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라진 책들' 카테고리의 페이퍼를 적는다. 조선 유학사 관련서를 검색하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인데,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아카넷, 2003)이 문제의 '사라진 책'이다. 작년에 원서까지 구해놓았지만 정작 번역본을 구할 수 없다.

 

 

품절인지 절판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고 어지간한 도서관에도 구비가 돼 있지 않다. 대출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나는 소장용 도서로 분류해놓고 있어서 가급적 재출간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도이힐러 교수가 편저한 책으론 <후기 조선의 문화와 국가>(2002)란 책도 있다.

 

 

 

조선 유학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재일 학자 강재언의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의 2천년>(한길사, 2003)도 품절이 아쉬운 책이다. 일본에서도 평판이 좋은 책으로 아는데, 정작 우리는 읽을 수 없다. 아니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책의 수명이 10년도 안 돼서야 문화국가라고 말하기 멋쩍은 것 아닌가.

 

 

 

거기에 덧붙이자면 일본 학자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예문서원, 2001)도 읽어보고픈 책이다. <조선의 유학>(소나무, 1999)은 아직 절판되지 않았기에 대신 읽어볼 수 있긴 하지만(두 책이 대동소이해 보이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카하시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과에서 문학 제1강좌를 담당했던 교수로 주로 문학사와 사상사를 강의했다. 소개에 따르면 "다카하시는 노골적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멸시하는 등, 악질적인 식민지 관료이자 교수였다. 그럼에도 그는 근대적인 의미에서 조선의 유학을 연구한 최초의 학자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조선 유학의 학파와 지역별 분류를 넘어서 '주리.주기론'의 개념적 분류를 시도하여 조선유학을 근대적으로 재구성하려한 것은 크게 인정받고 있다." 조선 유학 연구의 기본틀을 만든 것이라고 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연구를 우리가 얼마나 넘어서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맥락에서 궁금한 책은 현상윤의 <조선유학사>(심산, 2010)다. 소개에 따르면 "1953년 3월 25일 고려대학교 대구 임시교정 졸업식에서 '朝鮮儒學史'로 대학원 제1호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이것은 동시에 한국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더 자세한 소개는 이렇다.  

조선 유학사상의 큰 맥을 체계적으로 처음 정리한 책이 바로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 선생의 <조선유학사>이다. 1949년에 첫 출간된 이래 한국유학을 연구하는 국내외 학자들에게는 반드시 열람(閱覽)해야 하는 필독서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선생이 6.25전쟁 당시 납북된 후로도 여러 해를 거듭하는 가운데 몇 차례 중간되어 오던 것을, 교주자가 원저서에 인용된 한문 원전을 모두 한글로 풀어 옮기고 인용문과 설명문에 대하여 많은 교정과 상세한 주석을 가하여 교주본을 출간하고 이를 다시 수정 보완하여 <현상윤의 조선유학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카하시 도루나 현상윤 선생의 책은 말하자면 기본서에 해당한다. 조선 유학에 교양 수준 이상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전체적인 그림은 그려보고 싶다.

 

 

 

조선 유학과 관련하여 구비해놓고 있는 책은 한형조 교수의 <왜 조선유학인가>(문학동네, 2008)와 <조선유학의 거장들>(문학동네, 2008), 그리고 이승환 교수의 <횡설과 수설>(휴머니스트, 2012) 등이다. 거기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교양이다...

 

13. 01. 13.

 

 

P.S. 도이힐러의 <한국사회의 유교적 전환>이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 2013)으로 제목을 바꿔 다시 출간됐다. 역자는 같다. 아쉬움을 표한 지 1년이 안 돼 책이 다시 나와서 퍽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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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라티오, 2012)다. <인문 고전 강의>에 이어서 40주의 도서관 강의를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첫 시간'에서는 역사책을 읽는 순서를 제시하고 있는데,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을 일단 권한다. 

