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겨레21에서 핀란드의 교육현장 취재기사를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428.html). 언제부턴가 교육 선진국의 모델로 부쩍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핀란드인데, 아래 기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또 배워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 어린이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뒤 식판을 정리하고 있다.

한겨레21(09. 02. 27)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라

“우리나라에 영재교육은 없다. 아주 똑똑한 천재를 키우는 것보다 뒤처진 아이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고 원칙이다.”(마리아 타우라 핀란드 미래위원회 위원장)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 의미의 평등과 형평성이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평등이란 어떤 지역에 살더라도 동등한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요우니 발리예르비 핀란드 이베스퀼라대학 교수)  

집 같은 분위기, 이주 학생엔 모국어 교육

실제로 그랬다. 우리가 방문한 핀란드종합학교(초·중등학교)에서 이런 핀란드의 교육적 특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헬싱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는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친환경 학교다. 학생 친화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 디자인 공모전까지 거쳤다는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북유럽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디자인의 핵심 목표는 가정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사투 혼칼라 교장은 설명한다. ‘돌봄과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라는 이 학교의 교육관을 디자인에 반영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에 따른 건물이라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부터 9학년까지 모두 420명의 학생들이 있는 이 학교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학습장애를 가진 어린이들과 외국인 어린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이 학교에선 장애아나 외국인 또는 뒤떨어진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핀란드에선 1970년대 이래 장애아와 비장애아 등 모든 차이를 가진 아이들을 통합해 교육하는 게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이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인격적 자존감과 학습을 위한 흥미와 동기, 앞서는 학생과 뒤지는 학생 간의 인격적 교류가 교수나 학습의 효율성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확고한 교육학적 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승문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은 지적한다. 그러나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완전한 통합으로 가기까지 아이들의 상황을 섬세하게 살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참관했던 7∼9살 집중장애아들을 위한 수업에는 장애아 10명을 위해 정규교사 1명과 보조교사 2명이 배치돼 있었다. 이 반 아이들은 30분간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블록 쌓기 등 집중훈련에 좋은 놀이를 한다.  

장애아를 위한 교실에는 아이들이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도를 낮추기 위해 전등에 가림막을 씌워놓았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향상되면 정규반에 보내기 시작해 점차 수업 시간을 늘려간다”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특수반 담임 교사는 설명했다. 이 반의 미러는 상태가 좋아져 하루 5시간씩 정규반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정규반으로 가는 것은 아이들의 상태를 봐서 교사가 부모와 상의해 결정한다. 특수교육 대상자 역시 교사가 학부모와 협의해 정하지만, 중증 장애가 있는 학생이라면 병원의 진단을 받아 지방자치단체에 추가예산을 요구할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배려 또한 남달랐다. 8∼9살 아이들이 수학을 공부하는 한쪽에서 탄자니아 출신인 토미는 모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교육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정신에 따라 핀란드에선 외국계 학생들에게 모국어 수업을 제공하도록 돼 있다. 일반적으론 각 자치단체 교육청에 등록된 모국어 교사들이 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하지만, 학생 수가 아주 적은 경우엔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기도 한다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했다.   

무학년제·집중학습으로 ‘속도 조절’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것은 장애아나 외국인 어린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연령대 정규반 수학 시간. 교실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담당 선생님은 일부 뒤처진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이 집중지도를 하러 데리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교실 밖을 나오니 특수교육 담당 선생님이 아이 4명에게 열심히 동전으로 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뒤처지는 아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니 국제학생평가에서 하위 수준의 성적을 거둔 학생의 비율이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학생들의 처지를 배려하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교사들에게 주어진 자율성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가 정한 교과과정을 따라야 하지만 학교는 자체 교육 내용을 조직할 자유가 있다”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한다. 이에 따라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최상의 학습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무학년제도다. 각 학생은 자신의 학습 내용과 학습 속도를 선택할 자유를 갖는다. 다만 그런 선택을 통해 9학년을 마칠 때에는 국가가 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교사 2~3명이 팀으로 수업

“무학년제도란 핀란드의 발명품이 아니라 이미 1930년대 미국과 스웨덴에서 시작됐다. 모든 아이들은 배울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전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게 이 제도의 철학”이라고 설명한 혼칼라 교장은 핀란드에선 1990년대 이래 이 제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무학년제도에 따라 학생들은 각각 개별화된 학습목표를 갖게 되며, 그 목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의 3자 대화에서 결정된다. 교사와 학생은 수시로 합의한 목표에 도달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목표에 미달했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학습 방식을 적용하는 등 다시 목표 달성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무학년제의 유연한 학습이 가능하려면 교사들의 협력이 긴요하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에서 우리가 참관한 어느 교실에도 선생님 혼자 있는 곳은 없었다. 늘 두세 사람이 함께 팀을 구성해 가르쳤다. 정규교사 외에 별도로 뽑은 보조교사들이 있지만, 정규교사가 다른 교사의 수업에 보조교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교실에는 혼자 뒤처진 아이는 없다. 한 교실 안에서 대부분의 아이가 수학을 공부하더라도 한쪽에서 탄자니아 출신의 어린이가 모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팀 티칭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 학교에서는 팀 티칭을 통한 선생님들 사이의 협력 못지않게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의 협력을 중시한다. 학습그룹을 서로 도와주는 방식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이 학교가 중시하는 학습 방식이 모둠 수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따라 학습 속도는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이 함께 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게 교육이다. 우리는 개별 학생이 아닌 모둠을 학습의 기본 단위로 삼는다. 모둠 속에서 서로 도와가며 배우는 일은 사회화 과정에서도 긴요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했다. 이 학교가 유치원생과 초등 1·2학년생들을 한 건물에 배치한 것도 같은 뜻에서다. 유치원생들은 초등학생들과 함께 지냄으로써 자연스레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초등학생들은 동생들을 돌보는 등 공동체적 삶을 배우게 된다.  

