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다시 나온 책 얘기다. 빅터 J. 스탠저의 <신 없는 우주>(바다출판사, 2013)와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이매진, 2013). 먼저 <신 없는 우주>는 <물리학의 세계에 신의 공간은 없다>(서커스, 2010)가 다시 나온 것이다. 원제는 <신(God)>.

 

 

책소개는 이렇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빅터 스텐저가 물리학적 관점에서 지적설계론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신은 존재한다’는 기독교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통쾌하게 반박한다. 특히 이 책은 종교와 과학 논쟁의 전선을 기존의 생물진화학에서 물리학으로 넓혔다는 점에서 빛난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쓴 저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샘 해리스 등이 그들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다윈이 생물학이라는 오랜 서식지로부터 신을 몰아내자, 쫓겨난 신은 물리학이라는 토끼굴로 허둥지둥 피신했다. 그들은 우주의 법칙과 상수들은 사실이기엔 지나치게 훌륭하며, 생명이 진화하도록 세심하게 조율된 계획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그 망상을 파헤쳐 줄 훌륭한 물리학자가 필요했고, 빅터 스텐저가 그 일을 완성했다.

 

참고로 지적 설계론 논쟁과 관련해서는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바다출판사, 2012), <다윈주의와 지적 설계론>(인간사랑, 2009) 등의 논문모음집과 필립 E. 존슨의 <심판대의 다윈>(까치, 2006)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이어서 <산체스네 아이들>. '빈곤의 문화와 어느 멕시코 가족에 관한 인류학적 르포르타주'란 부제가 어떤 내용의 책인지 말해준다. 원저는 1961년에 나왔고, 지난 2011년에 50주년 기념판이 다시 출간됐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 기념판을 옮긴 것. 한국어판이 나온 것도 35년 전이라고 하니까 초판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감회를 느낄 만하다. 최근에 나온 건 3권짜리 <산체스네 아이들>(지식공작소, 1997)이었다(16년 전에 나온 셈이군).  

 

 

사실 이름만 귀에 익을 뿐, 읽어보진 못한 책인데, 다시금 번듯하게 출간돼 반갑다. 개정판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는 아내 루스 루이스와 함께 멕시코시티의 베씬다드(빈민가) 까사그란데에서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생애사를 4년에 걸쳐 치밀하게 인터뷰하고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다섯 명 가족의 날것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1인칭 서사로 옮겨냈다. 그 결과물은 방대한 양의 “소설과 인류학 논문의 중간 형태”라 부를 만한 독특한 책으로 탄생했다. 특히 50주년 기념판에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책에 관해 보낸 편지와 나중에 오스카 루이스의 공동 연구자가 되는 수전 M. 릭든이 쓴 개정판 서문과 후기가 더해졌다. 릭든의 글은 <산체스네 아이들>의 작업 과정, 출간 과정과 ‘빈곤의 문화’ 개념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 그리고 산체스네 가족의 후일담을 자세히 담고 있다.

책은 1978년, 앤소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척 멘지오니의 테마 음악으로도 잘 알려진 영화다... 

 

 

13.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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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래된 새책' 카테고리의 페이퍼를 쓴다. 절판됐다가 다시 나온 책들을 조명하는 카테고리인데, 사실 그런 책이 드문 건 아니기에 모두 다룰 수는 없다. 무슨 일이건 그렇지만 관심도서에 한정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앨런 재닉과 스티븐 툴민의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필로소픽, 2013)이 다시 나왔다. 먼저 제목은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이제이북스, 2005)이었다. 원제는 <비트겐슈타인의 비엔나>.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으로는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필로소픽, 2012)과 함께 필독서로 꼽을 만한 책인데, <비트겐슈타인 평전>도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문화과학사, 2000)의 재출간본이었다. 평전과는 달리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은 이전 번역본을 갖고 있지만 화사해진 새 번역본도 반갑다. 역자는 같지만 많은 대목에서 수정이 이루어졌다고도 하고. 역자는 이렇게 적었다.

무엇보다 처음 번역서를 낼 때 혹시 나중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장차 발견될 부족한 부분들을 꼭 수정, 보완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역자로서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읽기 편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부분을 고치게 되었다. 아무쪼록 새 옷을 입고 다시 탄생한 이 번역서가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서 위대한 철학자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철학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두번째 책은 바로 20년 전에(!) 카오스 붐을 가져왔던 화제작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동아시아, 2013)다. 처음 번역된 건 <카오스>(동문사, 1993; 누림, 2006)였다. 이번에 나온 건 원서의 20주년 기념판을 새로 번역한 것. 첫 번역본이 나오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20주년 기념판의 새 번역이라니까 감회가 없지 않다.

