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별다른 고민의 여지도 없이 세 명의 저자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먼저 경제학자 장하준. 출판계에선 올여름 블록버스터로 꼽고 있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부키, 2014)가 출간됐다(이번 가을의 예상 블록버스터는 토마 파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다).

 

 

부제는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이고, 일반인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를 표방한다. "경제란 무엇이고, 경제학을 왜 알아야 하는지에서 출발해 자본주의 경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간략한 경제사를 훑어본 뒤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파는 물론 마르크스학파, 케인스학파, 개발주의, 행동주의 등 다양한 경제학파를 소개하고 장단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경제학 국민 교과서'라고 할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만큼의 반향을 불러모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어서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인도 민주주의를 다룬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시대의창, 2014)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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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는 이 책에서 모국 인도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을 치밀하게 조사해 그 본질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동시에, 문장 하나하나에 작가로서의 문학적 역량을 담았다. 그녀의 희곡도 두 개 들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7장 ‘동물농장Ⅱ: 조지 부시의 속내’는 워싱턴 아시아학회에서 부시가 한 연설을 한 문장 한 문장 패러디하여 다시 쓴 것으로 그녀의 시니컬한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고 소개된다. 원저는 2009년작.  

 

 

세번째는 인도 출신의 미국 사회학자이자 <괴짜 사회학>의 저자 수디르 벤카테시. 시카고 갱단과 10년간 같이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전작에 이어서 이번엔 뉴욕의 지하경제를 훑었다. 원저는 작년에 나온 신간으로 '괴짜 사회학자, 뉴욕 지하경제를 탐사하다'가 부제.  

 

시카고 빈민가에 뛰어들어 10년간 갱단과 생활하며 연구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의 지하경제 종사자들과 함께하며 기존의 사회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목격한다. 과거에는 계층과 지역의 경계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자리를 떠나 경계를 뛰어넘으며 전에 없던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부유하고(float) 있었다. 저자는 뉴욕에서 새롭게 맞닥뜨린 변화의 비밀을 풀 열쇠를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지하경제에서 찾는다. 그리고 복잡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골목길과 빌딩 숲을 부유하며 이민자와 매춘부, 사교계 명사와 거리의 마약상들에게서 이야기를 채집한다.

뉴욕의 숨겨진 민낯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까. 흥미로운 인류학(민족지학)적 심층기술의 좋은 예라는 평도 있다. 흥미로운 연구자인 것만은 틀림없다...

 

14.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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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 건너뛴 '이주의 저자'도 골라놓는다. 이미 알라딘 블로거베스트셀러에서 확고하게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 2014)를 제쳐놓을 수 없겠다. 지난해에 나온 <어떻게 살 것인가>(생각의길, 2013)에 이어서 '파워라이터'의 파워를 보여주는 책.

 

직업정치인의 옷을 벗고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이후 펴낸 첫 번째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유시민이 야심차게 선택한 주제는 바로 한국현대사다. 이번에는 대중의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들여다본 한국현대사 55년의 기록이다.

 

두번째는 스피노자 읽기의 새로운 기준이 돼 가고 있는 스티븐 내들러. 평전 <스피노자>(텍스트, 2011)와 <에티카를 읽는다>(그린비, 2013)에 이어서, <신학정치론>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글항아리, 2014)이 이번에 출간됐다. "<신학-정치론>에 담긴 스피노자의 성경 해석학과 정치철학을 국내 처음으로 두루 고찰해 소개하는 인문교양서."

 

 

<신학정치론>은 발췌본을 포함해 3종이 나와 있는데, 가이드북도 나온 김에 독서계획을 세워봐도 좋겠다.

 

 

그리고 국내 독자들에겐 2012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처음 알려진 러시아의 여성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단편모음집 <우리 짜르의 사람들>(을유문화사, 2014)도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출간됐다. 작품집 <소네치카>(비채, 2012)와 장편 <쿠코츠키의 경우>(들녘, 2012)에 이어서 세번째로 나온 책(개인적으로는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2006)이 더 기대하던 책이다).

울리츠카야는 사랑, 용서, 희생, 가족, 제도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주제로 삶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이 작품에서도 '작은 인간과 역사 속의 그의 삶의 운명'이라는 그녀의 주제 의식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히피와 떠돌이 개, 두 다리가 없는 술주정뱅이 상이군인, 결핵 환자, 장님 노인,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젊은 청년, 수학자, 간호사 자매 등 각 작품마다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 성격, 관계들은 하나의 전체적인 군상을 이루고, 그들이 모여 만드는 모자이크는 그 어느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아래가 러시아어판의 표지 가운데 하나다.

