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길에 전철에서 문화일보의 북리뷰를 읽었는데 가장 크게 다루어진 책은 의외로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이학사, 2007)이다. 예전에 <정자전쟁>(까치글방, 1997)으로 처음 소개된 바 있고(이전에 한번 페이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의 재판이 나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리뷰를 읽어보니 이번에 나온 건 개정판 원저의 번역이다. 국역본 분량으론 398쪽에서 405쪽으로 거의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크게 보태진 내용은 없어 보이지만(신간은 2006년 증보판의 번역임에도 알라딘에는 1996년판이 원저로 기재돼 있다. 설마 출판사의 실수일까?). 어쨌든 같은 역자가 수고했고, 대신 출판사는 바뀌었다. 기억엔 재미에 비해서 그다지 팔리는 책이 아니었는데, 증보판 번역은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표지 이미지만을 놓고 보자면 이제나그제나 유치하긴 마찬가지지만. 제목도 '스펌워즈'가 낫지 않았을까? <정자전쟁>을 전철에서 읽을 수 있나?)...

문화일보(07. 02. 16) 불륜·자위 행위도 ‘정자 전쟁’의 전술

“여자와 그 애인이 바닥에 쓰러져서 삽입을 시작하기 직전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 여자의 남편이 앞선 주말에 둘의 주기적 성교 동안 통틀어 6억 마리의 정자를 주입했다. 대부분은 다양한 분출물을 통해 방출됐지만, 그렇다고 해도 얼마간은 아직 그녀의 몸 속에 남아 있다.(중략) 여자의 애인은 삽입 행위를 몇 번 하지도 않고 여자의 질 안에 자신의 정액고를 비축했다. 여자의 자궁경부는 정액고에 잠겨서 그대로 머물러 있고 남자의 전위부대는 자궁경부 점액 경로로 물결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군대는 약 5억 마리의 정자잡이(killer sperm)와 약 100만 마리의 난자잡이(egg getter), 약 1억 마리의 방패막이(blocker)로 이뤄져 있다. (중략) 누구 편이 먼저든, 어느 한쪽의 정자잡이가 상대의 정자와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바로 전쟁 경보가 내려진다. 한 시간 가량은 적진의 정자를 가급적 많이 찾아내기 위해 쌍방의 정자 모두가 평상시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친다. 목표는 머리에 쓴 모자 속의 치명적인 혼합물질로 상대방의 난자잡이와 정자잡이한테 독을 놓는 것이다.… 정자잡이가 적군의 정자를 발견하면 자신의 치명적인 머리 끝으로 상대의 허약한 옆구리를 찔러서 부식성 독을 바른다. 몇 차례 찌르고 난 뒤에는 상대 정자가 죽도록 내버려두고 계속 전진한다….”

다소 긴 인용문이지만, 책의 핵심을 담고 있는 대목이다.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특히 경쟁자(다른 남자의 정자)와 싸워야 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부대와 무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히 운용해야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정자잡이와 난자잡이, 방패막이로 이뤄진 부대는 각각의 사명을 띠고 여자의 몸 속에서 대오를 지어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를 촉발시킨 이는 여자 자신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본능적으로 경쟁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책은 남자와 여자의 섹스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들을 철저하게 진화생물학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남녀의 불륜과 자위 행위, 오르가슴과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온갖 성적 행동과 심리상태를 생물학적 동기로 분석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최상의 조건을 지닌 유전자와 결합시켜 되도록 많은 후손에게 이어지게 하려는 종족보존의 본능에 따라 인간의 모든 성적 행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의 부정 행위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이득을 안겨줄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남자의 경우, 배우자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많이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여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최상의 유전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배우자가 알아차릴 경우 외도로 인한 손실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 요는, 외도를 행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한 자들이 종족보존에 보다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
 


