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TV를 켠 아이가 "김대중 대통령 서거하셨대!"라고 알려준다. TV속보를 본 모양이고, 나도 포털사이트에서 바로 속보를 접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황망한 마음이 없지 않다. 고인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는데, 이미 '준비된' 기사들일 테다. 그중에는 고인의 어록도 정리해놓은 게 있어서 차분히 읽어본다(이미지는 옥중서신이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지만, 다른 빛은 보이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해럴드경제(09. 08. 18) (DJ어록)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현안에 해박했고, 발언에는 거침이 없었다. 유명한 발언도 많이 남겼다. 전문가들조차 김 전 대통령 앞에서 서면 주눅이 들 정도의 막힘없는 멘트는 ‘인동초’의 삶의 기록으로 남게됐다. 생전 김 전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정리한다.

▶경제
-국민의 정부’ 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병행시키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바퀴와 같습니다. (1998. 2. 25 대통령 취임사중에서)
-현 내각은 금년 1년 동안은 ‘실업대책 내각’ 이라는 결심으로 일해야 합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옛말입니다. 이제는 가난도 나라가 구제해야 합니다. (1998.3.18 국무회의)
-사람은 가난하게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부유하게 되지도 말 일이다. 우리는 가난해도 부유해도 다 같이 돈의 노예가 된다. 알맞게 갖고 자유인이 될 일이다. (저서 '옥중서신' 중에서)
-IMF는 지난해 말, 한국이 IMF 지원체제에서 졸업했다고 선언했고 국제신용 평가기관들은 줄지어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했습니다. 그러나 작년의 성과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국제신용평가기관도 개혁의 계속 그리고 정치의 안정을 주문하고 있습니다.(2000.1.26 연두기자회견)  

▶통일
-북한에 대해 당면한 3원칙을 밝히고자 합니다. 첫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셋째,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1998.2.25 취임사)
-안보는 철통같이 하되, 그러나 전쟁을 막기 위한 안보, 그리고 결국은 남북이 화해 협력하기 위한 안보, 이런 방향으로 나갈 때 나는 우리 조상들이 도와서 하늘이 도와서 우리 민족의 미래가 열릴 것이 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방북 성과 대국민 보고’ 중에서)
-공산국가에 대해서 억압과 고립화, 이런 것으로써 성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방으로 유도하고 대화를 하고 이렇게 해서 성공 안 한 적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관계가 경색되면 될수록 이러한 햇볕정책은 계속 이어나가야 합니다. (2002.12.30 국무회의 중에서)
-저는 20년 동안 일관되게 3원칙 3단계 통일론을 주장하였습니다. 3원칙은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입니다. 3단계는 제 1단계 남북공화국 연합제, 즉 1연합 2독립정부의 단계입니다. 제2단계는 연방제, 즉 1연방 2지역자치정부의 단계입니다. 제 3단계는 완전통일의 단계입니다.(1994.11.2 중국 북경대학 연설문)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대접을 받고 주인역할을 하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 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루어내겠습니다. (1998.2.25 취임사)
-국민은 항상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 선전에 현혹되기도 한다.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집단 심리에 이끌려 이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국민 이외의 믿을 대상이 없다.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저서 '옥중서신' 중에서)
-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느 역사를 보나 민주화를 위해서는 희생과 땀이 필요하다.(저서 ‘옥중서신’ 중에서)
-민주정치는 대의정치입니다. 대의정치는 계약정치입니다. 죤 로크(J.Locke)가 말한 대로 국민과 주권자와 정치인 간의 계약인 것입니다. 3당통합은 계약위반입니다. 평민당보고 같이 하자고 했으나 안했는데, 만약 평민당까지 했으면 이 의사당은 야당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민주주의입니까? (어둠속에서도 빛을 찾아서, 1990. 2. 27, 평민당 대표연설중에서)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1993년 출간된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정치는 심산유곡에 핀 한 떨기의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입니다. 연꽃을 피게 하고 정치를 예술화하는 것은 국민의 예지와 책임감과 결단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1993년 출간된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국민 여러분께서는 꼭 투표에 참여해 주십시오. 귀중한 한 표를 포기하는 것은 국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자 여러분의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2000.3.27 16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담화문)  



▶인권
-나는 98년 대통령 취임 이후 5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사형집행을 한 일이 없으며 몇 사람은 무기징역으로 감형시켰다. 사형집행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고,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에도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다. 하루속히 우리나라와 전세계에서 사형제도가 없어져서 민주주의가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사형제도폐지를 위한 국제엠네스티 캠페인 기고문 중)
-인류역사 이래 사람이 있는 곳에 인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곳에 반드시 인권의 침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권의 침해가 있는 곳에는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투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1998.4.16 세계인권선언 50주년 메시지)

▶여성
-어머니의 권리가 아버지의 권리와 같고, 아내의 권리가 남편의 권리와 같고 딸의 권리가 아들의 권리와 같은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가족법 개정을 이뤘다(89년 정기국회에서 가족법개정안 통과 직후)
-저는 ‘반절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사회’ 를 ‘남녀 모두가 성공하는 사회’ 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1998.7.3 제3회 여성주간 기념식 연설)

