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제를 고민하다가 낮에 읽은 글은 <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실린 황승현의 '달동네 우파를 위한 '이중화법' 특강'이다.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작인데, '달동네 우파'란 말이 원래 쓰이던 말인지 필자의 신조어언지 모르겠다. 여하튼 '한예슬 사건'에 대한 유익한 해석을 담고 있다. 칼럼에서 소개하려고 했으나 이미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기에 대신 옮겨놓는다. '이중화법'이란 말은 요즘 유행에 맞게 '꼼수화법'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경향신문(11. 11. 16) “우파의 강남좌파 비판 이중화법 달동네 서민들 좌파화 저지 속셈”

“박봉에 시달리는 스태프도 가만히 있는데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이 촬영 거부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간 ‘창작과비평’ 150호 발간을 맞아 창비와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제정한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자 황승현씨(35·사진)는 최근 한예슬씨의 촬영 거부 사태에서 무수히 쏟아진 이런 식의 화법을 거부한다. 그는 수상작으로 선정된 ‘달동네우파를 위한 ‘이중화법’ 특강: 한예슬 우화를 솔개와 백조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스태프를 그렇게 걱정한다면 촬영 현장이나 제작 관행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만, 그들은 한예슬과 스태프를 대비시켜 둘 사이의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할 뿐 제작 관행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황씨는 방송사와 제작사 등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러한 논리가 “열악한 처우의 스태프도 침묵하니까 돈 많이 받는 한예슬 너도 침묵하라는 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두를 침묵시키기 위한 고도의 이중화법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중화법이란 이렇듯 사안의 본질을 감추고자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치환해 교묘히 둘러대는 수법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 통해 “자본과 그 응원단들은 자본의 편임을 들키지 않고 실질적으로 자본의 이해를 관철한다”는 것이다. 한예슬씨를 비판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 “직장인에게 박탈감을 줬다”는 논리를 드는 것도 이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무기로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황씨는 한예슬 사태라는 표층의 작은 사건을 도구로 한국 사회의 담론 생산 구조를 깊숙이 파헤친다. 비정규직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과정도 유사하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은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처우 향상만 꾀한다”는 식의 비판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조에 대한 비난을 극대화시키는 소품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상급식은 부자에게 급식을 하는 돈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반대는 “가난한 아이들이 부자들의 세금으로 공짜밥을 먹는다는 절절한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권리로서 복지를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이러한 이중화법의 최종 목표가 ‘반미주의자이면서 자기 자식은 미국에 유학 보낸다’고 비판하는 우파의 논리에 숨어있다고 본다. 이 논리는 곧 ‘강남좌파’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이 말은 ‘강남좌파’의 대척점에 있는 ‘달동네우파’를 노린 것이다. “좌파는 호화로운 삶을 살면서 겉으로만 서민을 걱정하는 위선자들이며 서민들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파라는 주장을 ‘강남좌파’라는 레토릭에 집약했다”는 것이다. “달동네 서민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대신 좌파를 증오하게 만들어 좌파화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살뜰한 배려”라는 것이다.

황씨는 “언행일치를 한다며 자식을 미국 근처에도 보내지 않는 반미주의자라면 그들은 뼛속 깊이 반미라며 이들을 공격할 것”이라며 “이들이 좌파를 비난하는 경우를 빼고 유학을 가지 못한 가난한 서민을 걱정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결론부에서 “이중화법은 파업을 직접 비난하지 않으면서 파업을 좌절시키는 수완이자 가난한 자를 걱정하면서 가난한 자의 복지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작은 이번주에 나올 ‘창착과비평’ 겨울호에 실릴 예정이다. 황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한동안 일간지 등에 영화평론 등을 써왔다.(황경상 기자) 

1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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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꼽은 올해 출판계의 키워드는 '위로와 공감'이라 한다. 상반기 최대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2010)가 대표하는 것이 바로 '위로와 공감'이며, '안철수 열풍'도 이러한 맥락에 놓인다고 분석한다. 개인적으론 상반기에 처음 개시돼 하반기를 강타한 '나꼼수 열풍'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약간 수정하자면 올해의 키워드는 '위로와 꼼수'가 아닐까. 베스트셀러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의 임팩트를 고려하더라도 그게 더 공정할 듯싶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미FTA 정국과 관련해서도 '정답'을 말해놓았다...

한겨레(11. 11. 21) 김어준 “우린 종자가 달라…MB정권이 접해보지 못한 잡놈이다”

“대중이 안철수에 열광하는 건 안철수가 자신의 가치를, 말이 아니라 그동안의 삶과 선택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주장이 아니라 물증을 목격한 것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열풍의 주역인 김어준(42) <딴지일보> 총수는 21일 <한겨레>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양자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돌풍의 배경을 이렇게 풀이했다. 



그는 지난 5월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씨와 나눈 대담을 묶어 출판한 <닥치고 정치>(10월5일 출간)에서도 안 원장에 대해 “만약 안철수 정도 되는 인물이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만 하면 기존 정치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나꼼수 열풍 이후 쇄도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한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안철수·나꼼수 열풍 배경과 보수언론의 역공,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보정치에 대한 생각을소상히 밝혔다.

