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는 작은 독립출판사에서 출간돼 종합베스트셀러 1위까지 했다고 한다. 원제는 ‘Notes to Self‘다...

사람들은 이 책을 내줘서 고맙다면서 이 책이 불임과 알코올중독, 여성의 몸, 가족 갈등 같은 문제들을 둘러싼 침묵을 깨뜨려주었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러한 침묵이 어떻게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삶의 경험들을 헤쳐나가고 있고, 나는 이 중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최초로 글을 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 침묵은너무 커다랗고 너무 견고해서 우리가 침묵을 깨뜨린다 해도 금세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이 침묵을 깨뜨려야만 한다. 각자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힘껏 소리쳐야 한다. 이는 함께해야 하는 공동작업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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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여성 정치인‘과 ‘여성의 정치‘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관심에 따라 존 바에즈와 케테 콜비츠 장을 먼저 읽었다..

존 바에즈는 자신이 왜 노래를 부르는지 절실한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녀는 "이 시대가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물음, 즉 어떻게 하면 인류가 서로 죽이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살육을 막기 위해 내가 평생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외면한다면, 아름다운 음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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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턴의 <문화> 머리말에서 인상적인 것 두 가지. 문화가 현대사회에서 핵심적이지 않다는 것(동의한다)과 아일랜드 모티브(스위프트 이래의 전통)가 관통하고 있다는 점. 프로필에서 확인하니 ‘영국 샐퍼드의 아일랜드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다!..

이어서 흔히 속물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문화관념이 왜 그처럼 중요해졌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 다양한 범위의 답을 제시한다. 주요한 답들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미학적 혹은 유토피아적 비판으로서의 문화라는 관념, 혁명적민족주의, 다문화주의, 정체성 정치의 발흥, 종교의 대체재를 찾으려는 노력, 소위 문화산업의 출현 등이다. 또한 문화주의라는 원칙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예정인데, 이는 문화가 인간 존재 속에 철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으로, 문화 상대주의의 문제 역시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문화가 일부 옹호자들이 상상하듯 현대사회에서 결코 핵심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다수 제시한다.
명민한 독자들은 스위프트, 버크, 와일드에서 아일랜드의 반식민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아일랜드의 모티프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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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의 대중강연을 옮겼는데, 분량이 짧기도 하지만 기대한 만큼 깊이가 있지는 않다(함기석 시인의 해제가 더 수준이 높을 정도다). 바디우의 무한론은 다른 책에서 기대해봐야겠다...

평범한 삶은 유한 속에 있습니다. 무한과의 만남은 걱정스럽고,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숱한 노력과 엄청난 긴장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무한 앞에서 우리가 물러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렇게 알려진 무한 앞에서 물러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무한한 공간들이 자아내는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무한에 두려움과 불안이 있는 것은, 어쨌든 무한이 우리 평범한 존재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무한은 무언가 대한 대가 혹은 보상입니다. 평범한 삶속에 정착하는 데 동의하며 한편으로 자신의 삶에서 적어도한 번은 무한을 만나기를 바라면서(물론 공포에 떨면서), 우리는항상 이 둘 사이의 균형 속에 있습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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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러쉬코프)의 신작은 ‘팀 휴먼‘이다. 위기의 시대이지만 역전도 가능하다고 설득한다. 인류가 ‘팀 스피릿‘을 가져야 한다는 게 역전의 조건이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가 나타날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도 시작은 소셜 플랫폼이었으나 결국에는 ‘고립의 플랫폼‘이 됐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있을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수많은 소통 기술을 손에 쥐고 살고 있다. 우리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는 내가 직접 살아 본 경험보다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경험이 더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외롭고 원자화되었다. 최신 기술은 우리를 서로 이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기술은 인간성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평가절하하며,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심을 훼손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 상황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을역전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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