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문학기행에서 수요일에 돌아와 며칠 시간이 흘렀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지만(지방강의도 다녀왔다) 언제나 그렇듯 온전한 복귀에는 시간이 걸린다(어제 이어폰은 빼놓고 외출해서 내내 무음의 시간을 보냈다든가). 독서로의 복귀도 마찬가지다. 여러 계획과 의욕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휴식의 시간이다.

어제는 귀국후 처음 주문한 책으로 페르낭 브로델의 <문명의 문법>을 배송받았다. 지중해문학기행은 문명기행이기도 했기에 매우 반가운 책이다(과거에 브로델 책을 검색하다가 번역되면 좋겠다고 기대한 책이기도 하다. 지중해 세계의 역사에 대해 브로델만큼 확실한 지분을 갖고 있는 역사가가 또 있을까). 현재는 홉스봄의 장기19세기사 삼부작을 강의에서 읽고 있지만 근대세계의 탄생을 다룬 브로델의 책들도 곁눈질해봐야겠다(책들을 찾아놓는 일이 우선과제지만).

고대 지중해사나 고대 그리스, 그리고 비잔티움(이스탄불) 관련서들도 문학기행의 복습용이다. 우선은 떠나기 전에 채 읽지 못한 에릭 클라인의 <고대 지중해 세계사>를 손 가까운 곳으로 옮겨놓았다.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 강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비유하자면 여행은 행성탐사선 활동에 견줄 수 있다. 암석을 실제 채취하여 돌아온 탐사선이랄까. 출발전에 어느 정도 가설과 목표를 세우고, 귀환 이후에는 채취물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다. 예습과 탐사, 그리고 복습의 과정이다(여행 자제의 즐거움을 별도로 한다면). 그 복습의 시간으로 이번봄이 채워질 것 같다. 이미 한발은 이번가을 프랑스문학기행을 위해 빼놓고...

아래 사진은 화요일 아침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스탄불의 호텔을 나서면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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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아직 깊은 밤이다. 어제로써 계획했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고 이제 날이 밝으면 마지막 조식 이후에 공항으로 향하게 된다. 오후 항공편이지만 단체여행이 대개 그렇듯 만일을 대비하여 일찍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을 택한다. 떠나올 땨와 마찬가지로 아부다비를 경유하기에 대기시간(2시간20분)까지 포함하면 이륙후 15시간 뒤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아마도 내일(수요일) 점심은 공항식당에서 먹게 되겠다.

어제 일정은 이스탄불 역사기행이었다.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이스탄불로 개명돼온 역사가 시사하듯 이스탄불은 파란만장한 변천사를 가진 역사도시이자 유럽 최대도시다(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 도시의 역사는 기독교의 3대 역사도시다). 이러한 역사의 산 증인 같은 건축물들을 둘러보는 일정이 진행되었다.

어제 아침 적은 대로 비가 흩뿌리는 날씨였다(오후 들어 비는 잦아들었지만 하루종일 흐린 날씨여서 ‘이스탄불의 멜랑콜리‘를 느끼게 해주었다). 옛날 교과서에선 성소피아성당으로 불렸던 아야 소피아를 먼저 찾으려 했으나 아침부터 관람객의 줄이 너무 길어서 우리는 오스만제국 술탄의 톱카프궁전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제 본 돌마바흐체의 전임 궁전으로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다양한 전시실을 갖춘 박물관이다. 시계방과 무기방, 그리고 대형 다이아몬드도 유명하지만 궁전의 부엌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곳에선 구경하지 못했던 탓인듯.

이어서 들어가본 아야 소피아(어제는 ‘현재 박물관‘이라고 적었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020년 7월부터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고, 관람객들이 둘러보는 중에도 이슬람교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가 1935년 이곳을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바꾼 사실을 고려하면 무스타파 케말의 유지를 어긴 셈이 된다(터키의 건국과 함께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킨 것이 케말의 가장 큰 업적으로 보이는데, 21세기 술탄으로 군림하고 있는 에르도안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 나쁜 정치의 폐해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그런 사례라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지만).

아야 소피아 부근에서 점심을 먹은 뒤의 오후 일정은 현재 내부 공사중이라 외관만 볼 수 있는 블루모스크와 그 주변의 역사유물을 둘러보고 ‘지하궁전‘으로도 불리는 예레바탄 지하 저수조를 찾았다. 동로마시대 때 축조된 대형 수조로 8만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몇년 전 이탈리아 문학기행을 앞두고 피렌체가 나오는 앞부분 때문에 봤던 영화 ‘인페르노‘(2016)의 후반부에 나오는 지하궁전이 바로 이곳. 영화 촬영후 공사를 통해 새단장을 했다고 한다.

