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래된 새책'을 적는다. 단연 눈에 띄는 책이 나와서인데,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출세작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 개역판이 그것이다. '20주년 기념판'을 개역본으로 다시 내면서 체제도 분권 형태에서 합본으로 바꾸었다(그 결과 1128쪽짜리 양장본이 탄생했고 책값도 5만원에 이른다). 


"20세기 과학 교양서의 전설로 자리잡은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이 개역판으로 출간되었다. 초판 번역자인 박여성 교수와 함께 번역가 안병서가 새로 번역에 참여하여 번역의 정확성을 더했다. 또한 'GEB 20주년 기념판 서문'이 추가되었으며, 상하권으로 출간된 초판이 한 권으로 합본되었다. 바흐의 카논, 에셔의 그림, 괴델의 정리를 관통하는 '이상한 고리'를 통해서 우리의 의식이라는 신비를 파헤치는 이 책은 1979년에 처음 등장했을 때 대학교를 중심으로 열렬한 신봉자를 양산했으며,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저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교수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 통찰을 통한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질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인공지능의 출현이 가까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 더욱 흥미롭게 우리가 직면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과학 교양서의 전설'이면서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까지 오른 책이라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책의 화제성은 알고 있었기에 나도 번역본이 나왔을 때 원서와 같이 구입했지만 읽다가 그만둔 기억이 있다. 쉽지 않은 내용이기도 했지만 오역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유감스럽게도 역자의 거의 모든 책이 그렇다). 이번에 얼마나 번역이 개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나왔기를 기대한다. 


 

<괴델, 에셔, 바흐>의 원서를 갖고 있지만, 또 어느 곳에 보관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형편이라 20주년 기념판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새 번역본이 괜찮다면 이 20주년 기념판도 구입을 추진해봐야겠다. 한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교유서가, 2017)의 저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와는 성만 같고 이름이 다르다(나는 한때 같은 인물인 줄 알았다). 더글러스의 책으로는 공저로 <이런, 이게 바로 나야!>(사이언스북스, 2001) 정도가 나와 있다. 이 책 역시 원서도 갖고 있다. 나의 책 수집벽에 가끔은 스스로도 놀란다...


17.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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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 2017)가 전면 개정판으로 나온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에서 엮고 황석영이 기록한 책으로 풀빛출판사에 나온 게 1985년이었으니 32년만이다. 분량은 두 배 가까이 증보되었다. 기억엔 나도 대학 1학년 때 과방에 있던 책으로 읽은 듯하다. 안 그래도 왜곡과 변명으로 가득 채워진 <전두환 회고록> 출간으로 80년대에 기억을 다시금 불편하게 상기하게 되었는데, <전두환 타서전>(그림씨, 2017)과 함께 시대의 기억을 바로잡아줄 책이 출간돼 반갑다. 


"32년 전의 초판이 ‘폭도들의 무장난동’으로 왜곡된 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면 본 증보판은 2008년 보수정부 집권 이후 갈수록 노골화된 항쟁의 진상과 참여자에 대한 날조와 폄훼에 대항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초판이 전두환정권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폭로함으로써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것처럼 증보판은 박근혜정부 탄핵 이후 극우수구세력의 역사왜곡에 맞서 우리 현대사를 바로 세우고 평화와 인권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30년 전에 읽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감회를 갖고서 다시 읽어볼 수 있겠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로만 광주항쟁을 접한 젊은 독자라면 적잖게 나와 있는 '오월' 관련서들도 이 참에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미국의 한국 현대사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의 추천사가 책의 의의를 잘 짚어준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지금까지 나온 광주항쟁에 관한 여러 기록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 고전적인 저술이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아직까지도 광주항쟁을 둘러싼 한국사회 내부의 정치적 관계나 국제적인 역학은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하는 개정판은 그런 의미에서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과 지난겨울 한국의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촛불혁명이 가져다준 문제들에 얽혀 있는 상관관계를 깊숙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한국문제에 관심 있는 미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현대사에서 광주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광주의 비극이 서울과 워싱턴 두 나라 정치권력의 합작품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한편, 절반만 번역되고 만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완역을 기대할 수 없다 치더라도 대중판으로 펴낸 <한국전쟁>(2010)은 왜 번역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한국전쟁에 관해서라면 더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는 얘기인가?..


17.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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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과 '오래된 새책' 사이는 때로 멀지 않다.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면 곧 '오래된 새책'이 되는 것이기에. 작가 서정인의 연작소설 <달궁>도 그러한데, 오래 전에 '사리진 책'이었다가 이번에 '오래된 새책'으로 신분을 변경했다. <달궁>(최측의농간, 2017). 세 권이 개정 합본판으로 나온지라 짐짓 첫 데뷔 같은 모양새다. 


"실험적인 소설쓰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며, 한국 소설의 지평을 질적.양적으로 확장하는데 기여해온 작가 서정인의 독특한 장편소설. <달궁>을 <달궁: 박달막 이야기>로 새롭게 편집하여 개정 합본판으로 선보인다. <달궁>은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저자 특유의 형식 파괴적 실험이 본격적.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출간 편의상 한 권씩 분리 되어 출간 되었던 세 권의 <달궁>(초판 <달궁>, <달궁 둘>, <달궁 셋>)에 흩어져 있던 모든 소챕터들(각종 문예지를 통해 수년간 33편의 연작 중.단편 형식으로 발표된 바 있는)을 <달궁: 박달막 이야기>라는 단일한 제목 아래 한 데 묶어 작고 가벼운 판형으로 새로이 단장하였다. 이번 개정 합본판 발간을 위해 저자는 직접 전체 원고를 면밀히 검토, '박달막 이야기'를 부제로 설정하였으며 초판에 있던 일부 오식을 바로 잡고 다수의 문장을 개작하여 작품 완성도에 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하도 오래 전이라 <달궁>(1987)과 <달궁 둘>(1988)은 아예 검색도 되지 않고 <달궁 셋>(1990)도 이미지는 뜨지 않는다. 당시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고, 그에 대한 연구 논저들도 출간되었지만 정작 작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오래 되었다는 것도 사실 이번에 나온 <달궁> 덕분에 상기하게 되었다. 