저자의 이 같은 견해는 결코 불륜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오로지 종족보존의 차원에서 인간의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본능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진화생물학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저자는 심지어 “상황을 오판해서 정숙해야 할 때 부정을 저지르고 부정을 행하는 것이 나을 때 정절을 지키는 것 역시 실수”라며 “대 잇기 게임에서 최선은 정확하게 판단하고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사회에서 수치스러운 짓으로 비난받는 자위 행위는 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일까. 어떻게 자위 행위가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남자의 자위 행위는 정액을 그냥 방출해버리는 무용한 짓에 불과한 게 아닐까. 저자는 “남자의 몸은 자위 행위와 성교를 구별할 줄 안다. 각각의 사정 물질은 동일하지 않다”며 “남자가 자위 행위를 할 때에는 지난번 사정을 한 이래로 (생산된) 시간당 약 500만 마리의 정자를 내보낸다. 이는 방패막이, 정자잡이, 난자잡이로서의 유효기간을 초과한 정자의 수치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즉, 남자가 성교를 갖는 사이사이에 자위 행위를 한다는 것은 보다 젊고, 역동적이며, 전투력 넘치는 정자를 여자의 몸 안에 주입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남자에게 최상의 정책은 일정 시점을 넘어선 늙은 정자를 자가 사정으로 스스로 내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이 자위 행위의 기능 중 한 가지다.

책은, 일반적인 과학 저술과는 다르게, 생동감 넘치는 사례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남녀의 섹스에 얽힌 37개의 장면들은 마치 소설의 한 대목처럼 구체적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까지 치밀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제시하고, 그 같은 사례에 내포돼 있는 정자(유전자) 전쟁의 이면을 들춰낸다. 부부간 주기적인 성생활뿐만 아니라 자위행위하는 여자의 모습, 외도의 현장, 집단 성교,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성과 관련된 대부분의 양상들이 그려진다(*책의 부제가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외설적이지 않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순간을 철두철미하게 파고들고 있는 책은 과학 저술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심리적으로도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선 1997년 처음 번역·소개됐으나 원서 개정판이 나온 이후 새로운 내용들을 추가해 이번에 새롭게 선보였다.(김영번 기자) 
 
07.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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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되는 '과학을 읽다'는 내가 즐겨 읽는 코너이다. 지난해 줄기세포 관련보도 기자상까지 수상한 김희원 기자가 거의 전담해서 '과학책 읽어주는 기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번주에는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김영사, 2006)이 도마에 올랐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2년에 출간된 바 있고, 나는 그 초판을 갖고 있다. 한데, 몇 가지 오역에 대해서 지적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이번에 나온 건 소위 '전면개정판'이다(원저의 개정판이란 얘기가 아니다).

판형도 하드카바로 바뀌고 페이지수도 130쪽 가량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내용이 증보된 건 아닐 텐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개정판은 지난 초판보다 훨씬 매끈하게 나왔고 구매욕구도 자극한다. 나는 지난달부터 이 '오래된 새책'을 다뤄보려고 했지만 마무리를 못 짓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리뷰기사를 접하게 되어 반갑다. 다음주까지 연재될 기사를 이 자리에 모아놓도록 하겠다. 책의 부제가 '성과 인간 본성의 진화'이다. 참, 제목은 왜 '붉은 여왕'인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붉은 여왕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저자 리들리가 1장의 에피그라프로 인용하고 있는 대목:

가장 이상한 점은 나무들과 그 주변의 것들이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주변의 풍경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들이 우리를 따라 움직이는 걸까"'하고 앨리스는 어리둥절하게 생각했다. 그때 여왕은 앨리스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기나 한 듯이 이렇게 외쳤다. "더 빨리! 잡담하지 말고!"

내가 '사냥'도 자주 안 나가는 주제에 이런 잡담(페이퍼)이나 쓰고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1. 09) [과학을 읽다] 붉은 여왕 上

‘남성의 대화는 공적(公的)이며, 집에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경쟁적이며, 주의를 끌려고 한다. 여성의 대화는 사적(私的)이며, 큰 모임에서는 입을 다물고, 협동적이고, 안심시키려 하고,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하는 경우도 있다.’