» 산수 과목에서 뒤처진 아이들을 특수교사가 따로 데리고 나와 가르치고 있다.

“선행학습은 금물, 괜히 산만해지죠”

모둠을 중시하는 핀란드에선 선행학습을 금물로 여긴다. 헬싱키에 사는 한국 동포 곽수현씨는 선행학습을 시켰다가 학교에 가서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한 동포의 아이를 예로 들었다. “다른 핀란드 아이들은 1시간 걸려 푸는 문제를 5분 안에 다 풀곤 나머지 시간에 친구를 괴롭히고 산만해져 결국 문제학생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이 아이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모둠의 분위기를 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종합학교의 저학년 단계에선 언어 교육만큼이나 집중력 교육을 중시한다. 집중력이 미래의 학습 능력을 좌우한다고 보아서다. 라토카르타노가 집중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 특별 배려라 할 만큼 신경을 쏟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집중장애 담당 특수교사는 설명한다. 그런 교육이 아이뿐 아니라 앞으로 핀란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다.(헬싱키(핀란드)=글·사진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09.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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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겨레]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라 /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02 07:39 
    “우리나라에 영재교육은 없다. 아주 똑똑한 천재를 키우는 것보다 뒤처진 아이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고 원칙이다.”(마리아 타우라 핀란드 미래위원회 위원장)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 의미의 평등과 형평성이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평등이란 어떤 지역에 살더라도 동등한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요우니 발리예르비 핀란드 이베스퀼라대학 교수) 집 같은..

'권력에 대한 복종'(http://blog.aladin.co.kr/mramor/2622498)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강부자 정권'에 대한 저소득층의 지지는 '한국적인' 현상이다. 둘다 우울한 사실이긴 하나 부정할 수도 없기에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계급 배반적' 유권자들이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피학적일 만큼 권력에 순응했던 러시아 민중들을 한 문화사가가 '노예의 영혼'이라고 부른 게 생각난다)...  

» <한겨레21> 여론조사 결과 저소득층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는 현상을 흔히 ‘계급배반’이라고 한다. 서울 상계4동 양지마을 전경

한겨레21(09. 02. 20) MB의 든든한 지지층, 저소득층  

이명박 정권을 비판할 때 흔히 ‘강부자 정권’이라는 표현을 쓴다. 서울 강남의 땅부자 정권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을 보면 ‘강부자 정권’의 면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강남 부유층의 숨통을 트이게 해줬다. 금산분리 완화와 공공부문 민영화도 거대 기업과 일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다. 비정규직법 완화와 최저임금제 개악 시도, 교육 자율화 등은 반대로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증폭시킬 전망이다. 

못했다, 저소득층 49%-고소득층 59.4%

서민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복지예산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 크게 후퇴했다. 올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7조1427억원으로, 7조2716억원(추가경정예산 포함)이던 지난해 예산보다 1289억원이 줄었다. 장애인 수당도 지난해보다 413억원이 감소했다. 고령자를 위한 노인 돌봄 서비스 예산도 크게 깎였다.

‘강부자 정권’과 서민 사이의 거리는 이렇게 멀었다. 하지만 <한겨레21>이 2월6~7일 서울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배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를 묻는 질문에서 이 대통령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준 계층은 저소득층이었다(도표 참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구당 월소득 25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가운데 42.9%는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못했다고 본 사람은 49%였다. 반면 월소득 251만~400만원 구간에서는 33.3%의 응답자가 잘했다고 대답했고, 62.7%가 못했다고 지적했다. 401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들도 ‘잘했다’가 33.5%, ‘못했다’가 59.4%였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서민이 강부자 정권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소득층은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종부세 완화, 미네르바 구속 등 거의 모든 평가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보였다. 양대웅 나우리서치 이사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양극화 심화 이후 저소득층이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현 정부가 종부세를 완화하고 복지 지출을 축소해 저소득층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한번 형성된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더 많이’ 지지하는 흐름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겨레>가 1월31일 전국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월소득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42.3%)에서 평균(34.8%)보다 높았다. 200만~400만원(33.3%)과 400만원 이상(31.4%) 계층에서는 잘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표를 주는 행위를 흔히 ‘계급배반’ 투표라고 한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제 개악을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에 지지를 보내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계급배반 투표는 지난해 4월 18대 총선에서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지역구가 서울 노원병이었다. 총선 직전인 3월24일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32.6%)는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25.6%)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월소득 1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는 홍 후보(34.7%)가 노 후보(13.3%)보다 높았다.   

