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와 필립 네모와의 대담을 엮은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2000)은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과 함께 레비나스 입문으로서 가장 평이하면서도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대담의 밀도를 기준으로 하자면 커니와 대담을 권하겠다. 대신에 네모와의 대담은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레비나스 자신의 육성을 통해서 그의 삶과 철학에 관해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대담들의 최대 강점이다.

<윤리와 무한>은 분량도 150여쪽에 불과하기에(영역본의 경우엔 120여쪽) 조금 과장하자면 '30분에 읽는 레비나스'로 부족함이 없다. 역자 또한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니 '동문'이라 할 수 있다. 몇 군데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번역의 가독성 또한 좋은 편이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레비나스가 제대로 된 철학에 입문하게 되는 것은 스트라스부르대학에 입학하고서부터이다. 이전에 그가 읽은 것은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주로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들이었다. "18세 때 거기서 네 분의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들 이름은 샤를르 블롱델, 모리스 알바하, 모리스 프라딘느, 그리고 앙리 카트롱이다. 그분들은 내 머리 속에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권위로 자리잡았다. 아, 나의 스승들!"(30쪽)  

그가 대학에 들어간 건 1923년이다(<존재에서 존재자로>에 실린 연보를 보니 스트라스부르로 건너간 게 1923년이고, 실제 대학에 들어간 건 1926년이다. 그리고 1930년에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이 네 분 선생님을 통해 위대한 지성의 맛을 보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당시에 프랑스에선 아직 헤겔이 진지하게 읽히지 않았으며(소위 '3H'의 시대는 30년대로 넘어가야 한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뒤르켐과 베르그송이 영웅이었다. 레비나스는 특히 베르그송의 철학은 높이 평가한다.

"베르그송의 사상이 없었더라면 하이데거가 '현존재(Dasein)'의 유한한 시간성을 생각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베르그송의 시간개념과 하이데거의 시간개념이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전까지만 해도 모두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을 추종했는데, 철학을 거기서 해방시킨 것은 분명 베르그송의 공헌이다."(33쪽) 베르그송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커니와의 대담에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레비나스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베르그송의 시간론이다.

하지만, 그가 '철학함'을 배우게 되는 것은 후설로부터이다. 그는 후설에게서 "적절하면서도 정당하게 물음을 묻고 건너뛰지 않고 치밀하게 철학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매력을 느낀다. 우연한 기회가 나중에 <데카르트의 성찰>(1931)을 공역하게 되는 동료 가브리엘 파이퍼로부터(파이퍼는 후설에 대한 학위논문을 준비중이었다) <논리연구>를 추천받아 읽으며 현상학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1928-9년에, 그러니까 그의 나이 23살에 후설이 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유학을 떠난다. 그가 머문 것은 1년 남짓이지만, 그는 거기서 막 은퇴한 후설의 강의를 듣고, (후설의 제자이자 후임) 젊은 철학교수 하이데거와 조우하게 된다.

이 시기에 레비나스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막 출간된 세기의 저작 <존재와 시간>(1927)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존재와 시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몇이서 그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일찌감치 이 책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철학사에 빛나는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리라. 나는 몇 년후에 그런 평가를 내렸다. 아마 가장 훌륭한 책 네 권이나 다섯 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게다."(43쪽) 그 네댓 권이 어떤 책들이냐는 네모의 질문에 레비나스가 꼽아주는 철학사의 걸작들은 아래의 다섯 권이다: <파이돈>(플라톤), <순수이성비판>(칸트), <정신현상학>(헤겔),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베르그송), <존재와 시간>(하이데거).  

 

 

 

 

특히 레비나스에게서 하이데거의 성취는 결정적인데, 그것은 순전히 <존재와 시간> 때문이다: "내가 하이데거를 높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와 시간>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때의 감격을 자꾸 되새기곤 한다. 당시는 아직 1933년의 사건을 생각할 수 없을 때였다."(44쪽) 1933년은 하이데거가 나치와 불미스런 연루관계를 맺게 되는 때이다.

사실, 레비나스의 철학 전체는 하이데거와의 철학적 대결이란 문맥에서 읽힌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 이후'에 서양철학이 '하이데거 이전'으로 후퇴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동시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그래도 수용할 수도 없었다. '존재자에서 존재로'라는 하이데거의 '존재사유' 혹은 '하이데거적 전회'가 없었다면, '존재에서 존재자로'라는 레비나스의 문제의식, 혹은 '레비나스적 전회' 또한 사유될 수 없었거나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레비나스의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그의 주저 <전체성과 무한>의 '서론'으로도 읽힌다. 한데, 국역본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외양과는 다르게 충분히 신뢰할 만하지 않다. 기이한 일이다).

"<존재와 시간>은 존재론의 모범이 되었다. 유한, 현존재,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개념정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내가 <존재와 시간>에 보내는 찬사가 하이데거 추종자들에게는 시시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나중 작품들은 <존재와 시간>을 통해서만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사실 후기 작품들을 볼 때 <존재와 시간>만큼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잘 알겠지만 그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훨씬 설득력이 약하다."(48-9쪽)  

 

 

 

 

그러므로 레비나스를 읽으려면 <존재와 시간>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런 게 또한 '철학수업' 아니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행히도 우리에겐 두 권의 정역본 <존재와 시간> 외에도 가장 최근에 나온 이기상 교수의 해설서 <존재와 시간>(살림, 2006)에 이르기까지 몇 권의 입문서가 있다. <전체성과 무한> 같은 레비나스의 주저가 소개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런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자리를 데우는 게 좋겠다. 서양철학사의 1/5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또 못 읽을 것도 없지 않겠는가?(그리고 경험상 하이데거는 칸트와 헤겔에 비하면 훨씬 재미있으며 읽기 편하다. 단, 반드시 칸트나 헤겔하고만 비교해야 한다!)

