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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기사 하나를 옮겨온다. 북데일리의 '세계의 책' 코너에서 가져온 것인데, 희귀하게도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주저 중 하나의 <호모 사케르>의 국역본이 근간예정인 상태에서 해를 넘기는 것 같아 유감스럽지만 대신에 영역본들이라도 뒤적거려봐야겠다(*아감벤의 <남겨진 시간>이 최근 출간됐다. -08. 11. 14).  

북데일리(05. 12. 05) 선악의 이분법 뛰어넘은 '사도 바울로'

기독교 성인 사도 바울로(서기 10~67년)는 다마스쿠스로 여행하다가 예수의 출현을 보고 사흘간 실명 상태를 겪은 끝에 소명을 받고 제자가 됐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이자 신학자였던 바울로는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로 자신의 종교적 사상을 전해 그 가운데 14통이 신약성서에 포함돼 있다.

이중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이방인이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 이방인의 사도로 떠오른 바울로 사상의 진수를 가장 분명하고도 명쾌하게 담고 있다. '신앙과 의화(義化)'와의 관계를 소개하는 이 편지는 '성경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듯 다른 편지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진수가 들어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미학자 이자 베네치아건축대학 교수인 조르지오 아감벤(63. Giorgio Agamben)은 바울로의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앞부분에 나오는 10개 단어를 텍스트로 하여 매우 획기적인 시각으로 서양사상의 사유적 이분법을 철저히 분석해 냈다. 그의 저서 <남은 시간 :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스탠포드대출판부. 2005)는 그 결실이다. 영어 원제는 'Time That Remains: A Commentary on the Letter to the Romans'.

아감벤은 그동안 죽은 자와 산 자, 동물과 인간, 육체와 정신, 자연과 문화 등 서구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이원적 대립의 사유구조 속에서 중간지대를 설정, 그 '무언가'의 상태가 현대사회를 지배한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무언가'와의 관계 속에서 아감벤은 '경계'와 '나머지'라는 말을 적시하는 조건은 이원적 대립 관계에 수용되지 않고 계속 '남는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그 전형이 로마시대 '성스러운 인간'이란 이름 아래 '인간 외 인간'으로 차별화된 '호모 사켈'이며 혹은 아우슈비츠에서 '회교도'로 불리며 유대인을 돌보고 그들의 최후를 목격한 사람, 죄수도 간수도 아닌 '나머지의 사람'이다.

책은 이런 발상의 사유를 하게 된 저자 특유의 메시아에 대한 이해를 바울로의 편지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낸다. '메시아'란 히브리어로 세계 종말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구세주를 나타내며 그리스어 역시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 예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유태교에서는 아직도 도래하지 않는 메시아를 '지금' 항상 기다리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이미' 도래한 메시아(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차이가 있다.

아감벤은 '지금'과 '이미'의 중간에 놓인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 사건이 결코 '지금' 완료된 것이 아니라 본래 부정적일 미래를 구속하는 응축된 형태로서 점차 다가오는 특이한 '지금의 때'를 밝혀낸다. 이것이 '나머지 시간'이다. 그때 구원에 대한 갈구를 통해 '자유인' 바울로가 기독교의 사도가 된 시점이 바로 '나머지 시간'이다. 이런 사상적 관념은 기독교인 바울로에게 인종, 종교, 성별이라는 차이는 의미가 없고 현대인에게 '약함' 관심을 둘 때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존재로서 '바울로'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노수진 기자)

06. 11. 30.

P.S. 아감벤의 책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스탠포드대학의 'Cultural Memory in the Present' 시리즈로 나란히 나온 알랭 바디우의 <성 바울: 보편주의의 정초>(영역본 2003)와 테어도어 제닝스의 <데리다 읽기/ 바울 생각하기>(2005) 등이 있다. 진작에 구해놓은 책들이지만 읽을 여가/기회를 아직 못만들고 있는 책들이다. 아직은 '나머지 시간'을 살 나이가 아닌 탓인가?..

 

 

 

 

바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신학'과는 무관하며 지젝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다. <믿음에 대하여>나 <혁명이 다가온다> 등에서 바울에 대한 언급을 읽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참고로 지젝이 추천하는 바울 관련서는 독일 철학자 야곱 타우베스(Jacob Taubes; 1923-1987)의 <바울의 정치신학>(199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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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i 2006-11-30 16:37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서재는 늘 좋은 글,정보들이 넘쳐나는군요..^^ 요즘 게을러진 책읽기에 탄력을 주고자 아감벤의 '바울' 불어본,영어본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올 겨울 공부계획이죠. 90년대 후반 바디우의 '바울'의 출간되었을 때 상당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종영씨가 이행총서로 계획했다가 포기한(버린?) 신학적 사고(Christian Jambet의 '알라무트에서의 위대한 부할'도 저작권만 사놓고 포기됨)가 저에겐 아직도 매력적입니다. 사실 바디우나 아감벤의 '바울'은 ' 네그리의 '욥기'보다는 더 매력적입니다.... 꼬르벵(H.Corbin)의 책들('이슬람철학사'..)와 함께 농사꾼에겐 이 겨울이 공부의 계절이 될듯합니다..

"종말의 도래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곧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시간 이해였고, 그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자이다.(124쪽)" 알랜 시걸, <예수 2000년>,대한기독교서회

로쟈 2006-11-30 16:39   좋아요 0 | URL
제 경우 바울에 대한 관심은 지젝에 의해 촉발된 것인데, 바디우, 아감벤 등이 모두 바울론을 쓰고 있어서 이게 거으 '트렌드' 수준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련서 몇 권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두려고 합니다...

아포지 2006-11-30 18:01   좋아요 0 | URL
관려서 정보들을 모으신다니.. 참고로.... Theodore W. Jennings, Jr. 의 "Reading Derrida/Thinking Paul" 라는 책도 있더군요. 데리다에 관한 책이니 벌써 아시는지도 모르겠네요...

2006-11-30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30 20:13   좋아요 0 | URL
apouge님/ 예, 갖고 있는 책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님/ 별 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진득하게 매달려 있지 못하는 성격/처지인지라...

Nabi 2006-11-30 20:56   좋아요 0 | URL
지젝이 The Parallax view에서 네그리와 아감벤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아감벤의 생각이 더 묵시적(265쪽)이라고 지적한부분에 공감이 갑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울과 관련한 묵시적 사고에 대한 참고 자료들은... 데리다 <최근 철학에서 제기된 묵시론적 목소리에 관하여>, 지젝,바디우와 활발히 교류하는 신학저널JPS(http://www.philosophyandscripture.org)실린 바울과 관련된 글들. Ward Blanton의 Apocalyptic Materiality: Return(s) of Early Christian Motifs in Slavoj Zizek(http://www.jcrt.org/archives/06.1/index.html).. 리요타르의 책 The Hyphen : Between Judaism and Christianity (Philosophy and Literary Theory)도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얇은 책이 왜그리 비싼지 아직도 구입을 미루고...)

로쟈 2006-11-30 21:14   좋아요 0 | URL
Nabi님/ 거의 전문적인 서지인데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리오타르의 책 같은 건 도서관에서 주문해봐야겠습니다...
 