 

 

14.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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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경우 보통 6월 마지막 주는 방학 기간이지만 강사들에겐 성적 처리 기간이기도 하다(진정한 방학은 그 이후에!). 대학 바깥의 강의가 훨씬 더 많지만, 성적 처리에 붙들려 마지막 주를 보내는 일은 여전하다. 게다가 이사까지 하는 바람에 마음은 분주하고 몸은 피로한 주말과 휴일이다. 그래도 막간에 시간을 내서, 월드컵 16강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강신주, 유시민, 정여울 등 '파워 라이터'들의 신작이 나오거나 나올 예정인지라 저자를 고르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이번주에는 강신주와 중국의 왕후이, 그리고 영국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을 이주의 저자로 고른다.

 

 

 

먼저 강신주의 신작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동녘, 2014)가 출간됐다. <망각과 자유>(갈라파고스, 2014)가 재간본이었기 때문에 신간으론 <강신주의 감정수업>(민음사, 2013)에 이어지는 책이다.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이 부제. 이번에 다루는 건 선불교의 대표적 텍스트 <무문관>이다. <무문관>의 화두 48개와 마주하며 사랑과 자유의 정신을 읽어낸다(강신주의 인문정신의 키워드가 '나'와 '사랑'과 '자유'다).

 

 

이어서 중국 칭화대학 교수이자 대표적 사상가 왕후이의 루쉰론 <절망에 반항하라>(글항아리, 2014)가 출간됐다.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저자의 본령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저자의 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기도 하고). 소개에 따르면, "루쉰과 그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루쉰의 의도나 임무를 통해 그 자신이나 그의 예술세계를 파악해 접근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루쉰의 소설을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한다. 첫째, “역사적 ‘중간물’”, 두 번째 부분은 “‘절망에 반항’하는 인생철학”, 세 번째 부분은 루쉰 소설의 서사 원칙과 서사 방법에 관한 연구이다." 국내에서 왕후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아시아는 세계다>를 먼저 옮긴 바 있는 송인재 한림대 연구교수의 번역이다. 

 

 

그리고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면서 <뉴레프트>지의 간판 편집위원인 페리 앤더슨의 저작 두 권이 같이 나왔다.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와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현실문화, 2014). 언젠가 예고한 바 있는 책인데, 멋진 장정으로 나와 반갑다. 소개는 이렇다.

페리 앤더슨의 서양비교사 2부작, 40주년 기념 한국어판 완역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페리 앤더슨은 1974년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과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를 출간하며 고대에서부터 근대 자본주의까지 이어지는 유럽사를 새롭게 정리했다. 이 두 권의 책은 지난 40년 동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역사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국가에 초점을 맞추어 동·서유럽을 망라해 2천 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기존 연구 성과들까지 비평하는 이 방대한 연구는 지금까지도 비견할 만한 작업이 손에 꼽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번에 현실문화에서 새롭게 출간되는 한국어판은 2013년 영국의 버소(Verso) 출판사에서 발행한 40주년 기념판을 바탕으로 번역을 개정했다.

차례대로라면, 선불교와 만나고 루쉰과 만나고 절대주의 국가와 만나는 게 이주의 독서 여정이어도 좋겠다. 그게 욕심이기도 하지만 당장은 성적 처리가 우선이로군...

 

14.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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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부대에서 탈영사고가 일어나 계속 속보가 뜨고 있는 어수선한 휴일 오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칸트와 푸코의 책, 그리고 프랑스 비평가 비에르 바야르의 책 얘기다.

 

 

칸트와 푸코를 나란히 떠올리게 된 건 절판됐던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울산대출판부, 2014)이 <칸트의 형이상학 강의>(울산대출판부, 2014)와 함께 이번에 다시 나왔기 때문이다. 작년말에 나왔던 푸코의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문학과지성사, 2013)의 부제가 바로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서설'이었다. "푸코의 국가박사학위 부논문이자 그의 초기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책. 프랑스에서도 2008년에야 푸코 번역의 <인간학>과 함께 같이 출간됐다고(프랑스에서는 국가박사학위논문 제출시 부논문으로 번역과 함께 해제를 제출하는 듯싶은데, 데리다의 경우는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에 붙인 서설이 이에 상응한다). 그러니까 칸트의 <인간학>과 푸코의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를 같이 읽으면 되는 셈.

