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언어를 구사해 ‘언어 천재‘로 불리는 일본 학자의 책이다. 한 차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자의 강의에 바탕을 둔(강의는 놀랍게도 194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다) 책이어서 러시아문학 강의의 교재로도 유용하다. 아래 인용문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로 교정되어야 한다. 저자의 착오인지 역자의 오역인지 모르겠다...


이반 카라마조프는 "인간의 영혼은 정말로 광활하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광활하다. 가능하다면 살짝 작게 만들고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건 지성이나 이성만으로 해석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들 영혼에는 우주의 바람이 깃들어 있으며 이 엄청난 모순덩어리는 디오니소스적 성격을 보인다. 그렇기에 디오니소스의 불가사의한 외침을 가슴으로 직접 느껴본 사람만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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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준비차 쿤데라의 에세이 <커튼>(2005)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내게는 2008년만에 나온 단행본판과 2012년에 나온 전집판이 있다(이번에 다시 구입한 건 2022년에 나온 2판 11쇄. 하지만 오자, 오역이 전혀 수정되지 않았으니 판이나 쇄의 의미가 없다). ‘아침의 자유, 저녁의 자유‘ 장(청춘의 피카소 얘기로 시작해서 말년의 베토벤 얘기로 끝난다)에서 마지막 단락에 밑줄을 긋는다...

베토벤의 마지막 십년 역시, 빈에게서, 빈의 음악가들과 귀족들에게서 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들은 베토벤을 숭배하지만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 게다가 베토벤 역시, 설사 귀머거리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예술의 정점에 있다. 그의 소나타와 사중주는 다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 그 구성의 복잡성으로 인해 고전주의와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낭만주의의 가벼운 자연스러움에 가깝지도 않다. 음악의 발전에 있어서 그는 누구도 따라오지 않은 방향을 취한 것이다. 수하도 계승자도 없는 그의 작품, 저녁의 자유의 작품은 기적이며 섬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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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신비에 싸인 사건>은 지난해 <어둠 속의 사건>으로 번역된 소설이다. 츠바이크는 이 소설을 읽고 조제프 푸셰에 대한 전기를 쓴다. <어둠 속의 사건>의 독자라면 자연스레 츠바이크의 책에도 손이 갈 수밖에 없다...

발자크에게 푸셰는 ‘둘도 없는 천재‘이자 ‘나폴레옹이 거느렸던 장관들 중 유일하게 제구실을 한 장관‘이며 그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발자크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쓴다. "어떤 사람은 보이는 표면 아래에 항상 아주 깊은 심층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그 의중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푸세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도덕군자들에게는 매도의 대상인 인물이 이토록 철저히 다른 평가를 받다니 놀랍지 않은가! 발자크는 소설 <신비에 싸인 사건Une ténébreuse Affaire>에서 "음습하고 심층적이며 비범한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운을 떼고는 이 인물에게 별도로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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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머리말에서 제목 ‘신의 역사‘의 의미를 밝히는 대목이다. 곧 신의 역사란 신이라는 실재의 역사가 아니라 신 개념의 역사다...

이 책은 시대와 변화를 초월해 존재하는 형언할 수 없는 신의 실재 그 자체의 역사가 아니다. 아브라함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의 역사이다. 인간의 신 개념은 역사가 있다. 다양한 시점에서 그 개념을 사용한 각 집단 사람들에게 항상 조금씩 다른 의미였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대 한 집단에 의해 형성된 신 개념은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할 수 있다. "나는신을 믿는다"는 명제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객관적인 의미가 없고, 다른 일반 명제들처럼 오직 특정 집단에 의해 선포될 때 그 맥락 안에서어떤 의미를 띠게 된다. 따라서 ‘신‘이라는 말에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개념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고 심지어 상충하기까지 하는 의미들이 총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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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의 <레미제라블>을 10년만에 다시 읽는 김에 막스 갈로의 평전 <빅토르 위고>에서 <레미제라블>을 쓴 동기를 옮겨놓는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재공연도 하반기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시 읽어볼 계기가 되어도 좋겠다...

"나는 왕 없는 사회, 국경 없는 인류, 책 없는 종교를 지향합니다. 맞습니다. 나는 거짓을 파는 사제, 불의를 자행하는 재판관과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봉건적 요소를 없애고 재산권을 보편화되길 바랍니다. 나는 사형제도가 없어지기를 원하며, 노예제도를 거부합니다, 나는 불행을 몰아내고, 무지한 사람을 가르치고, 질병을 치료하고, 밤을 밝히고 싶습니다. 나는 증오를 증오합니다.
이것이 내가 존재하는 까닭이며, 내가 <레미제라블>을 쓴 이유입니다. 
내 생각에 <레미제라블>은 기본적으로는 형제애, 궁극적으로는 진보를 담고 있는 책일 뿐입니다." - P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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