과거 보수 정권은 민생고를 해결했다  

지난 수년간 진보개혁 진영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부분도 바로 ‘계급배반의 역설’이었다. 한성욱 진보신당 부집행위원장은 “저소득층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서민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한나라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일반적 현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계급배반’의 역설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역사적 경험에 원인을 돌렸다. “서민의 시각으로 볼 때 보수 정권은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민생고를 해결해줬다. 박정희 정권은 어쨌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줬고, 전두환 정권은 물가를 잡아 생계 부담을 줄여줬다. 진보개혁 세력은 민주화를 실현해줬을지 몰라도 정권을 잡은 10년간 양극화가 심해졌다. 서민들은 아직 그들을 ‘나라 말아먹은 세력’으로 보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강아무개(50대 중반)씨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2월11일 만난 강씨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다 5년 전부터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하루 12시간씩 운전대를 잡는 그의 한 달 수입은 200만원 안팎이다. 강씨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했는데 그들이 집권한 기간에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일자리도 갈수록 줄어 아파트 경비 자리라도 얻으려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강씨는 “우리 같은 서민이 살기에는 요즘 너무 어렵다”면서도 세계적인 불황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대만큼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가 지나면 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적 능력과 학력·연령의 상관관계도 중요하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연령은 높고 학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번 <한겨레21> 여론조사에서도 50살 이상에서는 250만원 이하 저소득층(47.1%)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연령별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50살 이상(55.8%)은 19~29살(18.8%)이나 30~40대(26.1%)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학력별로도 중졸 이하(57.4%)와 고졸(32.2%) 및 대재 이상(30.2%)이 확연히 나뉘었다. 홍형식 소장은 “저소득층은 대개 연령이 높고 학력이 낮기 때문에 인권·민주화·평등·분배 등 진보적 가치를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반면 보수 정당이 강조하는 선진화와 법질서, 경제성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보 수준이 낮은 유권자’(LIV·Low Information Voter)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LIV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부족하면서도 강한 정치혐오증을 지니고 있고, 반면 투표장에는 꼬박꼬박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LIV로 분류된다. 미국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5분의 3인 7500만 명을 LIV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윤재 변호사는 “미국 민주당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더 많이 갖고 있는데 남부의 백인 노동자가 공화당을 더 많이 찍는 이유도 LIV와 일정 부분 관계가 있다”며 “정책적 측면만 주목한다면 계급배반 현상을 LIV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아울러 정치인과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을 충분히 홍보하지 못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 2008년 10월 원혜영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민주당 당직자들이 종부세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저소득층이 종부세 완화에 가장 높은 지지(56.3%)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 이데올로기의 환상

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전적으로 그들의 ‘오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저소득층을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해본 경험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정치학 박사)은 서민의 이 대통령 지지를 ‘계급배반’으로 이해하는 견해에 반대했다. 여론조사는 언제나 정치적 조건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박 주간의 주장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결과나 여론조사 결과를 시민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정당이 형편없으면 유권자의 선택도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진보 정당이 대안이라고 생각됐다면 서민이 보수 정권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저소득층과 노동자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치의 중심은 대개 중산층이었다. 게다가 정당 분포 자체가 보수 편향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정치 성향이 보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서민층의 보수화를 사회 안전망의 축소와 연관지었다. 한 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놓은 사회 안전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니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 선택을 하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게다가 과거 박정희 정권을 통해 성장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면서 서민층이 사회 안전망 확대를 통한 탈출보다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이 진보개혁 진영을 대안세력으로 여기지 않고, 진보개혁 정당은 서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의 경우 시의원이나 구의원 활동을 통해 구체적 성과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런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이 우 대변인의 말이다.

“서민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먹고살기 힘드니 경제를 살려달라’는 표현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노동자와 서민에게 주장하고 싶어도 당장은 힘든 게 사실이다. 현재의 정치 구도만 탓할 게 아니라, 진보 정당 스스로 끊임없이 실력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최성진기자) 

09.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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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2-26 00:06   좋아요 0 | URL
님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하는 시가 생각나는군요.

로쟈 2009-02-26 11:45   좋아요 0 | URL
유권자들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실망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용역들의 폭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보다 구체적으로 이 용역들이 조폭과 연루돼 있다는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55). 경찰이 이 용역들과 철거민 공동진압에 나섰다면, 말 그대로 '조폭과 손잡은 경찰'이 되겠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더라도 이런 모르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권력의 아리까리한 토대'를 이렇듯 다 드러내놓아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그래도 공권력은 여전히 공권력인지?). 하긴 MB부터가 '대통령'이란 직위를 무슨 사조직의 보스인 양 알고있는 바에야(그걸 자랑스레 'CEO'라고 부른다. 조폭 두목도 요즘은 CEO다) 진작에 더 기대할 것도 없긴 했지만...   

용산 참사 사고 당일인 지난 1월20일 남일당 건물 3층에서 철거민과 대치하고 있는 호○건설 용역 직원들.

시사IN(09. 02. 07) “용산 철거 용역 목포 조폭과 관련”

그들은 왜 망루에 올랐나. 죽으려고? 아니다. 경찰에게 화염병 던지고 새총을 쏘려고? 그것도 아니다. 돈을 더 받으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으로는 부족하다. 망루에 오른 이유를 철거민들은 용역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지난 1월20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만난 한 철거민은 “용역이 무서워 망루에 올라갔다. 그냥 있으면 일방적으로 맞으니 살려고 망루로 도망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철거민은 “용역들에게 한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와 분노를 짐작할 수 없다. 용역 깡패들에게 맞설 힘이 모자라니 요새를 만들고 화염병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고 윤용현씨(48)는 용역이 무서워 망루에 올라갔다가 용역이 무서워 망루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지난 1월21일 순천향병원에서 만난 윤씨의 한 친구는 “망루 쌓는 일을 도와주고만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래에 용역이 진을 치고 있어 끝내 내려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윤씨의 아들 윤현구씨(20)는 아버지가 울먹이며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용역이 쳐들어왔는데 네 또래 애한테 얼굴을 얻어맞았어….”

