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관련서가 드물지 않게 나오고 있는데, '이주의 발견'으로도 꼽을 만한 책이 있어서 언급한다.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2014).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가 부제다.

 

 

책소개가 아직 뜨지 않고 있는데, 인간의 진화적 본성과 이야기(스토리텔링)의 관계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휴머니스트, 2013)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다윈주의 서사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책들이다.

 

 

 

스토리텔링 관련서로는 두 달 전에 나온 이인화의 <스토리텔링 진화론>(해냄, 2014)도 언급할 만한다. '창작의 원리에서 도구까지 위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부제. 스토리텔링, 특히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구에 관심을 경주해온 저자의 스토리텔링론을 집약한 책. 한편으론 스토리헬퍼라는 소프트웨어의 해설서이기도 하다고.

2010년부터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소가 3년간 공동 개발한 스토리헬퍼는 2만 4,000여 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중 1,406편을 선정하여 약 11만 6,000여 개의 데이터로 분할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소프트웨어이다. 이 책은 그 이론적 배경과 오랜 탐구 과정에 대한 해설서이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서사학'이나 '내러티브' 관련서라고 했겠지만 요즘은 '스토리텔링'이 대세라 관련서들이 그런 이름으로 나온다. 마리-로어 라이언이 편집한 <스토리텔링의 이론, 영화와 디지털을 만나다>(한울, 2014)도 그런 경우다. 분량으로 봐서 번역본은 원저를 약간 발췌한 듯싶다. "매체에 의해 제한받는 동시에 매체를 뛰어넘는 스토리텔링 연구를 지향하는 이 책은 향후 스토리텔링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소개다...

 

14.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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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하세가와 히로시의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교유서가, 2014)를 고른다. 제목이 일러주듯 책은 저자가 고른 '철학의 명저' 열다섯 권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 아니 딱히 분야가 '철학'에 한정된 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나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그리고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인문고전' 정도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일본에서 헤겔 주요 저작의 재번역으로 명성을 얻은 학자이고 국내에도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도서출판b, 2013)이 먼저 소개된 바 있다(일본의 헤겔학 수준에 대해서는 <헤겔 사전>(도서출판b, 2009)을 통해서 어림해볼 수 있다).

 

그렇게 마음대로 스무 권 정도의 책을 골라서(실제로 저자가 고른 건 열다섯 권) 자유롭게 써보는 일이라면 나도 어떤 목록을 고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서문을 읽으며 좀 부럽게 느껴진 대목이 있다. 하세가와는 이렇게 적었다.

처음으로 잡은 것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다. <방법서설>은 오치아이 다로 역, 노다 마타오 역, 오바세 다쿠조 역, 다나기와 다카코 역 등 몇 종의 일본어역이 있다. 어느 번역본이 좋을까. 나 또한 헤겔을 번역하느라 꽤나 고생했던 터라, 번역본을 적당히 고를 수는 없었다.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구해서 눈앞에 늘어놓고, 몇 번이나 비교하면서 읽은 뒤, 모호한 일본어 표현이 적고 문장에 리듬이 있는 노다 마타오 역을 골랐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서 다룬 15권의 작품 가운데 <기독교의 본질> <색채에 관하여> <눈과 정신>을 제외한 열두 작품은 여러 종의 일본어역이 있다. 도서관에 가서 가능한 한 많은 역서를 들춰보고, 일본어 표현이 알기 쉽고 문장에 격조가 있는 것을 선정기준으로 삼아 텍스트를 선정했다.

그러니까 이 책의 묘미는 (번역상으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 '선정 과정'에 있다. 우리는 어느 만큼 그 선정 과정의 즐거움과 (즐거운) 고충을 느껴볼 수 있을까.

 

 

좀 비관적인 기분이 들긴 했지만, 막상 찾아보니 상황이 아주 나쁜 건 아니다. 가령 하세가와는 '인간'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알랭의 <행복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세 권을 글거리로 삼았는데, 모두 한국어로도 복수의 번역본이 있다. <행복론>의 경우에는 비교해봄직한 번역본이 대여섯 종이고, <리어왕>은 물론 그보다 훨씬 많다. <방법서설>은 좀 아쉬운 편이지만, 서너 종 가량의 번역본을 참고할 수 있다.

 

 

또 '아름다움'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하세가와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 비트겐슈타인의 <색채에 관하여>,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을 골랐는데, <악의 꽃>의 경우 서너 종의 번역본이라면 좀 빈곤한 편이다. <색채에 관하여>는 과문하여 접해본 적이 없고(한국어판 비트겐슈타인 선집에도 빠진 것 아닌가?), <눈과 정신>은 <눈과 마음>(마음산책, 2008)으로 번역됐었지만 절판된 상태.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당연하게도 눈앞에 책이, 많은 경우엔 번역본이 있어야 한다. 어떤 책, 어떤 번역본으로 읽어야 할지 고심할 권리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더 훌륭한 번역본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독자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출판계의 탄식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바람일까...

 

14.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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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고 좋은 소식은 없었다. 저녁에 인문학협동조합에서 기획한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녹음을 하고 귀가했다. 6월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밀린 일들로 넘어가기 전에 습관처럼 새로 나온 책들을 검색하다가 두 권에 눈길이 멈춘다. 하나는 로렌스 H. 킬리의 <원시전쟁>(수막새, 2014)이고, 다른 하나는 워드 윌슨의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플래닛미디어, 2014)다.

