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박혜영 교수의 '시대를 읽는 문학' 칼럼을 옮겨놓는다.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정치가 토마스 제퍼슨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상업과 농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 흥미를 끈다(나도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장사꾼들의 자유'와 '농부들의 자유'를 대비시켜서 자유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하지만, 제퍼슨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썰렁'하다. <토마스 제퍼슨의 이해>(세종출판사, 2005) 정도인데 그나마 품절된 상태. 캠브리지 컴패니언 시리즈의 <토마스 제퍼슨>과 <게티즈버그 연설, 272단어의 비밀>(돋을새김, 2004) 등의 저자 게리 윌스의 <미국의 발명> 정도를 참고문헌으로 찾아놓는다. 윌스의 책은 번역되면 좋겠다.   

 

한겨레(09. 11. 07) '자본의 애완견’ 민주주의에 바치는 추도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는 게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인데 왜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야 하는지, 왜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반대하는데도 4대강 사업으로 여의도의 13배가 넘는 옥토를 막무가내로 절단해야 하는지, 나아가 왜 납세자들의 허락도 없이 내년도 급식비 지원을 갑자기 중단하여 25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당장 굶주리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른바 민주주의 시대인데 왜 데모스(demos)인 우리들은 이토록 무기력하게 되었는가? 우리 시대의 이 ‘불가사의’한 민주주의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의 경제사상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미국 민주주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부도덕한’ 민주주의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몬티첼로의 성인’으로 불렸던 제퍼슨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제3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건국 초기 미국 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경제체제를 전제로 한 것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국가를 건설함에 있어 어떤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제퍼슨은 이른바 ‘해밀턴주의자’로 불리던 중상주의자들과 대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공업에 토대를 둔 강력한 선진국을 만들려던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과 달리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제퍼슨은 소규모 농업에 토대를 둔 도덕적인 민주국가를 꿈꾸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농부들이야말로 가장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덕성스러운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덕성은 이 목적을 위해 형성되어야 한다. 사회와 관련하여 옳고 그름을 인식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도덕적 능력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도덕적인 사례를 농부와 교수에게 던져보라. 전자가 후자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농부는 교수처럼 인위적인 법칙에 이끌려 나쁜 쪽으로 빗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땅을 돌보며 사는 농부가 땅에 대한 아무 감각도 없이 인위적인 논리만 만들어내는 교수보다 훨씬 도덕심이 뛰어나다는 제퍼슨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사실 교수는 궤변만 늘어놓을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도덕능력이 없기 일쑤라는 것은 이미 지난번 총리지명 청문회에서도 다 드러난 일이다.

도덕적인 사회의 근간은 상업이 아닌 농업이라는 생각에서 제퍼슨은 해밀턴이 주장한 중앙은행 설립에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은행이 설립되면 주기적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통해 은행가들이 사람들의 돈을 다 털어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제퍼슨은 미국 독립의 정당성과 신생 민주국가의 정통성은 정치권력뿐 아니라 모든 경제권력도 인민에게서 나오는 그런 민주주의의 수립에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상비군보다도 은행이라는 기관이 우리의 자유에 더 위험천만하다고 믿는다. 만약 미국 인민들이 자신들의 화폐발행권을 사설은행이 통제하도록 허용한다면 처음엔 인플레이션으로, 그다음에는 디플레이션으로, 은행과 은행 주변을 맴돌며 성장한 기업들이 모든 재산을 인민에게서 강탈하여 마침내 아버지들이 정복한 미 대륙에서 그 자식들은 눈떠 보니 노숙자 신세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은행으로부터 화폐발행권을 빼앗아 원래 귀속되어야 마땅한 인민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  