 

 

"통사->주제사,부문사->각국사->지도책, 연표->글로벌 히스토리를 순서대로 읽고나면 역사 공부를 한번 한 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각 시대의 역사가들이 쓴 역사 고전을 읽으면 좋습니다."(23쪽) 

그중 '각국사' 관련으로 추천한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콘사이스 히스토리' 시리즈이다. '케임브리지 세계사'와 같은 표제가 붙은 책은 대부분은 믿을 만한 것들이라는 소개를 덧붙인다. 예컨대 크리스토퍼 듀건의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개마고원, 2001) 같은 책이다. 잘 못 보던 책이어서 찾아보니 역시나 이미 절판된 상태다. 하긴 10년도 더 전에 나왔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동시에 요긴한 책들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시리즈는 총 네 권이 번역돼 나왔는데,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사>가 모두 절판됐다. 좋은 시리즈이지만 별로 반응은 없었던 셈이다.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종류의 각국사들이 출간돼 있기는 하지만, 시리즈는 별로 보지 못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각국사도 역시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 열강을 기준으로 하면 <영국사>와 <이탈리아사>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시리즈는 오래전에 종결된 듯싶지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시리즈는 아직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콘사이스 히스토리' 시리즈는 도서관에도 제대로 갖춰놓은 곳이 별로 없다. 이 참에 다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다양한 각국사들과 함께...

 

12.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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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구입한 책 가운데 가장 부듯했던 건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대화>(펭귄, 1990)이다. 펭귄클래식으로 나온 영역본.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네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소크라테스 회상>, <향연>, 그리고 <가정론>(<경영론>, <가정관리학>) 등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네편은 현재 번역본을 구할 수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번역이 없는 듯싶고, 나머지 세 편은 모두 절판됐다.

 

 

흔한 책이었던 <소크라테스 회상>(범우사)은 절판된 게 아니라 품절된 것인 듯싶은데, 아무튼 유일한 번역본이 현재 구할 수 없는 상태다. 다행히 지난주에 중고서로 구하긴 했는데, 판면을 보니 1976년에 초판 1쇄가 나왔고 내가 구한 건 2002년에 나온 3판 2쇄다. <크세노폰의 향연 경영론>(작은이야기, 2005)이란 것도 나온 흔적이 있는데, 한번도 구경해보진 못한 책이다. 동네도서관에서는 당연히 구할 수 없고 중고도 나와 있지 않다. 네 편의 대화편을 한 권짜리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영역본과 비교하면 상당히 유감스럽다. 설마 관심을 안 갖는 게 온당한 것일까?

 

 

 

흔히 '그리스의 군인, 역사가, 소크라테스의 문하생' 등으로 소개되는 크세노폰의 책으론 <그리스 역사>(안티쿠스, 2012)가 지난달에 출간됐고, <페르시아 원정기>(숲, 2011)도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작년에 나왔다. <아나바시스>(단국대출판부, 2001)란 원제로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의 창업자 키루스 대제의 역전의 방법>(코리아닷컴, 2009)도 절판되진 않은 책인데, 원제는 그냥 <키루스 대제>. 소개에 따르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고레스 대왕과 동일 인물인 키루스 대제는 용기와 지혜로운 리더십으로 이집트를 제외한 오리엔트를 지배했다. 그는 피정복지의 풍습과 가치를 존중하는 등 유화정책을 썼다. 특히, 자신이 정복한 사람들을 존경과 자애로 다스린 지도자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한 세기가 지난 후 키루스 대제를 존경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은 키루스 대제에 관한 대서사시를 기록했다." 그 '대서사시'가 리더십에 관한 책으로 탈바꿈해 나온 것.

 

덧붙여, <키루스의 교육>(한길사, 2005)도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하나로 나왔다가 절판됐다. "크세노폰이 보기에 키루스는 바람직한 정치적 인간이다. 키루스는 현실을 주의 깊게 살피지만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통치하며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을 이룩한다. <키루스의 교육>은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을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려 설명한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와 키루스가 크세노폰의 '영웅'이었던 셈.