▶동서 화합
-동서의 화합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양상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1998.4.30 대구?경북 국가기도회 연설)
-21세기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혁명기입니다. 세계가 하나로 되는 시대이며, 무한경쟁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 남고 승리하려면 국민적 단결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지역이기주의는 망국의 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힘을 합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세력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합니다. (1999년 대통령 신년사중에서)
-나는 내가 호남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 번도 나의 고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차별받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통을 나누는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일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의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1993년 출간된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기타
-학문이나 지식에 있어서는 권위에 맹종해서는 안된다. 존경은 해도 비판의 눈은 견지해야 한다. 모든 지식은 내 자신의 비판의 그물에서 여과시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것이 미숙하고 과오를 범할 경우가 있더라도, 내가 나로서 사는 유일한 지적 생활의 길이기 때문이다. (저서 ‘옥중서신’ 중에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시시비비를 먹고 자랍니다. (1993년 출간된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70년대 저서 ‘행동하는 양심’에서)
-오늘의 영광은 지난 40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해 준 국민들의 성원의 덕분입니다. (2000.10.31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
-(대통령이 되기)전에 비하면 아내한테는 더 충실한 남편이 되는 것 같다. 그것 하나가 좋은 점이다. (1999.9.2 타임지 회견) (이상화 기자) 

09.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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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18 15:15   좋아요 0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의 저를 다지는 말씀입니다.
"학문이나 지식에 있어서는 권위에 맹종해서는 안된다.
존경은 해도 비판의 눈은 견지해야 한다.
모든 지식은 내 자신의 비판의 그물에서 여과시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것이 미숙하고 과오를 범할 경우가 있더라도,
내가 나로서 사는 유일한 지적 생활의 길이기 때문이다."
('옥중서신’중에서)

로쟈 2009-08-20 22:51   좋아요 0 | URL
감옥에선 10시간씩 독서에 몰입했다더군요. 역설적으로 정치 지망생들은 한번씩 가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CEO 같은 거 하지 말고...

Kir 2009-08-18 22:56   좋아요 0 | URL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지껏 힘겨운 삶을 버텨내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일어나주시길 바랬는데 더는 무리였나봅니다. 2009년은 정말 최악의 해로 기억될 것 같아요.

로쟈 2009-08-20 22:48   좋아요 0 | URL
최악의 선택이 빚은 결과들인데, 아직 끝이 아닐 듯싶어요...

자꾸때리다 2009-08-20 18:43   좋아요 0 | URL
결과적으로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추진한 바람에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고 볼 수 있지 않는지... 한나라당 말대로 DJ가 경제를 망쳤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물론 그 근거는 전혀 다르지만.

로쟈 2009-08-20 22:48   좋아요 0 | URL
결과적으론 그런 면도 있겠습니다. 당면했던 현실에서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도 같구요. 물론 한나라당에서 비판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MB의 행태로 보면...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잠시 칼럼들을 훑어보다가 '탐욕의 미래'를 우려하는 칼럼 두 편을 묶어서 옮겨놓는다. 지난주 한겨레21의 특집기사와 오늘자 한겨레의 박노자칼럼이다. 시스템이 조장하는 '대박 환상'이 인성으로 제어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파멸로 가는 길에 브레이크는 없어 보인다...  

 

한겨레21(09. 08. 14) 잊혀진 공포, 살아난 탐욕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수천조원의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금융 패닉을 경험한 지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의 심리적 충격과 허탈했던 기억을 모두 잊은 듯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 곳곳에서 과열과 거품의 조짐이 일고 있다. ‘손실의 기억’은 사라지고 ‘수익률의 기대’가 부풀어오르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2000년 3월 미국 나스닥 거품 붕괴와 함께 무너졌던 코스닥 신화의 허망한 붕괴를 목도하며 21세기를 시작한 경험조차도 10년을 넘지 않는다. 당시 5천 포인트를 상회했던 나스닥이 수개월 만에 3천 포인트 밑으로 떨어지고, 한국의 코스닥 지수도 290포인트까지 치솟던 것이 50포인트라는 원점으로 회귀했던 기억 말이다. 당시 정보기술(IT) 대박의 꿈을 좇아 ‘묻지마 투자’를 하던 수많은 개미들의 머니게임은 처절한 좌절로 끝났다.

그러나 머릿속의 ‘대박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수년 뒤 부동산과 금융상품에 대한 머니게임은 다시 되풀이된다. 2004년부터 저금리 기조 아래 부동산 시장이 점차 들썩이고 때마침 수익 경쟁을 벌이던 은행들이 대대적인 주택담보 대출을 풀어 실탄을 공급하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뒤 최대의 금융 거품이 세계적 차원의 폭발을 앞두고 있던 2007년 시점에, 한국에서는 2천만 계좌 이상의 펀드상품이 팔려나가고 있었고, 2006년까지만 해도 360만 명 전후를 맴돌던 주식투자 인구가 2007년 440만, 지난해는 46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경제활동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주식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종합주가지수도 2천 포인트를 돌파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대박의 꿈을 좇아 부동산에, 펀드에, 주식에 자산을 쏟아붓던 정점에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2008년 10월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 충격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세계, 전 가구에 파급되었고 우리나라도 순식간에 은행 파산의 공포, 기업 파산의 공포, 가계 파산의 공포에 휩싸였다. 특히 우리 가계가 느꼈던 공포는 2000년 IT 버블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물가상승률 밑으로 소득이 추락하면서 가계 수입이 줄었다. 가계 자산의 77%를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추락하고, 펀드와 주식이 반토막 행진을 이어가면서 가계가 보유한 자산가치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반면 각종 시중금리가 7% 이상으로 뛰어오르면서 지출해야 할 이자 비용은 급팽창하고 부채도 늘어났다. 대박의 꿈이 파산의 공포로 전환된 것이다.