06. 02. 13.

P.S. '수업'이 끝났으므로 며칠 '바람'이나 쐬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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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2-1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6-02-1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리스 2006-02-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주제넘게 <존재와 시간>을 보관함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냥, 넣어두었다는 것만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_-;;

로쟈 2006-02-2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는 것까지는 아직 '탐욕'이 아닌 듯한데요.^^
 

 

 

 

 

올해는 지난 1995년 성탄절에 세상을 뜬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에 관하여 몇 마디 해야 할 의무감을 갖게 되지만, 며칠전 레비나스의 저작들에 관한 간단한 리뷰를 청탁받기도 한지라 두주 정도 레비나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간헐적으로 늘어놓을 참이다. 이건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먼저, 지난해 말에 출간된 강영안 교수의 <타인의 얼굴 - 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은 레비나스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여러 모로 유익한 길잡이이다. 국내 레비나스 수용에 있어서 '중간결산'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저작인데, 모아놓은 논문들의 절반 정도는 학술지나 문예지 등에 발표된 형태로 미리 읽었기에 나로서(그리고 아마도 일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건 제1장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같은 총론격의 글이다. '네 문화의 철학자'란 이 글 제목의 인용문구도 거기서 얻어온 것이다. 그에 대해 몇 마디 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레비나스 수용사. 이하의 인용쪽수는 모두 <타인의 얼굴>의 것이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지만 국내에 레비나스를 최초로 소개한 이는 '레비나스의 철학 - '다른 이'의 얼굴'(<문학과지성> 1974년 봄호)이란 글을 발표했던 손봉호 교수이다. 이 글은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문화사, 1978)에 재수록됐다고 하는데, 나는 레비나스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지난 94년쯤에 찾아서 읽었더랬다. 손봉호 교수의 바톤을 이어받은 이는 제자이기도 한 강영안 교수이다. 1989년경부터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강연과 논문 등으로 가장 왕성하게 레비나스 수용에 앞장 선 공로가 있다.

레비나스 저작 중 최초의 국역본인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1996)이 또한 강영안 교수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는 그의 제자인 서동욱 교수가 그 바톤을 또 이어받게 되는데,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를 번역출간했을 뿐더러 그의 <차이와 타자>(문학과지성사, 2000)나 <일상의 모험>(민음사, 2005) 같은 저작은 레비나스적 영감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기도 하다.

세 사람은 모두 (후설 아카이브가 있는) 벨기에의 루뱅대학에서 수학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해서(김형효 교수도 루뱅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쳤다) 얼핏 보아도 끈끈한 학연을 이어가고 있다(또한 모두 칸트 전공자/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만하면 '루뱅 마피아'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 '루뱅 마피아'가 국내 레비나스 연구를 주도하게 된 건 레비나스 연구가 "네덜란드 언어권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다음, 영어권과 독어권에 이어 마침내 프랑스에서 뒤늦게 진행된다"(13쪽)는 사정과 연관이 있다.

네덜란드와 가까운 벨기에의 루뱅대학에도 일찍부터 레비나스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인지라(레비나스는 생애의 50년간을 무명의 철학자로 지냈다) 루뱅 유학파들이 가장 먼저 그 수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서도 레비나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고 있고, 젊은 연구자들의 논문들도 '상대적으로' 넘쳐나고 있으므로 한국의 '레비나스 텃밭'은 앞으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아직까지는 기대에 머문다. 일단은 기본이 되어야 할 레비나스 저작의 국내 번역본이 지극히 소략하기 때문이다(대담집을 포함해서 고작 4종이다). 게다가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면서 전공 논문들에서는 수없이 인용되는 <전체성과 무한>(1961)과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1974), 두 권의 철학적 주저가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니 일반 독자들에게 레비나스는 아직 '풍문'에 불과하며 '레비나스 텃밭'은 '그들만의 텃밭'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알렝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동문선, 1998) 같은 일급의 에세이를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일반 독자들이 '철학'에 대한 부담감을 다소간 지우면서 '레비나스의 지혜'를 맛보게 해주는 데 아직까지는 가장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책은 만만한 '에세이'인지라 <타인의 얼굴>의 부록으로 실린 방대한 2차문헌 서지에는 빠져 있다). 더불어 꼽자면,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한나래, 1998)에 실린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왜 '네 문화의 철학자'인가? 그의 태생에 대해서는 이미 적었지만, 그가 타계하고 나자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그를 '네 문화의 철학자'라 일컬었다는데,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히브리어 성경과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서 자랐고 독일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정통하였으며 1923년 스트라스부르 대학 철학과에 입학해서 1930년 프랑스에 귀화한 뒤 줄곧 프랑스 철학과 함께 숨쉬고 생각해" 온 이가 바로 레비나스였기에, 그리고 "히브리어러시아어, 독일어프랑스어로 책을 읽고 그 문화와 함께 숨을 쉬면서 작업한 철학자였기에" '네 문화의 철학자'라고 부른 것이고 그건 설득력 있는 호명이다. 레비나스의 전체상을 압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독일과 프랑스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만 레비나스를 독해하는 것은 그를 '두 문화의 철학자'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누구인가? 1906년 1월 12일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코우노)에서 태어나서 1995년 12월 25일 새벽에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이다(폴란드, 라트비아, 벨로루시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는 발틱 3국 중 하나로 수도는 빌니우스이고, 카우나스는 두번째로 큰 도시라 한다). 리투아니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이전이라 그의 모국어는 러시아어였으며, 여섯 살때부터 히브리어를 교습받고 그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히브리어 성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히브리어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러시아문학이 그의 유년기를 채운 수프였던 것.