보수언론이 나꼼수를 괴담의 진원지라고 지목하고 있고 경찰이 수사까지 나서고 있는 데 대해서는 “보수는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느라 발달한 원시감정인 혐오감을, 상대에 대한 윤리적 단죄의 근거로 삼아버린다”고 풀이하고 “한마디로 쫄았다고 할 수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그런 방식으론 우릴 잡을 수 없다. 우린 여태 그들이 상대해왔던 사람들과 종자가 다르다. 잡놈들이다. 우리가 스스로 어디까지 각오가 되어 있는지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 모든 시도가 우릴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나꼼수 출범 초기에 이미 “기존의 메시지 유통 구조를 깨는 새로운 진보의 유통프레임으로 나꼼수를 구상했다. 대박난다”고 성공을 점친 데 대해서도 “이럴 줄 알았다. 가카(이명박 대통령) 덕이다”라며 특유의 어법으로 받아넘겼다.

또 나꼼수가 대중들에게 “쫄지 말라”고 선동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나는 꼼수다’는 특정 주장이 아니라 어떤 주장도 가능하다는 태도 자체를 선동하는 게 근본 목적”이라고 되받았다. 이런 도저한 자신감은 나꼼수 팀 멤버를 “잡놈”이라고 표현한 본인의 기질에서 비롯되겠지만, 나꼼수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도와도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전문 리서치 기관인 마크로밀코리아가 11월 1~2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서울시민 29.7%가 나꼼수를 청취했다. 나꼼수 열기는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져 지난 19일 대전에서 열린 나꼼수팀의 무료 공개콘서트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만여명(나꼼수 쪽 집계, 경찰 추산은 5천명)이 운집했으며, 공연 뒤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입장료가 1억원 가량 모였다. 심지어 박근혜 한나라당 지지모임인 박근혜를 사모하는 모임(박사모)쪽은 나꼼수를 패러디한 ‘너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방송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정치 대담집 <닥치고 정치>는 지난달 5월 출간 이후 한달 보름만에 26만권 판매됐다고 <푸른숲> 출판사가 밝혔다. 현재도 하루 5천~7천권씩 나가며 애플 설립자 스티브잡스의 전기 <스티브잡스>와 판매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달 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 경선에 김어준이 등장하자 갑자기 “김어준”을 연호하던 객석의 반응은 이미 ‘김어준 현상’을 예고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대중들의 관심에 대해 “귀찮다”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와의 인터뷰는 폭주하는 나꼼수 콘서트와 각종 강연 때문에 서면으로 이뤄졌으며, 일부 전화로 보충했다.(김도형 선임기자) 



■ 나꼼수 열풍 

- ‘나꼼수’ 열풍 이후 김 총수에 대중들의 관심은 여느 아이돌 스타 못지 않게 뜨겁다. 한 스포츠신문이 ‘인정옥 작가와 열애’를 보도하기도 하고, 지난 10월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야권 서울시장 후보선출을 위한 국민참여 경선 행사장에서는 ‘김어준’을 연호하기도 했다. 본인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홍대선 딴지일보 부국장은 한 주간지 기고문에서 본인은 “귀찮아”라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는데...파트너인 인정옥 작가의 반응은, 혹시 주의사항은 없었는가?

“함께 귀찮아한다.”

- 나꼼수 열풍이 10·26 서울시장 보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느냐고 보느냐? 각종 조사를 보면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결국 두 가지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첫째, 내가 화났다는 사실과 나만 화가 난 게 아니란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의 광범위한 공유 정도를 각자 인지하도록 보조한 것. 둘째, 그래서 결국 서울시장 보선을 나의 선거로 만드는 과정을 보조한 것.”

- 나꼼수는 광고없이 제작되고 있다.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앞으로도 광고없는 나꼼수는 계속되는가? 그 이유는?…

“티셔츠 판매와 토크 콘서트 수익 그리고 서적 판매 수익의 일부. 상업광고는 받지 않는다. 광고의 영향을 받고 싶지도 않고 그 광고주를 걱정하고 싶지도 않다. 필요한 시점까지 스스로 버틸 것이며 역할이 끝나면 사라질 것이다.”

- 조동중 보수신문들이 최근 나꼼수를 괴담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포문을 열어 공격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첫째, 법적 태클의 사전 분위기 조성용. 둘째, 보수층의 청취자군 유입 차단. 키워드를 괴담으로 택한 건 정신과적 차원에서도 매우 전형적인 보수의 반응이다. 보수는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느라 발달한 원시 감정인 혐오감을, 상대에 대한 윤리적 단죄의 근거로 삼아 버린다. 공포의 대상을 무섭다고 하지 않고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쫄았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가카의 팔들은 멤버 4인을 도덕적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낄 거라 예상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우릴 잡을 수 없다. 우린 여태 그들이 상대해 왔던 사람들과 종자가 다르다. 잡놈들이다. 우리가 스스로 어디까지 각오가 되어 있는지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 모든 시도는 우릴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 나꼼수를 듣다보면 기존 저널리즘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기능을 한다는 측면에서 대중들의 공감대를 자아내는 측면도 있지만, 풍자와 유머, 조롱이 지나쳐서 도를 넘어선다는 비판도 있다. 나꼼수를 새로운 유형의 ‘정치 예능프로그램’쯤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비판을 가볍게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매회 600만 다운로드가 넘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고 일종의 저널리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면 이에 따른 책임도 큰 것이 아닌가?

“이런 방송을 이런 환경에서 이런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만으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제 몫의 책임은 하고 있다. 그로 인한 리스크 역시 누가 대신 져주지 않는다. 각자 자기 몫이나 잘 하자.”