‘고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사회심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우선 부채를 줄이려는 부채 디레버리지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다시 ‘안전자산’을 찾게 되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전체 금융자산 대비 41%로 떨어졌던 예금 비율이 2008년 말 기준으로 46%까지 올랐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심리적 수준을 넘어 구조화된 투기 욕망
외환위기 이후 줄곧 자신과 가정의 미래를 투기성 짙은 투자에 걸면서 이미 우리 가정의 소득과 소비, 저축 구조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가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소득 상승과 15% 이상의 높은 순저축률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을 기반으로 한 민간 소비는 경기가 악화되어도 크게 줄지 않았고,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어도 소득의 일정 부분을 저축으로 쌓는 경향이 많아 소비가 급팽창하지도 않았다. 가계의 움직임이 경기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가계 운용 패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노동소득이 불안정한 가운데 저축을 줄이는 동시에 부채를 동원해서 소비를 확대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가계 부채는 빠르게 늘어나 지난해 기준 가처분소득의 1.4배까지 폭증한다. 반대로 가계의 저축률은 빠르게 줄어들어 지난해 기준 2.5%를 기록하는데, 이는 저축률이 0%까지 추락했던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급상승해 6.5%까지 올라간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은 가장 저축을 안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더욱이 한국 가정들이 경기변동에 민감한 상품들, 즉 투기성 자산에 몰리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안정적인 저축성 예금이 줄어들고, 보험상품도 경기변동에 민감한 변액보험이 25%를 차지할 정도로 팽창했으며, 주식 직접투자도 2007년 기준으로 무려 21%가 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한국 가계 자산이 점점 더 ‘시장에 민감한’ 구조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곧바로 가계의 소비지출에 큰 영향을 주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제는 가계 운용이 경기변동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기변동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기로 충격에 빠진 가계가 갑자기 자산 운용 패턴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단순히 국민들의 고수익 기대, 투기 욕망이라는 심리적 요인으로만 투기 열풍을 해석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투기적 가계 운용 구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서히 수면 아래로 잠복하기 시작한 2009년 3월부터 즉시 그 실체를 다시 드러낸다. 유동성 부족으로 한국과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대거 회수했던 선진국 금융자본들이 다시 한국 주식을 매수하면서 주가가 올라가자 개미들은 이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가장 극적인 것은 이른바 공모주 열기였다. 지난 5월 하이닉스반도체의 일반 공모 유상증자에 무려 26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몰려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기존 하이닉스 주식 시가총액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려할 만한 것은 개미들이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행위가 부활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 잔액이 지난 6월18일 4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올해 들어 178%가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를 틈타 부동산 시장도 비록 국지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다시 거품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올 4월 0.7%로 플러스 반전된 뒤에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고, 특히 서울 강남권은 1.18%까지 오르면서 2006년 가격대 회복을 말하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7월, 월 단위로는 9년 만에 처음으로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 경매에 사상 최대 금액인 1500여억원의 뭉칫돈이 몰리기도 했다.

투기에 대한 잠재적 욕망이 건재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외환 마진거래(FX 마진거래) 열풍이었다. 환율 변동에 따라 설계되고 자기 자본의 50배에 해당하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전형적인 투기적 상품인 외환 마진거래에 올해 다섯 달 동안 무려 361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는데, 이 가운데 99%가 개인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개인의 90% 이상이 손실을 보는 것으로 막을 내렸고, 결국 금융위원회가 규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금 부활하는 투기 욕망이 이번에는 무엇으로 귀결될 것인가? 제2의 부동산 버블과 금융 버블을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녹색 성장 분위기에 편승해 세간의 우려처럼 ‘그린 버블’이라는 제3의 버블을 만들어낼 것인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공포를 불러일으킨 뇌관(금융 자유화와 부채를 기반으로 한 소비경제)은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존 버블 시스템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노동소득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고 실업률은 올라가는데, 교육비와 의료비 같은 경직성 지출은 늘어만 가고 있다. 노동소득에 기초하지 않고 금융적 투기수익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완하려는 구조가 온존하는 한 거품과 거품 붕괴, 공포와 탐욕은 끊임없이 교차될 것이다.(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한겨레(09. 08. 18) [박노자칼럼] 가난의 시대 

한국의 지배자들이 "선진화"를 들먹일 때마다 북한 지배자들이 이야기하는 “강성대국”이 생각난다. 북한과 같은 동북아의 최빈국에서 “강성대국”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기만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지만,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선진화”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선진화”에 대한 장밋빛 이야기 속에서 다수의 한국인들은 가난과 불안의 늪으로 점차 빠져든다. 물론 평균 가구 월소득의 절반도 벌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은 아직은 11%를 넘지 않으며, 저소득층은 약 26%, 적자 가구들은 29% 정도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빈곤화의 추세는 꼭 “맨 아래” 25∼30% 한국인만의 문제라고 본다면 오판이다.  

한 달에 200만∼250만원 정도의 “괜찮은 소득”을 올려 빈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명목상의 중산층이라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를 비정규직이나 기업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계속 밀리고 밀리는 동네가게 주인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져 간다. 고용 불안이 심화되고 쌍용자동차 해고자에 대한 잔혹한 탄압으로 새로운 “구조조정” 캠페인에 파란불이 켜지고 시장에서 대기업의 독점화 추세로 영세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성장 시대의 중산층은 점차 신흥 빈곤층으로 재편돼 간다.  