주권재민과 함께 경세제민이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적시한 제퍼슨의 생각이 옳았음은 지금도 반복되는 월가의 파생상품 남발과 미국 은행의 도미노 파산공포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퍼슨의 소망과 달리 경세제민의 핵심인 화폐발행권은 결코 인민의 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달러 발행과 미국 통화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연방준비은행이 경세제민보다는 상업적 이해관계에 철저할 수밖에 없음은 12개의 준비은행의 우두머리 격인 뉴욕준비은행의 대주주가 바로 체이스맨해튼과 시티은행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퍼슨이 은행을 반대한 이유는 국가건 개인이건 간에 은행의 핵심 기능이 바로 돈을 벌기 위해 빚을 늘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국채건 사채건, 투자건 대출이건, 융자건 저당이건 간에 모든 빚은 원금 플러스 이자이기에 전체 통화량은 항상 화폐발행량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이자로 인해 처음부터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경세제민이 아닌 ‘위기관리’가 경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으며, 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데도 항상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인이건 국가건 언제나 무기력하게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게 된다.  

빚에 토대를 둔 경제체제가 지속되는 한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자유’와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경제는 당연히 사회를 부도덕하게 만든다. 제퍼슨은 “공공 부채만큼 정부를 그토록 타락시키고, 국가를 그토록 부도덕하게 만들 동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채는 외부의 어떤 적보다도 더 심각한 파멸을 내부에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이 부도덕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하고, 입법부, 사법부가 있다고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모든 권력의 집중을 막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유시장의 창녀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경제 권력부터 사람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것이다.(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09.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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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1-07 15:21   좋아요 0 | URL
한국형 워싱턴 Statemanship은 없을까요? 실은 '한국형'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지요.

로쟈 2009-11-07 17:28   좋아요 0 | URL
미국이 타산지적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미국 민주주의가 가지 않은 길...

게슴츠레 2009-11-09 13:08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인민주권을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의 측면에서도 사유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진도 LETS에서는 통화발행권이 모두에게 있다며 이는 허울뿐인 인민주권의 실질화라고 말한 바 있죠. 물론 그 현실성은 의심스럽지만 인민주권을 물질적인 차원에서 보충하려는 시도는 평가되어야 할 몫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자비나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보편적 복지, '기본소득'에 관련된 논의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좀 주목받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로쟈 2009-11-09 19:01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정치경제학이 필요한 것이죠. 사실 예전 교과서는 정치/경제라고 같이 묶여 있기도 했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박정희와 그의 유산 - 30년 후의 재검토'란 국제학술회의가 오늘 개최되었다고 한다. 미리 발표내용을 정리한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10. 19)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진보·보수 공동 학술대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내려온 진보·보수 학계가 다시 한 번 격돌한다. 그의 서거 30주기를 앞두고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19일 ‘박정희와 그의 유산’이란 주제로 여는 국제학술회의에서다.

보수 학자로는 함재봉 미국 랜드연구소 수석정치학자와 류석춘(연세대)·김형아(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교수가, 진보 쪽에서는 박명림(연세대)·임혁백(고려대)·김동노(연세대) 교수가 나서 박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유산 등에 대해 발표한다. 보수 학자들이 대체로 그의 통치 18년에 드리운 독재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 주력한다면, 진보 학자들은 박정희 숭배의 중핵을 구성하는 발전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함재봉 박사는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독재를 ‘역사적 보편’이란 차원에서 정당화하고자 한다. 통치방식이 정치적으로 바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논리다. 그는 박 정권의 성취로 효과적인 ‘국민(국가) 형성’을 꼽는데, 이런 정치질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법 같은 건 애초부터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근거로 함 박사는 마키아벨리나 홉스, 푸코 모두 근대 권력의 억압성을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든다.

