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강의가 끝나면 다음날 강의준비로 넘어가야 하지만 막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 틈에 눈이 간 책은 마크 릴라의 <분별 없는 열정>(필로소픽)이다. 오래 전에 초판으로 읽었는데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읽어볼 의향도 있다. 개정된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같이 빼낸 원서에는 저자의 새 후기가 추가되었다.

저자가 ‘분별없는 열정‘이라는 제목으로(원제를 직역하면 ‘분별없는 정신mind‘이 되려나) 겨냥하는 건 하이데거에서 데리다에 이르는 20세기의 간판 철학자들이다. 이들이 자아도취에 빠져 전체주의 정치를 옹호했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의 공저자인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저자는 자유주의 입장의 정치철학자다. 그런 입장에서 주요 철학자들을 논평한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어느 만큼 동의할 수 있는지, 혹은 동의할 수 없는지 따져보는 게 독서의 포인트.

마크 릴라의 다른 책으로는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필로소픽)도 있는데 얇은 책이어서 가까이 두었음에도 어느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게 책들과의 숨바꼭질이다. 그러니 눈에 띄었을 때 읽기 시작해야 하는 것. 독서에도 ˝내일은 없다˝는 좌우명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내일 강의를 앞두고 이 책을 읽는 건 분별없는 열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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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2-2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릴라 교수의 비판에서 하이데거나 푸코는 대충 이해한다 해도 데리다는 납득이 잘 안됐습니다. 글고 기본적으로 현실정치참여에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 십상이더군요.

로쟈 2019-02-26 23:26   좋아요 1 | URL
다시 읽게 되면 저도 소감을 적도록 할게요.~

wingles 2019-02-2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영광입니다^^
 

아침부터 책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책장에 꽂힌 책과 바닥에 쌓인 책 가운데 당장(최소 2년간) 보지 않을 책이라는 명목으로 1-2천권을 빼내는 게 목적인데, 끈으로 묶어서 나르는 방식이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런 이사를 1년에 두번씩 해야 히는 게 장서가의 비운이다(장서가의 즐거움은 이런 책이사의 괴로움에 의해 상쇄된다. 고작 몇 푼어치의 즐거움이 남지 않을까 싶다).

책들을 선별하며 빼내던 중에 김경집의 <고전, 어떻게 읽을까?>와 <청춘의 고전>까지 발견했다. 눈에 띈 것은 이번주에 <다시 읽은 고전>(학교도서관저널)이 출긴돼 조금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부제가 ‘인문학자 김경집의 고전 새롭게 읽기2‘이다. 2016년에 나온 <고전, 어떻게 읽을까?>의 뒤를 잇는 책이어서 ‘2‘가 붙었다(저자는 3부작을 기획했다니 한권이 더 남았다).

‘다시 읽는 책‘이 고전에 대한 정의이으로 ‘다시 읽은 고전‘이란 제목 자체는 중복의 의미가 있다. 세계문학 고전들을 강의하면서 내가 매번 ‘세계문학 다시 읽기‘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과 같다. 저자는 문하과 인문, 두 분아로 나누어서 과거에 읽은 고전을 되읽은 소감을 적어놓았다. 문학의 경우엔 2/3 가량이 나도 강의에서 다룬 작품들이라 소감을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이 고전들이 어째서 다시 읽어볼 만한 책들인지 가능해볼 수 있겠다.

시간과 에너지가 뒷받침된다면 이렇게 찾은 책들을 한데 모아놓고 싶지만 오전 몇 시간의 작업으로 벌써 기진한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리는 고작 이런 페이퍼를 통해서 세 권을 모아놓는 것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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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3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격주로 종이신문을 읽는다. 격주로 지방강의에 내려가면서 서울역 매점에서 한겨레를 손에 드는데 금요일자에는 ‘책과 생각‘이 실리기 때문. 대개 이미 구한 책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의 서평을 미리 읽어보거나 더 구해볼 만한 책의 목록을 작성하는 용도다. 지난해 작고한 김진영의 깅의록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포스트카드)는 전자에 해당한다.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벤야민 강의록이다. 서평은 한상원 충북대 교수가 쓰고 있는데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에디투스) 저자다.

한때 인문독자들 사이에서 벤야민 열독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기억엔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번역돼 나올 무렵인데 지금은 언제적 기억인가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문학비평에 관해 기본적인 관심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나도 그에 해당한다) 이런 책이나 서평에 눈이 간다. 지난달에 벤야민의 카프카론도 강의에서 다룬 터라 좀더 본격적으로 벤야민 전투에 나설 생각도 있지만 현재의 여러 상황(강의준비와 책이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유가 생긴다면 벤야민의 역사철학은 가장 먼저 다시 검토해볼 참이다. 이전에 읽은 책들도 있고 그 사이에 더 나온 책들도 있기에. 그러고 보니 역사철학을 주제로 한 강의도 계획해볼 만하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나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등 나대로 강의에서 다룬 역사서들이 여럿 된다. ‘문학과 역사‘를 주제로 한 강의도 몇 차례 진행한 바 있으니 낯설지 않은 주제다. 벤야민도 그렇고 내년봄으로 기획하고 동유럽문학기행 준비와 관련하여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도 탐독해봐아겠다.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를 읽으며 견적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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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2019-02-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간지 북코너가 가장좋을까요?

로쟈 2019-02-22 23:26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를 싣고 있어서 주로 한겨레를 봅니다.