 

아무려나 당장은 아쉬운 게 크세노폰의 <경영론>이다. 홍기빈의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지식의날개, 2012)에서 '최초의 경제학 책'이라고도 불렀기 때문. <가정관리학>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다. "크세노폰은 명예롭고도 미덕 넘치는 인간 행위의 유형을 전쟁 사령관, 폴리스 행정관, 농장 경영자의 세 가지로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저작에서는 바로 훌륭한 농장 경영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62쪽) 영역본 제목이 '농장 경영자(The Estate-manager)'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12.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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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이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의 <살림/살이 경제학>(지식의날개, 2012)을 읽다가 불가불 상기하게 된 책은 칼 폴라니의 <사람의 살림살이1,2>(풀빛, 1998)다. 오래전 서점에서 보던 책이지만 그땐 폴라니에도, 경제학에도 별로 관심이 없던 때였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고, 이유는 순전히 '폴라니 전도사'라고 할 만한 저자의 부추김 덕분이다. '돈벌이 경제학'(=주류경제학)을 거스르는 '살림살이 경제학'이란 발상도 그러하다.

 

 

내가 '살림살이 경제학' 라는 이름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칼 폴라니의 유저 <인간의 살림살이(The Livelihood of Man)>였다.(9쪽)

<거대한 전환>(길, 2009) 재번역으로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 사이 '폴라니 경제학'이란 사잇길의 존재를 알려준 저자에게 <인간의 살림살이>도 부탁해보는 것은 과욕일까(현재는 중고서점은 물론 도서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 또한 절판된 이 책이 다시 나오는 것은 누구보다도 반가워할 것이다. 폴라니의 책은 그밖에 <초기제국에 있어서의 교역과 시장>(민음사, 1994)이 더 번역됐었지만 이 역시 절판된 지 오래다.   

 

 

 

폴라니의 책으론 홍기빈 편역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책세상, 2002) 외에 그의 경제사상을 다룬 김영진의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한울, 2009)와 J.R. 스탠필드의 <칼 폴라니의 경제사상>(한울, 1997) 정도가 남아 있다. 관련서도 더 소개될 여지가 있다.

 

 

찾아보니 <사람의 살림살이>는 영어본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책이다. 살림살이, 혹은 살림/살이 경제학으로의 관심과 전환은 어쩌면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한다면 말이다.

 

인간의 살림살이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 채 더 많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방법과 그에 대한 분석에 몰두하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을 저자는 ‘돈벌이 경제학’이라고 규정하며, 미래에는 신자유주의의 ‘돈벌이 경제학’이 아니라 ‘살림/살이 경제학’이 개인, 가족, 지역, 나라, 나아가 세계의 경제를 조직하는 대안적 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목이기도 한 이 ‘살림/살이 경제학’은 저자가 고안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경제학은 원래가 ‘살림/살이’ 경제학이었다. 한자어 경제(經濟)가 본디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함)에서 유래한 말이며, 영어 ‘economy’ 또한 가정관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oikonomia‘에서 유래된 라틴어 ’oeconomia‘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은 자연스럽다. 본디 경제학은 오늘날 같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살림/살이 경제‘가 중심 개념이었던 것이다.

 

12. 03. 24.

 

 

P.S.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홍기빈 소장의 강연행사도 있다(http://blog.naver.com/salviatea/140155510279). '저자와의 차 한 잔'을 같이 하고픈 독자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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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의 소설집 <모범소설>(1613)을 옮긴 <모범소설1,2>(오늘의책, 2003)가 절판돼 유감스럽다는 얘기를 며칠전에 적었는데, 전체12편 가운데 몇편은 아쉬운 대로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다. 참고 삼아 적어둔다. 일단 전체 12편의 줄거리는 <모범소설>의 소개에서 가져온다.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 제목에 색칠을 했다.