소득 기준으로 봐서 아직도 국내 가구의 58% 정도가 중산층이라 하지만 지금대로 중산층의 비중이 해마다 약 1%씩 줄어간다면 15∼20년 뒤의 한국은 “선진국”은커녕 브라질처럼 빈곤층과 준빈곤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미형 사회가 될 것이다. 오늘날 전임교수의 자녀가 연구교수직을 전전하는 평생의 박사급 비정규직이 되고 오늘날 정규직 공장 노동자의 자녀가 평생 각종 임시직과 계약직 이상을 얻지 못하는 “영구적 아르바이트생”이 될 확률이 높은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다수 절대빈곤의 상징이 보릿고개였다면 저성장시대 다수의 상대빈곤층의 상징은 마이너스통장과 현대판 고리대인 대부업체들의 “론”, 그리고 밀리고 밀리는 각종 사회적 보험료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 스트레스, 자살 충동일 것이다. “내가 언제 잘릴까”, “우리가 늙으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 “론 상황이 밀렸는데 이제 깡패들이 우리 가족을 괴롭히지 않을까”해서 늘 겁에 떠는 이들이 출산을 할 의욕보다 자살을 해버릴 충동을 훨씬 더 강하게 느끼니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대의 자살률은 앞으로도 “일류 국가 대한민국”의 상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전체 개인 보유 주식의 73%를 갖고 있는 이 나라의 “최고 1%”나 전체 부동산의 78%를 갖고 있는 “최고 10%”는 영원한 불안의 생지옥을 체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들의 귀한 자녀들은 유치원 때쯤이나 미국이 되든 중국이 되든 그 어떤 “높은 나라”로 건너가 “오렌지”의 본토 발음을 익히지 않는다면 자사고 등 국내 “귀족 학교”를 졸업하여 등록금이 2000만∼3000만원이 될 수도권의 “최고 명문대”를 다닐 것이다. 새로운 “귀족”과 “평민”, “천민”들의 거주지역과 생활코스, 음식과 문화 등이 철저하게 차별화돼 그들의 자녀들은 서로 만날 기회조차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씩, 한 발짝 한 발짝씩 단결력이 있는 “국민”도 “계급”도 없고 파편화된 개인들과 고착된 신분, 영구화된 불안만이 있는 사회가 돼간다는 것을 그 희생자가 될 다수의 한국인들은 과연 아는가? 아니면 토건과 수출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가? 이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가까운 미래가 우리에게 곧 보여줄 것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09.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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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18 13:33   좋아요 0 | URL
예측되는 그린버블, 신흥빈곤층 속에 '올바른 절망'만이 있을까요?

로쟈 2009-08-20 22:53   좋아요 0 | URL
사실 거짓(주입된) 희망들이 투기의 원천이지 않나 싶어요...
 

시사칼럼을 하나 읽고 스크랩해놓는다. 국가와 법이 지배계급의 도구에 불과하며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MB정권은 입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뒷북성 주장이지만, 이런 정도의 상식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형편이어서 퍼나르기로 한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에 이어서 MBC 접수 수순을 밟고 있는 MB정권은 계급투쟁을 어떻게 하는지 '지대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는 경구를 두고두고 확인해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다...   

시사IN(09. 07. 25) 마르크스주의 테제를 입증하려는 MB 

옛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는 국가와 법을 지배계급의 ‘도구’로 파악했다. 이에 대하여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테제가 너무 단선적이라고 비판하며, 국가와 법의 ‘상대적 자율성’ 테제를 제시했다. ‘상대적 자율성’ 테제는 자본주의 국가와 법 제도 속에 들어 있는 인권 보호·노동 보호·사회복지 등을 위한 법제는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산물이기에, 이를 지키고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실천적 시사를 던졌다.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언급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행태 때문이다. 근래 이명박 정권은 ‘실용’을 내세우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정치·사회 세력을 ‘적군’과 ‘아군’으로 선명히 나누고 적군에게는 축출과 진압이라는 몽둥이를, 아군에게는 자리와 혜택이라는 꿀단지를 안기고 있다.

멀리는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기소, 가까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전격 감사와 황지우 총장의 교수직 박탈,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의 임기 전 사퇴 등의 일이 있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누리꾼, 촛불 시민과 언론인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속에서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 노동 보호와 사회복지 등 사회·경제적 기본권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대표 시민단체가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기존의 보조금도 끊으면서, 정권 옹위에 앞장선 정체불명의 단체에게는 다액의 보조금을 주고 프로젝트도 발주한다.

한편 정부와 집권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의 사유를 제한하지는 않고 그 고용기한만을 연장해주려 애를 쓴다. 임금이 낮고 통제가 용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많이 쓰기를 원하는 기업에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어묵은 사먹어도 재래시장을 고사시키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확장을 막을 계획은 없다. 종부세·법인세·소득세 등 경제적 강자의 세금은 대폭 줄이면서, 간접세는 인상해 서민의 조세 부담을 높이고 있다. 거대 건설업체가 환호하는 4대강 개발사업은 이미 착수되었다. 지난주에는 집권당이 ‘날치기’라는 무리수를 써서 신문·방송 관련 법률을 통과시켜 정권 창출의 공신인 조선·중앙·동아 보수 언론사의 숙원을 해결해주었다.

권력이 하는 일은 원래 그렇다고 냉소를 보내고 말기에는 너무하다. 지배계급과 지지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계급의 도구’ 테제의 타당성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려 하는 듯하다. 대립하는 계급 이익을 조정하거나 절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트라시마코스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인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를 전 국민이 실감하게 하려는 모양이다. 미국 부시 정권의 구호인 “온정적 보수주의”에서 ‘온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의 구호인 “따뜻한 보수”와 “따뜻한 시장경제”에서 ‘따뜻함’을 찾기란 무망(無望)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통합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제 자기 길을 분명히 선택했다. 강자와 지지자를 위해서 철두철미 봉사하고, 반대자는 강경하게 억누르며, 약자에게는 립 서비스 수준의 위로와 빵 부스러기 수준의 배려를 베풀기로. 그러나 이 순간 기세등등, 환호작약하는 집권 세력에 당 태종의 명신(名臣) 위징(魏徵)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다.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 ‘역풍’의 기운은 벌써 느껴지고 있다. 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해 오만방자해진 이명박 정권의 일방통행은 필연적으로 ‘거리의 정치’를 불러올 것이다.