한마디로 박정희의 독재는 “개인적인 도덕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민 형성의 근본적인 역설과 아이러니의 반영”일 뿐이라는 얘기다. 억압통치의 불가피성을 후발국가의 한계로 특수화하기보다, ‘근대 권력의 근본적 억압성’이라는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류석춘·왕혜숙 교수는 박정희 정부의 유산을 옹호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박정희식 ‘강한 국가’의 복원을 촉구한다. 이들이 볼 때 박정희 시대는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가 짝을 이루면서 전략과 실행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그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한 경우였다. 박정희 시대의 성취에는 국가의 능력뿐 아니라 국가의 전략을 수용하고 실행하면서도 일방적 독주는 견제했던 강한 사회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는 약해진 반면 사회는 여전히 강한 상태가 유지돼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강한 사회를 뒷받침할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에 맞서는 진보 쪽의 박명림 교수는 박정희 옹호론의 핵심 근거인 경제적 성취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박 교수의 전략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적 성취를 비슷한 발전단계의 국가들, 그리고 한국의 다른 정부들, 나아가 서로 경쟁했던 북한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는 집권 기간의 경제성장률, 정권이양 시점의 외환보유고, 수출 증가율, 물가 상승률 등을 비교한 뒤 박정희 정부의 성취가 동시대 대만·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는 물론이고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결코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짓는다.

박 교수는 다만 박정희가 김일성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승리에는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과 이후 체제 경쟁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 남한 내 민주세력의 도전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동노 교수는 박정희 장기집권의 사회적 동력을 비판적 시각에서 규명한다. 불법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는데도 장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억압이나 경제적 성취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통제전략 덕분이란 것이다. 김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이념 조작과 새마을 운동을 통한 전통적 통제질서의 복원이다. 이념으로는 민족을, 일상적 통치기구로는 마을 공동체를 앞세워 개인이 국가의 억압성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봉쇄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20일까지 연세대에서 계속되는 이번 행사에는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한국학 연구자들도 참가해 ‘박정희 노선’과 한국식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외국 학계의 평가와 시각을 소개할 예정이다. 박정희 시대를 조명하는 학술행사는 다음달에도 이어져 11월9일에는 진보·개혁 성향 학술단체와 싱크탱크가 주최하는 박정희 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린다.(이세영 기자) 

   

경향신문(09. 10. 18) “박정희의 유산 대기업 우선 지원·노동계 경시 여전”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 직전까지 갔던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수혈을 받으며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을 약속했다.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을 버리고 앵글로-색슨 신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평가받아온 박정희 모델은 어느날 갑자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에서 발전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는 그 시기상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반드시 상반되는가.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펴면서도, 박정희 모델의 핵심 유산인 토건국가 정책을 물려받았다는 점만 봐도 직관적인 의문이 든다. 이는 19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동아시아협력센터와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대학 한국학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박정희와 그의 유산-30년 후의 재검토’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탓 옌 콩 박사(런던대 SOAS)는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는 변했지만, 국가의 발전주의적 목표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발전국가 시기(60~80년대) 한국의 경제 관행이 이후 신자유주의 시기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우선의 산업 지원, 노동계의 이해 경시 등은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여전한 박정희의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탓 옌 콩 박사에 따르면 발전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를 분명히 구분하는 시각은 자본주의 발전국가를 국가의 주요 산업에 대한 신용우대 정책과 특정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 접근에의 특혜 부여 등 기업 주도의 성장과 동일시하는 좁은 이해에 근거한다. 발전국가는 그것이 가진 산업 발전과 후발주자로서 따라잡기 극대화에 대한 임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임혁백 교수(고려대)는 “60~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은 박정희의 현명하고 시의적절한 개발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일제 식민지 유산, 냉전의 최전선에 대한 미국의 호의적 헤게모니, 농지개혁 이후 조성된 도시 위주 발전 여건 등 다양한 외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전국가론만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마틴 하트-랜즈버그 박사(루이스앤클라크 칼리지)는 발전국가 전략이 그 발전적 잠재력을 모두 소진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모델이 통했던 것은 우호적인 국제환경이 도왔기 때문이지만, 97년 외환위기로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이 그러한 방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 그는 발전국가라는 외피가 이제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중국이라는 국가의 크기를 고려할 때 발전국가 모델의 효용은 떨어질 것으로 보았다. 결국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의 통제를 위한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메커니즘에 의한 새로운 전략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임혁백 교수는 사회복지 국가 모델을 그 새로운 전략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서구의 사회복지 국가 모델이 어떻게 한국 상황에 뿌리내릴지에 대한 논의는 미미한 편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가 잘 되면 행복해진다’는 신화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어로 ‘development’로 번역되는 ‘발전’ 또는 ‘개발’의 한국적 의미가 무엇인지 우선 논의되지 않고서는 30년 해묵은 박정희의 극복은 요원해 보인다.(손제민기자) 

09. 10. 19.  