 

 

 

 

"자신의 철학적 관심이 히브리어 성경과 톨스토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스토예프스키와 푸슈킨을 읽으면서 형성되었다고 말하는 데서 보듯이 성경과 더불어 문학작품도 (그의)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준 바탕이 된다. 만일 철학이 '인간적인 것의 의미' 또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일은 칸트와 플라톤을 공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준비가 될 수 있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20쪽, 이 인용문은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2000)에서 재인용된 것이다) '철학은 모두 셰익스피어에 관한 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레비나스의 것이다.

그러니까 레비나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칸트나 하이데거에 대한 독해 못지 않게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독해이다(최근에 '레비나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논문들이 영어권에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레비나스의 철학을 신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몇몇 시도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가 남긴 상당한 분량의 '탈무드 강의'에 근거하여 그의 철학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도스토예프스키 등 러시아문학과의 연관성도 전혀 조명되고 있지 않다(레비나스는 특히 자신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진 빚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것이 레비나스 '중간결산'이다. '네 문화의 철학자'로서 그의 크기가 제대로 밝혀지고 그의 철학이 풍족하게 음미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는 셈...

06. 02. 10 

 

 

 

 

P.S. 자크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철학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데리다 생전부터 충분히 주목되어온 바다. 레비나스 연구사에 대해 다루면서 강영안 교수가 던지는 코멘트. "프랑스어권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연구로는 역시 데리다를 들 수 있다. <전체성과 무한>에 대해 데리다는 '폭력과 형이상학'이라는 장문의 논문을 써 <형이상학과 도덕평론>(저널)에 두 차례 나누어 싣는다. 이 글은 1967년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연>에 약간 개정된 형태로 다시 실린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극복하려는 레비나스의 시도에 대해 철학을 하는 한 결코 존재론적 사유를 벗어날 수 없음을 데리다는 지적한다."(301쪽) '글쓰기와 차연'은 '글쓰기와 차이'의 오기이다. 참고로, 휴 실버만의 <데리다와 해체주의>(현대미학사, 1998)에서도 한 꼭지를 이 '폭력'의 문제를 둘러싼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싸움'에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데리다는 말년에 갈수록 초기 비판보다 훨씬 더 레비나스 철학에 가까이 다가간다. 레비나스 장례식 때 데리다가 했던 조사와 1주기 추모 강연을 담고 있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여 안녕>을 보면 데리다가 얼마나 가까이 레비나스에게 다가섰는지 드러난다.(...) 데리다의 후기 철학은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환대에 관하여>(1997)는 레비나스와 클로소프스키의 환대 개념을 데리다가 자기 식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법의 힘>(1994)에서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는 레비나스적 '정의'를 세속적인 '법'에 대립시키고 있다."(302쪽)

보다 자세한 논증이 필요한 주장이긴 하지만, 여하튼 데리다를 읽는 데에도 레비나스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거꾸로 레비나스를 읽는 데에도 데리다의 <레비나스여 안녕>은 기꺼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또한 신속히 번역되기를 기대한다(그러니 아직도 구만리이다. 우리는 레비나스에게 '아듀'를 건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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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2-1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군요...

로쟈 2006-02-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는 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2-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사진을 보니 지젝이 화장실에서 바지를 입고 똥을 싸네요. 대략 난감.

yoonta 2006-02-11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와 차이에서의 차이를 차연의 오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듯..데리다는 차이 la diffe'rence를 차이/차연 la diffe'rance로 표기함으로써 음성중심주의적 동일성이 해체되는 효과를 표현하기위해 저런 신조어를 만들었죠. 소리로는 구분되지는 않지만 문자로는 구분되는 문자의 효과를 보여주기위해서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이것의 한글표기를 차이로 할것이냐 차연으로 할것이냐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차이로 해야된다는 사람들은 음성적으로는 차이와 차연이 구분이 없다는 점에 착안하는 것이고 차연으로 하는 사람들은 철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압니다...때문에 어느쪽이 옳은 표기냐라는 문제라기보다는 어디에 강조를 두느냐는 문제라고 봅니다..


로쟈 2006-02-1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에 책의 원제가 'L'ecriture et la difference'입니다. 'la diffe'rance'가 아니므로 '차연'이라 옮겨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yoonta 2006-02-1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제가 님 글을 약간 잘못봤네요..
저는 동문선에서 나온 번역본의 제목<글쓰기와 차이>의 제목해석을 '오기'라고 말씀하신것으로 봤는데 그게 아니네요..

님 글을 다시 읽어보니..강영안씨의 저서(301쪽)을 인용하면서..그 글속의 오기를 지적하시는 거군요..^^


로쟈 2006-02-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데리다의 책명을 <글쓰기와 차연>으로 표기했는데, 그게 오기라는 얘기였습니다.

yoonta 2006-02-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지금 다시 봤어요..지송...^^
 

  

 

 

 

지난주에 교보에 들렀다가 미술사 책 한 권과 함께 구한 책이 알폰소 링기스의 <낯선 육체>(새움, 2006)이다. 얼마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언급한 책인데, 책에 대한 흥미와 일말의 책임감에 이끌려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육체'와 관련한 독서계획을 급조했는데(급조한 제목은 '낯선 육체를 찾아서'), 피터 브룩스의 <육체와 예술>(문학과지성사, 2000), 쥬디스 버틀러의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 2003)이 가장 먼저 꼽은 책들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하여간에 이 책들을 읽게 될 것이다(<낯선 육체>는 원서를 구하고 있고, 나머지 책들은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이미 원서를 갖고 있던 책들이다). 버틀러는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에도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지젝의 재비판을 더불어 읽어볼 수도 있겠다. 다른 책들은 고려중이다.    

