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마지막 날이 밝아오고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곧비로 드레스덴으로 이동하게 된다. 잠시 어제의 여정을 돌이켜본다. 카프카의 묘지에 들른 다음에 찾은 곳은 카프카 박물관이다. 3년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카프카 박물관은 캄파섬 내에 있다(그 주변이 캄파섬이라는 걸 몰랐다. 육지로부터 분리돼 있지 않아서). 오줌 누는 두 사내의 조각상 분수가 친근하게 맞아 주었다. ‘K‘라는 이니셜도 이곳이 카프카의 영토임을 웅변해주었고. 찾아보니 박물관은 2005년에 건립됐다. 이제 12년차.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 설명을 덧불이려니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새로웠다. 그 사이에 카프카에 대한 이해가 증폭된 덕분인지 할말이 많아졌다. 일행들도 전시물들이 예상보다 풍부하다고 입을 모았다. 카프카박물관 견학을 끝으로 우리의 주요 일정은 마무리되었고 남은 건 프라하의 봄(1968)과 벨벳혁명(1989)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었다.

카를교 부근의 존 레논의 벽을 구경하고 기념사진을 찍고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신시가지의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건 아니지만 가장 긴 종단을 갖고 있는 광장. 프라하의 봄의 상징적 공간이자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영화로는 <프라하의 봄>).

원래도 여정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광장의 출발점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공사중. 광장 부근의 전통시장인 하벨 시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도보로 또다른 카프카 조각상을 찾아 나섰다. 다비드 체스니라는 체코 조각가의 2014년작 ‘K‘가 그것으로 회전하는 조각품으로 유명하다. 분열증자 같은 K(카프카)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인지도.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을 실물로 대하니 반가웠다.

이어서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단골카페였고 카프카도 자주 들렀다는 카페 루브르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1902년에 개점한 아주 오래 된, 그러나 규모가 꽤 큰 카페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여정은 블타바강 유람선을 타고서 저녁을 먹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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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현재 오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저녁식사를 포함한 블타바강 크루즈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시각이 8시 반쯤이다. 오늘은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 프라하의 야경은 그제 밤에 구경했기에 계획했던 프라하 투어는 모자람 없이 마무리되었다.

카프카 문학기행과 관련하여 오늘의 중요한 일정은 신유대인묘역에 있는 그의 묘지를 찾아가고 카프카박물관에 들르는 것이었다. 3년 전에 한번씩 들렀으니 나로선 두번째 방문이다. 첫 일정으로 버스가 묘역 입구에 도착하자 우리 일행은 각자 꽃송이를 사들고서 그의 묘지로 향했다. 입구에 안내표지판이 서 있는데 묘역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편으로 250미터다.

3년 전에 찾았을 때는 방문자가 거의 없었지만 오늘은 우리 외에도 단체방문객이 있었다. 카프카의 묘지에 도착한 우리는 헌화하고 잠시 그를 추모한 후에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실 프라하를 방문하는 단순 관광객이라면 그의 묘지를 찾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묘지 앞에서 나는 그의 죽음과 마지막 작품들에 대해 소개했다. 생전에 준비했지만 사후에 출간된 마지막 작품집 <단식광대>(1924)에 수록된 ‘단식광대‘와 ‘여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들의 종족‘이 어떤 점에서 카프카 자신의 이야기인가를 설명했다. 더불어 카프카 가족의 불행한 가족사도(카프카의 세 여동생은 모두 나치의 수용소에서 숨졌다).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빈 근교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했고 11일에 이곳 유대인묘지에 안장되었다.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킨 유일한 여성은 도라 디아만트인데 두 사람은 1923년 7월 발트해의 휴양지 뮈리츠에서 처음 만나서 의기투합한 끝에 9월에 베를린행을 감행한다. 카프카 문학기행의 여정이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이유인데, 우리는 내일 드레스덴을 경유하여 베를린에 입성할 예정이다. 문학기행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서 여기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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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카프카 투어의 두 가지 미션은 생가(카페 카프카)와 카프카 동상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이었다. 흔히 카프카 동상이라고 지칭되는 건 체코 조각가 야로슬라프 로나(국내에서 ‘자로슬라브‘로도 읽으나 ‘야로슬라프‘가 맞겠다)의 작품이다. 2003년에 세워진 것이지만 프라하의 명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3년전에는 지도에서 주소를 보고 어렵사리 찾아가 ‘발견‘한 동상이었건만 이번에는 가이드의 뒤를 따라가서 너무도 편하게(사실은 싱겁게) 찾았다. 구시가지광장에서 10분거리도 되지 않았다. 카프카가 자주 오가던 길목에 세워져 있는데 인터뷰를 보니 이 위치 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로나는 말한다. 가까이에 가톨릭성당과 유대교회당이 있어서다. 두 종교, 두 건물 사이에서 교차점이나 중재자처럼 서 있는 것이다. 얼굴 없는 사내의 어깨에 올라탄 형상은 초기작 ‘어느 투쟁의 기록‘에서모티브를 따왔다.