P.S. 굳이 30주기가 아니더라도 박정희와 그의 유산에 대한 이해는 한국사회와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전공학자도 아닌 이상 무얼 '연구'할 형편은 아니지만 몇 권의 평전은 참고해볼 수 있겠다. 최근에 나온 조우석의 <박정희 한국의 탄생>(살림, 2009)은 호의적으로,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인물과사상사, 2007)은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책이고, 전인권의 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한 <박정희 평전>(이학사, 2006)은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춘 전기적 연구이다(지난달에 대출해놓고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 

    

박정희 체제에 관한 연구로는 어떤 책이 필독서인지 알지 못하겠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으로 기미야 다다시의 <박정희 정부의 선택>(후마니타스, 2008)과 김수행/박수호의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서울대출판부, 2007), 그리고 하용출의 <후발 산업화와 국가의 동학>(서울대출판부, 2006) 등이 내가 참고하픈 책이다. 거기다 요즘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감시와 함께 공부를 해야 하니 대한민국 국민 노릇도 어지간히 힘들다(이중국적자들은 속 편해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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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22 14:30   좋아요 0 | URL
김형아 교수는 '유신'과 '경제성장'을 '양날의 칼'이라고 하던데요. 박정희 개발 독재는 우리 국민성에 대한 우려(함석헌,장준하 등)의 소산인가 싶어요.

로쟈 2009-10-22 22:10   좋아요 0 | URL
저는 스탈린식 사회주의의 한국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Paparazzi 2009-10-30 09:48   좋아요 0 | URL
김형아 교수의 저작을 추천합니다.

로쟈 2009-10-30 22:37   좋아요 0 | URL
네, 목록에 넣어두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의 화제 중 하나는 MB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 상승이다. 40%는 넘어섰다고도 한다. 이런 조사에 한번도 참여해보지 않아서 어떤 방식으로 설문이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정상적인' 여론인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감추기 어렵다. 한국의 부유층이 40%가 아닌 이상, 여론조사가 사실에 근접한다면, 이건 체념 모드이거나 자학 모드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직 그런 체념/자학에 빠지기엔 너무 이르다(아직도 이 정부는 '바닥'을 보여주지 않았다!). 국민의 건강보다 미국 쇠고기 회사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정부기관의 행태는 그런 체념/자학에 편승하는 것일 테니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심판할 때다. 잊지 않기 위해서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10. 17) 국민보다 미 쇠고기 회사 챙기는 정부   

일본 농림수산성은 지난 1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수입금지 물질인 등뼈를 포함시켜 수출한 업체가 ‘타이슨 프레시 미트(Tyson Fresh Meats)’ 사라고 공개했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변질 등의 사유로 불합격되더라도 미국의 어느 업체가, 어떤 작업장에서 생산한 물량인지에 대해 ‘미국 업체의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우리 검역당국과 대조적이다.

우리 검역당국은 그러나 국내 축산농가가 항생물질 잔류 허용기준치를 위반하면 해당 농가의 주소 등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을 책임진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미국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하면서 국민 건강과 알 권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고, 형평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16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검역에 불합격한 미국산 쇠고기는 모두 15만3790㎏에 달했다. 24개 작업장이 94건을 위반해 작업장별 평균 위반건수는 약 4건에 달했다.

◇미국의 영업비밀 보호가 우선=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해 11월 검역당국에 미국산 쇠고기 작업장별 검역위반 세부내역 공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검역당국은 “해당 작업장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수출작업장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따라 민변은 지난해 1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역당국은 공개를 거부한 채 항소한 상태다.