자크 라캉의 셋째딸이라는 '시빌 라캉'의 회고록이 출간됐다. <한 아버지: 수수께끼>(Un pere: puzzle)가 그것이다. 책은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난 1994년 갈리마르출파사에서 나왔다(이후에 스페인어와 독어로도 번역됐다). 하지만 이 책에 관한 리뷰는 최근에 읽었다. 다음카페 '비평고원'에 김남시님이 올려놓은 리뷰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욕망 : Sibylle Lacan <한 아버지>'(06. 11. 19)를 옮겨놓는다(필자가 참조한 책은 독역본이다). 김남시님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그린비, 2005)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으며 현재는 독일 유학중이다. 리뷰에서 '쟈크 라깡'이란 표기는 '자크 라캉'으로 통일했으며 원어는 우리말로 음역하고 일부 문단을 조정했다. 그리고 각주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는 없었다.” 시빌 라캉(Sibylle Lacan)의 회고록 <한 아버지 : 퍼즐>은 이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건 이 책 전체를 관통해 흐르고 있는 ‘부재하는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만들기 위한 그녀의 안쓰러운 투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부재했던, 바로 그 부재로 인해 그녀 생애 전체를 규정했던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쟈크 라깡이다.

시빌 라캉은 쟈크 라깡이 첫 번째 부인 마리-루이즈 블롱댕(Marie-Louise Blondin)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쟈크 라깡은 그녀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후 교통사고로 죽게 되는 첫째 딸 카롤린(Caroline)과 둘째 아들 티보(Thibaut)에 이어 1940년, 이 회고록을 쓰게 되는 세 번째 딸 시빌을 낳는다. 그녀가 태어난 지 1년 후 라깡은 블롱댕과 이혼한다. 그녀의 말처럼, 아버지를 의식하게 될 나이의 그녀에겐 이미 자신의 아버지는 부재했던 것이다. 

시빌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자신의 회고록 앞에, 특이하게도 ‘일러두기(Hinweise)’ 라는 제목을 단 ‘서문’을 붙였다. 거기서 그녀는 ‘이 책은 소설도, 소설 형식을 띤 자서전도 아니다. 이 책엔 어떤 픽션도 없다. 독자들은 여기서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거나 책 부피를 늘리기 위한 어떤 꾸며진 이야기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들을, 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기록하려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크 라캉이라는 인간자체에 대한 것도, 정신 분석학자로서의 쟈크 라깡에 대한 것도 아니다. 이건 나의 아버지 쟈크 라깡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썼다.

실지로 그녀가 이 책에서 전해주고 있는 자크 라캉의 모습은 온전히 그의 ’버려진‘ 딸, 시빌의 관점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녀의 회고록은 자크 라캉에게 버림받은 후 광고 삽화가와 부띠끄 점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세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생부이지만 법적인 타자였던 라캉에 대한 그녀의 양가적 감정, 나아가 그가 두번째 부인 실비아 바티이유(Sylvia Bataille; 조르주 바타이유의 아내였다) 사이에서 낳은 딸 주디스 바타이유(Judith Bataille) - 그녀는 이후 라깡의 제자였던 자크-알렝 밀레르(Jacque Alain Miller)와 결혼해 주디스 밀레르(Judith Miller)라는 이름을 갖는다 - 에 대한 그녀의 깊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 유명한 정신분석 이론가는, 이미 세 명의 아이를 낳은 부인에게 또 아이를 낳기를 요구하다 그를 거부한 부인과 이혼하는 이기주의자이자, 전 부인과 자식들이 사는 거리 바로 맞은편 호텔에서 버젓이, 그것도 약속시간을 어기면서까지 여자와 동침하는 파렴치한으로, 나아가 이혼한 부인과 자식들에게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비만 제공했던 인색한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버지 자크 라캉에 대한 관계를, 그의 ‘아버지 역할’에 대한 요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혹은 읽어낼 수 있는,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 혹은 부정하려는 그녀의 집요하고도 애처로운 의식적, 무의식적 노력은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인간적 연민과 스노비즘적 경멸 사이를 오가게 한다. 부재하는, 유명한 아버지 자크 라캉에 대한 그녀의 권리 주장은 그녀의 깊은 피해의식과 열등감과 결합되어 있는데, 이는 라캉이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주디스 바타이유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혼한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 성을 따르자는 제안을 거부할 정도로, 아버지 라캉에 집착하고 있던 그녀에게, “Who‘s who” (유명인 인명사전)에 실린 'Jacque Lacan'의 소개 글은 충격적이었다. 거기엔 정신분석학자 라캉에겐 한 명의 딸, 'Judith Bataille'만 있는 것으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아래 사진이 '주디스 라캉' 혹은 '주디스 밀레르').

자신에겐 태어날 때부터 부재했던 바로 그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현존하는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는 배다른 동갑내기, 라캉이 자신의 진료실에 커다란 그녀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로 자랑스러워 했던 유디트(*주디스?)의 첫 만남이 그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는 충분히 예상할 만 한 일이다. “유디트와의 첫 만남은 내겐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완벽했고, 나는 너무도 조야하고 서툴렀다. 그녀는 완벽히 사교적이고 재치 있었고 나는 거칠고 직접적이었다. 그녀가 성숙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데 반해 나는 어린애 같았다...나는 완전히 내팽겨지고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내가 언어만 공부했던데 반해 그녀는 철학을 공부하기까지 했다. 아, 얼마나 자주 그녀가 소르본 앞에서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내 앞을 스쳐지나 갔던가.”

그런데, ‘자신에겐 부재했던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유디트에 대한 그녀의 피해의식과 열등감은 자기 언니이자, 라캉이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 카롤린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네 살이 많았던, 그리하여 라캉을 4년이나 더 ‘아버지’로 가지고 있었던 카롤린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녀는 모든 능력과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성숙하고 모든 여성스러움을 갖추고, 길고 탄탄한, 그리고 우리 가족 중에선 보기 드문 금발머리였으며 르노아르 그림의 주인공처럼 화사했다. (그에 반해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작았고 버릇없는 소년 같았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었고 (나는 그냥 귀엽기만 했다), 특별히 재능이 많고 지적이었다. (그녀는 학생시절 내내 1등이었고, Concours General 상을 받고, 우수한 대학 성적을 거두었다. 난 성적이 좋긴 했지만 그를 위해 무척 애써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녀는 육화된 여신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나와 오빠)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그녀에 의하면 이 카롤린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라캉은 그녀에게 두 번째로 - 첫 번째는 메를르 퐁티가 죽었을때 -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아버지 (라깡)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고,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카롤린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 둘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던 다른 딸들의 아름답고, 지적이며 성공적인 여성성을 아버지가 부재했던 자신의 볼품없고 초라한 삶과 대비시킴으로써 불러일으켜지는 꺼림칙한 연민의 감정은, 자크 라캉의 자식이기를, 태어날 때부터 부재하던 그를 자신의 아버지로 전취하려는 시빌의 파라노이드적(*편집증적) 집요함 앞에선 엽기적 섬뜩함으로까지 발전한다. 라캉이 죽은 후 그의 묘지를 방문한 그녀는, 함께 방문했던 남자 친구를 묘지 입구에서 기다리게 한다. “나는 아무 목격자도 없이, 내 아버지와 단둘이 있고 싶었다. (내 남자 친구의 모욕받고 기분상한 반응에 대해선 침묵하기로 하자.) 그건 사적이고도 내밀한 만남이었으니까.” 그녀는 아버지의 차가운 묘석에 손을 얹고는 마음 속으로부터 이야기한다. “내 아빠,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내 아버지에요. 그걸 아시겠지요.”

한편 또 한 명의 라깡의 딸, 철학자 주디스 밀레르 역시 아버지 라캉과 관련된 책을 출판했다. 1991년 Le Seuil 출판사에서 나온 <라캉 앨범. 내 아버지의 얼굴>이 그것이다.