철거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한 호남 출신 조직폭력배는 “철거민들이 망루를 만들어 올라가면 철거 작업이 복잡해진다. 망루에서 철거민들이 올라가려는 우리를 상대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버티면 작업이 장기화한다”라고 말했다. 철거 회사의 다른 동료는 “망루를 정복하는 것은 원래 용역의 몫인데 이번에는 손에 피 안 묻히는 경찰이 직접 나섰다. 매우 특이한 경우다”라고 말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은 폭력의 치외법권지대다. 철거가 추진 중인 용산 거리는 비열한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재개발 현장에서 용역들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다. 위는 지난해 6월 경기 수원의 재개발 현장.

주먹이 법인 재개발 현장

지난 여름부터 철거를 거부한 세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매일 아침 오물과 음식 쓰레기가 수북이 쌓였다. 벽에는 섬뜩한 낙서가 가득했다. 빈집에는 밤마다 불이 났다. 용역들의 소행이었다. 철거민이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수록 폭력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어렵게 식당 문을 열면 험악한 용역들이 들이닥쳐 손님과 시비를 벌였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술을 마시면 술 먹는다고 때리고,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때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일이 용산에서는 다반사였다.   

철거 회사 용역들은 노인·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욕을 해댔다. 팬티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손에는 쇠몽둥이와 목검을 들고 있었다. 이곳 주민 박선영씨(여)는 “동네 어른이 맞고 있는 걸 보고 나서기라도 하면 용역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주민들에게 주먹질을 했다. 몸무게가 100kg 정도 나가는 용역이 뺨을 때려서 나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에서 숨진 이상림씨(72)의 며느리 정연신씨의 증언이다. “2008년 7월1일 아버님이 현수막을 달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는데 용역 깡패들이 사다리를 흔들고 급소를 잡아서 땅에 내동댕이쳤다. 아버님은 바닥에 쓰러져 맞고 옷도 다 찢겼다. 신고했지만 경찰이 오지 않아 도망가야 했다. 고소장을 냈더니 용역 깡패도 다음 날 맞고소를 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전치 3주가 나오고 그 용역은 4주가 나왔다. 70대 노인이 30대 깡패들에게 밟히고 맞았는데 아버님한테 사전 구속영장이 떨어져 수배자가 됐다. 형사들이 잡으러 왔다.”

하지만 무법천지, 어디에도 경찰은 없었다. 용산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한 세입자는 “신고를 해도 이 동네에는 경찰이 잘 오지 않았다. 와서도 용역이 합법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라고 말했다. 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세입자들은 거의 매일 용역에게 폭행당했다. 지켜보는 구청 직원과 경찰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용역 폭력과 관련해 철거 회사 호○건설의 관계자는 “편파적인 사건과 사진만 가지고 철거민들이 일방적으로 피해자라 주장한다. 우리가 당한 자료도 많다”라고 말했다. 용산 4구역 철거 용역을 맡은 회사는 호○건설과 현○건설산업. 사고가 난 남일당 건물과 그 주변을 관리하는 회사는 호○건설이다. 하지만 경찰 물대포를 쏜 용역 직원이 현○ 직원임을 보더라도 두 회사가 공조 철거에 나섰다는 철거민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높다.

철거업체는 재개발 조합이나 시공사에서 선정하는데, 두 업체는 삼성물산·포스코·대림 등 시공사를 통해 철거업체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현○건설의 고위 관계자는 “2008년 4·5월께 삼성물산·포스코 등 대기업 시공사가 주관한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내 수주를 따냈다. 계약은 조합과 하고 2008년 7월1일부터 호○과 구역을 나눠서 이주 관리를 했다”라고 말했다. 호○건설의 한 고위 관계자도 “주관사인 삼성을 통해 공정하게 입찰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용산 지역 재개발 주관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이를 부인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에서 우리도 일을 따냈다. 시공사는 공사만 할 뿐 철거업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호○건설은 2006년 2월 본격적으로 철거업에 뛰어들었다. 철거업을 하던 입△산업과 참△△건설 출신 직원들이 주축을 이뤘다. 공동 대표이사 ㅇ아무개씨·ㅁ아무개씨도 모두 입△산업과 참△△를 거쳤다. 설립 첫해인 2006년 호○ 건설은 46억8200만원, 2007년에는 75억6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물산이 재개발 사업을 하는 서울 종암동·석관동·길음동·마포·아현동, 그리고 사고가 난 용산의 철거를 맡은 회사가 호○건설이다.

한 철거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조합에서 특별히 철거업체를 지정하지 않으면 삼성 일은 호○이 거의 도맡아 한다. 업계에는 삼성 임원이 호○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의 고위 관계자는 “3년 정도밖에 안 된 회사지만 이쪽에 일을 오래 한 분이 많아서 삼성 일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건설이 전남 목포의 폭력조직 ㅅ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건설업계와 조직폭력배 사이에서 파다한 소문이다. 철거회사를 운영하는 한 조직폭력배는 “입△·호○의 ㅁ과 ㅇ은 (조폭)생활하는 ㅅ파 식구들이다. 철거라는 것이 전형적인 건달 사업인데, 입△·호○은 조폭 바닥에서 가장 성공한 조직이 하는 회사다”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 한 조직폭력배는 “호○은 어찌 보면 돈과 주먹이 결합한 국내 최대 조직이다. 거의 모든 조직이 와해되고 이름만 남았는데, ㅅ파는 철거로 떼돈을 벌어서 실질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조직원이 가장 많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한 두목은 “ㅅ파는 철거해서 돈을 많이 번 애들이다. 이번 사고로 괜찮으냐 했더니 문제없다더라”고 말했다.  