 

 

<원시전쟁>의 원제는 <문명 이전의 전쟁>(1996). 그밖에 책소개는 아무것도 뜨지 않지만, 옥스포드대출판부에서 나온 것이니 엉터리는 아니겠다. 부제는 '평화로운 야만인이라는 신화'. 즉 문명 이전 사회에서는 다들 평화롭게 살았을 거라는(요순시절처럼?) 추정이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폭로이겠다. 발굴된 두개골 가운데 성한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혹했던 시절이었다는 얘기. 암튼 관심도서로 바로 주문할 참이다.

 

'이주의 발견' 일순위는 <원시전쟁>이지만, 덧붙일 내용이 별로 없어서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까지 더 얹는다. 이 또한 소개글이 없기는 마찬기지다. 다만 “핵무기가 왜 효과가 없는지를 가장 잘 분석한 훌륭하고 독창적이며 중요한 책”이라는 추천사가 붙어 있다. 분량도 별로 두껍지 않다.

 

 

최근 올리버 스톤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역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에서 2차 세계대전 편을 보다가 당연히 핵무기(원폭)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갖게 됐는데, 마땅히 찾아볼 수 있는 책이 별로 없었다(보통 핵무기와 국제정치를 다룬 책).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가 기본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 폭력에 관해서라면 언어학자이자 인지/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들: 왜 폭력이 감소했는가>도 소개됨직하다(짐작엔 번역중이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TED강의를 보니 핑커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구석기 시대와 견주어도 현대인이 훨씬 덜 폭력적이고 온순해졌다는 주장을 입증한다. 문제는 그렇게 온순해진 현대인이 누른 단추 하나로 수만 명, 혹은 수십 만 명이 희생될 수도 있는 유례 없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총기 살상만 하더라도 그렇다. 온순해진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는지...

 

14.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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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 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검은 감자>(돌베개, 2014)를 '이주의 발견'으로 더 고르다. 말 그대로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가 부제. 미국 도서관협회 선정 청소년 최우수 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고. 찾아보니 디스커버리 총서로도 피터 그레이의 <아일랜드 대기근>(시공사, 1998)이 소개돼 있다. 어떤 책이고 어떤 재앙이었나.

 

1845년 아일랜드에 재앙이 닥쳤다. 하룻밤 사이에 까닭 모를 전염병이 돌아 농가의 거의 유일한 식량이었던 감자가 검게 썩기 시작했다. 감자 전염병은 5년간 되풀이되었고, 가난한 아일랜드인 100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었다. 대대로 살아온 고국을 쫓기듯 떠난 사람도 1910년까지 500만 명에 달했다. 아일랜드를 완전히 바꿔 버린 이 역사적 사건을 오늘날 우리는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부른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100년도 훨씬 전 먼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지만, 굶주림과 질병, 죽음, 혼돈과 봉기 등 일련의 과정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이 책은 아일랜드 민중이 자기 삶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진짜 대기근 이야기를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불합리한 ‘굶주림’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과 극복 방법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끈다.

 

대기근 관련서로는 중국의 대기근을 다룬 <1942 대기근>(글항아리, 2013), 김덕진의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푸른역사, 2008) 등이 나와 있다(<대기근, 조선을 뒤덮다>는 절판이군). 개인적으로는 소위 '역대급' 대기근으로 꼽히는 1932-1933년의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에 관한 책도 나오길 기대한다.

 

 

찾아보니 덴마크 작가 레네 코베르뵐과 아그네테프리스가 공저한 <나이팅게일의 죽음>(문학수첩, 2014)이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 스탈린 치하의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에 시달리던 두 소녀와 현대 덴마크에서 약혼자의 학대를 못 이기고 살인미수를 저지른 뒤 도망친 우크라이나 출신 망명 여성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서로 엮이면서 유럽 현대사를 아우르는 숨 막히는 미스터리가 펼쳐진다"는 소설이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대해서는 더 본격적인 책이 나오면 좋겠다...

 

14.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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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국가적 재난으로 상심해 있는 상황이라 기분을 내서 책을 사고 또 읽을 형편이 아니지만,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가는 책이 있어서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프랑스의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쓴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민음사, 2014).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이 부제이고 원저는 2005년에 나왔다.

 

두 저자는 그들 자신도 젊은 시절 가족의 첫 번째 죽음을 경험했다. 슈창베르제는 십 대에 여동생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죄프루아는 겨우 육 개월 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저자들은 그 고통을 표현하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계속해서 살아오면서 아픔에서 보다 잘 헤쳐 나오지 못한 실수를 다른 이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돕기로 마음먹는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애도를 마치고 나와서 어느 정도 내적인 평화와 평정을 되찾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들은 인간이 겪는 상실과 고통, 외로움, 분노, 좌절, 헤어짐에 대해 다루면서 애도의 상태를 건강하게 벗어나는 법에 대해 쉽고 간결한 언어로 서술한다.

애도를 주제로 한 책은 미술쪽으론 박영택의 <애도하는 미술, 2014), 그리고 문학쪽으론 왕은철의 <애도예찬>(현대문학, 2012) 등이 같이 참고할 만한 책들이다.

 

 

찾아보니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멜랑콜리)'론을 해설한 임진수의 정신분석 세미나 <애도와 우울증>(파워북, 2013)도 작년에 나왔다. 대구지하철 참사도 사례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도 한몫 거든 바 있다. <애도와 우울증>(그린비, 2011)은 러시아 낭만주의의 두 시인,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연구다. 더불어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애도 일기>(이순, 2012)도 애도를 주제로 한 책.  

 

 

아직 구조/수습 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삼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14.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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