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권의 대표적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와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의 시집이 출간되었기에 '이주의 고전'으로 골라놓는다. 먼저 대표작의 제목으로 나온 릴케의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열린책들, 2014).

 

 

<두이노의 비가>는 댓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 구할 수 있는 걸로는 이번에 나온 열린책들판과 책세상판이 유일한 듯싶다. 때문에 두 판본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릴케 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건 릴케의 주요한 시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하긴 책세상판은 '릴케 전집'이다).  

 

1899년부터 1922년까지 발표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여덟 권(<기도 시집>, <형상 시집>, <신 시집>, <후기 시집>, <진혼가>, <마리아의 생애>,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두이노의 비가>)에 수록된 시 중 170편에 이르는 작품을 선정한 시 선집이다. 생전 다작가였던 릴케가 세상에 남기고 간 시적 대업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대조해서 읽어본다면, 릴케 시의 진의에 좀더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열린책들판의 역자 손재준 교수는 원로 독문학자로 현재 고대 명예교수이며 게오르크 트라클의 <귀향자의 노래>도 번역서로 갖고 있다. 책세상판의 역자의 김재혁 교수와는 사제지간이 아닌가 싶다.

 

 

지난봄에는 릴케 초기 시선집으로 <릴케 시집>(문예출판사, 2014)이 출간됐었는데, 이 역시 책세상판 전집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릴케 가이드 북으로는 볼프강 레프만의 전기 <릴케>(책세상, 1997)과 조금 전문적일 수 있지만 김재혁 교수의 연구서 <복면을 한 운명>(고려대출판부, 2014)을 참고할 수 있다. 한국 시인들과의 비교문학적 연구로는 같은 저자의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고려대출판부, 2006)도 나와 있다. 릴케에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나 <말테의 수기>부터 손에 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닿으면 언젠가 <말테의 수기>도 강의에서 다뤄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릴케와 러시아'도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데, 영어와 러시아어로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기억에 릴케는 러시아를 세번쯤 방문했고 레르몬토프 등의 러시아 시를 독어로 옮긴 바 있다. 파스테르나크도 릴케와 인연이 있는 시인이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시인 트라클의 시선집도 이번에 출간됐다. <꿈속의 제바스치안>(울력, 2014). 첫 번역은 아니지만 다른 판본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기에 이번 시집은 기대가 된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약물과용으로 27세에 요절한 건 이번에 알았는데, 짧은 생을 마친 걸로는 레르몬토프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 전쟁의 경험을 작품에 표현해, 퇴락과 죽음을 노래한 오스트리아 최고의 애가() 작가가 되었다"는 소개다.

 

 

이번 늦가을엔 트라클과 만나보아도 좋겠다...

 

14.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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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책이 나왔고 이름도 똑같이 '피에르'여서 두 사람을 묶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철학자 피에르 마슈레. 또 다른 공통점은 이번에 나온 두 사람의 책이 재번역본이라는 점. 덧붙여 둘다 나로선 상당히 오랜만에 접하는 책이라는 점. 

 

 

부르디외의 <언어와 상징권력>은 불어판과 영어판이 오고간 텍스트이다. 불어판(1982)이 먼저 나왔지만 영어판(1991)이 나오면서 몇 편의 글이 더 포함되었고, 나중에 이 영어판을 토대로 새로 편집된 불어판(2001)이 나왔다(그래서 영어판의 해제가 불어판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영어판의 번역이 국내에서는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새물결, 1995)란 제목으로 거의 20년전에 출간됐었다. 대학원생 시절이던 그맘때 나도 영어판과 같이 펴놓고 몇 대목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사실 당시에 부르디외 번역서들도 상당수는 읽기가 어려웠다. 부르디외 해설자가 '구별짓기'란 말을 '탁월화'로 옮기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나온 <언어와 상징권력>의 역자는 이렇게 적었다. "이 번역서는 독특한 (자의적인) 구성과 인상적인 옮긴이 서문, 그리고 기념비적인 오역을 통해, 한국에서 부르디외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식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래서 중복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하고 읽기 쉬운 번역과 조금 더 친절한 역주로써, '부르디외를 재발견'할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는 번역의 동기를 밝혀놓았다. 어차피 구 번역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책이므로 오늘의 독자에게는 그냥 '발견'이라고 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마치 처음 읽는 듯한 표정으로 <언어와 상징권력>을 대하면 되겠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의 대학원생이라면 도전해봄직하다. 