- 개인적으론 특히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과 관련해서 진보언론의 보도태도를 “비겁하다”고 비판하면서 이것은 권력의 꼼수이니까 “쫄지마라”고 대중들에게 선동했다는 느낌도 든다

“모든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선동이다. 일기조차 자기 선동이다. 하지만 그 선동의 성공 여부는 데시벨이 아니라 맥락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선동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맥락이 왜 수용 됐는가를 따지는 것이 옳다. 그리고 선동에 관해서라면, ‘나는 꼼수다’는 특정 주장이 아니라 어떤 주장도 가능하다는 태도 자체를 선동하는 게 근본 목적이다.”

- 인터뷰 대담집 <닥치고 정치>를 보면 지승호씨와 인터뷰 시점(5월)에서 “대박난다”고 큰소리를 쳤다. 기존의 메시지 유통 구조를 깨는, 새로운 진보의 유통 프레임으로서 ‘나꼼수’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런 구상과 예측은 보기 좋게 들어맞은 것 같다. 아닌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프레임이 구축된 것인가?

“이리 될 줄 알았다. 가카 덕이다. 생각보다는 빨랐다. 절반 정도 왔다.”

- 나는 꼼수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가카의 세계관을 표현할 단어로 그 이상 적확한 단어가 없어서.”

- 나꼼수의 작명은 <나는 가수다>의 패러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김 총수가 대중들과 밀접하게 친해진 데는 ‘나가수’와 관련한 발언을 라디오 방송 중에 하고 이를 각종 인터넷 매체들이 받아서 쓰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대중들과의 만남의 접점을 미리 의식한 것인가?

“그러고자 했다.”  



■ 안철수와 문재인

- <닥치고 정치>를 보면 안철수 현상도 이미 예측했더라. “만약 안철수 정도 되는 인물이 정치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만 하면 기존 정치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날 거야”라고. 김 총수의 예측은 정확하게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5월에 이미 이런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이었나?

“난 무당도, 예언가도 아니다. 그러니까 예측을 한 게 아니라 그저 당대의 결핍을 읽었을 뿐이다. 그 결핍의 크기가 그로 인한 현상의 크기를 결정한 것이다.”

- <닥치고 정치>에서는 당신이 왜 문재인인가를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현재 안철수를 이야기한다. 대중들이 왜 안철수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가? 문재인이 야권대선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가?

“대중이 안철수에 열광하는 건 안철수가 자신의 가치를, 말이 아니라 그동안의 삶과 선택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주장이 아니라 물증을 목격한 것이다. 개인적으론 문재인이 적합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문재인과 안철수에 관해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문재인과 안철수는 개인적인 득실 따위와 무관하게,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것이 가능한, 매우 예외적인 사람들이라는 점밖에 없다.”

- 안철수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면 박근혜 대항마로는 최적의 상대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거품이 일시에 꺼질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찮다.

“거품이라 보는 이들은 둘 중 하나다. 거품이길 바라거나, 거품일까 두렵거나. 그런 견해가 만만찮은지 아닌지 관심 없다.”

■ 진보정치 관련

- <닥치고 정치>를 보면 진보정치의 한계는 대중적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지적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반엠비(MB) 전선 구축이라는 당위에 매몰되어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사퇴 안한 데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등 진보신당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그런 관점에서 당신은 진보주의자인지 묻고 싶다

“노회찬 후보는 완주할 당연한 권리가 있었다. 그 권리 자체를 탓한 게 아니다. 그 완주로 인한 정치적 득실의 셈법이, 충분히 정치적이지 못했다는 걸 지적한 거다. 진보정당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게 아니라 냉정한 거다. 가장 잔인하게 평가했던 정당은 오히려 국민참여당이다. 그리고 진보정당에 대한 평가와 나의 정치적 정체성 간엔 아무 상관관계도 없다.”

- 황우석 사태나 축구에 대한 태도 등을 보면 당신은 과도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특히 ‘황빠’라는 시각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우린 단일 민족이 아니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고, 오랜 전부터 주장해왔다. 황우석의 국익도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날 민족주의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하는 비장한 입장을 접할 때마다 솔직히 귀엽다. 황우석에 대한 입장은 <닥치고 정치>에서 밝힌 바, 그대로다.”

(그는 <닥치고 정치>에서 “황 박사 사건은 인간이 저지른 과오를 악마적 의도라고 단정하는 진영논리로, 저지른 잘못에 합당한 징벌을 상회하는 결과적 폭력이었다고 여긴다”라고 황 박사 비판이 가혹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래서 그저 생래적 보수성을 타고 났을 뿐인 불완전한 인간 하나를 사회적 걸레로 용도 폐기하는 진보의 잔인한 비인간성을 목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또 하나의 책이 만들어져야 하니까, 그건 그냥 내가 욕을 먹고 갈게(웃음) 다만, 국익 드립(웃음), 난 황우석이 말한 국익에 전혀 관심없어. 이해시키기 힘들다. 참. 끝.(웃음))


- 노빠로 불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미 FTA를 개시한 것도 노무현 전 대통이었고, 그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과 집값 폭동으로 양극화의 고통이 가중됐는데

“난 자연인 노무현의 팬이다. 그만한 남자, 못 봤다. 여전히 슬프고 그립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양상의 양극화를 야기할 것이며 어떤 속도로 진행될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실은 대다수가 그랬다. 그 심각성을 인지한 집권 중반 이후엔, 정책수단도 국정장악력도 이미 제한적이었다.”

“노무현의 FTA는 신자유주의를 불가항력의 세계적 트랜드로 인정하고 그에 적극 대처하고자 했던 의지의 산물이다. 선의만으로 양해될 수 없는, 결과로 책임지는 정치의 영역에선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적 통상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에선, 이명박의 FTA와 그 세부 조항의 본질은 같다.”