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외국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주겠다는 정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작업장들의 위반 실태가 공개되면 미국 업체들이 한국의 수입위생조건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인데도 우리 검역당국은 되레 저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슬그머니 정보공개 지침 개정=강 의원이 확인한 결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행정소송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정보공개운영지침을 개정해 동축산물 수출입 합격 및 불합격 실적(회사명, 품목, 수량 및 수입일 등)을 경영·영업상 비밀보호란 이유로 비공개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검역당국이 국내 도축과정에서 잔류물질 위반이 적발될 경우 적발일자, 농가주소, 도축장명까지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강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출작업장의 검역위반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중잣대이자 미국에 대한 굴욕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2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면서 우리보다 수입위생조건이 훨씬 까다로운 일본은 검역당국의 홈페이지를 통해 위반업체의 상세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우리 검역당국도 과거에는 검역 불합격업체의 이름이나 작업장 정도는 공개했으나 요즘은 정보 통제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오관철기자) 

09.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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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18 16:10   좋아요 0 | URL
소비자의 알권리면에서 그 대상이 누군든 무관함이 국민정서다. 문제는 국내 정책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양자(수입자과 수출자)간의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현상중에 하나는 소비자의 대표격인 국내 정책위반자들의 팔이 밖으로 꺽인다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이는 해부학적으로 기형에 속한다.

또 하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출작업장의 검역위반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중잣대이자 미국에 대한 굴욕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발상" 에서 '사대주의'라는 말에 주목한다. 나라간 정상적인 교역은 경제적 효과가 우선시되는게 통례다.

미국,일본,한국의 도축시스템 수준 차가 통상혐상의 차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가능하면 빨리 국내 도축시스템에 대한 인력과 구조조정(위치,설계,운영 등)으로 국제적인 수준을 갖추며, 더 나아가서는 다른 수출품목간 간섭에 의한 피해가 없도록 해당 정책자들은 사명감을 갖는것이 바람직하다.

로쟈 2009-10-18 18:53   좋아요 0 | URL
기사에서도 비교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하는 일을 왜 한국 정부는 못 하는가란 불만을 갖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미국 정부도 외국의 수입 쇠고기에 대해서 그렇게 태만하게 처리하진 않을 테구요...
 

어제는 학회 발표회가 있었고, 오늘은 가족 모임이 있었다. 주말과 휴일에 이런 '행사'가 끼면 시간은 그냥 절로 간다. 책상머리에 앉으니 밀린 일들이 다시금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이왕 가는 시간이면 그렇게 3년 정도는 후딱 지나가면 좋겠다. 현 정권의 꼴 사나운 추태를 매일같이 접하는 것도 답답하고 역겹다. 지난주 터진 청와대 행정관의 한국디지털산업협회 기부금 출연 요구 건도 대표적인 권력남용 사례다. 필히 잊어먹지 말아야 하겠기에 관련기사와 칼럼을 스크랩놓는다.    



한겨레(09. 10. 08) “코디마, 직접 요구하다 안되니 청와대를 등에 업은 것 같다” 

청와대가 한국디지털미디어협회(코디마)에 거액의 출연금을 내도록 민간사업자인 통신 3사에 압력성 주문을 넣은 것은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모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코디마는 업체 자율기구다. 지난해 10월 아이피티브이(IPTV) 사업에 참여한 통신 3사 등을 주축으로 구성된 사단법인이다. 따라서 정부 부처나 청와대가 나설 명분이 없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떤 민간협회도 정부를 통해서 회비나 기금을 내도록 종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요구한 출연금에 대한 근거도 분명치 않다. 박노익 청와대 행정관은 3사에 모두 250억원을 낼 것을 주문했다. 협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 민간협회의 기금을 조성하는 이번과 같은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코디마와 유사한 성격인 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가 340억원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곳은 기금을 조성한 출범 당시에는 법적 근거가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정기구였다.