06. 11. 19.


 

 

 

 

P.S. 알다시피 자크 라캉의 생애와 관련하여 가장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새물결, 2000)이다. 그리고 슈나이더맨의 <자크 라캉, 지적 영웅의 죽음>(인간사랑, 1997)도 참고할 만한 책이다. '생초보'라면 다리언 리더의 <라캉>(김영사, 2000)부터 읽는 것이 좋겠다.

흥미롭지만, '아버지'와 관련하여 읽어야 할 최적의 문헌은 '아버지의 이름(the Names-of-the-Father)'을 주제로 한 라캉의 세미나이다. 자크-알렝 밀레르가 편집한 이 세미나가 작년에 쇠이유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곧 영어와 러시아어로 번역됐다. 영어본은 저널 'Lacanian Ink'(27호)에 들어 있는데, 그 일부 발췌내용은 아래와 같다.

The figure of the father is not a concept born in psychoanalysis, but rather a figure inherited by psychoanalysis. If the plural is an allusion to the end of this cursed tradition, it is because it is introduced in a logic of the Name-of-the-Father in which the latter appears as a function that can be sustained by diverse statements, which, from then on, play the role of said name.

Thus the Name-of-the-Father, as one of these elements, should not be the ultimate instance nor the ultimate response. It remains to be given a status and distinguished as element and as function. But, what function? If we refer to what Lacan denominated the paternal metaphor, it is the function of metaphorizing the desire of the mother, of barring it. In this sense, the Name-of-the-Father is, par excellence, an operator of metaphorization, to such an extent that, as element, it already is in itself the metaphor of the father, of the presence of the father. Let us write it this way:

The Name-of-the-Father can not only operate in the absence of the father (this is why Lacan criticizes the theories that relegate psychosis to the lack of the father), but it can also make him absent. If it is a matter of the father spoken through the mother, as a theme of the discourse, it is well to stress that it is an empty reference there, that he is made absent by the verb. And for that reason, without myth, one can affirm that it is a matter of the dead father as the subject of the signifier, which is writt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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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20 06:47   좋아요 0 | URL
마지막 “내 아빠,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내 아버지에요. 그걸 아시겠지요.”가 의미심장하네요.

로쟈 2006-11-20 08:19   좋아요 0 | URL
모든 딸들의 코멘트 아닐까요?..

비로그인 2006-11-20 11:12   좋아요 0 | URL
라캉.. 저는 어렵습니다.
유디트의 사진, 전형적 프랑스 엘리트계층 여인의 풍모입니다.
시빌이 열등감을 느낄법도 합니다.


2006-11-20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20 22:59   좋아요 0 | URL
**님/ 블로그를 갖고 있지 않구요, 가보니까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옮겨놓았더군요. 네티켓이 없는 분입니다...

2006-11-20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깽돌이 2006-11-21 02:12   좋아요 0 | URL
자녀는 하나여야 안전한가?! ^^

로쟈 2006-11-21 08:38   좋아요 0 | URL
상팔자는 무자식이죠...

테렌티우스 2006-12-01 10:32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팬입니다...^^

중간 이름의 우리말 표기는 쥐디트 라캉, 쥐디트 밀레르가 맞습니다. 국어 연구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보시면 됩니다...

http://korean.go.kr/06_new/rule/rule05.jsp


로쟈 2006-12-01 10:54   좋아요 0 | URL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어연구원의 표기를 다 따르지는 않지만, 이 경우는 그게 맞는 거 같네요...
 

'세계문학을 안 읽어도 되는 이유'에 이어지는 페이퍼이다. 물론 그때의 세계문학은 문학이라면 하품이 먼저 나오는 회사원들이 '세계문학'이란 주제가 등장했을 때 '대처'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세계문학'이다. 인문학 전공의 대학원생들이라면 사정은 전혀 달라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웃음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근대의 서사시>와 <세상의 이치>의 저자 프랑코 모레티가 책임편집을 맡은 <소설(Tne Novel)>(2006) 정도를 '교양'으로 읽어줘야 하기 때문이다(두 권의 단행본 외에도 모레티의 소설론들은 여러 차례 국내 문학잡지들에 게재된 적이 있다). 본래의 이탈리아어본은 네 권짜리인데, 영어본은 그걸 간추린 것인지, 추가적으로 더 출간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역본이 나온다면 아마도 모레티의 책들을 낸 바 있는 새물결출판사에서 나올 듯하다. 하지만, 언제?  

몇달 전 도서관에 주문했던 책을 나는 어제 대출할 수 있었는데, 두 권 합하여 1,7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론 집성'이라 할 만하다(소설 대백과사전!).  'The New York Sun'지에 실렸던 서평 'Taking a Novel Approach'(06. 07. 26)을 읽어보면  책의 대략적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The sheer size of "The Novel" (Princeton University Press, $99.50 per volume), a new two-volume compendium of scholarly essays on every aspect of the history and nature of the genre, makes a sort of claim. Clearly, a literary form that requires some 1,700 pages of examination must be inherently problematic: Its origins, its techniques, its effects on readers must cry out for expert investigation. Yet the claim posed by "The Novel" (and still more by its original Italian version, Il romanzo, which is twice as long), seems counter-intuitive, given how central novels and fiction are to our current understanding of literature. In any bookstore, the sum total of all printed matter is divided into two categories, fiction and everything else. The novel, you might say, is like pornography: It may be hard to define, but everyone knows it when they see it.

Yet it is exactly the cultural phenomena that are most obvious, that surround us as invisibly as an atmosphere, that most need questioning.Take a seemingly simple question that arises again and again in "The Novel": What was the first novel? Among English readers, there are a few standard answers: Samuel Richardson's "Pamela," the epistolary novel that appeared in 1740, or Daniel Defoe's "Robinson Crusoe," which was advertised as a true story when it was published in 1719. Widen the focus to Western Europe, however, and Defoe looks like a latecomer compared to the French women novelists of the 17th century, notably Madame de Lafayette (author of the courtly novel "La Princesse de Cleves") and Madame de Scudery. And even before the courtiers of the Sun King devoured those amorous tales, there was "Don Quixote," published in 1605 and often baptized as the first novel, though it reads very unlike the novels we know today.

Yet "Don Quixote" itself vanishes in an abyss of precursors. What about the prose romances of the Renaissance, or the novelle of Boccaccio and the tales of Chaucer, popular in the 14th century? Or the chivalric verse romances of the Middle Ages, which grew to encompass dozens of episodes? Or the Greek novels of the Hellenistic period, like Heliodorus's "Aethopika," with their tales of lovers reunited after fabulous ordeals? For that matter, isn't the "Odyssey" itself essentially novelistic, with its focus on domestic relationships and psychological predicaments?

When you open "The Novel," in other words, you may think you know what a novel is; by the time you close it (not to say finish it, since few nonprofessionals will read it from beginning to end), you are no longer sure. And if there is one goal that all the diverse contributors to "The Novel" share, it is this sort of estrangement. Under the editorship of Franco Moretti, an Italian who teaches at Stanford and is one of the most unorthodox and influential scholars of the novel today, dozens of academics from around the world have contributed studies in their areas of expertise.

Their essays are grouped under broad rubrics. The first volume, subtitled "History, Geography and Culture," has sections such as "Polygenesis," on the multiple origins of the novel, and "Toward World Literature," on the way the genre has been adapted in Africa and Asia. The second volume, devoted to "Forms and Themes," is more literary-critical (at times drearily so),organized around themes like "Writing Prose" and "Space and Story." The result is not an encyclopedia but a potpourri — a loosely structured work that does not define the novel so much as it illustrates the way today's scholars think about it.