 

 

푸코의 책으론 소품인 <헤테로토피아>(문학과지성사, 2014)가 이번에 나왔다. 라디오 강연 원고 '유토피아적인 몸'과 '헤테로토피아', 그리고 다니엘 드페르의 해제를 묶은 책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시리즈로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에 뒤이어 올 하반기에도 두 권쯤 나오는 걸로 아는데, 서재가 정돈이 되면 맘먹고 정독해봐야겠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08) 이후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모두 구입하고 있는데, 매년 한권씩 나오는 것 같다. 올해의 책은 <나를 고백한다>(여름언덕, 2014). '존재에 대한 자문을 이끌어내는 논리적이고 사적인 고백'이 부제다. "자기 자신을 과거로 보내는 ‘가상 여행’을 시도한다"고.

 

 

전작에 빗대면, '망친 삶,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을지 궁금하다...

 

14.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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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강의를 다녀오면서 한 주의 강의가 마무리됐다. 주말엔 밀린 원고가 잔뜩이지만 한숨 돌리면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문학이론서와 비평가론, 그리고 시인 평전이다.

 

 

먼저, 이탈리아 출신의 비교문학자이자 영문학자 프랑코 모레티의 책이 오랜만에 나왔다. <공포의 변증법>(새물결, 2014). 부제로 붙은 '경이로움의 징후들'이 원제다. 한때 모레티의 주저들을 긁어모을 때 구했던 책으로 기억에는 모레티의 첫 저작이다. 형식주의와 진화론을 접목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가 흥미로웠는데, 번역서가 나온 김에 완독해봐야겠다(물론 책이사가 끝나야지 가능한 일이다). 어떤 발상의 책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사랑의 학교>, 셜록 홈스와 <율리시즈>, <프랑켄슈타인>과 <황무지>. 세계문학사의 기적들로 불리며 대문문화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지만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한 ‘명작’으로 낙인찍힌 작품들이다. 모레티는 이 ‘세계문학의 기적들’인 실은 좀 더 넓은 문화적-정치적 현실의 징표임을 흥미진진하게 밝혀낸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통해 19세기의 ‘공포의 계보학’을 분석하면서 이 두 괴물이 19세기의 영국 자본주의의 동향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내는 모레티의 노련한 솜씨는 발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단지 흉측한 괴물에 그치는 반면 드라큘라가 잔혹함과는 거리가 먼 금욕주의적 흡혈귀인 것은 당시 영국 자본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드라큘라는 독점 자본과 금융 자본주의에의 적응에 실패한 영국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자기변호론으로 읽어야 한다는 모레티의 선구안은 대중문학이 ‘대중적으로’, 특히 정치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혜안을 제공해준다.

모레티의 다른 책들도 읽거나 다시 읽어볼 만한데, 이번에 보니 <근대의 서사시>(새물결, 2001)은 품절 상태다. 절판이 아니라면 다시 나오길 기대한다.

 

 

더불어 더 소개되면 좋겠다 싶은 모레티의 책들. <부르주아><멀리서 읽기><유럽소설 지도 1800-1900> 등. 나는 모레티가 가장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대 문학사회학자라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 선집(전15권)을 번역중인 독문학자 최성만 교수도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을 갈무리한 책을 펴냈다.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길, 2014). 현재 벤야민 선집은 여덟 권이 나와 있기에 절반은 넘어선 셈인데, <기억의 정치학>은 그 중간보고서적인 의미도 갖겠다. "발터 벤야민 선집을 총괄 기획하고 국내 벤야민 연구의 최고 전공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최성만 교수가 벤야민 사상 전반을 전기적 방식이 아닌 저작의 사유 흐름에 초점을 맞춰 서술한 국내 첫 연구 결실이다."

 

 

동시대 '백석파' 시인으로는 맨앞에 설 만한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이 출간됐다. 시인이 쓴 시인 평전으로는 고은의 <이상 평전>과 최하림의 <김수영 평전> 등이 떠오르는 데 그 계보를 이을 만하다. 백석 평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기대를 갖는 이유.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 <백석 평전>.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으며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백석의 생애를 복원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2004)이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따온 거라는 사실은 한국시 독자라면 상식에 속한다. 평전을 통해서 두 시인의 내밀한 관계도 들여다볼 수 있겠다. 더불어, <백석의 맛>(프로네시스, 2009)의 저자 소래섭 교수의 백석 시 안내서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우리학교, 2014)도 이번에 출간됐다. 청소년용이긴 하지만, 백석에 과문한 독자라면 이 책부터 손에 들어도 괜찮겠다...

 

14.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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