‘포르노 영화는 남성을 겨냥한다. 대체로 여러 명의 여자에 의해 남자의 욕망이 충족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경설명이나 유혹의 과정은 가차없이 생략된다. 반면 연애소설은 여성을 위한 것이다. 사랑, 서약, 가정사, 관계를 형성하는 내용이 주된 것이다. 섹스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남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의 느낌이 주로 묘사된다.’

남녀 본성의 차이는 시시한 통념이라거나, 차별적인 성 역할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왔다면, 영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쓴 <붉은 여왕>(김영사 2003년 초간 발행)은 충격에 가까울 것이다. 그저 양육방식의 문제였다면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시리즈와 같은 부부관계 상담서적이 그토록 공감을 얻으며 성공했을 리는 없었을 것 같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극도로 예민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면서도 현재 인간의 모습이 성(性) 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하지만 생물 종과 인류 문화를 넘나드는 <붉을 여왕>을 읽고 나면, 세련되게 포장된 행동들이 사실은 수백만년 전 조상으로부터 전수받은 유전자의 산물임을 간파하게 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종의 짝짓기의 목표는 나의 유전자를 번성토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같은 목표를 위해 동맹하는 남녀는 불균형적인 투자를 한다. 특히 포유류가 그렇다. 수컷은 몇 초의 짝짓기만으로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암컷은 오랫동안 새끼를 몸 속에서 키우고 젖을 먹여 길러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녀 성 선택 전략의 차이를 낳는다. 즉 남성은 가능한 한 수많은 여성과 짝짓기를 하는 것이 유전자를 퍼뜨리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여성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을 까다롭게 고르게 된다.

부모가 육아의 책임을 나눠 진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조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남성은 수렵 채집인 시절 이후 멀리 사냥을 나가 먹을 것을 구해오고 배우자와 자식을 먹이는 역할을 해왔으며 여성은 집 가까운 곳에서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과일을 채집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사람의 일부일처제는 일부 조류처럼 자녀의 양육을 분담하고자 하는 남녀 전략의 결실이다.

하지만 남성은 틈만 나면 일부다처제를 추구한다. 권력과 부를 가진 남성이 하렘(haremㆍ많은 여자를 모아놓고 곳)을 구축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한 널리 퍼뜨리려는 것은 역사상 수없이 확인된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아닌, 결혼을 못하는 대다수 피지배 남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은 현대에도 약 5분의1이 혼외정사로 태어난다는 연구가 있다. 여성은 혼외정사의 경우 남편이 아닌 정부를 통해 우수한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된다. 남편은 그저 자녀 양육에 헌신적이면 그만이다.

이러한 진화생물학적 해석들은 페미니스트들의 강력한 비판에 처할 수 있다. “남녀의 본성은 생물학적으로 그렇다”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다 보면 유전자들이 펼치는 치열한 경쟁과 교묘한 전략에 빠져 사회에서의 남녀의 지위는 잠시 잊게 된다.(김희원 기자)

한국일보(07. 01. 16) [과학을 읽다] 붉은 여왕 下

문화적 차이나 시대를 초월해 남녀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수렵인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음을 <붉은 여왕(The Red Queen)>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런데 애초에 성(性)이란 왜 존재하는 것일까? 효모처럼 인간도 그저 ‘중성’이라는 1개의 성만 있어서, 배에서 싹을 틔워 내 아이에게 내 유전자를 절반 아니라 100% 물려준다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리고 세상은 또 얼마나 평화롭고 단순해질 것인가. 연애감정에 시달리는 청춘도, 결혼 조건을 저울질하는 머리싸움도, 조건을 따지다 결국 치닫게 될 치정사건도 싹 사라질 테니 말이다. 성을 이해하려면 ‘붉은 여왕’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붉은 여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붉은 여왕은 전속력으로 뛰지만 배경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늘 제자리에 머문다. 이것이 진화를 바라보는 최근의 패러다임이다. 과거의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듯 생물은 진보의 방향이나 우등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늘 바뀌는 생물학적 환경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아갈 뿐이다.