 

 

 

 

한데, 조금 유감스러운 것은 '육체'보다도 먼저 일부 눈에 띄는 오역들. 대개 책을 구하게 되면, 서문과 목차, 그리고 색인 등을 들춰보는데, <낯선 육체>의 색인에는 '유어세너, 마거리트'라는 이름이 올라와 있다. '낯선' 이름이지만 소리나는 대로 적어보면 'Marguerite Yourcenar', 즉 프랑스의 저명한 여성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1903-1987)'이다. 국내에서는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세계사, 1995)으로 일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명망 높은 작가이고 이미 여러 권의 소설들이 번역돼 있는데, '유어세너'라는 건 좀 무례한 호명이다. 전문 번역가들이 우리말다운 문장들을 만들어내는 데는 '전문가들'보다 나은 편이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종종 실수를 드러낸다. 본문에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낯선 육체>의 원서를 구할 때까지(이번주 안으로 구해질 것이다) 먼저 <육체와 예술>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좀 실망스럽다. 저자인 'Peter Brooks'를 '피터 부룩스'라고 옮긴 것부터가 의아한 대목인데(이게 얼마나 갈망질팡이냐면, 겉표지/속표지에는 '룩스'이고 본문과 서지정보란에는 '룩스'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었다는 얘기이다. 하기야 발음상으로야 대수롭지 않은 차이이지만), 이런 경우 검색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수도 있다. 물론, 나의 오랜 '경험'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이런 무신경이 오직 저자명의 표기에만 국한될 리는 만무하다.  

<육체와 예술>의 원제는 'Body Work'이고, 부제는 '근대 서사에서의 욕망의 대상들'이다. 국역본 뒷표지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문학과 미술 작품에서 육체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왜 육체를 다루고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육체와 의미, 육체의(에 의한) 글쓰기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인 브룩스는 예일대학의 불문과 교수로서 <플롯을 위한 독서(Reading for the Plot)>이란 대표적인 저작을 갖고 있다(이 책에 대해서는 권택영 교수의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동서문학사, 1991; 문예출판사, 1995)를 참조할 수 있다. '육체'와 관련한 주제로는 권택영, <몸과 미학>(경희대출판부, 2004)도 출간돼 있다).

그런데, 국역본의 표지에는 유감스럽게도(?) 원서 표지에 실린 앙리 제르벡스(Henri Gervex)의 그림 <롤라(Rolla)>(위의 그림)의 상당 1/5 정도만이 사용되고 있다. 나는 첫눈에 번역 또한 그렇게 '에누리'한 수준은 아닐까 우려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첫페이지의 번역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켜주지 못했다. 첫 페이지라는 건 1장 '서사물과 육체'가 시작되는 21쪽을 말하는데, 가령 이런 대목을 읽어보자.

"상상적 문학에 있어 육체는 항상 매혹의 대상이 되어왔다. 육체는 인간의 정신력과 의지력을 세상에 행상하는 중간과정이며, 물질성을 넘어서는 의미의 생성 작업에 있어 타자로서 작용한다.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의미 생성의 매개가 되고 하며(예를 들어, 글을 쓰는 손 같은 경우), 심지어는 작업의 장소로도 사용된다."

이 대목의 원문: "In imaginative literature the body has always been a object of fascination, at once the distinct other of the signifying project - which, as an exercise of mind and will on the world, takes a stand outside materiality - and in some sense its vehicle(this living hand that writes), perhaps even its place of inscription."(1쪽)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본 인상으로 판단하건대, 국역본은 대개 '의역'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번째 문장에서 'as an exercise of mind and will on the world'을 '인간의 정신력과 의지력을 세상에 행사하는 중간과정'이라고 옮기는 것도 그런 사례인데, '중간과정'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임의적'인 첨가어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관계사 'which'의 선행사는 'body'가 아니라 'signifying project'이다. 문장의 요체만 간추리자면, "[T]he body has always been a object of fascination, at once the distinct other of the signifying project and in some sense its vehicle..." 정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체'는 '의미화 작업'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고 있다. 즉, 육체는 의미화작업과는 무관한 타자이면서(의미화작업은 주로 '대뇌'에서 담당한다) 한편으론 그 수단이라는 것.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손(this living hand that writes)'이 바로 그 '수단'이다. 그리고 때로 육체는 심지어 '그 기입의 장소(its place of inscription)'가 되기도 한다. 육체에 뭔가를 쓰거나 새겨넣는 경우도 있으니까. 가령,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필로우북>(1995)이 좋은 예가 되겠다.

한국영화로는 정진우 감독의 <자녀목>(1984)에서도 '육체에 씌어지는 글자들' 장면을 볼 수 있다. 주연을 맡았던 원미경은 80년대 초중반 여러 사극영화들에서 연기력 좋은 '육체파' 배우로 각광받았었다(<변강쇠>, <사노>, <물레야, 물레야> 등이 그녀의 주연작들이다). 이야기가 언제 또 '육체파'로 새버렸나? 

어쨌든 나의 요점은 <육체와 예술>의 번역이 '예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임의적인 의역/오역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주의해 읽어야 한다는 것.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포함하고 있는 책에 '역자 후기'가 빠져 있는 것도 상당히 드문 일인데, 번역의 자초지종에 대해서 알길이 없기에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육체와 예술>에 대한 읽기는 한동안 더 진행될 것이며 독후감은 나중에 따로 올리기로 한다.

06. 01. 31.