The sheer diversity of topics here is exciting and opens up many new horizons. Henry Y.H. Zhao, writing on "Historiography and Fiction in Chinese Culture," shows how the term xiaoshuo, defined in the first century A.D. as mere "gossip and hearsay," the lowest form of writing, emerged as the modern Chinese term for literary fiction. Catherine Gallagher, in one of the collection's best essays, discusses "The Rise of Fictionality," showing how the 18th-century European novel helped to create the notion of stories that can freely explore reality because they do not claim to be real: "a nonreferentiality,"as she puts it, "which could be seen as a greater referentiality." Another excellent contribution is Bruce Robbins's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Social Climber," which explores the paradoxical, subtly hypocritical figure of the bohemian — the artist who turns his material deprivation into a badge of spiritual aristocracy.

Beyond these fairly conventional historical essays, "The Novel" also makes room for some more eccentric approaches.The French scholar Nathalie Ferrand writes about SATOR, the Society for the Analysis of Novelistic Topoi, which has worked over the last two decades to compile a computer database of every plot element used in 18th-century French fiction.This goal remains as elusive as Casaubon's "Key to All Mythologies"in "Middlemarch"— even Ms. Ferrand calls it "a rather mad idea" — but it stimulates some interesting debates about how to analyze fiction. Likewise, Espen Aarseth's essay on "Narrative Literature in the Turing Universe"explores the netherworld of Dungeons and Dragons and online role-playing games, reaching the sane conclusion that gamelike simulations have little in common with novelistic narrative.

But the most enticing parts of "The Novel" are the sections of "readings," focused on individual novels grouped around a theme: novels of the metropolis, political novels, novels of the Americas.When it comes to these brief sketches, the less familiar the subject, the better. An American reader will probably yawn at yet another summary of "Huckleberry Finn." But other readings will send him straight to the library, eager to find Recaizade Mahmut Ekrem's "A Carriage Affair," a Turkish novel of 1896, about a young man's incompetent pursuit of a courtesan; or Mao Dun's "Midnight," published in China in 1932, with its lurid portrait of pre-Communist Shanghai; or "Love in Excess," the 1719 novel of sex and sentiment by Eliza Haywood, who was once as famous as Defoe or Richardson. Such essays are a reminder that the canon of Western fiction, though large enough for a lifetime's reading, is still just one galaxy in the universe of the novel.

A universe, by definition, can't be summarized, and neither can "The Novel." Contributors are given their freedom, not just to range widely, but to disagree fervently on basic issues.Take that vexed question of the novel's origins. Different contributors trace its parentage to ancient Greek tales, Chinese historiography, Indian epic, and even rabbinical midrash. But the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suggests that the conventional wisdom is correct.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why the novel has been the quintessential modern art form, and why it has appealed to writers and readers around the globe, without understanding the circumst ances of its rise in Western Europe in the 18th century.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at rise was that the novel began life as a defiantly low, critically stigmatized genre. It was the first literary form to be written and read largely by women; to seek a popular, democratic audience; and to consider realism a virtue instead of a low vice. In all these ways, it helped to incarnate the modern sensibility, and to teach its readers what it means to be modern. It is the novel, as opposed to earlier forms of narrative, that made the ordinary mind's encounter with the ordinary world a source of drama and significance. If the novel is indeed losing its central position in our imaginative life — and while "The Novel" seldom addresses this possibility, its very comprehensiveness can suggest an autopsy report — it can only be because modernity itself is slipping away, with all its distinctive promise and menace. The dispensation that replaces modernity may be better or worse, but if it does not see its own reflection in the novel, it cannot help appearing to us as somehow less human.

 

모레티가 직접 쓴 책들 가운데는 <유럽소설의 지도 1800-1900>(1999) 같은 책도 있는데(책의 일부는 국내에 번역/소개된 바 있다), 그가 얼마나 대범하며 독창적인 소설이론가인지를 웅변해주는 책이다. 그러한 그의 방법론을 집약해서 정리해주는 책이 <그래프, 지도, 수형도>(2005)이다. 모두 <소설>과 함께 소개될 만한 책들이다(물론 모레티의 초기작들도 곁들인다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소설은 근대세계가 산출해낸 것이지만, 우리가 그 소설의 바깥에서 근대세계를 얼마나 직시/이해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이 근대소설의 위대성이며 우리가 여전히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06. 11. 16.

P.S. 모레티의 <소설>에는 문학평론가 황종연 교수의 <무정>론이 한국소설에 관해서는 (꼼꼼하게 찾아보지는 않았으나) 유일한 글로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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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7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17 08:34   좋아요 0 | URL
**님/ 모레티의 '문학의 도살장'이란 글이 매력적이었죠. 형식주의+진화론. 제가 그런 쪽의 생각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듣고 보니까, 모레티와 강유원은 (50번 읽거나) '안 읽어도 된다'주의로 묶일 수 있겠네요.^^
 

아이를 데리러 피아노학원에 가기 전에 잠시 포털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세계문학을 안 읽어도 되는 이유'란 라디오 대담 녹취록을 읽어보았다. 김어준과 강유원의 30분짜리('배수의 진'이란 코너) '수다'를 녹취한 것인데 예전에 읽어본 '데리다를 안 읽어도 되는 이유'에 이어지는 것인 듯싶다(굳이 따지자면 '인생을 굳이 안 살아도 되는 이유' 같은 게 먼저 다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굳이 해야만 할일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더불어, 데리다 대신에 헤겔을 읽어야 한다면 독자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인가?).

그러니까 시기적으론 2004년 이맘때인 듯싶다. 방송의 성격상 '웃자고 하는 얘기'의 성격이 강하지만(대담의 타겟은 '세계문학'에 대한 부르주아적 규준과 그에 대한 조롱이다. 더불어, 속물적인 무지의 정당화에 대한 아이러니이다) 프랑코 모레티의 책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워밍업 삼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녹취록의 문단들은 조정했지만 오자들은 따로 수정하지 않았다).   

김어준/강유원 대담: "세계문학을 안 읽어도 되는 이유"

김어준 : 코드 마음에 드십니까?

강유원 : 예, 마음에 듭니다.

김 : 예 지난주엔 저희가 삶의 모두스 비벤디(피식)에 대해 얘기하면서 철학을 삼십분에 쫙 정리해버렸는데,

강 : 아 그렇죠.

김 : 이번 주는 어떤 주제입니까?



강 : 혹시라도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요, 철학 책을 사서 읽는다거나 하지 마십시오. 불필요합니다. 이번 주에는 세계의 문학. 이거 스트레스 받습니다. 고전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두꺼운지. 재미도 없어요. 사람 이름도 외우기가 힘들어요. 가령 러시아 작가들은 작가 이름도 어렵고 안에 들어가 있는 주인공들 이름도 어려워요. 특히 그런 주인공들 이름얘기하면서 마치 당연히 알지 이런 식으로 말 걸 때 당혹스럽죠. 뭐냐 가령 너 라스콜리니코프적이야 이렇게 말하면, 주인공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데다가(김어준 폭소) 그녀석이 어쨌다는 건지 난감한데, 그러면 그게 뭔데 이렇게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김 : 당연히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얘기를 해야 하잖아요.

강 : 일단 세계문학 주제가 되잖아요, 그럼 아무 소리도 말고 가만있어야 합니다.