복도가 시커멓게 탔다. 호○건설 용역들은 “추워서 불을 피웠다”라고 말했다.

ㅅ파는 목포 3대 조폭 중 하나
호○과 조폭 관련설에 대해서는 일부 시공사에서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한 시공사 간부는 “철거회사 직원들은 하는 일이 본래 터프할 수밖에 없다. 노인정에서 데려다 쓸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목포의 ㅅ카페를 근거지로 만들어진 ㅅ파는 서산동·오거리파와 함께 전남 목포 3대 조직폭력 단체다. 전남경찰청의 한 조폭 담당 경찰관은 “ㅅ파는 검찰과 경찰이 관리할 정도로 이름난 범죄 단체로 재범을 염려해 경찰이 특별 관리하는 조직폭력배만도 33명에 이른다. 1996년 조직원이 살해당하자 오거리파 조직원을 잔인하게 보복 살해한 이후 ㅅ파 조직원은 유흥업소와 건설회사에 진출해 사업가로 변신한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조직폭력배 관리 대상에 따르면 목포 지역 ㅅ파의 두목은 ㄱ아무개씨. 그 밑에 부두목과 행동대장 3명이 받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관리가 서울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다. 광주의 한 베테랑 조폭 담당 형사는 “서울로 간 조폭 중 경찰의 관리가 미치지 않는 조폭이 훨씬 많다. 용역회사에서 ㅅ파 애들을 쓰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한 조직폭력배의 증언에 따르면 상경한 목포 ㅅ파의 실질적 두목은 ㅈ아무개씨와 ㅅ아무개씨. 철거회사를 하는 한 조직폭력배는 “ㅈ 아래 ㅁ아무개·ㅇ아무개 또 다른 ㅇ아무개 등 수십명이 ㅅ파 식구로 호○건설에서 일한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ㅅ파 관련에 대해 묻자, 호○건설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마음대로 생각해라. 직업이 철거여서 몇 년 전에도 ㅅ파로 수사받았지만 명확하게 해명됐다”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의 한 조폭은 “3년 전 ㅅ파를 광역수사대 쪽에서 범죄 단체로 엮으려 했는데 ㅈ의 로비로 살아남았다. ㅈ은 인맥이 좋고, 한 번에 2000~3000명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돈과 능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남 지역의 한 조직폭력배는 “ㅅ파가 경찰 관리 대상에서 이름을 뺄 정도의 능력은 된다”라고 말했다. 호남의 한 조폭을 통해 ㅅ파 조직원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용산 사고가 커서 복잡하겠다”라고 물었다. ㅅ파의 한 행동대원이라는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다. “경찰 즈그들이 알아서 허겄지요. 그 정도는 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주진우기자) 

09. 02. 08.  

P.S. 무리한 철거시한을 담은 철거공사 계약서에 관한 기사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08174637 참조. 한편 드물게 철거촌을 다룬 영화로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2004)가 있었다. 소재로만 다루고 삼천포로 빠진 영화인데, 아직도 한국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드물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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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2-08 18:28   좋아요 0 | URL
공권력과 조폭, 잘 어울리네요..

로쟈 2009-02-08 22:21   좋아요 0 | URL
사실이 그렇더라도 너무 노골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08 21:57   좋아요 0 | URL
특정 지역을 명시하여 제목으로 뽑은 것이 염려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의 이 기사 댓글에 전라도 놈들은 죽어야 된다는 글들이 엄청나게 올라오더군요.

로쟈 2009-02-08 22:20   좋아요 0 | URL
경찰 수뇌부는 경상도에서 맡고, 용역 하청은 전라도를 주는 시스템인가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09 22:30   좋아요 0 | URL
각 지역마다 이런 일이 있으면 해당지역 조폭들에게 일을 맡기는 게 관행인 것 같아요.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각 지역 조폭들에게는 꽤 수지 많은 장사라고 하니까요.이게 1~2년 된 일도 아니구요.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필자는 최근 칼럼집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후마니타스, 2009)를 펴내기도 한 이대근 기자로 현재 직함은 정치.국제 에디터(부국장)라 한다. 칼럼의 키워드가 '모독'이다 보니 '멸시'를 키워드로 한 소설가 최인석씨의 어제 칼럼이 생각났다(그가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도 이번에 상기하게 됐다). 모두 용산 참사에 대한 정부의 뻔뻔한 대응을 질타하고 있다. 국민을 모독하고 멸시하는 정권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두고볼 일이다.

  

경향신문(09. 02. 05) [이대근 칼럼]용산 테러리스트

이명박은 민주화 시대에 어느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느냐고 했다. 민주화 시대 모든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 했고, 이명박 정권도 그랬다. 다만, 이명박 정권이 더 노골적이고 그 방법이 좀더 거친 것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맞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사는 일 중심으로, 일 잘하는 사람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왜 그렇게 못했는지 그 이유를 들으려 사람들이 TV 앞에 앉은 것일 텐데 말하지 않았다. 분단 60년 중 1년의 경색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마치 자신이 59년간 남북 화해 잘하다 딱 1년만 안된 것처럼 주장하는데 정확히 하자. 그의 취임 이후 1년 내내 경색되었다. 오래지 않아 남북협상할 거라고?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그는 현안들에 대해 제대로 변명하지도, 자기 논리에 따라 효과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했다.

