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에 '사라진 책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던(http://blog.aladin.co.kr/mramor/6079979) 한국사학자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아카넷, 2003)이 드디어 다시 나왔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 2013). '신유학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가 부제다. 수집 목록에 있던 책이 재출간돼 반갑다. 어떤 책인가.

 

 

‘한국학의 대가’ 스위스인 마르티나 도이힐러가 내놓은 역작. 15~16세기 당시 사회에 신유학(성리학)의 도입과 정착이 지속적으로 강력히 추진된 동기는 무엇이었으며, 신유학이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은 어떠했는가에 대한 공백을 메운 최초의 본격 시도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20여 년이 걸린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역작은 약 150여 종이나 되는 사료와 290여 편의 각종 저작을 인용한다. 특히 사회인류학과 교류하면서 친족, 조상 숭배, 가계계승, 상속, 결혼, 상장례 등 6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려 초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한국의 역사를 통찰하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실에 도달한다. 1392년 조선의 건국세력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된 유교 사회로의 전환이 이후 약 250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완성되었고, 그 결과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조선의 양반 사회가 적장자 중심의 문중 사회로 재편성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재구성된 조선 사회는 고려시대의 사회 구조와 확연히 달랐고, 유교사상이 중국 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에서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쟁론의 대상이 될 만한 주장을 치밀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외 한국사 연구의 주요 성과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재출간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학자들의 주장과는 어떻게 대비가 되는지는 따로 관련 논문이나 서평을 찾아봐야겠다(이런 정보의 품앗이도 필요하다). 여하튼 월요일부터 건질 만한 책이 여럿 눈에 띄는데, 일단 '오래된 새책'부터 적었다...

 

13. 10.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다리던 책 두 권이 다시 나왔다.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도서출판b, 2013)과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갈라파고스, 2013). '오래된 새책'으로 묶어서 반가움을 표한다.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와 함께 '사상가' 고진을 대표하는 책으로서 <트랜스크리틱>은 한길사판(2005)으로 나왔다가 절판됐던 책이다. 이번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하나로 재출간됐는데(이 선집도 현재로선 두어 권 정도를 더 남겨놓고 있다), 저자의 수정을 반영하고 있어서 아주 동일한 책은 아니다. 설명은 이렇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저 정본판. <트랜스크리틱>은 2005년에 이미 우리말로 옮겨져 가라타니의 주저로서 많은 이들에 의해 읽혀져 왔다. 그런데 그것은 2001년판을 원본으로 하되 영어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정된 내용들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독자들은 지금 이 <트랜스크리틱>에서 2005년 번역판과의 상당히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가 아닌 사상가로서의 가라타니 고진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적 체계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저술이지만, 그 영향작용사와 관련해서도 이 책은 처음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세계가 주목하는' 사상가인지는 의문이지만(영어로 번역된 고진의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직 <세계사의 구조>도 번역되지 않았다) 나는 그게 고진에 대한 과소평가라고 본다(지젝은 이러한 과소평가에서 예외이다.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본격적인 서평을 '시차적 관점'이란 제목으로 쓴 바 있기에. <시차적 관점>의 원래 발상은 고진의 것이다. 고진이 칸트에게 쓴 말을 지젝은 라캉에게 적용한다). '고진과 함께'라는 건 따라서 (적어도 서구의 독자가 가질 수 없는) 우리의 유리한 조건이다. 고진이 말하는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 사이에서의, 즉 칸트적 비판과 맑스적 비판 사이에서의 코드 변환(transcoding), 요컨대 칸트로부터 맑스를 읽고 맑스로부터 칸트를 읽는 시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한 것은 칸트와 맑스에게 공통된 ‘비판(비평)’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

예전판이 나왔을 때 여러 번 페이퍼를 써둔 적이 있기에 따로 군말을 덧붙이진 않는다. 다만 여전히 <트랜스크리틱>은 칸트와 맑스를 읽는 가장 강력한 시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서의 발전>은 인도 출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예전에 세종연구원판(2001)으로 나왔다가 절판된 책. 제목은 센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압축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 아마티아 센.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웅대한 문제의식의 결정판으로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장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의 목표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센의 문제의식은 역량의 회복을 통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균형잡힌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특히 센의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발전관은 개발독재에 신음했던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역량'이란 말은 센경제작(센코노믹스)의 핵심 개념인데, 'capability'의 번역이다. '삶의 질'에 관한 공동연구를 마사 누스바움과 진행하면서 제시한 걸로 안다. 최근 번역된 <시적 정의>(궁리, 2013)에서 누스바움도 이 공동연구의 경험에 대해 언급한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헬싱키에 있는 유엔대학 부설 세계경제개발연구소의 '개발도상국의 삶의 질 평가에 대한 프로젝트' 공동기획자로서" 참여한 경험이다. 두 사람의 공유한 생각은 " 삶의 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환원적이면서 인간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는 듯 보이는 표준화된 경제적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시적 정의>, 16쪽)으로 모아진다. 개인적으로 '삶의 역량'이나 '자유로서의 발전'이란 개념은 '성장이냐 분배냐'란 이분법에 여전히 갇혀 있는 우리의 사고 지평을 벗어나게 해줄 걸로 기대한다. 공론장의 키워드들이 조만간 대체되길 바란다...