 

 

광고문구에 따르면 "전 세계인에게 '나비 효과'를 각인시킨 전설의 책"이다. 사실 나도 '나비 효과'란 말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던 듯하다. 지금이야 상식이 됐지만, 당시엔 매우 신선한 발상이었다(내 머리속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각인돼 있다).

 

 

 

글릭의 책으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평전 <천재>(승산, 2005)와 <아이작 뉴턴>(승산, 2008)도 번역돼 있는데, 이 중 <천재>는 <리처드 파인만 평전>(동아시아)으로 다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카오스>의 책날개에 근간 목록으로 올라와 있다).

 

 

철학과 과학 책에 이어서 사회학 책도 '오래된 새책'을 한권 덧붙인다. 바로 C. 리이트 밀스의 <파워 엘리트>(부글북스, 2013)다. 지난해에 <사회학적 상상력>을 다시 읽으며 원서와 함께 예전 번역본 <파워 엘리트>(한길사, 1991)를 중고로 구입했었는데, 조금 더 기다려볼 걸 그랬다. 1956년에 발표된 책이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파워 엘리트'란 말은 실감이 줄지 않았다. 세상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도 되는 것인가...

 

13.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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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래된 새책' 카테고리도 충전을 한다. 눈에 띄는 책 두 권 때문인데, 먼저 미국 철학자 알렉산더 네하마스의 <니체: 문학으로서 삶>(연암서가, 2013)이 다시 나왔다. 애초에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책세상, 1994)이라고 출간됐던 책으로 영어권의 대표적인 니체 연구서 가운데 하나다.  

 

 

믿기진 않지만 따져보니 거의 20년 전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원서까지 구입했었다. 영원회귀에 대한 해석이 독창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네하마스는 니체 말고도 고대 철학의 권위자인데, <삶의 기술: 플라톤에서 푸코까지 소크라테스적 성찰>, <오로지 행복의 약속>, <진정성의 미덕> 같은 책들이 대표적인 저작이다. <삶의 기술>은 갖고 있는 책이고, 나머지 책들은 이번에 구입하려고 한다.

 

 

 

네하마스의 <니체>만큼 반가운 책은 밀란 쿤데라 전집판으로 다시 나온 <배신당한 유언들>(민음사, 2013). 오래 전에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청년사, 1994)으로 번역됐었다. 아, 이 또한 20년 전에 읽은 책이라니! 제목은 <배반의 약속>이라고 예고됐었는데, <배신당한 유언들>로 최종 낙착된 모양이다. 나는 주로 <배반당한 유언>이라고 부르던 책이다. 누가 배신/배반한 것인가?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친구 카프카의 부탁을 배신/배반한 막스 브로트가 대표적이다. 기억엔 쿤데라가 브로트를 맹비판했던가.

 

 

 

쿤데라의 소설도 소설이지만 그의 일급의 에세이들도 나는 즐겨 읽는 편인데, 전집에 들어가 있는 건 네 권이다. 순서대로 하면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 <만남> 순이다. 생각난 김에 따로 모아놓아야겠다. 영어본들도 다 구했었는데, 어디에들 가 있는지 확인도 해야겠고. <배신당한 유언들>이 당일배송이 안 돼 아쉬운데, 책은 내주에나 손에 들 듯싶다...

 

13.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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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 막간에 몇 자 적는다. 책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짧게 끝낼 수 있는 걸로 '슈테판 츠바이크'를 골랐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의 '평전 시리즈'(세창출판사, 2013)가 이번주에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각각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에 관한 평전이다.

 

 

그렇다고 새로 나온 책들은 아니다. 짐작엔 통째로 나온 것을 분권해서 이미 여러 번 '우려먹은' 것이다. 편의성을 고려하면 낱권으로 들고 다니는 게 나쁘진 않고, 표지도 제법 그럴 듯하지만.