“다른 점은 두 가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통해 이미 명백하게 확인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그로 인한 세계사적 성찰.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항의 FTA를 추진하고자 하는 의도 그 자체. 다른 환경은, 너무나도 당연히, 다른 정책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싸워 지켜야 할 가치라고까지 말한다. 이익이 곧 가치인 그들에겐 당연하다. 문제는 그 이익의 대상이 1%라는 점. 그들의 의도는 그렇게 사사롭기만 하다.”  



■ 김어준의 정체성

- <한겨레> ESC 칼럼이나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인터뷰 특강을 묶은 <내가 걸은 만큼 내 인생이다>를 보면 김 총수는 누구보다 연애심리를 잘 아는 ‘연애박사’ 같은 느낌이다. 한편으론 ‘마초 대왕’이라는 별명도 가능할 것 같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가.

“그런 평가에 대해 신나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나 자신에 대해 시큰둥하다. 난 내가 중요하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할 뿐이다.”

- 김 총수는 다른 사람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와 화법으로 대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타고 난 것인가, 후천적 노력의 산물인가?

“운이다.”

- 자신을 본인 스스로 한마디로 규정하면 어떤 말이 적당할까? 홍대선씨는 ‘돌도끼를 든 데카르트’라고 표현했는데….

“그냥 타고난 결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불완전한 한 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현재의 김 총수를 있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나 책, 사건 등이 있다면?

“그런 건 없다. 그저 살아오며 해왔던 선택들이 하나하나 누적되어 지금의 내가 됐다.”

- 한국의 청춘들은 힘든 삶은 살고 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청춘만 힘들지 않다.”

- 김 총수는 그동안 촌철살인의 논평을 통해 청춘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특히 10·26 재보선 과정에서 나꼼수를 통해 보여준 역할은 지대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전까지 좀 떨어져서 정치논평가 평론가 역할을 했다면, 이번엔 정치판의 플레이어에 가깝지 않았나 하는 평가도 있다. 언론인으로서 김 총수의 얼굴이 정치인으로 바뀌고 있는 장면은 아닐까 관측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기회가 있다면 정치를 직접 해볼 생각은 없는가.

“전혀 없다.”  

1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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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11-22 09:08   좋아요 0 | URL
"청춘만 힘들지 않다.”(sic!)

로쟈 2011-11-24 09:14   좋아요 0 | URL
쫄지않는 게 시크한 시대에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앞세운 시위로 미국이 들썩이고 있다 한다. “아랍의 봄에 응답해 미국의 가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금융)자본주의의 탐욕과 횡포에 대한 분노가 이젠 '세계화' 되고 있는 형국이다. 일간지마다 '위기의 월가'를 앞다투어 기획기사로 다루고 있는데, 우리라고 변화의 파고에서 예외가 아니다.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화답하듯 경향신문에서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특집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뭉뚱그리자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비등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한다. 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이달의 서울시장 보선은 변화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경향신문(11. 10. 04) 장하준 “불안한 경쟁 사회,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48·경제학)는 자신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문에서 “200년 전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100년 전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다”며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를 찾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최근 한국 경제에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0일 장 교수와 인터뷰하며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 경제에 새로운 사회계약’은 어떤 것이며 왜 그것이 필요하다고 보나.

“어느 사회나 암묵적인 사회계약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암묵적 사회계약이) 생겼고 이후로 한 번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선택해야 할 시기를 맞았다. 미국이나 브라질처럼 어려운 사람한테만 선별적으로 복지를 하고 시장 논리에 철저히 따르는 ‘원조 자본주의’식으로 갈지, 세금을 많이 걷어서 불평등을 줄이는 유럽식으로 갈지 둘 중 하나다. 국민들은 이제 ‘바람직한 사회’가 뭔가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하는 단계가 됐다. 낙오자들은 죽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갈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 과거 2개의 암묵적 사회계약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었으며 어떤 변천과정을 겪었나.

“첫번째는 한국전쟁 이후 정부가 보호무역, 보조금 등을 통해 ‘개발’이라는 대전제 아래 우리 기업을 외국 자본으로부터 보호해준 시스템이었다. 토지개혁을 통해 소농을 보호하고 큰 점포의 입점 규제 등을 통해 소매상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종신고용이란 보호장치를 만들어서 주류 경제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생존할 수 있게 해줬다. 그땐 복지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평등을 유지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재벌들이 시장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더니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첫번째 체제가 완전히 깨졌다. 사회 전체가 시장주의로 전향해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종신고용이 깨졌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리해고가 늘면서 고용안정성이 줄어들었다.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농민보호장치가 무너지고 소상인들은 대기업들이 소매업에 진출하면서 심한 압박을 느꼈다.”

- 현재의 경제·사회적 모순과 불평등,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경쟁이 중요하다 하면서 10~15년 해보니까 어땠는가. 모든 사람이 불안하고 모든 국민이 불행하다. 이래서는 사회가 지탱이 될 수 없다. 한 번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주고 실업 기간 동안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고, 가족들이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틀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의 직업 선택이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에 청년들이 다른 직종보다 의사나 공무원 취업에 몰렸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먹고살아야 하는데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공대, 자연대에 안 간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멕시코를 제외하고 사회복지 지출이 가장 적은 나라에 들어간다. 이를 고쳐야 한다.”