성은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생물의 생존에 피튀기는 전쟁은 기생생물(병원균)과 숙주의 싸움인데 성이란 기생생물과의 싸움에 대비한 무기경쟁의 핵심 전략이다. 성의 본질은 유전자를 섞는 것이다. 단지 난자의 유전자와 정자의 유전자가 만나 섞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대다수 생물)은 정자 또는 난자를 만들 때, 먼저 부모로부터 받은 두 벌의 유전자를 섞은 뒤에 반으로 나눈다. 이렇게 매번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지고, 역시 새로운 조합의 배우자 생식세포와 결합해 유전자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생명체는 이렇게 태어난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기생생물과의 무기 경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세포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을 갖고 있어 자기 세포를 인식하며, 외부 침입자의 항원은 백혈구 같은 면역세포가 기억하고 공격하도록 한다. 이 때 항원-항체 반응은 열쇠-자물쇠처럼 작동한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우리의 세포에 침투하는 열쇠를 찾기 위해 변이를 일으킨다. AI(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우려는 이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 대한 열쇠를 곧 찾을 만큼 돌연변이가 진전됐다는 의미다.

우리의 면역계는 다양한 병원균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자물쇠와 기억력을 갖춰야 한다. 첨단이 아닌 희소성이 관건이다. 바이러스가 쉽게 열쇠를 따기 시작했다면 이 열쇠에 맞지 않는 옛날 자물쇠를 다시 찾아 채우면 된다. 성이 없다면 이렇게 다양성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면역계뿐 아니라 성 선택에는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작용한다. 경쟁력 있는 특정 유전형질이 득세하면 다시 희소한 유전형질이 유리해진다. 돌고 도는 진화의 쳇바퀴다.

성 선택에 깃든 속임수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다산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큰 엉덩이와 큰 가슴의 여성을 선택해왔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은 허리가 가늘어지도록 진화했다. 실제 선호도 조사에서 남성은 여성의 몸무게나 엉덩이 크기 자체보다 엉덩이-허리의 비율에 좌우됐다.

영국 태생으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과학기자로 활동한 매트 리들리는 과학자들에게 강연을 할 정도로 깊이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2003년 처음 번역된 <붉은 여왕>은 국내에선 다소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최근 번역을 손질하고 하드커버로 새로 선보였다.

07. 01. 09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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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7-01-09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가 과학전공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내용 소개 말고 '평가' 부분은 마지막 한 문단 '어쨌든 재미있다' 뿐이어서 아쉽네요. 저도 과학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과학적 상상력(이해력)의 부재를 늘 뼈저리게 느끼는데, 저 기자분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이 다시 나왔군요. 읽고 나서 누구 줘버렸는데... 그런데 이번엔 하드커버로요. -_- 130쪽이나 늘어났다고요. 신기하네요.

로쟈 2007-01-09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성선택설에서 하는 얘기가 바로 그건데요.
딸기님/ 제 기억에 딸기님도 리뷰를 쓰셨죠 아마. 다음주에 하편도 있으니까 더 보태진 얘기가 있을지 모르죠(한데, '과학전문기자'도 비전공자를 쓰나요?). 책 분량에 대해서는 가끔 저도 우려하게 됩니다. 이제 한국어의 문제인지, 판형의 문제인지 둘다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원서의 두 배 이상이 돼 버리니...

아놔키스트 2007-01-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보니 구미가 당기네요. <이기적 유전자>와 <남자>라는 책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네요. 마침 요즘 남녀 차이에 관한 글을 찾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읽어보고 싶군요. 감사..