그런데도 청와대까지 나서 민간업체들한테 출연금을 요구한 것은 코디마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규씨의 위세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김씨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방송담당 언론특보를 맡는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지난해 한국방송 사장으로 유력했으나 언론특보라는 이유로 탈락한 뒤, 그해 10월 코디마를 만들어 회장으로 취임했다. 케이블티브이 업체의 한 간부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김인규 나 좀 보자’ 할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전했다.

코디마는 설립 당시 아이피티브이 3사로부터 20억원을 협회 운영비 명목으로 받았고, 이어 올해 하반기에 기금 조성을 한다며 거액의 출연금을 다시 요구했다. 통신업계의 한 임원은 “애초 코디마는 방통위에 기금을 조성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안다”며 “그 뒤 업체에 직접 요구를 하다 안 되니까 청와대를 등에 업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인규 회장은 이에 대해 “코디마를 설립할 때 통신사들이 기금을 만들어주기로 했었다”며 기금 조성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박노익 청와대 행정관도 “협회가 운영을 하려면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해 방통위에 근무할 때부터 계속 논의를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피티브이 업체들은 코디마의 운영상 문제점 등을 들어 협회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태도다. 2009년도 코디마 예산안을 보면 30억원의 예산 가운데 인건비와 일반관리비가 각각 13억원씩으로 돼 있고, 사업비는 2억원에 불과하다. 임직원이 19명인 점을 고려하면 1인당 평균 연간 급여가 7000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한 아이피티브이 관계자는 “정권 실세가 달라고 하니까 안 주고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다른 아이피티브이 관계자도 “청와대와 방통위가 역점사업으로 아이피티브이를 추진하고 있고 그걸 지원하기 위해 정부 주요 직책에 하마평이 돌았던 사람이 협회장을 맡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곤혹스러운 처지를 내비쳤다.(박창섭 이문영 기자) 



한겨레(09. 10. 12) 권력남용보다 더 답답한 것은 

청와대 행정관이 기업들에 아이피티브이(IPTV) 사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설립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코디마)에 100억 또는 50억씩의 거액의 기부금을 출연할 것을 독려했다 해서 말썽을 빚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아직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한 것은 물론 사업 전망 자체도 불투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업이 지지부진한데도 내부적으로 납부를 결정한 상태라 하니 말이 독려지 기업들은 압력이라 느꼈음이 분명하다. 해당 행정관은 관련 업무를 챙기는 일환이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행정관의 단순한 과욕이 아니라 권력 남용 사건이다.  

우선 청와대 행정관은 직급으로 그 영향력을 따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청와대는 권력의 핵심이고, 그 속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관의 기금 출연 요청을 기업들이 행정관 개인 의견으로 간주하고 쉽게 무시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해당 행정관은 아이피티브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으로 위원회 시절부터 관련 업무를 취급해왔다. 청와대와 방통위 모두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번 양보해서 개인의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방통위 출신 행정관이 정관사항이라며 민간단체인 협회의 재원과 그 운영까지 걱정해주는 오지랖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협회장의 존재를 배제하고는 이해할 수 없다. 김인규 코디마 회장은 대선 시절부터 현 정부의 방송 관련 실세로서 <한국방송> 사장 후보로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차기 방통위원장감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회장이 김인규씨가 아니더라도 코디마의 기금 모금에 행정관이 직접 움직였을 리는 없다고 본다. 권력 외부의 실세를 위해 권력이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것은 이에 대해서도 각자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김 회장의 부인과 달리 청와대는 협회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기금을 요청한 바가 없다는 김 회장의 말과 배치된다. 청와대의 말대로라면 협회 직원은 기업에 기금을 요청한 전후 회장에게 보고한 바가 없다는 것이니 김 회장은 허수아비 회장인가? 김 회장의 말대로라면 신규 진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협회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거액을 출연할 수 있다고 믿는 천진난만한 회장님이라는 소리인데 이런 분이 협회를 이끌어 갈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할까?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수많은 사건들에서, 대표적으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저지른 잘못보다는 잘못을 은폐하려 한 거짓말이 더 큰 화를 자초했음을 알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측면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더 답답한 것은 권력 남용 사건 그 자체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는, 아니 아예 그렇게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권력의 자세이다. 행정관 개인이 한 일이며 기금 규모를 얘기하지도 않았고 독려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의 반응이다. 현재 밝혀진 결과만으로도 권력 남용임이 분명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다른데, 적극적인 조사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을 가장한 대운하 강행, 용산참사에 대한 무대응, 미디어악법 관철 등 이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일관된 ‘비판 무시 전략 자세’를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권력 남용, 거짓말, 그리고 무대응. 그래서 이런 것까지도 기사화하지 않는 우호적 언론들로 언론 구조를 개편하려 그리 애쓰는 모양이다.(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0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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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12 08:52   좋아요 0 | URL
'코디마'의 회원업체는 40개이상이던데요. 민간협회지만 미디어시장의 통합된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해는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협회형식을 갖춘 민간 출현금에 힘입어 강력한 정치력을 갖춘 인물이 꼭지를 쥐고 있어 협회의 세계적인 경쟁력도 키우며 준기관화하겠다는 생각도 개입된듯 합니다.