- 한국 기업생태계는 대기업 위주로 왜곡돼 있다. 사회계약을 다시 쓴다면 경제구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기업들이 엔진 역할을 하는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대기업도 정부의 보호와 도움으로 큰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는 법인세나 소득세 등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 부분이 고도의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 분야다. 중소기업 문제는 단순히 효율성만 고려할 순 없다. 미국에서 쇼핑센터들이 자꾸 외곽으로 나가 도심 공동화(空洞化)가 됐는데 일반적인 시장주의 논리에서 보면 도시가 죽는다는 부분은 계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론 굉장히 큰 비용이다. 도태된 중소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이를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단기적인 이윤 계산으로만 돌아간다.”

- 저출산은 한국 사회의 기반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다. 사회계약과의 상관성도 높다고 보는데.

“한국은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다. 육아·교육 여건이 어려워서 그렇다. 이렇게 30~40년 지나면 (외국인들이 많아져서) 한국은 유전자적으로 한국인이 (주류가) 아닌 사회가 된다. 사회가 다문화로 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이민 와서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다문화, 다인종에 대해 ‘질색팔색’하는 분들이 복지국가엔 반대하고 있다. 모순적이다. 이민을 받아들이든지, 복지국가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애를 낳아 양육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우리 여성들이 일종의 출산 파업을 하겠는가. 복지국가는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회계약을 다시 쓰지 않으면 사회갈등도 커지고 경제 활력도 떨어진다. ‘우리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심혜리 기자)   

한국경제(11. 10. 05) 젊은층 분노의 깃발 들다

실업난과 생활고에 분노한 미국 젊은이들의 월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3주째로 접어든 시위는 지난 1969년 뉴욕의 전원도시 베델 평원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 사랑과 평화를 갈구했던 록페스티벌 우드스탁에 비유돼 ‘월스트리트의 우드스탁’으로 불릴 정도로 큰 상징성을 갖게 됐다.

이번 시위는 금융위기를 초래해 수많은 사람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으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고 여전히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월스트리트와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시스템에 대한 좌절을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의 바탕에는 글로벌 금융자본의 횡포 및 세계화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이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과거에도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감은 존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깊은 불황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재정적자와 증세를 둘러싼 미 정치권의 대립도 이러한 갈등을 고조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를 초단위로 넘나드는 금융자본의 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세계경제를 한꺼번에 위기에 빠뜨리고 대중을 피폐하게 만드는 불안정한 삶에 대한 염증이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 금융사들은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식으로 여전히 위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부담은 정리해고나 임금 삭감 등을 통해 힘없는 일반 국민들만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이번 시위의 목표는 월가를 피고인석에 앉히는 것이었다. 월가는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자기 집에서 내쫓긴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다. 미국의 실업률은 9%를 웃돌고 있으며 구직단념자까지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16.2%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어 수많은 젊은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좌절을 맛보고 있다.

중소기업ㆍ자영업자들의 좌절도 시간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영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또 금리는 낮지만 은행 대출의 문턱은 크게 높아져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경제신뢰도는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월가는 ‘대마불사’라는 모럴해저드 속에 정부로부터 7,0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고 있다. 고위임원들은 무능한 경영에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스톡옵션과 현금 등으로 막대한 현금을 챙기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또 위기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개혁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3일 벌어진 시위에서 월가 금융기업을 상징하는 ‘좀비부대’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라’는 플래카드들을 들었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탐욕스런 월가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조지 소로스 등 월가 개혁을 요구해온 인사들도 시위대의 명분에 공감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위가 월가,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개혁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직이 부재하고 구체적인 목표도 없는 만큼 ‘아랍의 봄’처럼 미국의 거대한 시스템을 뒤바꿀 만한 변혁을 가져오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것이라는 관측 또한 여전하다.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유명 인사들의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오스카상 수상자인 수전 서랜던은 시위에 참여해 “미국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 간격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유명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이클 무어도 이들에 동조하고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소로스는 3일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업들의 탐욕에 대해 반대하는 월스트리트 시위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시위대에 대한 지지와 참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수백명의 시위자가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피자ㆍ사과ㆍ샌드위치 등 시민들의 기부가 넘쳐난다.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대 교수는 독립방송 데모크라시나우와의 인터뷰에서 “아랍의 봄에 응답해 미국의 가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이번 시위가 결과를 맺으려면 미국인들에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고 정치적인 역량이 있는 가시적이면서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월가 점령하라" 분노한 젊은이들에 발칵

'미국의 메인스트리트(서민들의 거리)가 마침내 월가에 대반격을 가했다.' 3주째 이어져온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미국 청년들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노동계 등 시민들의 지지 확대로 세를 불리고 있다. 시위는 미 전역 10여개 도시로 번져나가고 있으며 호주ㆍ캐나다ㆍ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는 항의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월가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자본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입힌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창했던 것처럼 이제 시장경제와 세계화 추세에도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이클 카진 조지타운대 교수는 "어떤 사회적 운동이든 불만 표출이 첫 단계"라며 "이번 시위가 지속적인 사회운동으로 승화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3일 미 언론 등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등에 반대하는 중장년층까지 가세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CNN에 따르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본떠 '시카고를 점령하라' ' 로스앤젤레스를 점령하라'는 등의 모토를 내세운 웹사이트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동조시위도 보스턴ㆍ볼티모어ㆍ프로비던스ㆍ로스앤젤레스ㆍ샌프란시코ㆍ미네소타ㆍ하와이 등 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24일 수백명의 시위대를 뉴욕경찰이 페퍼스프레이ㆍ그물ㆍ수갑 등을 동원해 강제 연행하고 지난주 말 브루클린브리지에서 800여명이 연행된 후 동정여론이 일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뉴욕의 20만명에 달하는 의료산업 종사자들을 대표하는 의료노동자연맹 1199SEIU는 시위대에 비상구급 키트를 제공하고 추가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욕시민들의 발인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TWA)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중교통노동자연맹도 5일 뉴욕시청에서 시위대가 모여 있는 월스트리트 인근 주코티 공원까지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TWA노동연맹은 연맹 소속 운전사들이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을 수송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맨해튼 연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같은 노동계의 가세는 시위대에 조직화와 체계적인 리더십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위는 미국 밖으로도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캐나다 통신은 '토론토 주식시장을 점령하라'는 단체가 오는 15일 토론토 증권가인 베이가(Bay Street)에서 가두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도쿄를 점령하라'는 페이스북이 열렸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ㆍ유럽 등에서도 유사한 사이트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뉴욕=이학인특파원)

