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이주의 고전'을 골라놓는다. 거리가 될 만한 책은 더 있지만 일단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연암서가, 2014)와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아카넷, 2013) 새 번역본에 대해 적는다.

 

 

 

<시시포스 신화>(1943)는 <시지프 신화>나 <시지프의 신화> 등의 제목으로 번역돼 왔던 책. 사실은 지난해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다.

 

 

출간 70주년, 탄생 100주년, 다시 읽는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 오늘날 카뮈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부조리'라는 키워드는 인간 실존이 처한 기묘한 상황을 규정하기 위한 철학적 전문용어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체득하고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묘사하기 위한 일상적 개인어의 차원에서 이해될 때, 공감의 폭은 넓어지고 그 울림은 깊어질 것이다.

명징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카뮈의 에세이들이 아주 잘 읽히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영역본을 포함해서 여러 번역본을 구한 이유인데, 엊그제 새로 나온 번역본과 비교해서 읽어보려고 했으나 몇 권이나 되는 책을 방에서 찾지 못했다. 어이없긴 하지만 요즘은 익숙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카뮈에 대해선 일련의 강의도 했고, 따로 책도 쓸 예정이어서 <시시포스 신화>도 다시 정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에 이어서 박찬국 교수가 옮긴 <안티크리스트>도 새로운 읽을 거리. 책세상 전집판과 청하 전집판(<반그리스도>)과 함께 읽어봄직하다. 개인적으론 아주 오래 전에 청하판으로 읽고 다시 보지 않은 텍스트라 새로 관심을 갖게 된다. 소개는 이렇다.

니체의 최종적인 사상을 담은 결정체. 니체는 이 책을 2년 내에 유럽의 주요 언어로 번역하고 대규모로 발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누이동생에 의해 네 군데가 삭제된 상태로 출간되었다. 삭제된 부분은 1955년 니체전집에서 복원되었고, 1969년 고증본에서는 ‘그리스도교 탄압법’이 덧붙여져 출간되었다. 본 한국어판 번역은 이 고증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니체에 관해서는 최근에 정동호 교수의 <니체>(책세상, 2014), 강영계 교수의 <아티스트 니체>(텍스트, 2014) 등이 출간돼 읽을 거리는 부족하지 않다. 입문 독자라면 고명섭의 <니체 극장>(김영사, 2012)이 두툼하면서 충실한 안내서다.

 

여하튼 견물생심이어서 새로 나온 책을 보면 읽을 욕심이 생긴다. 이달엔 시시포스와 안티크리스트를 독서의 한 가지 주제로 삼아도 좋겠다...

 

14. 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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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전부 연휴로 미뤄놓았더니 나흘간의 휴일도 짧게 느껴진다. 연휴라곤 하지만 가족모임도 있으니 풀타임 '자유시간'이라곤 할 수 없다. 재택근무에 나서기 전에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나온 '어제의 책'들을 관심독서로 올려놓는다. 소장도서라 하더라도 이미 서재가 기능을 상실한지라 읽으려면 다시 구입해야 한다. 장바구니에 넣은 두 권의 책은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알마, 2014)과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지식공작소, 2014)다.

 

 

 

11년만에 새로 나온 <책과 혁명>은 역자는 같지만 이번에 출판사를 옮겼다. 부제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가 원저의 제목이다.

<고양이 대학살>로 잘 알려진 로버트 단턴이 이번에는 프랑스 혁명 전후 금서(禁書)의 목록과 당시 출판업계의 관행을 탐구한다. 치밀한 자료조사와 흥미진진한 서술, 책의 역사와 프랑스 혁명사를 아우르는 깊고 넓은 관점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단턴은 포르노소설, 연애소설, 에스에프, 중상비방문 등 사람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하는 도서들이 당시 사람들의 봉건적 인식체계를 뒤흔들었다고 본다. 단적으로, 섹스는 계층과 계급을 초월한다. 즉 섹스는 평등하다. 단턴은 포로노소설들로부터 ‘평등한 세상’이라는 혁명의 위대한 관념이 싹텄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로버트 단턴은 미시사, 문화사 연구를 주도하는 대표적 역사학자로 자주 호명됐는데, <책과 혁명>이 보여주듯 그의 출발점은 18세기 프랑스사 연구다.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을 다룬 <시인을 체포하라>(문학과지성사, 2013)도 <책과 혁명>과 나란히 읽을 수 있는 책. 강창래의 <책의 정신>(알마, 2013)의 첫 장도 <책과 혁명>의 내용을 압축해서 소개하고 있다. <책과 혁명>의 두께가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참고해도 좋겠다.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는 판이 두번 바뀌었다. 1995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1년에 재판이 나왔었다. 이번에 나온 건 번역도 일부 교정했다고 한다.