불교계로부터 그렇게 혼나고도 ‘하나님의 소명’ 운운하고, 오바마처럼 화합하면 어떻겠느냐는 주문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미국수준이면 좋겠다며 비웃었다. 옛날엔 자동차 타고 가다가 신문에 장관이 잘못했다고 나오면 전화해서 ‘어이 내보내’ 그런 식이었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그런 요구를 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아마 그는 자기에 대한 고언을 종종 이렇게 오해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조언과 지적 때문에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불평하는 사람들-특히 그의 주변 사람들, 여당 사람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그만 입 닫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죽은자에 사과는커녕 모독만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군주가 현명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군주가 정말 현명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조언자들 덕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견해이다. 군주의 지혜가 좋은 조언을 낳는 것이지, 좋은 조언이 군주의 지혜를 낳을 수는 없다.’ 이명박의 말대로 조언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

SBS TV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는 안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을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 특히 용산 참사 이야기 때 그랬다. 그는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 빈 말로나마 미안하다고 슬프다고도 하지 않았다. 철거민, 그들은 누군가. 30년 넘게 장사한 거리에서 쫓겨나 다 잃고, 결국 그 자리에서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칠순의 노인이었다. 외환위기로 일식집 문을 닫은 뒤 다시 살아보자고 복어집을 낸 지 3년 만에 그 꿈은 거품처럼 꺼지고, 살아갈 기운을 잃은 쉰여섯의 가장이었다. 이 거리를 떠나야 했기에 물과 전기 없는 천막집을 짓고 노점상, 막노동을 하며 철거된 인생을 살다 뜨거운 불속에 사라져야 했던 쉰 살의 가난한 아저씨였다.  

땀 흘려 일군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고,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이렇게 다 빼앗긴 이들이 자비를 베풀기를 기대했는가. 권력과 재벌과 건물주의 욕망을 위해 온순한 양처럼 순순히 물러날 것 같았는가. 미국 연수 때 가족과 국립공원에 놀러갔다가 곰 출현 경고판을 본 적이 있다. 충분한 거리가 아니면 달아나지 말고 손을 벌려 크게 보이도록 하라. 그래도 안 물러나면 소리를 내고….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방법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그들이 망루로 올라갈 때는 이유가 있었다.

누구는 그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부동산 부자인 청와대 부대변인이라는 이는 그들의 죽음이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은 법질서를 잡으려면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죽음은 법질서의 제단에 바쳐지기 위해 이렇게 재해석되었다. 죽은 자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명백한 이 사건을, 너무 슬픈 이 이야기를 그들조차 외면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국가와 시민간 사회계약은 깨져
그러나 큰 죄를 진 재벌총수를 죄다 용서함으로써 법이 정의와는 무관한 기득권 보호 장치임을 전 국민에게 학습시켰을 때 법질서는 이미 무너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철거민들은 벌써 법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고,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테러리스트였다는 선전으로는 무너진 법이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법의 정신이 이 정권에 의해 너무 많이 훼손되었다. 어쩔 텐가. 이제는 국가의 이름으로,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없다. 국가와 시민의 사회계약은 거의 깨졌다.(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경향신문(09. 01. 04) 여섯의 죽음, 사과도 않는건 멸시다

나는 요즘 서울 고덕동의 작은 시영 아파트 하나를 빌려 작업실로 쓴다. 아파트라고 하지만 실은 20여년 전 도심의 판자촌을 철거할 때 그곳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기 위해 마구잡이로 지어진 아파트일 뿐이다. 방이 둘, 거실이 하나, 몸뚱이를 틀기가 거북할 지경으로 비좁은 화장실 겸 욕실이 하나, 이런 식으로 15평의 공간이 어색하고 기묘하게 나뉘고 또 나뉘었다. 

20여년 전에는 휑뎅그렁한 도시 외곽의 야산이었던 이곳에도 이제는 여기저기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동네에도 재건축 바람이 불어 15평 아파트 한 칸이 4억원이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곳에 처음 둥지를 틀었던 주민들 상당수는 이미 자리를 떠난 것 같다. 집주인은 주로 외지인들, 그러니까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둔 이들이고, 주민들은 대개 세들어 산다. 15평짜리 아파트에 다섯 식구도 살고 여섯 식구도 산다.

그래도 아이들은 노스페이스를 입고 다니고, 나이키를 신고 다닌다. 저녁이면 학원 버스들이 아파트 단지 내 도로를 누비며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졸라대는 아이들을 당해낼 수 없었을 부모들의 심사도 보이고, 아이들이 좀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좀더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도 보인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날에 나는 여기 사는 이웃들의 하루가 얼마나 일찍 시작되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먼저 일어나 출근에 나섰다. 도대체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란 어떤 곳일까? 나중에야 나는 그들이 대개의 경우 청소를 한다는 것을, 또는 식당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이트칼라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끝내기 위해서는, 일찍 출근하는 손님들의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서는 그들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이들보다 부지런한 이들을 알지 못한다. 가난한 자는 게으르고 게으르니까 가난하다는 생각은 부르주아들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곳의 이웃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토록 부지런한데도 이들의 입성은, 이들의 식료는 때로는 간소하거나 초라하고, 때로는 참혹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스페이스나 나이키는 아이들의 욕망,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은 부모들의 욕망의 표현일 따름이다.