11. 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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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방사수는 못하더라도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나는 가수다'와 '나는 꼼수다'이다. 딴지라디오의 '나는 꼼수다'는 물론 '나가수'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테니 일종의 파생물이다. 더불어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역시나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 이쪽으로도 파생물이다. 그래서 결국 2011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됐지만, 어쩌면 역사는 2011년을 '나는 꼼수다'와 함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거기에 비하면 조중동이 그렇게 공을 들이는 '종편'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망할 것이다!). 물론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서이지만(그렇게 된다면 2할은 나꼼수 덕일지도 모른다. 8할은 물론 '가카' 덕분이고). '나는 가수다' 본방 시간이 다가오는 김에, '나는 꼼수다'에 헌정하는 페이퍼도 올려놓는다. 이미 충분히 화제가 되고 있기에 뒷북성이긴 하지만, 주로 특기가 뒷북인 분들은 참고하시길. '나꼼수' 4인방 중에서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김용민 PD의 인터뷰기사다.  

   

PD저널(11. 09. 08) “언론장악 비극의 틈새에서 ‘나는 꼼수다’ 탄생”

김용민 시사평론가(사진)는 친동생인 김용범 Mnet <슈퍼스타K> PD만큼 바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 된 인터넷 라디오방송 <나는 꼼수다>의 연출을 맡고 있어서다. <나는 꼼수다>는 김용민 평론가가 10년 전 <극동방송> PD 생활 당시 조용기 목사에게 쓴 소리를 하다 사표를 낸 뒤부터 줄곧 꿈꿔왔던 대안미디어다. 김용민 평론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주요 사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각하의 언론장악 꼼수”덕에 <나는 꼼수다>가 성공했다고 말했다. 김용민 평론가를 지난 1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PD 김용민은 목요일이 특히 분주하다. 오전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시 성산동 마포FM에서 <나는 꼼수다> 1회분을 녹음해서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의원, 주진우 <시사IN>기자가 워낙 입담이 좋아 듣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녹화가 끝나면 마포 생선구이 집에서 30분 간 급하게 식사를 한다. 식사비는 이 중 수입이 제일 좋은 김용민씨가 낸다. 저서 <조국 현상을 말한다>는 <나는 꼼수다>의 인기 덕에 2쇄까지 다 팔렸다. 하니TV 녹화일정을 마치고부터 평균 다섯 시간 가량의 편집 작업을 시작한다.

이날은 “꼼수다 언제 올라오냐”는 ‘압박’에 못 이겨 전화기를 꺼버리는 때도 있다. 목소리의 강약을 수동으로 조절하고 ‘망한’ 멘트는 삭제하고 대화 이슈와 관련된 보도내용을 찾아 인용(인서트)하며 자체제작 음악으로 편집을 마친다. 내용상 편집은 거의 없다. PD 김용민은 “너무나 편집을 정교하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집한 걸 모를 정도”라며 좋아했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허투루 만들 수 없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그래서 문성근씨 출연 편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내보내지 않고 한 회를 새로 찍었다. 하양세라는 얘기가 두려워서다. 

<나는 꼼수다>는 사용자 1000만 명을 넘어선 스마트폰의 등장과 팟캐스트 서비스로 인터넷 라디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며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명박허전>, <나는 각하다> 등의 제목이 거론됐지만 김어준이 낸 <나는 꼼수다>가 최종 선정됐다. 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정봉주 전 의원이 패널로 가세하고 ‘나는 꼼수다 맞춤형 기자’ 주진우 기자가 김어준의 추천으로 영입됐다. 김어준은 ‘깔대기’(정봉주)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정봉주) ‘누나전문기자’(주진우) 등 캐릭터를 ‘하사’하며 스토리를 강화했다. 영어강사 출신 정 전 의원의 말하기 스킬과 주 기자의 ‘디테일’이 더해지자 ‘대박’이 났다. 여기에는 김용민 평론가의 연출능력도 한 몫 했다. 

<나는 꼼수다>는 지난 7일 방송까지 18회를 이어오며 기존 시사프로그램 포맷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권위주의의 상징인 ‘각하’와 조롱이 담긴 ‘꼼수’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 정치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장치로, “적극적으로 당파성을 띠며 정치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를 소망해 온 제작진의 결과물이다.