 

 

 

아직 같이 판매되고 있는 책 가운데, <천재, 광기, 열정 1,2>(세창출판사, 2009)가 원 소스로 보인다. 작가들에 대한 평전으로('전기소설'로도 불린다) 1권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 클라이스트, 그리고 2권은 발자크,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를 다룬다. 모두 8명이니까 이들이 전부 시리즈에 포함된다면 최소 8권의 책은 나오는 셈이 된다. <천재, 광기, 열정>도 원래는 한 권짜리 <천재와 광기>(예하, 1993)가 분권된 것이다(벌써 20년 전에 읽은 책이군!). 원 독일어본이 어떤 형태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이 한 권짜리였다. 지금은 물론 절판됐는데, 문호들의 삶을 적당한 규모로 묘사하고 정리하는 츠바이크의 솜씨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만 따로 묶어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자연사랑, 2001)라고 나온 적이 있다. 지금은 절판됐는데, 강의할 때 편하게 참고하려고 구입했다가 오탈자가 너무 많아서 실망한 책이었다. 번역은 똑같지만 옮겨서 타이핑하면서 오히려 조악하게 된 판본이다. 그리고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필맥, 2005)는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셋을 묶은 책. 번역자는 다른 걸로 돼 있는데, 이 책은 안 갖고 있어서(아니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번역이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다. 츠바이크의 평전이 다시 나온다면 짐작엔 몽테뉴의 평전 <위로하는 정신>(유유, 2012)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미완이라 하더라도 나름 '얇은 평전'의 대가다운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렇다고 얇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발자크 평전>은 분량이 좀 되는데, 아쉽게도 둘다 절판된 상태다. 발자크는 '얇은 발자크'와 '두꺼운 발자크'가 있는 셈인가. 나는 한 종을 구했었지만 어느 박스 속엔가 들어가 있기에 지금은 손에 들 수 없다. <발자크 평전>도 '평전 시리즈'에 포함된다면 반갑겠다. 참고로 영어판도 구미에 맞게 몇 명씩 모아놓는데,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란 타이틀이 눈에 띈다. 아마도 '얇은 발자크'일 것이다... 

 

13.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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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에 '오래된 새책'으로 꼽을 만한 두 권은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문학과지성사, 2013)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문학과지성사, 2013)이다. '문지 푸른문학 시리즈'로 나란히 나왔는데, 김주연 교수가 옮긴 <페터 카멘친트>는 현대소설사판(1992년)을 수정/보완한 것이고, 이성복 시인이 옮긴 <좁은 문>은 계명대출판부판(2000년)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헤세의 첫 장편소설인 <페터 카멘친트>는 민음사판 헤세 선집에 포함돼 있다가 절판됐고 현재는 문예출판사판, 범우사판 등 세 종의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올해 11권짜리 선집으로 나오고 있는 현대문학판으로도 예고돼 있기에(현재 다섯 권이 나왔다) 조만간 네 종의 번역본이 될 것이다. 김주연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독일 소설의 전통적 양식인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의 테두리를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는 소설 <페터 카멘친트>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숭배하며, 또 거기서 힘을 얻는 카멘친트가 어떻게 통합적 인간으로 커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평했다.

 

 

지드의 <좁은 문>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내가 갖고 있는 펭귄클래식판과 을유문화사판까지 포함해 세 종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이라 다시 읽어봐야 하는데, 그런 계기가 된 건 이성복 시인의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문학과지성사, 2004)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지드의 <좁은 문>에 관한 연구서. 지드의 <좁은 문>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마찬가지의 비중을 두어서 분석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띄는 점이다.  

 

 

계명대출판부에서 번역본까지 냈다는 건 나중에 알았는데, 이미 절판되고 없었다. 이번에 문학과지성사판으로 다시 나왔길래 바로 주문했던 것. 이성복 시인은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적었다. "<좁은 문>에서 우리는 여러 형태의 풍자와 비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 지드가 순응주의자와 독단주의의 적으로서, 언제나 자신이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열려 있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가 가장 두렵게 생각한 것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나 습관이나 관슴으로 인해 경직됨으로써 스스로 그 선택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었다."

 

 

헤세의 작품들이 연초부터 연이어 출간되고 있고, 지드의 책도 근년에 <위폐범들>(문학과지성사, 2012; 민음사, 2010)과 자서전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나남, 2010) 등이 나와서 다시 읽을 만한 계기는 충분하다. 그 시작을 <페터 카멘친트>나 <좁은 문>으로 해도 좋겠다. 

 

 

 

혹은 <지상의 양식>부터라도. 지드가 <지상의 양식>을 발표한 건 28살 때이고, 돌이켜보니 내가 그 책을 읽은 건 19살 때였다...

 

13.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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