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두 군데 강의가 있었고, 점심 먹고 논문 한편 읽고 도서관에서 책 한권 복사하고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계간지도 하나 챙기고(이건 필요 때문이다), 그러고 저녁을 먹으니 이 시간이다. 잠시 여유를 부려서 계간 <세계의 문학>(가을호)을 훑어보다가 이근화 시인의 시에 눈길이 머문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는 이런 시들이 마음에 든다. <문학과사회>(가을호)에도 '우리들의 진화' 외 3편이 발표됐는데, 그 정도면 아주 활발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이 계절에 읽은 가장 눈에 띄는 시인으로 꼽고 싶다.

약력을 보면, 이근화씨는 지난 2004년 등단하고 지난봄에 첫시집 <칸트의 동물원>(민음사, 2006)을 낸 아직 초년병 시인이다. 분류하자면, '문사마(문태준)' 계보도 아니고 소위 '미래파'도 아니다. 그의 시는 무겁지 않고 난해하지 않다. 가볍고 평이하다. 그게 마음에 든다. 나는 내게 재미있는, 그래서 지지하는 시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당연한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인용해보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하는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보니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중략)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후략)

 

이 정도면 재미있고 유머러스하지 않는가? 덩달아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라고 합창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저 혼자 폼잡는 시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들의 진화'는 또 어떠한가?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감자와 고구마의 영양 성분은 놀랍다" 이건 놀라운 시 아닌가? 감자나 고구마가 등장하는 시들을 내가 좋아하기도 하지만(당신은 감자와 고구마를 싫어하는가?) 그 '놀라운 영양성분'에 대해서 토로하는 시는 아주 드물다. 하니, 이건 아주 드문 시이다.

 

감자와 고구마의 영양성분은 놀랍다

나는 섭취한 대부분의 영양을 발로 소비한다

내 두 발을 사랑해

 

열 개의 손가락을 오래 사랑했다

고부라지고 빈 구명이 숭숭 뚫려 있는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내 몸의 물은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우리는 길을 똑바로 걸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우리는 길을 똑바로 걸어 되돌아왔다

사라지는 골목을 사랑해

오래 사랑했다

(중략)

 

천장 위에 쌓이는 먼지들의 고고한 자세로

우리는 숨을 고르고 다시 손을 모은다

내 몸을 엉망으로 기억하는 이불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기로 한다

(후략)

 

그래, 그 골목들을 나도 사랑했었다. 그래서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로 시작하는 시도 쓴 적이 있었지. 그래, 그 이불에 대해서 나도 아무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게 일상이고, 일상의 발견이다. 그러니 터놓고 얘기하자. '사라지는 골목을 사랑해'! 그리고, 너만 알고 있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사실, 아니면 어쩌겠냐구?)..   

 

 

06.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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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0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들도 마음에 들어요^^

2006-09-06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9-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저도 맘에 듭니다.^^
**님/ 안 그래도 오늘 <맥베스>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항상 이런 강의는 하고 나야 좀더 많이 알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들으시는 분들께는 미안하죠). 애초에 너무 견적을 크게 잡아서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조만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겠습니다(그래도 며칠 더 기다리심이). 그리고, 복사/제본한 책들의 보관기준이 따로 있는 건 아니구요. 읽는 중에 튿어지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 던데요(요즘은 아무래도 이전보다 좋은 제본기들이 많이 나와서요). 제 경우에 문제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찾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복사해둔 듯한 책을 찾아야 할 일이 생겼는데, 백사장에서 동전 찾는 것보다는 약간 쉬울라나...

bookie 2006-09-0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시들을 좋아하는 로쟈님이 마음에 듭니다. ^^

로쟈 2006-09-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ookie님도 좋아하시는군요.^^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만큼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읽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는 사회학자도 드물다. 이건 그의 책 대부분이 동문선에서 출간되고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어지간하지 않은 책값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갈 수 없는 책들과 몇 번 대면하다 보면 지레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의 책 <실천이성>(동문선, 2005)의 경우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없는 책으로 치고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집어들게 되었고(서점에서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외국의 청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문집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어쩌면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대해서 그 자신이 가장 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입문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고: "부르디외가 설명하는 부르디외의 사회학 이론을 접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행운이라 할 터이다.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로 듣는 해설서로서 <실천이성>이 그의 독창적 학문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278쪽)

하지만, 나의 행운과 기대는 멀리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불어본과 영역본(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장의 번역이 누락돼 있다)까지 대출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제일 처음 읽은 것은 1장의 부록인 ''소련의' 변형과 정치적 자본'이었다. 국역본상으로 6쪽짜리의 글인데(불어본과 영역본은 5쪽), 내용에 들어가기 이전에 몇 가지 사항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번역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일단 첫문장: "나는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디스탱숑>을 깊이 있게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32쪽) 부르디외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 <디스탱숑La Distinction>이 <구별짓기>를 가리킨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에 대한 불만들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작년에 국역본 재판(새물결, 2005)까지 나온 바 있다(부르디외 전공자인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탁월화'라고 엉뚱하게 소개한 전력이 있다). 같은 책이 동문선에서는 아마도 새물결판과 구별짓기 위해서 <디스탱숑>이란 음역 제목으로 근간 목록에 올라놓고 있는데, 한국어판 판권이 과연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정이 어떻든간에 우리말로 아무것도 전달해주지 않는 '디스탱숑'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 태도 자체가 불만스러웠는데, 막상 번역서에서 그런 제목을 읽으려니까 심사가 아주 디스탱숑해진다.

 

 

 

 

동베를린에서 강연한 강연문인 이 글에서 부르디외가 '여러분'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은 1989년 10월 25일 당시 동독인들이었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건 불과 며칠 후인 11월이었다).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구별짓기>의 모델이 프랑스 밖에서도 적용가능한가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문에 대해 답하겠다는 것(국내에도 부르디외 사회학의 한국적 적용을 탐색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즉, 이 책에 제안되어 있는 모델은 프랑스의 특수한 사례를 넘어서 유효한 것인가? 그것은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적용된다면 그 조건들은 무엇인가?"를 부르디외는 따져보고자 한다.

이때 인용문에서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는 주의를 요한다. 부르디외의 발화시점에서 '통일 독일'은 아직 없었으며 그가 쓴 표현은 '동독'이기 때문이다. 불어로 동독은 RDA이며 영어로는 GDR(German Democratic Republic)이다. 사실 어차피 통일된 마당에 동독이나 독일이나 뭐가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강연의 제목/주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역자가 '소련의 변형'이라고 옮긴 표현은 'La Variante 'Sovietique'(The 'Soviet' Variant)이며, 이건 ('미국형'이나 '자본주의형'에 대응하여) '소련형' 혹은 '소비에트형'으로서의 동독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독일을 '소련의 변형'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RDA/GDR은 원래대로 '동독'이라고 옮겨야 하는 것이다(더불어 이 글의 제목은 '소비에트형 사회와 정치적 자본'이라고 옮기고 싶다).