geistes 2009-10-12 12:20   좋아요 0 | URL
필살의 독해력이거나 범접치못할 판단력이시네요.
농담이시죠?
'이씨 한국'이 말하는 (시장자율의)'세계적인 경쟁력'과 '준기관화' 사이의 넘사벽의 모순을 내면화하시고 계시는군요.

2009-10-12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일자 한겨레에서 박혜영 교수의 '시대를 읽는 문학' 꼭지를 스크랩해놓는다. 톨스토이 단편집에 실린 민담 <악마와 빵 한 조각>을 칼럼의 실마리로 삼고 있다. 안 그래도 국민소득 4만불 얘기가 다시 튀어나와 네티즌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러시아 민담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악마의 지혜'로 보인다.    

한겨레(09. 10. 10) '물질적 풍요’ 앞에 늑대가 된 인간 

옛날 러시아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이른 새벽에 밭일을 나간 농부는 아침식사로 빵 한 조각을 가져가 나무 밑에 놓아두었다. 어느덧 쟁기질이 끝나고 시장기가 돌자 농부는 나무 밑으로 다가가 빵을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자 마음 착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며 맹물로 허기를 달랬다. “할 수 없구나, 어쨌든 한 끼 굶는다고 죽진 않을 테니까. 누구든 그 빵이 필요했으니 가져갔겠지. 그 사람이라도 잘 먹으면 좋겠군.”

그런데 가난한 농부의 아침을 훔친 자는 바로 악마였다. 악마는 농부가 죄를 짓게 만들려고 빵을 훔쳤는데 가난한 농부는 빵도둑에게 욕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을 내리며 자신의 허기를 달랠 뿐이었다. 당황한 악마는 이 일로 대악마에게 야단을 맞게 되었다.

악마다운 지혜가 부족했다는 대악마의 꾸지람에 이번에는 다른 술책을 간구하였다. 악마는 농부의 빵을 훔치는 대신 농부의 빵을 늘려주기로 했다. 농부의 부지런한 하인으로 숨어들어간 악마는 홍수가 들 것 같은 해에는 고지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고, 가뭄이 들 것 같은 해에는 습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농부는 해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되었다.

풍요로운 수확으로 곡식이 남아돌자 악마는 이것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허기를 달래주던 일용의 양식이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술이 생기자 농부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먹고 마시며 놀았다. 이 술친구들은 처음엔 여우처럼 서로들 좋아하며 알랑거렸지만 곧 늑대처럼 변해 서로에게 사납고 거칠게 대하였다. 마침내 술자리가 끝날 즈음엔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들 돼지로 변해 모두 여기저기 흘리고, 소리치는 지저분한 짐승이 되어 있었다. 이 모양을 본 대악마는 몹시 흡족해하며 도대체 술에 어떤 악마의 묘약을 넣었기에 그토록 착하던 농부가 저처럼 짐승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악마의 대답은 이랬다.   