로쟈 2007-01-0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이팅 마인드>도 같이 읽으셔야 합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7-01-0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리뷰를 썼어요. 그래서 항상 안타까운 '비전공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요. 저분은 과학전문기자인데, 제가 알기로 학부 전공은 확실히 과학 아니었던 것 같고요, 그 뒤에 대학원이나 그런 곳에서 공부를 더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책 분량은... 로쟈님도 가끔씩 퍼오시는 어떤 글의 주인공인 제 오라비 말로는, 한국어로 옮기면 두 배가 된다는데, 저 붉은여왕의 경우 한글판을 다시 내면서 늘어난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인 것 같아요. ^^

로쟈 2007-01-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글의 주인공'이 얼른 떠오르진 않지만, '오라비'시군요?!..
 

철학자 박이문 선생의 <예술철학>(문학과지성사, 2006) 개정판이 출간됐다. 지난 1983년 초판을 찍은 이후에 20쇄를 거듭 찍었다고 하는 이 책은 예술철학에 관한 국내서로서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초판이 나온 지 벌써 23년이 넘었고, 그동안 예술계에도 다른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크고 다양한 변화가 있었지만, 내용에 있어서 책의 후기에 실은 최근의 논문 '양상론적 예술의 정의'를 원래의 내용을 새롭게 요약하는 의미에서 추가한 것 이외에는 개정판의 내용이 초판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적어도 예술의 개념의 철학적 정의에 관한 한 나의 생각에는 핵심적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어서 한자들은 모두 한글로 바뀌었고 도판들도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더 보충되었다. 게다가 별첨된 논문(27쪽)까지 보태져서 분량은 100쪽 가량 늘어났다. 10년도 더 전에 이미 두번쯤 읽은 책이지만 이번에 덧붙여진 논문에 대한 흥미도 있고 해서 나는 책을 다시 구입했다(이전에 갖고 있던 책은 박스 보관도서이다). '양상론적 예술의 정의'라고 제목이 붙어 있긴 하나 그 부제는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의 개념'이며, <예술의 종말 이후>는 지난 봄에 열심히 읽은 바 있는 아서 단토의 바로 그 책이다. 그리고 그 '단토'란 이름은 박이문 예술철학의 '기원'과도 연관되는 이름이다. 저자는 초판 서문에 이렇게 적었었다.

"예술이 갖는 신비한 힘은 무엇일까?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나는 지난 약 10여 년 간 예술철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가르쳐왔다. 이런 물음에 대해 하나의 일관성 있고 통일된 대답을 찾을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1977년 여름 '인문학국가연구비'를 받고, 단토의 주도하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열렸던 12명의 예술철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들의 두달 간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난 후였다.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단토나 디키의 새로운 이론에 접하게 되었고 그후 대충 그런 테두리에서 예술에 대한 총괄적인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왔다."(개정판, 10쪽)

그러니까 여기서 그려지는 것은 '박이문-단토-디키'의 삼각형이다('트리오'라고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박이문 예술철학은 미국의 두 현대 예술철학자의 영향/압력하에 그들과의 이론적 긴장/대결을 자양분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 해서 나의 생각으로 <예술철학>을 읽는 중요한 독법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와 조지 디키의 <예술사회> 등과 같이 읽는 것이다(예술제도론자인 디키 또한 그 책에서 단토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쓴 바 있다). 이론은 언제나 그것이 상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지하고 있을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학 연구자' 진중권은 뒷표지에 새겨진 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예술철학>은 단토의 생각에서 출발하되 '양상 논리'의 관점에서 예술을 그와는 다르게 정의하려는 시도다. 텍스트는 자기의 삶을 산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예술의 정의로 제시하는 '가능세계'란 말 속에서 '가능성'을 '잠재성'으로 살짝 옮겨놓으면, 20년 전에 쓰인 책이 디지털 문화 속에서 새로이 풀어놓는 의미에 문득 놀라게 될 것이다." 