김 : 가장 좋은 방법은 가만히 있는다.

강 : 가만히 살살 웃다가 가끔 한번씩 호탕하게 웃어줘야 돼요. 한번씩 호탕하게. 그러면 사람들이 뭐가 있는 줄 알거거든요.

김 : 그렇죠.

 

 

 



강 : 세계문학의 본질에 대해서 들어가면, 일단 문학에 대해서는 아주 기본적으로 청취자 여러분께서 아시고 계셔야 되는 게, 문학 이전에 책, 책에 대해 편견을 버리셔야 돼요. 책을 많이 읽으면 유식해진다거나 책 많이 읽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거나(하하하) 혹은 책이 사람을 만든다거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런 표현 있죠? 이거 일단 버리셔야 돼요.

김 : 책을 많이 읽으면 유식해진다.

강 : 예.

김 : 책을 안 읽으면 무식해진다 이런 생각 버려야한다?

강 : 예. 안 버리면 영 괴롭습니다. 그게 어렸을 때부터 사실 그러거든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한번.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가 한 육십억 쯤 되죠. 그 인구 육십억 책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일억도 안 되죠.

김: 아, 그래요?

강: 그렇죠, 1억도 안 되죠. 지금 우리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꼽아보면 몇 명도 안돼요. 제가 직접 책을 읽고 쓰고 하니까, 제 형제들이 있는데 남동생만 둘이 있거든요, 제 형제들이 다 열심히 책 읽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제가 작년 가을에 무슨 책을 하나 냈는데 책 표지가 노랬습니다. 제 동생이 와서 하는 말이 ‘어 형 책 냈네? 책표지 노랗고 이쁜데?’ 그러고 가더라고요. (김어준 폭소)



김 : 하하하. 책 표지 노랗고 이쁜데.

강 : 네. 이 정도니까 제가 제 동생을 비난할 수 없어요. 훌륭함의 정도는 저보다 제 동생이 나을 수가 있거든요. 일단 책 얘기가 나오면 이 대사를 알려드리자면, 우선 책의 본질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나 이렇게.

김 : (아하하) 세계문학을 논하기 이전에 책의 본질에 대해 알아봐야 하지 않나. 세계문학에 대해서 얘기가 나온다면.

강 : 예.

김 : 여기서 우선 기선제압용 맨트를.

강 : 네. 세계문학 하면 사람들이 하아~. 이번에 오스트리아에서 무슨 노벨문학상 받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 누가 있는지 알게 뭐에요. (훗훗훗)모르죠. 모르죠. 모르니까 우리 오스트리아 하면 아는게 모차르트밖에 없어요. 모차르트는 알고 있을 만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만 우선 생각하시면 돼요. 책의 본질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나.

김 : (배경음 깔리듯)기선제압용 맨트 나왔습니다, 책의 본질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나.

강 : 방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거 있죠?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책 읽는 사람 몇 안돼. 이러면 사람들 다 숙연해집니다(아하하). 50억 넘는 인간 중에 책 읽는 사람 1억인데 우리가 나머지 49억에 속한다고 해서 인생살이 괴로운 거 아니다. 거기다 덧붙이면, 인류가 생겨난 이래 책 읽은 사람이 몇 명이겠냐. (와하하) 숫자로 확 밀어붙이면요, 세계문학은 커녕 아무 책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런 판단이 딱 깔리고 들어갑니다. 일단 이렇게 최저의 경계선을 밑으로 낮추어야 돼요. 낮추면은 사람들이 어 하거든요. 이때 세계문학을 얘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도 책 좀 들여다 봤지만, (조그맣게) 열 권도 안 될지라도, 책 좀 들여다 봤지만 하면 본 것 같아요.

김 : 리드가 들어갔으니까,

강 : 끄트머리에 만으로 끝나는 문장 있죠, 이게 상대방에게 기죽이기 아주 좋아요. 가령, 이거는 직장생활하는 약간의 팁으로 말씀드리자면, 직장 상사가 어이 강유원 씨 왜 이따위로밖에 못해 이러면, 열심히 했습니다만... 하고 계속 이렇게 만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면 말이 끝난 것 같기도 하면서 끝나지 않은 것도 같기도 하면서 계속 그러거든요. (하하하) 그럼 왜 이따위로밖에 못해 이러면, 계속 잘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만... 이렇게. 가령 메신저로 채팅을 할 때도, 되나 안 되나 테스트 한번 해보세요. 무슨 얘기하다가 알고 있습니다만, 만... 하면서 마침표 치지 않고 있으면, 상대방이 말을 안 해요. (아하하하) 그러니까 책에 대해서 말을 할 때도, 책을 좀 들여다봤습니다만, 이러면 사람들이 조용하거든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면 돼요. (대폭소) 그럼 저쪽에서 무슨 말로 상대해야 할지 굉장히 아리까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할 때 이제 세계문학의 본질에 대해서,

김 : 책의 본질에 대해선 아까 얘기했으니까, 나도 책 좀 읽어봤습니다만.

강 : 세계문학이라는 건 사실은, 이때 단어 중요한 거 나옵니다, 이데올로기 이거 외우세요. (웃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 이거 외우셔야 됩니다. 스펠링 모르셔도 돼요. 굳이 말한다고 해도, 우리말로 다섯 글자 세 글자니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 세계문학이라는 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산물 아닌가.

김 : (웃음) 키 문장 나왔습니다. 기선제압 문장 나왔고, 리드 문장, 책을 들여다봤지만, 핵심 문장, 세계문학이라는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산물 아닌가.

강 : 네 그렇죠. 지금 우리가 이제 흔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죠 그렇게 하면요, 약 1분 정도 분석을 해줘야 하거든요. 지금 세계문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죄다 잘산다는 나라의 문학 아니야, 이렇게 하면은 이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산물이라는 게 바로 서포팅 돼요.

김 : 혹시 간혹 가다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한테는.

강 : 또 이렇게 하죠. 세상을 사는 기본 단어가 안 들어있네. 이데올로기, 몰라? 허위의식. 딱 이렇게 하고, 헤게모니, 주도권. 단어 뜻 많이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외우는 사람도 힘드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이 많으면요, 상대방이 이 사람이 아는 게 적어서 변명이 많다 이런 식으로 알거든요. 딱 잘라서 단정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이런 핵심단어들은. 세계문학이라는 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산물 아닌가. 이데올로기라는 게 뭡니까, 이러면 이 사람, 쯧쯧쯧 이렇게 나가면서, 헤게모니라는 단어 알고 있어? 이렇게. 그 두 개의 단어를 갔다가 상대를 누르면은, 그게 중요하거든요.

김 : 자, 핵심 문장 하나 나왔고요.

강 : 그렇게 해서 내가 보기에는 세계문학 그래도 읽어야 한다면 말이지.

김 : 아 그 다음은.

강 : 그래도 읽어야 한다면 말이지, 이렇게,

김 : 네.