RDA가 나오는 여러 대목들이 '독일'이라고 옮겨진 것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36쪽)에서 'RDA'는 왜 튀어나오는 것인지(이 불어 약자는 GDR과 달리 단번에 검색되지도 않는다)? 역자의 부주의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하는 문제일까?  

 

 

 

 

그렇게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니까 곧 흠잡을 것 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구축 작업, 나아가 -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E. P. 톰프슨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 제조 작업을 대가로 해서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 될 수 있다."(33쪽)

내가 아직 톰슨의 명저를 읽어보지 않아서 'mobilized and active classes'라고 영역된 문구를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라고 옮기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사정은 역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Thompson'이 '톰프슨'이 아니라 '톰슨'으로 옮겨지며, 그의 주저는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가 아니라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적어도 국역된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더구나 그게 무시할 만한 번역본이 아닌 이상) 이를 참조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건 일반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 아닐까?

부르디외가 강연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중요한 사회적 변수인 반면에 (동독과 같은) 소련형 체제에서는 '정치적 자본'이라는 게 중요하게 기능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학적 분석에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런 내용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암시받을 수 있고 상식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내가 읽기에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새로운 상식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상식을 확증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 상식으로의 여로는 '디스탱숑'과 'RDA'와 '톰프슨' 등을 거쳐가야 하는 울퉁불퉁한 험로이다. 짧은 강연문에 대한 브리핑을 기획했다가 이런 식의 불평만을 늘어놓는 게 과연 나의 결벽 탓인지?..

06.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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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3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 로쟈님의 번역관련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만약 제가 또 번역을 하게 되면 정말 눈에 힘을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사이드 선생이 <미메시스>에 대해서 쓴 글을 한 문예지에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죽겠더라고요. 덕분에 신학책도 봐야했고 미메시스도 다시 영역본으로 읽는 등. 번역은 정말 작심하고 공부하면서 하지 않으면 완전히 '민폐'를 주는 것 같습니다. ㅎㅎ ^^

아래는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가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는' 은 고유명사인가요?;; '우리는'일 것 같은데 문맥상으로는요.

로쟈 2006-07-3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이 맞습니다. 오타였어요.^^

krinein 2006-07-3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공부할 때 읽은 국역본들이 대부분,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건 그렇다치더라도, 긍정문과 부정문까지도 혼동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었지요. 예의 새물결판 [구별짓기]는 역자가 실상 일어판을 주로 참고했다기에 상대적으로 문법적인 오류는 적을걸로 기대했는데도 말입니다(물론, 영역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뭐, 동문선 번역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알라딘 서재는 주로 읽기만 하는 편이라 인사는 처음입니다(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글을 퍼가면서 인사드린 적이 있었군요^^;;;). 늘 재미있게 읽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2006-07-31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8-0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rinein님/ <구별짓기> 개정판이 교정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역에 대한 지적들이 있고부터 초판본은 그냥 꽂혀 있는 책입니다. 박스에 넣기도 뭐하고...

**님/ 그렇게 질문하시니까 저도 헷갈립니다. 저라면 몽테뉴(혹은 파스칼)이라고 적겠습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조르지오 아감벤, 두 이탈리아 철학자의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올해 내가 갖고 있는 계획 중의 하나이다(그들의 모든 책들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주요 저작들은 구해놓은 지 오래다). 언제나처럼 이 계획도 '계획서'라는 평면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겠지만, 여하튼 나는 내 여력이란 그물망 너머로 일단은 집어던져 보고자 한다(걸리면 하는 수 없는 것이고).

일단 네그리와 관련하여 내가 책상에 올려놓은 책은 아래의 다섯 권이다. 윤수종 교수의 소개서 <안토니오 네그리>(살림, 2005)를 제외하면 모두 번역서이고 이 책들의 영역본들도 최근에 모두 구했다(<제국>은 원저가 영어본이며 이 원서는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마스터본이 돌아다녔고 나도 그때 구했다. 참고로, <제국>의 러시아어본은 재작년에 출간됐다).

 

 

 

 

'네그리가 말하는 네그리', <귀환>과 <안토니오 네그리>를 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고, <혁명의 시간>(갈무리, 2004)부터는 좀 공을 들여야 할 듯하다. 여기서는 워밍업 차원에서 출간 당시의 서평만을 일단 먼저 읽어보기로 한다. 홍철기씨의 "'가난한 사람'들의 혁명적인 유물론을 위하여"가 그것인데, 월간 <말>(2004년 7월호)에 실려 있으며 나는 자율평론 홈피에서 옮겨온다('자율평론'은 국내 네그리언들의 '아지트'이며 네그리 관련자료들을 다수 참조할 수 있다).  

자율평론 제9호(2004. 07. 07)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전쟁과 평화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제국>(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윤수종 옮김, 서울: 이학사, 2001)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이탈리아의 유물론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그의 새로운 책, <혁명의 시간>을 통해 대답하고자 시도하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물론 자체가 관념론에 의해 오염된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물론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관념론의 언어들로부터 분리되어 유물론이 자신만의 언어로 이루어진 논리학과 인식론, 그리고 존재론을 획득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네그리의 주장은 관념론과 뒤섞여있는 정통 맑스주의의 유물론으로부터 맑스의 유물론를 구하고자 하였던 알튀세르의 작업의 연장선상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알튀세르는 그의 이론적인 작업을 통해 진정한 유물론은 기계론적인 경험주의와 목적론적 관념론과의 연속성 속에서, 즉 동일한 척도와 언어, 방법론을 가지고 보다 우월한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들과는 필연적으로 불연속적이며 단절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그의 후기 사상에서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에 대한 독해를 통해 발전시킨 “우발성의 유물론”은 네그리가 말하려는 “유물론적 목적론”과 여러 모로 닮아 보인다.

-유물론적 목적론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유물론적 목적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형용모순이거나, 이율배반이 아닐까? 세계가 물질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유물론과 세계가 미리 정해진 방향과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목적론이 어떻게 화해되고 종합될 수 있을까? 네그리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유물론과 목적론에 대한 기계론적이고 초월적인 정의에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유물론은 사실 진정으로 유물론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기계론적 유물론의 후예이며, 또한 목적론이라는 것도 다름아니라 초월적이고 관념론적인 목적론이라는 것이 네그리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기계론적 유물론과 초월적 목적론은 명시적으로는 상호배타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국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일찍이 파스칼은 데카르트의 완벽한 기계론적 세계는 “항상 신이 ‘살짝 등을 떠밀어주는 것’이 필요”(p.216)하다고 비꼬았는데, 이는 초월적인 목적론과 기계론적 유물론의 암묵적이지만 또한 필연적인 ‘담합’의 관계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담합’관계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자본주의와 주권을 신비화하고 찬양하는 논리로, 그리고 나아가 권력작용의 일정한 부분을 담당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근대 혁명사상과 유물론 자체까지도 오염되는 데까지 이르는데, 네그리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바로 이러한 관념론에 의한 유물론의 오염의 증거라고 본다. 이는 유물론자에게는 ‘실어증적 상황’인 것이다(p.14).