P.S. <의미를 체현하고 있는 육체>도 읽을 만한 번역이지만, 아쉬운 대목들이 눈에 띈다(라캉의 '실재(계)'를 '실제계'라고 옮긴 것 등의 대표적이다). 서문에서 일인칭 주어 '나'를 '본인'이라고 옮기는 경우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데, 그렇다고 이걸 오역이라 할 수는 없겠다. 다만 '공통감각'의 부재를 탓할 밖에. 이 책에 대해서도 브리핑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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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에 대한 페이퍼를 쓰다가 머리도 식힐 겸 '제네바의 시민' 루소(1712-1778)에 대한 창고 정리를 한다(이른바 단순작업).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 1997)를 읽고 메모해 놓은 것인데, (이것도 기억이라면) 꽤 오래 전에 쓴 것이다. 이미지들을 몇 개 붙여놓는다.

홀름스텐의 책은 내가 읽은 로로로 시리즈 몇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 마치 츠바이크의 전기물들을 읽는 듯하다. 원저는 1972년에 발간된 것으로 저자인 홀름스텐은 방송기자와 저술가로서 활동하면서, 몇 권의 역사서와 10권의 전기소설을 집필한 걸로 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작가층이 두터워야 그 나라의 문화가 윤기 있어진다. 로로로 시리즈 중에서 <볼테르>도 저술한 걸로 되어 있는데 출간을 기대해 본다.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을 간추린다. 가령 디드로와의 비교(*디드로의 책들은 다섯 권 정도 검색된다. 이미지로 띄운 책들은 <수녀>와 함께 내가 갖고 있는 책). 동년배였던 두 사람(디드로가 루소보다 한 살 아래)은 기묘한 개인적인 운명, 혹은 비운 때문에 더욱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모두 지성적인 야심을 기대할 수 없는 소녀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소의 설명: "내가 테레즈를 갖고 있듯이 그는 아네트란 여자를 갖고 있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처지의 비슷한 점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었다. 즉, 나의 테레즈가 적어도 아네트만큼은 예쁜 데다가 성격이 부드럽고 상냥하며, 고상한 한 남자를 곁에 묶어두게 만들어진 반면, 그의 아네트는 게으르고 본성이 천박하여 다른 사람들 눈에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을 보충해줄 만한 어떠한 장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아주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게 결혼을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던 나는 그의 행동을 따르려고 서두르지 않았다."(83쪽)

 

 

 

 

실제로 루소는 1745년 뤽상부르 공원 근처의 생 캉탱 여관에서 처음 만난 소녀와 꼬박 23년의 동거 끝에 결혼한다. 그 사이 다섯의 아이들은 고아원에 갖다 버린 일은 유명하다. 루소의 고백적인 기록들은 이미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 유형을 예고하고 있다. 루소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루소와 톨스토이(톨스토이에게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칸트, 루소, 그리고 쇼펜하우어이다)에 관해서 글을 써볼 수 있을까?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제2부 도입부: "인류사상 최초로 한 조각의 땅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생각이 든 사람, 그리고 단순하게도 그러는 그를 믿는 사람들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시민사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말뚝을 뽑아버리고 이웃들에게 '조심해라 사기꾼을 믿어서는 안된다. 당신들은 땅의 산물은 모두의 것이지만 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을 때 몰락하게 된다'라고 외쳤더라면 인류는 그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105쪽)

이 대목은 "인간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톨스토이와 비교해 봄직하다. 이 대목에 대한 '지주' 볼테르의 평: "이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싶어하는 거지의 철학이다." 루소의 편을 들고 싶은 걸 보면 나에겐 거지근성이 있나보다.

내용중에서 루소가 연극예술을 반대한 점도 흥미로운데, 제네바에 극장을 건립하는 문제로 볼테르와 의견이 갈린(그는 디드로와 달랑베르와도 사이가 나빠진다) 그가 볼테르에게 보낸 편지. "당신은 당신이 찾은 피난처 제네바를 타락시켰습니다. 바로 당신이 제게 고향에 머무는 것을 못견디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저는 당신 때문에 이국 땅에서 죽어야 합니다. 당신이 제 조국에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영예를 차지하는 동안, 저는 죽은 짐승을 버리는 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저는 당신을 증오합니다."(146-7쪽)

윌 듀란트 부부는 이들의 시대에 관한 저작(<루소와 혁명>, 1967)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볼테르와 루소의 긴 싸움은 계몽주의의 면전에서 벌어진 가장 유감스러운, 치욕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다. 볼테르는 장 자크와 똑같이 민감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소 자신의 재능을 격정에 의해 왜곡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는 루소의 이론에서 반란에서 시작해 종교로 끝나는 개인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비합리주의를 예감했다. 볼테르는 파리와 그 도시의 유쾌함과 사치의 아들이었다. 반면 루소는 제네바의 아들로 자신이 당했던 신분차별과 자신이 누릴 수 없었던 사치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찬 음울하고 청교도적인 시민이었다. 볼테르는 문명의 죄는 문명이 가져온 안락함과 예술에 의해 상쇄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루소는 도처에서 불쾌함을 보았고 거의 모든 것을 비관했다. 개혁론자들은 볼테르에게 귀를 기울였고, 혁명가들은 루소에게 귀를 기울였다."(191쪽, 강조는 나의 것)

 

 

 

 

끝으로 루소에 대한 아놀드 하우저의 평가: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때때로 민중의 편에 서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항상 단순한 대변자 내지 보호자로 나섰을 뿐이었다. 루소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 최초의 인물이요, 민중을 위해 말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기도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반역을 고취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반역자였다. 그의 선구자들이 개량주의자, 사회개혁가, 박애주의자였다면 그는 최초의 진정한 혁명가라고 하겠다."(221쪽)

루소의 저작 중 대부분이 번역돼 있다. <신 엘로이즈> 정도가 빠져 있을까? 연구서 중에서는 카시러의 책을 읽고 싶다(<루소, 칸트, 괴테>, 서광사, 1996). 듀란트의 책과 함께 장 스타로벵스키의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그리고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도 읽고 싶다(스타로벵스키의 '주제비평'에 대해서는 김현의 연구서 <제네바학파의 비평>(혹은 <제강의 꿈>)을 참조할 수 있다. <덧없는 행복>(한국문화사)은 번역돼 있다. 러시아에는 스타로벵스키의 책들이 근간 <작용과 반작용>을 포함해 여러 권 번역돼 있다. 이 걸출한 문학연구자의 저작들이 국내에도 소개되었으면 싶다). 전문적인 연구서적은 물론 다 섭렵할 수 없다. 폴 드 만의 <독서의 알레고리> 2부가 루소에게 할애되어 있는데, 이것도 언젠가는 읽어야겠다. 자자손손...