예술철학에 초면인 독자들도 이 분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평이하고 명쾌한 언어로 씌어진 이 입문서의 일독을 권한다.

06. 12. 28.

P.S. 개정판의 서문에는 출간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많은 이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는데, 멋쩍게도 '아서 단토Arthru Danto'라고 병기된 영어 이름에서 오타가 났다('Arthur Danto'이다). 이런 걸 '삑사리'라고 부르던가. 학술지 편집에 오래 관여하다 보니 책을 펼치면 오문/오타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건 또 '삐딱이'라고 불러야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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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2-2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박이문 선생의 글에 대해서는 학부 1학년 때 안 좋은 추억(비문 투성이의 글을 읽다가..) 때문에 그 이후로 접하지 못했는데 한 번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로쟈 2006-12-2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학과현실>에서 데리다를 추모하는 글을 읽으며 좀 당혹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아무래도 연세 탓인 듯). 한데, 그걸 제대로 교정보지 않는 편집자들의 직무유기가 더 무책임하다는 생각입니다...
 

'오래된 새책'이란 카테고리를 새로 만든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요즘 부쩍 과거에 출간됐던 책들의 재판, 개정판, 수정판 등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오래된 새책'이란 표현은 물론 '오래된 미래'를 떠올려주기도 하지만 종종 들르는 '북데일리'의 카테고리였기도 하다. '세계의 책'과 함께 나란히 빌어온 셈이 됐는데, 정작 북데일리에서는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이들 카테고리를 '명퇴'시킨 듯하다. 그럼 '오래된 새책'은 '나대로의' 카테고리에서 '나만의' 카테고리로 지위가 격상되는 건가?

가장 먼저 다룰 책은 <번역의 윤리>를 구하러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한 레이코프와 존슨의 '출세작' <삶으로서의 은유>(서광사, 2006) 수정판이다. '수정판'이란 표현을 썼지만, 흔히 '개정판'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지난 95년에 나온 국역본 초판에 비해서 표지가 훨씬 화사해졌고 하드카바도 장정도 바뀌었다. 내용이야 그대로 보전된 부분이 더 많겠지만 형식은 '대폭' 수정된 것이라 하겠다.   

 

 

 

 

레이코프(/존슨)은 흔히 촘스키언어학에 반기를 든 '인지언어학'의 대표적인 학자들로 지목된다. 그들의 책을 다 읽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우연찮게도 다 사모아둔 처지인지라 이 '수정본'에도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도덕의 정치>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같은 정치평론쪽 책들을 나올 때마다 소개한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비껴가지는 못하겠다.  

Cover Image

사실 이 책과의 인연은 국역본이 나오기 전에 원저 'Metaphors we live by'(1980)를 사둔 시점으로 올라간다(왼쪽 표지). 제목을 직역하면 '우리가 달고 사는 은유들' 정도 될까? 대학가 서점에서 마스터본으로 샀던 듯한데 대학원에서 문체론 강의를 들을 때 부분적으로 참조했던 기억이 있다(기말 리포트를 쓰면서는 참조하지 않았지만). 국역본은 그 이후에 출간됐다. 찾아보니까 수정판은 2003년에 출간됐다(오른쪽 표지). 약간 증면이 됐지만 대차는 아니고 본문의 사례들에 어떤 변화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지난번 국역본이 절판된 상태인지라 새로 나온 책에 대해선 반가워할 이유가 충분하겠다. 

단, 이 페이퍼에 혹 자극을 받아서(내가 '약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탓에) 책을 사보시려는 분은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다소 '철학적인' 제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어학' 책이라는 점을 유념하면 되겠다. 참고삼아, 목차와 제1장의 원문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자세히 얘기되는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응용하고 있는 최근의 칼럼기사 하나도 같이. 내가 붙인다면 '이문열은 생각하지마'가 칼럼의 주제이다.  