-사실 기계론과 목적론간의 담합, 혹은 조화로운 관계를 지적한 것은 네그리나 알튀세르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맑스 또한 고전 경제학파의 경험주의와 헤겔의 관념론을 동시에 비판했으며, 철학과 사회과학의 외부에서는 생물학자들이 이 문제에 몰두하였다. 왜냐하면 진화와 같은 생명계의 특유한 현상은 기계론과 목적론 모두에 의해 그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적 물리학의 모델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여러 가지 변형을 낳으면서 20세기에 들어서도 자연과학의 정체성을 규정해왔으며, 과학철학의 모든 논의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모범적인 모델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에 생물학자들은 비판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물질세계가 기계론적이며 무력하다는 생각과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물질세계에 창조성을 부여하는 목적론적 힘이 ‘요청’되어야 한다는 생각 모두를 거부하면서 물질세계 자체에 존재하는 가변성과 창조성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물질개념을 혁신함으로써, 물질세계를 초월한 창조성의 근원을 찾을 이유가 결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생물학의 경험과학으로서의 지위의 문제에 자신들의 발견의 성과를 제한함으로써 다른 가능성들을 봉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물학자들의 에피소드는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첫째 기계론(실증주의)과 목적론(보편적 진리의 철학)에 대한 비판은 탈근대주의적 ‘담론 이론’이라는 유행의 산물이라고 간단히 기각될 수 없다. 이는 물질세계 자체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물론적으로 정식화되어야한다. 둘째, 물질개념의 혁신, 즉 유물론의 재정식화는 바로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유물론은 단지 우주론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카이로스, 시간의 측정불가능성
-이러한 유물론의 재정식화를 위해 네그리가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시간의 개념이다. 시간 개념의 정의는 물질 개념의 혁신에 선행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기계론적 유물론이 그랬듯이 물질에 대한 ‘연장’적 사고가 바로 시간에 대한 외연적이고 공간적인 표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길이’로 표상하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외연적 사고는 우연히도 자본주의의 작동방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말처럼 자본주의에서 “시간은 돈이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시간이 어떻게 자본주의하에서 돈인가?”이다.

-맑스는 자신의 잉여가치 이론을 통해 이 질문에 정교한 답변을 내놓으려 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가 바로 네그리를 맑스주의의 논쟁 한가운데 위치시켰다. 네그리에 따르면 정통 맑스주의는 프랭클린의 정식을 단지 “시간은 가치이다”, 혹은 “가치는 측정되는 시간이다”로 바꿔 놓았을 뿐이다. 이는 맑스 자신의 설명 방식으로부터 유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맑스는 가치를 외연적 시간인 ‘척도로서의 시간’에 의해 측정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니어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자본론>의 여러 구절들에서 시간이라는 ‘양’으로 표현되는 가치에 대한 외연적 접근은 잉여가치의 본질과 그 기원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있다.

-‘척도로서의 시간’은 이른바 과학적인 지위를 얻음으로써 자본의 착취에 대한 권리의 객관성을 보장해준다. 즉 1시간의 길이동안 타인의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의 객관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잉여가치는 그렇게 설명될 수 없다. 자본주의하에서는 원리상으로는 단 1초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가치도 잉여가치율에 의해 분할된다. 시간의 길이에 의해 이 분할을 설명하는 것은 단지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며, 이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맑스 자신이 비판한 시니어의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오히려 잉여가치는 매순간 추출된다. 그리고 ‘척도’, 혹은 ‘연장’으로서의 시간 개념은 시간을 균일하게 분할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는 창조성을 잉여가치의 신비한 몫으로만 돌린다. 이는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이라고 이해되는 탈근대적 자본주의에서는 훨씬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연장으로 이루어진 시간에서는 창조적 사건이 발견”될 수 없다(p.62).

-이런 관점에서 시간은 단순한 길이와 지속으로서만 정의되기 때문에 그 내적인 논리라는 것은 제거되어 버리고, 시간을 지배하는 논리는 언제나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결국 외연적으로 정의된 시간 개념은 자본주의판 ‘제논의 역설’을 만들어 낸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물질적 생산의 창조성은 척도로서의 시간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이 ‘역설’은 외연적인 시간관을 가능한 한 가장 비현실적인 형태로 그 극단까지 밀고 나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순간만이 존재론적으로 현실적”이고 또한 생산적이라는 것이다(p.58).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필연적으로 “시간의 유물론”, 혹은 “물질의 시간성”이라는 개념에 도달하도록 만든다. 이때 시간은 ‘길이’가 아니며 물질은 시간성에 의해 ‘운동’으로만 이해되어야 한다.

-네그리가 자신의 고유한 ‘시간의 유물론’을 구성하기 위해 발견한 것은 서양 철학 전통에서의 ‘카이로스’라는 시간 개념이다. ‘카이로스’의 관점에서 시간은 화살을 쏘는 것이며 순간으로서의 현재는 바로 이러한 비가역적인 궤적을 그리는 화살촉의 끝이다. 이 화살촉의 끝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불연속적인 순간을 지칭한다. 즉 이러한 시간관에서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과거는 이미 실현된 것과 같이 봄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동질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만일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고 현재(순간)는 이 둘 사이의 단순한 가교라면, 이 흐름은 이미 목적이 그 기원에서 정해진 것이거나, 기원에 대한 동어반복, 둘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달리 카이로스는 “순간의 목적론”이며 “사건의 텔로스”이다(p.53).

 

 

 

 

-이렇게 이해될 때, 시간은 곧 ‘이전’과 ‘이후’ 사이의 “생산의 측정불가능성”이다(p.74). 이 ‘측정불가능성’은 ‘측정가능성’의 부정으로서의 ‘막연하거나 불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그런 점에서는 진정으로 측정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의 잉여가치의 존재는 이 순간의 ‘측정불가능성’과 ‘측정가능성’ 모두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잉여가치는 생산이 반드시 ‘측정가능성’에 종속되었을 때에만 추출될 수 있는 것이지만, 또한 척도로서의 시간을 넘어서는 ‘측정불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산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 혹은 다중
-이 단계에서 네그리의 유물론적 목적론은 아직은 충분히 정치적인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바로 그것을 실천하고 구성하는 주체성으로서의 ‘가난한 사람들’이 이야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자본주의, 특히 그것의 탈근대적 단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유물론적 목적론을 실천하는 ‘전위’이다(*개인적으론 이 대목이 눈길을 끌어서 <혁명의 시간>을 읽어볼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난 2004년 모스크바에서부터). ‘가난한 사람들’은 대중의 자생성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을 ‘전위’라고 부를 때에도 그들이 레닌주의적 당에 부여되는 ‘의식성’을 표상하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전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나 아렌트가 1943년에 망명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인민의 ‘전위’라고 말했던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본주의적 폭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폭력에 노출된 ‘벌거벗은 삶’이기 때문에 그들이 전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전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국가로부터 탈출하는 망명자들이 국민으로서 주권에 종속된 인민들의 전위인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자본주의의 부에 종속된 대중의 전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위란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외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내부적인 망명자들(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했으나 여전히 공간적으로는 그 국가 내부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증명하는 것처럼, 그리고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망명한 사람이 ‘국가’ 자체의 외부에 도달한 것은 아닌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내부의 ‘망명자’들이다. 탈근대적 자본주의하에서 빈자는 배제되기는 하지만 “이 배제는 세계의 생산 ‘내부에서’ 일어난다”(p.138).