단체사진을 찍은 다음에 카프카문학에 대한 거리 강연을 진행했다. 주로 ‘선고‘와 ‘화부‘, 그리고 ‘변신‘ 세 작품의 연관성과 의의와 주제 등에 대해 나대로의 견해를 요약하고 독일소설사에서 카프카가 갖는 의의를 짚었다(이런 내용은 내년에 책으로 담을 예정이다). 카프카 강의를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나대로 정리한 바에 따르면 카프카문학은 1912년 9월에 쓰인 ‘선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해 8월에 펠리체(펠리스) 바우어를 만나는데, 달리 펠리체와의 만남 이전과 이후라고 해도 되겠다.

‘선고‘(‘판결‘로도 번역)는 창작에 돌파구가 된 작품이다. 밤을 꼬박 새면서 완성한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한 카프카는 ‘화부‘(장편 <실종자>의 첫장이기도 하다)와 ‘변신‘을 연이어 집필한다. 그러고는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세편을 ‘아들들‘이란 제목으로 출간하려고까지 했다. 카프카 문학 이해의 관문은 ‘아들들‘ 시리즈의 세 아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게오르크 벤데만(선고), 카를 로스만(화부), 그레고르 잠자(변신)...

(불라불라)

이야기는 한참 이어질 수 있는데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결론은 그래서 우리가 프라하에 왔고 이 동상 앞에 서 있다는 것. 뒤늦게 안 일이지만 구시가지 광장의 갤러리에서 로나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다. 1957년생 작가다. 어제 찍은 카프카 동상 사진과 인터넷에서 찾은 조각가 로나의 모습을 올려놓는다. 아침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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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문학기행의 오늘 일정은, 오전에 카프카성과 황금소로의 작은 집필실(카프카가 1916-17년에 이용한 22번집)을 둘러보고 오후에 구시가지 광장 주변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한 가게가 현재는 박물관(갤러리)으로 쓰이는 골스킨스키 궁전 1층 오른편에 있었고 주변에 카프카가 다닌 학교, 카프카가 살았던 집이 여러 곳 몰려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은 카프카의 생가다. 현재는 ‘카페 카프카‘가 있는 자리이고 이 카페에는 누구라도 카프카와 연관된 장소임을 알아볼 수 있게끔 사진과 부조가 배치돼 있다.

광장 부근에 있는 유명한 카프카 동상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에 우리는 먼저 카페 카프카를 찾았는데(빈에 있는 카페 카프카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것이다), 손님이 많아서 자리가 없을 거라는 예상이 무색하게도 수리중이었다. 카페가 다른 용도로 개조되는지, 아니면 내부 인테리어만 바뀌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카페 카프카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일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게 생겼다.

물론 커피 한잔 마시려고 프라하를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중에라도 일이 있어 다시 오게 된다면 오기로라도 한잔 마시고 싶다(3년전에는 무슨 일로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설마 그때도 수리중이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가본 건 가본 것이니 인증샷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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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의 둘째날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전 막간에 들른 곳은 ‘공산주의 박물관‘이다. 중형마트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일행이 쇼핑을 하는 20분 동안 혼자서 둘러보았다. 20분 동안의 관람료 치고는 너무 비싼 14유로를 지불하고서. 다른 기회는 없겠다 싶어서 비용은 감수했다.

전시는 전체적으로 꼼꼼히 보려면 한 시간은 소요될 듯한 규모였다. 공산주의 사상의 탄생부터(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부터) 러시아혁명,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 수립과 이후 감시사회와 수용소사회로의 변질,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개입, 냉전 종식과 바츨라프 하벨이 주도한 벨벳혁명까지의 역사가 주제별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시간이 없어서 관련 책자를 구입하려고 했더니 두툼한 사진집 종류와 소련시대 포스터, 그리고 엽서 종류가 판매되고 있었다. 큰맘 먹고 프라하의 봄과 관련한 사진집을 사려다 소련의 포스터 세트만 계산대에 들고 갔는데 유로는 안되고 체코화폐(코로나)로만 계산이 된다고 했다(유로를 내고 입장했건만). 게다가 들고 간 카드가 해외거래가 안 되는 카드여서(비자카드를 이번에 빼먹고 왔다) 결국 구입할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건 몇장의 사진뿐(북플은 이미지 배열이 뜻대로 안된다. 순서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북플이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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