서민 대중과 진보와 개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왔다. 대의민주주의의 규정력(規定力)은 강력하다. “정권 퇴진”이 구호로 나오고 있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친 투표를 통하여 선출된 정권을 임기 전에 퇴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은 이명박 정권 동안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어떠한 정권과 정책, 그리고 어떠한 집권 전략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하고 실천해야 한다. 안경환 교수의 인권위원장 퇴임사를 되새겨본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좀 더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조국_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9.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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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09-08-02 17:09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랜만에 들립니다. 건강하시죠?^^ 글에 공감하지만, '칼을 벼리기'보다는 반성부터 해야 할 듯 싶은데요...

로쟈 2009-08-03 17:39   좋아요 0 | URL
적이 코앞에 있어서 '반성부터'는 어려울 듯하고요, '반성도 하면서'라고 해야겠어요.^^;

펠릭스 2009-08-03 06:26   좋아요 0 | URL
책의 겉표지는 이 대통령님의 글씨체인듯 한데요?

이 대통령님 콧날의 옆모습을 보셨던 가요?
그 분의 콧날 아래에 반듯하게 다문 입 모양에서 지긋한 의지력을 느낍니다.
냉탕과 온탕이 분명하듯, 포화가 쏫아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히 대처하는
전사의 분명한 의지력을 느낍니다.

무엇을 알고싶은 사람이, 첫 번째 사람에게 무엇을 물었을 때,
두 번째 사람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경우, 묻는 사람이 첫 번째 사람을 왕따
시키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느끼는 배신감.

박지성이 아인트후벤에서 뛸때 득점력이 떨어지자 관중은 야위합니다.
'지성'이 관절 수술 후 회복되어 득점력이 늘자 관중은 곧 '지성~'를 노래합니다. 그때 '지성'은 배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스포츠의 냉정함.

냉엄한 현실속에서 무언가를 원안대로 해내야 하지만 왜곡될 수 밖 없는 것들을 상상합니다. 함께한 집단의 특성이 자신의 몸에 냄새처럼 스며있습니다.

영부인이 준비한 식탁의 음식들을 맛있게 드신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공간이 다르지만 속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로쟈 2009-08-03 17:40   좋아요 0 | URL
국민과 민심을 '적'으로 간주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
 

내일모레면 죽산 조봉암 선생의 서거 50주기가 된다고 한다. 낮에 전철에서 이정우 교수의 칼럼을 읽고 알게 됐다. 칼럼은 중도파로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조봉암과 노무현을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비교해놓으니 닮은 점도 많다. 두 사람의 죽음은 '중도파의 비극'이면서 또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 터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죽산의 생애를 좀더 자세하게 조명한 한겨레의 칼럼과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중고등학교는 방학이어서 학생들에게 이런 건 교육하지 못하겠구나 싶으니, 유감스럽다...      

경향신문(09. 07. 29) 중도파의 비극, 조봉암과 노무현

7월31일은 죽산 조봉암 선생이 돌아가신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진보당 대통령 후보 조봉암을 이기긴 했지만 찜찜한 승리였다. 이승만 504만여표, 조봉암 216만여표, 얼핏 보기에는 이승만의 압승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투표, 부정개표가 있었다. 진보당은 투개표장에 참관인을 내기가 어려웠고, 일부 참관인은 폭력에 의해 추방되었다. 무효표가 무려 185만여표 발생했고, 조봉암 표를 이승만 표로 바꿔치기한 것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진보당에서 “득표에 이기고 개표에 졌다”라고 선언한 것이 억지나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당시 민심은 부패하고 오만한 이승만을 떠나 있었다. 이승만은 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약진하는 조봉암을 큰 위협으로 느꼈다. 자기에게 도전하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이승만이 기어코 황당무계한 간첩 사건을 조작해냈다. 양명산의 허위 자백에 기초하여 조봉암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서둘러 사형집행한 날이 1959년 7월31일이었다.

죽산 사거 50년을 추념하는 사회민주주의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전강수 교수의 글을 보니 조봉암과 노무현의 비슷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봉암은 해방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여 평등지권을 실현하고자 했고, 노무현은 토지 보유세를 강화하여 좀더 높은 차원에서 평등지권을 실현하고자 했다. 두 사람 모두 진보적 정치가였으며, ‘좌파 빨갱이’로 매도당한 점, 그리고 권력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죽임을 당한 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원칙·대의에 충실했던 중도파
과연 그렇다. 거기에 몇 가지 더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두 사람 다 중도파의 길을 걸었고 그러다 보니 좌우 양쪽의 공격을 받았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창당을 위해 힘썼고, 일본·중국·러시아를 오가며 불굴의 독립운동을 했고, 7년이나 옥고를 치렀는데, 해방 후에는 박헌영과 노선을 달리 했다. 미국, 소련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면서 민주, 민족적 중도진보 노선을 걸었다. 그리하여 수구, 보수로부터는 여전히 빨갱이 취급을 받았고, 극좌파로부터는 변절자, 기회주의자로 몰렸다.

노무현 역시 과거 미국 일변도의 외교를 넘어 자주노선을 추구했으며, 국내 정책도 수구·보수로부터는 좌파라고 공격당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매도당했다. 오직 극좌, 극우만이 기승을 부린 남북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도파의 어려움, 좌절을 보여주는 것이 두 사람의 인생행로다.