-네그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혁명적인 주체성으로 제시하는 것은 그들이 ‘곤궁, 무지, 질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에서의 삶정치적 주체”(p.130)이며, 그렇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이미 죽음을 극복한 사람”(p.135)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네그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집합적 실천과 구성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공통적인 것’의 생산에 참여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삶의 가치와 공통적인 것의 부정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이며 자본주의적 폭력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자본주의와 실질적인 적대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거꾸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러한 '적대관계'를 얘기하는 건 겉멋이거나 자기모순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전위로서 선언하는 것은 정치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주권 이론의 역사에서는 바로 ‘다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부의 외부와 너머의 주체성을 지칭하는 것처럼, ‘다중’은 근대적 주권의 초월성과 마찬가지의 관계를 가지는 주체성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권과 그 이론의 역사에서 네그리가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홉스나 루소, 혹은 헤겔이 아니라 베버와 슈미트이다. 홉스, 루소, 헤겔은 이미 지나가 버린 주권 역사의 이론가들이다.

-이들과 달리 20세기초의 베버와 슈미트는 모두 국가가 경제적이고 법적인 합리성에 종속됨으로써, 19세기의 자유주의적 사회에 상응하는 헤겔적인 국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그런 이유에서 국가 자체가 이제 진정으로 ‘주권의 초월성’의 장소가 될 수 없다는데 생각을 같이 하였다. 이러한 주권의 위기에서 이들이 탈출구로 생각한 것은 바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다. ‘정치적인 것’은 경제적인 것, 혹은 법적인 것과 구분되는 고유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고유성에 근거해서만 순수하게 자율적인 정치적 결정이 가능하다. 즉 정치적 결정의 초월적 근거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경제주의, 즉 자본주의적 합리성에의 종속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던 동시대의 혁명이론과 실천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것을 매우 결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른바 외부의 의식성, 혹은 자율적인 상부구조는 바로 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다른 이름이다. 레닌주의는 경제의 외부만을 생각하고 주권의 외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결국 경제적인 종속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과제를 주권에의 참여로 돌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위로서의 ‘가난한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부로부터의 탈출의 방향을 지시하며 또한 그것을 구성하듯이, 다중은 주권에의 참여와 “복종으로부터의 탈출, 즉 척도에의 참여로부터의 탈출”(p.195)이라는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네그리의 <혁명의 시간>은 생소한 철학적 개념들과 언어로만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현상적인 기술에 치중했던 <제국>과는 달리 독해와 이해가 쉽지 않은 책이다. 게다가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유물론자의 ‘실어증적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문제의 해결은 훨씬 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의 타개가 절실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분명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06.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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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6-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로쟈님 페이퍼는 일단 제목들이 죽이네요:) 즐겁게 낚이고 갑니다.

로쟈 2006-06-2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안해낸 제목들도 아닙니다. 옮겨오는 입장에서는 필자들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지라...

꿈꾸는돌 2006-10-2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고맙습니다 ^^ 네그리에 관심은 많은데 책 읽기가 쉽지 않네요. 내공이 워낙 부족해서...;;
 

성숙에 대하여(*이 코멘트는 1999년에 씌어진 것이고 2004년에 모스크바에서 약간 손질되었다). 드레피스/레비노우의 <성숙이란 무엇인가>(What is Maturity?)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석/해석을 놓고 벌어진 푸코와 하버마스 간의 논전을 잘 정리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의 우리말 번역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불어본(<푸코와 하버마스>)을 번역한 것이고(<우리시대의 문학 6>), 다른 하나는 독어본을 번역한 것이다(<외국문학> 1995, 겨울). 그리고 나에겐 이 둘과 영어본이 있다.

 

 

 

 

이 중에서 불어본의 번역은 난삽하고 부정확하다. 문맥에 대한 역자의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는데, 가령 “푸코에 의하면, 칸트는 현대적이긴 하지만 성숙하지는 않다”(On Foucault's reading Kant was modern but not mature.) 정도로 번역되는 문장을 역자는 “푸코의 칸트에 대한 독서를 알려 주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칸트는 근대적이기 위해 성숙성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로 옮기고 있다(불어가 더 어렵긴 한 모양이다). 근대적이기 ‘위해’ 성숙성에 이르지 않았다니?

그리고 글의 결론에 해당하는 “우리가 이 논문에서 옹호하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논지는 인간 시대 혹은 성숙성이 적어도, 행동을 개별적 주체와 글쓰기의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이론들 위에나,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발언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 위에다 세우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 논리, 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의도들이, 현존하는 모든 부분들이 일치하여 그것에서 우리의 현재 상황 내에는 더 불안한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어떤 것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하는 논리이다.” 같은 부분은 오역을 넘어서 해독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다(이런 ‘most troubling한’ 문장이 번역으로 통용되는 한, 한국의 인문학은 가망이 없다).

이 부분의 영어본은 이렇다. “The thesis of this paper is that maturity would consist in at least being willing to face the possibility that action cannot be grounded in universal, ahistorical theories of the individual subject and of writing, or in the conditions of community and speaking, and that, in fact, such attempts promote what all parties agree is most troubling in our current situation.”

비록 저자들이 확정적인 표현을 피하고는 있지만, 이 부분의 요지는 이렇게 옮겨질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바, 성숙성이란 우리의 행위가 더 이상 개별 주체와 글쓰기에 대한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이론들이나, 혹은 공동체와 화행(말하기)의 조건들에 토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기꺼이 대면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이론이나 조건을 도출해내려는 시도들이 부추기는바 모든 정파가 동의하는 일이야말로 사실상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가장 곤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의 성숙성은 비역사적인 보편적 이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다. 오히려 곤란한 것,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편적 합의’이다. 정파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합의에 따라 한쪽에선 의원들의 세비도 올리고, 다른 쪽에선 이라크 침공도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이때의 ‘보편적 합의’는 기만과 폭력에 대한 ‘보편적 정당화’이겠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저자들은 하버마스보다는 푸코의 편을 들고 있다. 이때 푸코가 말하는 성숙한 태도는 아이러니적인 태도이다. 

