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새벽 시간이지만 이스탄불은 11시가 넘어 밤이 깊어간다. 일찍 호텔을 나서 아테네 공항에서 대기중이라고 적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한시간여 비행 뒤에 비행기는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는 한시간반 정도 소요되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면 매우 가까운 거리다(아테네와 이스탄불은 시차도 없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이오니아 지방으로 같은 그리스에 속했다(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이스탄불에 이르는 이 도시의 역사 자체가 세계사다).

터키에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이스탄불 공항의 크기와 시설이다. 새건물로 보였는데 확인해보니 2018년 12월에 개항했고 당시 기준 세계최대공항이었다. 전체 인구도 그렇고 도시 인구도 그리스와 아테네의 몇배 되는 곳에 와보니 실제로 그 차이가 느껴졌다. 하기야 인구 1500만의 이스탄불은 서울을 가뿐히 앞지른다. 한강도 작지 않은 강이지만 흑해와 에게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견주기는 어렵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와 유럽, 소위 두 대륙이 마주하는 도시 아닌가.

이 역사도시 이스탄불을 문학의 도시로 만든 공로는 오르한 파묵에게 돌려져야 하리라. 내일의 일정이 주로 파묵과 그의 작품들에 할애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터기문학이라면 다른 작가도 더 거명될 수 있겠지만 이스탄불 문학으로 한정하면 파묵의 오른편에 설 작가가 없지 않을까. 혹 더 꼽는다면 <이스탄불의 사생아>의 작가 엘리프 샤팍 정도이지 않을까 짐작한다(책이 다시 나온다면 터키문학 강의를 꾸러볼 수 있겠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파묵의 <이스탄불>과 <순수박물관>을 주력으로 배치했는데 캐리어에는 산문집 <다른 색들>까지 넣어왔다. 파묵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글모음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 파묵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 아닐까. 파묵 선생님, 아직도 매일 10시간씩 글을 쓰시는지요? 이렇게 중얼거려도 짐짓 전달될 것만 같다.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바자르를 둘러본 다음에 저녁을 먹은 호텔 레스토랑은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등 이스탄불의 명소들을 보스포루스 해협에 대한 좋은 전망과 함께 보여주었다. 여기가 이스탄불이란 실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양갈비의 맛도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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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걸우네 2023-04-0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된다면 꼭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튀르키예!! 부럽습니다~

로쟈 2023-04-17 22:56   좋아요 0 | URL
네, 한번 가보시길.~
 

어제까지 아테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늘은 조식도 먹기 전에 공항행 픽업버스에 올랐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서 대기중. 출국검사대를 통과하는 중에 선물로 받은 올리브 샴푸가 액체류 반입금지규정에 따라 압수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제껏 겪은 일이 없어서 주의를 소홀히한 결과.

공항서점에서는 어제 고고학박물관에서 찾던 종류의 책을 구했다. <고대 그리스>라는 가이드북. 컬러회보에 캡션식 설명, 그리고 하드카바이지만 공항도서답게 적당한 가격. 샴푸를 잃어버린 보상이 되었다. 매대에는 아테네공항답게 그리스신화와 관련된 책이 가장 많았다. 물론 영어책 기준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책들이 ‘결정판‘이란 문구와 함께 나오고 있다.

거기에 그리스 경제학자(이자 정치인)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선 <작은 자본론>만 소개됐다가 절판됐는데 소위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유럽연합체제 하에서 그리스의 정신을 대표하는 지식인. 유럽연합의 기득권을 비판한 ‘Adults in the Room‘ 같은 책도 번역되면 좋겠다.

보딩타임이 가까워졌다. 그리스에서 적은 마지막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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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일정이 모두 종료되고 저녁을 먹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문학기행도 이제 중반을 넘어섰고 내일은 오전에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이른 아침에 호텔을 떠날 예정). 오늘밤이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겠다.

오늘의 핵심 일정은 아테네 국립고고한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강대진의 <그랜드투어 그리스>를 예습용으로 읽었지만 실제로는 복습용으로 더 유용하다. 국립고고학박물관 소개 역시 그러하다. 신석기시대부터 미케네문명, 암흑기, 상고기, 고전기를 거쳐서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어서 한번 둘러본 기억을 보태서 책을 읽어야 대락 그리스문명을 가늠해보게 된다.

두시간 넘게 둘러본 뒤에 기념품샵에서 적당한 안내서를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영어로 된 책이 많지 않은데다가 두껍고 무거운 책들이어서 구입은 포기했다. 그리스 고대 예술에 대한 책들은 파일로 갖고 있어서 그걸로 대신하려 한다(이 또한 언제 읽을 기회가 있을지 알기 어렵다).

아무튼 크레타의 고고학박물관에 이어서 아테네의 고고학박물관도 관람했으니 소위 그리스의 3대 박물관 가운데 두 곳을 찾은 것이 된다. 다리품을 판 보람이라고 해야겠다.

박물관 투어 이후에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그리스의 국회의사당과 신타그마광장을 소개받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후는 휴식과 쇼핑을 위한 자유시간. 첫날 우중산책을 했던 플라카지구를 다시 둘러보았다. 아테네 도심을 꽤 걸어다녀서 어느새 친숙한 느낌도 든다. 내일 떠나면서 아쉬움을 느끼겠지만 어쩌겠는가. 만나면 또 헤어지는 법이고, 떠난 사람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느니.