그 욕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다름아닌 장사꾼들, 가난한 이들의 마늘 하나마저 빼앗아 거만의 부를 축적하고 그로도 부족하여 금융 장난까지 저질러 지금 온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더욱 깊은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바로 그자들이다. 코 치켜들고 턱 치켜들고 수백만원짜리 양복에, 수억원짜리 차에 몸을 싣고 다니는 자들, 바로 나의 가난한 이웃들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어찌하여 그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멸시할 수 있는 것인가? 매일 저 가난한 이들의 마늘을 빼앗아 제 차에 기름을 넣는 주제에 어찌하여? 저 가난한 이들의 옷을 빼앗아 제 옷의 세탁비를 지불하고, 저 가난한 이웃들의 밥을 빼앗아 제 금준미주(金樽美酒)에 냄새를 더하는 주제에 어찌하여? 도대체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하물며 도대체 누가 이들을 죽일 권리를 주었는가?

며칠 전 용산 재개발지구에서 경찰들의 특공대 진압 과정에 죽어간 이들은 나의 이웃들이다. 최소한 자본가의, 경찰의, 서울시의, 정부의 과실치사가 분명한 이 사건에 대해 책임있는 당국자가 아직까지도 온전히 사과조차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나라의 모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멸시의 표현이다. 나는 이번 사건 자체보다도 이 멸시가 더 무섭다. 이 멸시는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비슷한 일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당국자와 자본가들의 선언이다.

우리 이웃들이 죽은 구체적이고 과학적 이유가 무엇이건, 형사법적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건, 다섯 명의 사람이, 아니, 경찰까지 포함하면 여섯이 죽었다. 그 죽음 앞에 이 사회는, 이 나라는, 우리는 어찌 이리도 뻔뻔한가? 가장 두렵고 소름끼치는 것은 바로 이 뻔뻔함이다. 욕망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뻔뻔해질 각오가 되어 있는가?(최인석_소설가) 

09.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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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이렇게 써라 - 이대근, &lt;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gt;
    from Fly, Hendrix, Fly 2009-03-16 18:37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 이대근 지음/후마니타스 글쟁이들은 고민한다. 자신만이 읽을 글이 아니라면 언제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누가 읽게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어느 순간에서 끊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한다. 물론 학술논문을 쓸 때에야 상세한 설명과 정확한 뒷받침 문장을 구비해야 할 때가 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긴박하게 한 방의 임팩트를 가지고 글을 써야할 경우가 있다. 저널리스트의 글쓰기가 그렇다...
 
 
수유 2009-02-05 21:56   좋아요 0 | URL
'국민을 모독하고 멸시하는 정권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두고볼 일이다'- 맞어, 정말 두고볼일이야요!!

로쟈 2009-02-06 00:40   좋아요 0 | URL
이런 거 때문에라도 오래 살아야 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5 23:21   좋아요 0 | URL
모독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충성스런 지지를 보여주는 충신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로쟈 2009-02-06 00:41   좋아요 0 | URL
네, 같이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2-06 01:25   좋아요 0 | URL
이리 할껄 뭔 국민에게 사과, 소통을 운운했는지....이건 뭐 지능지수가 닭XXX 수준도 안돼고..대체 이해가 안갑니다.

로쟈 2009-02-06 23:38   좋아요 0 | URL
뭐 요즘은 욕해봐야 입만 아픈 지경이죠...

노바리 2009-02-06 02:27   좋아요 0 | URL
가끔 들러 로쟈님의 글을 읽고가는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왔다가 덕분에 이대근 논설위원의 책이 나왔단 사실을 알게 돼서 기쁜 마음으로 주문하러 달려가요. 무시무시하게 날카로운 필치 때문에 좋아하는 기자입니다.

로쟈 2009-02-06 23:39   좋아요 0 | URL
가끔은 도움이 돼 드리는군요.^^

토탈리콜 2009-02-07 17:52   좋아요 0 | URL
로쟈님, 처음 댓글을 답니다. 좋은글 많이 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제가 정말 소름끼치는 것은, 지금 이시점에서 다시 대통령선거를 하면 MB를 이길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지난번 선거투표율 보다 더 떨어지기나 할까요? 제생각에는 아닐것 같아요. 정말 슬프고 소름끼쳐요...

2009-02-07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2008)에서 우석훈이 예언한 바에 따르면, 현재 우리에게 도래할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는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국가이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MB파시즘’이다. 그 파시즘이 'MB식'인 것은 30%도 못 되는 지지율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고자 획책하기 때문이다. 그런 파시즘을 '프렌들리 파시즘' 혹은 '부드러운 파시즘'이라고도 부른다는데, MB식 '프렌들리'가 상당히 다양한 함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비즈니스 프렌들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짐작엔 MB법안의 처리가 예정돼 있는 2-3월이 '프렌들리 파시즘'이 본격화되느냐, 아니면 그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느냐의 분기점이 될 듯싶다.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주 짚어볼 필요가 있으며 그런 취지에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위클리경향(09. 01. 20) 전체주의는 어떻게 부화하는가

미네르바가 잡혔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미네르바를 ‘일그러진 인터넷 영웅’ ‘돌팔이 의사’로 지칭하면서 그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였다. <조선일보>는 박씨의 실명까지 밝히면서 그의 행적을 ‘허점 많은 논리’ ‘공포심 자극’ ‘기득권에 대한 반감’으로 요약했다. 반면 누리꾼 ‘아슈라’는 “이번 수사의 쟁점은 ‘체포된 미네르바의 진위’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를 당하는 것”이라며 “더불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집권세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이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어이없는 상황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최일선을 달리는 미국에서조차 민주주의 위기와 파시즘 대두를 경고하고 있다. 실례로 2006년 6월 미국 환경운동가 스티븐 하워드는 아들을 피아노 레슨에 데려다주는 길에 당시 부통령 딕 체니 일행이 쇼핑몰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다. 하워드는 체니에게 다가가 ‘당신의 이라크 정책은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10분 뒤 하워드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고, 그는 ‘부통령을 공격한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는 2007년 펴낸 <미국의 종말>에서 2001년 이후 미국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고 지적하면서 부시 행정부 시기 미국 사회가,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이행하는’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고 진단했다.