참고로 독어본의 번역. “이 논문의 테제는 다음과 같다. 개별적인 주체나 글쓰기의 보편적이고 반역사적인 이론 속에서는, 또는 공동체의 조건이나 말하기의 조건 속에서는 행위의 토대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최소한 성숙의 본질이 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위에서 열거된 이론이나 조건들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실제로 모든 철학적 당파들이 일치하고 있는 것을 촉진시킨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촉진시키는 것이 우리의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

불어본의 번역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편이나 만족스럽지는 않다(독어가 불어보다는 쉬운 것인가?). 요컨대, 저자들이 칸트-하버마스 계열의 성취와 한계(“현대적이긴 하나 성숙하지 않다”)를 지적하고 있는 맥락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줄 필요가 있다.

06. 06. 22.

 

 

 

 

P.S. '성숙함'에 관한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은,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브뤼크네르의 <순진함의 유혹>(동문선, 1999)이다. 즉, 성숙이란 '순진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순진함이란 자신을 어린아이나 희생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말한다. 유치하거나 기만적인 태도 말이다. 물론 그 유치함/기만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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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6-06-2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숙이란. '순직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 때의 순진함이란 자신을 어린아이나 희생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말한다.

뜨끔하네요. 생각해보면 저는 순진함의 유혹에 정말 잘 빠져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 자신의 내면에서 그것들을 분리 시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유치하거나 기만적인 태도도.. 참 어렵네요.

유치하거나 기만적인 태도가 어떤 태도인지 알고 있다면 좀더 쉬울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고, 또 알고 있다고해도 그런 태도를 취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른다면 더 왜곡되어서 표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성숙... 이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아.. 성숙해지고 싶은데..

로쟈 2006-06-2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함의 유혹>은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성숙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구요.^^
 

작년 1월 중순에 모스크바 통신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몇몇 대목을 읽고 정리한 것이다. 벤야민에 대해서는 이후에 몇 번 더 다룬 적이 있다. 물론 아직도 정리해야 할 대목들은 차고 넘치지만 말이다.

요즘 서울에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모양이지만(*2005년 1월의 얘기이다), 모스크바의 날씨는 영상 3-4도이다. 기온이 좀 떨어져야 영하 1-2도(어제오늘은 제법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이지만). 이래가지고서야 모스크바의 체면이 좀 무색하다(집에 전화를 걸어 그런 얘기를 하면, “거기 모스크바 맞아?”란 소리를 듣는다). 방마다 창문 아래벽에 설치돼 있는 스티머에서 스팀이 ‘빵빵하게’ 나오기 때문에 방안에서는 반팔, 반바지가 기본 복장이고 이불을 안 덮고도 잘 만하다(그젯밤에는 창문을 좀 열어놓고 잘까도 했다). 지난봄 모스크바에 올 때 들고 온 짐의 대부분이 겨울옷들이었지만, 그 90%는 한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도로 들고가야 할 판이다. 이 또한 관념과 현실 간의 차이이리라. ‘모스크바’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실제 모스크바의 현실 간의 차이(“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가 없다!”).

 

 

 



우리가 관념의 지배, 혹은 판타지를 얼마간 걷어내는 길은 현실과 직접 맞부닥치는 것, 직접 가보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1892-1940) 역시 그랬다. “1926년 말에서 1927년 초까지 벤야민은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어를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벤야민은 러시아 혁명의 현존을 눈으로 ‘보려’ 했다.”(<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48쪽.) 수잔 벅 모스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젠베르크)를 재구성하면서, 그의 이 여행이 모종의 구조/구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한편,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와 함께 읽어볼 만한 것은 한국작가 이태준의 <소련기행>이다. 나는 책을 사놓고 미처 읽지 못했는데, 돌아가면 한번 읽어볼 참이다.)

“어떤 장소를 알려면 가능한 한 많은 차원에서 경험해보아야 한다. 어떤 장소를 이해하려면 동서남북에서 다가가 보아야 하며, 동서남북으로 떠나가 보야야 한다.”(<모스크바 일기>)라는 벤야민의 말을 그녀는 그대로 그의 프로젝트에 적용하는바, “서쪽의 파리는 정치적-혁명적 의미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기원이며, 동쪽의 모스크바는 동일한 의미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종말이다. 남쪽의 나폴리는 지중해의 기원으로서, 신화로 둘러싸인 서구 문명의 어린시절이며, 북쪽의 베를린은 신화로 둘러싸인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이다.”(45쪽) 그리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개념상 두 축의 교점에 위치한다.”

물론 벤야민이 방문했을 때의 모스크바는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기의 러시아였으므로 “시골과 도시가 숨바꼭질하는 이행기의 도시”였다(신경제정책, 즉 NEP가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건 사회주의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러시아에 아직 본격적인 사회주의의 ‘물적 토대’가 마련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해서 혁명정부는 한시적으로 부르주아 경제체제를 허용하는바, 그것이 NEP였다. 이 NEP 시기에 대한 신랄한 풍자극이 마야코프스키의 <빈대>(1929)이다. 이 작품 역시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했고, 음악은 젊은 쇼스타코비치가 담당했다). “모스크바의 이행성은 ‘모든 생활, 모든 나날, 모든 생각’을 실험대에 올린다.”(49쪽)

그럴 만하지 않은가? 인류 역사상 ‘사회주의 혁명’에 처음 성공한 만큼, ‘사회주의로의 이행’ 또한 ‘첫경험’이었으니까(이런 걸 ‘한 졸렬한 시도’였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으로서 심히 졸렬하다). 어쨌든 “두달 동안(12월 6일-2월 1일) 벤야민은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의 호텔에 머물며 소비에트의 문화생활을 관찰했다.”(52쪽)

Cover: Moscow Diary

지난번에 “벤야민과 관련해서는 그의 <모스크바 일기>(1926-7)를 구해보고 싶지만, 러시아어로는 번역돼 있는 것 같지 않다(영역은 돼 있을까?).”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의외의 우리말 번역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고(<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각주를 보니까 영역본 'Moscow Diary'는 1987년에 나왔다), 어제 인터넷에 부분적으로 올라온 걸 대충 읽어볼 수 있었다(역자에 의하면 곧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이미 출간됐다. 나는 이 페이퍼가 계기가 되어 약간의 교정일을 거들 수 있었다).

