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가 잘 안 돼 새벽에 잠을 설치고 늦잠을 잤더니 하루 일과가 늦어졌다. 주말의 서재 일로 먼저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우선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사회자로서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 문광훈 교수의 묵직한 책이 나왔다. <심미주의 선언>(김영사, 2015). 단독 저서로는 <사무사>(현암사, 2012)와 <가면들의 병기창>(한길사, 2014)에 이어지는 것인데, 제목이 시사하듯 저자가 가장 욕심을 낸 책으로 보인다('선언'이란 제목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는 없으므로).

 

 

하지만 부제는 뜻밖에도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통상 심미주의는 유미주의, 탐미주의와 같이 떠올리게 되고, 이는 예술을 도덕이나 정치와 분리된 자족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심미적 경험을 '좋은 삶'을 산다는 윤리적 과제와 분리시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은 삶의 전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심미적 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게 하는가?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심미주의적 삶의 기술을 탐색, 개인과 공동체, 지식인 집단과 사회문화 전반의 심미적 각성을 촉발한 문제작.

 

곧바로 떠올리게 되는 건 저자가 사숙하는 김우창 선생의 '심미적 이성'론이다. 심미적 이성의 문광훈 버전이 '심미주의' 내지 '심미적인 것'이 아닐까 싶기에. 그런 점에서 보면, <사무사>도 그렇지만, 저자의 김우창과의 대화나 김우창론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을 듯싶다.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 <김우창의 인문주의>(한길사, 2006), <아도르노와 김우창의 예술문화론>(한길사, 2006) 등을 염두에 둔 것인데, <김우창의 인문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두 권은 절판된 상태라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수 있겠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 제프 다이언의 책도 한권 더 나왔다.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사흘, 2015). '제프 다이어의 모든 책'이라고 생각하고 나오는 책마다 긁어모으고 있으니 <베니스의 제프>도 예외는 아니다('작가들의 작가'라는 게 제프 다이어에 대한 평판인데, 그의 글이 와 닿는다면 자기 안의 '작가'가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이번엔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로군.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제프 다이어 소설. '타임' 선정 올해의 10대 소설, '뉴요커', '가디언' 선정 올해의 책이다. 섹스, 예술, 마약, 바나나, 그리고 가슴 뭉클한 영적인 체념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행자와 순례자들의 성지 베니스와 바라나시에서, 에로틱한 사랑 이야기와 인생의 어쩔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대담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아름다움>(사흘, 2014)의 개정판까지 포함하면 다이어의 책은 다섯 차례 출간됐다. 출판사가 다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올해도 두어 권은 더 나오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04)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저술가 다이앤 애커먼의 신작도 번역돼 나왔다. <새벽의 인문학>(반비, 2015). <천 개의 사랑>(살림, 2009)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책인데, 그 사이에 <사랑의 백가지 이름>(뮤진트리, 2013)이 더 있었다.

 

<감각의 박물학>, <천 개의 사랑>, <뇌의 문화지도> 등의 책으로 잘 알려진 다이앤 애커먼은 이 책에서 탐미주의자이자 자연주의자이자 빼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집약해서 보여준다.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매 순간의 감각과 사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과 내 몸과 내 몸이 일부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아가 새벽에 대한 성찰은 필연적으로 내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시간에 대한 성찰과 이해로 이어진다.

찾아보니 <새벽의 인문학>은 2009년작으로 <사랑의 백가지 이름>(2011)보다 두 해 먼저 나온 책이다.

 

 

<사랑의 백가지 이름> 이후에도 세 권의 책을 더 펴낸 것으로 보아 꽤 부지런한 편에 속한다. 가장 최근작인 <인간의 시대>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15.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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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와 발터 벤야민의 책이 재출간된 김에 알랭 바디우와 묶어서 '이주의 저자'로 삼는다.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바디우의 책은 신간이다.  