 

 

<모범소설 1>

질투심 많은 늙은이

사랑을 소재로 한 9편의 <모범소설> 가운데 유일하게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작품이다. 68세된 늙은 영감 까리살레스는 신대륙에서 많은 돈을 벌어 와서, 13세의 어린 소녀 레오노라를 신부로 맞아들인다. 그는 질투심 때문에 자신의 집을 요새처럼 만들어서 어느 누구도 신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로아이사라는 청년이 까리살레스의 집과 그의 아름다운 부인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런 결혼생활에 갈등과 혼란이 생기게 된다. 그 청년은 교묘히 하녀들을 유혹하여 철통같은 집의 내실에까지 침투하여 레오노라를 만나게 된다. 이를 보게 된 노인은 질투심에 불타 병들게 되고 죽음 직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둘이 결혼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유산을 남긴다. 하지만 청년은 신대륙으로 레오노라는 수녀원으로 떠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피의 힘
세르반테스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직접적으로 성적인 부분을 드러낸 작품으로 분위기나 풍습 묘사가 아닌 사건 전개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건달패 무리에게 납치당한 레오까디아가 로돌포라는 청년에게 순결을 빼앗긴 후 그의 아들을 낳게 된다.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아들 루이스가 사고로 쓰러졌을 때 한 노신사가 자신의 아들 생각이 나서 재빨리 구해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루이스가 그 노신사의 손자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고 모든 정황을 알게 된 로돌포의 부모님은 레오까디아와 로돌포를 맺어 준다.

유리석사
죽음의 문턱으로 이끄는 사랑의 묘약을 먹음으로써 미치게 된 한 스페인의 지식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대부분이 스토리 전개를 위한 서술이 아니고 도시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유리석사와 그를 쫓아다니는 사람들과 일문일답 형식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또마스 로다하이라는 청년은 자신의 소명과 운명을 발견하게 되어 지식인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한 여인의 집착으로 독약을 마시게 되어 극도의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육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유리로 되었기 때문에 사물을 깊이 이해할 수 있으므로 모든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했다. 미친 석사는 이제 책에서 얻은 지식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게 되었지만 모든 질문에 대해 기지와 정확성을 가지고 대답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한 수도사의 치료를 받은 후 제 정신을 찾게 되면서 평범한 석사로 돌아가게 되어 유리석사로 전에 누렸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집시 여인
<모범소설> 12편 중의 첫 작품인 '집시 여인'은 '현대판 신데렐라'를 연상케하는 내용으로써 집시 여인과 귀족 청년 사이에 벌어지는 르네상스의 이상주의적인 숭고한 남녀의 사랑을 그려내면서, 무수한 모험과 난관을 뚫고 행복을 이루는 이야기로 끝난다. 지금까지도 스페인 문학 작품 중에서 집시들의 풍습과 생활을 가장 자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꼽힌다. 귀족 출신의 젊은이 안드레스가 집시 여인인 쁘레시오사에게 반하여 결혼을 청하자, 그녀는 집시와 결혼을 하려면 2년 동안 집시들과 함께 생활해야 된다는 요구를 한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 집시들과 생활하게 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뒤 쁘레시오사가 귀족의 딸임이 밝혀지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영국에서 돌아온 여인
'영국에서 돌아온 여인'의 원래 제목은 '영국인이 된 스페인 처녀'인데 내용과 주제에 맞게 제목을 바꾸어 붙였다. 이 작품은 네오플라토닉(neoplatonic)한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데, 외적인 아름다움을 초월한 내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사랑의 승리를 찬양하고 있다. 영국 해군 장교인 끌로딸도는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이상벨라라는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해 런던으로 데려온다. 이사벨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하게 되고 끌로딸도의 아들 리카레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둘의 사랑에 끼어든 연적 아르네스또 백작 어머니의 간계로 독약을 먹고 외적인 아름다움을 잃게 되자 리까레도의 부모는 아들의 결혼 상대자를 명문 귀족 출신의 스코틀랜드 아가씨로 바꿔버린다. 리까레도는 비록 외적인 아름다움을 잃긴 했지만 숭고한 영혼을 가진 이사벨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 스페인으로 돌아간 이사벨라는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세비야의 수도원으로 찾아온 리까레도와 극적으로 만나게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고상한 하녀
이 작품은 자유의지를 구현한 두 남녀 주인공이 바로 그 의지 덕분에 맺어져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과 화해하는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 '고상한 하녀'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진부한 통속소설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운명론이나 결정론에 대항하여 싸우는 주인공들의 자유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악자(惡子)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참치 어장으로 가던 부르고스 출신의 두 귀족 청년 아벤다뇨와 까리아소가 고상한 하녀라고 불리는 꼰스딴사가 일하는 똘레도의 한 여관에 머무르게 된다. 아벤다뇨는 꼰스딴사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관에서 일꾼으로 일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대한다. 그러나 여관주인의 고백으로 '고상한 하녀'인 곤스딴사가 귀족 출신의 혈통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 아벤다뇨와 꼰스딴사는 맺어지게 된다.