강 : 주요 강대국들의 작품이 빤하긴 하지만, (아하하) 그 동안 거론됐던 세계문학 많거든요. 보봐리 부인이니 그런 것들 많은데, 그런 건 사람들 다 알아요. 그런데 우리 읽을 필요 없거든요. 읽어봐야 되게 재미없습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짜증이나요. 우리가 그 분야에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다니는 사람 아니니까, 세익스피어의 햄릿같은게 세계문학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오델로 멕베스 이런거, 그런데 읽어보면 오바된 문장이 많아요. 그 시대하고 우리하고 다르기 때문에. 읽다보면 짜증이 나는데 이런 문장 읽을 필요가 없거든요. 도움도 안 되는데, 그런 걸 거론하면요 대화 상대방중에 분명히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상세하게 분석 들어가면 우리, 우리 수준에서는, 그렇죠 우리 수준에서는 안 되는거지. 이럴 필요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택도 없다고 생각할 만하지만 누구나 다 읽었을법하지만 나도 한번 읽었을 것들. 미국의 세계문학 작품, 톰 소여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네 이거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거 애들 동화책 아니에요. 동화책이 이게 원래 동화책이 아냐. 이게 사실 따지고 보면 등장하는 톰 소여라던가 허클베리 핀이라던가. 그 다음에 페인트칠하는 장면들 흑인들 이런게 나오니까, 이게 미국사회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준 작품이기 때문에, 톰 소여의 모험, 이 정도만 읽어도 세계문학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 네. 이거 하나면 됩니다. 마크 트웨인.

김 : 마크 트웨인.

강 : 톰 소여의 모험.

김 : 톰 소여의 모험.

강 : 이거 하나만 기억하시면 돼요. 그리고 미국이란 나라가 역사가 짧기 때문에요, 문학이라는 게 없어요,
짜잘한 나라거든요 사실. (아하하) 인류의 역사에서 세계적으로 볼 때 미국이 세계사에 편입되기 시작한 게 몇 년 안 되거든요.

김 : 그렇죠.



강 : 2,300년밖에 안된 나라에 무슨 문학이야?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어라는 게 네이티브 언어가 아니거든요. 고유 언어가 아니잖습니까. 미국,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이거 하나 딱 기억해주시고요. 영국, 그럼 찰스 디킨스 아닙니까, 올리버 트위스트 다 읽었죠! 이거 세계문학입니다. (조용히 김어준이 ‘나는 안 읽었다’고 언급한 듯한 분위기에서)이게 세계문학인가 하면서 올리버 트위스트 안 읽어본 사람 있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 외우시면 돼요. 영국, 영국 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게 산업혁명이죠. 산업혁명기에 사회 계급적 문제를 드러낸 작품이거든요, 올리버 트위스트가. 이렇게 외우시면 돼요. 산업혁명 계급문제 올리버 트위스트. 그렇죠. 이건 중학교 때 배우거든요. 영국 산업혁명 계급문제 올리버 트위스트. 이제 됐습니다. 그런데 3대 강국에 또 프랑스가 있잖아요. 프랑스 이거 까탈스럽습니다.

김 : 까탈스럽다(궁시렁)...

강 : 프랑스 이것저것 많이 건드리거든요. 이게 또 나름대로 문학의 나라라. 딱 그러면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프랑스 문학 작품 하면 알베르 까뮈 뭐 이방인 이러잖아요. 이방인 까뮈의 상표를 딴 꼬냑 있죠.

김 : 그렇습니까?

강 : 있습니다.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김 : 아, 까뮈 꼬냑.

강 : 네. 까뮈라는 이름의 꼬냑이 있어요. 프랑스 문학은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좋은 건지 저게 좋은 건지 어렵습니다. 프랑스 문학은 좀 따분하고 하니까, 글쎄 프랑스 문학은 워낙 변화가 심해서, 이렇게 하고 둘러대고 넘어가면 됩니다. (아하하) 같은 세계문학에 넣어주기가 어렵습니다. (아하하하 계속) 정체성 찾기가 어렵단 말야, 이러면서 넘어가면 됩니다. 거기까지 기억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정도야 저도, 누구나 기억할 수 있죠, 마크 트웨인 톰 소여,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미국 실상 그대로 영국 산업혁명, 다 외웠습니다. 흑인 나오거든요, 톰 소여 보면.

독일, 프랑스, 워낙 까탈스러워서, 아직도 정체성이 확실치 않아, 변화가 심해. 독일 그러면 헤르만 헷세 그런 게 나오거든요. 헤르만 헷세 그러면 이제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인지 뭐 그런 거 나오는데, 헤르만 헷세 하면 유리알 유희라고 머리에 쥐나게 생긴 소설 있어요. 고거 읽었다는 사람 있거든요. 그거 읽었다는 사람 나오면은, 과감하게, 독일도 외울 필요 없어요, 헷세가 있긴 하지만, 독일 작품은 워낙 형이상학적이라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쫙 찔립니다.(와하하하) 독일 문학이라는 게 워낙 관념적이거든요. 칸트 헤겔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다섯 명 중에 두 명인데, 대단히 철학적이거든요. 독일사람 두 명, 그리스 사람 두 명. 독일 문학이 워낙 철학적이라.

김 : (끼어들며)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디 사람인가요?

강 : 아, 그 당시 중세는 어느 나라에 속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이태리 사람이라고 보면 되죠. 네 그런데, 독일 문학은 워낙 철학적이라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김 : (중얼거리듯 따라하며)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강 : 이렇게 하면은 이제 외워야 하는 작품 두개밖에 안되죠. (아하하하) 톰 소여의 모험과 올리버 트위스트. 그리고 프랑스는, 하긴 이 나라들이 지금까지 세계문학을 주도해 왔으니까, 지금까지 걔들이 세계라고 했잖아요. 그 다음에 이제 러시아 문학이 많이, 러시아가 남았는데 아 이거 괴롭거든요. 프랑스 워낙 변화가 심해서 독일 워낙 철학적이어서.
그런데 러시아 문학 남았거든요.

아, 러시아 문학, 이거 괴롭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라스콜리니코프.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러시아 문학. 일단 이름이 외우기 어렵습니다. 러시아 문학에 보면 라스콜리니코프가 죄와 벌의 주인공인데, 그 이름 외우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적 인간 그러면 그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알게 뭡니까. 러시아는 좀 더 지켜보자고! (대폭소) 딱 이래버리면은 작품 두개 외우고, 그 다음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다섯 개 국가, 딱 잡힙니다.

김 : 러시아는 좀 더 지켜보자고.

강 : 아, 좀 더 지켜보자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작가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거니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이 워낙 꼬여있어요. 악령이라던가 그런 작품들 읽고 감동받았다는 그런 사람을 보면 오히려 그런 감동스러울 정도로 어려우니까 읽지 마시고, 그 다음에 주변부 국가들이 있는데 아르헨티나라던가 보르헤스라던가 이런 요즘 작품들이 있거든요. 이런 작품들이 거론되면 지난시간에 제가 알려드린거 있죠? 문학의 역사가 워낙 기니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신생아들이라고 하는겁니다, 역시. 아, 그런다음 우리가 국내에서 얘기할 때는 이렇게.

김 : 국제적 대처방안도?