“정치가 거대담론 같지만 결국은 인간의 욕망체계에서 벌어진다. 각하가 여자·돈·개고기를 좋아하고 권력자가 미사여구를 내뱉는 것도 결국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시사를 알게 되고 각하와 민주주의를 알게 된다.” 그는 “상당 내용은 주진우가 이미 쓴 기사”라며 “구술을 통해 텍스트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녹음스튜디오가 없는 마포FM의 구조상 녹화는 두 시간 이상 할 수 없다. 다른 스튜디오로 이동하며 녹음을 해봤지만 맥이 끊겨서 관뒀다. 김용민 평론가는 “공짜로 스튜디오를 빌려주겠다는 분이 계시지만 김어준 총수는 비좁은 마포에서 우리 넷이 지껄이는 게 좋다고 한다”며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처럼 우리의 흐름을 계속 유지하는 게 개편이고 개혁”이라고 말했다. 김용민 평론가는 <나는 꼼수다>가 “총선·대선 국면에서 편파적일 것”이라 예고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이 정당을 공개지지 하는 것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권자들이 똑똑하면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해도 객관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시민들은 모든 미디어가 지난 총선에서 천안함 국면으로 몰았어도 야당에게 다수표를 몰아줬다. 관제언론시대에도 4·19 혁명과 87년 6월 항쟁을 만들었다. 국민은 이미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똑똑한 국민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나는 꼼수다>의 인기를 설명할 수도 없다.”

그는 <나는 꼼수다>의 성공을 “‘언론장악’이란 비극의 틈새를 노린 마케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KBS나 MBC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 권력이 오너로서 공영방송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언론자유 인식이 있는 정부의 등장만을 바라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입 바른’ 말을 하며 인기가 높아진 결과 ‘압박’도 있다. 휴대폰이 도청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딴지일보>는 뜬금없이 해킹사건을 겪었고, 정봉주 전 의원은 갑자기 대법원 판결일이 앞당겨지기도 했다. 또 다른 ‘압박’도 있다. ‘권력화’에 대한 우려다. 김용민 평론가는 “우리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다. 웃고 자빠지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총수는 대중의 반응에 민감해하지 않는다. 내게도 늦게 올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며 “대중에 얽매이지 않고 초심으로 방송을 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나는 꼼수다>는 여러 압박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꼼수’ 본연의 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 추석선물로 <나는 꼼수다> 인기 에피소드 10편을 추려 올릴 예정이고, 10월에는 탁현민 교수와 함께 <토크콘서트>를 기획 중이다. 김용민 평론가는 “청와대 앞마당이나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당에서 하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다”며 웃었다.

<나는 꼼수다>는 차기 정권이 들어설 2013년 2월을 방송 종료일로 잡고 있다. 하지만 급작스레 출연진이 구속되면 이 과정을 생중계하며 마무리할 생각이다. 이와 함께 10·26 서울시장 선거도 생중계를 계획 중이다. 김용민 평론가는 <나는 꼼수다>의 성공에 힘입어 선대인 연구원·우석훈 박사와 함께하는 <나는 꼼수-경제 편>도 기획 중이다. 그는 올 해 박사논문도 쓸 계획이다. 주제는 ‘한국보수정치세력의 개신교적 기원’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언젠가 꼭 ‘천안함 사건’을 다루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각하의 꼼수 중에서도 정수”라고 말했다. ‘전지적 각하시점’으로 매 회 통렬한 분석과 사회비판을 이어가는 국내 최초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이 언론장악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순간을 기대해본다.(정철운 기자) 

11. 09. 25.  

P.S '나꼼수' 열풍은 출판으로도 이어져 알라딘에서도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가 출간전부터 이미 블로거 베스트에 올라와 있다. 김용민 PD의 <조국 현상을 말한다>(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1)도 나꼼수 광고에 따르면 3쇄에 들어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꼼수'는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주진우 기자가 대표필자?). 개인적으론 방송대TV의 '책을 삼킨 TV' 녹화 때문에 김어준 총수와는 격주로 얼굴을 보는 사이여서 <닥치고 정치>의 표지가 너무 '친숙하다'. 책을 많이 안 읽는 듯한 포즈를 취하지만 '사바나의 본능'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진화심리학의 애독자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그에게 더 배운 건 없지만, 그가 명명한 '전지적 각하시점' 만큼은 그의 혜안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것만은 한 수 배웠다. 나꼼수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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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09-25 20:01   좋아요 0 | URL
제가 아이폰을 구입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나꼼수를 팟캐스트에서 다운받을때입니다. 미디어의 진보는 학자들의 통박을 벗어나죠. 작년 2학기 강단에서 일종의 해적방송류는 시한을 다했다고 떠들었었는데...요즘 바보소리을 듣습니다. 이명박이 가카로 불리워지는 순간 저는 그 순간의 어떤 지점에서 짜릿합니다.

로쟈 2011-09-25 20:1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인터넷 링크를 통해서 듣는데, 10회쯤 넘어가면서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책으론 할 수 없는 일이죠...

달사르 2011-09-25 23:16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처음으로 나꼼수 들었는데요. 어찌나 유쾌하게 웃었는지요. 연출을 맡은 김용민 씨에게 '늦게 올려도 미안해하지마라'라고 말을 한 김 총재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같이 신나게 웃어제끼는 거죠.

로쟈 2011-09-27 08:24   좋아요 0 | URL
나꼼수가 딴지일보를 삼킬지도 모르겠어요.^^

2011-09-26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런마음황구 2011-09-26 08:19   좋아요 0 | URL
장미의 이름이 많이 생각나더군요.두려움을 넘어서는 웃음의 힘.

로쟈 2011-09-27 08:25   좋아요 0 | URL
'변화'는 그런 데 있는 듯해요...