<달궁>을 특별히 기억하는 건 내가 대학 1학년이던 1987년에 문예지에 연재되고 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몇 종의 계간지 표지와 목차는 대학 구내서점에서 얼마든지 들춰볼 수 있었던 때다(아마 거의 매일 들렀을 것이다). 그렇다고 단행본도 구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서정인의 작품은 아마도 <강>에 실린 단편들 정도 읽어본 거 같은데, 그것도 막상 확인해봐야 하는 수준이다. 아무려나 거의 30년만에 다시 나온 덕분에 <달궁>의 두께가 30년 세월의 부피감으로도 여겨진다. 초판 <달궁>의 표지는 이랬었다. 



한편 책을 낸 최측의농간은 절판된 책을 전문적으로 다시 펴내는 출판사다(출판사명은 아무리 봐도 장난스레 지은 것 같다). 


 

예전에 고형렬 시인의 산문집 <은빛 물고기>에 대한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 이후에도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과 이연주 시인의 시전집을 더 출간했다. 그렇더라도 별로 수익이 날 것 같지 않은 재출간인데, <달궁> 역시 그렇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것도 소소한 감동 거리다....


17.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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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길에 PC방에서 작업하다가 눈이 피로하여 잠시 한눈을 판다. 신간 가운데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의 <게으름뱅이 정신분석>(깊은샘, 2006)이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펄북스, 2017)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기에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해놓는다. 사실 이 책의 2006년판도 개정판이고 초판은 각각 1992년(1권), 1995년(2권)에 나왔었다. 나는 초판과 개정판을 모두 갖고 있는데, 그건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 강의에 유익한 내용을 싣고 있어서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밖에 저자의 독특한 '성적 유환론'도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이번에 나온 건 새 번역판이어서 또 구매를 망설이게 한다. 게다가 완역본이라니 솔깃하다. 나 말고도 이 책에 주목한 독자가 있었다는 게 다행스럽다(새 번역본의 출간을 결정한 관계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은 환상에서 비롯되었다!' 기시다 슈는 단언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능을 잃어버렸고 이후 역사와 문명을 만들었다. 역사와 문명은 그 본능이 제거된 자리를 메우려는 방편일 뿐이다. 국가와 사회, 종교, 결혼, 가족 제도도 모두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인간이 자연의 본능을 잃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은 무가치한 것이다. 왜 우리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으며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 ‘심오한 의문’에 기시다 슈는 유머와 기발함을 바탕에 깔고 ‘명쾌한 통찰’로 독자에게 깨달음을 안긴다. 이 책은 <게으름뱅이 정신분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는 발췌본으로 엮어져 소개되었던 책인데 이번에 새로운 번역과 감수를 거쳐 원서에 충실한 ‘완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난다." 

 

안 그래도 지난주와 이번 주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강의했고, 강의할 참이다. 그간에 여러 차례 강의한 작품들인데, 반복 강의의 이점은 차츰 작품 해석의 영점 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다룰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가장 근접한 해석에 도달하는 게 강의의 목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두 작품에 대해서는 나대로의 견해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일부는 기시다 슈에게 빚지고 있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다자이 오사무나 미시마 유키오의 독자라면 흥미를 갖고 읽어볼 만하다...

 

17.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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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간된 책이어서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하지만 '오늘의 발견'에 해당하는 책은 해럴드 맥기의 <음식과 요리>(이데아, 2017)다. 같은 제목으로 2011년에 나왔었는데, 이번에 역자와 출판사가 바뀌었다. 표지도 훨씬 세련되게 바뀌었고.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이 부제. 



요리책은 관심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압도적인 분량과 과감한 시도에 눈길을 주게 된다. 무려 1260쪽 분량이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룬다지 않은가. 

"저자 해럴드 맥기는 ‘주방의 화학자’ 또는 ‘요리의 과학자’로 불린다. 평생 요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일, 그 연구 결과를 가정과 레스토랑의 주방으로 돌려보내 접시에 구현하는 일을 해온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저술가이다. 이 책의 큰 장점은 지식의 방대함에 있다. 그렇다고 전문적 지식을 겸비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가 문학 또한 전공했던 배경 탓인지 여러 주제와 소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무엇보다 ‘백과사전’식 건조함이 아니라 여타 교양 책에서 보여주는 친절함에 대해 읽는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 1984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뒤 증보된 개정판은 2004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증보된 개정판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단권 규모로는 이 이상의 책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요리사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책인 듯한데, 박찬일 셰프의 추천사는 이렇다. 

"요리사들은 이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하는 대신 맥기의 책, 바로 이 책을 펼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런 행동을 ‘요리사의 진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음식과 요리>는 요리계의 노벨상이라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았지만, 만약 노벨상에 과학저술상이 따로 있다면 당연히 이 책이 수상을 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 주변의 현명한 요리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위대하며, 비교 불가능한 책이다."

비교불가능한 책이라니 장서용으로라도 꽂아둘 만하다. 그나저나 책값은 3인 가족이 레스토랑에서 포식할 만한 비용이군...


17.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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