06.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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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소 사상의 이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7-21 20:03 
    오늘 눈에 띈 한권의 책은 박호성의 <루소 사상의 이해>(인간사랑, 2009). 루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편역자가 루소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논문들을 엮고 옮긴 책이다. 김용민 교수의 <루소의 정치철학>(인간사랑, 2004) 이후에 드물게 나온 연구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론 4부에 실린 몇 편의 논문을 기회가 되면 우선적으로 읽어보고 싶다.      제1부 루소 사상의 시
 
 
2006-01-24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1-2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영역본은 갖고 있는데 읽을 짬을 내는 건 쉽지 않네요. (여성)전공자들은 대개 루소를 아주 싫어하던데요.^^
 

 

 

 

 

 

 

 

 

가라나티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의 '제1부 칸트'를 지난번에 이어서 계속해 읽으며 정리해본다, 아니 읽은 걸 정리해둔다. 제1장의 2절 '문예비평과 초월론적 비판'의 내용을 따라가 보려고 하는데, 고진은 어떤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칸트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리부터 챙겨두자. 서양근대철학회 편 <서양근대철학>(창비, 2001)에서 칸트에 관한 장의 한 대목이다(아마 다른 서양철학사들에서의 정리도 엇비슷할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 순수이론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진리(眞)의 인식 문제를 다루고, <실천이성비판>이 도덕(善)의 실천문제를 논한 것이라면, 남은 문제는 이론과 실천, 현상세계와 이념세계는 서로 어던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예술에서의 미적 판단(美)과 자연의 합목적성의 문제로 집약되어 1790년에 출간된 <판단력비판>에서 논의된다. 이 세 비판서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과 도덕적 실천 그리고 감정과 정서를 다룸으로써 진․선․미 또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와 감정의 세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357-8쪽)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 고진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러한 세 영역의 구분이 칸트의 비판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트의 세 비판은 각기 과학 인식, 도덕, 예술(과 생물학)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칸트는 각 영역의 특이성과 그것들의 관계구조를 밝힌다. 그러나 칸트 이후의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은 그런 구분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칸트의 ‘비판’으로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트 이전과 이후에 과학 인식, 도덕, 예술 등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분에 기초해서 칸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구분 자체를 초래한 칸트의 ‘비판’을 읽어야 한다.”(74쪽)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영역본에 "One should read the Kantian critique that itself created the categorization."라고 돼 있다. 내가 읽기에 이 문장은 "우리는 그러한 구분(범주)를 창조해낸 칸트의 비판 자체를 읽어야 한다" 정도의 뜻이다. 고진의 논점을 다시 확인하면 이렇다: 칸트가 과학, 도덕, 예술의 관계를 명시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칸트가 제1비판, 제2비판에서 드러낸 ‘한계’를 제3비판에서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칸트가 드러낸 것은 이들 셋이 구조적인 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현상, 물자체, 초월론적 가상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제외해도 성립하지 않는, 라캉의 비유로 말하자면 '보로메오의 고리'를 이룬다는 것과 대응하고 있다.”(75쪽) 

 

라캉의 '보로매오의 고리'는 흔히 ‘보로메오의 매듭’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상상계(I)와 상징계(S), 그리고 실재계(R)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 칸트에게서 감성과 오성, 그리고 상상력(구상력) 간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인데, 만약에 그렇다면, 칸트의 '비판'은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제3비판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미 완결을 본 것이 된다. 이에 착안하여 고진은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비판>의 문제틀을 독해/확인하고자 하는 것. 그렇다면, <판단력비판>과 마찬가지로, <순수이성비판>의 기원 또한 예술의 문제에 놓여 있다.

"칸트의 '비판'은 애초에 예술의 문제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칸트의 비판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서는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양한 어원적 탐색이 이다. 하지만 어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흔히 가까운 기원을 은폐한다. 오히려 나는 칸트의 비판(critique)은 말 그대로 비평(cirticism)에서,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고전 미학이 통용되지 않는 상업적 저널리즘에서 성립하는 비평, 즉 누구도 결말을 지을 수 없는 평가를 둘러싼 ‘아레나’(투기장)에서 왔다고 생각한다.”(75쪽, 강조는 나의 것)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흥미롭다:"칸트는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형이상학 아래 있던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인성론>의 흄이라고 썼다.(...) 파이잉거에 따르면, 칸트 자신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칸트를 깨어나게 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사상가 홈(Henry Home; 1696-1782)의 <비평의 원리>(1762)였다고 한다(<순수이성비판 주해>, 1921)." 흄의 <인성론>, 즉 <인간본성의 논고>에 대한 해제는 이준호 교수의 <데이비드 흄>(살림, 2005)를 참조. 그런데, 보다 문제적인 인물은 이 아니라 이라는 것(위의 사진).  