 

 

먼저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난장, 2015). 동문선판이 1998년에 나왔었으니까 17년만에 나온 새 번역본이다.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는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졌는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제의 강의는 1975-76년 학기에 이루어졌다. 직전 강의가 <비정상인들>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강의가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시리즈는 난장에서 나오고 있는데, <비정상인들>도 아마 새 번역본이 나오는 걸로 안다. 예정돼 있는 전체 13권 가운데 난장판으론 4권이 나왔고, <비정상인들>과 <주체의 해석학>을 포함하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건 6권이다.

 

 

얼마전에 나는 실제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분기에 한권 정도씩 읽어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주제의 해석학>(동문선, 2007)이다.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이제이북스, 2014)를 다룬 대목들이 나오면서 독서를 미룬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플라톤 전집판으로 나온 <알키비아데스>를 참고할 수 있으니 독서의 조건이 훨씬 좋아졌다. 경험상 가능하다면 영어본의 도움도 받는 게 독서를 수월하게 해준다. 이 강의 시리즈 대부분이 영어본으로 나와 있고, 나는 그 중 절반을 갖고 있다. 러시아어판도 상당수가 출간돼 있는데, 책값이 좀 센 편이어서(지금은 책값보다 배송료가 더 들겠지만) 나는 한두 권만 구입했던 듯하다. 그건 그렇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떤 의의가 있는 책인가.

지난 1997년 출간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중 처음 공개된 것으로서 ‘푸코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된 책이다. 이 책에서 푸코가 권력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제시한 ‘생명권력/생명정치’ 개념은 수많은 후속 연구를 낳으며 동시대 정치철학의 패러다임을 혁신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생명권력/생명정치’ 개념이 워낙 많이 회자된 탓에 사람들은 이 개념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주요 테마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정작 이 책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권력관계의 새로운 분석틀로서의 ‘전쟁’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즉, ‘전쟁’(혹은 전투, 내전, 침략, 반란, 봉기 등)이야말로 우리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향후 전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주장이 이 책의 핵심 테마인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길, 2015)가 '발터 벤야민 선집'판으로 다시 나왔다. 그린비판이 2005년에 나왔었으니까 10년만의 개정판이다. 개인적으로는 모티터링도 하고 몇년 전에는 모스크바에 가서 책에 대한 칼럼도 쓴 적이 있기에 인연이 없지 않다. 영어판과 러시아어판도 모두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행방을 찾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시 모아놓아야겠다. 이 책, 혹은 일기에서 어떤 벤야민을 만날 수 있는가.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요컨대 가장 인간적인, 혹은 가장 나약해보이는 인상의 벤야민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와도 많이 닮은 가장 친근한 벤야민일 수도 있겠다.

 

 

지난해에는 문광훈의 <가면들의 병기창>(한길사, 2014), 권용선의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역사비평사, 2014), 최성만의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길, 2014) 등 국내 학자들의 벤야민 연구서와 소개서가 여럿 출간됐었다. 올해도 선집의 추가적인 목록 외에 어떤 책이 더 나올지 궁금하다.

 

 

한 가지 바램을 적자면, 영어판 발터 벤야민 선집의 편집자이기도 한 마이클 제닝스 등의 평전 <발터 벤야민>(2014)도 번역되면 좋겠다. 몸메 브로더젠의 <발터 벤야민>(인물과사상사, 2007)과 게르숌 숄렘의 <한 우정의 역사>(한길사, 2002)보다 훨씬 자세한 평전이어서다. 짐작엔 번역이 진행중일 듯싶지만.

 

 

끝으로 바디우. 소품이긴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주제와 더불어 알랭 바디우의 철학에 이해에도 꽤 유익한 책이 출간됐다. <알랭 바디우, 공산주의 복원을 말하다>(숨쉬는책공장, 2015). 독일 파사젠출판사의 대담 시리즈 가운데 첫 권인데(둘째 권은 자크 랑시에르라고 한다) 출판사 발행인이자 대담자인 페터 엥겔만은 바디우를 비엔나로 초청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이 출판사의 창립 25주년 행사가 2012년 3월에 비엔나에서 있었고 바디우는 이때 엥겔만과 두 차례 대담을 가졌다). 영어판도 <철학과 공산주의 이념>이란 제목으로 올해 출간된다.