<모범소설 2>

사기결혼
이 작품은 두 남녀 주인공의 거짓과 위선이 빚은 결과를 다룬 이야기다. 깜뿌사노라는 한 군인은 돈 욕심 때문에 도냐 에스떼파니아라는 여자를 속이려다 오히려 사기당하고 돈과 명예, 건강까지도 잃게 된다. 그는 오랜만에 친구 뻬랄따 석사를 만나 자신의 이런 사연을 들려주면서 병원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일을 목격했다고 말하며 흥미를 유발시킨다. 깜뿌사노는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두 마리의 개가 마치 인간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고 하면서 개들의 대화를 듣고 다음날 기억을 더듬어 글로 옮겨놓은 원고를 내민다.

개들이 본 세상
'사기결혼'에서 깜뿌노사에 의해 옮겨진 '개들이 본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면서 화자인 베르간사라는 개가 동료 시삐온에게 도살자, 양치기, 상인, 순경, 신소리꾼, 집시, 개종 회교도, 시인, 극단주, 자선병원 모금원 등 여러 주인들을 겪으면서 살아온 악자적(惡子的)삶을 나열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전개된다. 개들이 말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말하는 개를 등장시켜 여러 주인을 겪으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양치기가 양을 훔치고, 법을 집행해야 하는 관리가 오히려 법을 이용해 남을 등치고 현자(賢子)인 개가 악마로 몰리는 등 속임수와 환멸이라는 전체 테마를 보여주며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비판함으로써 인간이란 존재가 현자로 등장하는 개보다도 못하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세비야의 건달들
'세비야의 건달들'의 원제는 '린꼬네떼와 꼬르다디요'인데, 두 악동들이 세비야에서 벌이는 모험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목을 바꾼 것이다. 이 작품에서 대도시 세비야의 치안 부재의 상황, 특히 그 중에서도 경찰이나 치안 책임자의 허가장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모니뽀디오의 소굴과 그곳에 있는 조직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린꼰과 꼬르따도는 정직하지 못한 사회의 부패한 상황과 부당한 대우르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 세비야로 향한다. 그들은 좀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원했지만 더욱더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만 발견하게 되었다. 사전 허가 없이는 소매치기도 할 수 없는 엄격한 범죄 조직의 사회와 접하게 된 것이다. 도둑들의 사회 역시 자신들만의 엄격한 규율과 계급을 가지고 있으며, 절대적 권위를 가진 두목 모니뽀디오에게 복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괄량이 아가씨
이 작품의 원제는 '꼬르넬리아 아가씨'이나 작품의 주제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말괄량이 아가씨'로 고쳤다. 이 작품은 사랑과 명예의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유일한 소설이지만 주인공으로 스페인 명문 귀족 출신인 돈 후안과 돈 안또니오가 등장한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꼬르넬리아 아가씨의 벤띠볼리 집안과 페라라 공작 사이의 사랑과 오해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에 휩쓸리게 된다. 돈 후안은 꼬르넬리아 아가씨의 하녀로부터 금방 출산한 아기를 실수로 건네받으면서 사건에 연루되기 시작한다. 그 두 사람은 꼬르넬리아의 사연을 듣고 그녀를 돕기로 한다. 돈 후안과 돈 안또니오 덕분에 꼬르넬리아의 오빠 로렌소와 페라라의 공작이 화해를 하게 되고 공작은 꼬르넬리아와 극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남장을 한 두 명의 처녀
한 남자에게 동시에 버림을 받은 두 처녀가 자신들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남장을 한 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수동적이며 숙명적인 다른 작품의 여자 주인공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대로 운명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귀족 가문 출신의 두 처녀 떼오도시아와 레오까디아는 자신들에게 사랑의 약속을 하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안또니오를 찾기 위해 각각 남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떼오도시아는 오빠인 라파엘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불명예에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 후 오빠와 함께 안또니오를 찾기로 한다. 그들은 여정중에 레오까디아를 만나게 되고 그녀 역시 안또니오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여인은 동시에 안또니오를 만나는 운명적인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데 안또니오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떼오도시아임을 고백한다. 이에 레오까디아는 슬픔에 잠겨 어디론가 떠나려 하는데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라파엘의 진실된 사랑 고백을 듣고 그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집안끼리의 오해도 풀려 화해하게 된다.