참고로 한 백과사전의 짤막한 설명은 이렇다. "KAMES, HENRY HOME, LORD [Kames, Henry Home, Lord] , 1696-1782, Scottish judge and philosopher. A man of broad interests and a wide-ranging intellect, his works included dissertations on Scottish law, agriculture, and problems of moral and aesthetic philosophy. Among his writings were Introduction to the Art of Thinking (1761) and Elements of Criticism (1762)."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이는 한스 파이잉거(Hans Vaihinger)인데(세번째 사진), 그가 근거로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논리학>(1782)의 이런 대목이다: "홈이 미학을 비판이라고 명명한 것은 옳다. 미학은 판단을 충분하게 규정하는 선천적 규칙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역본에는 "Home has more correctly called Aesthetics Criticism, because it does not, like Logic, furnish a priori rules."(37쪽)이라고 돼 있다. 여기서 칸트의 비판(critique)이 유래했을 거라는 얘기.  



 

 

  

지나가는 김에 번역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예전에 일역본을 따라 '선천적'으로 번역되던 'a piori'는 요즘 '선험적'이란 역어로 옮겨진다. (백종현 교수의 제안에 따라) '선험적/선천적'이 '초월적/선험적'이라고 옮겨지는 식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중에 나와 있는, 국내 1세대 칸트학자들의 <순수이성비판> 번역본들은 '선험적/선천적'을 취하고 있고, 칸트철학을 '선험철학'으로 규정한다. 백종현 교수 등에 따를 경우엔 '초월철학'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은 정리된 게 아니어서, 가장 최근에 나온 <순수이성비판> 해설서로 백종현의 <존재와 진리 -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문제 >(철학과현실사, 2000/2003)와 바움가르트너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철학과현실사, 2004)는 각각 '초월철학'과 '선험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해서 번역서들에서 '선험적'이란 말이 나오면 어떤 계열에 따른 번역인가를 확인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두 가지 '체계'가 있는 걸로 보아야 할까? 하지만 일반 독자들로선 불편하다.

아무튼 국역본 <트랜스크리틱>은 일역본의 용례를 따른다. 아직 새로운 관례에 따르는 새 번역본 <순수이성비판>이 아직도 출간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백종현 교수의 <실천이성비판> 번역은 2002년에 출간된 바 있다. 개인적으론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을 '윤리형이상학'으로 '의역'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들만의 철학', '그들만의 칸트'는 언제쯤 '우리의 칸트', '우리 세대의 칸트'가 될 수 있을까?   

다시 고진으로 돌아오면, “칸트가 홈에게서 배운 것은 ‘취미판단’, 즉 미학적 취미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반성과 그 근거에 대한 연구였다. 홈은 취미판단의 보편성, 즉 미추의 기준을 찾아 그것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원리에서 도출해내려고 애를 썼으며, 미추에 관한 인간 감수성의 선천성(=선험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칸트가 모범으로 삼았다는 얘기.  

칸트 전공자들의 문헌들을 별반 읽어본 바 없지만, 헨리 홈에 대한 내용은 국내 학자들에게서 거의 다루어진 바가 없지 않나 싶다(국내에 나와 있는 해설서들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해서 고진의 이러한 주장은 신선한데, 사실 이러한 견해는 고진 자신도 일본의 칸트 학자 하마다 요시후미에게 힘입은 것이다. 하마다의 <칸트 윤리학의 성립>(1981)이란 저작이 말하자면, '연기자' 고진에게 차려진 '밥상'인데, 하마다에 따르면 칸트가 '비평'이란 말을 인간의 이성 능력 자체의 근본적 음미를 의미하는 독자적인 '비판' 개념으로 다시 파악하여 자신의 용어로 사용한 것이라고. 

 

 

 

 

 

 

 

 

 

홈과 칸트에게서 문제된 것은 취미판단의 주관성(개인성) 주장과 보편성 요구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때 칸트가 도입하는 것은 일반성과 보편성의 구별이다. 그는 "미에 관한 취미판단이 확립하려는 것이나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규칙이 아니라) 보편적 규칙"임을 <판단력비판>에서 적시한다(이 <판단력비판> 또한 새로운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새 번역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즉, "어떤 무언가를 '미'라고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규칙"은 없지만, 단순한 쾌적함과 구별되는 취미판단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보편성의 보증을 칸트는 '공통감각(common sense; sensus communis)'에서 찾는다.    

 

<새로운 학문>(동문선, 1997)의 저자 G. 비코(1668-1744)에 따르면, 공통감각이란 "어떤 계급, 어떤 민족, 어떤 국가, 인류 전원이 공유하는, 조금의 반성도 수반하지 않는 판단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통감각은 역사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라면, 보편성을 보증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편성이 있다면 그러한 다수의 공통감각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딜레마가 취미판단의 영역으로서 예술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칸트는 자연과학, 도덕성, 예술을 구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 자체는 그의 목적지점(terminus ad quem)이 아니다. 왜냐하면 칸트는 어디서든 보편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80쪽, 굵은 글씨는 국역본에 빠진 부분을 영역본 39쪽을 참조하여 채워넣은 것이다). 따라서, 미적 판단에서 보편성이 의심스럽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칸트는 거기서 출발했다. 칸트의 '비판' 근본적인 것은, 우선 모든 것을 취미판단에서 마주친 문제에서부터 다시 생각한 데 있었다."(80쪽, 강조는 나의 것)

 

이 점이 고진의 칸트 읽기에서 일차적으로 강조되는,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나로선 이것을 고진의 첫번째 테제라고 부르고 싶다(요컨대, '<순수이성비판>을 <판단력비판>과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읽어내기'이다). 영문으로 반복하자면, "The radicalism of his[=Kant's] critique exists in that he reconsidered the question of universality from the vantage of the judgment of taste."