알랭 바디우는 몇 년 전부터 주로 공산주의 이념의 귀환에 대한 요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주장 때문에 그는 오늘날 슬라보예 지젝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격렬하게 논의되는 동시대 정치철학자가 되었다.

그런 계기가 된 것이 바디우의 <공산주의 가설>이고 이후에 지젝과 함께 주도하고 있는 공산주의 포럼(재작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돼 한국을 다녀갔다)의 결과물이 <공산주의 이념>이란 제목으로 출간되고 있기도 하다.

 

 

이 시리즈도 소개되면 좋겠다. 작년인가 확인해봤을 때는 의외로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없었는데, 그래도 그 사이에 번역에 나선 출판사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15.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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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고심하면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어서 그냥 곧장 떠오르는 세 명의 저자를 골랐다. 사회학자와 러시아문학자, 그리고 정치철학자다.

 

 

먼저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신작이 나왔다. <나는 시민인가>(문학동네, 2015).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에 이어지는 3부작 마지막 책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기대되는 책이긴 하다)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제목이 던지는 물음은 '나는 국민인가, 시민인가'를 줄여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깊은 절망과 자조의 한숨으로 고스란히 한 해를 채운 2014년 말, 사회학자 송호근은 한 칼럼에서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시대를 산다”는 말로 한국사회를 진단했다. 근대 시민사회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들어선 국민국가. 모든 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미숙한 시민은 국가에 복무하는 ‘국민’으로 반세기 넘게 동원되었다. 송호근 교수는 2015년의 들머리에 선보이는 이 책 <나는 시민인가>를 통해, 우리가 무엇보다도 ‘시민’ ‘시민-됨’의 가치를 되돌아봐야 함을 강조한다. 불신, 격돌, 위험 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오늘의 한국에서,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바로 탄탄한 시민사회의 건설이다. 시민 개개인에서부터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계층을 호명하는 저자는, 하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시민인가?’

사회학에서 '시민'이란 말은 지난 80년대에 '민중'에 의해 대체된 '올드한' 용어인데, 송호근 교수는 일련의 저작을 통해 이 개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국민이냐, 시민이냐'라는 물음이 유효하다면 '시민-됨'의 문제도 더 진지하게 숙고해봐야겠다.

 

 

러시아문학자 오종우 교수도 새로운 책을 펴냈다. <예술수업>(어크로스, 2015). 러시아문학, 특히 안톤 체호프 전공자로 그간에 체호프 번역서와 연구서를 펴냈고, 대학 강의실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사람의무늬, 2012)로 묶은 바 있다(<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의 개정판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예술수업>에서는 저자의 관심과 시야가 예술 전반으로 확장됐다.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이 부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의 소설, 피카소와 샤갈의 그림,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타르콥스키의 영화,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졸라의 탱고가 흘러넘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에서 예술가의 창조적 영감이 폭발했던 순간으로 떠나는 황홀한 모험이다. 저자는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남은 작품을 통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유했던 천재들의 빛나는 통찰과 남다른 감각을 읽어내고,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가져온 인류의 지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영화까지 포괄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예술수업'의 특징이다. 저자의 전방위적 관심과 통합적 지성이 어떤 결과로 응집되었는지 '예술수업' 강의실에 잠시 앉아보아도 좋겠다.

 

 

저작보다 연구서들이 먼저 나와서 어리둥절하게 했던 영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쇼트(오크숏)의 책이 처음 번역돼 나왔다. <신념과 의심의 정치학>(모티브북, 2015).

20세기를 대표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자인 오크쇼트가 사망한 후에, 그가 거주하던 도싯 해안의 통나무집에서 발견된 원고 뭉치를 편집해서 출판한 책이다. 집필 날자가 적혀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집필 시기는 1947년에서 1952년 사이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크쇼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지는 정치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정치를 실천하는 데 중용의 감각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째서 높은 명망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게 국내에 소개된 첫 책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한다고 하니 읽어봄직하다는 생각은 든다(물론 한국의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테지만).