관대한 연인
'관대한 연인'은 세르반테스의 전기적 배경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소설로 작가의 실제경험(포로생활)과 허구적 사실이 잘 배합되어 있으며 역시 남녀의 사랑이 주된 주제이다. 이 작품은 리까르도와 배교자인 그의 친구 마하믓 사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리까르도는 마하믓에게 자신이 포로로 잡혀 니꼬시아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레오니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리까르도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레오니사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대신 돈 많은 꼬르넬리오를 선택한다. 사랑과 질투심에 눈이 먼 리까르도는 어느 날 레오니사와 꼬르넬리오의 가족 모임에 난입해서 난동을 부리는데, 이 와중에 터키 해적들이 침입해 리까르도와 레오니사를 포로로 잡아가면서 이들의 기구하고도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터키인에게 포로로 잡혀 자유를 구속당한 리까르도의 상황이 선택의 자유가 없는 당시의 여자들이 처해 있던 상황과 대비되며 평행적으로 전개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리까르도는 모든 물질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레오니사의 행복과 안녕을 추구하여 그의 끊임없는 배려로 마침내 레오니사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먼저 <개들의 세상>(시공사, 2011)에는 <사기 결혼> <개들이 본 세상> <질투심 많은 늙은이> <피의 힘> <유리 학사>, 5편이 번역돼 있다. 그리고 단편선 <유리학사>(문학과지성사, 2003)에는 <유리학사> <늙은 남편의 의처증>(<질투심 많은 늙은이>) <린코네테와 코르타디요>(<세비야의 건달들>) <사기결혼>, 4편이 번역돼 있다. <개들의 세상>과는 3편이 겹친다. 결국 절반인 6편을 읽을 수 있다.

 

 

 

절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집시여인>(오늘의책, 1997)과 <말광량이 아가씨>(오늘의책, 1997), <남장을 한 두 명의 처녀>(오늘의책, 1998), 세 편은 따로 단편으로도 읽을 수 있다(알라딘에서 중고로는 구입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첨언하자면 역시나 절판된 <사랑의 모험>(바다출판사, 2000)은 원제가 <페르실레스와 세히스문다의 모험>(1617)으로 세르반테스의 유작이다. 세르반테스는 극작가로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30여 편의 작품을 쓴 걸로 돼 있고(전하는 건 몇 작품 되지 않는다고), 이중 <누만시아>와 <사기꾼 페드로>가 각각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누만시아/사기꾼 페드로>(책세상, 2004)는 그 두 작품의 번역이다...

 

12.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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