“제가 한 일이라곤 농부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확을 준 것밖엔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인간의 마음속에 항상 있으니까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밖에 없을 때까진 그 짐승은 잘 묶여 있지요. 한때 저 농부가 마지막 빵을 잃어버리고도 빵도둑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요. 하지만 필요를 넘어 남아돌기 시작하면 인간은 거기서 쾌락을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술’이라는 쾌락을 알려주었죠. 신이 주신 선한 선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묶여 있던 여우와, 늑대와, 돼지의 피가 다 뛰쳐나온 거지요.”  

러시아 농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이 민담은 <악마와 빵 한 조각>이라는 제목으로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실려 있다. 이 이야기에는 ‘잉여’를 바라보는 민중의 오래된 지혜가 잘 담겨 있다.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목적으로 악마는 두 가지 수단을 동원하는데 처음엔 결핍이, 다음엔 잉여가 그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예상과 달리 결핍은 농부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의 태도를 더욱 북돋울 뿐이었다. 가난한 시절의 농부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부족할 때조차도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고 달랠 줄 알았다. 오히려 농부가 타락하게 된 것은 너무 많이 생산하여 모든 것이 남아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과잉 생산에 취하기 시작하자 농부는 여우처럼 남에게 아첨을 하고, 늑대처럼 다른 사람을 난폭하게 대하고, 돼지처럼 혼자 독차지할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농부의 타락이 바로 결핍이 아닌 잉여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 다시 말하자면 필요를 넘어선 물질적 풍요는 신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악마의 선물이라는 옛사람들의 믿음은 생산과 잉여를 바라보는 토착적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시아경제 김성곤 기자]이명박 대통령은 7일 "경제소득(1인당 국민소득)만 2만 불이 넘었고 곧 3만 불이 된다"면서 "아마 머지않아 3만불이 되고 더 빠른 시간 내에 4만 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로 대다수 지배엘리트들은 생산과 잉여야말로 낙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가난을 치유하기 위해선 더 많은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저개발이나 미개발은 야만이며, 더 많은 식량·석유·자동차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문명이자 진보라고 계몽한다. 아마도 검소한 삶의 방식이 우리 시대만큼 비웃음의 대상이 된 적도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시대만큼 필요와 잉여의 기준이 사라지고, 소비와 낭비의 경계가 흐려진 적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배엘리트들의 주장과 달리 마침내 풍요와 잉여의 시대가 도래하자 오히려 영혼은 타락하고, 사회는 사막처럼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겨레> ‘왜냐면’에 저소득층에 대한 학교급식비 지원이 너무 야박하다는 김호정 교사의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 가운데 누구에게 급식비 지원을 해줄 것인지를 오직 몇 가지 규정에만 맞추라는 것도 야만적이지만, 더 나아가 무료급식 대상 인원을 미리 제한하여 그 가운데 누구누구를 골라내라는 식의 정부 방침은 그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짐승 같은 짓이었다.  

물론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재 학교마다 ‘학력향상 중점학교’니, ‘방과후 시범학교’니 해서 많은 지원금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일선교사들이 정부가 정한 인원보다 추가로 올린 서울시내 300여명의 학생들에게 돌아갈 급식비는 없었다. ‘저소득층’이니, ‘무료급식 대상자’니 하는 말도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난폭한 용어지만 그 대상에서마저 일부를 솎아내는 게 정부 방침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보니 지금 소위 개발주의자들이 제시하는 풍요사회란 결국은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이끌 악마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그런 풍요사회 말이다.(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09.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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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0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0-10 19:18   좋아요 0 | URL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읽고 "Don't worry, be happy" 말의 의미를 느낀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탁석산/창비)'와 비슷하네요. 교육행정관료의 소신있는 업무수행이 필요하겠는데요.

로쟈 2009-10-10 23:14   좋아요 0 | URL
한국인의 현실주의를 지적했는데, 때론 천박함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