 

 

더불어 박동천 교수의 번역이란 점도 책을 신뢰하게 만든다.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모티브북, 2010)과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모티브북, 2012) 등의 저자이면서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 2014)을 포함해 정치사상 분야의 여러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왔기 때문이다(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벌린도 분류하자면 보수에 속하겠군). 분량이 묵직하지 않은 것도 나름 장점. 흥미가 생긴다면, 김비환 교수의 <오크숏의 철학과 정치사상>(한길사, 2014)까지 손에 들 수 있겠다...

 

15.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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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금요일 밤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강의 일정이 없어서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하루를 보냈는데, 매번 확인하는 건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일도 아니라는 것. 처음 만난 책들을 뒤적이고 몇 가지 업무를 처리하니 저녁이 됐고 팟캐스트 몇 개 들으니 이 시간이다(하긴 대통령 임기만 빼곤 모든 시간이 쏜살같다). '이주의 저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세 사람을 골랐다. 중국의 인문학자와 한국의 언론인,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학자다.

 

 

먼저 이중톈. <이중톈 중국사 4-6>(글항아리, 2015)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띄어띄엄 나오던 1-3권과 달리 한꺼번에 나온 것도 마음에 들고, 산뜻한 표지도 눈에 찬다. 게다가 그의 중국사도 이제 '청춘'에 접어들었으니 독서욕도 더 자극된다. 

 

 

더불어, 미뤄둔 1-3권도 이제 읽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감질날까 싶어 독서를 미루고 있었다(세 권을 합해야 어지간한 책 한 권 분량이다). 손 가까이에 두려고 신경을 썼는데, 일단 1권은 눈에 띄어서 책상맡에 놓았다. 1-3권에 뒤이어 읽게 될 4권 <청춘지>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학자, 이중톈이 강의하는 알기 쉬운 중국사. 춘추 시대까지는 중국 민족의 '소년기'였다. 그때 사람들은 진실한 성정과 열정으로 과감히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알았다. 그래서 살신성인의 자객, 진실한 사랑을 좇은 연인, 정의로운 전사, 충성스러운 신하, 위기를 극복한 사신, 인간미 넘치는 귀신이 있을 수 있었다. 4권에서 저자는 바로 그 '기운'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이사장까지 지냈지만 내겐 김훈의 후배이자 <문학기행>의 공저자로 기억되는 박래부 기자의 <좋은 기사를 위한 문학적 글쓰기>(한울, 2015)가 출간됐다. 기자들을 위한 글쓰기 교본으로 보이는데, 소개는 이렇다.

‘기자 사관학교’인 한국일보에서 사회부, 외신부, 문화부 등 여러 방면에서 기자활동을 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명저,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의 저자 박래부 기자가 직접 첨삭 지도를 해주 듯 서술되어 있어 예비 언론인들의 글쓰기 연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서평쓰기 강의도 진행하게 돼 글쓰기 관련서들을 다시 사모으고 또 뒤적이고 있는데(몇년 전에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할 때도 한 차례 겪은 일이다) 기사에는 서평기사도 포함되니 때마침 참고할 만한 책이어서 반갑다(오늘 들은 팟캐스트에서는 유시민의 글쓰기 책도 이번 봄에 나온다고 한다).

 

 

 

겸사겸사 확인하게 된 사실은 (나는 한국일보에 연재될 때 읽은 독자이기도 한데)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이 세 차례나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나는 두 종을 구입했었다) 지금은 절판된 상태라는 점. 아마도 출판사를 바꿔서 다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김훈의 <자전거 여행>처럼 문학동네에서 다시 나오는 걸까?).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도 재발견된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타르드 발견의 가장 큰 공은 들뢰즈에게 돌려진다). <여론과 군중>(지도리출판사, 2012)으로 국내에도 처음 소개되기 시작해서 이번에 나온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이책, 2015)까지 네 권이 한국어판을 얻었다. 분량은 얇지만 타르드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타르드에게는 철학이 없다면 사회학도 없다. 그래서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은 철학자로서의 타르드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문헌이다. 최근 타르드를 ‘분자적인 또는 미시물리적인 사회학의 창시자’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과 과학 사이에 엄격한 경계를 세우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려나 타르드의 주요 저작이 빠르게 소개되고 있어서(영어로 번역된 것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학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겐 즐거운 소식이 될 듯하다...