영남자파 2011-09-26 21:42   좋아요 0 | URL
비비케이때 의원들 디디밟고 달리며 정봉주가 2단 옆차기하는 거 보고 감명 받아서 심마넌 후원했던 기억이...^^
김어준은 씨바, 졸라등의 엄마한테 맴매맞을 뒷골목 언어로 성공한 2인 중 하나죠. 김구라와 더불어.

로쟈 2011-09-27 08:26   좋아요 0 | URL
욕에 대한 자부심은 확실히 갖고 있더라구요.^^
 

오늘은 날이 새면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되는 날이다. 나로선 서울시민이 아니기에 '딴 동네' 얘기이긴 하지만, 모두의 예상대로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에서 물러나는 뜻깊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굳이 투표장에 가지 않고 무관심하게 대응하는 것만으로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다니 주문해서도 얻기 어려운 기회가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줄 때다. 한편, 얼마전에 현대사 전공자들의 보수학술단체에서 교과서에 나오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왜 그게 '꼼수'에 불과한지 정리해주는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말은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이지만 실상은 (김어준식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민주주의냐 꼼수 민주주의냐'이다. 국민들도 그동안 충분히 속을 만큼 속았다. 이젠 갚아줄 때도 됐다...  

한겨레(11. 08. 24)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변질된 개념유신헌법의 독재정권 정당화서 비롯”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조선일보>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방한했던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크게 보도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더욱 질 높은, 심화된 민주주의”라는 그의 말을 끌어들여, 민주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물음이 빠져 있다. 한국의 일부 세력이 주장해온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한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것이냐는 물음이다. 



박명림(사진) 연세대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가을호에 실을 ‘박정희 시기의 헌법 정신과 내용의 해석’이란 논문에서 박정희 시대의 헌법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적인 성격을 파헤쳤다.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과거에나 지금에나 민주주의 정신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한국 자유민주주의는 박정희 시대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72년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 때,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헌법 전문에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인 1948년 건국헌법 때부터 1969년 3선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 전문의 같은 부분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규정과는 거리가 먼 ‘민주주의 제(諸)제도’란 말이 쓰였다.

박 교수는 특히 유신헌법 때 들어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에 대해 “우리가 흔히 한국의 국가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추구해오던, 냉전시대 반공주의로 이해했던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현행 헌법에 대한 법제처의 공식 영어번역이라고 한다. 법제처 공식 누리집을 보면, 전문과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the liberal-democratic basic order’가 아니라 ‘the free and democratic basic order’로 옮기고 있다.

이는 유신헌법이 참조했던 1949년 독일기본법의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라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옮긴 것이다. 이 조항은 파시즘과 전체주의, 공산주의 등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적극 방어하고자 만들어진 조항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신헌법은 이 조항을 따오면서 본래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협소한 냉전시대 반공주의의 논리로만 적용했고,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본뜻과 정반대로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데 썼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위해서라며 유신헌법을 내세웠으나, 여기에서마저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유신쿠데타를 앞둔 박정희 정권이 ‘헌정변개’를 사전에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인 북한에 통고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이 단적인 사례라고 한다. 유신헌법과 함께 만들어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도 뭣도 아닌, 오로지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박 교수는 “과거에 권위주의를 뒷받침했던 자유민주주의가 오늘날에는 복지·형평·포용·균등 등을 반대하고 시장만능주의를 추종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또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한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흐름을 보면,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달, 조지프 슘페터와 같은 주요 자유민주주의 이론가들의 행보에서도 이런 경향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래리 다이아몬드도 지난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 민주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유신헌법이 건국헌법과 건국정체성을 부인하고 만들어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조항은 우리가 아직도 유신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헌법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규정을 애초 건국헌법의 정신에 맞게 ‘민주주의 제(諸)제도’나 ‘민주적’으로 복원·통일하거나, 독일기본법에 담겨 있는 본뜻대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건국헌법처럼 사회민주주의를 헌법정신으로 규정하고 지향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최원형 기자) 

11.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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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08-24 08:56   좋아요 0 | URL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역사' 분과는 난리가 나네요. 문장 꼬투리 잡아 좌편향 교과서라고 낙인 찍어버리더니 이젠 아예 집필기준을 고치려드니...

로쟈 2011-08-24 12:31   좋아요 0 | URL
일부라 하더라도 자칭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설쳐대더군요...

Daniel 2011-08-24 16:24   좋아요 0 | URL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로버트 달 교수님의 (다른 출판사에서 기존에 번역되었던) 경제민주주의 서설을 재번역해 9월중순이면 볼 수 있답니다.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도 읽다보면 시장경제의 위세를 정치적 불평등의 한 이유로 꼽으시더군요. 과연 미국은 저자의 기대(?)대로 정치적 평등으로 갈 수 있을까요? 티파티의 부상이라든지 이번 부채관련협상을 보면 그런 기대와는 더 멀어지는 것 아닐꺼 싶습니다.

로쟈 2011-08-25 11: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가지 못하는 것도, 혹은 그러다 붕괴되는 것도 반면교사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고요...

msjpolitics 2011-08-25 18:04   좋아요 0 | URL
"래리 다이아몬드"가 "학문"에 있어서는 일가를 이룬 학자라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물론....그 신문사가 그런 것들까지 고려했을지는 만무하지만요...로버트 달이나 립셋이 상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래리 다이아몬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간에는 다르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듭니다...
p.s.달의 "on democracy"도 번역되어있군요:) 나와 있다보니, 돌아가는 상황들에 둔감해지는 것들이 이런데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11-08-25 22:59   좋아요 0 | URL
달의 책은 민주주의 이론가들 가운데서 가장 많이 소개된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