에 대해 “아무도 읽어서도 안되고 물들어서도 안되는 인물로 찍혔지만, 결국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읽고 그에 물들어갔다”고 말했다. 번역자 말마따나 현대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근원을 살피려는 사람은 맨더빌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꿀벌의 우화>는 고전이지만 처음 번역됐다.(김재중 기자) 

1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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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31 10:23   좋아요 0 | URL
예약판매도 하는 대형서점들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매장에 비치하지 않았다니,,,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이라는 표현만큼, 묘하네요. 벌써 '불온서적'으로 찍힌 것 아닐까요? ^^

로쟈 2010-10-30 09:09   좋아요 0 | URL
네, 불황이라고 하면서도 좀 무신경해보였습니다...

롱맨 2010-10-30 09:56   좋아요 0 | URL
전 어제 광화문 교보매장에서 구입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그즘에 매장에 깔린 것 같더군요^.^

로쟈 2010-10-30 10:02   좋아요 0 | URL
반디와 영풍이 좀 게으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