 

15.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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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제목의 익숙한 이름들이 말해주듯 '올드 스칼러' 세 사람이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과 앤서니 기든스, 그리고 문화연구의 거두 스튜어트 홀. 세 사람의 책이 거의 동시에 출간된 것도 드문 일이지 싶다.

 

 

먼저 연배로는 가장 앞서는 쳬계이론가 루만. <체계이론 입문>(새물결, 2014)과 <생태적 커뮤니케이션>(에코리브르, 2014)이 나란히 출간됐는데, 지난해에는 <사회의 법>(새물결, 2014)과 <예술체계이론>(한길사, 2014)까지 나왔으니까 루만 수용에서 꽤 의미있는 해로 기억됨직하다(당연하지만 한 해 동안 네 권이나 번역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체계이론 입문>은 제목 그대로 입문서이기에 루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도 해줄 듯하다. 소개도 그렇게 돼 있다.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만 알려진 루만이 은퇴 직전에 사회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어떤 전문 분야나 전문가들이 아니라 이제 막 사회학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70여 권에 이르는 대중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 접근도가 높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생태적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가'란 부제의 <생태적 커뮤니케이션>은 <현대사회는 생태학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가>(백의, 2002)로 나왔던 책의 새 번역판이다. 책의 의의에 대해선 나도 서평 기사들을 참고해야겠다.

 

 

영국의 대표적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책과함께, 2014)도 다시 나왔다. 웬 제3의길?, 인가 했더니 원저도 작년에 2판이 출간됐다. 얼마만큼 개정이 이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뜬금없이 나온 건 아니라는 것. 초판은 1998년에 나왔고 한국어판도 곧바로 출간됐었다. <제3의 길>(생각의나무, 1998). 당시 영국 노동당의 노선 변경과 관련하여 주목받은 책이자 맹렬한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책. 새 번역본의 카피로는 '유럽의 오늘을 바꾸어 놓은 책, 한국의 내일을 바꾸어 놓을 책'이다. 과연 그런가는 따져볼 문제다.

 

비록 <제3의 길>이 별로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기든스의 사회학 교과서의 저자로 오래 남을 듯하다. 대표적 교재인 <현대사회학(7판)>(을유문화사, 2014)이 작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7판까지 나올 정도면 이 분야에선 거의 경쟁작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영국 버밍엄 대학 현대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오래 재직하면서 문화연구라는 분야를 일군 스튜어트 홀 선집이 <문화, 이데올로기, 정체성>(컬처룩, 2015)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편역자가 같은 걸로 보아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한나래, 1996)의 개정증보판으로 보인다. 별다른 소개가 없어서 내용은 실물을 봐야 알 수 있겠는데, 같이 읽을 만한 가이드북은 이미 나와 있다. 제임스 프록터의 <지금 스튜어트 홀>(앨피, 2006). 이 책에 대한 소개가 '스튜어트 홀 선집'의 내용도 어림하게 해준다.

이 책은 영국 신좌파 그룹에 속해있던 1950년대 이후로 스튜어트 홀의 전방위한 사상적 범위와 연구, 그리고 그에 따른 성취를 요약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문화연구의 주창자로 부상한 것 이외에도, 1980년대 그가 촉발시킨 대처주의와 인종주의에 관한 논쟁, 1990년대 이후의 정체성·디아스포라·민족성에 관한 그의 발언 등을 살핀다. 스튜어트 홀의 방대한 연구를 역사적·문화적·이론적 문맥 속에 위치시켜 문화의 정치성,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문제, 정체성의 정치학 등으로 재구성했다. 또한 그가 남긴 지적 유산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지금껏 저서를 한권도 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수정·갱신해 온 홀의 핵심 사상과 영향력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첫 주부터 좀 '하드한' 저자들을 고르게 됐는데, 어차피 쉬운 공부란 의미가 없다. 새해 결심이 아직 무너지기 전에, 오래 붙들고 씨름할 책을 고르는 것도 독서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곡괭이질도 좀 해봐야 허리 펴는 기쁨도 맛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디부터 파야 되는 것인가?..

 

15.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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