두 사람 다 원칙과 대의에 충실하여 손해를 보면서도 옳지 않은 길은 가지 않았다.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태도를 지녔다. 두 사람 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조봉암은 자신을 위한 구명운동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죽으면서 마지막 남긴 말이,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사는 정치를 했고,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노무현은 죽음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권력에 의한 죽음마저 비슷
노무현은 5월23일 새벽 길가에 난 풀을 뜯고는 마실 가듯이 태연한 걸음걸이로 죽음을 향해 갔다. 50년 전 7월31일 아침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던 조봉암은 호송 간수를 잠깐 기다리게 한 뒤 서대문 형무소 담장 옆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에 다가가 한참 동안 꽃향기를 맡은 뒤 담담히 형장으로 들어갔다.

이전투구로 소용돌이치는 정치판에서 언제쯤 이런 거인의 풍모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극좌, 극우가 아닌 중도의 길을 걷는 양심적 정치세력을 국민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죽산이 간 지 벌써 50년, 언제 그런 날이 올까. 오기나 할까.(이정우 | 경북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9. 07. 30) 조봉암 선생 50주기, 명예회복을  

이승만 대통령과 친일파들이 죽산 조봉암 선생을 ‘사법살인’한 지 7월31일로 50주년이 된다. 치열한 독립운동가, 평화통일론자를 권력에 중독된 이승만과 친일에서 반공으로 ‘성형수술’한 법조인들이 합작하여 처형한 뒤 반세기가 지났다. 그 억울함과 부당함, 불법과 폭력이 아직까지 신원되지 않고, 재심 조처와 독립유공자 인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죽산은 일제와 싸우다가 체포되어 손톱이 뽑히는 고문을 당하고, 신의주 감옥에서 7년을 복역하면서 혹독한 추위 속에 동상으로 손가락 7개를 잘라내기도 했다. 해방 이듬해 박헌영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민족진영에 가담하여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아 정부수립 과업에 기여했다. 그리고 “평화통일론”과 “고루 잘사는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이승만 정권에 도전했다가 정치보복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 죽산을 죽이기 위해 국무회의에서 세 차례나 ‘죽산 재판 문제’를 언급하여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고, 검찰과 법관들은 ‘국부’의 뜻을 받들어 총대를 멨다. 상고심의 재판장 김세완과 주심판사 백한성·변옥주 등은 총독부 판사로서 독립운동가들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고, 사형집행에 서명한 홍진기 법무장관 역시 총독부 판사를 지낸 인물이다. 해방 조국에서 총독부 판사 출신들이 독립운동가에게 애먼 누명을 씌우고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한 것은 반문명·반이성·반민족의 극치다. 1959년 7월이면 해방 9년이 지난 시점인데, 감옥에 가 있거나 은둔했어야 할 친일파들이 법복을 입고 독립운동가를 처단한 것은 참괴이고,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사법부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  

죽산은 투철한 독립운동가, 진보적인 평화통일론자, 양심적인 개혁정치인이었다. 이승만의 비현실적인 북진통일에 맞서 평화통일론을 제기하고 자유당의 부패한 독재권력에 대항하여 개혁정치를 주창하다가 용공으로 몰려 회갑을 두 달 남겨두고 처형되었다. 6·25전쟁 때는 공산군의 체포령이 내려지고 부인이 납북되는 시련을 겪었다. 제헌의회 헌법기초위원으로 선임되어 국민기본권 신장과 균형 있는 경제 조항을 신설하고, 초대 농림부 장관에 기용되어 농지개혁의 기초를 만들었다. 전쟁 때 농민들이 북한 인민군에 협력하지 않은 것은 죽산의 농지개혁 기초에 힘입은 바 컸다. 제3대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지는” 불운을 겪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교수대에 서게 되었다.

죽산의 생애에서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진보당의 정강과 정책은 당의 강제해산과 당수의 처형 이후 ‘불온’의 대상이 되고 망각에 묻혔다. 죽산은 유언에서 자신은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린 것이고 열매는 후대에 맡긴다고 말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 또다른 이 대통령 치하에서 평화통일운동은 용공좌경의 동의어가 되고 다시 북진통일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으니, 50년대의 트라우마가 반복되는지, 역사가 거꾸로 가는지 개탄스럽다.

브루노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할 때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는 당신들이 더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듯이 한 치 앞을 볼 줄 몰랐던 이승만과 수하들은 죽산을 죽인 지 9개월 만에 4월혁명으로 외국으로 도망치거나 투옥되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죽산 사건은 정치탄압이므로 명예회복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제 정부는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서훈하고, 사법부는 재심을 통해 선생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은 50년 묵은 산 자들의 책무이다. 삼가 죽산 선생의 명복을 빈다.(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09.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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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7-30 00:03 
    조봉암과 노무현 비교하기 — 경향 via 로쟈
 
 
드팀전 2009-07-30 02:19   좋아요 0 | URL
제가 진보당 사건과 관련해서 늘 떠오르는 또다른 인물 한명은 윤길중이라는 사람입니다.제 또래라면 그의 얼굴을 기억할 겝니다. 머리 희끗하고 얼굴 퉁퉁한.. 5공때인가 그 이후인가 국회부의장도 했었고 선상 파티에서 일본어 망언으로 유명한 적도 있었는데...대학때 그가 과거 진보당 간부였다는 것을 알고 묘한 생각이 들어서 여전히 그의 이름이 기억됩니다.죽산은 사형대에서 사라지고 그는 남아서 나름대로 반독재전선에 머물렀지만...결국 국보위와 5공을 거치면서 퇴락해갔었는데..얼마전에 보니 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거론되고는 하더군요...
사람이 인생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는 결국 그가 살아온 모든 삶을 단 한장의 스냅사진으로 남기는 것 같습니다.죽산도 그렇고 노무현도 그렇고...좋은 사진 한장 남기기 위해 살아서 용맹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1시간 가량 닦아주고 재워주고 그랬는데...그러다 아이는 자고 저는 또 멀뚱해졌습니다.