“벤야민은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의 호텔에 머물며 소비에트의 문화생활을 관찰했다.”에 붙은 미주를 보면, “그는 연극, 영화 – ‘평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다’ – 박물관, 문학논쟁 등을 참관했으며, 수집벽에 이끌려 매우 자주 쇼핑을 다녔다.”(482쪽)고 돼 있는데(아마도 내가 서점들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번역된 일기를 읽어보니까 “평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은 연극의 목록에는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한 <검찰관>(1926년) 초연도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이 메이에르홀드 버전의 <검찰관> 초연은 러시아의 연극공연사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에 속한다(‘초연’이란 건 ‘첫회’ 공연이 아니라 ‘첫 공연된 시즌 전체’를 뜻한다. 그러니까 메이에르홀드의 <검찰관> ‘초연’은 아마도 1926년 가을부터 1927년 봄까지를 카바한다). 1920년대에 <검찰관>은 메이에르홀드 버전(1926년)과 테렌치예프 버전(1927년)으로 새롭게 공연되었는데(고골이 이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건 1836년이다). 특히, 메이에르홀드의 공연은 러시아 연극사상 가장 훌륭한 공연으로 평가되고 있으며(J. L. 스타이안, <표현주의 연극과 서사극>, 현암사, 90쪽), 다닐 하름스가 속한 오베리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하름스와 그의 동료들은 '오베리우 선언서'(1927)에서 테렌치예프의 공연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사실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여러 보고에 따르면, 메이어르홀드가 연출한 <검찰관>의 연기와 무대장치는 모두 파격적이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마치 희극적인 오페라에서와 같이 호화로운 의상을 입었다는 점이다(자세한 것은 스타이안, 같은 책, 90-2쪽 참조). 이런 유니크한 공연까지를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좋지 않(았)다”면, 공연에 대한 벤야민의 안목이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나도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가 러시아어 대사들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므로 공연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나도 사정이 더 나은 건 아니다. ‘관광객’이 보기에 가장 좋은 공연은 발레와 서커스이다).

참고로, 모스크바에서 2004년의 최고 공연으로 지목되는 건 고골의 <외투>인데(소설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것인데, 주인공 아카키 역을 유명한 여배우가 분장해서 연기한다), 12월에 보겠다는 당초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 공연을 볼 수 없었다. 표가 워낙에 빨리 매진된 탓에. 아무래도 ‘초연’ 관람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다시 벤야민으로 돌아오면, 모스크바에서 그가 한 일이란 주로 연극/영화 관람, 박물관(그도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방문했다) 구경과 문학논쟁 참관, 그리고 쇼핑이었다. 물론 가장 큰 비중은 쇼핑에 두어졌을 법하다.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러시아 인형을 수집하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보냈다.”(54쪽, 여기서 ‘러시아 인형’이란 건 ‘마트료슈카’를 말하는데, 인형 속에 같은 인형이 10개 정도씩 들어있는 대표적인 러시아 기념품이다.)

하지만, 그의 관찰과 쇼핑의 이면에 놓여 있던 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었다(표면적으론 마르틴 부버가 <피조물>이란 잡지에 싣고자 청탁한 글을 작성하기 위한 모양이었던 듯하다. ‘모스크바’란 제목. 한편 벤야민은 <소비에트 백과사전>의 ‘괴테’ 항목을 모스크바 체류 이전부터 준비하여 집필하지만, 1928년 가을에 완성된 그 글은 당시의 교육부장관 루나차르스키에 의해 ‘부적절하다’고 거부당한다. “최종적으로 <소비에트 백과사전>에 실린 괴테편은 벤야민이 처음 쓴 원고의 12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483쪽, 주44).

무엇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었나? “벤야민은 아샤 라시스에, 그리고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다.”(52쪽) 아샤 라시스는 누구인가? 그녀는 1924년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의 기원을 마련했던 아주 중요한 시기에 영감을 주었던 ‘뮤즈’였다(수잔 벅 모스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기원’이 1924년 이탈리아에서 마련됐다고 본다). “그녀는 라트비아 출신의 볼셰비키였고, 혁명 이후 소비에트 문화계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두마 혁명 이후에는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걸출한 공산주의자’였고, ‘내가 만난 가장 걸출한 여자’였다.”(25쪽) 그녀의 이름이 바로 아샤 라시스(*라치스)였으며, “(그해) 6월부터 벤야민이 카프리에서 숄렘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호한 암시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숄렘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벤야민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26쪽)

아샤 라시스가 회고하는 벤야민과의 첫만남은 이렇다. 그녀가 아몬드를 사려고 가게에 들렀는데, 아몬드를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난처해하고 있을 때 벤야민이 통역을 해주었다. 다음번에 벤야민은 광장에서 그녀에게 다가와 부르주아의 예의범절을 깍듯하게 지키면서 자기소개를 하고는 짐을 들어주겠다고 자청했다: “작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을 반사하는 안경알, 뻣뻣한 검은 머리, 좁은 코, 서툰 손놀림 - 그는 짐꾸러미를 놓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서, 진짜 지식인. 유복한 배경을 가진 지식인. 그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찾아봬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다음날 찾아왔다.(…) 그는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말했다. ‘두 주 동안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26쪽) 러시아는 그 아샤의 조국이었다.

하지만, “여행중의 일기가 증거하는 것처럼 두 가지 기대는 모두 좌절되었다.” 물론 벤야민에겐 (나중에 이혼하게 되는) 아내 도라가 있었고(여덟 살난 아들과 함께), 그의 모스크바 체류 기간에 라시스는 적군(赤軍) 장교와 연애중이었다(그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베른하르트 라이히와 결혼한다). 아마도 아샤 라시스와 도라 벤야민이 벤야민 인생의 두 여자였던 듯한데,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36쪽에는 두 여자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으며, 1928년 베를린에서 동시에 출간한 그의 책 <일방통행로>와 <독일 비극의 기원>은 각각 이 두 여자에게 바쳐졌다(“모든 범죄의 이면에는 여자가 있다”는 속설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모든 책의 이면에는 여자가 있다!”).

 

 

 



사실, 친구인 게르숌 숄렘과 달리 (유태인이었던) 벤야민이 팔레스타인행을 포기한 데에는(그는 숄렘의 권유로 팔레스타인행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히브리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라시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1924년 카프리에서 벤야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똑바른 정신으로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가야 합니다.”(38쪽) 팔레스타인행과 관련하여 벤야민은 라시스와 ‘날카로운 언쟁’을 나누지만, 결국 그는 그녀의 충고에 따라 모스크바로 가게 되며, 그것이 1926년 겨울의 일인 것이다(요즘은 어떤 정신의 사람들이 모스크바에 오는가?).