20세기 유럽 최고의 인문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일부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아 출간하는 개정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책에서 1914년, 유럽에서 설마설마했던 전쟁이 어떻게 어이없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는 "이성에 맞는 단 하나의 이유, 단 하나의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작가 로맹 롤랑,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휘자 브루노 발터 등 다양한 예술가, 학자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그의 정신세계를 심화시켰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그 세계적 거인들과의 만남의 순간을 상세히 기록하며 시대의 풍경을 그려냈다.

 

 

마침 지난해 가을에 나온 <1913년 세기의 여름>(문학동네, 2013)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소개에도 있지만 올해는 1차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라 여러 회고록을 포함해 관련서가 많이 나올 걸로 예상된다. 기대해봄직하다. 덧붙여, 츠바이크가 좋았던 시절로 회고하는 빈의 세기말과 세기초에 대해선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생각의나무, 2006)과 스티븐 툴민과 앨런 재닉의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필로소픽, 2013)을 참고할 수 있다. <세기말 비엔나>는 <비엔나 천재들의 붉은 노을>(생각의나무, 2010)이라는 조잡한 제목으로도 다시 나왔다가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14.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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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꼽을 만한 책이 여럿이다 보니 마치 '이주의 저자'처럼 됐다. 디킨스와 피츠제럴드는 군말이 필요 없고,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문학과지성사, 2014)도 재출간됐다. 51년생이지만 스페인어권의 대표적 문학상들을 휩쓸며 고전 반열에 들어간 작가다.

 

 

 

먼저 디킨스. 그의 대표 장편 가운데 하나인 <작은 도릿>(한국문화사, 2014)이 번역돼 나왔다. 디킨스 전공으로 <어려운 시절>(창비, 2009)의 역자인 장남수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1857년작. 영국에선 BBC에서 드라마로도 제작했다(하긴 디킨스의 작품 대부분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번 번역본은 명저번역의 일환으로 출간된 거라 책값이 좀 비싼 게 흠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올 봄과 여름에 디킨스의 작품 몇 편을 강의차 읽을 계획이어서 바로 손에 넣었다. 디킨스에 대해선 앞으로 몇 차례 더 다루게 될 것이다(19세기 작가들 가운데서는 디킨스와 발자크를 읽는 게 올해 계획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와 함께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밤은 부드러워>(시공사, 2014)가 번역돼 나왔다. 1934년작. 기존 번역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분학전집판으로 나오길 고대하던 작품이다. 어떤 소설인가.

1934년, 9년의 집필 기간, 17번의 개고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발표된 네 번째 장편 <밤은 부드러워>는 그 자신 '나의 신앙고백'이라 일컬을 정도로 작가의 많은 것이 투영된 작품이다. 소설가이자 피츠제럴드 번역가로도 이름이 높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가 잘 만들어진 걸작이라면 <밤은 부드러워>에는 피츠제럴드라는 인간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미국문학 강의 때 새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하며 목록에서 뺐었는데, 이 작품 역시 강의에서 다뤄보고 싶다. 그럴 만한 여건은 갖춰진 셈이고.

 



끝으로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1994). "독일의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서평가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비견되는 작가'라고 평했으며, 스페인 비평상, 로물로 가예고스 상, 페미나 국제문학상, 임팩 더블린 문학상, 넬리 작스 문학상, 몬델로 문학상, 유럽문학상 등 유럽의 문학상을 싹쓸이한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이다. 세계 유수 작가와 비평가들의 높은 평판 때문에라도 읽어볼 욕심이 나는 소설이다.

 

 

그가 수상한 문학상 가운데 로물로 가예고스 상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수여하는 상으로, "남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며 문학성과 실험성이 뛰어난 작품에게 주어지는데, 역대 수상작가들을 보면 이 상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등이 이 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에도 소개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역시 이 상 수상작이다." 우연찮게도 이번 봄 강의목록에 <백년의 고독>과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올라와 있다. 같은 급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도장을 찍어둘 만하다...