펠릭스 2009-07-30 11:41   좋아요 0 | URL
윤길중 전 의원 생각납니다.
1980년 제5공화국의 출범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입법회의 의원,
1980년 11대 국회의원선거로 민정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

로쟈 2009-08-02 12:32   좋아요 0 | URL
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펠릭스 2009-07-30 09:29   좋아요 0 | URL
내일이면 조봉암 선생 50주기(1959.7.31)로 사형집행(사법살인) 되었던데요.
1946년 조선공산당과 결별했고, 관련 가족사 또한 구구절절하겠습니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 진보.보수 성향에 적잖은 울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쟈 2009-08-02 12:32   좋아요 0 | URL
아직 살아있는 가해자들도 있을 듯싶은데요...
 

연구공간 지행네트워크의 첫번째 책이 나왔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난장, 2009). 지행네트워크는 "2007년 7월 30일, ‘행동하는 지식인’을 꿈꾸는 세 명의 ‘포스트 386세대’가 만든 대안적 연구공간"이다. 책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긴 서문이 수록돼 있는데, 현 시국과도 관련하여 대안지식공동체의 의의를 짚어주고 있어서 일독해봄 직하다. 지행네트워크의 홈피에서 옮겨왔으며, 알라딘에서는 '미리보기'로 읽어볼 수 있다.  

추천사: 비주류 지식인의 몽상과 우정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식인들에 의한 시국선언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그 규모가 아마도 제일 크고, 참여자들의 정치적 성향도 비교적 다양한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대학교수, 교사, 언론인, 종교인, 작가, 예술인을 포괄하는 이들 지식인의 시국선언은 전직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충격적인 사태에서 촉발된 측면이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명박 정권 밑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는 공통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을 바라보는 국가권력과 보수언론의 태도이다. 그들은 지금 시국선언 참여자들의 소속 학교, 기관, 집단 전체의 규모로 볼 때 이들 지식인의 목소리가 극히 부분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반응은 지금 국가권력이 얼마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며, 또 실제로 거기에는 상당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집권자나 보수세력은 국가권력의 전횡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폄하하기 위해서 언제나 ‘침묵하고 있는 다수’를 언급하는 오래된, 상투적인 습성이 있다. 그런 자세로 일관하다가 결국 처참하게 몰락하는 게 또한 권력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권력이 기대는 그런 편의적인 논리에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고도로 조직화된 산업국가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대다수 지식인들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해 있다. 그런 한에서 그들은 근본적으로 기성체제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있는 지식인들도 대부분 여기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시국선언 참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민주적 절차가 존중되는 좀더 부드러운 통치방식으로의 변화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근원적인 조건과 요인에 주의하면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급진적 체제변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부를 향하여 민주적인 절차를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게 덜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좀더 인간적인 통치체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려면 권력자의 단순한 선의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게 일차적인 과제이고, 그것이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어이없이 무너지기 시작한 게 과연 이명박만의 탓인가 하는 점이다. 소위 민주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권력이 교체되자마자 그렇게 쉽게 무너질 민주주의라면 그 민주주의의 뿌리가 실은 매우 허약한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위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이 나라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강화되기는커녕 실제로 훼손되어온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두 정부 역시 경제성장 논리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 일관되게 추진해온 데 주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본래 신자유주의란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의 자유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연대, 그리고 생존의 자연적 한계를 무시하는,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을 정책적으로 옹호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경제사상이다. 그런 노선을 채택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이상, 아무리 민주적 정부를 표방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여하한 사후적인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정책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책을 강구한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결국 땜질처방에 불과할 뿐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공동체의 전면적 해체, 환경파괴는 불가피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그대로 정치적 발언권에 있어서의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 필연적인 결과는 사실상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란 절대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체제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이 거침없이 활개를 칠수록 국가는 전면적으로 경찰국가 체제로 전락하기 쉽다. 이것은 간단히 생각해 보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는 흔히 국가에 의한 개입이나 공적 규제조치를 철저히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국가 공권력의 지원 없이는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 자유무역 등 신자유주의의 핵심정책을 현실화하자면 오랜 세월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해온 다양한 기본적 권리를 포함하여, 문명사회가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합의해 놓은 최소한의 환경규제까지도 짓밟거나 내팽개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권력은 시장권력의 이러한 요구에 응하여 법률을 만들거나 개정하고, 그리하여 법치의 이름으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가장 기초적인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 특공대의 투입도 주저하지 않는 만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국가가 쉽사리 경찰국가 체제로 전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을 반대한다는 것은 따져보면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따져보면, 신자유주의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게다가 작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체제의 붕괴와 그로 인한 범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유효성은 사실상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그 누구도 신자유주의의 강화를 통해서 이 파국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거나 옹호해왔던 이데올로그들 중에 기왕의 자기 신념이 더 이상 현실적합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의 자세를 표명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아직도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명백히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논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그들의 이 시대착오적인 우행(愚行)이 성공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노선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한, 국가권력은 저항세력을 통제하고 탄압하기 위해서 갈수록 강도 높은 강압통치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심대한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단명하기 마련이다. 지금 온 세계에는 약육강식을 부추기는 배타적인 경쟁 논리로는 조만간 문명사회 전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긴박한 인식이 광범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유독 한국 사회만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작년의 대규모 촛불집회-시위에 이어서 지금도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다양한 형태로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민중의 저항운동은 그때그때마다의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좀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이 사회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만 내세우면 모든 게 허용될 만큼 정신적 빈곤에 갇힌 열등사회가 더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인 징후를 구체적인 현실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시회현상의 의미를 좀더 깊이 있게,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거리와 광장에서 혹은 작업장이나 농성장에서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온갖 분노와 슬픔,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이 사회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규율해왔던 주도적인 가치와 제도와 관습이 총체적으로 크나큰 위기에 도달했음을 증언해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점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이 그렇다면 지금은 단순히 형식적인 차원의 민주주의의 회복 운운할 단계는 이미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들이 국내외적으로 직면하고 위기는 통상적인 의미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넘어선 총체적 문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그리고 국가 내부의 양극화, 도농격차, 인구・실업문제, 남북격차, 전쟁위협, 에너지・자원 고갈, 지구온난화라는 가공할 사태를 비롯한 범세계적 생태위기,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와 사회적 연대의 해체 등, 이 모든 위기는 실제로 서로 긴밀히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각기 따로 분리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 모든 위기는 결국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자본주의 문명의 종언이 임박함에 따른 위기로 해석될 수 있다.