로제트50 2019-02-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욜 출근하면 일간지 북코너
훑어보는데, 요즘은 동아일보요...
새책 정보가 쪼금 빠르고 해설도
괜찮고. 한겨레는 넘 길어서
지쳐요 -.-

로쟈 2019-02-22 23:27   좋아요 0 | URL
서평은 좀 길어도 된다고 보는 쪽이라. 길어야 20매가 안 되고요.~

wingles 2019-02-23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철학과 문학을 연결한 강의 원츄입니다! 내년 봄까지 목빼고 기다릴수 있어요!

로쟈 2019-02-25 00:38   좋아요 0 | URL
^^
 

엊그제부터 오늘까지 흑사병에 관한 책 세 권을 주문했다. 절판돼 중고본을 주문한 것도 있어서 오늘이나 내일까지 받게 될 듯하다. 관심주제야 매일같이 바뀌기 때문에(매일 새로 생겨난다) 특별할 게 없지만 그래도 왜 흑사병인가.

중세 흑사병이 얼마나 맹위를 떨쳤던가는 지난가을 독일문학기행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각 도시마다 구도심에는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기념물들이 있었다. 한데 흑사병으로 인구가 대폭으로 줄면서 역설적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부유해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것도 원시적 자본축적의 사례 아닌가. 그와 관련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관련서를 주문한 것(원서도 한권 주문했는데 배송까지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

가령 필립 지글러의 <흑사병>(한길사)은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몬 14세기의 흑사병을 다루는데, 경과도 중요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건 결과 쪽이다. 책의 마지막 장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흑사병이 유럽 중세 사회에 가져온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흑사병이 그 이전 이미 시작되고 있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분명한 것은 만약 흑사병이 없었더라면 14세기 후반의 유럽과 영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중세사와 관련해서는 십자군전쟁의 여파와 흑사병이 가져온 변화가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이런 주제만으로도 일주일은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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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 비슷하게 지난 세밑에 이어서 설 전날과 설날에도 앓았다. 열감기나 가벼운 염증질환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일의 의욕을 꺾는데는 충분해서 하루 이상을 쉬었다. 휴일에 쉬었다는 말이 동어반복이지만 실상 휴일이란 내게 재택근무일일 뿐이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몇 가지 깨달음을 적는다. 두서없이 적자면, 내가 싫어하는 커피맛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엊그제와 오늘 마신 커피맛 때문인데 사실 처음은 아니었지만(처음이 아니어서) 취향을 더 분명히 확인하게 된 것. 단순하게 말하면 수돗물 맛이 나는 커피다. 차라리 그냥 수돗물을 냉수로 마시면 더 나을텐데 따뜻하게 데워서 커피인 양 마시는 건, 그것도 비용을 지불하고 마시는 건 넌센스로 여겨진다. 쓴맛의 커피는 너무 쉽게 질 나쁜 커피로 식별할 수 있는데 거기에 더하여 수돗물 맛 커피도 내게는 최악의 커피다. 엊그제 한 체인점에서는 한 모금만 마시고 카운터에 올려놓았다(물론 한 시간쯤 책을 보다가.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책을 보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강의차 찾다가 결국에는 다시 구입했다. 책세상판만 최소한 두 권이고 다른 번역본을 포함하면 댓종은 갖고 있는 책이다. 이럴 때 책은 약에 쓰는 개똥이 된다. 짐작에 장서량이 어느 임계치를 넘어가면 그리 되는 듯하다. 도서관에서처럼 바코드를 붙여서 장서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개인 소장 장서량은 큰 의미가 없다. 어느 정도의 숫자가 임계치일까? 1만권? 현재 3만권 안팎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듯싶은데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으니 막상 필요할 때 찾아 읽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는 건 찾는 일에 비하면 일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1만권도 너무 많은 수치다. 통제가능한 장서량은 5천권 정도가 최대일까? 이것도 250권씩 책장에 꽂는다고 할 때 20개의 책장이 필요한 양이다. 다른 분들은 집에 몇 개의 책장을 놓고 계신지?

밀을 읽다가 몇 차례 ‘밀과 도스토예프스키‘를 검색했는데 두 사람을 다룬 단행본은 없는 듯싶다. 일단 도스토예프스키가 밀의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코멘트를 남겼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그걸 정리해놓은 자료가 있는지 찾고자 한 것. 러시아쪽 자료는 검색하지 않았다). 어림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밀을 공리주의의 대변자 정도로만 간주했다. 벤담과 밀의 차이에 대해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자유 사회주의자‘로서의 밀의 의의도 평가하지 않은 듯싶다. 어림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확인이 필요하다(내 생각으로 밀과 도스토예프스키는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상생적이다. 다만 그들의 시대의 영국과 러시아 사회구성체 간의 차이가 둘을 대립적이게 만든다).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논문을 찾아봐야겠다.

밀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적자면 자서전 외에 읽을 만한 평전이 없다는 점. 예전에 나온 평전이 하나 있지만 분량이 소략하다. 결정본 평전이 나와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소개되면 좋겠다. 검색하다 보니 밀을 ‘영국의 소크라테스‘로 평한 책도 있던데 그럴 듯해 보인다. 밀은 그 자신 말과 행위가 일치했던 인격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밀의 사상에 대해서는 <자유론>의 역자 서병훈 교수의 여러 저작을 참고할 수 있다. 대부분 갖고 있는 책이지만 역시나 개똥으로 분류된다.

커피가 다 식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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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6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0sun 2019-02-0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 중인데
밀의 아버지도 밀도 넘사벽~이런 아버지도 이런 아들도~
괴테의 조기교육도 헉 했는데 이쪽도 만만치 않은.
그나저나 개똥?이 점점 늘어나는것 같아 심심한 위로를~ㅎ

로쟈 2019-02-07 14:06   좋아요 0 | URL
드문 부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