부시정부 미국사회도 파시즘 대두 경고
1920년대 이탈리아와 1930년대 독일에서 대두한 파시스트 정권은 기존의 민주적 제도를 합법적으로 활용하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먼저 의회에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는 법을 제정하고 문화적 압력을 행사하면서 사법기구와 친위 기구를 동원해 시민들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과 공포 심리를 조성했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법치를 강조했다. 히틀러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1933년 총통의 지위에 오른 지 일 년 뒤 뉘른베르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명확히 말하건대, 국가사회주의 정부의 기초는 국가사회주의 법률이다”라면서 나치 독일을 가리켜 “질서, 자유, 법의 나라”라고 불렀다.

시민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려는 것은 파시즘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192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전화를 도청하고 교황까지 비밀 사찰 대상으로 삼았다. 1930년대 독일의 복지 관련 공무원들은 ‘비사회적 시민’의 명단을 작성했다. 2005년 12월 16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재무부 관리들은 2006년 한 해 동안 CIA의 도움을 받아 영장이나 소환장 없이 수백만 건의 개인 은행거래 내역을 조사했다.

언론에 대한 압박도 파시즘의 주 메뉴다. 1923년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지역 조직들은 어떤 신문이 국내외에서 국가의 신뢰를 해치는 보도를 했거나 여론을 자극하여 질서를 교란했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신문사의 재산을 압류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1933년 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는 불과 6개월 사이에 국영 라디오 방송 직원의 13%를 해고했다.

부시 지지자인 케니스 톰린슨은 미국 공영방송 PBS의 재정을 지원하는 재단 회장으로 임명된 뒤 직원이나 출연자 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하는 작업을 벌였다. 2006년 7월 PBS 어린이 프로그램 <굿나이트 쇼> 진행자 멜라니 마르티네즈는 부시의 음주운전 경력을 풍자한 금주 교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빌미가 돼 해고됐다.

위의 사례들은 서유럽의 고전적 파시즘 체제와 울프가 ‘파시즘 이행기’였다고 규정한 부시 행정부 시기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2009년 한국 사회는 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의 종말>을 번역한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는 “민주주의와 파시즘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는 파시즘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집권 세력과 대자본이 동맹을 맺는 체제”로 규정하고 “영구적인 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 권력과 영구적인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본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참여를 허용하는 방송법과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려는 사이버모욕죄 도입 시도는 이를 위해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려는 수단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지금 정부가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지하벙커를 만드는 행태를 보면 지금 같은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토론과 합의 같은 민주적 절차는 한가한 놀음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서구학자들 ‘프렌들리 파시즘’ 표현
중앙대 신진욱 교수는 “엄밀히 말해 파시즘 체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어떤 체제를 파시즘이라고 규정하려면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 이외에 파시즘이라고 단정할 만한 요소를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군사독재 시기에도 자유민주주의 이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면서 “한나라당이 강경파의 압력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야당과 합의를 도출한 걸 보면 집권세력이 더 이상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럼에도 파시즘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의회를 건너뛰고 관료와 검경 등 선출에 의한 대표성을 띠지 않는 기구들이 전면에 나서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과 ‘조계사 횟칼 테러’에서처럼 우익세력의 대중동원 양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그 징후로 꼽았다. 신 교수는 “역사적으로 대비한다면 현 정부는 대처 시절의 영국, 레이건이나 부시 시절의 미국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대처의 영국이나 부시의 미국은 파시즘과 무관한 것일까.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대처와 레이건 정부가 등장했을 때 서구 학자들은 ‘프렌들리 파시즘’ ‘부드러운 파시즘’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파시즘’이란 전통적인 파시즘처럼 공개적 의미의 독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나 멘탈리티가 정상적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측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파시즘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복합적이기 때문에 어떤 체제를 쉽게 파시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파시즘 연구의 대가 로버트 O. 팩스턴은 “모든 사람을 남김없이 만족시킬 수 있는 파시즘 해석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조금씩 이전과 다른 억압적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연세대학교 나임윤경 교수는 “파시즘의 특성은 전체주의라기보다 구성원 사이에 차이를 조장하면서 상호 불신과 반감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노동·경제 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비판하기보다 경쟁 구도 안으로 자발적으로 흘러들게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작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파시즘의 정체가 아닐까”라고 우려했다.(정원식 기자) 

09.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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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세알 2009-01-18 23:06   좋아요 0 | URL
미국뿐 아니라 보수당 당수가 '우리에겐 풍자의 전통이 있어 히틀러같은 사람은 나타날 수 없다'고 장담하던 영국에서조차 몇년전부터 국가에 의한 파시즘을 경고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넘쳐나고 있어요. 가끔 몸서리칠 정도로 공포를 느끼는데 인터넷에서 만나는 일련을 사람들을 제외하고 주변의 친구들은 전혀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런 것이 이 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는 것을 부추기는 것 같아 화가 나요.

로쟈 2009-01-19 23:07   좋아요 0 | URL
오늘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나대로' 독주 의사가 확고해보입니다. 누군가 '선지자 리더십'이라고 불렀지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 주변의 반대는 오히려 극복해야 할 고난으로 간주하는 것. 어디가 끝장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