돌이켜볼 때, 오늘날 사람들이 대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거의 모든 근대적 제도와 관습은 대부분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의 불가결한 일부로 형성・발달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산업 생산과 유통망, 화폐제도와 금융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 병원, 교통, 통신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서비스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을 뒷받침하고 유지하는 데 빠트릴 수 없는 요소들이다. 나아가서 정당정치, 대의제 민주주의 등 근대적 국가의 통치체제의 근본 골격을 구성하는 정치제도 역시 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성장해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산물인 한, 이것은 시작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종말을 맞을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총체적인 문명의 위기는 그러한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요컨대 작년의 대규모 촛불시위는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명백히 드러낸 현상이었다.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저녁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으로 모여들어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절규했던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든 무엇이든, 국회가 민중의 의사를 정당하게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과 정치제도 밑에서, 거리와 광장에서 아무리 강렬하게 표출된다 할지라도 그 민중의 목소리에 대한 경청을 권력자가 거부하는 한, 민중은 깊이 좌절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국가권력이 폭력수단으로 전방위적인 탄압을 개시하면 시민들은 퇴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와 우울 속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문제는 권력자의 인간적인 자질이나 정치적인 신념이 아니라,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지금과 같은 정치 시스템 그 자체인 것이다. 이 경우 권력자는 대통령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의회라는 집단 권력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현행의 정치제도로는 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란 기득권층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과두(寡頭) 통치 시스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자유시장 논리에 의거한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틀로서 확립되어온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그 역사적 유효성을 상실하고 쇠퇴기에 접어든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 역시 그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광범한 민중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근본적인 탈바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탈바꿈은 밑으로부터의 민중의 능동적인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혁이어야지,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권력배분에 집중된 부분적 개헌 따위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엄청난 역사적 대변환기에 서 있다는 근본적인 성찰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류 지식인은 자본주의 국가 체제에 기반을 둔 근대문명의 지속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고 제공하는 일을 수행하는 데 종사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이 대학이든 연구소든, 혹은 언론기관이든 가릴 것 없이 결국은 ‘싱크탱크’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할 수 있다. ‘싱크탱크’란, 간단히 말하면, ‘탱크’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움직이는 연구와 교육 및 선전기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지식인은 근본적으로 ‘탱크’로 상징되는 국가와 자본의 결합체를 위해 봉사하는 체제 순응적인 존재인 셈이다.

체제 순응적인 지식인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의 지층에서 요동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에의 욕구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기성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면 부분적인 수선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를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지적・사상적 모험에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질 가능성이 그들에게는 거의 없다.

역사의 변환기에 항상 그랬듯이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열망과 욕구는 체제의 변두리에서 싹트고 성장한다. 체제 비판적 지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근본적인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가 직면한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은 열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경제성장 논리에 알게 모르게 붙들려 있다. 그런 한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든 본질적으로는 주류파 지식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서 지금과 같은 폐색상황을 뿌리로부터 뛰어넘을 수 있는 지적・사상적 결단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전망을 열어줄 지적・사상적 에너지는 역시 비주류 지식인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지금 이 사회의 다수 민중과 마찬가지로 늘 생활의 불안정에 시달리고 현실의 압력 밑에서 계속해서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새로운 삶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꿈과 열망으로 결합된 가난한 젊은 지식인들의 진지한 사색과 탐구의 기록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세계의 변혁을 위한 거창한 설계도를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근저적(根底的) 변혁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그러한 변혁이 있기 위해서는 아마도 먼저 세계 전역에 걸친 사회적・생태적 대파국이 닥쳐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 어두운 전망 앞에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세계를 당장에 뿌리로부터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각자의 삶을 새롭게 하고, 또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삶의 변화를 위해서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의 성취에는 반드시 우정과 연대의 그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공동작업으로 엮어내는 지행네트워크의 젊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비타협적인 삶이 오로지 자신들 사이의 우정의 그물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우정의 논리가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몽상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기본적 구성원리가 될 수 있다는 가정 밑에서 여러 실천적 가능성을 성실히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아마도 가장 소중한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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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27 11:35   좋아요 0 | URL
행동하는 지식인(양심), 지적 공간에 머물러 있으면,
초원과 정맥의 바람을 느끼기 어렸습니다.
비주류 지식인에게 거는 기대가 큼입니다.

로쟈 2009-07-28 21:42   좋아요 0 | URL
저보다 더 기대가 크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