 

 

이어서 <헤겔 또는 스피노자>(그린비, 2010)의 저자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그린비, 2014)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번역돼 나온 책이다. 구 번역본이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백의, 1994)이다. 당시 책을 접할 때 마슈레는 철학자가 아니라 문학이론가의 이름으로 각인되었는데, 스피노자 철학의 권위자라는 건 나중에야 추가된 이미지이다(마슈레는 알튀세르의 제자로 발리바르, 랑시에르와 함께 알튀세르 사단의 삼총사였다). 80년대 후반 문학이론의 쟁점이던 '반영이론과 생산이론'에서 주요한 참조점이었기 때문에 나도 영어판까지 구해서 읽어보던 기억이 난다. 레닌의 톨스토이 비평 같은 장도 들어 있었기에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상은 발자크를 읽어야겠다는 것 정도. 책의 번역자가 발자크 전공자였던 것은 그래서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만, 듣기에 이 번역서 또한 기념비적 오역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형식상으론 두 권 모두 재번역이고 '재발견'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건 나 같은 중년의 독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고, 지금 세대의 독자가 굳이 '기념비적 오역'들까지 들춰가며 읽을 필요는 없겠다. 깔끔하게 새로 번역된 판본으로 읽으면 될 테니까. 다만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가졌던 시의성은 좀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요즘 누가 반영이론이니 생산이론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겠는가. 그러니 '발견'은 때로 '발굴'과 구별하기 어렵다. 인생 짧지만, 바로 그렇게 짧기 때문에 20년이란 시간은 짧지만도 않은 시간이다...

 

1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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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의 대표작 <석기시대 경제학>(한울, 2014)이 번역돼 나왔다. 올봄에 <역사의 섬들>(뿌리와이파리, 2014)이 출간됐을 때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바 있는데, 소망이 실현된 셈이라고 할까(다만 다소 비싸게 실현된 게 흠이다. 대개 많이 나가지 않을 경우 책값이 비싸게 매겨지는데, 이 책은 영어 원서도 비싼 편이다).

 

 

어떤 책인가.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현재적 의의에 대해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짚는다.

저자인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경제가 ‘생계경제’를 대표한다고 보는 경제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즉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려 한다. 이 책은 경제인류학의 고전적 쟁점과 풍부하고 흥미로운 민족지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경제사, 사학 전공자들의 교재나 연구서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을 현재의 맥락으로 호출하면, 당대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경제 철학과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의미심장한 지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가지 의의가 있겠다는 것. 하나는 석기시대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통념을 교정해준다는 의의이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대안적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게 다른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주의 고전'으로 꼽을 만하다...

 

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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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소담출판사, 2014)와 마찬가지로 고전 작가의 빠진 작품 가운데 손꼽아 기다리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D. H.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유문화사, 2014). <무지개>(민음사, 2006)에 이어지는 속편 격 작품으로 <아들과 연인>에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이어지는 로렌스의 문학 여정 가운데 허리에 해당하는 대표작이다.

 

 

통상 연구자들이 <사랑하는 여인들>, <연애하는 여인들>이라고 부르던 작품인데, 이제 번역본이 나왔으니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라고 통일해서 부르면 되겠다. 소개는 이렇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문학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문학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가 보이는 페미니즘적인 시각 때문이다. 소설 속의 두 여인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기대보다는 남자에 대한 불신과 결혼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보인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한번쯤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경험일지도 모르고, 그나마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며 불안한 속내를 웃음으로 감추는 이들 자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오스틴의 작품들과는 한 세기의 간격을 두고 있는데, 역시나 여성 주인공들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이성과 감성>에서 <에마>까지...

 

 

개인적으론 지난달에 <아들과 연인>을 강의하면서 <사랑에 빠진 여인들>도 빨리 번역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번역본이 출간돼 반갑다. 기회가 닿으면 <무지개>와 같이 묶어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봐야겠다...

 

1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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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발표된 대로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에게 돌아갔다. 정확히 60년전,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굳이 6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 건 그의 1937년작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소담출판사, 2014)가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1926년에 나온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보다 조금 먼저 나온 <봄의 급류>를 첫 장편으로 치면 네번째 장편소설에 해당한다. 세번째 장편 <무기여 잘 있거라>로 작가적 명성을 확고히 한 시기에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지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통상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강건너 숲속으로>(1950)과 함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분류된다(헤밍웨이 전집이 아닌 선집이라면 보통 누락되는 작품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당시 유행된 사회소설을 지향한 것이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사회소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식의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로선 실패작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헤밍웨이에 대해 많은 걸 말해주리라 기대를 갖게 하는 작품. 그래서 절판된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덕성문화사, 1988)를 구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띠지에는 '국내 최초 출간'이라는 문구도 들어 있지만, 과거 1970년대에 나온 헤밍웨이 전집에는 <빈부>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80년대 단행본으론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으니 사실이 아니다.

 

 

덧붙여 흥미를 끄는 점은 영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1944). <소유와 무소유>란 제목으로도 출시돼 있는데, 거장 하워드 혹스가 메가폰을 잡았고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이 주연을 맡았다. 그것만으로도 화려하지만, 더 의미심장한 것은 윌리엄 포크너가 공동각본을 썼다는 점. 이미 걸작들을 써내던 시절이었지만 포크너는 자신의 소설들이 팔리지 않자 생계를 위해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윤색하는 일을 했었는데(주로 대사를 다듬었다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은 그의 손길이 더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헤밍웨이의 원작이 많이 수정됐다고 하니까 그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여하튼 이런 이유들로 새 번역본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환영하는 뜻의 페이퍼를 적는 이유다...

 

1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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