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는 자유시의 이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운율을 상실해왔다. 자유시는 마치 운율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려는 듯 운율에서 멀어져왔다. 그리하여 산문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절제되지 않은 사변적 진술들이 확산되고 있다. 현대시의 흐름은 표면적으로 볼 때 운율의 체계나 규율이 약화되어 왔다. 그러나 성공적인 시들의 경우 대부분 운율에 대한 섬세한 고려와 적극적 활용을 보여준다. 시가 산문과 구분되는 언어예술의 한 절대적 지점인 한, 운율에 대한 인식 없이 제대로 창작하거나 항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운율을 무시하는 것이 자유시의 지형에 상응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시는 운율을 새롭게 창조하는 방식이지 전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자유시 운율의 진정한 묘미는 의미와 호응을 이루며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창조의 가능성에 있다. 의미와 호응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는 개성적인 운율이야말로 자유시 운율의 이상이라 할 만하다.(이혜원, ‘현대시의 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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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이 왜 감정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이고, 쉽게 지루해하는지, 그리고 왜 쉽게 감정을 표출하고, 말대꾸를 하고, 어른이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그리고 약물과 알코올이 왜 그리도 위험한지, 10대들이 음주, 운전, 성 등에 대해 왜 그렇게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는지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뇌회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성호르몬 분비의 증가는 사춘기가 시작되고, 아직은 진짜 ‘어른‘이 아니지만 아이에서 성적으로 성숙한 존재로 가는 생리적 변화가 일어남을 알리는 생물학적 지표다.
10대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중 일부는 호르몬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작용하고 있다. 10대의 뇌는 뇌 영역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이 구축되고, 수많은 화학물질, 특히 뇌의 전령사‘인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 이 밀려든다. 청소년기가 진정 경이로운 시기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덕분에 뇌의 유연성과 성장으로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커져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린다. 하지만 유연성, 성장, 활력은 양날의 칼이다. 자극에 민감한 열린 뇌는 스트레스, 약물, 화학물질, 그리고 수많은 환경적 변화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뇌는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영향이 결국에는 성인의 경우에서보다 훨씬 극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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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진짜 과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물론 우주를 지배하는 기본 법칙을 연구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시간 이 없다. 게다가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론물리학을 연구 한다면 세상은 서서히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방정식 없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일반인들도 우주 법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가능하 다고 믿으며, 이 일은 내가 평생에 걸쳐 노력하고 즐겼던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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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휴대기기를 버려야 한다거나 스크린 문화를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보다는 단어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반문화counterculture -작금의 우세한 주류문화와 반대로 작용하는 문화- 를 형성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반문화란 파편화된 정보의 비트와 바이트보다는 내러티브에 대한 지식과 관계 맺는 것을 중시하는 것을 말한다.  대화적 관계를 생생하게 그리고 계속 유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오늘날 문학 내러티브의 ‘깊이 읽기‘는 인간 고유의 정체성이 가진 복합성과 이중성으로 관심을 되돌려놓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리면 ˝네 자신을 알라˝ -를 발견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지속적 탐색의 여정에서, 이를 공유하고자 욕망하는 언어적 존재이자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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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다가 같이 읽게 된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묶여서 일본의 3대 여성작가로 불리는 야마다 에이미다. 바나나와 가오리가 ‘여자 하루키‘로 불린다면 에이미는 ‘여자 무라카미 류‘로 비교되기도 한다. 세 작가의 개성이 제각각인데, 작품집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학교 문제를 다룬 에이미의 소설들에 눈길이 간다. 특히 일본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려다 심의에서 문제가 돼 빠졌다는 ‘나는 공부를 못해‘가 인상적이다. 주인공 도키다 히데미의 모습에는 공부를 못했던 작가 에이미 자신의 모습도 투영돼 있는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작가의 탄생기이다(더불어 그녀는 그때의 담임선생을 만나보고 싶다고 적는다. ˝지금은, 나는 공부를 못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텐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물리 시험에서 두 번이나 0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물리 선생이었다.
˝댁의 따님은 수업 태도도 나쁘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도 듣지 않고, 수업 중에 소설책이나 보고 있고, 방과 후에는 남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론가 갑니다.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따님처럼 자기 세계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 학생은 나중에 작가라도 되는 게 좋을 성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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