 

14.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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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읽어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 고전들이 출간된다. 최근에 나온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아카넷, 2013)도 그런 경우. 무려 다섯 권짜리다. 한국연구재단의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하나로 나온 것인데, 상업성을 고려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간단한 소개로는 "르네상스 후기의 대표적 서사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1474~1533)의 대표작이자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큰 인기를 끈 기사문학의 전통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절정기에 이른 르네상스의 시대정신과 인문주의적 사고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떤 의의가 있는가.

 

 

갈릴레이의 애독서로도 알려져 있으며, 특히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리는 16세기 영국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대표작으로 영시 사상 가장 긴 ‘선녀여왕’의 창작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가르니에의 희곡 '브라다망트', 비발디의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초'와 헨델의 오페라 '오를란도'에도 소재가 되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영문학 사상 가장 긴 시 작품이라는 엔드먼드 스펜서의 <선녀여왕>도 엄두가 안 나긴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완역돼 있는데, 이 역시 학술명저번역 지원사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어떤 작품인가. 

영문학 사상 가장 길이가 긴 시 작품으로서 흥미진진한 줄거리, 이야기 구성의 웅대함, 당대의 정치·사회·종교를 망라하는 풍부한 알레고리와 무궁무진한 표현의 기교 등이 영문학도나 관련 연구자뿐 아니라 모험담과 서사시 독자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다. 작품은 선녀여왕(엘리자베스 여왕을 상징)을 섬기는 기사들의 모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권에는 해당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기사가 등장하여 특정한 덕목을 대변하고 있다.

아무튼 <광란의 오를란도>나 <선녀여왕>까지 독서목록에 넣는다면 고전 읽기의 '끝장'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광란의 오를란도>로 돌아오면, 어떤 이야기인가.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기사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라고.

아서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함께 기사문학 3대 시리즈의 핵심 주인공인 오를란도의 이야기가 민중적인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데는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고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고 있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열광적인 종교적 열망 속에서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전쟁은 하나의 모델이 필요했다. 오를란도와 여러 다른 기사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적절하게 부합되었다. 작품의 핵심 주제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바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진영 사이의 전쟁, 오를란도의 안젤리카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한 광기에서 빚어지는 사건, 이슬람 진영의 기사 루지에로와 그리스도교 진영의 여인 브라다만테 사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암튼 고전 독자와 오페라 애호가라면 반가워 할 만한 출간 소식이다...

 

14.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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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고전 가운데 하나가 번역돼 나왔다. 피터 버거와 토마스 루크만의 <실재의 사회적 구성>(문학과지성사, 2014). 26년 전에 들은 사회학 개론 시간에 책 이름을 처음 접한 듯싶으니까(피터 버거란 이름도 그때 알았지만) 정말 오래 되긴 했다. 원서는 1966년에 나왔다('실재' reality'의 번역이다). 부제는 '지식사회학 논고'.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터 버거와 현상학을 통해 사회학을 재정립하고자 했던 토마스 루크만이 지식사회학을 재정립하고 나아가 사회학을 보는 시각을 뒤바꿀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상학적 접근법을 기반으로 기존의 사상, 이데올로기, 세계관을 대상으로 삼던 지식사회학을 혁신하고, 일상생활의 지식에 기대어 사회와 인간 정체성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66년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회학 고전이자, 18개국에 번역되어 가장 많이 읽힌 사회학 서적 중 하나로 꼽힌다.

 

피터 버거의 책으론 <사회학에의 초대>(문예출판사, 1995)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책세상, 2012)와 함께 사회학 입문 3종 세트로 묶음직하다. 예비사회과학도들이 입학을 앞두고 읽어볼 만하겠다(좀 어려우려나?) 원서는 펭귄판으로도 나와 있다.

 

 

한편 토마스 루크만의 또다른 주저는 알프레드 슈츠와 공저한 <생활세계의 구조>다. 제목에서부터 후설 현상학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주는데, 슈츠는 현상학적 사회학 연구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다. <사회세계의 현상학> 같은 주자가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사회학이론서에서 자주 접하던 이름이다.

 

이번주 신간 중에는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국가 간의 정치>)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등의 책도 보인다. 내주에 다룰 '이주의 고전' 후보들이다...

 

14.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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