강 : 국제적 대처방안도 있죠. 국제적 대처 이거 굉장히 중요한데요, 외국인들이 혹시 외국인하고 얘기를 하게 됐다, 아, 외국인과 얘기하는 경우라면 확실하게 물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에 갔다, 그럼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니까 영어로 합니다.(푸훗) 서로가 외국어기 때문에 기죽을 필요 없거든요,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 막 얘기를 하면서 자기네 문학의 성취라던가 플로베르라던가 알렉상드로 뒤마라던가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럼 아 그런 작품들이 있었군요, 하면서 일단 띄워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언제적 사람들이냐, 1800년대 사람들이거든요. 1800년대 사람들이면 아 그러냐 해요. 한국에서 세계문학이라고 내놓을만한 게 있느냐, 그러면 사실 문학이라는 게 어떤 게 우월하고 어떤게 우월하지 않느냐 하고 평가할만한 기준이, 객관적 기준이 없어요. 그죠? 그럴땐 우리가 딱 객관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느냐. 있다 한국에도. 한국에도 박경리의 토지가 변억되었다 그런 거 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폭소) 읽지도 않아요. 그 두꺼운 책을, 아이고, 할 일이 없어요? 읽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한국에 아주 오래된 문학이 있다. 서기 700년 무렵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향가가 있다. 그럼 서기 700년에 너네 뭐했냐, 그럼 한 일이 없거든요. 걔들. 아스테릭스 시대에요 그때가.(둘 다 큭큭거림) 그럴 때 이제 제망매가 같은 거 외우기 쉽거든요. 토지 같은 거 읽기도 어렵고 스토리 요약도 어려운데, 열 줄밖에 안 되니까 외우기 쉬워요. 딱 한 마디 읊어줍니다. 우리나라 한국에는 서기 700년경 이런 문학이 나왔다. 니네 서기 700년에 뭐했냐.

김 : 영어공부부터 먼저 해야겠네요, 저같은 경우는. 영어로 얘기를 하는 상황이니까.

강 : 다 그럴 필요 없죠. 제망매가 안 외웠으니까 모르거든요. 제망매가 딱 한 구절만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이른 가을에 (김어준 한 마디씩 따라함, 이른 가을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흩어지는 낙엽처럼) 한 가지에 나서도 (한 가지에 나서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구나) 누이동생을 갖다가 안타까워하면서, 죽은 누이동생을 안타까워하면서 부른 노래거든요. 그런 구절은 어디서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핵심은 뭐냐, 서기700년에 이미 한국에는 문학이 있었다. 요거만 딱 하시면 됩니다.

김 : 저희가 벌써 시간이 다 됐는데, 미국은 마크 트웨인 톰소여의 모험, 영국은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프랑스는 워낙 변화가 심해서, 독일은 워낙 형이상학적이라서, 러시아는 좀 더 지켜보자고, 세계문학은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산물 아닐까, 키 문장 나왔고요, 마지막으로 이런 거 어떻습니까. 노벨문학상을 거론하는 사람들, 노벨문학상 수상작 제목들 거론하면서,

강 : 아, 그거 중요하죠. 노벨은 화학 공학자인데 웬 문학. 이러면 딱 얘기 끝납니다. (웃음) 화학 공학자거든요, 노벨이 엄밀한 의미에선. 노벨 문학상은 노벨의 참뜻에 어긋나는 상이야. 간단하시죠?

김 :
알겠습니다. 기선 제압용으로는 책의 본질, 그때 허허허 한번 웃어주시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기선제압용으로 책의 본질에 대해서 아나, 하고, 가만히 있다가 얘기를 시작할 때 나도 책 좀 들여다 봤지만, 하고 뜸 1분 가량 들인 다음에, 사람들이 쳐다보면 세계문학이라는 게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산물 아닌가. 하고 또 뜸 좀 들이겠죠? 그리고 미국은 마크 트웨인 톰 소여 대모험, 실상.

강 : 흑인이 나옵니다,

김 : 네 흑인, 그리고 올리버 트위트스, 산업혁명, 계급,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각각 변화가 심해서 철학적이라서 좀 더 지켜보자, 이렇게 해서 저희가 세계문학의 주제가 등장했을 경우 어떻게 그 상황에서 얼굴을 세울 수 있나, 당황하지 않고, 외워주시기 바랍니다.

강 : 감사합니다.

김 : 고맙습니다.

06. 11. 16.

 

 

 

 

P.S. 해서 결론적으로 읽어야 할 세계문학은 <톰 소여의 모험>과 <올리버 트위스트> 두 권으로 압축된다. 나머지는 너무 까탈스럽거나 너무 철학적이고, 또 좀 기다려봐야 한다로 정리된다는 것. 예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소개하면서 한번 인용한 적이 있는데, 영국시인 오든오든(W. H. Auden)의 흥미로운 평문 '허크와 올리버'에는 이런 내용이 지적돼 있다. 한번 더 간추린다.

오든은 두 작품, 즉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현대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명하면서 두 주인공 허크와 올리버를 비교한다. 그는 자연에 대한 태도, 현실에 대한 태도, 그리고 시간과 돈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하여 이들을 대조하는데, 가령 유럽(영국)인에게서 자연이 어머니의 품 같다면, 미국에서의 자연은 야성적이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인들이 읽기에 <헉핀>은 매우 슬픈 소설이라고 말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끝장면에서 올리버가 사랑이 있는 가정에 입양되면서 그의 꿈을 실현하는데 반해서 유사한 모험들을 겪게 되지만 허크는 그의 친구 짐과 결국엔 헤어질 것이며 다시는 못나게 되리라는 걸 독자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 사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요소를 보지 못하는 반면에(사건들은 '반복'으로 의미화된다) 미국인들은 반복의 요소를 보지 못한다(사건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지각된다. 이런 경우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돈의 경우도 대비되는데, "올리버의 경우, 그것은 법적 상속권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다. 허크의 경우에는 그것이 순전히 행운일 뿐이다." 오든은 거기서 조금 더 나간다: "미국에서 돈은, 자연이라는 용(龍)과의 전투를 통해 빼내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곧 성인의 표증을 상징한다. 미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다... 유럽의 단점은 탐욕과 인색이며, 미국의 단점은 이 양적인 돈이 성인의 표증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디에서 중단해야 될는지 알기 어려운 데서 기인하는 근심이다... 사실 미국인들은 물질에 대해서 별로 연연해하지 않는다. 충격적인 것은 미국의 소비일 뿐이다. 마치 유럽의 미국인들에게 충격적인 것이 유럽의 탐욕이듯이." 음미해볼 만한 견해이다.(프랑코 모레티의 책 얘기는 분량상을 다른 자리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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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16 18:22   좋아요 0 | URL
하하하;;; 넘어가네요 ^^ ㅎ 퍼갑니다 :)

2006-11-17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1-16 19:50   좋아요 0 | URL
700년 아스테릭스 시대의 압박 ㅋㅋ

산손 2006-11-18 00:16   좋아요 0 | URL
ㅋㅋ 스페인은 아예 쌩이네요

일요일의마음 2006-12-29 18:39   좋아요 0 | URL
아스테릭스 시대는 기원 전후 아닌감요? 700년이면 그래도 왕조들이 있었을 텐데^^ 롤랑의 노래는 우짜죠?

로쟈 2006-12-30 00:36   좋아요 0 | URL
뭐, 이야기의 주조는 웃고 즐기자이니까 디테일에 신경을 안 쓰셔도 되지 않을까요...
 

'세계의 책'이란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는데, 예기치 않게도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식을 제일 처음 다루게 됐다. 아침신문에 관련기사가 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가 아니라 '밀란 쿤델라'여서 잠시 놀랐다. 이게 어찌된 표기인지 모르겠는데, 'Milan Kundera'가 어떤 원칙에 의해서 '밀란 쿤델라'로 표기되는 것일까? 부랴부랴 검색해보니 송두율 교수의 한 칼럼에도 '밀란 쿤델라'의 <느림>이 언급되고 있다. 'Milan Kundela'라고까지 병기하면서. 이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관계 같은 것도 아니고 (무지의 소치로 보이지만) 여하튼 재미있는 일이다. 기사는 원문 그대로 옮겨온다.  