 

13. 10. 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에 지젝 강연에 가보려고 했지만 체력이 바닥이 나 집에서 쉬었다. 지난주만 해도 충북과 경북, 그리고 강원도에 다녀왔으니 동선이 만만찮았다. 쉬면서 책을 좀 보려고 했지만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대신에 독서거리만 챙겨놓는다. '오래된 새책' 범주에 들어갈 책이 지난주에도 몇 권 나왔는데, 그중에서 두 권을 골랐다.

 

 

먼저, 어린이 철학운동의 선구자라는 개러스 매슈스의 <아동기의 철학>(필로소픽, 2013). 이전에 <유년기 어린이 철학>(교육과학사, 2006)으로 소개됐다가 절판된 책이다. 제목이 바뀌면서 다시 번역됐다. '타고난 철학자인 어린이들에 대해 생각하다'란 부제가 책의 주제를 압축한다. 요지는 이렇다.

어린이 철학 운동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개러스 매슈스는 이 책을 통해 어린이들의 사고가 오히려 ‘철학함’의 훌륭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저자가 피아제의 유명한 ‘보존 실험’을 비판하는 부분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인 실험처럼 보이는 피아제의 보존 실험이 실제로는 과학적이라고 할 근거가 약함을 보이고,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서 ‘자아중심주의’와 ‘현상주의’라는 모호한 개념이 나타난다는 피아제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례를 제시한다. 이어서 어린이들의 생생하고 뛰어난 철학적 사고와 활동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전에는 연구된 적 없는 주제들, 예를 들어 어린이의 권리, 어린이와 죽음, 아동 미술의 예술성, 어린이를 위한 문학, 어린이의 권리, 아동기의 기억상실과 인격 동일성 등이 논의된다.

 

 

요컨대 어린이 철학 교육의 이론적 근거와 가능성을 조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론적으로는 피아제와 콜버그의 비판이 책의 핵심이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나 교사들에게 필독서.

 

 

독서법을 다룬 책 가운데 최장기 베스트셀러로 보이는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 십대의 눈높이에 맞게 편집돼 나왔다. 허용우의 <독서의 기술, 책을 꿰뚫어보고 부리고 통합하라>(너머학교, 2013). 정확하게 말하면, 오래된 책을 새책으로 만든 경우라고 할까. 소개는 이렇다.

저자 허용우는 서양 고전만을 다루어 낯설고 어려운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을 우리에게 친근한 책과 예문들, 구체적이고 쉬운 해설과 유쾌하고 생생한 글로 선보인다. 이 책은 독서의 기술을 축구에 비유하며 축구를 하려면 조기축구보다는 수준 높은 국가대표 단계의 축구를 해 보자고 독자들을 자극하고,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한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격려한다.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시간과 여유가 없는 우리 십대들을 위해 실용서, 문학, 수학, 과학, 역사, 교과서 읽는 법을 소개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독서에 멀미를 보이는 학생들을 편하게 독서로 유인하는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자각이 없이는, 그리고 실천이 없이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소극적 이유를 제쳐놓더라도 독서를 즐기는 능력과 기술의 습득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저렴하면서 동시에 가장 고급스러운 향유의 바탕이다.

 

 

찾아보니 원저 증보판은 분량이 두툼한 편이다. 한번 구해봐야겠다...

 

13. 09. 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새책'으로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루, 2013)이 나왔다. 고려원판으로 나온 게 1994년이니까 얼추 20년만이다. 고려원판의 부제는 '여걸 원형(Archetype)과 관련된 신화 및 우화'였고. 이루판의 부제는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새 번역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한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1992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미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마존 상위에 랭크돼 있고, 수많은 언론 및 명사들의 찬사와 독자들의 서평이 끊이지 않는 여성 심리학의 고전이다. 국내 굴지의 출판사 고려원에서 1994년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나 이듬해 출판사가 부도나면서 아쉽게도 절판되어 헌책방에서 정가의 몇 곱절로 팔리는 귀한 책이 되었다. 번역자인 손영미 교수가 원문과 꼼꼼히 대조하여 오류를 잡아내고, 세련되고 적확한 문장으로 손질하며 20년 세월의 때를 벗겨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 이제 온전한 한국어 번역본이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우리 독자들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목수정의 독서에세이 <월경독서>(생각정원, 2013)에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에 대한 독후감을 읽을 수 있었는데, 찾아보니 이주향 교수의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북섬, 2007)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더불어, 톰 버틀러 보던은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흐름출판, 2005)에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자아실현의 명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만큼 대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란 뜻도 되겠다(꽤 오랜 시간 절판된 상태였던 우리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럴 만한 게 저자의 문제의식이 상당히 전복적이다. 간략한 소개만 읽어도 그 전복성을 어림해볼 수 있다.