이에 대한 수잔 벅 모스의 촌평: “연정과 정치가 한데 묶여 깨달음을 줄 때 얼마나 창조성이 생기는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일과 사랑이 삶의 분리된 국면이 아니라 하나로 강렬히 융합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들(*라시스와 벤야민) 관계의 결정적 중요성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39쪽) 그러니 그대, 프로젝트를 꿈꾸는가, 먼저 사랑에 빠질 일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벤야민은 아샤 라시스에, 그리고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다.”(52쪽) 하지만, 상황은 벤야민의 편이 아니었다. “벤야민의 (모스크바) 체류기간에 라시스는 (라이히의 아파트로 옮겨갈 때까지) 요양소에서 ‘신경쇠약’을 치료하고 있었으며, 주간에는 외출하여 벤야민을 만날 수 있었지만 둘만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세 사람 – 라시스, 라이히, 벤야민 –은 누구와도 일부일처 관계가 아니었다. 벤야민의 간결한 설명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일기를 읽어보면 벤야민이 당시의 상황에서 겪었던 감정적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벤야민은 체류 초기에 라시스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소극적이 되었고 때로는 라시스보다도 소극적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편안하지 못했다. 말다툼은 격렬했으며, 애정표현은 조심스러웠다. 벤야민은 논문으로 감정을 전했고, 라시스는 정치적 의견을 표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했다.”(53쪽)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읽는 독자는 (그 당시 라시스가 느꼈을) 답답함을 느낀다. 그는 왜 사랑에도 정치에도 투신하지 못하는가?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러시아 인형을 수집하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보냈다. 라시스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 전의 모든 만남이 그랬듯이 불확실한 것이었다. 일기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그녀는 걸어가면서 돌아보는 것 같았는데,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안고 어두워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눈물을 흘렸다.’”(53-4쪽, 강조는 나의 것)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는 그렇게 끝나는 모양이다. 거기에 붙이고 있는 수잔 벅 모스의 촌평, “그의 무능은 유치했을까 아니면 현명했을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현명함’이란 ‘살아남은 유치함’의 다른 이름이니까(때문에 ‘현명함’은 언제나 사후에 소급 적용된다. ‘현재의 현명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벤야민의 무능이란 사랑에도 정치에도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투신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모스크바의 이별 장면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무능을 담보로 하여 벤야민이 챙긴 것은 아마도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논문 자료들과 쇼핑한 물건들일 것이다. 벤야민의 그런 모습에 대해서는 라시스나 수잔 벅 모스가 답답해 하는 만큼 우리도 답답하다. 하지만, 벤야민의 비밀은 그 ‘무능(=답답함)’에 있는 듯하다. 그걸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함’,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함’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말이다(“정신 좀 차려라, 벤야민!”).

<파사젠베르크>의 부제는 ‘변증법적 동화’이며, 흥미롭게도 벤야민에게서 이 동화의 모델은 언제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그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도시에 대한 초현주의자들의 태도였는바, “벤야민의 회상에 따르면 <파사젠베르크>의 구상은 파리 아케이드가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루이 아라공의 초현실주의 소설 <파리의 농부>에서 영감을 받았다.”(55쪽) 이후에 그는 <파사젠베르크>를 구성하게 될 최초의 메모들을 작성해가는데, “이들 목록은 도시 현상에 매혹됐던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를 암시한다. 초현실주의자는 도시 현상(urban phenomena)’을 객관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동시에 꿈으로 경험했다.”(이에 영향을 받은 벤야민은 1927년 초현실주의에 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초현실주의가 현실을 꿈으로 인식했다면, <파사젠베르크>는 독자를 꿈에서 깨우기 위해 역사를 환기한다(*독자를 깨우자면, 독자는 자고 있어야 한다. 혹은 아이들 버전으로 말하자면, “내가 깨워줄 테니까 자고 있어, 알았지?”). 초기 단계였던 당시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제목이 ‘변증법적 동화’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벤야민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준다.”(56쪽) 다시 한번 들려준다는 건 이전에 벤야민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얘기를 이전에 두 번 더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독일비극의 기원> 서문에서였는바, 그는 이 서문을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잠자는 미녀가 나오는 동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고 싶다. 그녀는 가시덤불 속에서 잠을 잤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깨어났다. 그러나 행운의 왕자님의 키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깨운 것은 주방장이었다. 주방장이 어린 요리사의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궁전 전체에 울려퍼졌다. 오랜 세월 막혀 있던 에너지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아름다운 아이가 가시울타리 뒤에서 자고 있다. 한껏 현란한 지식으로 장식한 행운의 왕자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 결혼의 키스를 하면 아이가 왕자에게 달려들 테니까. 작가가 아이를 깨우는 것이 훨씬 낫다. 작가가 주방장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귀를 때릴 때가 한참이나 지나갔다. 따귀의 날카로운 울림은 지식의 방들에 울려퍼질 것이다. 그러면, ‘고물’ 물레에 손가락을 찔렸던 이 가련한 진리도 깨어날 것이다. 이 진리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물레에 걸린 채 교수의 가운으로 짜여 들어갈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40쪽)



이에 대한 수잔 벅 모스의 촌평: “학계는 ‘고물’이 되었다. 작가 벤야민은 자기가 오랫동안 잠들었던 형이상학의 진리를 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진리는 교수복을 입고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다. 좀더 적당한 옷을 쇼핑몰에서 찾은 것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일까?”(벤야민 자신도 <일방통행로>에 대한 에른스트 블로흐의 서평, “이곳에 철학이 개점했다. 쇼윈도에는 형이상학의 봄 신상품이 진열된다.”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아무튼 여기서 ‘진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이며, 벤야민(=작가)는 (왕자는 아니더라도) 이 미녀(=진리)를 깨우는 ‘주방장’이고자 한다(요즘 버전으론 ‘슈렉’). 나는 동화의 이러한 ‘비틀기’가 벤야민 자신의 독창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에서 대별되고 있는, ‘깨우기’의 두 가지 방식이다. 첫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인바, ‘왕자의 키스’. 이건 직접적이며 무매개적인 방식이다(슈렉은 입냄새로 깨우던가?). 그리고 두번째는 ‘주방장의 따귀’. 어린 요리사를 따귀 때리는 소리에 공주가 깨어났다고 하니까. 이건 간접적이며 매개적인 방식이다. 벤야민이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주방장의 따귀’이다.

‘따귀 때리기’가 얼핏 강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식이고 매개적인 방식이며, 직접적인/무매개적인 방식으로 진리/미녀를 깨우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가림막이다.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지만(혹은 그럴 걸로 기대되지만), 진정한 액션이 아니라 이른바 유사-액션인 것이다. 가령, 모스크바 체류 초기에 “벤야민은 라시스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따귀’를 때린 것. 하지만, 그게 전부이며, 그는 결정적으로 ‘키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따귀를 때린 것 정도로 모든 결과가 산출되기를 기대했지만, 라시스(=공주)는 깨어나지 않았다(아마도 기지개 정도를 켜다 말았으리라). “그러나 곧 소극적이 되었고 때로는 라시스보다도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왜 사랑에도 정치에도 투신하지 못하는가?”란 물음을 이렇게 비틀어볼 수 있다(정치에서도 그는 ‘재야 좌익’ 정도를 자신의 몫으로 생각한다). “그는 왜 사랑에서도 정치에서도 ‘키스’하지 못하는가?”(왜 엉뚱한 아이의 따귀나 걷어붙이는가? 무슨 프로젝트 ‘준비’만으로 생애를 다 보내는가?)

