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의 책'이 어느새 '내년의 책'이 되게 생겼는데, 가장 고대하는 책의 하나는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후마니타스, 2017)다. 기억을 좀 더듬자면 사회주의 몰락 이후 90년대 중반 알튀세르 붐이 일었을 때 알튀세르의 대표작으로 많이 회자되었고 <맑스를 위하여>(백의, 1997)라고 번역돼 나온 바 있다(다른 판본도 있었던가?). 러시아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대학원 세미나가 꾸려졌을 정도로 당시엔 알튀세르가 대세였다(어즈버, 지난 시간들이다).  



나도 관심은 가졌지만 당시엔 혼자 읽어내기 어렵기도 했고 진득하게 공부하기엔 다른 할일이 많았다. 나는 묵직한 주저 대신에 <아미엥에서의 주장>(솔출판사, 1991)과 2차 문헌을 읽는 걸로 알튀세르 읽기를 대체했다. 그렇게 묻어둔 책인데, 20년만에 새 번역본이 나온다니 감회가 없지 않다. 역자는 알튀세르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던 서관모 교수다. 



'역사가 반복되는가'는 따로 따져보아야 할 어려운 문제이지만 간혹은 반복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오래된 새책'들이 불가불 불러들이는 환각이다.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함께, 어떤 독자는 20년 전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직 20년을 살아보지 못한 독자라면 마르크스 입문용으로 좀더 쉽게 나온 책을 손에 들어도 좋겠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나름북스, 2016)부터 <꼼당선언>(푸른나무, 2016), <수취인: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풀빛, 2016) 등이 모두 그런 용도로 쓸모가 있는 책들이다. 



정색하고 알튀세르를 읽으려는 독자라면 그레고리 엘리어트의 <알튀세르: 이론의 우회>(새길, 2012), 국내 연구자들이 쓴 <알튀세르 효과>(그린비, 2011)와 <라캉 또는 알튀세르>(난장, 2016)까지 참고할 수 있겠다. 어차피 그러자면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건너뛸 수 없겠군...


16.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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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두 권의 고전 번역서를 고른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길, 2016)와 플라톤의 <법률>(숲, 2016)이다. 고전 분야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미 원전 번역본이 나온 두 책의 새 번역본이라는 걸 알 수 있으리라. 가령 <역사>는 천병희 선생의 최초 원전 완역본 <역사>(숲, 2009)이 진작 나온 바 있다(그밖에 중역본이 몇 종 된다). 이번에 나온 건 서양 고전학이 아닌 서양 고대사 전공자의 번역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3~4종 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사 전공자에 의한 희랍어 원전 번역은 이 책이 최초이다. 번역자 김봉철 교수는 이미 역사가로서의 헤로도토스와 그의 주저 <역사>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 책을 번역하였다. 이 책 번역의 원칙으로 역자는 원문을 가급적 충실하게 직역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학 고전이므로 그 문장과 자구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 충실하게 전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봉철 교수는 <그리스 신화의 변천사>(길, 2014), <영원한 문화도시 아테네, 2002) 등의 저서와 <그리스 민주정의 탄생과 발전>(한울, 2001) 등의 역서를 갖고 있다. 역사학 전공자와 고전학 전공자의 번역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데, 차이는 직접 비교해봐야 알 수 있겠다. 



희랍 고전 번역에 매진하고 있는 천병희 선생의 새 번역으로 플라톤의 <법률>이 추가되었다. 말년의 저작으로 <국가><정치가>와 함께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책(분량으로는 <국가>와 함께 가장 두꺼운 책이다. 이 두 권이 플라톤 전체 대화편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역시 최초 번역본은 아니어서 박종현 선생의 원전 번역본이 앞서 나왔었다. 



두 종의 원전 번역본이 있다고 해서 유감스러울 일은 절대 없다. 각기 장단이 있으므로 필요에 따라 참고하고 또 비교해볼 수 있겠다. 플라톤 번역과 관련해서는 정암학당의 전집 번역이 여기에 추가될 수 있을 텐데, 결정적으로 아직 <국가>와 <법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나오게 되면 3종의 번역본이 플라톤의 원전 번역을 삼분하겠다. '삼분지대계'란 이런 경우에도 해당하겠다...


16.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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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개되는 저자이므로 '이주의 발견'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급이 있으므로 '이주의 고전'으로 분류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장-조제프 구의 <철학자 오이디푸스>(도서출판b, 2016)가 번역돼 나왔다. 반갑지만 낯설지는 않다. 오래 전에 저자의 이름을 듣고 책도(영어본) 찾아본 기억이 있다(그걸 복사해두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을 따름). 저자의 다른 책 가운데서는 <상징 경제>에 눈길이 가는군.

 

"장-조제프 구는 과정과 상관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침전된 오이디푸스 신화를 그 기원에서부터 따져 물음으로써 바로 그 신화 안에서 서양 역사의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전환점을 추적한다. 저자는 오이디푸스가 전형적 입문신화를 변형, 고장 냄으로써 새로운 철학자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오이디푸스 신화 내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면 나로선 그 자체로 읽어볼 용의가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에 대해서 종종 강의를 하기 때문인데, 당장 다음주에도 천안에서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강의가 있다.

 

 

그렇게 종종 강의를 하다 보면 나대로의 해석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 <안티고네>의 경우 나는 크레온과 안티고네 대립과 함께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와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에 주목하는 편이다. 즉 '크레온 vs 안티고네'라는 구도 못지 않게 '크레온/안티고네 vs 이스메네/하이몬'의 대립 구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오이디푸스왕>도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볼 참인데, <철학자 오이디푸스>가 과제 도서로 주어진 셈.