경향신문(06. 11. 15) 쿤델라 ‘참을 수 없는…’ 22년만에 解禁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델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출간 22년 만에 고국에서 금서(禁書)의 꼬리표를 떼었다. 영국 더타임스는 1984년 출간된 쿤델라의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가 체코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14일 보도했다. 이 소설은 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했으며,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시가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체코에서는 공산주의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다.

쿤델라는 29년 체코 브르노 출생으로 ‘프라하의 봄’ 이전에 소설 ‘농담’ 등을 발표해 이미 유럽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였다. ‘프라하의 봄’ 당시 적극적으로 시위에 가담했다가 옛 소련 군대에 의해 체코 민족의 자주 욕구가 짓밟힌 이후 공산당에서 출당당하고 출판도 금지당했다. 75년 파리로 망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체코 공산정부는 79년 쿤델라의 국적을 박탈했고, 쿤델라는 81년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불어로 출판됐다. 체코 독자들은 따라서 모국어로 이 소설을 읽기 위해 최근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모국어판 출간이 지연된 것은 작가가 일부 내용을 새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체코어로 된 원본이 부분 멸실됐기 때문에 쿤델라는 프랑스어판을 보고 체코어로 재번역하는 과정을 거쳤다. 프랑스어판을 보고 체코어 원본을 새로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작가적인 욕심 또한 개입돼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했다.

쿤델라의 출판 대리인은 “번역하고, 고치고, 가필하는 일을 작가가 끊임없이 반복한 끝에 마침내 체코어판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체코어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분명 기존 책과 같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쿤델라는 체코어판 후기에서 “나는 어떠한 미비점이나 실수도 남기지 않기를 원했다”며 “즉 다른 말로 하면 완벽한 최종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내가 다시 이 일에 매달려 마무리할 시간이 앞으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체코어판은 지난달 출간 이후 하루에 100권가량 팔리고 있다. 이 책은 인간실존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것 외에 정치적 의도도 담겼다는 해석에 쿤델라는 “결코 정치적 메시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저 하나의 소설, 아무것도 아닌 소설로 읽어달라”는 게 쿤델라의 주문이다.(안치용기자)

06. 11. 15.

P.S. 체코어판의 이미지를 찾지 못했다. 나는 러시아어판을 갖고 있는데, 문득 새롭게 읽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우리 존재의 가벼움은 아직 참을 만한 수준인가?..

 

 

 

 

P.S.2. 내가 알기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최소한 세 가지 버전의 국역본이 있다. 먼저 가장 먼저 나온 송동준 교수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1988)은 계간 <세계의 문학>에 전재된 장편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다(내가 작품을 처음 접한 것도 이 잡지를 통해서였다). 이 송동준본은 독어본을 옮긴 것인데, 들은 바로는 역자가 '학력고사'  출제위원으로 감금생활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해본 것이라고 한다(본래 브레히트 전공자인 역자의 최고 '히트작'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쿤데라이다).

그리고 두번째 번역은 중앙일보사의 소련동구문학전집의 한권으로 나온 <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중앙일보사, 1990)이다. 보흐밀 흐라발의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와 한권으로 같이 묶여 나왔는데, 체코문학 전공자인 김규진 교수의 번역이다(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한국외대출판부, 1995)로 재출간됐다). 체코어본으로부터의 번역으로 알고 있는데, 기사를 읽고 나서 문득 그 '체코어본'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알고보니, 파리에서 출간된 체코어본이다). 한때 알고 지냈던 체코 여성과 자주 만난 적이 있고, 만날 때마다 주된 화제는 카프카와 쿤데라였다(그녀가 체코어본을 읽은 건지 영어본을 읽은 건지 헷갈린다).

그리고 세번째 번역이 이재룡 교수의 번역으로 다시 나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2001)이다. 이건 불어본의 번역이다. 프랑스에 체류중인 쿤데라가 불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어느새 불어본이 '원본'을 대신하게 됐다. 이번에 다시 출간된 체코어본이 국내에 새롭게 소개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쿤데라의 이 대표작에 대해서만큼은 '한국어 쿤데라'는 풍요롭다.

그리고 끝으로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본. 러시아어로 대부분 번역돼 있는 그의 책들을 다 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기억에는 네댓 권 정도를 사둔 듯하다. 이번 겨울에 국역본과 함께 같이 읽어볼까 궁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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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6-11-15 09:33   좋아요 0 | URL
쿤데라...

제가 가장 사랑하는...과거에 가장 사랑했고.....앞으로도 그 사랑을 뛰어넘을만한 작가를 만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는.......작가입니다.
아니...지금 그의 책을 읽어도...20대 초반 가슴 설레며 온통 몰두했던 그 열정으로 쿤데라의 책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듯 해요...

그의 소설들....plot...주인공...배경...메시지....대사들...은유와 비유...사소한 배경 묘사...그가 끌어들이고 소개한 역사적, 철학적, 예술적 지식의 조각들...하다못해 음악이나 그림에 대한 그의 취향까지도...

마치 갓난 아기가 엄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종이가 물을 빨아들이듯..
통째로..완전히...제게 흡수되고 동화되었죠...
I've got him under my skin............그런 느낌......

심지어..많은 논란이 되었던..중역과 오역으로 얼룩진 그의 작품들의 번역문조차...제게는 친근하고 정답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오역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조차...먼가...이국적이고 아련하고 신비스럽게 다가왔다는 코믹한 상황...ㅡ,.ㅡ
쿤데라 작품에서 주인공이...히틀러의 바랜 흑백사진을 보며 향수와 정다움을 느꼈던 도덕적 도치상태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0^

쿤데라가...세상을 떠나기 전에...잊지못할 선물을 하나 남겨주었으면(새로운 소설..젊은 시절의 필력에 못지 않은 작품..)하는 소망이 있었는데...음...마지막 불꽃을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체코어 복간(?)에 쏟으셨군요...

사실 후기작들은 기대에 조금 못미친것도 사실입니다. 전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농담, 생은 다른 곳에(제 서재 이름..)...다 좋구요...개인적으로 "웃음과 망각의 책"에도 아주 많은 애정을 느낍니다.....

로쟈 2006-11-15 11:19   좋아요 0 | URL
페이퍼의 내용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사이에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저도 최근에 그의 책들을 읽을 수가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였습니다. 얼마전에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 그의 신작 에세이집만큼은 빨리 출간되었으면 좋겠네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 겨울에 한번 다시 읽어볼까 궁리중입니다...

수유 2006-11-15 16:51   좋아요 0 | URL
그 참.. 쿤델라라...^^ 얼른 보충하셔요..

sommer 2006-11-16 00:52   좋아요 0 | URL
저도 경향신문 기사를 읽다가 '쿤델라'가 '만델라'처럼 읽혀지는 걸 경험했답니다. ^^ 지젝의 'parallax view'에 '아무 것도 되지 않는 것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의 장이 포함되어 있더군요...아마도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로쟈 2006-11-16 14:26   좋아요 0 | URL
지젝의 절제목은 '신성한 똥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군요.^^

기인 2006-12-16 00:21   좋아요 0 | URL
ㅋ 땡스투하고 갑니다. 체코 1월말에 일주일정도 다녀올 예정인데 그 김에 다시 읽어보려고요. ㅎ 예전 로쟈님이 다른 페이퍼에도 썼지만, 체코인들은 쿤데라 안 좋아하지만서두 ^^; 우리(?)야 체코하면 카프카와 쿤데라 아니겠어요. 'ㅋㅋ'네요. ㅎ

로쟈 2006-12-16 00:47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공익이 해외출장을 다 가나요?!..

기인 2006-12-20 22:11   좋아요 0 | URL
공익을 위해서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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