그리고 또 한번. 1908년, 16세의 벤야민은 학생잡지 <데어 앙팡(der Anfang)>의 재판에서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잠자는 미녀다. 왕자가 자기를 깨우러 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자고 있다. 젊은이가 깨어나기 위해서, 젊은이가 자기를 둘러싼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것을 위해서 우리 잡지는 힘을 보태기를 원한다.”(484쪽, 주58)

여기서도 ‘젊은이(=미녀)’를 깨우러 오는 것은 ‘왕자’인데, 문맥상 ‘우리(=우리 잡지)’는 ‘왕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젊은이가 깨어나기 위해서 힘을 보태기를 원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란 여기서도 ‘따귀’나 때리는 것이다(창작에 비해서 2차적인 비평 자체가 이미 ‘따귀 때리기’일까? 1930년 파리 체류중에 솔렘에게 보낸 편지에서 벤야민은 자신의 목표가 “(현대) 독일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59쪽)이라고 밝혔다. 더 물고 늘어지자면, 그는 여기서도 ‘최고의 비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최고의 비평가라고 평가/인정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요컨대, 벤야민에게서 일생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브’(혹은 ‘반복강박’)는 '잠자고 있다-깨워야 한다'이며, 그 깨우는 방식은 독특하게도 간접적/매개적인 것이었다(그에게 ‘역사’는 ‘역사의 천사’였다). 그에게 ‘변증법’은 무엇보다도 잠/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했는바, 애초에 ‘변증법적 동화’로 구상되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 자체가 “상품 환등상이라는 집단 꿈에서 ‘깨어남’과 관련하여” “<잠자는 미녀> 이야기의 마르크스적 다시 쓰기이다.”(349쪽)

그러한 다시 쓰기의 전제조건은 ‘잠자고 있기’이다. “벤야민의 목표는 ‘초현실주의의 유산’ 속에서 깨어남의 충격과 기억하는 훈련을 연결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역사적 대상물을 동력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지난 세기의 키치를 ‘깨우는’ 자명종 시계를 만든다 –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간지(奸智)와 함께 작동한다.”(351쪽) 들뢰즈의 상용구를 동원하자면, 벤야민의 꿈은 ‘자명종-되기’였던 것이다(<모스크바 일기>에서 그는 모스크바의 ‘너무 많은’ 시계점들에 대한 관찰을 기록하고 있다. 왜 너무 많을까? 유독 시계점들에 주목했기 때문 아닐까?).



그런 벤야민에게, 혹은 그의 프로그램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진 것이 히틀러의 나치즘이었다. “독일이여 깨어나라!”가 나치의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라디오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벤야민의 작업과는 상반되는 정치문화를 배양했다. 파시즘은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역전시켜 정치적 스펙터클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 자체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현실’ 자체를 연극으로 만들었다(*이런 게 ‘예술의 정치화’에 대응하는 ‘정치의 예술화’이다). 게다가 이러한 좌파문화운동의 전체주의적 역전은 좌파가 해내지 못했던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이와 유사하게 스탈린주의를 ‘정치적 아방가르드’로 이해하는 관점은 보리스 그로이스, <아방가르드와 현대성> 참조).

‘자기반성’을 심리학적 의미가 아닌 ‘역사철학적’ 의미로 이해한 벤야민에게 이러한 상황은 개인적 위기로 경험되었다.”(59쪽) 비유컨대, ‘자명종-벤야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확성기-히틀러’이며(사실 이건 그 ‘직접성’에서 경쟁 자체가 안된다! 그는 나치즘에 쫓겨 미국 망명까지 시도하지만 결국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하고 만다), 때문에 “파시즘이라는 배경막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현재를 탈신화화할 역사를 현시한다는 <파사젠베르크>의 교육적 기획은 더욱더 절박한 것이 되었다.” 교육적 기획? 아이의 따귀를 때리는 것 말이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주변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1931년 여름과 1932년에 벤야민은 자살을 생각했다. 1930년에 아샤 라시스가 모스크바로 돌아갔고, 모친이 사망했으며, 자신의 이혼이 결정되었다. 그는 이후의 고독 - 2,000권의 장서를 보유한 서재가 딸린 베를린 아파트의 고독 혹은 여름 별장의 고독 -과 화해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제적인 ‘생존투쟁’에는 지치고 말았다. 파시즘의 확산과 함께 재정문제는 점점 더 힘겨워졌다.”(60쪽)

그를 얼마간 더 지탱시켜준 힘은 자신의 프로젝트(‘커다란 여행가방’)에 대한 애착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통째로 관류하고 있는 건 '잠자고 있다-깨워야 한다'이다. 거기서 ‘잠’을 근대 자본주의의 환상으로 대치하게 되면, 벤야민은 곧바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이때의 마르크시즘은 유년기의 깨어남을 모델로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걸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고 싶다(‘성년의 마르크스주의’가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이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이고 싶지만, 그건 내가 당장에 실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대신에 몇 개의 인용문만을 나열하면서 이 글은 일단 끝마치기로 한다.

A Barricade of the Paris Commune

“유년기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생물학적 과제는 집단적/사회적 깨어남의 모델이 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한 세대는 집단적 경험에서 두 가지 깨어남을 수렴한다. 한 세대가 의식에 이르는 순간은 정치적으로 힘을 받는 순간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독특한 순간에 새로운 세대는 부모의 세계에 반항함으로써 깨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졸고 있는 시대의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깨울 수도 있다.”(354쪽)

“우리가 줄곧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이 그 객관적 이미지의 일부이다. 이 세대를 스스로에게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꿈-연결 속에서 목적론적 계기를 찾는다. 이 순간은 기다림의 순간이다. 꿈은 은밀하게 깨기를 기다린다. 잠자는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부를 때까지만 자신을 죽음에 맡긴다. 그는 간지를 통해 포로 상태에서 풀려날 순간을 기다린다. 꿈꾸는 집단도 마찬가지다. 꿈꾸는 집단의 아이들은 집단이 깨어나는 다행스러운 계기가 된다.”(354쪽)

“유물론적 역사는 새 자연을 탈주술화하여 자본주의의 주문에서 풀어주지만, 사회변혁을 위한 힘은 구해낸다.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가 벤야민이 바라는 동화의 목표였다. 집단의 역사적 깨어남의 수간에 동화는 ‘나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아이의 사회역사적 질문에 대해 정치적 폭발력을 담고 있는 대답을 제공할 것이다. 근대적 존재, 좀더 정확히 말해서 근대적 꿈나라의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그러한 꿈나라의 미학적 표현인 초현실주의를 언급하면서 벤야민은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는 다다였고 어머니는 아케이드였다’고 말했다.”(354쪽) “(아케이드에서) 우리는 꿈속에서처럼 부모와 조부모의 삶을 다시 산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아가 동물의 삶을 다시 살듯이 말이다.” “누가 아버지의 집에서 살 것인가?”(이상 357쪽)

05.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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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판타스마고리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11 09:28 
    일반인 교양강좌 준비로 들뢰즈와 벤야민의 책들을 한두 권씩 가까운 서가로 옮겨놓고 있는데, 마침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리라이팅'한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트 프로젝트>(그린비, 2009)가 출간됐다. 저자는 <계몽의 변증법>을 리라이팅했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2003)의 저자 권용선 씨. 수유너머에서 강의한 내용을 이번에도 책으로 펴낸 듯싶다. 참고문헌으로 챙
 
 
Forgettable. 2009-12-1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얼마 전 [모스크바 일기]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페이퍼가 더 재미있네요^^
오래전 글인데 먼댓글 따라와서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