 

이어지는 내용은 그렇다면, 공통감각이란 무엇이냐 라는 것. 고진은 이 공통감각을 개인의 쾌/불쾌, 쾌적함과는 구별하면서 '공동의 언어게임'의 문제로 재규정한다(이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타자'의 문제와 함께 상술된다). 이럴 때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은 서로 다른 규칙체계를 소유하는 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다."(81쪽) 그리고 이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 요구는 모든 종합판단에 흐르는 공통된 문제이므로 흔히 '대상에 대한 몰관심성'에서 미가 발견된다고 할 때의 몰관심성, 혹은 관심을 괄호 안에 넣기는 지적, 도덕적 관심의 경우에도 두루 적용된다.

 

그러니까 "칸트가 취미판단의 특성으로 삼은 것은 인식에 대해서도 도덕에 대해서도 들어맞는다."(82쪽) 어떤 식으로? 과학에서의 대상인식에서는 도덕적, 미적 판단을 괄호에 넣고, 도덕적 영역에서는 쾌나 행복을 괄호에 넣는 방식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참인가 거짓인가, 선인가 악인가, 쾌인가 불쾌인가라는 적어도 세 영역에서 동시에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괄호넣기(몰관심성)에 의해서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즉, "인식적, 도덕적, 미적 영역은 어떤 태도변경(초월론적 환원)에 의해 확정되는 것이지 그것들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고진의 두번째 테제라고 해둔다. 반복하자면, "[C]ognitive, moral, and aesthetic domains are all constituted by a change of attitude (i.e., transcendetal reduction); and in the beginning these domains do not exist in and of themselves."(41쪽)

 

그러므로, "칸트에게서,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 비판>으로의 이행을 찾아내는 것은 옳지 않다. <순수이성비판>은 이미 문예비평이 준 곤란함에 입각해서 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수이성비판>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이다."(83쪽) 고진이 리오타르를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아렌트는 <판단력비판>을 정치학의 원리로 읽으려고 했고(<칸트의 정치철학강의>), 리오타르는 거기서 '메타언어의 설정이 없는 언어게임간의 조정'을 보려고 했다(<열광>). 그것은 사실상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보편성을 기껏해야  '공통감각'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일이다."(83쪽)

 

마지막 문장엔 착오이긴 하지만 문제가 되는 오역이 포함돼 있는데, 영어본을 옮기면 이렇다: "But Lyotard's reading is a regression to Hume insofar as it considers the issue of universality to be simply one of the coalition among common senses."(42쪽) 즉, 국역본은 '흄'을 '휴머니즘'으로 잘못 옮겼다. 역자는 후기에서 국역본 <트랜스크리틱>이 실질적으로는 일어본보다 영역본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영역본과의 대조는 소홀히 한 것 같아서 아쉽다(대조했더라면 '음역' 과정에서 생기는 이런 오역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너무 오래 끌었다. 이 2절도 아직 다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3절 '시차(視差)와 물자체'와 함께 다음에 마저 다루기로 한다. 앞에서 고진의 두 가지 테제를 내 식으로 정리했는데, 반복하자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수이성비판>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이다."

 

06. 01. 20 -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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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1-2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진도가 팍팍 나갔으면 좋겠네요:)

로쟈 2006-01-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들을 가방에 다 싸들고 다닐 수가 없는 데다가(학교에 놔두고 왔습니다) 인터넷 사용에 제한이 있어서 진도는 아마 더디 나갈 것 같습니다. 양해해주시길...

yoonta 2006-01-24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랜스크리틱은 아직 읽지않고 있어서 일단 님이 정리한 글로 간접적으로 트랜스크리틱을 겸험하고 있는데요..

님의 글을 읽다가 한가지 의문점이 떠오르는데...
칸트가 취미판단의 '보편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취미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공통감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인가요...아니면 취미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취미판단의 보편성을 공통감각을 통해 제시하는 것인가요?

전자와 후자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보이는데요..취미판단의 주관성이 공통감각을 통해서 취미판단의 보편성속으로 환원할수있다고 보는 것인지(공통감각=취미판단의 보편성이라고 보는건지 아니면 공통감각을 통해 취미판단의 보편성으로 이행되는것인지도 애매하네요) 아니면 취미판단의 주관성/보편성의 이원적 대립이 공통감각이라고 하는 제3의 어떤것을 통해 해소되는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군요...

고진이 강조하고 싶은 칸트의 중요지점으로 '공통감각'이 제시되는 것 같은데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a priori)이라는 말이나 초월적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와도 연결되는 문제인것도 같고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과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니 아직 이 페이퍼가 완료가 된게 아니네요.. 로쟈님 페이퍼가 완성될때까지 좀더 지켜봐야겠군요..^^

로쟈 2006-01-2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좀더 지켜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들이 학교에 있어서 매번 지체되는군요(오늘도 휴업입니다). 물론 <트랜스크리틱>을 직접 읽어보시는 게 더 빠르겠네요. 칸트에 관한 건 20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금방 읽힙니다...

lastmarx 2006-02-1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을 너무나도 즐겁게 일독했습니다. 다시 정독을 할 생각입니다. 앞부분 칸트의 '비판'은 솔직히 낯설었으나 고진의 비판, 비평은 명쾌했습니다. 뒷부분 맑스의 비판, 비평은 지금까지 그 어느 맑스 해설자보다 넓고 깊은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맑스주의자들의 논리와 주장을 보면 시시하게 느껴질 듯합니다. 로쟈님의 노트와 영역본 대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천천히 전개되더라도 정확하게 논평, 정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거의 완벽한 리뷰를 하셨지만 특히 이 책만큼은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로쟈 2006-02-1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을 '발견'하신 건가요? 맑스에 대한 2부를 정리해주시면, 저랑 '계산'이 맞을 거 같습니다.^^ '완벽한 리뷰'라기보다는 '굼뜬 리뷰'인데, 언제 다 기어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장애물들이 워낙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