슬슬 저녁을 먹으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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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 묵고 있는 숙소가 뷰가 좋은 곳이라 입성 첫날부터 눈에 익혀두어었던 아크로폴리스를 어제 찾았다. 먼저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고대 그리스의 유물들을 둘러보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기 시작(아크로가 높은 곳이란 뜻이어서 각 폴리스마다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대표적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의 가장 낮은 곳의 집회광장을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렀던 건 의미의 전용사례. 아고라보다 더 ‘있어 보이는‘ 어감 때문이었을까).

정상의 파르테논 신전까지 가는 길에 이미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디오니소스극장과 음악당을 볼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극장은 절반의 흔적이 남은 유적이고 음악당은 아직도 축제때 공연이 이루어지는 명소다(물론 스탠드가 개축되어서 가능한 일). 이번에 확인한 건 그리스비극의 출발점이 되는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기원전 472년)이 페르시아전쟁(기원전 499-450년)의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비극의 탄생배경이라고 여겨진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전쟁의 관계를 생각해봐야겠다).

당연하게도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가장 크고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아테네의 운명도 결정지은 전쟁이다(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낳은 전쟁이니 역사의 시원이기도 하다). 제국과 싸우면서 아테네는 제국으로 변모해가며(델로스동맹의 중심으로서의 해상제국) 이는 그리스반도의 또다른 맹주 스파르타와의 내전, 곧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년)을 낳는다.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지만 상처뿐인 승리로서 오랜 전쟁으로 힘을 소진한 두 도시는 결국 몰락하게 된다.

가이드는 디오니소스극장이 기원전 5세기에 세워졌다고 했지만(그리스 비극의 전성기다) 강대진 박사의 책에선 전성기 이후인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설명한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디오니소스극장에 관한 책을 구입한 터라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나중에‘ 그리스비극 3대작가의 전작 읽기도 시도해뵈야겠다).

언덕 정상의 파르테논은 지금 보기에도 아테네 최고 영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오스만제국하에 있던 17세기 후반 화약창고로 쓰이던 파르테논이 베네치아군의 포격에 크게 파손된 일이 상징적이다. 기둥들이 버텨준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해야할지. 아무려나 세계문화유산 1호로서 파르테논은 지금도 해마다 3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그리스 최고의 명소다. 어제 일행은 각자 1/3000만의 몫을 해낸 셈.

아크로폴리스 견학 이후 점심을 먹은 뒤의 일정은 아테네 정치와 경제의 중심부 아고라 유적과 로마시대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유적을 둘러보는 일에 할애되었다. 당초 문학기행 출발전에 비 예보가 있어서 염려했는데 일정을 다 소화할 때까지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적당한 햇볕과 기온, 그늘과 바람 등. 예보는 일정 종료 후에 가진 자유시간에 한차례 소나기를 뿌리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예보가 틀리지 않았지만 일정이 방해받지도 않았으니 일종의 윈-윈이다.

저녁식사는 호텔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아크로폴리스의 야경과 함께 즐겼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지, 로마에 가면 로마인처럼 행동하라는 격언에 견주어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아테네에선 모두가 신이 된다. 신들에 둘러싸여 하루를 지내다보니 저녁만찬이 신들의 만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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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카잔차키스 공항. 보딩을 한시간 남겨두어서인지 대기 승객이 많지 않다. 길다란 직사각형의 건물이어서 특별해보이진 않지만 이제 보니 카잔차키스 공항은 지중해를 눈앞의 전망으로 보여준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서 바라보게 되는 바다 역시 지중해. 현대문학 독자에게 지중해는 카뮈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바다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해변가 언덕에 있어서 해안도로에서 하차해서는 10분쯤 걸어올라가야 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바다가 같이 보여서 막연히 바닷가에 위치한 것으로 알았다.

1957년 10월 독일에서 사망하고 카잔차키스의 시신은 그리스로 운구되지만 러시아 정교회와의 갈등으로 장례가 치러지지 않다가 어럽사리 묻힐 수 있었다. 반골의 자유정신을 죽어서도 과시한 경우라고 할까. 덕분에 카잔차키스는 그의 주인공 조르바와 함께(부처와 그리스도, 성프란치스코와 레닌이 자유인으로서 그와 나란하다) 영원한 자유인의 표상이 된다.

카잔차키스의 작품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도최후의 유혹>, 그리고 <영혼의 자서전>을 강의에서 다루었는데 절판된 책들이 다시 나온다면 <수난>과 <미할리스 대장> 등 후기작들도 목록에 더 얹고 싶다. <오디세이아>까지 포함하면 제 규모의 카잔차키스 읽기가 가능하겠다. 카잔차키스를 찾는 여정의 끝에서 다시금 카잔차키스로 되돌아가는 반복의 여정.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에서 적은 교훈을 반복할 따름이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

크레타를 다시 찾을 일이 또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찾아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 크레타에서 머물렀던 1박2일의 짧은 시간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등록되고 간직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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