Preface
Acknowledgments
1. Concepts We Live Bye
2. The Systematicity of Metaphorical Concepts
3. Metaphorical Systematicity: Highlighting and Hiding
4. Orientational Metaphors
5. Metaphor and Cultural Coherence
6. Ontological Metaphors
7. Personification
8. Metonymy
9. Challenges to Metaphorical Coherence
10. Some Further Examples
11. The Partial Nature of Metaphorical Structuring
12. How Is Our Conceptual System Grounded?
13. The Grounding of Structural Metaphors
14. Causation: Partly Emergent and Partly Metaphorical
15. The Coherent Structuring of Experience
16. Metaphorical Coherence
17. Complex Coherences across Metaphors
18. Some Consequences for Theories of Conceptual Structure
19. Definition and Understanding
20. How Metaphor Can Give Meaning to Form
21. New Meaning
22. The Creation of Similarity
23. Metaphor, Truth, and Action
24. Truth
25. The Myths of Objectivism and Subjectivism
26. The Myth of Objectivism in Western Philosophy and Linguistics
27. How Metaphor Reveals the Limitations of the Myth of Objectivism
28. Some Inadequacies of the Myth of Subjectivism
29. The Experientialist Alternative: Giving New Meaning to the Old Myths
30. Understanding
Afterword
References  

CONCEPTS WE LIVE BY

Metaphor is for most people device of the poetic imagination and the rhetorical flourish--a matter of extraordinary rather than ordinary language. Moreover, metaphor is typically viewed as characteristic of language alone, a matter of words rather than thought or action. For this reason, most people think they can get along perfectly well without metaphor. We have found,on the contrary, that metaphor is pervasive in everyday life, not just in language but in thought and action. Our ordinary conceptual system, in terms of which we both think and act, is fundamentally metaphorical in nature.

The concepts that govern our thought are not just matters of the intellect. They also govern our everyday functioning, down to the most mundane details. Our concepts structure what we perceive, how we get around in the world, and how we relate to other people. Our conceptual system thus plays a central role in defining our everyday realities. If we are right in suggesting that our conceptual system is largely metaphorical, then the way we thinks what we experience, and what we do every day is very much a matter of metaphor.

But our conceptual system is not something we are normally aware of. in most of the little things we do every day, we simply think and act more or less automatically along certain lines. Just what these lines are is by no means obvious. One way to find out is by looking at language. Since communication is based on the same conceptual system that we use in thinking and acting, language is an important source of evidence for what that system is like.

Primarily on the basis of linguistic evidence, we have found that most of our ordinary conceptual system is metaphorical in nature. And we have found a way to begin to identify in detail just what the metaphors are halt structure how we perceive, how we think, and what we do.

To give some idea of what it could mean for a concept to be metaphorical and for such a concept to structure an everyday activity, let us start with the concept ARGUMENT and the conceptual metaphor ARGUMENT IS WAR. This metaphor is reflected in our everyday language by a wide variety of expressions:

ARGUMENT IS WAR

Your claims are indefensible.

He attacked every weak point in my argument.

His criticisms were right on target.

I demolished his argument.

I've never won an argument with him.


you disagree? Okay, shoot!

If you use that strategy, he'll wipe you out.

He shot down all of my arguments.