 

융 심리학자인 저자는 여성의 집단무의식 안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어머니 늑대’ 원형을 발견하고 이를 전 세계 민담이나 설화, 동화에서 찾고 있다. 또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와 상징을 새롭게 해석해 어머니 늑대가 여성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여성의 삶에 파탄은 어떻게 오는지, 또 어떻게 신성한 야성의 불로 이를 회복하는지 탁월한 통찰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 안에 있는 늑대 어머니 원형은 오랜 세월 약탈당하고 매장돼온 야성적 본능, 즉 여걸이라 지칭한 것으로, 야성을 잃어버린 여성을 멸종 위기에 처한 늑대와 같은 운명을 걸어왔다. 본래 여성과 늑대는 선천적으로 사랑이 넘치고 적응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 둘 모두는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호전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태고의 원시림과 함께 수세기 동안 약탈당하고 매장돼 왔다. 늑대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온 것처럼, 여성 또한 그 본능을 말살하고 정신 속의 밀림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고유의 리듬대로 살아가고 있는 늑대와 달리 여성은 오랫동안 여걸을 잃고 늘 희생양 같은 삶을 살아왔다. 여걸을 잃어버린 여성은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남에게 양보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며, 자신에게 해로운 애인과 직장을 선택하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늑대처럼 그것처럼 빛나는 직관은 힘을 잃었고, 사물을 분석하고 꿰뚫어보는 능력도 흐릿해졌으며, 타고난 예민한 감각도 둔해졌기 때문에 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잘못된 길에 들어서거나 내면에 큰 상처를 입은 여성들에게 이 책은 잊혀진 본능을 되찾는 길잡이이자 놀라운 심리 치유서가 될 것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 상담가들에게도 훌륭한 참고도서이다.

 

설이나 추석 명절 전후로 아직도 명절 증후군을 토로하는 여성들이 많은 우리 현실에서 '어머니 늑대'의 원형과 '야성적 본능'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라는 책의 메시지는 '훌륭한 참고도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짝은 '여걸들과 함께 달리다 기진할 남자들'일 테니까. 마음은 좀 간교해서 아내에겐 숨기고 딸아이에겐 읽히고픈 책이다...

 

13. 09. 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을 충분히 잔 듯한데도 계속 눈이 감기는 휴일 낮이다.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폭염과 관계가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사실은 '이주의 재발견'이다. 오래된 새책이기도 하니까. <잠 못 이루는 행성>(들녘, 2002)이란 제목으로 나왔던 어니스트 지브로스키의 <요동치는 지구 잠 못 드는 인간>(들녘, 2013)을 두고 한 말이다.

 

 

제목으로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책이다. 부제는 '참혹한 자연재해, 치열한 과학의 도전'. 2002년판의 부제는 '인간은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였다. 원저는 1999년에 나왔다. 알라딘에는 2004년판이 뜨는데, 개정된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저자는 물리학 박사이고, 이번에는 '어니스트 지브로스키 2세'라고 표기됐지만 풀네임을 적어준 것일 뿐 '어니스트 지브로스키'의 아들이 아니라 동일인이다. 어떤 내용의 책인가.

요동치는 지구로 인해 잠 못 드는 인간들을 위해 쓰여졌다. 우리가 알아야 할 자연재해와 재난과학에 대한 사실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파괴적인 자연 현상들을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에 대하여 알아보며, 특히 근본적인 과학 탐구, 기술 혁신과 궁극적인 대중 정책들 간의 상호 작용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흥미진진한 사례들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우리가 몰랐던 지구의 비밀과 거기에 도전하는 과학기술의 역사가 펼쳐진다.

지구가 '요동치는 행성'이란 사실이 자주 간과되기에 자연 재난에 대해 오히려 속수무책이었던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의 기본값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안정'이 아니라 '요동'으로.

 

최근 일본 열동의 화산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려는 조짐이 보인다 하고, 한반도도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주기적이긴 하지만, 폭염이 끝남과 동시에 태풍이 몇차례 한반도를 스치고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어떤 행성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확인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열대야 때문에 고생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13. 08.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