오후 일정까지 소화한 뒤에는 그제처럼 트램을 타고 탁심광장으로 이동하여 잠시 자유시간을 보내고 여행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국식당에서 했다(태백식당이란 곳인데 반주로 곁들인 한국산 소주값이 입이 벌어질 정도로 비쌌지만 음식은 맛있었다). 그렇게 문학기행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이스탄불은 아직 어둠속에 있지만 이제 몸을 한국시간에 적응시켜야 할 터이다. 오늘은 점심을 먹는다는 기분으로 조식을 먹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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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비애의 도시
이스탄불의 작가
오르한 파묵은 그렇게 적었지
터키어로 휴준(huzun)
비가 내리는 이스탄불은
휴준의 도시
아테네에 첫 발을 디딘 날
플라카 지구에도 비가 내렸지
(슬픈 아테네라고 중얼거렸지)
비가 내리는 아테네에선
파르테논 신전도 비에 젖었네
신들도 우비를 입었을까
우리는 우산을 들고 걸었네
그리고 지금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를 보려는 날
이스탄불에 비가 내리고
이스탄불은 비애에 젖는다
이스탄불의 비애를 느껴보라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배들도
비애를 나른다는 표정이다
그 배들을 온종일 세던 날들이
파묵에겐 있었지
파묵에겐 온종일
휴준의 무게가 느껴졌지
프랑스 작가 고티에가
멜랑콜리라고 적은 것
이스탄불은 멜랑콜리의 도시
아이스크림과 젤리 맛보다 먼저
멜랑콜리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비애를 맛보아야지
아침부터 이스탄불에 비가 내리고
우리의 여정도 잔돈만큼 남았다
오늘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오
방밖에 걸어두고
이스탄불의 비애를 적는다
빗방울보다는 습기처럼 느껴지는
이스탄불의 휴준
이제 우산을 들고 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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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1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2 2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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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3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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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4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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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문학기행 공식일정도 마지막 하루를 남겨놓았다. 오늘은 이스탄불 역사지구와 블루모스크, 아야 소피아(교회에서 모스크로 변신했다가 현재는 박물관), 톱카프 궁전 등을 둘러보는 역사기행이다. 문학기행으로서는 어제 진행한 오르한 파묵 투어가 마지막이었다.

이스탄불에서의 둘째날이었던 어제는 오전에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목조궁전 돌마바흐체를 둘러보고 도보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한 다음(닭날개 숯불구이가 메뉴였다) 파묵의 순수박물관을 찾았다. 골동품거리가 있는 추크르주마 골목 한쪽에 소설 <순수박물관> 속 퓌순의 집이기도 했던 순수박물관이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사진과 영상속에서 봐왔던 터라 친숙했다).

일행 가운데 몇분은 책속에 들어있는 입장권에 스탬프를 받았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흩트려놓고자 하는 파묵의 의도가 구현되는 방식 가운데 하나. 박물관에 입장하자마자 유명한 담배꽁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 케말이 연인(이지만 다른 이의 아내가 된) 퓌순의 집에 8년간 저녁식사를 하러 드나들면서 챙긴 담배꽁초다. 오른쪽 구석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고 그 왼쪽에는 담배를 피우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짐작에 파묵이 가장 공을 들인 오브제(사실 미술품으로 전시돼도 무방한 ‘작품‘이다).

순수박물관은 4층으로 된 목조건물인데 파묵이 소설 구상과 함께 1999년에 매입하여 소설의 내용에 맞게 박물관으로 꾸몄다고 한다. 개관은 소설을 발표(2008) 이후인 2012년. <순수박물관>은 일차적으로 주인공 케말의 연애소설이지만, 기억이란 주제를 다룬 프루스트 소설이면서 박물관 소설이고 카탈로그 소설이다. 파묵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도 썼고 전시한 물건들에 대한 카탈로그북도 썼다. 매우 이례적인 프로젝트 소설이라 할 만한데,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 발표한 첫 작품이라는 후광까지 거느리고 있다. 기대대로 기념품샵에서는 카탈로그북을 판매하고 있어서 구입했다. 600리라.

순수박물관 방문 뒤풀이로 카페에서 파묵문학의 의의와 <순수박물관>에 대해 강의했고, 이어서 저녁 자유시간을 가졌다. 언젠가 파묵 전작 강의를 해볼 수도 있겠다는 것이 파묵 투어의 소감이자 개인적인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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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새벽 시간이지만 이스탄불은 11시가 넘어 밤이 깊어간다. 일찍 호텔을 나서 아테네 공항에서 대기중이라고 적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한시간여 비행 뒤에 비행기는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는 한시간반 정도 소요되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면 매우 가까운 거리다(아테네와 이스탄불은 시차도 없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이오니아 지방으로 같은 그리스에 속했다(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이스탄불에 이르는 이 도시의 역사 자체가 세계사다).

터키에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이스탄불 공항의 크기와 시설이다. 새건물로 보였는데 확인해보니 2018년 12월에 개항했고 당시 기준 세계최대공항이었다. 전체 인구도 그렇고 도시 인구도 그리스와 아테네의 몇배 되는 곳에 와보니 실제로 그 차이가 느껴졌다. 하기야 인구 1500만의 이스탄불은 서울을 가뿐히 앞지른다. 한강도 작지 않은 강이지만 흑해와 에게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견주기는 어렵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와 유럽, 소위 두 대륙이 마주하는 도시 아닌가.

이 역사도시 이스탄불을 문학의 도시로 만든 공로는 오르한 파묵에게 돌려져야 하리라. 내일의 일정이 주로 파묵과 그의 작품들에 할애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터기문학이라면 다른 작가도 더 거명될 수 있겠지만 이스탄불 문학으로 한정하면 파묵의 오른편에 설 작가가 없지 않을까. 혹 더 꼽는다면 <이스탄불의 사생아>의 작가 엘리프 샤팍 정도이지 않을까 짐작한다(책이 다시 나온다면 터키문학 강의를 꾸러볼 수 있겠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파묵의 <이스탄불>과 <순수박물관>을 주력으로 배치했는데 캐리어에는 산문집 <다른 색들>까지 넣어왔다. 파묵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글모음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 파묵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 아닐까. 파묵 선생님, 아직도 매일 10시간씩 글을 쓰시는지요? 이렇게 중얼거려도 짐짓 전달될 것만 같다.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바자르를 둘러본 다음에 저녁을 먹은 호텔 레스토랑은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등 이스탄불의 명소들을 보스포루스 해협에 대한 좋은 전망과 함께 보여주었다. 여기가 이스탄불이란 실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양갈비의 맛도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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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걸우네 2023-04-0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된다면 꼭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튀르키예!! 부럽습니다~

로쟈 2023-04-17 22:56   좋아요 0 | URL
네, 한번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