It is important to see that we don't just talk about arguments in terms of

It is important to see that we don't just talk about arguments in terms of war. We can actually win or lose arguments. We see the person we are arguing with as an opponent. We attack his positions and we defend our own. We gain and lose ground. We plan and use strategies. If we find a position indefensible, we can abandon it and take a new line of attack. Many of the things we do in arguing are partially structured by the concept of war. Though there is no physical battle, there is a verbal battle, and the structure of an argument--attack, defense, counter-attack, etc.---reflects this. It is in this sense that the ARGUMENT IS WAR metaphor is one that we live by in this culture; its structures the actions we perform in arguing. Try to imagine a culture where arguments are not viewed in terms of war, where no one wins or loses, where there is no sense of attacking or defending, gaining or losing ground. Imagine a culture where an argument is viewed as a dance, the participants are seen as performers, and the goal is to perform in a balanced and aesthetically pleasing way. In such a culture, people would view arguments differently, experience them differently, carry them out differently, and talk about them differently. But we would probably not view them as arguing at all: they would simply be doing something different. It would seem strange even to call what they were doing "arguing." In perhaps the most neutral way of describing this difference between their culture and ours would be to say that we have a discourse form structured in terms of battle and they have one structured in terms of dance. This is an example of what it means for a metaphorical concept, namely, ARGUMENT IS WAR, to structure (at least in part) what we do and how we understand what we are doing when we argue. The essence of metaphor is understanding and experiencing one kind of thing in terms of another.. It is not that arguments are a subspecies of war. Arguments and wars are different kinds of things--verbal discourse and armed conflict--and the actions performed are different kinds of actions. But ARGUMENT is partially structured, understood, performed, and talked about in terms of WAR. The concept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the activity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and, consequently, the language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Moreover, this is the ordinary way of having an argument and talking about one. The normal way for us to talk about attacking a position is to use the words "attack a position." Our conventional ways of talking about arguments presuppose a metaphor we are hardly ever conscious of. The metaphors not merely in the words we use--it is in our very concept of an argument. The language of argument is not poetic, fanciful, or rhetorical; it is literal. We talk about arguments that way because we conceive of them that way--and we act according to the way we conceive of things.

The most important claim we have made so far is that metaphor is not just a matter of language, that is, of mere words. We shall argue that, on the contrary, human thought processes are largely metaphorical. This is what we mean when we say that the human conceptual system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and defined. Metaphors as linguistic expressions are possible precisely because there are metaphors in a person's conceptual system. Therefore, whenever in this book we speak of metaphors, such as ARGUMENT IS WAR, it should be understood that metaphor means metaphorical concept.

한겨레(06. 12. 08) 정치언어의 은유와 상징적 폭력

‘구원, 해방 그리고 문제 해결’이라는 강연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했다. 한달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강연에서 언급한 ‘종말론’이 국내 언론에서 이미 문제가 되었고, 마침 한국의 정치 민주화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었던 필자는 이문열씨의 강연에 궁금증이 한층 올라 있었다.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일종의 종말론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정통성도 정당성도 없는 정권이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제국과 항쟁한 유대민족의 투쟁사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한 무모한 전쟁이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로마제국은 오늘날의 미국을 은유하고 있다.

2006년 11월29일 버클리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행해진 이문열씨의 강연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선 이씨는 정치학의 초보 문법마저 무시하고 있다. 현 정부의 분배정책을 비판하려 했다면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그런데 최저생계를 위협받는 사람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원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오늘날 유일한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세계체제를 무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축적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력을 통한 로마제국의 팽창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지, 무모하게 항쟁하다가 희생당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 보면, 보통사람들이 세상사를 이해하고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는 일정한 언어적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나 정치를 표현하는 언어적 은유를 통해서 결정된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사회주의를 이해하기 쉽다. 또 이라크를 ‘악의 국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미국의 대외전쟁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은유다. 이것은 언어적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개인들의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을 용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입장 차이를 정치문법의 무지와 혼동할 수는 없다. 또 무분별한 정치적 은유가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씨는 한국민을 향해 상징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동에 싸여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표현하는 언어가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변화되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한국 정치판에서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해묵은 언어적 유희가 사라져야 한다. 우리 정치는 오랜 희생 끝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그 내용을 채워가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언어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사용의 관습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언어의 민주화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것이 오늘날 지식인의 책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필가요, 지식인을 자처하는 그가 이러한 언어의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강연 내용이 이번에 출간한 소설의 내용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그는 2300만부의 소설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가!(홍성민/동아대 정치학과 교수, 미 버클리대 방문학자)

06. 1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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