 

 

소포클레스의 두 작품은 고전 중의 고전이자, 세계문학 읽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품이지만, 이들 작품, 특히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석을 담고 있는 책은 아주 드물다. 프로이트와 어니스트 존스의 해석 외에 전공자의 견해로는 강대진의 <비극의 비밀>(문학동네, 2013)을 참고할 수 있는 정도다.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강력한 분석도 <구조인류학>이 절판된 지 오래여서 현재로선 읽어보기 어렵다(대학생들이라면 도서관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철학자 오이디푸스>가 가장 깊이 있는 해석을 담은 책이 되는 것인가(뭔지 모르게 싱겁다는 느낌이 드는군).

 

 

<안티고네>는 사정이 약간 나아서 주디스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동문선, 2005)과 함께 이명호의 <누가 안티고네를 두려워하는가>(문학동네, 2014)를 참고할 수 있다. <안티고네>를 둘러싼 해석과 논쟁의 역사를 얼추 가늠하게 해준다(임철규 선생의 <고전>(한길사, 2016)에도 <안티고네>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들어 있다). 덧붙이자면, 내달에 나온다는 지젝의 근간도 <안티고네>다(올초부터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여하튼 <철학자 오이디푸스>를 읽을 수 있게 돼 흡족하다. 아마도 내일 부산에 다녀오는 기찻간에서 손에 들고 있지 않을까 싶다. 흠, 가방이 너무 무거워지는 건가...

 

16.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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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0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근교 휴양지로 1박2일의 짧은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라 오전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한데(그래봐야 강의할 책들을 싸들고 가는 휴가다), '이주의 고전'까지는 골라놓고 떠나도록 한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서커스, 2016)가 정식 판권계약을 맺고 출간되어서다. 

 

"양자역학을 창시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학문적 자서전이다. 한 과학자의 학문적 이력을 넘어 원자물리학의 황금시대에 대한 일급 기록이기도 한 이 책에는 원자라는 미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혁명을 일으킨 양자역학의 발전에 참여한 수많은 천재들의 캐릭터와 일화가 밀도 높게 기록되어 있다. 정식 한국어판에서는 최신판 독일 원전을 꼼꼼히 옮기고 전공 학자가 감수를 맡고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각주를 추가했다. 낯선 물리학 용어들과 철학 용어들을 최대한 일반인들의 언어로 풀어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고 생생한 대화의 내용을 살리는 문체로 가독성을 높였다."

사실 이 책이 '고전'으로서 확실한 지위를 갖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영역본도 잘 찾을 수 없기 때문인데, 영어권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대표 저작은 <물리학과 철학>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 이 세계적 물리학자의 '학문적 자서전'은 오랜동안 '필독서'로 추천돼왔다. 나도 학부시절에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아서 처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전설의 이면에는 뒷소문도 따라다녔는데, 번역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었다(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그런 소문이 따라붙는 대표적인 책이다). 읽은 지도 오래됐고, 독어판과 대조해볼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나는 그냥 누군가(대개 젊은 학생들)에게 추천할 일이 생기면 '번역이 좋지는 않지만'이란 단서를 붙이곤 했다. 잘 읽히지가 않아서 중간에 책을 덮더라도 그게 독자의 역량 탓만은 아니라는 암시를 미리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번에 나온 새번역판은 그런 염려에서 벗어나게 해줄 듯싶어 반갑다. 그래서 바로 구입은 했는데, 언제 다시 읽을지는 아직 장담하지 못하겠다... 

 

16.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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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의 책이 출간되었다. 로저 에커치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교유서가, 2016)다. 알고 보니 <밤의 문화사>(돌베개, 2008)가 재출간된 것이다. 제목과 표지가 바뀌었는데, 느낌이 많이 다르다. 새로 붙여진 부제는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다.

 

 

"인간 역사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역사가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산업혁명 이전의 밤에 대하여 로저 에커치가 일기나 여행기 등 개인의 기록부터 잡지, 그리고 철학, 인류학 관련 학술연구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20년 넘게 집필한 역작이다. 밤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과 그것에 대한 방비책, 밤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망상이나 악몽, 밤에 하던 사교행위와 놀이, 불면증 등 밤의 역사와 관련한 흥미로운 서술과 풍부한 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동서양의 저명한 학자와 언론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고, 영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옛 사람들의 잠의 패턴을 분석하여 현대인의 숙면 건강과 잠의 미래를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일단 이런 주제의 책을 구상한 것 자체가놀랍다. '산업혁명 이전 서양의 역사에서 밤시간의 역사'을 다룬다고 범위를 한정하더라도 언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떤 책이 쓰여질 수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밤' 얘기가 나와서 떠올리게 되는 책은 자크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이다. 영어로는 두 차례 번역됐는데, 나는 개정판을 갖고 있다. 번역본이 나온다고 들었기에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다. 랑시에르의 책은 <해방된 관객>(현실문화, 2016)에 이어서 최근에 <역사의 형상들>(글항아리, 2016)도 번역돼 나왔다. 앞서 나왔던 <역사의 이름들>(울력, 2011)과는 어떤 관계인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책들의 소재는 신만이 아신다) 여하튼 랑시에르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서 원서를 포함해 몇 권 주문해놓은 상태다. 준비가 되는 대로 랑시에르에 대한 강의도 계획해볼 참이다...

 

16.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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